登入일생에 단 한번뿐인 치명적인 사랑. 여러 세대에 걸친 운명과 사랑, 피와 전쟁의 서사를 그린 동양풍 판타지 BL 3부작 #미인수 #동양풍 #미남공 #오해물 #집착공 #굴림수 #처연수 #삼각관계 #애증 #피폐 . 1부 : 사랑을 탐하다 - 백호족의 적통 후계자 '이후'는, 부족의 성지인 은어곡에서 우연히 적장 '랑하'를 마주한 후, 감정의 파도에 휩쓸려 스스로 덫에 발을 들인다. 2부 : 그리움에 입맞추다 - 어렸을 때부터 이유도 알지 못한 채 청운사에서 맹인 승려로 위장하며 조용히 살아가던 '벽운'은, 자신을 감시하러 온 현랑족 '랑헌'에게 강렬하게 이끌리게 된다. 3부: 운명을 거스르다 - 백호부 시조 이완과 만고의 역적 랑우의 이야기.
查看更多“염상(炎常), 혹여… 백호족(白狐族, 흰 여우 부족) 순혈을 가까이서 본 일이 있나?”
랑하(狼河)의 말투는 평소의 그답지 않게, 마치 금서(禁書)를 열어 보듯 조심스러웠다.
시선은 연못을 향하고 있었지만, 눈동자는 현실을 비껴간 듯 꿈결처럼 흐릿했다.
여름 햇살이 현궁 뒤뜰의 정자를 넘어 붉은 연꽃 위로 흩어졌다.
물결에 반사된 그 빛은 되돌아와, 잔뜩 굳은 랑하의 얼굴 위를 스쳤다.
그의 등 뒤로, 묵직한 흑발이 진청색 장포의 허리춤까지 드리워져 있었다.
중원의 동쪽, 대동(大東).
이 땅에서, ‘랑하’, 그의 이름 두 글자를 모르는 이는 드물었다.
강인함과 차가움이 함께 깃든 존재감.
많은 이들이 그를 상국(上國)에서 가장 강하고 아름다운 무장이라 칭했으나, 정작 본인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다만 오늘, 그는 유난히 창백하고 허약해 보였다.
미세하게 떨리는 손끝이, 아직 부상의 여파를 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염상이라 불린 남자는 피식 웃으며, 원형 탁자 한쪽에 자연스럽게 걸터앉았다.
곱슬거리는 갈색 머리와 화려한 차림새는, 화호족(火狐族, 붉은 여우 부족) 특유의 기질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백호족 순혈이라면, 그 머리 허연 놈들 말이지? 그야 당연히 내 눈으로 직접 봤지! 그대들 현랑족(玄狼族, 검은 늑대 부족)이 여기서 궁이나 지키는 사이에, 변방에서 그놈들과 툭하면 부딪쳤으니 말이야.”
염상은 일부러 겁먹은 표정을 지었다.
“특히 '이영(李盈)' 놈이 나타난 날엔, 살아 돌아오는 것만으로도 다행일 정도라니까.”
랑하는 여전히 연못을 바라본 채,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 역시 위험한 자들이로군.”
염상은 그제야, 오랜 벗에게서 묘한 기색이 흐르고 있음을 느꼈다.
그는 웃음을 거두고 랑하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자네… 오늘 좀 이상한데. 왜 갑자기 그놈들한테 관심을 보이는 거지?”
“…….”
염상은 눈을 가늘게 뜨며 랑하를 주시했지만, 그는 입을 다문 채였다.
염상은 침묵을 견디지 못한 듯, 다시 말을 쏟아냈다.
“위험하다마다…! 특히 '이완(李完)', 그 반도 놈의 피를 이어받은 순혈이라는 놈들은, 사람을 홀리는 도술까지 부린다고 하니 말이야. 나도 그 이영 놈이랑 제대로 한번 붙었다가, 눈앞이 아득해지는 바람에 죽을 뻔….”
그 순간, 랑하의 긴 손가락이 저도 모르게 허공을 움켜쥐었다.
흐릿하던 눈동자는 어느새 미세한 진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뭐야, 자네 설마… 이번에 은어곡(銀魚谷)에서 진짜로 뭔가를 보기라도 한 거야?”
염상은 그제야 말을 멈추었다.
며칠 전, 랑하가 홀로 마주친 존재.
그의 머리카락, 눈동자, 그리고 숨결.
금방이라도 눈앞에 다시 살아날 듯, 아직까지도 모든 것이 생생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입을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순간, 거친 바람이 일어 연꽃잎을 어지럽게 흔들었다.
어느새 랑하의 기억은… 조용히 그 밤으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
계곡 사이에 내려앉은 해거름이 달빛에 지워지고 있었다.
바람에 흔들린 나뭇잎들이 여기저기에서 거칠게 울렸다.
“대장군, 저쪽입니다!”
수하의 외침에, 랑하는 급히 몸을 틀었다.
흙탕물이 튄 군복 자락이 마구 나부끼고, 진흙은 발을 잡아끌듯 미끄러졌다.
랑하는 병사들 대여섯 명과 함께 광명군부(光明軍部)로 복귀하던 중이었다.
그러다 마침 은어곡 입구에서 수상한 그림자 몇을 발견했고, 곧장 그들의 뒤를 쫓았다.
정제된 무장.
날쌘 몸놀림.
그들은 흔적을 거의 남기지 않은 채 빠르게 흩어졌지만, 랑하의 눈에는 아주 익숙한 분산술 중 하나일 뿐이었다.
“너희는 오른쪽으로 돌아가라! 나머지는 계곡을 막아라!”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병사들이 흩어졌고, 랑하는 가장 기민하게 움직이던 한 인물을 쫓아가고 있었다.
그 사람은 다른 자들과는 결이 달랐다.
검은 변복 차림을 했지만, 풀어헤쳐진 은빛 머리카락이 달빛에 반사되어, 어둠 속에서도 유독 또렷하게 보였다.
몸이 얼마나 가벼운지, 마치 땅을 거의 밟지 않고 날아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은발. 순혈이다.’
그러나 백호족 순혈을 직접 본 건, 랑하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날카로운 시선이 마치 한 마리 늑대처럼, 어둠 속에서도 흐트러지지 않고 사냥감을 향했다.
랑하는 바람의 방향, 상대의 호흡과 체취, 발걸음의 속도 하나하나를 읽으며 거리를 확실하게 좁혀갔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비탈길 아래로 주춤거리며 내려서는 순간을 제대로 포착했다.
“서라!”
랑하는 빠르게 몸을 날려 상대를 단숨에 따라잡은 뒤, 그가 채 뒤돌아보기도 전에 다리를 걸어 그대로 넘어뜨렸다.
나는 한겨울의 추위 속에서 태어났다.갓난아기 때부터 몸이 약해, 부모님과 부족민들의 걱정을 한 몸에 받았다.특히 족장이신 아버지는, 외동인 내가 잘못될까 늘 노심초사하셨다.백호부와 부족민들을 지키려면 힘이 필요하다 하셨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스스로 목숨을 이어가기조차 벅찼다.부족에게 달빛의 성지라 불리던 은어곡은, 상국 황궁에서 멀지 않았다.내가 홀로 다닐 수 있을 때까지, 아버지는 매번 나를 직접 그곳으로 데려다주셨다.지금 생각하면 목숨을 건 일이었는데, 어린 나는 그저 들떠서 좋아만 했다.물론 이제는 안다.아버지가 단지 내 요양을 위해 그곳을 찾으신 게 아니라는 것을.오래전에 누군가를 그곳 어딘가에 묻으셨고, 그 무덤은 오직 아버지만이 알고 계셨다는 것을.그리고 그 이를 평생 그리워하셨다는 것도….이 모든 건 어느 깊은 밤, 약초에 취한 아버지의 혼잣말을 우연히 듣고 알게 되었다.사람들은 아버지를 위대한 시조(始祖)이자 족장이라고 불렀다.그는 전쟁터에서 등불처럼 항상 앞장섰고, 버려져 흩어진 무리를 한데 모았다.그러나 나에게 그는… 홀로 취해 거친 숨을 붙들던 연약한 사람이기도 했다.아버지는 종종 밤에도 처소의 불을 켜지 않으셨다.그 어둠 속에서, 가끔 희미한 향이 잔잔히 피어올랐다.그것이 무엇인지는, 어른이 되고서야 알았다.저 먼 극동 설산에서만 자란다는 약초.언젠가 어린 나는,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낯선 기운에 이끌려 아버지의 처소 안으로 들어갔다.탁자 위의 검은 향로에서 피어오르던, 푸르스름하고 달콤한 연기.“…아버지, 이건 뭐예요?”손이 그릇에 닿으려는 순간, 그의 차가운 손이 번개처럼 내 손목을 움켜잡았다.“건드리지 마라.”그러나 나는 향로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냄새가…너무 좋아요.”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버지는 향로를 깊숙이 밀어 치우셨다.“네가 알 필요 없는 거다.”“왜요?”“너는 몰라도 된다. 위험한 거야.”“아버지는… 왜 쓰세요?”짧은 침묵 뒤, 그는 희미하게 웃었다.“…살아야 하
달빛이 세상을 뒤덮은 밤이었다.하늘에서 흘러내린 은빛의 강물이 계곡을 감싸고, 그 빛 속에서 땅과 하늘의 경계가 사라졌다바위 절벽 사이로 흘러드는 물 위에, 달빛이 유리처럼 부서지며 흩날렸다.은빛 조각들은 강물 위를 따라 번져가다, 마침내 별빛과도 섞여 하나의 장막을 이루었다.그 장막 속에 두 그림자가 어렸다.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큰 그림자 하나, 그리고 그 곁에 기댄 작은 그림자.어른의 어깨는 산처럼 무거웠고, 아이의 앳된 얼굴에는 알 수 없는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서로 닮았으면서도 다른 무게와 빛이, 한밤의 계곡 위에서 고요히 겹쳐지고 있었다.아이는 숨결이 가늘었고, 조그마한 눈동자는 힘이 없어 보였다.그러나 달빛이 닿는 순간마다 그 뺨에는 미약한 생기가 스며드는 듯했다.남자가 아이의 두건을 벗기자… 찰랑거리는 은빛 머리카락이 고운 뺨 위로 흘러내렸다.그는 말없이 아이의 겉옷을 벗겨 바위 위에 올려두고, 자신도 천천히 두건을 벗었다.서늘하고 아름다운 얼굴, 허리까지 흘러내리는 은백색 머리칼이 달빛을 받아 찬연히 빛났다.그 순간, 마치 달빛이 사람의 형상을 빌려 내려온 듯… 계곡은 숨을 죽였다.남자는 아이를 가볍게 안아 올렸다.아이의 두 눈이 놀란 듯 깜박이며 떨렸다.“아버지… 여기서 뭘 하시려는 거예요?”“곧 알게 될 것이다.”그 품은 차가웠으나 동시에 부드러웠다.아이는 저절로 힘을 빼고, 가만히 몸을 맡겼다.남자는 아이를 안은 채 물가로 걸음을 옮겼다.찰박—차가운 물결이 발목에서 이내 허리까지, 또 어깨까지 스며들며 두 사람을 휘감았다.달빛은 물 위에서 번져 나와, 은빛 물결이 되어 그들의 살결을 타고 흘러내렸다.아이의 젖은 머리칼과 두 푸른 눈동자는 그 빛 속에서 보석처럼 반짝였다.남자는 아이를 조금 높이 들어 올리며 물 위의 반짝임을 가리켰다.“이곳은 은어곡이라 한다. 계곡의 모습도 그렇지만, 빛이 반사되는 물결이 은빛 물고기를 닮아서, 내가 오래전에 붙인 이름이지.”그 말끝에, 남자의 시선이 잠시
그날, 황궁 앞의 뜰은 무너진 세계의 심장처럼 고요히 숨을 죽이고 있었다.찢긴 깃발은 바람에 휘말려 망령처럼 울부짖었다.부서진 창과 칼은 사방으로 처절하게 뻗은 채, 더는 제 주인을 기다리지 않았다.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놀라운 기적이, 상국의 수많은 사람들의 보는 앞에서 그 위용을 드러냈다.태양이 가득한 대낮.보이지 않는 기운이 하늘을 열었고, 햇빛을 가르고 몰아치는 달빛이 상국 황성을 흔들었다.그 빛은 서늘했고, 동시에 신성했다.그 순간… 낮과 밤, 생과 사의 경계가 무너졌다.그 알 수 없는 기운 속에, 은발과 벽안을 가진 청년이 서 있었다.그가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땅은 진동하며 신음을 토했고, 먼지는 허공으로 피어올라 하늘에 기이한 무늬를 그렸다. 품에는 싸늘히 식은 시신을 안고 있었고, 그의 주위로 수백의 병사들이 마치 제물처럼 널브러졌다.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두 눈을 끝까지 뜨고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눈을 감은 그 순간에도, 그 강렬한 빛은 모두의 뇌리에 새겨졌다.“한낮에 달빛이 걸어왔다.”“달의 포효가 태양의 정원을 무너뜨렸다.”“그 발걸음에 수십, 수백의 생명이 꺼졌다.”“그는 황궁마저 무너뜨릴 수 있었으나… 스스로 칼날을 거두었다.”불과 태양을 숭상하는 상국의 중심에서… 한낮에 떠오른 얼음 같은 달이 분노를 쏟은 일.황제는 그 사건을 역사에 남기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남겨진 것은 단 하나의 어명.“반도 이완과 역적 랑우의 이름을 입에 담는 자는 참형에 처한다.”그 말은 사람들의 입술을 일시적으로 봉하는 듯했으나, 오히려 그날의 일은 전설이 되어 온 대동 땅에 더욱 넓게 퍼져나갔다.***저녁 무렵, 백호부의 성곽 앞.거센 눈보라가 몰아쳤다.순찰병들이 떨리는 시선으로 먼 곳을 바라보았다.은빛의 그림자 하나가 바람을 가르며 다가오고 있었다.그는 혼자였다.핏빛으로 물든 옷은 낡고 닳아 빛이 바랬지만, 그 눈동자는 어느 때보다도 푸르고, 또 신비로운 빛을 품고 있었다.그가
바람은 고요했고, 숲은 정적에 잠겨 있었다. 밤공기 속에는 이미 달빛이 섞여 흘러내리고 있었다. 산허리 위에 걸린 둥근 달이, 맑은 물결 위에 차갑고 밝은 빛을 한가득 부어주었다, 마치 세상의 모든 시간과 숨결이 외진 계곡 안으로 모여드는 듯했다. 이완은 랑우를 품에 안고, 흐느적거리는 걸음으로 한 발 한 발 그 계곡 아래로 향했다. 그 발걸음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지만, 마치 오래전부터 정해져 있던 길을 따라 걷듯 똑바로 이어졌다. 달빛이 물결 위에 고요히 내려앉아 두 사람의 그림자를 길게 끌어당겼다. 은어곡. 랑우와 함께한 짧은 추억이 고여 있는 은빛 물고기의 계곡. 이곳은 단순한 물줄기와 바위가 모인 곳이 아니었다. 그들이 처음 다시 눈을 마주했던 곳. 오랜 세월을 돌고 돌아 서로를 알아본 자리. 목숨을 걸고 서로를 탐하듯 부딪히며, 격렬히 사랑했던 밤의 숨결이 여전히 남아 있는 곳이었다. 뜨겁게 달아올랐던 몸이 식기도 전에, 서로의 얼굴에 맺힌 물방울을 닦아주던 기억. 밤새 망가지고 짓밟힌 몸을 다정히 씻겨주며, 따뜻한 어깨를 내어주던 순간. 이완은 이곳에서 랑우에게서 받았던 가장 진실한 위로와, 변함없이 고귀하다고 속삭여주던 그의 입술을 기억했다. 그 순간순간이 마치 달빛처럼 또렷했다. 마치 지금 눈앞에서 되살아나듯, 그 향기와 체온과 목소리까지 생생했다. 그러나 지금 품에 안긴 랑우의 몸은… 더 이상 그때의 그 사람이 아니었다. 이미 돌처럼 굳어버려 차가움만이 남아 있었고, 체온이라고는 한 점도 느껴지지 않았다. 찬 물결이 발목을 스치더니, 곧 무릎까지 차올랐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물속에 천천히 잠겨 들었다. 흔들리는 은빛 물결 위로 길게 드리운 그림자는,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더는 구별할 수 없게 만들고 있었다. 이완은 랑우를 내려놓으며 조심스레 무릎을 꿇었다. 그의 숨은 목구멍에 걸려 헐떡거렸고, 말라붙은 입술은 금방이라도 호흡이 멈출 듯 떨리고 있었다. 그 밝은 달빛 아래, 함께 사랑을 나누
“…허.” 염상은 의자에 몸을 기대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이거, 아주 재미있게 돌아가고 있군.” 그의 두 눈동자는 섬뜩할 만큼 번쩍이고 있었다. ‘내 생각이 맞다면, 은어곡에서 랑하와 마주쳤다는 바로 그놈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그놈이 감히 혼자 이곳까지 숨어들어, 그를 그저 바라보기만 한다고?’ 염상은 모든 의문이, 마치 깨진 그릇이 들어맞듯 조금씩 맞춰져 가는 느낌을 받았다. ‘만약 그 백호족 사내가 정말로 단순히 목숨을 노리는 자객이 아니라, 랑하와 뭔가 다른 의미가 있는 존재라면?’ 사실 염상은 오래전부
상국 태상황(太上皇)의 둘째 황자 염형(炎炯)의 장자.이름하여 염상(炎常).그는 어릴 적부터 화려한 외모와 총명함을 겸비하고 있었다.진갈색의 부드러운 곱슬머리와, 금빛이 도는 갈색 눈동자.그러나 그의 내면 어딘가에는, 언제든 튀어나올 수 있는 얇은 칼날이 감춰져 있었다.권세와 재력, 미모와 언변을 겸비한 그는 늘 사람들에 둘러싸여 살았다.아마도 랑하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는 평생 질투라는 감정이 무엇인지조차 몰랐을 것이다. 염상과 랑하는, 어릴 적부터 광명군부 산하의 연무관에서 함께 무술을 배우며 자랐다.형제라 불
그의 이름은 랑하(狼河).대장군 랑욱(狼旭)의 적장자로 태어난 그는, 어머니를 산고로 잃고 홀로 유모의 손에서 자랐다.부친은 아내를 잃은 뒤 평생 다른 여인을 들이지 않았다.그는 적막한 현궁에서 글보다 무예를 먼저 배웠고, 사사로운 정을 감추는 법부터 익혔다. 서늘한 눈빛.흐트러짐 없는 옷매무새.허리춤에 드리운 장검과 절제된 기운.그는 늘, 한발 물러선 자리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배워 왔다.그리고 두 어깨에는 언제나, 온 나라의 기대가 얹혀 있었다. 스물다섯 살이 되던 해에, 랑하는 화호족 금예(金藝)의 딸 금
온몸을 스치는 저릿하고 날카로운 통증.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혼란스러운 꿈.그것들이 밤낮없이 랑하를 잠식한 탓에, 그는 꼬박 일주일을 침상에서 일어나지 못했다.통증은 서서히 옅어졌지만, 은어곡에서 마주친 백호족 청년의 형상만큼은 시간이 갈수록 또렷해졌다.은백색 머리카락.달빛을 머금은 듯 부드럽게 흐르던 결.서늘한 목덜미의 감촉과, 차가운 대리석처럼 단단했던 허리.침묵과 바람을 함께 품은, 짙푸른 눈동자.손에 잡힐 듯 선명한 감각들이 끊임없이 그를 괴롭혔다.그래서인지, 그는 무의식적으로 머리를 흔드는 일이 잦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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