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화연이 말했다.“딸은 많이 아끼고 사랑해 줘도 괜찮아요. 오히려 사모님이 아이들에게 좀 더 엄격해서 서로 보완할 수 있어요.”유강후는 아이의 잠자는 자세를 편안하게 고쳐주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회의를 온라인으로 하자고 사무실에 전화해. 나 오늘 재택 근무할 거야.”아침 내내 회의하고 정오가 되었을 때 유강후는 서재에서 나왔다.방금 잠에서 깬 두 아이는 밀차에 앉아서 나왔다.유강후는 앞으로 다가가 뽀뽀하고 웃으면서 말했다.“엄마가 곧 수업이 끝나. 오늘 날씨도 시원한데 우리 함께 엄마한테 가자.”말하던 중 핸드폰이 울렸다.점심에 교수와 실험실 문제를 토론하느라 집에 밥 먹으러 오지 못한다는 온다연의 전화였다.유강후의 얼굴은 즉시 굳어졌다.온다연은 요즘 학업 때문에 바빠서 절반의 시간은 집에서 밥을 먹지 않았고 심지어 며칠 밤은 저녁 열 시가 넘어서야 집에 왔다.처음에 그는 참을 수 있었지만 나중에 그녀와 함께 토론하고 식당에서 함께 밥 먹는 사람이 얼마 전 귀국한 젊은 남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 일은 그를 몹시 질투 나게 했다. 여러 번 은근히 주의를 주었지만 온다연은 못 들은 척했다.오늘 그녀가 또 그와 학교에서 밥을 먹는다는 말을 들은 유강후는 화가 났다.그는 바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옷으로 갈아입고 얼굴도 산뜻하게 다듬은 후 두 아이를 밀고 집을 나섰다.“권아, 저번 주 내가 다연이를 주려고 구매한 차를 운전해 와, 그 차로 다연이 데리러 가자.”이권은 조금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오늘 날씨도 시원한데, 여기서 걸어도 십 분 거리예요. 걸어가는 것이 더 편리할 거예요.”유강후의 얼굴이 굳어졌다.“쓸데없는 말이 왜 이리 많아!”이권은 더 이상 말을 못 하고 그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오전 수업이 끝난 후 온다연과 그녀의 학과 선생님은 얘기를 나누며 식당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강의 동에서 나오니 온다연은 수많은 학생이 밖으로 몰려가는 것을 보았다.“너무 멋있어. TV보다 실물이 더 멋있어.”“난, 처음
젊은 교수는 서둘러 손을 내밀었다.“안녕하세요. 저는 조승현이라고 합니다.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유강후가 말했다.“우리 다연이가 학교에서 혹시 무슨 과학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했어요? 점심때 밥 먹으러 집에 오지도 않아요. 아주 큰 프로젝트라 매우 바쁘신가 봐요, 수고가 많으시네요.”그는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가볍게 말하는 것 같았지만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는 압도적이었다. 젊은 교수는 그 기세에 짓 눌려 몇 초간 어리둥절해 있더니 서둘러 말했다.“중요한 프로젝트는 아니고 학문적으로 의견이 달라서 점심 식사 후 팀원들이랑 토론하려고 해요.”유강후는 친절하게 웃으면서 말했다.“조 교수님이 귀국하신 지 얼마 되지 않으셨다고요? 국내에서 공부하셨나요? 아니면 해외에서 공부하셨나요?”조승현은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온다연의 구체적인 상황을 몰랐고 유강후의 상황도 몰랐다. 그는 젊고 학술상에서도 성과가 조금 있었기에 자연적으로 약간의 자부심이 있었다.유강후의 말을 들은 그는 어디가 잘못됐는지 이상하게만 느껴졌다.“해외에서 공부했어요. 그러나 국내의 학술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요.”“최근 과제에 작은 문제가 생겼어요. 진도를 따라가기 위해 모두가 휴식하는 점심시간을 이용했어요. 혹시 다연 학생에게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건가요?”유강후가 말도 하기 전 온다연은 그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만해요. 이분은 저의 선생님이에요. 저의 체면을 좀 세워주세요.”유강후는 딸을 안아 온다연에게 건네주며 말했다.“오늘 아이가 손을 다쳤는데, 넌 어떻게 됐는지 전화로 물어보지도 않았어.”그제야 온다연은 딸이 손목에 상처가 난 것을 발견했다. 그 위에는 커다란 밴드가 붙어있었다.온다연은 서둘러 아이를 안으며 말했다.“왜 이렇게 된 거예요?”유강후가 말했다.“유리 파편 위에 넘어졌어. 다희야, 엄마에게 뽀뽀해 줘.”아이는 예쁜 눈동자로 온다연의 품에서 꼼지락거리며 애교를 부렸다.온다연은 마음이 아파 그 상처에 뽀뽀하
온다연은 머뭇거리며 유강후를 바라보았다.“식당이 너무 붐벼요. 아니면...”유강후는 웃으면서 부드럽게 말했다.“괜찮아. 학창 시절 생각도 나고 얼마나 좋아. 여기 식당 음식이 맛있다고 들었어. 우리 함께 먹어보자.”그는 고개를 숙여 온다연의 귓가에 속삭였다.“아내가 사업이 바쁘면 남편이 아내 뒤를 따라다녀야지.”그의 태도는 매우 다정했다. 조승현이 옆에 함께 있었기에 온다연은 재빨리 뒤로 물러서며 수줍은 목소리로 말했다.“강후 씨, 여긴 학교예요. 게다가 저의 선생님도 있어요.”그녀의 이 행동에 유강후는 눈빛이 차갑게 변했지만, 말투는 여전히 부드러웠다.“선생님이 이 자리에 있든 없든 다연이 넌 나의 아내야.”말하며 온다연의 손을 잡고 식당으로 향했다.그 자리에 굳어버린 조승현을 보고 그는 발걸음을 멈췄다.“조 교수님도 함께 가지 않으실래요?”조승현은 난감했지만 뒤따라갈 수밖에 없었다.이곳에서 식당까지는 십 분 거리였다. 식당에 도착할 때까지 조승현과 온다연은 과제를 얘기했다. 어느새 또 유강후를 냉대했다.유강후의 눈빛은 싸늘해져 가고 있었다.식당에 들어서자 온다연은 습관적으로 선생님의 건너편에 앉았다.그녀는 자리에 앉은 후 옆에 유강후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고개를 돌려보니 유강후가 문 앞에 서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그의 눈빛은 침울했고 마치 화가 난 듯했다. 그녀는 그의 이런 눈빛을 오랫동안 본 적이 없었다.그녀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을 하려고 하는데 유강후가 스스로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그는 평온한 표정으로 온다연의 옆에 앉으며 겉옷을 벗었다.온다연은 그의 옷을 받아진 후에야 이곳이 집이 아니란 것이 생각났고 옷을 걸어 둘 곳이 없어 의자 등받이에 놓았다.“뭘 먹을래요? 제가 사 올게요.”유강후는 차분하게 말했다.“같은 거로 먹을게.”이때 또 다른 학생이 와서 조승현과 몇 마디를 주고받은 후 웃으면서 조 교수가 먹을 음식을 사러 가겠다고 말했다.테이블에는 유강후와 조승현만 남았다.방금 그 남학생이 떠난
유강후가 고개를 들어보니 교장이 그를 향해 다급히 걸어오고 있었다.몇 걸음 만에 그들의 테이블 앞에 도착했다.“방금 누군가 대표님이 교내 식당에서 식사하신다고 해서 저는 그들이 농담하는 줄 알았는데 진짜였네요.”유강후는 웃으면서 말했다.“제 아내가 학업이 바빠서 집에 밥을 먹으러 올 시간도 없어요. 며칠 동안 제 아내랑 함께 밥을 먹지 못해서 제가 학교에 찾아왔어요.”학교에 수업이 많은 탓에 온다연이 바빠서 집에 올 시간도 없다는 뜻이었다.그의 말뜻을 알아들은 교장은 서둘러 대답했다.“학원 수업이 그렇게 빠듯하지 않은 것으로 기억해요. 대표님 집이 학교 근처라 집에 돌아갈 시간이 없을 정도로 빠듯하지 않아요.”유강후는 아주 담담하게 웃었다.“그들이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나 봐요. 제 아내가 매우 바쁘네요. 홍교장님, 학교에 과제가 너무 많은 건 아닌가요? 너무 바빠서 제 아이가 엄마를 못 본 지 며칠 되였어요.”그는 농담하며 말했다.“이러시면 앞으로 귀 학교의 실험실에 감히 투자할 수가 없어요.이건 제 발등을 찍는 일이에요.”비록 그는 웃고 있었지만 교장은 그의 눈길에서 싸늘함을 느꼈다.유강후는 학교 과학 연구 프로젝트의 큰 투자자로서 툭하면 그들 학교에 많은 금액의 돈을 투자하기에 홍교장은 감히 그의 미움을 살 수 없었다.“아니에요. 작은 과제만 있을 뿐이에요. 바쁘지 않아요.”시선이 조승현의 얼굴을 스쳐 지나간 유강후는 웃으면서 말했다.“귀 학교의 선생님은 정말 젊고 유능해요. 젊음이 좋아요, 활력이 넘쳐서 새로운 과제도 많이 개발하네요.”말투에는 경고의 의미가 가득했다.교장은 손바닥에 땀이 났지만 웃으면서 말했다.“아무리 젊다 해도 대표님만큼 젊고 유능하지 못해 정말 황송합니다.”몇 마디를 주고받은 뒤 세상 물정에 훤했던 교장은 이미 유강후의 뜻을 이해했다.이때 식판을 들고 돌아온 온다연은 교장이 있는 것을 보고 놀라서 말했다.“교장 선생님은 여기 어쩐 일이세요? 오늘이 임시 검사가 있는 날인가요?”교장이 대답했
유강후는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아니야. 너랑 며칠 동안 함께 밥을 먹지 못해서 보러 온 것뿐이야. 나를 오해하지 말아줘.”온다연은 화가 나서 말했다.“우리가 과제 내용을 토론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 몇 분에 한 번씩 우리를 방해했어요. 우리는 10분 동안 제대로 토론하지도 못했어요. 일부러 그런 거죠!”그녀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멀쩡한 계획이 모두 엉망이 되었다. 그녀는 그가 밥을 먹으면서 젓가락을 네 번 떨어뜨리고 음료수를 세 가지나 먹어야 한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그는 분명 일부러 그런 것이다.“이럴 거면 학교에 저 데리러 오지 마세요!”그녀는 너무 화가 나서 언성이 높았다. 비록 말투는 부드럽지만, 분명히 화를 내고 있었다.안색이 어두워진 유강후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아니야. 처음 교내식당에서 밥 먹는 거라 습관 되지 않아서...”그도 섭섭함이 있었다.“며칠 동안 넌 나랑 함께 밥 먹은 적이 없어. 매일 아침에 문을 나서면 밤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오고, 가끔은 네가 돌아왔을 때 아이들이 이미 잠들었어. 그리고 아이들이 깨기도 전에 넌 또 이미 나가버렸어.”“오늘 다희가 손을 상해서 피가 나고 안에 유리 파편도 박혔어. 그래서 파상풍 주사를 맞고 한참을 울었길래 엄마가 보고 싶을 것 같아서 다희를 데리고 너를 보러 온 거야.”마음이 아팠던 온다연은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지만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다.유강후는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다연아, 지금 넌 나와 말할 때 말투가 점점 나빠지고 있어. 그래서 사람들은 좋은 면을 낯선 사람에게 보여주고 나쁜 면을 친한 사람에게 보여준다고 말하는 거였어. 넌 나를 점점 더 무시해.”“네가 젊고 나보다 여덟 살 어리다는 것을 알아. 내가 나이도 좀 많다 보니 나를 답답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알아. 그러나 나는 너를 탓하지 않아, 모두 내 잘못이야. 앞으로 나와 아이들은 너를 방해하지 않을게.”그는 몸을 돌리고 말했다.“나 먼저 갈게. 내가 아이를 잘 돌볼 거니 넌 가서 너의 과제에 참
서재에 들어가 보니 유강후는 회의하고 있었다.평소와 다르다면 이번에 그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분명히 그녀의 발소리를 들었지만 일부러 모른 척하며 계속 건너편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온다연은 입술을 깨물고 다가가 화상회의를 차단해 버렸다.그녀를 보고 안색이 어두워진 유강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온다연은 그의 앞에 서서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화났어요?”유강후는 고개를 들지 않고 오직 컴퓨터 속의 주식 흐름도를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아니야. 네가 공부를 좋아하는 건 좋은 일이야. 나와 아이들이 너를 방해하지 말아야 했어, 오늘은 내 잘못이야.”온다연은 그가 여전히 화가 나 있다는 것을 알고 앞으로 다가가 그의 팔을 붙잡고 흔들면서 말했다.“제가 이젠 돌아왔으니 화내지 말아요.”눈살을 찌푸린 유강후는 표정이 굳어있었다.온다연은 이를 악물고 앞으로 다가가 그의 다리에 앉은 후 팔을 잡아당겨 자기 허리를 감쌌다.고개를 들어 그의 입술에 뽀뽀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래도 안 돼요?”그녀는 말하며 부드러운 손을 그의 옷 속에 넣어 허리를 가볍게 어루만졌다.유강후는 아랫배를 움츠리며 숨을 들이마셨다.그녀에 대한 욕구가 워낙 큰 데다 요즘 두 사람은 제대로 함께 지내지 못했기에 유혹을 이겨내기가 힘들었다.하지만 그는 꾹 참았다.그녀의 가느다란 손목을 잡아 내밀고 잔잔한 목소리로 말했다.“나 좀 피곤해. 너 먼저 가서 쉬어.”처음 그에게 거절당한 온다연은 마음이 아팠다. 예전 같으면 벌써 화가 나서 도망갔지만 지금은 그저 그를 달래고 싶었다.손으로 그의 목을 감싸고 부드럽게 말했다.“아저씨, 제가 잘못했어요.”안색이 어두워진 유강후의 마음속에는 욕망이 범람하기 시작했지만 그는 여전히 표정이 차분했다.“아니야. 네가 공부를 좋아하는 것도 좋은 일이고 친구와 선생님과 친해지는 것도 좋은 일이야. 내가 응당 너를 응원해야 해.”말을 마치고 그녀의 손을 잡아당겨 안아서 한쪽에 내려놓았다.“나 아직 중요한 회의가 있어서 함께할
온다연은 이제 더 이상 계속할 수가 없어서 그의 다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원래 그녀는 무언가를 말하고 싶었지만 유강후의 눈은 컴퓨터를 바라보며 그녀에게 시선을 조금도 주지 않았다.그의 모습을 본 온다연은 실망했고 매우 슬펐다.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치맛자락을 정리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당신이 일하는 데 방해해서 미안해요. 저는 아이들 보러 갈게요.”그녀는 말을 마친 후 돌아서서 문을 향해 걸어갔다.그런데 온다연이 막 문 앞에 도착했을 때 유강후는 갑자기 일어나 그녀의 앞에 다가와 그녀를 문 앞에 기대어 세웠다.유강후는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숙여 그녀의 귓불을 깨물었다.“어디 가려고?”뜨거운 기운이 온다연의 목덜미에 닿으며 그녀의 몸을 뜨겁게 만들었다.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눈에 눈물이 글썽거렸다.“이거 놔요, 바쁘다면서요.”유강후는 콧방귀를 뀌고 한 손으로 그녀를 안아 책상 위에 앉혔다.그는 고개를 숙여 강하게 그녀의 입술에 키스했다. 그리고 한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붙잡고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손을 잡아당겨 자신을 향해 누르게 했다.그 움직임과 온도는 온다연이 바로 전에 경솔함을 후회하게 했다.지금 두 사람은 조화롭게 잘 맞았지만 매번 인트로는 여전히 적응이 안 되었다.마치 작은 사이즈의 신발에 강제적으로 큰 사이즈의 신발을 끼워 넣은 것처럼 터질듯한 느낌이 들었다.다행히 그는 지금 인내심이 생겨 그녀에게 충분한 시간을 허락해 주었다. 천천히 그녀도 가끔 주동적으로 움직였다.하지만 온다연에게는 심리적인 즐거움이 생리적인것보다 컸다. 때로는 편안하지 않고 견디기 힘들 때도 있다.그러나 매번 그 사람이 유 강 후인 것을 볼 때마다 그의 땀에 젖은 머리카락과 통제 불능의 얼굴을 보면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흥분해서 몸이 떨리고 척추까지 시큰거릴 정도로 편안했다.그 사람이어야만 했고 오직 그 사람뿐이었다.그는 그녀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고 그녀의 독이자 해독제이다.그의 낙인은 이미 그녀의 영혼에 깊이 새겨져 있
얼굴이 빨개진 온다연은 그 얼룩의 일부가 자신의 것이라는 것을 감히 인정할 수 없었다.“당신 탓이에요. 제가 싫다고 했는데...”유강후는 바닥의 얼룩을 닦은 후 그녀를 안아 자신의 몸 위에 앉히고 얼굴에 뽀뽀하며 말했다.“응? 이제 힘이 빠지니 내 탓을 하는 거야?”“아까 누가 멈추지 말라고 하지 않았어?”온다연은 얼굴이 빨개서 터질 것만 같았다.“그만 말해요!!!”그녀는 바닥에 찢긴 치마를 보고 손으로 눈을 가렸다.“우리 둘 다 이젠 옷이 없는데, 어떻게 나가야죠?”유강후는 전혀 개의치 않아 했다.“그게 뭐가 어려워?”말을 마친 후 그는 어디론가 문자를 보냈다.얼마 후 누군가 문을 두 번 두드렸다.유강후는 다가가 문을 열고 옷 두 벌을 들여왔다.그들이 옷을 입은 후 유강후는 온다연을 안고 욕실로 들어갔다.유강후는 지쳐서 졸고 있는 온다연을 씻겨준 후 안아서 안방으로 데려갔다.그녀는 몸에 힘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나른했지만 유강후는 마치 배가 부르지 않은 것처럼 그녀의 위에서 키스했다.온다연은 그를 밀어내려고 했지만 유강후는 그녀의 허리를 조르며 풀어주지 않았다.“며칠 동안 넌 줄곧 나를 차갑게 대했어. 오늘은 네가 주동적으로 나를 유혹했으니, 네가 저지른 불을 네가 책임지고 꺼줘.”말을 마친 그는 그녀의 다리를 벌려 안으로 삽입해 넣었다.유강후는 이번에 매우 부드럽고 자상하게 행동했으며 조금 전 강력한 약탈과 달랐다. 온다연은 비록 지쳤지만 자신도 모르게 그를 껴안았다.마음의 의지가 생리적인 수요보다 컸다.그들은 서로에게 끈질기게 매달렸다. 그래야 상대가 온전히 자기 소유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 것 같았다.얽혀서 그치지 않았다.얼마 후 입구에서 문고리를 붙잡는 소리가 들려왔다.“야야.”여린 목소리가 문틈을 비집고 들어왔다.장화연이 밖에서 말했다.“도련님, 사모님, 작은 아가씨가 문을 잡고 있는데 들여보낼까요?”온다연은 놀라서 서둘러 유강후를 밀어냈다.유강후는 그녀의 손을 붙잡고 부드럽게 그녀와 사랑을 나
지예솔이 다른 것을 물어보기도 전에 그는 계속 말했다.“걱정하지 마. 봉현수는 아직 내가 귀국 한 걸 몰라. 내가 새로운 이름과 신분을 바꿨고 또 경원시에 돌아가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있어.”지예솔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여기는 어떻게 찾은 거예요?”정연석은 그녀의 부드러운 얼굴을 보고 마음속에 깊은 미련이 남아있었다.“솔아, 넌 나한테 그렇게 신뢰가 가지 않았어? 그렇게 큰일이 생겼는데 왜 나한테 연락하지 않았어?”지예솔이 말했다.“저는 원래 모든 일이 잠잠해지면 예전의 친구들에게 연락하려고 했어요. 연석 오빠가 찾아올 줄을 몰랐어요. 예전에 이미 많은 폐를 끼쳤기 때문에...”정연석은 마음이 아팠지만 얼굴에는 가벼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폐를 끼치고 말고가 어디 있어? 너도 전에 나를 도와줬던 것이 기억이 안 나?”지예솔이 말했다.“제가 도와준 것은 모두 작은 일이에요. 게다가 매번 제가 도와준 후 현수 씨가 찾아와서 괴롭혔잖아요.”정연석이 웃으면서 말했다.“맞다. 아직 너랑 말하지 못한 게 있어. 이번에 귀국하고 다시 외국에 가지 않으려고 해. 최근 나는 운산시에 머물면서 이쪽 시장 상황을 둘러보고 적절하다면 본사를 이쪽으로 옮길 생각이야.”지현우는 갑자기 몸을 돌리며 말했다.“연석이 형, 운산시에서 회사를 차릴 생각인가요?”정연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나는 수출입 무역을 하는 사람이라 2년 사이에 과일도 수출해 볼 생각이야. 내가 전에 2년 동안 조사해 봤는데 이곳은 과일 시장이 좋고 발전 전망도 커. 그런데 시장 조사를 위해 이곳에 왔을 때 우연히 너희들의 사진을 보게 될 줄을 몰랐어.”그는 핸드폰을 꺼내 사진 한 장을 찾아냈다.“이건 내 친구가 저번 주 이곳에 과일나무 보러 왔다가 우연히 찍은 거야.”사진 속에는 지예솔과 지현우가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물건을 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하늘이 어두웠지만 지예솔의 그 얼굴은 유난히 눈에 띄어 사람들의 주의를 끌 수밖에 없었다.지예솔은 안도의 숨
지예솔은 고개를 흔들었다.“아닐 거야, 단지 개발부만 왔을 거야·현수 씨는 이런 산업을 많이 하고 있으니 직접 오지는 않았을 거야.”지현우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그러면 됐어.”저녁이 될 무렵 마당 입구에 갑자기 검은색 벤츠 두 대가 와서 멈추어 섰다.이 마을에는 이런 고급 차가 거의 오지 않았다. 차가 갑자기 문 앞에 멈추는 것을 본 지현우는 깜짝 놀라서 문을 닫으려고 하자 차에서 한 사람이 내렸다.검은색 외투를 입은 그 사람은 키가 크고 잘 생겼으며 은색 테두리 안경을 쓰고 있어 매우 점잖게 보였다.지현우는 잠시 어리둥절해 있다가 곧 놀라 소리를 질렀다.“연석이 형?”알고 보니 몇 년 동안 소식이 없었던 정연석이었다.정연석은 웃으면서 말했다.“현우 키 컸네.”지현우는 달려가 정연석을 끌어안고 기뻐서 울었다.“연석이 형, 몇 년 동안 어디에 계셨어요?”정연석은 대답 대신 그의 어깨를 툭 치면서 웃었다.“곧 스무 살이 다 되어가는 애가 왜 아직도 이리 어린아이 같은 거야? 너의 누나가 또 뭐라고 하겠어.”이때 인기척 소리를 듣고 나온 지 예술은 정연석을 멍하니 바라보았다.달빛이 흐릿한 어둠 속에서 그녀는 그저 평범한 검은색 패딩을 입었지만 그 얼굴은 여전히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웠다.정연석은 그녀를 보고 눈빛이 어두워졌으나 곧 정신을 차리고 웃으면서 말했다.“여러 곳을 찾아다니다가 겨우 찾았어.”지예솔은 문 앞에 서서 조용히 그를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지현우는 기뻐하며 말했다.“밖이 추워요. 곧 비도 올 거 같으니 얼른 들어와요, 연석이 형.”정연석은 트렁크를 열고 말했다.“현우야, 와서 도와줘.”또 다른 차의 문도 열리자 두 명의 비서가 내려오더니 물건을 함께 집안으로 옮겼다.잠시 후 두 차의 물건을 모두 옮겨 거실에 가지런히 쌓았다.정연석은 다른 차를 돌려보내고 혼자 남았다.지현우는 흐뭇해서 그 물건들을 지켜보았고 그들이 필요한 좋은 물건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가볍고 부드러운
“넌 이쁘고 이런 그림도 그릴 줄도 아는데, 이렇게 좋은 여자아이가 왜 아직도 남친이 없는 거야? 아니면 이모가 남자 친구 한 명 소개 해줄게...”정신을 차린 지예솔은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이모, 그러실 필요 없어요, 전 아이를 낳을 수 없어서 결혼을 못 해요.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되죠.”그녀가 집에 돌아온 반년 동안 중매를 하러 온 사람이 많았다. 심지어 외숙모들도 그녀를 설득하면서 자신의 조카를 한번 만나보라고 했다. 그녀는 그 사람들이 더 이상 찾아오지 않게 하려고 애를 낳을 수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장미연은 아쉽다는 듯 말했다.“아이고! 넌 이쁘게 생기고 성격도 좋은데, 만약 이런 문제가 없다면 며느리로 들이고 싶었는데...”장미연은 채소 바구니에 담긴 채소를 꺼냈다.“여기엔 방금 뜯은 채소야, 무와 배추 뭐 이런 것들이 있어. 그리고 달걀도 금방 주운 거야. 밖에서 사 먹는 것보다 나으니 가져다 먹어. 너의 남매는 절약하느라 채소도 별로 사지 않는 것 같더구나.”“가련한 것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이 집안의 모든 가구도 중고 시장에서 사 온 거고…”“밖에 고기를 파는 노점상이 너희가 매번 고기를 반 근만 산다고 했어. 게다가 매일 사서 먹는 것도 아니라며, 이렇게 큰 성인들이 그것으로 먹자면 부족하지 않아?”...한동안 수다를 떨던 장미연은 끝내 떠났다.지예솔은 한참 넋이 나가 있다가 지현우에게 말했다.“현우야, 그 차가 정말 봉씨 그룹의 것인지 가서 한번 보고와.”지예솔은 스쿠터를 타고 떠나려는 지현우를 붙잡고 말했다.“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가.”지현우가 말했다.“누나, 그렇게 조심할 필요 없어. 반년도 지났어, 아마 우리를 찾는 걸 포기했을 수도 있어. 며칠 전 연예 뉴스를 봤는데 그 주연아란 연예인이 또 새로운 영화를 찍었어.”“그런 연기력으로 이렇게 큰 투자가 들어간 영화의 주인공 역을 맡은 걸 보면 현수 형이 투자한 것일 거야. 주연아는 자신이 현수 형과 죽마고우이며 약혼할 것이라
봉현수가 말했다.“그러지 않을 거야, 이번엔 반드시 철저히 조사할 거야.”비슷한 시각 남쪽의 읍내 마을에서 지예솔과 지현우가 정원에서 바삐 일하고 있었다.작은 정원이 딸린 농가는 반년의 시간을 거쳐 제대로 리모델링되었다.원래 낡았던 벽돌담은 다시 흰 페인트를 칠했고 진흙투성이였던 앞마당은 절반을 낡은 벽돌로 메웠으며 나머지 절반에는 채소를 조금 심어서 깔끔하고 생기가 넘쳐흘러 보였다.벽 쪽에 있는 몇 그루의 과일나무에는 겨울 대추와 감귤 그리고 감이 가득 달려서 열매들이 나뭇가지를 무겁게 누르고 있었다. 무거운 짐을 짊어질 필요가 없는 기분 좋은 느낌을 주었다.집안도 다시 페인트를 칠했고 집에 쓸 수 있는 나무 가구도 다시 다듬어서 칠했다. 중고 시장에서 구매해 온 오래된 가구는 지현우가 사포로 갈아서 페인트를 새로 칠했더니 꽤 괜찮아 보였다.당연히 지씨 가문의 환상적인 럭셔리와는 비교할 수 없었지만 남매 둘 다 마음이 편안하고 안심이 되었다.작은 마을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일하러 나갔고 외부인들도 적었다. 하지만 인터넷과 택배는 도시와 별 차이가 없어서 남매는 큰 불편을 느끼지 못했다.지현우는 마을의 중고 시장에서 몇백만 원을 주고 중고 승합차를 샀다. 가끔 지예솔과 함께 승합차를 타고 읍내에 생활용품을 사러 나갔다.천천히 남매는 느린 템포의 마을 생활에 적응했다.지현우는 원래 읍내에서 일자리를 찾고 싶었지만 대학 졸업장을 아직 받지 못했고 심장병도 있는 데다 봉현수에게 실마리라도 들 키울까 봐 연말까지 집에 머물면서 다시 생각해 보려고 했다.요즘 남매는 온라인 액세서리 가게에서 서서히 주문을 받고 있다. 비록 많이 벌지는 못하고 제일 큰돈도 몇만 원 밖에 안되지만 이는 남매에게 좋은 시그널이었다.지예솔은 오늘 또 다른 주문을 받았는데 재료비를 제외하고도 몇만 원 정도를 더 벌 수 있어서 매우 기뻤다. 이른 아침부터 마당에서 그림을 그리면서 도면을 수정했다.점심쯤 정원의 문이 열리더니 이웃인 장미연이 채소 한
잠시 후 봉현수가 나왔다.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온 그는 비록 야위어 보였지만 적어도 사람같이 보였다.유강후는 테이블 위에 음식을 가리키며 말했다.“먼저 밥부터 먹어.”봉현수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먹고 싶지 않아. 지금 바로 예솔이 엄마의 산소에 가봐야 해.”유강후가 말했다.“내가 이미 사람을 보냈어. 조금 있으면 소식이 올 거야, 먼저 밥 먹고 있어. 네 모습 좀 봐봐. 찾았다고 해도 정연석이 그 자리에 있으면 주먹 하나로 너를 이길 수 있어.”봉현수는 대충 몇 입만 먹고 가려고 했다. 그러나 너무 오래 제대로 식사하지 않은 탓에 몇 걸음을 가지 못하고 체력이 달려서 곧 쓰러질 것만 같았다.유강후는 어쩔 수 없이 그를 데리고 병원으로 가서 전면 검사를 받았다.검사를 받고 보니 장기 음주한 탓에 위에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게다가 몸에 있는 상처들을 제때 치료하지 않아 일부는 염증이 생기고 헐어서 입원 치료가 필요했다.이런 말을 들을 기분이 아니었던 봉현수는 주삿바늘을 뽑자마자 가려고 했다.유강후는 그에게 경고했다.“치료를 받지 않는다면 예솔 씨를 찾는다고 해도 소용없어.”그는 사람을 시켜 거울을 가져오라 하고 봉현수를 거울 앞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지금, 이 거짓꼴을 봐봐, 어딜 봐서 사람 같아 보여?”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본 봉현수는 멍해졌다.거울 속의 남자는 말라서 모양이 빠졌고 이전에 건장했던 몸매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몇 달 전 산 셔츠는 마치 빌려서 입은 옷처럼 헐렁하게 몸에 걸쳐있었다.얼굴은 여전히 그대로였으나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고 눈언저리가 푹푹 꺼져 들어가 있었다.머리는 너무 오래 정리하지 않은 탓에 스타일이 하나도 없었다.“내가 왜 이렇게 된 거야?”봉현수의 비서인 안시현이 말했다.“대표님, 최소 30근은 빠지셨어요. 사람이 달라 보여요.”“제가 지금 바로 가서 몸에 꼭 맞는 옷을 사 올게요.”봉현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오직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보고 넋이 나가 있다가 한참 후에야
봉현수의 얼굴은 점점 더 창백해졌다.‘그 당시 나는 솔이를 다치지 않았지만, 온몸이 항상 상처투성이였어. 그 사람들이 한 짓인가? 그러나 솔이는 왜 나한테 말하지 않았을까?’“하지만 나와 헤어졌다고 하여도 바로 정연석이랑 함께 있으면 안 되는 거야.”유강후는 실망스러운 듯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아직도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니, 넌 정말 구제 불능이야. 예솔 씨는 너에게 괴롭힘을 당해 죽을 지경에 이르렀고 또 아픈 동생까지 데리고 있었어. 오직 정연석만이 그녀에게 잘해줬고 도움을 줄 수 있었어. 예솔 씨가 정연석의 호감을 받아들이는 건 당연한 거 아니야? 아니면 동생이 죽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어야 해?” “나는 아직도 기억에 남는 일이 있어.”“그해는 너의 생일이었어. 우리가 호텔에서 너의 생일을 축하해줬는데 중간에 주연아가 왔어. 넌 일부러 사람들 앞에서 예솔 씨를 난처하게 하면서 화나게 하려고 했어. 너는 그때 예솔 씨에게 기어 와서 술을 마시라면서 너무 지나치게 괴롭혔었지, 누가 너처럼 그렇게 사람을 괴롭혀?”봉현수는 중얼중얼 말했다.“솔이는 돈을 위해서 그랬어. 나에게 거액의 돈을 빌려달라고 했어...”유강후가 말했다.“그래서 빌려줬어?”봉현수는 머리를 잡고 고개를 저었다.유강후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그러면 네가 지금 이렇게 돼도 싼 거야. 그때 그렇게 싸운 상황에서 예솔 씨가 너에게 돈을 빌려 달라고 했던 건 너에게 희망을 품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돈이 간절히 필요했다는 거야. 네가 예솔 씨에게 돈을 주지 않았다면 분명 정연석이 돈을 빌려줬을 거야.”“네 손으로 직접 예솔 씨를 밀어낸 거지.”“현수야, 네가 지금 여기서 죽든지 말든지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아, 예솔 씨는 볼 수 없으니까.”“그 정력이면 예솔 씨를 찾으면서 그때 일을 다시 한번 조사해 봐. 오직 그때 일을 낱낱이 파헤쳐서 밝혀야 모든 오해가 풀릴 수 있고 화해할 기회도 있어. 그렇지 않으면 전혀 기회가 없어.”“아니면 찾아서 뭘 할 건데? 계속 죽을 때
봉현수는 무기력해서 말했다.“차라리 거지였으면 좋겠어. 제정신이 아니라면 마음이 지금처럼 힘들지는 않을 거니까. 나는 솔이가 지금 내가 모르는 어딘가에서 다른 남자와 함께 있다고 생각하면 세상이 끝난 것만 같아.”“함께 지옥에나 가라!”자포자기하는 봉현수의 모습을 본 유강후는 퉁명스럽게 웃으면서 샤워기를 들고 그를 향해 마구 물을 뿌렸다.“얼른 죽어버려. 예솔 씨가 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곧 돌아올 거야. 네가 남겨준 재산으로 너의 별장에서 기생오라비들과 함께 매일 같이 술을 먹고 애도 낳아서 행복한 삶을 살 거야.”봉현수는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고 중얼중얼 말했다.“네 말이 맞아. 이미 반년이란 시간이 흘렀어. 아마 솔이 옆에는 다른 사람이 있을 수도 있어.”유강후는 투지가 전혀 없는 봉현수의 모습을 보고 화가 나서 그를 또다시 한번 발로 찼다.“일어나!”“예솔 씨가 진짜 결혼했다면 넌 포기 할 수 있어? 만약 포기할 수 있다면 이 죽을상은 누구에게 보여주려고 그러는 거야?”“예솔 씨 옆에 다른 사람이 생겼다면 너도 가서 다른 사람을 만나. 서로 각자 자신의 갈 길을 가면서 서로에게 미련 버려.”“안, 안돼!”봉현수는 일어나 앉으며 말했다.“솔이가 결혼하고 애를 낳았다고 하여도, 나는 솔이를 내 곁으로 돌아오게 할 거야.”유강후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이미 반년도 지났어. 만약 예솔 씨가 결혼했다면 너는 가정 파괴범이라도 될 생각인 거야?”봉현수의 몸은 굳어져 버렸고 눈빛은 마치 넋 나간 듯 어두웠다.“아닐 거야. 솔이는 나 이외의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했어.”유강후는 일부러 그를 자극했다.“너한테 그렇게 학대받았는데 아직도 너를 사랑한다고? 사랑한다면 애초에 도망을 왜 갔겠어?”유강후의 말에 어리둥절해진 봉현수는 얼굴이 더욱 창백해졌다.“아니야, 솔이는 나를 속이지 않을 거야. 절대 속이지 않겠다고 나랑 약속했어.”유강후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을
현관 앞에 서 있던 몇몇 사람들이 유강후를 보자마자 마치 구세주라도 만난 듯 반색하며 달려들었다.“유 대표님, 드디어 오셨네요. 봉 대표님이랑 봉씨 가문이 지금 엉망진창이에요. 대표님은 안에서 안 나오고 우리한텐 들어오지도 말라고 하니 정말 죽을 지경입니다.”유강후는 굳게 닫힌 대문을 바라보며 얼굴을 찌푸렸다.“문 열어.”그러자 집사가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열쇠가 저한테 없어요. 대표님이 직접 챙겨가셨어요. 누구든 들어오려고 하면 때려죽이겠다고 하셨어요.”유강후는 차가운 눈빛으로 쏘아붙였다.“이딴 식으로 손 놓고 있다가 진짜로 저 안에서 죽기라도 하면 책임질 거야? 당장 열쇠 따는 사람 불러와.”“네. 지금 바로 부르겠습니다!”곧이어 자물쇠를 따는 기술자가 도착했고 특수 잠금장치가 되어 있던 그 문을 여는 데 엄청난 시간이 걸렸다.잠금장치가 풀리는 순간 유강후는 힘껏 문을 발로 차서 열어젖혔다.문을 여는 동시에 코를 찌르는 역한 냄새가 밀려왔다.술 냄새, 곰팡냄새, 그리고 피비린내까지... 도저히 숨쉬기 힘들 지경이었다.유강후는 얼굴이 굳은 채 거실을 훑어보았다.거실 안은 술병과 깨진 도자기 조각으로 아수라장이었고 소파 옆 바닥엔 사람이 하나 쓰러져 있었다.죽은 건지 산 건지도 알 수 없었다.유강후는 바닥의 술병을 발로 밀어내며 다가갔다. 그리고 그 사람을 발끝으로 툭 찼다.“죽었어?”바닥에 누운 사람이 조금 움찔하더니 갑작스러운 빛에 눈이 부신 듯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거칠게 욕설을 내뱉었다.“씨X... 누가 들어오래? 다 꺼져!”그가 얼마나 엉망이 되었는지 확인한 유강후는 헛웃음을 터뜨리며 다시 발로 툭 찼다.“죽긴 뭐가 죽어. 안 죽었으면 일어나. 이 자식아.”비로소 얼굴을 들어 유강후를 확인한 봉현수는 욕을 내뱉으며 다시 바닥에 쓰러졌다.“차라리 죽는 게 나아요. 일어날 기운도 없어요.”유강후는 싸늘하게 받아쳤다.“정말 죽고 싶으면 한강 다리 밑으로 데려다줄까? 여기서 죽으면 집만 더럽혀.”몇 달 만에
유강후는 온다연의 창백한 얼굴을 보며 안타깝게 말했다.“이런 여자랑 그렇게 길게 말할 필요 없어. 온준휘 엄마에 대한 걸 알고 싶으면 그냥 바로 로운한테 넘기면 돼.”온다연은 고개를 저었다.“솔직히 사람 마음이 이렇게까지 썩을 줄은 몰랐어요. 우리 엄마 돌아가시기 전까진 겉으로는 저한테 잘해주는 척했거든요. 근데... 설마 내 출생의 비밀을 알고 있었고 내가 온준용이 동남아에서 데려온 아이란 것도 알고 있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어요...” 그녀는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은 듯 고개를 떨궜고 유강후에게 안기며 얼굴을 그의 코트에 묻으면서 깊은 한숨이 내쉬었다.유강후는 그녀를 부드럽게 감싸안고 외투를 열어 온다연을 안쪽으로 감쌌다. 그러고는 옆에 서 있던 비서에게 말했다.“다희랑 단오 데리고 들어가서 아버지 뵙게 해. 나는 좀 이따 들어갈게.” “네, 대표님.”아이들이 병실로 들어간 뒤 유강후는 온다연을 품에 안은 채 차 안으로 데려갔다.온다연이 겪었던 모든 고통은 이제 유강후의 가슴속 깊이 새겨진 상처이자 죄책감이 되었다.그는 수도 없이 바랐다.‘시간이 되돌려질 수 있다면 어린 시절의 다연 곁으로 돌아가 직접 품어주고 상처 입은 다연을 안아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지만 시간은 누구도 기다려주지 않았고 그는 앞으로의 시간으로 그녀를 보살펴주고 보상해 줄 수밖에 없었다.병원을 나서자마자 유강후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봉현수의 비서였다. “유 대표님, 이쪽으로 와주실 수 있을까요? 저희 대표님 상태가 심각합니다. 저희로서는 도저히 감당이 안 돼서요.”그제야 유강후는 자신이 몇 달째 봉현수를 보지 못했다는 걸 떠올렸다.“무슨 일인데요?”상대방 목소리는 다급하기 짝이 없었다.“대표님께서 자택에 자신을 가둔 지 벌써 2주째예요. 몸에 상처도 심각한데 치료도 거부하고 약도 안 드세요. 지금은 아예 일주일째 방문도 안 열어줘요. 계속 두드려도 아무 반응이 없고요...”“주소 보내.” “그... 영운산에 있는 별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