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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유예된 행복과 서늘한 침묵]

Auteur: silver구슬
last update Date de publication: 2026-05-09 00:05:10

다들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지, 한정식집에서의 회동은 그룹의 미래를 운운하며 밤이 늦어서야 끝이 났다.

유환은 고민을 안고 죽집에 들러 전복죽을 사 들고 집으로 향했다. 

장하늘이 먼저 돌아가지 않았을까. 몸도 안 좋은데 쉬고 있다면 전화 안 하는 게 낫지 싶어 서둘러 현관문을 열었을 때, 장하늘의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유환은 입꼬리를 올리게 되었다.

거실로 들어서니 소파에서 고양이처럼 웅크린 채 깊이 잠든 장하늘이 보였다. 유환이 조심스레 흔들어 깨워보려 했으나, 장하늘은 그저 고개만 살짝 비틀 뿐 깨어날 기미가 없었다. 소파 앞 테이블에는 빼곡하게 필기된 노트가 펼쳐져 있었다. 

자신이 올 때까지 지루한 공부를 하며 기다린 걸까. 

“예쁘네, 장하늘.”

낮게 읊조린 유환이 입고 있던 슈트 재킷의 단추를 풀어 내렸다. 재킷을 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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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뜨겁게 한바탕 주차장에서 열꽃을 피운 장하늘과 유환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그라운드로 향하게 되었다.그리고 라인업이 전광판에 공개되자 우레 같은 함성이 경기장을 채웠다.『1번 타자 - 장하늘 (포수)』『2번 타자 - 최우현 (3루수)』『3번 타자 - 유환 (투수)』『4번 타자 - 유경호 (우익수)』『5번 타자 - 서정우 (유격수)』···『9번 타자 - 김강무 (좌익수)』오늘도 S대는 압도적인 승리를 위해 최적의 타순을 구성했다.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관중석에서는 경악 섞인 탄성이 터져 나왔고, 그라운드 위에서는 새로운 역사가 쓰이고 있었다.“와, 대박! S대 타선 완전히 불붙었는데?”“1회 초, 원아웃인데 벌써 하위 타선까지 한 바퀴 다 돌았어!”보통 대학 야구를 사람들이 이리 보러 오지는 않을 텐데.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잠실 보조경기장은 구름 관중으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취재진의 카메라 셔터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조금 전 장하늘과 뜨겁게 열기를 쏟아낸 덕분인지, 유환의 몸에는 넘치는 활력이 가득 차 있었다.터질 듯한 함성과 더그아웃을 감싸는 승리의 기운 때문인지 유환의 입가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지리적 이점 덕분에 수업이 없는 S대 학생들도 대거 몰려와 축제 분위기를 방불케 했다. 1회임에도 불구하고 야구장은 이미 9회 말 투아웃 풀카운트 같은 열기로 달아올라 있었다.“아! 또 이기겠다! 오늘 이기면 우리 본선 진출이야. 8강 확정이라고! 하하!”홈을 밟고 들어온 최우현은 전광판의 스코어를 확인하며 어린아이처럼 들떠 있었다. 1회 초임에도 점수차는 벌써 5점으로 벌어져 있었다.“선배님, 당연히 이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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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SS'의 퍼펙트 배터리(The SS-Class Perfect Battery)   #61. [길들이고 싶게: 언터처블(Untouchable)]

    미묘하게 일렁이는 공기의 흐름을 감지한 장하늘이 예민하게 어깨를 떨었다.그 찰나의 동요를 놓칠 리 없는 유환은 오만한 턱짓으로 하늘의 얼굴을 가리켰다. 집요하게 시선을 얽어매는 그의 눈빛은 침묵으로 답을 종용하고 있었다.“되게 궁금하게 만드네. 말해 봐, 어서.”달뜬 숨결이 귓가를 간지럽혔다. 역시나 지독하리만치 강압적인 사내였다.우회로나 적당한 타협점 따위는 태생적으로 배우지 못한 듯, 오로지 직진만을 고집하는 녀석다운 태도에 하늘은 속절없이 휩쓸렸다.“그냥, 어떻게 하면 너를 더 돋보이게 하고 대단한 존재로 만들 수 있을지, 뭐··· 그런 거···.”말끝이 채 맺어지기도 전이었다. 유환은 ‘난 또 뭐라고’라며 싱겁게 웃더니, 오히려 하늘의 얇은 허리를 안아 강하게 들어 올렸다. 무게 중심이 유환에게 속절없이 옮겨진 장하늘은 요염한 자세가 되어 버렸다.“읏···.” “예쁘기는.”그 고백이 퍽 만족스러웠는지, 유환은 어둠 속에서도 근사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렸다.이내 가차 없는 완력이 가해지며, 유환은 다시금 하늘의 내부를 사정없이 파고들었다. *** 찌걱, 찌걱. 그 뒤로도 오랜 시간 점막과 점막이 마찰하며 내는 질척한 소음이 고요한 방 안을 잠식했다.뜨거운 살과 살이 맞물리며 내는 노골적인 소리는 어둠 속에서 리드미컬한 박자를 이루었고, 두 사람의 억눌린 신음이 그 위로 겹쳐지며 불협화음을 만들어냈다.낡고 보잘것없는 자취방의 공기가 유환의 체취와 비릿한 열기로 선명하게 얼룩지고 있었다. 이 비좁은 공간이 전보다 아늑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이 가학적인 다정함에 길들여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리라.“유환아! 으읏- 우리 진짜 잘하자! 내일 꼭 이기는 거야!”

  • '도SS'의 퍼펙트 배터리(The SS-Class Perfect Battery)   #60. [사람 미치게 야하기는···]

    12월 24일. 그 숫자가 의미하는 바는 이제 단순한 날짜가 아니었다.그것은 장하늘이 세상에 예고한 잔인한 작별의 신호이자, 유환에게는 절대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불길한 카운트다운이었다.독일에서의 수술과 재활 치료, 갑작스러운 귀국, 그리고 마치 마지막 소원을 이행하듯 태우는 이 찬란한 불꽃.유환은 타들어 가는 갈증을 독한 술로라도 달래며 녀석의 여린 속내를 헤집고 싶었지만, 하늘의 창백한 안색과 내일의 경기 일정을 떠올리며 끓어오르는 욕망을 억지로 삼켰다.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몽글몽글한 수증기 사이로 장하늘이 아이처럼 해맑게 웃으며 그를 반겼다.“와, 정말 맛있겠다! 유환아, 고마워. 네 덕분에 우리 집 식탁이 다 화사해졌네.”식탁 앞에 단정히 앉아 유환을 기다리는 하늘의 모습은 마치 세상의 온갖 시름을 잊은 듯 평온했다.유환은 녀석의 그 속없는 미소가 오히려 아릿했다. 고작 테이크아웃 음식 따위에 저토록 환하게 웃어주다니. 녀석에게라면 매일 밤 왕실의 성찬이라도 대령할 수 있는데.“내일은 더 근사한 곳에서 사줄게. 그러니까 오늘은 그거라도 많이 먹어 둬.”장하늘이 수저를 놓는 손길은 깃털처럼 가볍고 다정했다. 녀석의 가느다란 손목이 눈에 밟힐 때마다 유환의 가슴엔 시커먼 걱정이 켜켜이 쌓여갔다.그때, 정적을 깨뜨린 것은 날카로운 인터폰 소리였다.Rrr Rrr Rrr-.“내 손님은 없는데. 누구지?”“나한테 볼일 있는 사람. 기다려, 퀵 배달 시켰으니까.”유환이 현관에서 들고 온 거대한 봉투 안에는 세제와 휴지 같은 생필품, 그리고 노골적인 상표의 콘돔과 젤, 각종 영양제가 쏟아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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