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시야가 닿지 않는 저 음습하고 은밀한 후미진 구석.
어제의 파렴치했던 환상이 다시금 생생하게 재생되자, 맥동하는 아랫도리가 기다렸다는 듯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 미친 몸뚱어리가……! 생각도 녀석, 몸도 녀석. 나 진짜 미쳐버린 건가!’
유환은 하마터면 눈앞의 철제 의자를 박살 낼 듯 주먹을 움켜쥐었다.
난잡한 호색한도 아니거늘, 꿈속에서 장하늘에게 저질렀던 그 외설적인 행위들이 떠올라 홧홧한 열기가 뺨으로 번졌다. 이성과 본능이 장하늘이라는 덫에 걸려 제 기능을 상실하고 있었다.
유환은 거칠게 심호흡을 하며 달아오른 열기를 식히려 애썼다. 그리고 유경호를 향해 싸늘한 거절을 내뱉었다.
“감히 3학년 레귤러 선배님께 오자마자 신세를 질 수는 없죠.”
“뭐?”황당한 듯 팔을 늘어뜨린 유경호가 유환을 빤히 응시했다.
“전 1학년 신입 포수, 장하늘이 오면 그때 시작하겠습니다.”
유환의 음성에는 서슬 퍼런 날이 서 있었다.
유경호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미트를 툭 치며 웃음을 터뜨렸지만, 그 소리는 유환의 귀에 닿지 않았다.
오로지 장하늘이 나타날 방향만을 향해 유환의 시선은 집요하게 고정되었다.
*** “에취!”장하늘의 다리가 강의실 문턱을 넘어서자마자, 전생의 훈련된 근육들이 기억을 되찾은 듯 폭발적인 속도를 냈다.
인생을 거듭할수록 신체 능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되는 기분은 묘했다.
이전 생애의 고된 훈련조차 영혼에 저장되는 것일까. 참으로 기구한 축복이었다.
첫 번째 생에서 단거리 육상선수로 살았던 그 감각이, 지금 이 절박한 순간에 빛을 발하고 있었다.
유환이 유경호와 배터리를 이루어 호흡을 맞추는 꼴만은 죽어도 보기 싫다는 치기 어린 독기가 전력 질주를 부추겼다.
교정의 학생들이 마치 모세의 기적처럼 좌우로 갈라지며 길을 터주었다. 뒤통수에 박히는 수많은 시선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녀석은 분명 한 시간 먼저 도착해 있을 터였다. 지금 가면 유경호가 끼어들 틈 없이 공을 받아낼 수 있을 텐데.
제발 유경호와 엮이지 않았기를.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는 고통 속에서도 장하늘의 심장은 불안으로 요동쳤다.
퍽!
멀리 야구장의 결계 안에서, 묵직한 공이 미트의 심장을 찢는 소리가 교정의 정적을 뚫고 울려 퍼졌다.‘아, 제길! 늦었나?’
날카로운 타격음이 장하늘의 심장을 조여왔다.
시속 160km를 육박하는 유환 특유의 파괴적인 직구 소리였다. 벌써 누군가와 합을 맞추고 있다는 사실에 속이 바짝 타들어 갔다.
장하늘은 폐가 찢어질 듯한 고통을 무릅쓰고 두 다리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차라리 독감 핑계라도 대고 일찌감치 조퇴할 것을.
뒤늦은 후회가 푸념이 되어 입술 밖으로 새어 나갔다.
다급하게 그라운드 마운드를 살피던 장하늘의 눈이 커다랗게 흔들렸다.
‘어? 저 사람은…… Y대 에이스잖아?’
마운드 위에 서 있는 것은 유환이 아니었다. 엉뚱한 인물이 그곳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당혹감이 머릿속을 하얗게 비웠다.
전생의 기억대로라면 유환이 저 자리에 있어야 했건만, 예상 밖의 변수에 사고 회로가 정지했다. 장하늘은 그라운드 입구에 멈춰 서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에취!”
참았던 재채기가 폭탄처럼 터져 나오자, 시끌벅적하던 그라운드의 모든 시선이 그에게 쏟아졌다. 그 수많은 눈동자 사이를 헤집으며 유환의 형상을 찾는 장하늘의 눈빛은 비장하기까지 했다.
밀려오는 부끄러움에 차라리 도망치고 싶었다. 유환이 여기 없다면 굳이 이 소란에 섞일 이유가 없었기에 발길을 돌리려던 찰나였다.
등 뒤에서 서늘하고도 고급스러운 향기가 끼어들었다. 회색 명품 손수건 하나가 시야에 쑥 들어왔다.
“요란하긴.”
점퍼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오만한 자세로 서 있는 유환의 실루엣을 마주한 순간, 장하늘의 심장은 그대로 박동을 멈췄다.
청바지 라인을 따라 날카롭게 떨어지는 허벅지의 곡선이 위협적인 남성미를 풍기고 있었다.
*** 연이은 재채기 소동 탓에 장하늘은 결국 더그아웃 벤치 신세로 전락했다.그런데 유환 역시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긴 다리를 꼬고 방만한 자세로 의자 끝에 걸터앉았다. 자신에게 시선 한 번 주지 않고, 말 한마디 섞지 않으면서도 시선은 오로지 마운드만을 향한 채였다.
그럴 거면서 손수건은 왜 건넸는지, 참으로 속을 알 수 없는 녀석이었다.
벤치에 길게 늘어져 다리를 꼬고 앉은 유환의 태도는 평소의 그 답지 않게 정적이었다. 마치 장하늘의 인내심을 시험하듯, 그라운드를 훑는 그의 눈빛은 위험한 광기를 머금고 있었다.
야구라면 사족을 못 쓰는 바보라 공만 보면 던지고 싶어 안달이 났을 텐데, 태양이라도 서쪽에서 뜬 것일까.
유환은 제삼자처럼 팔짱을 낀 채 선배와 동기들의 전력을 하나하나 해부하며 장하늘의 곁을 고집스럽게 지켰다.
“눈은 도대체 어디에 달고 야구를 하는 건지.”
“평소에 체력 훈련은 숨쉬기만 하나 보군.”
“구제 불능인 쌩 아마추어들뿐이야.”
누가 보면 감독이나 구단주라도 된 듯, 유환의 오만은 하늘을 찔렀다.
선배들의 실책이나 헛스윙을 지켜보며 내뱉는 독설은 가차 없었다.
언제나 제멋대로, 세상의 중심이 자신인 것처럼 행동하는 남자.
장하늘은 이 지독히 독선적이고 가학적인 성향이 짙은 유환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했다.
긴긴 세월, 무려 4번의 생을 건너오며 닳고 닳도록 말이다.
선배들이 갈아입을 유니폼을 내밀며 유환을 마운드로 불러냈지만, 그는 컨디션이 난조인 장하늘을 돌봐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며 기어이 자리를 지켰다.
바늘방석에 앉은 장하늘은 사방에서 꽂히는 황당한 시선들을 감내하며 유환을 노려보았다.
재채기 몇 번이 무슨 불치병이라도 되는 양 구는 꼴에 속이 터질 것 같았다. 당장이라도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저 푸른 잔디 위로 뛰어들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유환, 지금 뭐 하자는 거야? 어서 가서 공이라도 던져. 대체 왜 여기 이러고 있는 건데?”
장하늘은 일단 유환만이라도 제 자리를 찾아가게 하려고 날 선 목소리를 던졌다.
자신 때문에 유환의 귀중한 시간이 낭비되는 것이 수치스러웠지만, 동시에 그의 곁을 떠나고 싶지 않은 비겁한 욕망이 발목을 붙잡았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들러붙지 말라고 했을 텐데?”
유환은 당장이라도 삼켜버릴 듯 흉흉한 기운을 내뿜으며, 세상에서 가장 화가 난 표정으로 장하늘을 쏘아보았다.
우리 독자님들, 진심으로 이 글을 읽어주셔 감사합니다. 제 인생의 첫 BL이자, 스포츠 물도 처음이라 많이 서툴고 부족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열정 만큼은 최고로! 실제로도 야구 광팬이라서... 즐겁게 창작하였습니다. 이 글이 훗날 인기가 많아지고 또 여러분들이 그 뒷 이야기가 궁금하다고 한다면 다른 글들 다 완결 지어 놓고 외전으로 올 수도 있고, 시즌 2로 올 수도 있습니다. 하하!(희망사항이요.)다음 생애가 있다면, 정말 운동 잘하는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다~ 할 정도로 현재 제 몸은 운동 신경도 없거니와 건강도 허락되지 않아 아쉬움이 조금 있습니다. 하하! 그러나, 이렇게 글이라도 쓸 수 있는 취미가 있어 얼마나 다행이게요.제 2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작품 속에 장하늘의 마음을 이입해 보기도 하고, 유환이 되어 장하늘을 사랑해 보면서 글을 이어 나갔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셔 감사합니다. 저는 다국어 버전 완결을 이번주에 지어 놓고 완결 딱지를 붙일 예정입니다. 굿노벨에 꾸준하게 작품이 올라올 예정이니... 앞으로도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silver구슬] 잊지 마시고... 아, 저 작가는 한번 시작하면 완결 때리는 구나! 믿고 다른 작품도 달려와 주시기 바랍니다. 이 글을 도전하라고 격려해주신 Yino 편집자님께 감사드리며~~, 저는 차기작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저는 예전에 글을 많이 써 놓고 이제서야 하나둘 출간하게 되어 소설계에서는 초보작가입니다. 웹소설을 전혀 읽지 않고 종이책만 읽어서 다른 분들의 글과는 결이 좀 다릅니다. 심지어 제가 읽은 장르도 형사물, 판타지물, 영미문학, 북유럽 쪽 스릴러, 일본 쪽 미스터리 등.그래서 저의 글은 나름의 개성이 묻어 있습니다. 요원이 주인공인 르와르 풍의 남장여인 삼각관계 로맨스... [닥치고 내게로 와!] ~~4번째 회귀한 천재 작곡가 기억상실 임신녀 경신의 로코 이야기 [아기를 품은 앙큼한 그녀] ...그리고 남장 하인에서 소드마스터, 대마법사가 되는 라이
우리 독자님들, 진심으로 이 글을 읽어주셔 감사합니다. 제 인생의 첫 BL이자, 스포츠 물도 처음이라 많이 서툴고 부족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열정 만큼은 최고로! 실제로도 야구 광팬이라서... 즐겁게 창작하였습니다. 이 글이 훗날 인기가 많아지고 또 여러분들이 그 뒷 이야기가 궁금하다고 한다면 다른 글들 다 완결 지어 놓고 외전으로 올 수도 있고, 시즌 2로 올 수도 있습니다. 하하!(희망사항이요.)다음 생애가 있다면, 정말 운동 잘하는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다~ 할 정도로 현재 제 몸은 운동 신경도 없거니와 건강도 허락되지 않아 아쉬움이 조금 있습니다. 하하! 그러나, 이렇게 글이라도 쓸 수 있는 취미가 있어 얼마나 다행이게요.제 2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작품 속에 장하늘의 마음을 이입해 보기도 하고, 유환이 되어 장하늘을 사랑해 보면서 글을 이어 나갔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셔 감사합니다. 저는 다국어 버전 완결을 이번주에 지어 놓고 완결 딱지를 붙일 예정입니다. 굿노벨에 꾸준하게 작품이 올라올 예정이니... 앞으로도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silver구슬] 잊지 마시고... 아, 저 작가는 한번 시작하면 완결 때리는 구나! 믿고 다른 작품도 달려와 주시기 바랍니다. 이 글을 도전하라고 격려해주신 Yino 편집자님께 감사드리며~~, 저는 차기작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저는 예전에 글을 많이 써 놓고 이제서야 하나둘 출간하게 되어 소설계에서는 초보작가입니다. 웹소설을 전혀 읽지 않고 종이책만 읽어서 다른 분들의 글과는 결이 좀 다릅니다. 심지어 제가 읽은 장르도 형사물, 판타지물, 영미문학, 북유럽 쪽 스릴러, 일본 쪽 미스터리 등.그래서 저의 글은 나름의 개성이 묻어 있습니다. 요원이 주인공인 르와르 풍의 남장여인 삼각관계 로맨스... [닥치고 내게로 와!] ~~4번째 회귀한 천재 작곡가 기억상실 임신녀 경신의 로코 이야기 [아기를 품은 앙큼한 그녀] ...그리고 남장 하인에서 소드마스터, 대마법사가 되는 라이
5월의 열기가 그라운드 위로 절정에 달해 흐르던 어느 날.전국 대학야구 대회, 대망의 결승전 날이 밝았다.구름 관중을 몰고 다니는 S대 야구부 ‘마구마구’는 이제 단순한 동아리 수준을 넘어, 대한민국 대학야구의 찬란한 르네상스를 불러온 주역이 되어 있었다. 경기장 주변은 이른 아침부터 몰려든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언론 매체들은 마운드에 오를 유환과 장하늘의 일거수일투족을 담아내기 위해 열띤 취재 경쟁을 벌였다.[퍼펙트 배터리의 귀환! 과연 기적의 우승을 거머쥘 것인가!][새내기 괴물 투수 유환과 지략가 포수 장하늘, 그들의 매직은 오늘도 유효한가!][160km의 광속구를 뿌리는 유환과 완벽한 볼 배합의 장하늘, 전 구단 스카우트 집중!][오늘 경기에는 U그룹 유준철 회장과 유도완 사장도 귀빈석에서 관람할 예정이라 전해져···.]각종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를 장악한 ‘마구마구’의 위세는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야! 너희 둘!” “일주일 내내 연락도 안 되고 대체 어디 있었어?” “오늘 경기 못 나오는 줄 알고 우리가 얼마나 가슴 졸였는지 알아?”더그아웃에 나타난 장하늘과 유환을 보자마자, 모두들 헐레벌떡 달려와 소리를 질렀다.연습하러 한번 학교에 나오지도 않고, 심지어 문자 답신도 없어 모두들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휴, 난 너희 없이 오늘 사형장에 끌려가는 줄 알았다니까. 다행이다, 진짜로 나타나 줘서.”최우현도 떨리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장하늘의 곁으로 다가왔고, 안색이 흙빛이었던 김강무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살얼음이 가득한 스포츠음료를 건넸다.“왔으면 됐지. 다들 이거나 마셔.”장하늘은 일주일 내내 유환과 지독하게 엉겨 붙어 있었다는 말은 입 밖으로 내지 못한 채, 애꿎은 유환의 눈치만 살피며 어색하게 웃었다.“선배님들, 정말 죄송합니다. 어쩌다 보니 개인적인 사정이 좀 있어서··· 하하.”장하늘은 멀찍감치 서 있는 서정우를 향해 은밀하게 고맙다는 눈인사를 보냈다. 서정우 역시 의미심장한 미소를
다음 날.폭풍우가 휩쓸고 간 자리는 기이할 정도로 고요했다.창문을 부술 듯 두드리던 사나운 빗줄기는 흔적도 없이 증발했고, 비에 젖은 흙내음과 농밀한 습기를 머금은 공기는 오히려 달큼한 향취를 풍겼다.유환과 장하늘은 약속이라도 한 듯 가벼운 옷차림으로 호텔 뒤편의 한적한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멀리 인천공항 활주로에서는 짐승의 숨소리 같은 엔진음을 내뿜으며 거대한 비행기들이 솟구쳐 올랐고, 점멸하는 불빛들이 유성처럼 밤하늘을 가로지르고 있었다.“장하늘, 허리 안 아파? 새벽에 좀 심하게 몰아붙인 것 같아서.”유환이 입가에 능글맞은 미소를 매단 채 장하늘의 어깨에 자연스럽게 팔을 둘렀다. 장하늘은 뒷덜미까지 확 달아오르는 열기를 느끼며 녀석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툭 쳤다.“···조용히 해. 보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어쩌려고.” “이 시간에 여길 누가 와. 우리밖에 없어. 그리고 먼저 유혹한 건 너잖아.”유환은 기다렸다는 듯 장하늘을 제 품으로 더욱 바짝 끌어당겼다. 장하늘은 툴툴대면서도 녀석의 단단한 흉곽에서 느껴지는 온기에 슬그머니 몸을 기댔다. 규칙적으로 고동치는 유환의 심장 박동이 귓가를 울릴 때마다, 유리그릇처럼 위태롭게 흔들리던 장하늘의 영혼이 비로소 안식처를 찾은 듯 차분히 가라앉았다.두 사람은 산책로 끝단,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전망대 앞에 멈춰 서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 사이로 수줍게 고개를 내민 달빛이 검은 바다 위에 은색 비늘을 뿌려놓은 듯 부서지고 있었다.장하늘이 낮게 읊조렸다. 전생의 잔혹한 굴레, 머지않아 닥쳐올 비극의 예언, 그리고 유준철 회장의 서슬 퍼런 압박까지. 그 모든 중압감이 이 광활한 밤하늘 아래서는 한낱 흩어지는 먼지처럼 작게만 느껴졌다. 유환은 장하늘의 손가락 사이사이로 제 손가락을 깊숙이 얽어매며 뼈마디가 하얗게 질릴 정도로 힘을 주어 잡았다.“오늘 오후에 미국 갔다가 실컷 잘 놀다 오자.” “떠나려고 했던 시도가 너랑 추억이나 쌓는 이벤트가 되다니.”장하늘의 고백에 유환은 잠시 걸음
창밖은 천둥번개가 내리치며 당장이라도 세상이 무너질 듯 흉흉한 소리만을 뱉어내고 있었다. U그룹 회장실 안의 공기는 그보다 더 지독하게 얼어붙어 있었다. 대형 모니터 속에서 붉은 자막으로 흘러나오는 인천공항 고속도로 10중 추돌 사고 소식은, 유준철의 심장을 밑바닥까지 사정없이 떨어뜨리기에 충분했다.내가 괜히 녀석을 공항으로 가라고 내몰았던가. 장하늘이라는 아이를 떼어내려다 기어이 내 손으로 내 귀한 손자의 핏줄을 끊어놓은 것인가.평생 오만하게 살아온 유준철의 노체(老軀)가 생전 처음 겪는 지독한 자책감에 가늘게 떨려왔다.“김 비서! 대체 어떻게 된 거야! 현장 상황은 파악됐나!”지팡이로 바닥을 쾅쾅 내리치며 유준철이 벼락같이 고함을 질렀다. 문을 열고 급히 뛰어 들어온 김 비서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그게··· 도련님께서 경찰이 도착하기도 전에 스스로 사고 차량을 알아서 빼달라고 요청하고는 현장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뭐?”순간 회장실 내에 찰나의 침묵이 감돌았다. 피가 거꾸로 솟는 충격에 유준철이 뒷목을 잡는 사이, 옆에 서 있던 유도완이 툭 하고 바닥으로 무너지듯 무릎을 꿇었다.“기어이······! 흑흑!”유도완은 붉어진 눈으로 머리를 감싸 쥐며 절망적인 울음을 터뜨렸다. 그 엄격하던 한 기업의 사장이자 한 가정의 아비가 완전히 무너져 내린 모습이었다.“아버지, 죄송해요······. 제가 다 잘못했습니다. 애초에 유환이를 건드리는 게 아니었어요. 녀석을 억지로 쥐고 흔들려 하니 천벌을 받아 이 사달이 난 겁니다······. 다 제 탓이에요, 제 탓······.”머리를 감싸 쥔 채 전전긍긍하며 피눈물을 흘리는 아들의 모습에 유준철의 가슴도 시커멓게 타들어 갔다.10중 추돌 사고 속에서 차량 뒷 범퍼는 처참하게 찌그러졌는데 사람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니. 이 기상 악화 속에 머리에 피를 흘리며 쓰러지기라도 한 걸까, 아니면 최악의 상황이라도 닥친 걸까. 웅웅거리는 빗소리 사이로 온갖 흉흉하고 끔찍한 생각들이
천둥 번개가 치고, 하늘이 뚫린 듯 비가 쏟아져도 장하늘에게는 찬란한 날이었다.침실 밖 테라스는 비가 세차게 쏟아져 감히 문을 열기가 두려울 정도였다.새드 엔딩으로 가자니. 얼마나 대범한 소리인가.하지만 유환은 끔찍한 사고를 겪고 이마에 피를 흘리면서도 오직 자신에게로 이리 달려와 주었다. 비가 그치면 내일 유환과 미국행을 같이 하는 건가.황당한 결말로 치닫고 있었다. 이게 새드 엔딩이라고? 장하늘이 느끼기에 지금의 상황은 이미 좋아 죽을 만치 해피하기만 한 것을.그렇다고 장하늘의 속내가 온전히 편한 것만은 아니었다. 유환의 찢어진 이마가 계속해서 눈에 밟혔기 때문이었다.“너 10중 추돌이라고 텔레비전에서 난리 났는데, 정말 병원 안 가도 돼?”그 말에 유환은 풋, 하고 낮게 웃더니 장하늘에게 그윽하게 입을 맞추었다.“멀쩡해. 그러니 너에게로 이렇게 달려왔지.” “그래도 불안해.”피는 멎었다지만, 고작 밴드 하나 붙인 걸로 될지 의문이었다. 고운 얼굴에 붉은 상처가 남은 순간이었다.“병원 가는 순간 우리 아버지랑 할아버지가 또 난리 칠걸? 그냥 비가 그치고, 이 어수선한 일들이 대충 마무리된 뒤에 나타나도 돼.”유환은 제 가슴을 툭툭 두드리며, 하던 거나 계속하자며 다시 사랑을 이어나갔다.그저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사람을 보듯 응시하며, 그는 장하늘의 허리를 단단히 받쳐 안고 더욱 깊숙이 파고들었다.밀려드는 쾌락에 젖은 장하늘의 눈가가 발갛게 달아올랐고, 녀석의 넓은 어깨를 꽉 붙잡은 손가락 끝에는 힘이 잔뜩 들어갔다.“이 앙큼한 장하늘. 서정우가 그러더라? 너 우리 아버지 걱정 덜어주려고 일부러 사라지려고 한 거라고. 안 돼. 가긴 어딜 간다는 거야?” “그건··· 뭐······. 내가 없으면 너도 금방 잊고 네 원래 생활로 돌아가겠지······라고 생각한 것뿐이야.”이미 전생 운운했던 모든 처절한 사연 대신, 그저 유도완이 압박하는 상황이 염려되어 떠나려 했다고 유환은 지레 판단한 모양이었다.서정우가 자신을 도와주려고 그런
S대로 향하는 내내 유환은 속내가 뒤틀려만 갔다.가죽 핸들을 쥔 손바닥이 축축한 땀으로 미끌거렸지만, 뇌리에 박힌 장하늘의 잔상은 지워지지 않아 액셀을 밟는 발끝에만 신경질적인 힘이 실렸다.머릿속은 여전히 장하늘 뿐이었다. 점점 바보가 되어가는 자신이 그래서 더 짜증났다.장하늘의 리드는 단순한 사인이 아니었다. 그것은 타자의 뇌를 해부하고 심리를 난도질하는 집도의의 메스와 같았다. 마운드 위에서 누구보다 오만하게 군림해야 할 유환조차 그의 미트 끝에 조종당하는 꼭두각시가 된 듯한 기분, 그것이 참을 수 없는 굴욕이자 분노
지금쯤 유환도 합격 통보를 받고 먼저 그라운드에 도착해 그 거대한 몸을 풀고 있을 것이다.만약 자신이 가지 않는다면, 녀석의 공은 경영학과 3학년 유경호가 받아내게 되겠지.수려한 외모에 유들유들한 성격, 여자들의 선망을 한 몸에 받는 재벌가 막내아들 유경호를 떠올리자 장하늘의 속이 비틀렸다.‘아, 정말 싫다.’두 사람이 섞이는 꼴은 죽어도 보기 싫은데, 엊그제 겪은 그 껄끄러운 사건이 자꾸만 마음을 짓눌렀다.“에취! ……에취!”동기들의 시선이 따갑게 꽂혔다. 강의 종료를 알리는 시각이 임박해 오고 있었다.유경호라는 존
“헉! 헉! 헉!”침대 시트마저 눅눅한 비에 젖은 듯 축축한 습기를 머금고 있자, 살갗에 닿는 그 서늘한 감각에 장하늘은 신음 섞인 비명을 삼키며 입술을 깨물었다.천천히 일렁이는 시야를 열었다. 오피스텔 천장의 익숙하고도 단조로운 무늬가 망막에 박히자, 그제야 지독한 현실로 생환했음을 깨달았다.식은땀이 척추를 타고 끈적하게 흘러내렸다. 꿈속에서 유환의 거친 열기가 스쳤던 자리가 화상이라도 입은 듯 뜨거워 장하늘의 등줄기는 전율로 팽팽하게 굳어졌다. 차갑게 젖은 얼굴이 델 듯한 숨결과 함께 코앞까지 다가왔던 그 찰나의 순간.
녀석을 향한 제 눈빛만큼은, 수천 번의 윤회 속에서도 끝내 통제하지 못한 유일한 치부였다.부정하는 말조차 내뱉지 못한 채 몸을 빼려 했으나, 쳐내려던 손이 유환의 보물 같은 '황금 왼손'임을 깨닫고 본능적으로 힘을 뺐다.장하늘은 녀석에게 감히 손을 대지 못한 채, 제 발로 뒷걸음질 치며 거리를 벌렸다.그러자 유환이 포식자처럼 다시 성큼 다가와 숨통을 조였다.“장하늘, 얼굴도 몸도 곱상한 게 그라운드에서는 왜 그렇게 고압적으로 굴어?”결국 이것이 문제였구나. 이제야 장하늘은 모든 퍼즐이 맞춰지는 기분이었다. 유환이 이토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