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108화. 도공의 시간단은 한쪽에 걸려 있던 리넨 앞치마를 꺼내 서연에게 건넸다.“입어.”“이걸 왜요? 구경만 하는 거 아니었어요?”“눈으로 보는 건 그 정도면 됐다. 오늘은 네가 직접 만들어 봐.”“제가요? 단 씨, 저 감정사예요. 깨진 거 고치고 가짜 찾아내는 건 자신 있어도 도자기를 직접 만들어 본 적은 없다고요.”“그러니까 배우는 거다.”단은 물레 앞으로 다가가며 손짓했다.“완성된 물건만 들여다봐서는 알 수 없는 게 있어. 흙이 어떻게 중심을 잡고, 손끝의 힘에 따라 어떻게 형태를 얻는지 알아야 만든 사람의 손도 제대로 읽을 수 있지. 네 일에도 도움이 될 거다.”“그렇게 말하니까 갑자기 굉장히 교육적인 시간이 된 것 같은데요?”“원래 그럴 생각이었어.”“정말요?”“……앉아.”질투에서 시작된 일이었지만 단은 태연하게 물레 앞을 가리켰다.어쨌든 틀린 말은 아니었고, 서연에게 자신의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과 가르쳐주고 싶은 마음 역시 거짓은 아니었다.서연이 앞치마를 두르고 물레 앞에 앉자 단은 직접 반죽한 흙을 중앙에 올렸다.“일단 제가 해볼게요. 보기에는 그렇게 어려워 보이지 않는데.”“그 말을 하는 사람치고 제대로 만드는 사람을 못 봤다.”“저 손재주 좋아요. 복원도 잘하잖아요.”“깨진 걸 붙이는 것과 처음부터 만드는 건 다르다. 잘 봐.”단이 소매를 걷고 물을 묻힌 손으로 흙덩이를 감쌌다. 물레가 천천히 돌기 시작하자 투박했던 흙이 그의 손안에서 놀라울 만큼 빠르게 중심을 잡았다.서연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그 손을 따라 움직였다.길고 반듯한 손가락이 흙을 누르고 끌어올릴 때마다 손등의 힘줄이 선명해졌고, 걷어 올린 소매 아래로 드러난 단단한 손목과 팔까지 보고 있자 엉뚱한 생각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손이 원래 저렇게 예뻤나?’“연.”“네?”서연이 화들짝 고개를 들자 단의 눈에 웃음기가 어렸다.“흙을 보라고 했는데 어디를 보는 거지?”“흙 봤는데요?”“내 팔이 흙으로 보이나 보지?”“……흙 바
107화. 멋있어요.아침 식탁에서도 은랑의 기분은 여전히 날아갈 듯 좋았다.“주인님, 어제 나 진짜 멋있었지?”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질문에 서연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멋있었어요.”“그렇지?”“내가 어제는 도윤이한테 맞춰준 거라 제대로 보여준 것도 아니야. 다음에 콘서트 오면 진짜 제대로 보여줄게.”“네, 알았어요. 그 말도 벌써 여러 번 했는걸요.”“알아. 그냥 좋아서 그런 거야. 이건 나만 가능한 거니까. 여우도 도둑놈도 못 하는, 나만 해줄 수 있는 일이니까.”“아이돌 센터를 아무나 할 수는 없죠. 대단해요, 은랑 씨.”“그렇지? 내가 이런 사람이야.”두 사람이 신나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동안 맞은편에서는 샐러드를 씹던 단의 표정이 점점 무심해졌다.루나가 그 모습을 힐끗 보더니 피식 웃었다.“단, 접시 깨지겠다.”“무슨 소리지?”“젓가락으로 샐러드 찌르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데?”“원래 질긴 풀이었다.”“샐러드가?”“그런 모양이지.”단은 태연하게 대꾸했지만 시선은 서연에게 머물러 있었다.은랑보다 자신이 못났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럴 이유도 없었다. 그냥 은랑을 바라보는 서연의 저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자신에게도 천 년 동안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은 것이 있었다.누구에게 인정받기 위해 붙잡고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만큼은 서연에게 보여주고 싶었다.“연. 밥 다 먹었으면 따라와.”서연이 샐러드를 오물거리다 고개를 들었다.“어디를요?”“보여줄 게 있다.”“뭔데요?”단은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서연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뒤따르자 은랑도 자연스럽게 의자를 밀고 일어났다.“나도 갈래.”“넌 오지 마.”“왜?”“내가 보여주고 싶은 사람은 연이다.”“뭐야. 치사하게.”루나가 따라 일어나려는 은랑의 옷자락을 잡아당겨 다시 자리에 앉혔다.“늑대야, 제발 눈치 좀 챙겨라.”“무슨 눈치!”루나가 이번에는 은랑의 뒤통수를 가볍게 툭 쳤다.“됐다. 늑대는 몰라도 되는 눈치
106화. 잊지 마라“그럼 우리가 피아노를 정화하는 것도 봤겠네요.”“아마도.”“도윤 씨가 성불하는 것도…….”조금 전의 광경을 최민준까지 보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더욱 더러워졌다.서연이 은랑을 보며 눈을 빛내던 것도, 직접 땀을 닦아주던 것도, 그 꼴을 보며 자신이 질투했던 것까지.“나를 시험하는 거냐. 아니면…… 즐기고 있는 거냐.”낮은 목소리에 서늘한 살기가 배어 나왔다.그때 휴대전화 너머에서 서단이 다급하게 외쳤다.―누나, 거울 부수면 안 돼! 연결되어 있으면 역으로 추적할 수 있을지도 몰라.서연은 숨을 죽인 채 기다렸다. 거울에 남아 있던 붉은빛이 불안하게 흔들리기 시작했고, 잠시 뒤 서단의 목소리가 낮아졌다.―신호 잡았어. 잠깐만……. 상대편에서도 알아챘어. 연결을 끊고 있어.“잡을 수 있어?”―해볼게. 조금만…… 어? 이상한데.“뭐가?”―상대가 내 추적을 막을 수 있었는데 공격하지 않았어. 경로만 돌려서 빠져나갔어.은랑이 눈썹을 치켜올렸다.“너보다 잘하는 놈도 있어?”―잘한다니까 좀 기분 나쁘긴 한데…… 있어. 적어도 보통 실력은 아니야.“위치는?”―놓쳤어.단이 천천히 거울 앞으로 다가갔다.파앙!손가락을 튕기자 바람의 칼날이 거울을 산산조각 냈다. 단은 쏟아지는 파편을 차갑게 내려다보다 서연을 제 등 뒤로 끌어당겼다.“나를 보는 건 상관없다. 하지만 연을 들여다보는 눈은 참을 수 없군.”서연의 심장이 또 한 번 쿵 내려앉았다.“오, 도둑놈. 지금은 조금 멋졌다.”은랑이 긴장 속에서도 장난스레 엄지를 치켜세웠다.같은 시각, 양평.대형 모니터를 가득 채우고 있던 카페의 모습이 거친 노이즈와 함께 사라졌다.지지직.[연결 종료]최민준은 소파 깊숙이 몸을 묻은 채 붉은 와인이 담긴 잔을 천천히 돌렸다. 입가에는 오히려 흥미롭다는 듯 옅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늑대의 춤이라…… 사람 홀리는 재주는 여전하군.”서연. 최민준의 눈빛이 가늘어졌다.피아노에 얽혀 있던 기운이 사라지는 순간, 그녀의
105화. 욕심은 끝이 없군서연은 카페를 나서며 슬쩍 단을 올려다봤다. 마침 단도 그녀를 보고 있었다.눈이 마주치자 서연이 먼저 시선을 돌렸다.‘왜 또 저렇게 봐.’단은 얌전히 손을 맡긴 서연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아주 조금 올렸다. 질투가 아니라는 말은 스스로 생각해도 설득력이 없었다.은랑을 바라보며 반짝이던 눈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땀을 닦아주는 손은 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 자신에게는 치료라는 이유가 있어야만 허락되는 손길을 은랑에게는 아무렇지 않게 내어주는 것이 싫었다.‘……욕심이 끝이 없군.’며칠 전까지만 해도 서로에게 상처가 될까 봐 거리를 두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이 하루에도 열두 번을 머리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서연의 시선까지 탐이 났다.뒤따라오던 루나가 은랑의 등을 툭 쳤다.“끝났으면 너도 땀이나 닦아. 언제까지 그렇게 실실 웃고 있을 거야?”“왜? 주인님이 닦아줬는데.”은랑은 아직도 기분이 좋은지 입꼬리가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주인님이 나 멋있대. 팬도 한대. 내가 진작 무대 한번 보여줬어야 했는데.”“그래, 들었어. 귀 안 먹었으니까 그만 말해.”“다음 콘서트 때는 진짜 제일 앞자리 잡아줘야겠다. 아예 내 동선 바로 앞쪽으로…….”“그만 좀 하라니까.”루나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날카롭게 튀어나왔다.은랑이 눈을 깜빡였다.“너 왜 화내?”“내가 언제? 생사람 잡지 마!”“방금 냈잖아. 얼굴도 무서운데 목소리까지 무서웠어.”“시끄러워서 그래. 천 년을 살고도 칭찬 한마디에 꼬리 흔드는 꼴을 보고 있으려니 한심해서 그런다.”은랑이 눈을 가늘게 뜨더니 씨익 웃었다.“에이, 여우. 너도 질투하냐? 주인님이 나만 멋있다고 해서?”“미친…….”루나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치더니 은랑의 어깨에 툭 손을 얹었다.“서연이랑 나는 네가 끼어들 수 없는 친밀함이 있거든? 까불지 마.”“무슨 친밀함?”“여자들끼리만 통하는 게 있어.”“뭔데?”“궁금하면 너도 여자 하든가.
104화. 질투?그 모습을 바라보던 루나의 눈이 가늘어졌다.저 멍청한 늑대는 아직도 제 마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모양이지만.서연이 은랑의 이마를 닦아줄 때마다 귀 끝은 점점 붉어졌고, 입가에는 숨길 생각조차 없는 웃음이 걸려 있었다.‘천 년이나 살고도 제 마음 하나 모르다니.’루나는 피식 웃으려다 문득 입꼬리를 내렸다.은랑이 서연을 좋아하든 말든 자신과 무슨 상관인가. 서연은 자신에게도 소중한 사람이었다. 둘이 서로 아끼는 것은 당연히 좋은 일이어야 했다.그런데 왜 자꾸 은랑의 붉어진 귀가 눈에 밟히는지 모르겠다.루나는 잡념을 떨쳐버리듯 머리를 흔들었다.‘별게 다 신경 쓰이네.’그때 낮은 목소리가 끼어들었다.“연.”“네?”“이제 다 끝났으니 그만하고 가자. 여기서 더 할 일도 없잖아.”서연이 단을 돌아봤다.“잠깐만요. 여기 목 뒤도 땀이 너무 많이 났어요. 이것만 닦아주고…….”“본인 손이 있겠지. 저 나이를 먹고 제 땀도 못 닦을 정도로 모자란 놈은 아니다.”단이 성큼 다가왔다. 자신의 손수건을 은랑의 가슴팍에 툭 던져주더니 서연의 손목을 잡아 자신에게로 당겼다.“단 씨? 갑자기 왜 이래요?”“1미터.”“네?”“너와 나 말이다. 지금 1미터 넘게 떨어졌다.”단은 조금의 부끄러움도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서연은 황당한 얼굴로 자신과 단 사이를 바라봤다. 고작 두어 걸음이었고, 무엇보다 단의 안색은 너무나 멀쩡했다.“단 씨, 지금 하나도 안 아프시죠? 얼굴도 멀쩡하고 숨도 편안하신데요?”“아프다.”“어디가요? 또 붕괴 때문에 몸 안쪽이 아픈 거예요?”“…….”단은 대답하지 않았다.루나가 입을 가리고 웃었다.“몸 안쪽이기는 하겠네. 가슴이 아픈가 보지.”“여우.”“왜? 틀렸어? 아까부터 표정이 아주 볼만하던데.”은랑도 그제야 상황을 알아차리고 입꼬리를 올렸다.“도공, 너 설마 지금 나 질투하냐? 주인님이 나 멋있다고 해서?”단의 눈썹이 꿈틀거렸다.“질투?”단은 그 단어 자체가 몹시 불쾌하다는 얼굴로
103화. 멋졌어요서연은 한동안 가슴 위에 손을 얹은 채 서 있었다. 따뜻하게 스며든 황금빛 기운이 몸 안을 천천히 돌고 있었다.그런데 자꾸만 눈앞에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도윤의 노래에 맞춰 춤추던 은랑이었다.“은랑 씨.”“응?”“진짜 잘했어요. 저 오늘부터 팬 할래요!”은랑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조금 전까지 도윤을 다독이던 진지한 모습은 빛과 함께 사라진 모양이었다. 칭찬 한마디에 신이 난 대형견처럼 서연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진짜? 나 잘했어? 어느 부분을 제일 잘했는데?”“도윤 씨가 흔들릴 때마다 기다려주고 박자가 어긋나면 바로 맞춰준 거요. 그리고 춤선이 진짜 예술이었습니다.”서연이 엄지를 척 내밀었다.“최고! 최최최고의 백댄서였어요. 진짜 멋졌어요!”“……한 번만 더 해봐.”“멋있었다고요.”“아니, 아까처럼 눈 반짝이면서 한 번만 더.”“진짜 멋있었다고요. 됐죠?”“헤헤. 됐어.”은랑은 숨길 생각도 없이 웃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루나가 혀를 찼다.“아주 꼬리가 있었으면 카페 바닥을 쓸고 다니겠네. 천 년을 살고도 칭찬 한마디가 그렇게 좋냐?”“부러우면 너도 춤추지 그랬어. 옆자리 정도는 양보해 줬을 텐데.”“누가 부럽대? 네 그 정신없는 춤을 내가 왜 춰.”루나는 대수롭지 않게 받아쳤지만 시선은 은랑의 이마에 맺힌 땀을 향하고 있었다.‘별게 다 신경 쓰이네.’그리고 그보다 훨씬 노골적으로 심기가 불편한 사람이 하나 더 있었다.단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팔짱을 낀 채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은랑이 춤을 잘 추는 건 알고 있었다. 수백 년 동안 저 똥개가 인간들 사이에 섞여 별짓을 다 하고 살아왔다는 것도 안다. 그러니 노래를 하든 춤을 추든 단에게는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문제는 연이었다.춤이 뭐라고 저렇게까지 눈을 반짝일 일인가 말이다.“은랑 씨, 진짜 신기했어요. 그렇게 격하게 움직이면서 어떻게 박자를 하나도 안 놓쳐요?”“연습이지. 내가 몇 년 차인데. 무대에서는 예상하지 못한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