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
뺨을 거칠게 후려치는 빗줄기가 난무하는 불펜 그라운드. 우산조차 포기한 채 대치한 두 남자 사이로, 폐부를 들쑤시는 숨소리가 축축한 공기의 진동을 타고 농밀하게 뒤섞였다.
신이 공들여 빚어낸 듯한 완벽한 비율. 190cm에 달하는 유환의 단단한 체구는 젖은 흑발과 어우러져 야성적인 위압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빗물을 머금어 번들거리는 그의 근육은 마치 먹잇감을 목전에 둔 맹수처럼 금방이라도 터져 나갈 듯 팽팽했다.
그 곁에 선 장하늘의 붉은 머리칼 역시 슬림한 어깨선을 따라 흘러내리는 빗물에 기묘하게 젖어 들었다. 투명하게 비쳐 얇은 피부에 딱 붙어버린 젖은 셔츠 너머로, 잘게 떨리는 하늘의 숨결이 유환의 짙은 시선에 적나라하게 꿰뚫렸다.
“유환아, ······뭐라고?”
“다시 말해줘? 널 안고 싶어졌어.”3월 초의 공기는 뼛속까지 파고들 만큼 시렸으나, 유환의 입술 사이로 터져 나온 언어는 비정상적으로 뜨겁고도 지독했다.
첫 만남 이후 고작 하루.
찰나 같은 시간 끝에 떨어진 유환의 요구는 폭력적이었고, 그 파괴적인 언사에 하늘의 목구멍은 경련하듯 꽉 막혀버렸다.
불과 방금전까지 무구하게 공을 주고받던 동료의 얼굴은 어디에도 없었다. 하늘을 내려다보는 그의 깊은 눈동자에는 포식자의 집요함과 금기된 욕망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내가 미쳤지. 그러니 이런 꿈을 꾸고 있지.’
비에 젖어 몽롱해진 의식, 더그아웃을 메우던 비현실적인 열기.
불펜에서 나누었던 투구의 감각조차 수면 아래로 침잠하듯 아득해졌다. 하지만 꿈이라 치부하기엔 피부에 닿는 빗방울의 서늘한 감촉과 눈앞의 유환이 뿜어내는 농익은 체취가 지나치게 생생했다.
머릿속을 관통하는 노골적인 정사의 잔상이 수치심이 되어 전신을 훑었다. 그러나 유환의 표정에는 추호의 망설임도 없었다. 오히려 네 짐작이 맞다고 선언하듯, 그는 오만하고도 저돌적으로 하늘의 영역을 파고들었다.
장하늘은 이 사나운 폭언에 짓눌려 신음조차 내뱉지 못했다. 평범한 야구 부원으로 합을 맞추는 건 줄 알았건만, 난데없이 이 차가운 빗속에서 비릿한 정사를 강요받다니.
사건의 발단은 어제였다. S대 야구 동아리 ‘마구마구’의 입부 테스트 직후, 유환의 주도하에 시작된 녹두거리의 술자리가 문제였다. 이긴 자가 진 자를 하루 동안 ‘노예’로 부린다는 그 치기 어린 내기가 화근이었다.
장하늘 자신은 스스로를 오만한 승부사라 자부해왔다. 학점, 알바, 타석에서의 배팅—그 무엇에서도 패배를 허락지 않았던 그였지만, 오직 알코올 분해 능력만큼은 신이 내린 유일한 결점이었다.
결국 분위기에 휩쓸려 잔을 비운 대가는 처참했다. 유환의 손아귀에 저당 잡힌 하루, 그리고 지금 눈앞에 닥친 이 아득한 현실이라니.
사실 유환을 인생 3회 차 내내 남몰래 연모해오며, 그의 품에 안겨 온몸이 부서지는 상상을 수만 번도 더 했었다.
그러나 막상 마주한 순간은 어색한 낯선 타인이었거나 조금이라도 거리가 가까워지려는 순간 생이 끝나 버리는 비극뿐이었다.
“유환, 비 오는 거 안 보여? 미친 소리 그만해.”
장하늘이 떨리는 음성을 갈무리하며 애써 이성을 찾으려 했지만, 유환은 비릿한 조소를 흘리며 젖은 입매를 비틀었다.
“장하늘, 야한 표정이나 짓는 주제에, 여기서 그만하면 후회 안 하겠어?”
야하긴. 누구에게 할 소린가. 압도적인 피지컬과 강건한 신체, 배우보다 유려한 이목구비를 지녀 놓고.
그야말로 지금 사람 미치게 홀리는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
재벌가 망나니라는 꼬리표마저 치명적인 매력으로 승화시키는 그는 존재 자체로 모든 시선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었다.
하지만 유환의 진정한 마력은 겉껍데기가 아닌 그의 '투구'에 있었다. 고막을 찢는 구속과 타자의 자존심을 짓이기는 묵직한 구위.
그가 던지는 공은 타석에 선 자를 실금하게 만드는 압도적인 공포이자 치명적인 매혹이었다.
그 공을 건드리지 못한 타자들은 처절한 패배감을 넘어, 자아를 상실한 채 지독한 죄책감의 늪으로 침잠하곤 했다.
‘너 때문에 지옥을 맛본 타자들이 죽음을 생각할 정도인데······.’
그런 악마 같은 녀석이 지금은 장하늘의 이성을 난도질하고 있었다. 이건 논리를 벗어난 파멸이었다. 하늘이 받아내야 할 것이 그의 뜨거운 진심이나 마운드 위의 묵직한 공이 아니라, 오직 그가 뿜어내는 가파른 욕망이라니.
“장하늘, 빨리 벗어.”
“너 미쳤어?” “시간 없어.” “어제 처음 본 나한테 이러고 싶어?”덥석—!
유환의 커다란 손이 하늘의 멱살을 잡아채며 그를 제 품 안으로 강하게 끌어당겼다. 젖은 천 너머로 서로의 뜨거운 체온이 노골적으로 섞여 들었다.
속눈썹을 타고 내리는 빗물 때문에 눈을 뜨기조차 힘든 지경이었지만, 하늘을 직시하는 유환의 의지는 맹목적이고도 거대했다.
장하늘의 사고가 마비되려던 그 순간, 녀석의 커다란 손이 셔츠 밑단 사이로 파고들어 하늘의 은밀한 살결을 침범하려다 돌연 멈추었다.
“······표정 뭐야?”
내면의 거친 갈등에 휩싸인 듯 유환은 석상처럼 굳어버렸다. 닿아오는 손길에 숨을 죽인 채 그의 다음 행보를 기다리는 꼴이 되어버린 장하늘은 견딜 수 없는 민망함과 오열 같은 애달픔에 휩싸였다.
“유환, 선 넘지 마.”
가까스로 목소리를 쥐어짜 내며 경고를 날렸다.
사실은 너에게 미친 듯이 반해있다고, 이 굴욕적인 순간조차 너라면 달콤하다고 고백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거세게 쏟아지는 장대비가 폭풍 같던 대치를 잠시 소강상태로 이끌었다. 축축한 정적을 깨고 유환이 낮게 읊조렸다.
“너, 나 처음 본 거 맞아? 그리고 사내 놈이 왜 나를 그런 눈으로 보는 거지?”
순간, 하늘은 심장이 발밑으로 아득히 추락하는 기분을 느꼈다.
인생 3회 차 동안 숨길 수 없었던 연심의 짙은 흔적을, 녀석은 이미 간파하고 있었다.
이 소설은 제가 야구 광팬이라 모 프로야구 구단 연간 회원이라 야구장을 다니며 영감을 얻었습니다. 또 C대학교 투수인 지인 분의 자문을 받아 소설에 녹여내게 되었습니다. 야구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강공인 천재 투수와 그림자로 묵묵히 안방마님으로 그라운드를 지배하는 병약수 천재 포수와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즐겁게 즐겨 주시길요. 그리고 저의 야심찬 신작! [치명적인 거짓말]도 연재 시작했습니다. 전 종로 및 광역수사대에 근무하신 이회림 (드라마 시그널, 더킹, 보이스, 영화 사냥의 시간, 선물 등 시나리오 감수 다수)형사님의 범죄 자문과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송X(아기를 품은 앙큼한 그녀, 닥치고 내게로 와!, 언더커버 스캔들 등 웹소설 다수)의사 선생님의 의학 자문을 받아 내실 있게 구성한 장편 소설입니다.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우리 독자님들, 진심으로 이 글을 읽어주셔 감사합니다. 제 인생의 첫 BL이자, 스포츠 물도 처음이라 많이 서툴고 부족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열정 만큼은 최고로! 실제로도 야구 광팬이라서... 즐겁게 창작하였습니다. 이 글이 훗날 인기가 많아지고 또 여러분들이 그 뒷 이야기가 궁금하다고 한다면 다른 글들 다 완결 지어 놓고 외전으로 올 수도 있고, 시즌 2로 올 수도 있습니다. 하하!(희망사항이요.)다음 생애가 있다면, 정말 운동 잘하는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다~ 할 정도로 현재 제 몸은 운동 신경도 없거니와 건강도 허락되지 않아 아쉬움이 조금 있습니다. 하하! 그러나, 이렇게 글이라도 쓸 수 있는 취미가 있어 얼마나 다행이게요.제 2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작품 속에 장하늘의 마음을 이입해 보기도 하고, 유환이 되어 장하늘을 사랑해 보면서 글을 이어 나갔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셔 감사합니다. 저는 다국어 버전 완결을 이번주에 지어 놓고 완결 딱지를 붙일 예정입니다. 굿노벨에 꾸준하게 작품이 올라올 예정이니... 앞으로도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silver구슬] 잊지 마시고... 아, 저 작가는 한번 시작하면 완결 때리는 구나! 믿고 다른 작품도 달려와 주시기 바랍니다. 이 글을 도전하라고 격려해주신 Yino 편집자님께 감사드리며~~, 저는 차기작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저는 예전에 글을 많이 써 놓고 이제서야 하나둘 출간하게 되어 소설계에서는 초보작가입니다. 웹소설을 전혀 읽지 않고 종이책만 읽어서 다른 분들의 글과는 결이 좀 다릅니다. 심지어 제가 읽은 장르도 형사물, 판타지물, 영미문학, 북유럽 쪽 스릴러, 일본 쪽 미스터리 등.그래서 저의 글은 나름의 개성이 묻어 있습니다. 요원이 주인공인 르와르 풍의 남장여인 삼각관계 로맨스... [닥치고 내게로 와!] ~~4번째 회귀한 천재 작곡가 기억상실 임신녀 경신의 로코 이야기 [아기를 품은 앙큼한 그녀] ...그리고 남장 하인에서 소드마스터, 대마법사가 되는 라이
우리 독자님들, 진심으로 이 글을 읽어주셔 감사합니다. 제 인생의 첫 BL이자, 스포츠 물도 처음이라 많이 서툴고 부족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열정 만큼은 최고로! 실제로도 야구 광팬이라서... 즐겁게 창작하였습니다. 이 글이 훗날 인기가 많아지고 또 여러분들이 그 뒷 이야기가 궁금하다고 한다면 다른 글들 다 완결 지어 놓고 외전으로 올 수도 있고, 시즌 2로 올 수도 있습니다. 하하!(희망사항이요.)다음 생애가 있다면, 정말 운동 잘하는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다~ 할 정도로 현재 제 몸은 운동 신경도 없거니와 건강도 허락되지 않아 아쉬움이 조금 있습니다. 하하! 그러나, 이렇게 글이라도 쓸 수 있는 취미가 있어 얼마나 다행이게요.제 2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작품 속에 장하늘의 마음을 이입해 보기도 하고, 유환이 되어 장하늘을 사랑해 보면서 글을 이어 나갔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셔 감사합니다. 저는 다국어 버전 완결을 이번주에 지어 놓고 완결 딱지를 붙일 예정입니다. 굿노벨에 꾸준하게 작품이 올라올 예정이니... 앞으로도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silver구슬] 잊지 마시고... 아, 저 작가는 한번 시작하면 완결 때리는 구나! 믿고 다른 작품도 달려와 주시기 바랍니다. 이 글을 도전하라고 격려해주신 Yino 편집자님께 감사드리며~~, 저는 차기작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저는 예전에 글을 많이 써 놓고 이제서야 하나둘 출간하게 되어 소설계에서는 초보작가입니다. 웹소설을 전혀 읽지 않고 종이책만 읽어서 다른 분들의 글과는 결이 좀 다릅니다. 심지어 제가 읽은 장르도 형사물, 판타지물, 영미문학, 북유럽 쪽 스릴러, 일본 쪽 미스터리 등.그래서 저의 글은 나름의 개성이 묻어 있습니다. 요원이 주인공인 르와르 풍의 남장여인 삼각관계 로맨스... [닥치고 내게로 와!] ~~4번째 회귀한 천재 작곡가 기억상실 임신녀 경신의 로코 이야기 [아기를 품은 앙큼한 그녀] ...그리고 남장 하인에서 소드마스터, 대마법사가 되는 라이
5월의 열기가 그라운드 위로 절정에 달해 흐르던 어느 날.전국 대학야구 대회, 대망의 결승전 날이 밝았다.구름 관중을 몰고 다니는 S대 야구부 ‘마구마구’는 이제 단순한 동아리 수준을 넘어, 대한민국 대학야구의 찬란한 르네상스를 불러온 주역이 되어 있었다. 경기장 주변은 이른 아침부터 몰려든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언론 매체들은 마운드에 오를 유환과 장하늘의 일거수일투족을 담아내기 위해 열띤 취재 경쟁을 벌였다.[퍼펙트 배터리의 귀환! 과연 기적의 우승을 거머쥘 것인가!][새내기 괴물 투수 유환과 지략가 포수 장하늘, 그들의 매직은 오늘도 유효한가!][160km의 광속구를 뿌리는 유환과 완벽한 볼 배합의 장하늘, 전 구단 스카우트 집중!][오늘 경기에는 U그룹 유준철 회장과 유도완 사장도 귀빈석에서 관람할 예정이라 전해져···.]각종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를 장악한 ‘마구마구’의 위세는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야! 너희 둘!” “일주일 내내 연락도 안 되고 대체 어디 있었어?” “오늘 경기 못 나오는 줄 알고 우리가 얼마나 가슴 졸였는지 알아?”더그아웃에 나타난 장하늘과 유환을 보자마자, 모두들 헐레벌떡 달려와 소리를 질렀다.연습하러 한번 학교에 나오지도 않고, 심지어 문자 답신도 없어 모두들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휴, 난 너희 없이 오늘 사형장에 끌려가는 줄 알았다니까. 다행이다, 진짜로 나타나 줘서.”최우현도 떨리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장하늘의 곁으로 다가왔고, 안색이 흙빛이었던 김강무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살얼음이 가득한 스포츠음료를 건넸다.“왔으면 됐지. 다들 이거나 마셔.”장하늘은 일주일 내내 유환과 지독하게 엉겨 붙어 있었다는 말은 입 밖으로 내지 못한 채, 애꿎은 유환의 눈치만 살피며 어색하게 웃었다.“선배님들, 정말 죄송합니다. 어쩌다 보니 개인적인 사정이 좀 있어서··· 하하.”장하늘은 멀찍감치 서 있는 서정우를 향해 은밀하게 고맙다는 눈인사를 보냈다. 서정우 역시 의미심장한 미소를
다음 날.폭풍우가 휩쓸고 간 자리는 기이할 정도로 고요했다.창문을 부술 듯 두드리던 사나운 빗줄기는 흔적도 없이 증발했고, 비에 젖은 흙내음과 농밀한 습기를 머금은 공기는 오히려 달큼한 향취를 풍겼다.유환과 장하늘은 약속이라도 한 듯 가벼운 옷차림으로 호텔 뒤편의 한적한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멀리 인천공항 활주로에서는 짐승의 숨소리 같은 엔진음을 내뿜으며 거대한 비행기들이 솟구쳐 올랐고, 점멸하는 불빛들이 유성처럼 밤하늘을 가로지르고 있었다.“장하늘, 허리 안 아파? 새벽에 좀 심하게 몰아붙인 것 같아서.”유환이 입가에 능글맞은 미소를 매단 채 장하늘의 어깨에 자연스럽게 팔을 둘렀다. 장하늘은 뒷덜미까지 확 달아오르는 열기를 느끼며 녀석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툭 쳤다.“···조용히 해. 보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어쩌려고.” “이 시간에 여길 누가 와. 우리밖에 없어. 그리고 먼저 유혹한 건 너잖아.”유환은 기다렸다는 듯 장하늘을 제 품으로 더욱 바짝 끌어당겼다. 장하늘은 툴툴대면서도 녀석의 단단한 흉곽에서 느껴지는 온기에 슬그머니 몸을 기댔다. 규칙적으로 고동치는 유환의 심장 박동이 귓가를 울릴 때마다, 유리그릇처럼 위태롭게 흔들리던 장하늘의 영혼이 비로소 안식처를 찾은 듯 차분히 가라앉았다.두 사람은 산책로 끝단,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전망대 앞에 멈춰 서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 사이로 수줍게 고개를 내민 달빛이 검은 바다 위에 은색 비늘을 뿌려놓은 듯 부서지고 있었다.장하늘이 낮게 읊조렸다. 전생의 잔혹한 굴레, 머지않아 닥쳐올 비극의 예언, 그리고 유준철 회장의 서슬 퍼런 압박까지. 그 모든 중압감이 이 광활한 밤하늘 아래서는 한낱 흩어지는 먼지처럼 작게만 느껴졌다. 유환은 장하늘의 손가락 사이사이로 제 손가락을 깊숙이 얽어매며 뼈마디가 하얗게 질릴 정도로 힘을 주어 잡았다.“오늘 오후에 미국 갔다가 실컷 잘 놀다 오자.” “떠나려고 했던 시도가 너랑 추억이나 쌓는 이벤트가 되다니.”장하늘의 고백에 유환은 잠시 걸음
창밖은 천둥번개가 내리치며 당장이라도 세상이 무너질 듯 흉흉한 소리만을 뱉어내고 있었다. U그룹 회장실 안의 공기는 그보다 더 지독하게 얼어붙어 있었다. 대형 모니터 속에서 붉은 자막으로 흘러나오는 인천공항 고속도로 10중 추돌 사고 소식은, 유준철의 심장을 밑바닥까지 사정없이 떨어뜨리기에 충분했다.내가 괜히 녀석을 공항으로 가라고 내몰았던가. 장하늘이라는 아이를 떼어내려다 기어이 내 손으로 내 귀한 손자의 핏줄을 끊어놓은 것인가.평생 오만하게 살아온 유준철의 노체(老軀)가 생전 처음 겪는 지독한 자책감에 가늘게 떨려왔다.“김 비서! 대체 어떻게 된 거야! 현장 상황은 파악됐나!”지팡이로 바닥을 쾅쾅 내리치며 유준철이 벼락같이 고함을 질렀다. 문을 열고 급히 뛰어 들어온 김 비서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그게··· 도련님께서 경찰이 도착하기도 전에 스스로 사고 차량을 알아서 빼달라고 요청하고는 현장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뭐?”순간 회장실 내에 찰나의 침묵이 감돌았다. 피가 거꾸로 솟는 충격에 유준철이 뒷목을 잡는 사이, 옆에 서 있던 유도완이 툭 하고 바닥으로 무너지듯 무릎을 꿇었다.“기어이······! 흑흑!”유도완은 붉어진 눈으로 머리를 감싸 쥐며 절망적인 울음을 터뜨렸다. 그 엄격하던 한 기업의 사장이자 한 가정의 아비가 완전히 무너져 내린 모습이었다.“아버지, 죄송해요······. 제가 다 잘못했습니다. 애초에 유환이를 건드리는 게 아니었어요. 녀석을 억지로 쥐고 흔들려 하니 천벌을 받아 이 사달이 난 겁니다······. 다 제 탓이에요, 제 탓······.”머리를 감싸 쥔 채 전전긍긍하며 피눈물을 흘리는 아들의 모습에 유준철의 가슴도 시커멓게 타들어 갔다.10중 추돌 사고 속에서 차량 뒷 범퍼는 처참하게 찌그러졌는데 사람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니. 이 기상 악화 속에 머리에 피를 흘리며 쓰러지기라도 한 걸까, 아니면 최악의 상황이라도 닥친 걸까. 웅웅거리는 빗소리 사이로 온갖 흉흉하고 끔찍한 생각들이
천둥 번개가 치고, 하늘이 뚫린 듯 비가 쏟아져도 장하늘에게는 찬란한 날이었다.침실 밖 테라스는 비가 세차게 쏟아져 감히 문을 열기가 두려울 정도였다.새드 엔딩으로 가자니. 얼마나 대범한 소리인가.하지만 유환은 끔찍한 사고를 겪고 이마에 피를 흘리면서도 오직 자신에게로 이리 달려와 주었다. 비가 그치면 내일 유환과 미국행을 같이 하는 건가.황당한 결말로 치닫고 있었다. 이게 새드 엔딩이라고? 장하늘이 느끼기에 지금의 상황은 이미 좋아 죽을 만치 해피하기만 한 것을.그렇다고 장하늘의 속내가 온전히 편한 것만은 아니었다. 유환의 찢어진 이마가 계속해서 눈에 밟혔기 때문이었다.“너 10중 추돌이라고 텔레비전에서 난리 났는데, 정말 병원 안 가도 돼?”그 말에 유환은 풋, 하고 낮게 웃더니 장하늘에게 그윽하게 입을 맞추었다.“멀쩡해. 그러니 너에게로 이렇게 달려왔지.” “그래도 불안해.”피는 멎었다지만, 고작 밴드 하나 붙인 걸로 될지 의문이었다. 고운 얼굴에 붉은 상처가 남은 순간이었다.“병원 가는 순간 우리 아버지랑 할아버지가 또 난리 칠걸? 그냥 비가 그치고, 이 어수선한 일들이 대충 마무리된 뒤에 나타나도 돼.”유환은 제 가슴을 툭툭 두드리며, 하던 거나 계속하자며 다시 사랑을 이어나갔다.그저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사람을 보듯 응시하며, 그는 장하늘의 허리를 단단히 받쳐 안고 더욱 깊숙이 파고들었다.밀려드는 쾌락에 젖은 장하늘의 눈가가 발갛게 달아올랐고, 녀석의 넓은 어깨를 꽉 붙잡은 손가락 끝에는 힘이 잔뜩 들어갔다.“이 앙큼한 장하늘. 서정우가 그러더라? 너 우리 아버지 걱정 덜어주려고 일부러 사라지려고 한 거라고. 안 돼. 가긴 어딜 간다는 거야?” “그건··· 뭐······. 내가 없으면 너도 금방 잊고 네 원래 생활로 돌아가겠지······라고 생각한 것뿐이야.”이미 전생 운운했던 모든 처절한 사연 대신, 그저 유도완이 압박하는 상황이 염려되어 떠나려 했다고 유환은 지레 판단한 모양이었다.서정우가 자신을 도와주려고 그런
시야가 닿지 않는 저 음습하고 은밀한 후미진 구석.어제의 파렴치했던 환상이 다시금 생생하게 재생되자, 맥동하는 아랫도리가 기다렸다는 듯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이 미친 몸뚱어리가……! 생각도 녀석, 몸도 녀석. 나 진짜 미쳐버린 건가!’유환은 하마터면 눈앞의 철제 의자를 박살 낼 듯 주먹을 움켜쥐었다.난잡한 호색한도 아니거늘, 꿈속에서 장하늘에게 저질렀던 그 외설적인 행위들이 떠올라 홧홧한 열기가 뺨으로 번졌다. 이성과 본능이 장하늘이라는 덫에 걸려 제 기능을 상실하고 있었다.유환은 거칠게 심호흡을 하며 달아오른 열기를
S대로 향하는 내내 유환은 속내가 뒤틀려만 갔다.가죽 핸들을 쥔 손바닥이 축축한 땀으로 미끌거렸지만, 뇌리에 박힌 장하늘의 잔상은 지워지지 않아 액셀을 밟는 발끝에만 신경질적인 힘이 실렸다.머릿속은 여전히 장하늘 뿐이었다. 점점 바보가 되어가는 자신이 그래서 더 짜증났다.장하늘의 리드는 단순한 사인이 아니었다. 그것은 타자의 뇌를 해부하고 심리를 난도질하는 집도의의 메스와 같았다. 마운드 위에서 누구보다 오만하게 군림해야 할 유환조차 그의 미트 끝에 조종당하는 꼭두각시가 된 듯한 기분, 그것이 참을 수 없는 굴욕이자 분노
지금쯤 유환도 합격 통보를 받고 먼저 그라운드에 도착해 그 거대한 몸을 풀고 있을 것이다.만약 자신이 가지 않는다면, 녀석의 공은 경영학과 3학년 유경호가 받아내게 되겠지.수려한 외모에 유들유들한 성격, 여자들의 선망을 한 몸에 받는 재벌가 막내아들 유경호를 떠올리자 장하늘의 속이 비틀렸다.‘아, 정말 싫다.’두 사람이 섞이는 꼴은 죽어도 보기 싫은데, 엊그제 겪은 그 껄끄러운 사건이 자꾸만 마음을 짓눌렀다.“에취! ……에취!”동기들의 시선이 따갑게 꽂혔다. 강의 종료를 알리는 시각이 임박해 오고 있었다.유경호라는 존
“헉! 헉! 헉!”침대 시트마저 눅눅한 비에 젖은 듯 축축한 습기를 머금고 있자, 살갗에 닿는 그 서늘한 감각에 장하늘은 신음 섞인 비명을 삼키며 입술을 깨물었다.천천히 일렁이는 시야를 열었다. 오피스텔 천장의 익숙하고도 단조로운 무늬가 망막에 박히자, 그제야 지독한 현실로 생환했음을 깨달았다.식은땀이 척추를 타고 끈적하게 흘러내렸다. 꿈속에서 유환의 거친 열기가 스쳤던 자리가 화상이라도 입은 듯 뜨거워 장하늘의 등줄기는 전율로 팽팽하게 굳어졌다. 차갑게 젖은 얼굴이 델 듯한 숨결과 함께 코앞까지 다가왔던 그 찰나의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