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도공의 유일한 구원자: Chapter 1 - Chapter 10

119 Chapters

2화. 돈 많고, 아프고, 좀 치명적인 미친놈

2화. 돈 많고, 아프고, 좀 치명적인 미친놈‘미친놈인 게 분명하다.’서연은 눈앞의 남자를 빤히 바라보았다.성북동의 미치광이 수집광.‘완벽하게 아름다운 것이라면 무엇이든 수집한다는 소문까지 있었는데...... 설마 나를 사겠다는 것도 그런 의미야?’서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제가 예쁘기는 하지만, 완벽하게 아름다운 정도는 아닌데요?”순간 단과 김 실장이 동시에 반응했다.“큽.”“하!”서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두 분 지금 웃으셨어요?”“크흠!”김 실장이 황급히 헛기침을 하며 표정을 수습했다.“주인님께서 며칠째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셔서 심신이 많이 지쳐 계십니다. 조금 전의 무례는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김 실장.”단이 그의 말을 잘랐다.“그런 게 아니다.”“예?”“저 여자가 필요해.”단의 말에 김 실장의 표정이 굳었다.“무슨 말씀이십니까?”“내 고통을 잠재웠어.”김 실장의 눈이 크게 뜨였다.“그게, 정말입니까?”“그래.”단은 다시 찾아오는 고통에 미간을 찌푸렸다.“잠깐 닿았을 뿐인데 모든 게 멎었다.”그의 시선이 서연에게 박혔다.“그러니까 저 여자가 필요해. 지금 당장.”“으윽.”단이 머리를 짚으며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얼마면 되지?”같은 질문이었다. 그제야 서연도 대충 상황을 이해했다.자신이 저 남자의 고통을 잠재울 수 있다는 뜻인 모양이었다.‘뭐야? 치료사? 진통제? 그런 게 필요하다는 건가?’그렇다면...... 서연의 머릿속에서 주판알이 빠르게 튕겨졌다.‘한번 질러봐?’“저, 엄청 비싼데요?”“상관없어.”단의 대답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내 전 재산을 다 주더라도 널 곁에 둬야 하니까.”김 실장의 눈썹이 꿈틀거렸다.“주인님. 전 재산은 곤란합니다.”“김 실장.”“예.”“조용히 해.”“......예.”서연은 침을 꿀꺽 삼켰다.자신에게 못 박힌 눈빛도, 절박하게 굳은 표정도,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 앞으로 기울어진 몸도 모두 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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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제법 손발이 잘 맞는 계약자

3화. 제법 손발이 잘 맞는 계약자“추가금 줄게. 이 평화를 깨지 마라.”“넵! 주인님, 아니 단 씨! 어깨 높이 맞춰 드리겠습니다. 편히 주무십시오.”역시 금융 치료는 위대했다.단은 눈을 감은 채 서연의 손가락 마디를 천천히 만지작거렸다.대체 이 여자의 몸에는 무엇이 흐르고 있는 걸까.왜 닿기만 해도 지옥불 같던 고통이 봄눈 녹듯 사라지는 걸까.의문은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이 안락함에 취하고 싶었다.얼마나 지났을까.“여기부터는 걸어가야 해요.”서연의 말에 김 실장이 차를 세웠다.차에서 내린 단이 골목에 발을 딛는 순간, 주변의 풍경이 묘하게 이질적으로 변했다.깨진 보도블록, 얼기설기 얽힌 전깃줄, 칠이 벗겨진 담벼락.그 낡고 칙칙한 풍경 한가운데 명품 슈트를 차려입은 단이 서 있었다.혼자 다른 세상에서 떨어진 사람처럼 비현실적으로 눈에 띄었다.‘와우.’서연이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인간 자체는 진짜 명품이다. 아우라가 그냥~. 우리 갓물주님 멋져요!’“여기서 살았던 건가?”“네. 다리는 좀 아프지만 정겨운 동네예요.”서연이 단의 손을 잡은 채 앞장섰다.철벅.“으악!”갑자기 단이 걸음을 멈췄다.“왜요?”단이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자신의 발아래를 내려다보았다.“그냥 물이에요, 물! 유난 떨지 말고 와요. 동네 사람들 다 쳐다보잖아요.”‘으으, 멋지다는 말 취소. 진상이다. 진상!’서연의 말대로 지나가던 할머니들과 골목에서 뛰어놀던 아이들이 두 사람을 힐끔거리고 있었다.“어머, 저 총각 좀 봐. 모델인가?”“아이고, 아가씨가 남자 제대로 잡았네.”서연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빨리 와요!”“왜 네가 부끄러워하지?”“제발 입 좀 다물고요!”한참을 헉헉거리며 올라간 끝에 두 사람은 가파른 언덕 꼭대기에 위태롭게 얹힌 옥탑방에 도착했다.서연이 단을 간절하게 바라보았다.“잠깐만요. 딱 5분! 아니, 1분! 1분만 손 좀 놔주세요. 금방 문 열어드릴게요. 네?”단이 피식 웃으며 손을 놓았다.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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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손이 많이 가는 여자군.

4화. 손이 많이 가는 여자군“전화 좀 할게요. 조용히 해주세요.”서연은 휴대폰을 들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신호음이 길어질수록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어, 엄마. 나야.”[어구, 우리 딸! 밥은 먹었어? 별일 없지?]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에는 반가움보다 걱정이 먼저 묻어 있었다.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서연은 울컥 목이 메었지만, 이내 꾹 참았다.지금 울면 엄마는 오늘 밤 잠도 못 잘 게 뻔했다.“응, 먹었지. 엄청 맛있는 거 먹었어. 엄마, 나 이번에 큰 프로젝트 맡아서 당분간 아빠보러 못가요.”[못 온다고?]“응. 출장 가야 할 것 같아.”[갑자기? 혹시 채권자들이 찾아왔니?]“아니야! 그런 거 절대 아니야. 아주 중요한 감정 의뢰가 들어왔거든.”서연은 단을 힐끗 바라보았다.“보안이 워낙 철저해서 연락도 잘 안 될 수 있어. 대신 보수가 아주 세.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시라고 연락드렸어요.”잠시 망설이던 서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아빠는 좀 어떠셔?”잠시 침묵이 흘렀다.[많이 좋아지셨어. 오늘 재활 치료받으면서도 계속 네 사진만 보더라.]엄마가 애써 밝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얼른 나아서 우리 연이 짐 덜어줘야 한다고 그러더라. 그러니까 너는 우리 걱정하지 말고 네 몸이나 챙겨.]“네.”[연아.]“응?”한참을 머뭇거리던 엄마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미안하다. 엄마 아빠가.]서연은 입술을 깨물었다. 또 눈물이 핑 돌았다.“아, 진짜 여사님, 왜 또 청승이야. 나 진짜 돈 많이 벌어 간다니까?”일부러 씩씩하게 대꾸하려던 순간이었다.[누나야? 잠깐 나 좀 바꿔줘 봐!]익숙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어? 엄마, 단이는 바꾸지 마. 안 바꿔도 돼. 그냥 안부만 전해줘. 응?”[누나! 나야, 서단!]남동생 서단이었다. 서연의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렀다.천재적인 해커 기질을 타고난 이 녀석은 눈치까지 백단이었다.어설픈 거짓말은 절대 통하지 않는다.“어, 단아. 왜? 누나 바빠.”[누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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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한 침대에서 자요?

5화. 한 침대에서 자요?김 실장은 단과 서연의 모습을 바라보다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단이 저렇게 편안한 표정을 짓는 것은 그가 곁에서 모시는 동안 처음 보는 일이었다.밤이 되자 저택은 낮보다 훨씬 으스스해졌지만 서연은 어둠 따위 무섭지 않았다.세상에서 제일 비싼 보디가드가 옆에 딱 붙어 있었으니까.하지만, 하지만!‘24시간 밀착이라고는 했지만…… 설마 잠까지 같이 자자는 건 아니겠지?’“저기, 단 씨.”“왜?”“이제 잘 시간인데요.”“그래. 자야지.”“그런데, 저는 어디서 자요? 제 방은 어디예요?”서연이 불안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당연히 방은 따로 쓰는 거죠?”단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무슨 소리야. 1미터 유지라니까.”“에이~ 설마 아니죠?”“떨어지면 아파서 잠을 못 자. 지난 한 달 동안 한숨도 못 잤다.”단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낮게 덧붙였다.“아니...... 마음 편히 숨조차 쉬지 못했어.”서연의 눈이 커졌다.“아니, 그래도 남녀가 유별한데 한 침대에서 자요?”그녀가 황급히 손가락까지 들어 올렸다.“성적인 행위 금지! 계약서에 넣은 거 잊었어요?”단의 눈썹이 올라갔다.“내가 널?”“.......”“아니면 네가 날?”“뭐라고요?”“꿈 깨. 넌 그냥 진통제야.”단이 서연의 손을 잡아끌었다.“나한테 흑심 품은 거 아니면 잔말 말고 따라와.”‘어머머머 별꼴이야! 누가 누구한테 흑심을 품는다는 거야!’단은 대꾸도 하지 않고 2층으로 올라갔다.침실 문이 열리자 서연의 입도 함께 벌어졌다.“와~.”운동장처럼 넓은 침실 한가운데 거대한 침대가 놓여 있었다.킹사이즈라는 말로도 부족해 보였다.그런데 방 안으로 한 걸음 들어서는 순간 서연이 몸을 움츠렸다.“으으으 추워.”단이 힐끗 돌아보고, 말없이 실내 온도를 올렸다.불면증에 시달리며 조금이라도 잠을 청하기 위해 늘 차갑게 유지하던 방이었다.“씻고 와.”“혼자요?”단이 묘한 눈으로 서연을 바라보았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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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오해

6화. 오해식탁 위에는 무거운 정적만이 흐르고 있었다.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거대하고 우아한 식탁.끝과 끝에 앉아 서로를 우아하게 바라보며, 정성스럽게 차려진 음식을 여유롭게 음미하는 두 남녀.......일 리가 없었다.서연은 단의 바로 옆자리에 딱 붙어 앉아 한 손으로 힘겹게 밥을 먹고 있었다.나머지 한 손은 계약자의 손에 단단히 붙잡혀 있었으니까.두 사람 앞에는 김 실장이 정성스럽게 차려낸 아침 식사가 놓여 있었다.입안에서 살살 녹을 듯한 한우 갈비찜, 향긋한 자연송이, 맑은 국.그리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팥밥.단의 젓가락이 멈췄다.“김 실장.”“네, 주인님.”“이 붉은 밥은 뭐지?”단이 미간을 좁혔다.“오늘이 동지인가? 아니면 집에 귀신이라도 들었나?”“아닙니다. 다만.”정갈한 양복 위에 앞치마를 두른 김 실장이 안경을 검지로 슬쩍 밀어 올렸다.입가에는 아주 은은하고 흐뭇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예로부터 붉은 팥은 액운을 쫓고 경사를 축하하는 의미가 있지 않습니까.”“그래서?”“두 분의 역사적인 첫날밤을 기념하고, 앞으로 이 집안에 아이......”김 실장이 헛기침했다.“큼, 큼 아니, 좋은 기운이 가득하기를 바라는 충심에서 준비했습니다.”“푸흡!”물을 마시던 서연이 그대로 뿜었다.간신히 고개를 돌린 덕분에 단의 얼굴에 물을 뿜는 대참사는 피했다.“뭐 하는 거지?”단이 한심하다는 눈으로 서연을 바라보았다.“밤에는 침을 흘리더니 낮에는 물을 뱉는 건가?”“아니거든요!”서연의 얼굴이 팥밥보다 붉게 달아올랐다.“김 실장님! 진짜 오해예요. 저희는 그냥 손만 잡고 잤어요! 엄청 건전하게!”“…….”“진짜예요! 완전 초등학생 수련회보다 더 건전했다고요!”서연이 억울함에 발을 동동 굴렀지만 단은 태연하게 팥밥을 한 숟갈 먹었다.“맛있군.”“단 씨!”“찰기도 적당하고.”“지금 밥이 넘어가요?”단이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서연을 바라보았다.“해명 좀 하라고요! 김 실장님 표정 안 보여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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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공공의 적

7화. 공공의 적“어머, 저 남자 봐. 누구지? 배우인가?”“완전 내 스타일!”“옆에 여자는 뭐야? 코디인가? 매니저?”“아니, 손잡고 있는데?”여기저기서 수군거림이 들려왔다.서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후드 모자를 더 깊게 눌러썼다.쪽팔림은 오롯이 그녀의 몫이었다.“어깨 펴. 죄지었나?”단이 서연의 허리를 끌어당겨 바짝 붙였다.“사람들이 쳐다보잖아요. 이거 좀 놓으면 안 돼요? 쇼핑할 때만이라도?”“안 돼. 사람 많은 곳은 기운이 더 탁해. 두통이 심해진다고.”단은 서연의 손을 놓지 않았다.아니, 사람들이 자꾸 힐끔거리는 것이 거슬렸는지 아예 깍지를 낀 손을 자신의 재킷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어서 오십시오, 고객님.”C사 매장 직원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그녀의 시선이 단의 손목에 감긴 고가의 시계와 서연의 낡은 운동화 사이를 빠르게 오갔다.“이 여자한테 맞는 거,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가져와요.”“네? 전부 다요?”“계절별로, 용도별로.”단이 잠시 생각하더니 덧붙였다.“잠옷은. 실크로.”“잠옷까지요?”“피부에 닿는 감촉이 중요하니까.”서연의 눈이 가늘어졌다.‘왜 네가 내 잠옷 감촉까지 신경 쓰는데?’단은 그녀의 시선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소파를 가리켰다.“입어 봐.”“저기요, 단 씨.”“왜?”“저 옷 입으려면 피팅룸 들어가야 하거든요?”“그래서?”“거기도 따라오시게요? 변태 소리 듣고 싶으세요?”단이 멈칫했다.피팅룸.거기는 1미터 유지가 불가능한 성역이었다.“문...... 열어놓고 갈아입어.”“미쳤어요? 경찰 부를 거예요! 50억이고 뭐고 쇠고랑 차고 싶어요?”“손 놓으면 아프다고 했다.”단의 미간이 구겨졌다.거대한 사내가 백화점 한복판에서 서연과 떨어지기 싫어하는 꼴이 되어버렸다.결국 서연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이걸로 해요.”“뭘?”서연은 피팅룸 커튼을 묶는 굵은 금색 끈을 풀었다.“이거라도 잡으면 조금은 효과 있다면서요? 제가 안에서 갈아입는 동안 밖에서 잡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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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일하러 가자

8화. 일하러 가자서연의 양손에는 쇼핑백이 주렁주렁 들려 있었다.직원이 차에 실어주겠다고 정중히 제안했지만, 서연은 극구 사양했다.손끝에 전해지는 묵직한 무게감.걸을 때마다 들리는 종이가방의 경쾌한 바스락거림.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플렉스의 맛 아니겠는가.서연은 이 순간을 온몸으로 만끽하고 싶었다.사실 아버지의 사업이 기울기 전, 서연의 집안도 나름 남부럽지 않게 살았었다. 하지만 워낙 검소했던 부모님의 영향으로 이런 호사는 누려본 적이 없었다.돈이 있을 때는 하나도 아쉽지 않았는데, 막상 궁핍하게 살아보니 조금은 부러워지기도 했다.더구나 고용주의 돈으로 쇼핑하려니 억눌려왔던 소비 욕구가 비로소 봉인 해제된 기분이었다.그렇게 콧노래를 부르며 다음 매장으로 향하던 때였다.지이잉. 지이잉.단의 휴대폰이 짧고 묵직하게 진동했다.김 실장이었다.“주인님, 두 분의 시간을 방해해서 송구합니다만 의뢰인이 찾아왔습니다.”단의 미간이 미세하게 찌푸려졌다.꿀 같은 휴식.아니, 서연의 체온을 느끼며 통증 없이 보내는 이 평화로운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쫓아내. 오늘 휴무야. 난 지금 이 세상 무엇보다 중요한 쇼핑 중이라고 해.”“물건 상태가 심상치 않습니다. 주인님께서 직접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김 실장의 목소리가 낮아졌다.“저택의 기운까지 급격히 탁해지고 있습니다.”단의 걸음이 딱 멈췄다.물건 하나 때문에 성북동 저택의 기운이 변했다고?단순히 가품이나 사연 있는 물건 정도가 아니라는 뜻이었다.아주 악질적인 살을 품은 물건.도공이자 예술가인 단은 현세에서 탁월한 안목을 지닌 고미술 감정가로 통했다.그가 다루는 것은 단순히 값비싼 유물만이 아니었다.오랜 세월 인간의 욕망과 원한을 머금어 불길한 기운을 품게 된 물건들.단은 그런 물건을 찾아 정화해왔다.그에게도 나쁜 일은 아니었다. 악귀와 탁기를 정화하고 나면 꽉 막혀 있던 혈이 뚫리듯 몸이 한결 가벼워졌으니까.알음알음 소문을 들은 정·재계 큰손들이 그에게 은밀한 의뢰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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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너는 누구지?"

9화. 너는 누구지?“보증서요? 뭐, 제작 시대로 보면 진품이기는 하죠. 하지만 격이 달라요. 여기 용 발가락 보세요. 왕실에서는 주로 오조룡을 새겨 넣어요.”서연이 거울의 문양을 가리켰다.“그런데 이건 오조룡처럼 보이지만 실은 사조룡이에요. 웬만한 감정사도 헷갈릴 만큼 정교하지만, 이건 왕실의 물건이 될 수 없습니다.”서연이 코를 막으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그런데 이 거울, 나쁜 물질이라도 나오나 봐요. 라돈인가? 암모니아? 냄새가 너무 심해서 머리가 다 아프네요. 환기 좀 하셔야겠어요.”서연의 말이 끝나는 순간이었다.끼이이에에엑!거울이 반응했다.마치 자신의 정체를 들킨 것처럼.손톱으로 칠판을 긁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거울에서 검은 연기가 확 피어올랐다.그리고 그대로 의뢰인을 향해 쇄도하자 그가 비명을 질렀다.“으아아악!”서연의 눈에는 검은 연기가 유독가스처럼 보였다. 시커먼 가스가 뱀처럼 똬리를 틀며 의뢰인의 발목을 휘감으려 했다.단의 눈에 거울 속에서 튀어나온 흉측한 악귀의 손이 보였다.“어? 가스 샌다! 위험해!”서연이 먼저 움직였다.“서연, 잠깐!”단이 말릴 틈도 없었이 서연은 신고 있던 신발 한 짝을 벗어 들었다.왜 그랬는지는 자신도 몰랐다. 그저 본능적으로 저 거울을 내리쳐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이거나 먹어!”챙!신발이 거울을 힘껏 후려쳤다. 그 순간.파앗!서연의 손끝에서 미세한 황금빛이 팔을 타고 신발로, 다시 거울로 흘러들었다.서연은 알지 못했다.그것이 천 년 동안 그녀의 핏속에서 잠들어 있던 정화의 힘이라는 것을.키에에엑!찢어지는 비명과 함께 검은 연기가 사방으로 흩어졌다.거울을 뒤덮고 있던 검붉은 탁기가 순식간에 걷혀나가고, 거짓말처럼 모든 것이 멎었다.“허억......헉.”서연은 맨발로 바닥에 선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고작 신발 한 번 휘두른 것뿐인데 온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간 느낌이었다.다리가 후들거렸다.잠시 후 방 안을 가득 채웠던 악취마저 거짓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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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저 오빠가 왜 여기서 나와?

10화. 저 오빠가 왜 여기서 나와?은랑의 시선이 서연을 지나, 그녀의 손을 꼭 쥐고 있는 단의 손으로 옮겨갔다.순간 그의 눈빛이 사납게 일그러졌다.혐오와 분노가 뒤섞인 소름 끼치는 살기가 고택의 공기를 짓눌렀다.‘주인님께서는 저 도둑놈이 구원받을 때까지, 주인의 피를 이은 가문을 지키라고 하셨지만.......’은랑의 목에서 낮은 으르렁거림이 흘러나왔다.“마음에 안 들어.”그의 시선이 단에게 꽂혔다.“우리 주인님의 힘을 가로챈 도둑놈.”은랑의 으르렁거림에 단은 서연을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서연의 눈이 동그래졌다.‘뭐야?’은랑과 단을 번갈아 바라보던 그녀의 입이 슬쩍 벌어졌다.‘저 오빠가 왜 여기서 나와? 여기 대체 뭐 하는 집이지?’“냄새 나는 도둑놈.”은랑이 선글라스를 벗어 재킷 주머니에 꽂아 넣었다.드러난 얼굴은 그야말로 화려함 그 자체였다.조명을 받지 않아도 자체 발광하는 백금발.이국적인 이목구비.사람을 홀리는 묘한 눈빛까지.대한민국 여성의 70퍼센트가 한 번쯤 그를 휴대폰 배경화면으로 해봤다는 전설의 아이돌.그룹 ‘더 울프’의 리더이자 센터, 은랑이었다.‘와우!’서연의 눈이 커졌다.‘화면으로 봐도 화려함의 극치였는데 실물은 더 예술이네. 은랑을 이 거리에서 직관하다니...... 은혜롭구나.’하지만 팬 사인회에서 보여주던 달콤한 눈빛은 어디에도 없었다.금방이라도 목덜미를 물어뜯을 듯한 적의가 오직 단을 향해 꽂혀 있었다.“.......”단은 서연을 안고 있던 팔을 풀지 않은 채 고개만 돌려 은랑을 바라보았다.길을 가다 시끄럽게 짖어대는 개라도 마주친 듯 귀찮음과 불쾌함만이 서려 있었다.“집 지키라고 마당에 풀어놨더니 주인이 있는 안방까지 기어들어 왔군.”단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나가라. 털 날리니까.”“하! 웃기고 있네.”은랑이 헛웃음을 터뜨리며 오히려 성큼성큼 거실 안으로 들어왔다.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야생 짐승 특유의 위압적인 기운이 공간을 짓눌렀다.“여기가 네 집인 줄 알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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