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6화. 오해
식탁 위에는 무거운 정적만이 흐르고 있었다.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거대하고 우아한 식탁.
끝과 끝에 앉아서 우아하게 서로를 바라보며, 맛있는 음식을 즐겁게 음미하면서...
... 있을 리가 없었다.
서연은 단의 바로 옆자리에, 딱 붙어 앉아 힘겹게 한손으로 밥을 먹어야했다.
한손은 계약자의 손에 단단히 잡혀있었으니.
그들의 눈앞에는 김 실장이 정성스럽게 차려낸 아침 식사가 놓여 있었다.
입안에서 살살 녹을 듯한 한우 갈비찜, 향긋한 자연송이, 맑은 국, 그리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팥밥.
"김 실장."
"네, 주인님."
"이 붉은 밥은 뭐지? 오늘이 동지인가? 아니면 집에 귀신이라도 들었나?"
"아닙니다. 다만..."
정갈한 양복을 입고, 앞치마를 걸친 김 실장이 안경을 검지로 치켜올리며, 아주 은은하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예로부터 붉은 팥은 액운을 쫓고 경사를 축하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어제 두 분의... 역사적인 첫날밤을 기념하고, 앞으로 이 집안에 아이... 아니, 좋은 기운이 가득하길 바라는 충심에서 준비했습니다."
"풉!"
물을 마시던 연이 뿜었다. 다행히 고개를 돌려 단의 얼굴에 물을 뿜는 대참사는 막았지만, 그녀의 얼굴은 팥밥보다 더 붉게 달아올랐다.
"뭐하는거지? 밤에는 침을 낮에는 물을 뱉는 건가?"
"아, 아니라고요! 김 실장님! 진짜 오해에요 저희는 그냥 손만 잡고 잤어요! 진짜 건전하게! 초등학생 수련회 보다 더 건전하게요!"
연이 억울함에 발을 동동 굴렀지만, 단은 태연하게 젓가락을 들어 팥밥을 입에 넣었다.
"맛있군. 찰기가 적당해."
"이봐요, 단 씨! 해명 안 해요? 사람이 억울해서 밥이 넘어가냐고요! 김 실장님 눈빛 좀 봐요!"
"해명할 게 뭐 있어. 같이 잤고, 아침에 일어났을 때 네 다리가 내 배 위에 얹혀 있었고, 침이 내 옷에 묻어 있었던 건 명백한 일인데. 아! 네가 내 잠옷도 찢었던가?"
단은 우아하게 달걀찜을 먹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의 폭탄 발언에 김 실장은 '역시...' 하며 황급히 시선을 피했고, 연은 입을 뻐끔거리며 영혼이 가출한 표정을 지었다.
"김 실장, 오해는 거기까지. 이 여자는 내 약이지, 짝이 아니야."
그의 말투는 건조하고 냉정했다. 명확하게 선을 긋는 듯한 그 태도에 연은 순간 울컥했다.
"저도 마찬가지거든요? 제 이상형은 다정하고, 따뜻한 남자거든요? 누구처럼 냉정한 남자가 아닙니다!"
연은 쏘아붙이면서도 힐끔 단의 얼굴을 훔쳐보았다. 조각 같은 턱선, 우수 어린 눈빛.
'뭐... 솔직히 얼굴은 이상형 그 이상이긴 하지만... 아니야, 정신 차려 서연! 남자는 얼굴 뜯어먹고 사는 거 아니야! 절대! 네버! 성격이 더 중요하다구!'
연이 속으로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부정하자, 단의 우아하던 젓가락질이 공중에서 딱 멈췄다.
"이 정도면 이상형도 막 바뀌고 그런다던데?"
"얼굴 말고 인성이요, 인성! 그리고 그놈의 1미터 조항 때문에 화장실도 마음 편히 못 가고, 밥도 한 손으로 먹고 이게 무슨 꼴이에요?"
연은 잡혀 있는 왼손을 흔들어 보였다. 밥도 한 손으로 먹어야 하는 이 불편함. 50억의 대가는 생각보다 가혹했다.
단은 무심하게 화제를 바꿨다.
"밥 먹고 준비해. 나갈 거니까."
"어디를요? 유물 주우러 가요? 아니면 출장 감정? 다녀와서 마당에 있는 골동품들도 감정할까요?"
연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이 집에는 그녀가 감정하고픈 물건이 차고 넘쳤다.
"아니. 네 껍데기 갈아입히러."
단이 연의 늘어난 티셔츠 목을 검지 손가락으로 톡, 쳤다. 몇 년을 입었는지 모를 목 늘어난 회색 티셔츠가 힘없이 출렁거렸다.
"내 옆에 데리고 다니기에 너무 남루해. 내 안구 정화를 위해 백화점에 좀 다녀와야겠어."
연이 뭐라고 반박하려 하자, 단이 턱을 치켜들며 아주 당당하게 덧붙였다.
"난 나름 보는 눈이 있는 예술가야. 내 옆에 있는 게 시각적 공해인 건 못 참아."
"아니, 이게 무슨 시각적 공해까지... 빈티지거든요?"
"빈티지고 뭐고, 나가기 전에 확인부터 하자."
단과 연은 백화점을 향하기 전, 거실에서 한동안 기이한 임상 실험을 진행해야 했다.
"자, 뒤로 한 걸음 더.'
거리 테스트를 위해 손을 놓고 몇 걸음 물러섰을 때였다.
1미터가 넘어가자 단의 미간이 찌푸려졌고, 2미터가 넘어가자 식은땀을 흘렸다.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물러서자 단이 가슴팍을 쥐며 괴로워했다.
"크윽!"
단이 신음을 내뱉으며 다급하게 연의 손을 낚아채 품에 안았다.
부딪히듯 단단한 가슴에 안긴 연의 귀에 단의 빠른 심장 소리가 들렸다.
"멀리는 안돼."
한번 맞본 평온은 그의 고통을 더 극심하게 느끼게 만드는 듯했다.
"아, 알았어요. 손 좀 살살 쥐어요."
안전거리는 최대 2터, 다음은 매개체 테스트였다.
"이거 잡아 봐."
단은 연에게 실크 스카프, 쇠 숟가락, 나무 젓가락 등을 차례로 건네며 반대쪽 끝을 잡았다.
"금속은 효과가 없군. 나무도 별로야. 하지만... 천은 미세하게 기운이 흘러들어 오는군. 30% 정도 효율이지만."
"와... 무슨 전도율 실험해요? 과학자 나셨네."
이 깐깐한 검증 과정을 거치고, 손을 잡거나 최소한 옷자락이라도 붙잡고 있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 뒤 두 사람은 비로소 고택의 문지방을 넘었다.
S백화점 명품관.
평일 오전의 백화점은 한산했다. 하지만 단과 연이 로비에 등장하자마자 1층 전체의 공기가 단숨에 바뀌었다.
190cm에 가까운 키, 신이 영혼을 갈아 빚은 듯한 비현실적인 외모, 걸을 때마다 백화점 복도를 런웨이로 만드는 완벽한 슈트 핏의 남자.
그리고 그 옆에 찰거머리처럼 딱 붙어 있는... 후드티에 무릎 나온 청바지, 꼬질꼬질한 운동화 차림의 여자. 누가 봐도 기이하고 부조화스러운 조합이었다.
14화. 킨츠기서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 얼굴, 저 피지컬로 져도 이겼다고 우겨대니 차라리 인정해 주고 싶을 지경이었다.쨍그랑!평화는 10분을 가지 못했다. 부엌에서 들려온 날카로운 파열음에, 소파에 앉아 드라마를 시청하려던 서연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무슨 소리야!“바닥에는 하얀 백자가 단면을 드러내며 깨져 있었고, 그 한가운데 은랑이 고무장갑을 낀 채 얼어붙어 있었다."어... 그게... 접시가 살아있는 장어처럼 막 빠져나갔다니까?"은랑이 쭈뼛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단의 안색이 창백하다 못해 투명해졌다. 그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바닥의 파편을 가리켰다."저게... 뭔지 알고 깬 거냐?""그냥 하얀 접시 아니야? 소리가 꽤 맑긴 하더라.""조선 초기... 백자 반합이다. 지난달 경매에서 1억에 낙찰받아 온 거라고!"단의 목소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1억. 그 말에 은랑도, 뒤따라온 서연도 입을 떡 벌렸다.'아니, 미친 거 아니야? 1억짜리 그릇에 아까 음식을 담아 먹었다고? 문화재를 생활 식기로 쓰는 이 집구석은 도대체 정체가 뭐야?'"죽여 버릴 거야... 오늘 저녁은 늑대 고기 수육이다! "단의 눈이 뒤집혔다. 주변의 공기가 소용돌이치며 싱크대에 걸려 있던 부엌칼들이 덜그럭거렸다.은랑은 지지 않고 으르렁거리며 손톱을 세웠다."해봐! 누가 무서울 줄 알고! 고작 그릇 하나 가지고 쪼잔하게! 내가 물어주면 될 거 아니야!""쪼잔? 그 안에 담긴 도공의 혼을 모독해? 너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세월을 깬 거라고!"짝! 짝! 짝!서연이 주목의 박수를 쳤다."그만!!! 스톱! 동작 그만! 비켜요, 다치니까."서연은 조심스럽게 파편
13화. 믿습니다.그모습을 본 단의 눈썹이 꿈틀거렸고, 주변의 공기가 순식간에 영하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식탁 위의 물 잔 속 물이 미세하게 진동하며 파문을 일으켰다."어라?"서연은 눈을 가늘게 뜨고 물 잔을 쳐다봤다. 물이 스스로 떨리고 있었다.단이 식탁 한편에 놓인 소금 통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했다.스르르.이번에는 소금통이 스스로 미끄러지듯 움직여 단의 손안에 안착했다.서연의 눈이 동그래졌다. 하마터면 숟가락을 떨어뜨릴 뻔했다."......방금 뭐예요?"서연의 질문에 단이 태연하게 소금 통을 쥐며 대답했다."뭐가?""소금 통이요! 저거 혼자 움직였잖아요! 뭐예요? 바닥에 바퀴 달렸어요? 아니면 자석? 요즘 스마트 홈은 양념통도 원격 조종 돼요?"단은 잠시 침묵하더니, 논리적인 척 말을 늘어놓았다."마찰 계수를 이용한 거다.""네?""손끝의 스냅으로 테이블보에 미세한 파동을 일으키고, 그 진동을 이용해 물체의 마찰력을 순간적으로 0에 수렴하게 만드는 거지. 고도로 훈련된 장인의 기술이다.""마... 마찰 계수요? 여기서요?""그래. 생활의 달인 안 봤나? 동전 던지기나 카드 날리기 같은 원리다. 나는 천 년... 아니, 수십 년간 도자기를 빚으며 손 감각을 극한으로 단련했으니까."뻔뻔했다. 너무 뻔뻔해서 오히려 그럴싸하게 들렸다. 아니, 그럴싸하지 않았더라도 연은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50억을 건넨 계약주였다. 그 정도 돈을 준 사람이면 마찰 계수 쯤은 믿어 주는 게 예의다.'믿습니다. 믿어야죠. 우리 계약주님 말씀인데.'"와... 신기하네요. 역시 장인은 다르구나. 다른 것도 할 수 있나요?""뭐?""아, 아니... 너무 신기하니까 다른 것도 구경할 수 있을까 해서요."빠직 눈을 부라리던 단이 피식 웃으며 상황을 넘겼다."너 하는 거 봐서 더 보여주도록 하지."옆에서 은랑이 "저 사기꾼... 입만 열면 구라야..."라고 중얼거렸지만, 연은 들리지 않는 척 눈을 반짝였다."그... 우리집은 아니지만..."
12화. 유치한 싸움단은 뻔뻔하게 대꾸하고는, 노릇하게 구워진 고기를 집어 연의 밥그릇 위에 무심하게 툭 얹어주었다.이전에는 단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묘하게 다정한 모습이었다."먹어. 생선 먹지 말고 고기 먹어. ""음... 고마워요."연이 고기를 먹자, 단이 승리감에 도취된 표정을 지었다. 그걸 본 은랑의 눈이 뒤집혔다."와... 진짜 치사하다. 돈 자랑하냐? 나도 돈 있거든? 나도 소고기 사줄 수 있거든?""그럼 사 오든가. 지금 당장.""두고 봐! 내가 소 한 마리를 통째로 잡아 올 테니까! 아니, 목장을 사버릴 거야!"유치하다. 정말 유치해서 눈 뜨고 봐줄 수가 없다. 미남 둘이 연을 두고 싸우는데, 설레기는커녕 애들 싸움에 당황하는 유치원 선생님이 된 기분이었다."근데 은랑 씨... 아니, 은랑 님?""응? 님자는 빼고 그냥 은랑이라고 불러 아니면 오빠?""그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저... 아까부터 궁금했는데요. 왜 자꾸 저보고 주인님이라고 하세요? 수호신도 그렇고... "연의 질문에 은랑의 눈썹이 아래로 처지며 조금 쓸쓸해 보였다."아주 아주 먼 옛날에, 진짜 끝내주게 멋진 내 주인님이 시킨게 있거든... 어쨌든, 지금은 연이 내 주인님이야."은랑이 옛날이야기를 하듯 나직하게 읊조렸다.연은 꽤나 성실한 은랑이 셰계관 설정을 끝까지 유지하려 애쓰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집안에도 대대로 내려오는 늑대에 관한 전설이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이야기였기에 늑대 설정세계관이 신기하기도 하고, 어딘지 친숙하기도 했다. 연이 단을 가리켰다."아까 도둑놈이라고 했잖아요. 둘이 무슨 원수예요?""원수지. 철천지원수. 내 주인의 힘을 훔쳐 간 아주 나쁜 도둑놈."은랑이 단을 째려보았다. 단은 콧방귀를 뀌며 와인을 들이켰다."말은 똑바로 해라. 훔친 게 아니라, 잘못 배달된 거지. 나도 피해자다.""웃기시네. 돌려줄 생각도 안 했으면서.""돌려줄 방법이 없었으니까."두 남자의 대화는
11화. 세계관 놀이"아니, 팔려 간 게 아니라! 정당한 고용 계약이거든요? 그리고 주인님이라고 부르지 마세요. 부담스럽게 초면부터 왜들 이러실까요?"연이 억울하다는 듯 외쳤다. 은랑은 충격받은 표정으로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이내 결심한 듯 말을 이었다."얼마야?""네?""얼마에 팔려 갔냐고. 내가 갚아줄게. 당장 나와."오. 역시 톱스타. 스케일이 다르다. "궁금해 하시니까 말씀은 드릴께요. 50억인데요.""......!"은랑의 핸드폰 열던 손이 멈칫했다.50억. 물론 그가 못 벌 돈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아이돌이었다. 정산받은 돈은 부동산에 묶여 있고, 소속사와의 정산 비율 문제, 그리고 품위 유지비로 나가는 돈이 만만치 않았다.은랑이 멈칫하자, 단이 코웃음을 쳤다."돈도 없는 게 까불기는. 꺼져! 김 실장, 소금을 뿌려라. 재수 없는 개가 들어왔으니.""소금? 야! 나 멜차트 1위 가수야! 팬클럽 회원이 100만 명이라고! 내가 SNS에 글 하나만 올려도 넌 매장이야!""상관없어. 내 집에서 나가."단이 짜증스럽다는 듯 허공에 손가락을 까딱였다.쾅!갑자기 닫혀 있던 육중한 현관문이 스스로 활짝 열렸다. 바람도 불지 않았는데, 마치 누군가 거칠게 밀어젖힌 것처럼 문짝이 벽에 부딪혀 굉음을 냈다.연은 화들짝 놀라며 문과 단의 손을 번갈아 쳐다봤다.'뭐야? 방금 뭐지? 리모컨 눌렀나?'연은 두리번거렸다. 단의 손에는 리모컨이 없었다. 센서도 보이지 않았다.'이 집 자동문 시스템은 도대체 원리가 뭐야? 음성 인식인가? "나가"라고 하면 열리는 AI 시스템? 와, 역시 부잣집은 다르다. 이건가!'연이 혼자 성북동 최첨단 스마트 홈 시스템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하고 있는 사이, 은랑은 소파에 털썩 주저앉으며 다리를 꼬았다."싫은데? 안 나갈 건데?“"뭐?""나 오늘부터 여기서 살 거야. 우리 주인님이 여기 계신다는데, 감히 수호신인 내가 자리를 비울 수는 없지.""수호신?"연이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은랑
10화. 저 오빠가 왜 여기서 나와?은랑의 시선이 연을 지나, 그녀의 손을 꼭 쥐고 있는 단의 손으로 옮겨갔다.혐오와 질투가 뒤섞인 소름 끼치는 살기가 고택의 공기를 압도했다.'주인님께서는 저 도둑놈이 구원받을 때까지, 주인의 피를 받은 가문을 지키라고 했지만...'은랑이 들리지 않게 으르렁거렸다."마음에 안 들어, 도둑놈. 우리 주인님의 힘을 빼앗은 도둑놈."은랑의 낮은 으르렁거림에 단은 연을 품에 단단히 안았고 서연은 단의 품 안에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뭐야? 저 오빠가 왜 여기서 나와? 여기 대체 뭐 하는 집이지?'"냄새 나는 도둑놈."은랑이 선글라스를 벗어 재킷 주머니에 꽂아 넣었다. 드러난 얼굴은 그야말로 화려함 그 자체였다.조명을 받지 않았음에도 자체 발광하는 백금발, 이국적인 이목구비, 그리고 사람을 홀리는 묘한 눈빛까지.대한민국 여성의 70%가 그를 배경화면으로 해놓았다는 전설의 아이돌, 그룹 더 울프의 리더 은랑이었다.'와우! 화면으로도 화려함의 극치였는데, 실물은 더 예술이네. 은랑을 이 거리에서 직관하다니...'하지만, 그의 눈빛은 팬 사인회에서 보여주던 그 달콤한 눈빛이 아니었다. 금방이라도 목덜미를 물어뜯을 듯한 적의가 단을 향해 꽂혀 있었다."......."단은 연을 안고 있던 팔을 풀지 않은 채, 천천히 고개만 돌려 무심하게 은랑을 바라보았다.마치 길 가다가 짖어대는 똥개를 본 사람처럼, 귀찮음과 불쾌함만이 서려 있을 뿐이었다."집 지키라고 마당에 풀어놨더니, 주인이 있는 안방까지 기어들어 왔군."단이 낮게 으르렁거렸다."나가라. 털 날리니까.""하! 웃기고 있네."은랑이 헛웃음을 치며 오히려 성큼성큼 거실로 들어왔다. 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야생 짐승 특유의 위압적인 기운이 바닥을 울렸다."여기가 네 집인 줄 알아? 천 년 동안 우리 신선님의 힘을 훔쳐서 쌓아 올린 가짜 성 주제에."'천 년? 훔친 힘? 가짜 성?'두 남자의 살벌한 기싸움 사이에서, 연은 눈을 깜빡였다.'재벌끼
9화. 너는 누구지?""보증서요? 뭐, 제작 시대로 보면 진품이기는 하죠. 하지만 격이 달라요. 여기 용 발가락 보세요. 왕실에서는 주로 오조룡을 새겨 넣어요.그런데 이건 오조룡처럼 보이지만 실은 사조룡이에요. 웬만한 감정사도 헷갈릴 만큼 정교하지만, 이건 왕실의 물건이 될 수 없습니다."연이 코를 막으며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그런데 이 거울, 나쁜 물질이 나오나 봐요. 라돈인가? 암모니아? 냄새가 너무 심해서 머리가 다 아프네요. 환기 좀 하셔야겠어요."연의 말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거울이 반응했다. 자신의 정체를 들켰다는 듯이.끼이이에에엑!거울 면에서 손톱으로 칠판을 긁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가 나더니, 갑자기 검은 연기가 확 피어올라 의뢰인을 향해 쇄도했다."으아아악!"의뢰인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졌다. 연의 눈에는 그 검은 연기가 유독 가스 누출처럼 보였다.가스가 뱀처럼 똬리를 틀며 의뢰인의 발목을 감으려 했다. 단이 눈을 찡그렸다. 그의 눈에는 흉측한 악귀의 손이 보였기 때문이다.연의 눈에는 20억짜리 불량품이 고객을 향해 유독 가스를 뿜어내는 것으로 보였다."어? 가스 샌다! 위험해!"연이 움직였다. 연은 신을 벗어들고, 망설임 없이 검은 연기를 향해. 아니, 거울을 향해 힘껏 내리쳤다.가스가 나오는 구멍을 막아버리겠다는 단순하고도 무식한 대처였다.챙!물리적인 타격과 함께 연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온 미세한 황금색의 빛이 신발을 타고 거울로 전해졌다.연은 자각하지 못했지만, 그것은 정화의 힘이었다.키에에엑!찢어지는 듯한 기계음과 함께 검은 연기가 사방으로 흩어지며 사라졌다. 거울을 감싸고 있던 검붉은 탁기가 순식간에 걷히고, 거울은 그저 평범한 골동품으로 변했다."허, 헉. 헉."연은 숨을 몰아쉬며 맨발로 바닥을 딛고 섰다. 가스의 영향인지 신발을 던진 단순한 행동을 한 것뿐인데 힘이 빠지고 다리가 후들거렸다.잠시 후 방 안의 악취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온기가 돌아왔다. "......."단은 그 모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