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7화. 공공의 적
"어머, 저 남자 봐. 연예인 아니야? 배우인가?"
"완전 내스타일!"
"옆에 여자는 뭐야? 코디인가? 매니저?"
"아니, 손을 잡고 있는데?"
여기저기서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후드 모자를 더 깊게 눌러썼다. 쪽팔림은 오롯이 그녀의 몫이었다.
"어깨 펴. 죄지었나?"
단이 연의 허리를 끌어당겨 바짝 붙였다.
"사람들이 쳐다보잖아요. 이거 좀 놓으면 안 돼요? 쇼핑할 때 만이라도?"
"안 돼. 사람 많은 곳은 기운이 더 탁해. 두통이 심해진다고.“
단은 절대 연의 손을 놓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사람들이 힐끔거리는 게 싫은지 깍지를 낀 손을 자켓 호주머니에 넣었다.
"어서 오십시오, 고객님."
C사 매장 직원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환한 미소로 달려왔다. 그녀의 시선은 단의 손목에 감긴 고가의 시계와, 연이 신고 있는 낡은 운동화 사이를 빠르게 오갔다.
"이 여자한테 맞는 거,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가져와요. "
"네? 전부 다요?"
"계절별로, 용도별로. 잠옷 포함해서... 특히 잠옷은 실크로. 피부에 닿는 감촉이 중요하니까."
단은 연을 소파에 앉히고 자신도 옆에 딱 붙어 앉았다.
"입어 봐."
"저기요, 단 씨. 저 옷 입으려면 피팅룸 들어가야 하거든요? 거기도 따라오시게요? 변태 소리 듣고 싶으세요?"
연의 지적에 단이 멈칫했다. 아, 피팅룸. 거기는 1미터 유지가 불가능한 성역이었다.
"......문 열어놓고 갈아입어."
"미쳤어요? 경찰 부를 거예요! 50억이고 뭐고 쇠고랑 차고 싶어요?"
"그럼 어쩌라고. 손 놓으면 아픈데..."
단은 덩치에 안 맞게 어린아이처럼 칭얼거렸다.
다큰 사내가 백화점 한복판에서 분리불안 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결국 연이 타협안을 내놓았다.
"피팅룸 커튼 끈, 이걸로 연결해요. 그렇게 해도 조금은 효과가 있는 것 같다면서요? 제가 안에서 옷 갈아입는 동안 밖에서 잡고 있어요. 됐죠?"
연은 피팅룸 커튼을 묶는 굵은 금색 끈의 한쪽 끝을 밖으로 쑥 내밀었다. 단은 그 끈을 생명줄이라도 되는 양 두 손으로 꼭 움켜쥐었다.
밖에서 보면 영락없이, 여자친구가 옷 갈아입는 걸 기다리지 못해 끈이라도 잡고 늘어지는 희대의 사랑꾼 남자의 뒷모습이었다.
지나가던 커플들이 부러운 눈길로, 혹은 경악스러운 눈길로 쳐다봤다.
커플이 지나가며 속닥거렸다.
"자기야, 나도 저렇게 해줘."
"미쳤냐? 변태도 아니고."
"하긴... 네가 하면 그냥 변태지. 저 남자가 하니까 사연 있어 보이는 거고. 근데 오빠, 언제부터 그렇게 오징어였어?"
"허! 야, 너도 좀 전부터 오징어거든?"
단과 연은 본의 아니게 남의 연애 전선에 균열을 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곧이어 지나가던 또 다른 커플이 멈춰 섰다.
"야, 저거 봐. 저 남자는 여친 나올 때까지 끈 잡고 기다리잖아. 넌 아까 나보고 쇼핑 언제 끝나냐고 징징거렸지?"
쇼핑백을 주렁주렁 든 남자가 억울하다는 듯 항변했다.
"아니 자기야, 저건 로맨틱한 게 아니라 좀 무섭지 않아? 저 눈빛 봐. 완전 북부 집착광공 같은데?"
"웃기지 마. 저 얼굴로 집착하면 그게 장르고 로맨스 판타지인 거야! 네가 하면 '그것이 알고 싶다' 스릴러고! 나도 북부 집착광공 남친 사귀고 싶다!"
"......와, 진짜 너무하네."
단은 백화점 내 남성들의 공공의 적이 되어가고 ...
연은 밖에서 들리는 적나라한 대화 소리에 얼굴이 화끈거려 죽을 것 같았다.
'50억... 50억... 50억!!! 으으으 이건 노동이다. 극한 직업이다. 감정 노동 수당도 청구해야 할 것 같다.'
그렇게 한 참 뒤. 커튼이 젖혀지고 연이 걸어 나왔다.
그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고급스러운 트위드 원피스에 편안하지만 세련된 로퍼.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낯설었다. 빚에 쫓겨 찌들었던 얼굴이, 돈을 바르니 귀티가 흘렀다.
"음."
단이 팔짱을 낀 채 연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이제야 좀 봐줄 만하군. 내 안목이 틀리지 않았어."
"누구 안목이요? 직원 언니가 골라준 거거든요?"
"돈 낸 사람 안목이 제일 중요한 거야."
단은 블랙 카드를 꺼내 직원에게 건넸다.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사이즈 맞는 거 전부 포장해서 집으로 보내요."
"네? 고객님, 전부 다요?"
"전부 다. 로고 너무 큰 건 빼고 부탁합니다."
직원의 입이 귀에 걸렸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스킬인가. 속물이라고 욕해도 좋았다. 연의 입꼬리가 자제력을 잃고 씰룩거렸다.
"물주... 아니, 주인님. 아니 단씨, 혹시 필요한 거 없으세요? 어깨라도 주물러 드릴까요? 목마르진 않으시고요? 손? 아니면 어깨동무할까요?"
"됐어. 손이나 꽉 잡아. 갈 곳이 많으니까. 이만 자리를 옮기지."
"어디요? 신발? 가방? 악세서리?"
"전부!"
"네 단님! 어서 가시지요.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
"그쪽 말고, 오른쪽."
"네, 오른쪽으로 가시지요."
단은 무심한 척했지만, 연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자 묘하게 기분이 좋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가슴 한구석이 간질거렸다.
천년 동안 쌓아둔 재화는 넘쳐나는데, 그걸 쓸 때 이런 쾌감이 있는 줄은 처음 알았다.
누군가를 위해 돈을 쓰고, 그 사람이 환하게 웃는 걸 보는 기분.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취미 생활이었다.
29화. 정화"때가 이렇게 꼬질꼬질하게 꼈으니까 뜨겁죠! 그림 관리를 어떻게 했길래! 이러니까 무식한 사람들이 당신의 진짜 모습을 못 보고 도망치지!"서연은 이것을 끝까지 퇴마나 정화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비싼 그림에 핀 악성 곰팡이를 닦아내는 클리닝 작업일 뿐이라고 억지로 우기고 싶었다.그래야 무섭지 않으니까. 그래야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은 다리를 붙잡아 둘 수 있으니까.하지만 억지 말을 뱉어내는 서연의 온몸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한편으로는 원혼을 눈앞에 둔 두려움에, 한편으로는 가슴을 후벼파는 여인의 절규에,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어떻게든 그녀를 따뜻하게 위로해 주고 싶은 마음에.귀신인지, 홀로그램인지, 정화인지, 혹은 클리닝인지... 도대체 무엇 하나 종잡을 수가 없어 마음이 어지럽게 소용돌이쳤다.비상식적인 혼란 속에서도, 서연은 손수건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이거 다 안료가 산화돼서 그래요. 그리고 사람들 시선이 썩어서 그래요. 당신이 구한 생명들은 다 잊어버리고, 껍데기만 보는 멍청이들이라서 그래요!"서연이 벅벅 문지를 때마다 귀신을 감싸고 있던 검은 독기가 조금씩 옅어졌다."내가 깨끗하게 복원해 줄게요. 당신이 영웅이었다는 거, 그 예쁜 마음씨... 다시 보이게 해 줄게요."[싫어! 보지 마! 내 흉측한 얼굴 보지 마"]귀신이 발악하며 그림 밖으로 완전히 튀어나오려 했다. 상담실 전체가 검은 머리카락으로 뒤덮이기 시작했다.단이 바람을 일으켜 머리카락을 잘라내고, 은랑이 온몸을 던져 연에게 다가오는 것들을 막아냈다.
28화. 사연서연의 눈앞에 환영이 겹쳐졌다.화염에 휩싸인 건물.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가족들을 위해 주저 없이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여인의 뒷모습. 살이 타는 고통 속에서도 그녀는 사람들을 밀어냈다.[모두가 나를 영웅이라고 했어! 살아있는 보살이라고 했어!]귀신이 피눈물을 흘리며 울부짖었다.[그런데... 그때 뿐이야. 겨우 살아났는데... 내 얼굴을 보면... 다 도망갔어!]귀신이 자신의 뭉개진 얼굴을 감싸 쥐었다.[영웅이라던 사람들이... 나를 보고 '괴물'이라며 비명을 질렀어!]가장 먼저 평생을 약속했던 남편이 차갑게 등을 돌렸고, 아들을 살려줘 고맙다던 시부모는 그녀를 별채에 가두었다.살이 타 들어가는 상처는 서서히 아물었지만, 그녀의 희생은 너무도 쉽게 희석되었다.남편은 등을 돌린채 눈물을 흘렸고, 거리의 사람들은 그녀의 눈을 피했다.문득 스쳐 지나가는 몇몇의 시선이 이내 송곳이 되어 심장을 난도질하자, 결국 그녀는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를 어두운 작은 방 안에 가둬 버렸다.[내가 구한 목숨들인데... 내가 살려준 눈들인데... 그 눈으로 나를 경멸해?][내 얼굴 돌려줘! 사람들이 나를 보고 웃어주던 그 얼굴! 나를 사랑해 주던 그 눈빛 돌려줘!]그것은 타락한 영웅의 절규였다.배신당한 선의가 얼마나 끔찍한 악의로 변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처참한 광경이었다.귀신의 사연은 너무나 무겁고 안타까웠다. 그래서 오히려 누군가 치밀하게 짜놓은 각본처럼 느껴질 정도였다.하지만 귀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순간,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서연은 다시 한번 억지를
27화. 각성이어폰 너머로 서단의 긴장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연은 쿵쾅거리는 심장을 숨기며 짐짓 태연한 척 대꾸했다."고미술품이니까 훼손 방지를 위해 보존 장치를 달았을 수도 있어."서연은 그렇게 말하며 단의 호위를 받아 미인도 앞으로 천천히 다가갔다.가까이서 본 그림은 멀리서 볼 때보다 훨씬 더 기괴했다. 비단은 습기를 잔뜩 먹은 것처럼 보였고, 여인을 그린 선들은 손톱으로 긁어낸 듯 거칠고 잔인했다.그리고 거울 속의 검은 얼굴.'특수 보존 장치는 무슨… 이건 그냥 그림 자체가 상해버린 거잖아. 게다가 저 검은색….'산화된 핏자국이었다. 거울 속 여인의 얼굴을 누군가 피로 지워버린 것 같은 흔적.그 사실을 깨달은 바로 그 순간.쿠궁! 삐이이익!이명과 함께, 절대안이 강제로 눈을 뜨려 하고 있었다.'우욱'역한 냄새와 함께 구역감이 올라왔다.연이 보는 공간이 흑백으로 변하고, 오직 미인도만이 붉은 핏빛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보여요..."서연이 입을 틀어막으며 중얼거렸다."뭐가, 도대체 뭐가 보인단 말입니까?"오 원장이 겁에 질려 쇼파 뒤로 숨으며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이런 적은 없었는데… 이게 대체... 뭐죠?"
26화. 희망을 확신으로단이 자리에 앉자, 서연 역시 곁에 앉으며 원장실 내부를 천천히 훑어보았다.은랑은 마치 든든한 보디가드라도 된 듯 자리에 앉지도 않은 채 서연의 뒤편에 서서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한눈에 봐도 유명 디자이너의 작품으로 보이는 고급 소파와 테이블, 그리고 벽면을 가득 채운 유명 화가들의 그림들.하지만 그 세련된 현대식 인테리어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것이 딱 하나 있었다.원장 책상 뒤, 가장 상석에 걸린 커다란 비단 그림.쪽진 머리에 화려한 가체를 하고, 고운 한복을 입은 여인이 뒤돌아 앉아 거울을 보는 고전 미인도였다.'저게 뭐야? 인테리어랑 너무 안 맞잖아.'서연은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최신식 성형외과의 화려한 추상화들 사이에 단 한 점 걸려 있는 낡은 고미술품이라니.게다가 그림속 여인의 자세는 어딘가 부자연스럽게 구부정했고, 손에 든 거울 속 얼굴 부분은 시커멓게 칠해져 있었다. 마치 누군가 먹물을 엎지른 것처럼, 혹은 고의로 얼굴을 문질러 지워버린 것처럼."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MJ 갤러리 최 관장님께 이 그림을 대여한 뒤로, 이상한 일이 계속해서 생기고 있습니다."“무슨 일이 있었습니까?”단이 다리를 꼬며 나직하게 물었다.
25화. 악취타이어가 거친 마찰음을 내며 한 빌딩 앞에 멈춰 섰다.“으아악! 은랑 씨! 안전운전! 안전운전!!!”앞으로 튕겨 나갈 뻔한 서연이 비명을 질렀다. 단이 재빨리 연을 품에 끌어안아 반동을 줄여 주었다.“주인님, 미안! 이 차가 제 주인놈처럼 나랑 통 안 맞네.”은랑이 변명하듯 머리를 긁적이며 연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단이 눈을 치켜떴다."변명하지 마라. 그저 네놈이 섬세함이라곤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짐승이라 그런 거다."연도 가슴을 쓸어내리며 간신히 숨을 고른 뒤 말했다.“그런 것치고는 너무 달리셨어요…… 으으으. 집에 갈 때는 그냥 제가 모시겠습니다.”서연은 비틀거리며 겨우 차에서 빠져나왔다.대한민국 욕망의 최전선이자, 자본주의가 가장 화려한 네온사인을 입고 춤추는 거리.평소라면 한 번쯤 눈길을 빼앗겼을 화려한 풍경이었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당장 울렁거리는 속부터 진정시키는 게 급했다.단순히 은랑의 거친 운전 실력 때문만은 아니었다.차 문을 여는 순간, 코를 찌르는 듯한 지독하고 뒤틀린 기운이 훅 끼쳐왔다.‘설마…… 정말 귀신이 나오기야 하겠어? 과학의 세상에 귀신은 없다.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돈이 귀신보다 무서운 법이다. 정신 차리자, 서연
24화. 단의 불만단이 은랑을 가볍게 무시하고, 서연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서연은 입술을 삐죽이며 투덜거리면서도, 말없이 단의 손을 꼭 맞잡았다. 두 사람의 손가락이 단단하게 얽혀드는 순간, 의문이 스쳤다.'뭐지? 개도 아니고 단 씨가 손 내밀면 자동으로 올라가는 이 손…… 나 벌써 저 인간한테 길들여진 건가?'억울하긴 했지만, 단의 손바닥에서 흘러나오는 차분한 온기를 느끼자 신기하게도 마음이 안정됐다.이제는 이 손을 잡는 것이 싫지 않았다. 그 사실이 오히려 서연을 조금 당황스럽게 했다.단은 제 손 위에 안착한 서연의 작은 손을 꼭 쥔 채,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서단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디지털 전문가.""네, 형님! 말씀하십시오.""우리는 지금 그 성형외과로 출발할 거다. 넌 여기에서 성형외과 CCTV를 확인해라. 위험해 보이거나 기이한 사항이 있으면 즉시 체크해서 알려라. 알았나?""뭡니까? 저 벌써 투입되는 건가요? 이건 계약서 작성 전이니까 별도 특별 수당 건입니다.""허! 알았다. 잘 부탁하지.""넵! 알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