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이번 회차는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내용이 다수 포함되어 있으니 이용 시 유의 바랍니다.
“당장 옷 벗어.”
“......싫어요.”
여전히 바닥에 넘어진 채인 그녀가 잔뜩 겁에 질린 음색으로 대답했다. 아내의 태도에 눈빛이 돌변한 남잔 말없이 여자의 몸을 일으켜 세웠다.
“남편의 말을 거스르는 건 상스러운 행동이라고 했을 텐데.”
맥없이 끌어올려진 몸이 다시 바닥으로 나뒹굴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교주와 신자 두 명은 그저 남자의 일방적인 폭력을 지켜보기만 했다. 표정 또한 불편한 기색 없이 덤덤해서 소름이 끼쳤다.
“시키는 대로 할 마음이 생겼나.”
잔머리 없이 말끔했던 머리가 엉망으로 흐트러질 정도로, 체력을 쏟아부은 남잔 돌연 행동을 멈추고 제 머리를 정돈했다.
걷어차인 복부에서 끔찍한 고통이 밀려들었다.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어서 여자는 간신히 고개만 끄덕였다.
“대답을, 확실히 해야지?”
“...네.”
그날 결국 재이는 처음 보는 이단 종교 집단 앞에서 옷을 벗고 의식을 치렀다. 남편에게서 얻어맞은 탓에 생긴 멍 자국과 긁히고 찢긴 온갖 상처가 신자들 앞으로 모두 내보여졌다. 인간의 존엄성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재이는 그 순간 제 안에 남아 있던 자존감이 모조리 증발했음을 깨달았다.
동물원의 그들이 이런 느낌일까. 타인의 손길에 자신을 죽여가는 자들이 이러할까. 허락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이러할까. 어떤 아픔을 경험해야 지금 이 기분을 설명해 낼 수 있을까.
수치심이란 값비싼 감정 따윈 떠오르지 않았다. 많은 이의 시선이 훑고 간 보잘것없는 저의 몸은 그 무엇도 아니었다. 끔찍하리만치 덤덤했던 그 시간이 지나자, 그저 허탈한 무력감만이 남았다.
그렇게 3년의 세월을 헛되이 보냈다. 그들의 정신세계는 괴이할 정도로 엇나가고 있었지만, 그것에 반기를 들 정도로 삶의 의지가 있었던 게 아니었으므로 흘러가는 대로 그냥 놔두었다.
그러던 중, 남편이 제가 후원하는 보육원의 아이들을 상대로 마약성의 약품을 실험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정신을 차렸다.
“그, 그게 사실이에요? 그동안 보육원의 아이들이 약 실험 때문에 죽어가고 있었고…. 그걸 알면서도 방관했다는 게.”
우연히 남편의 통화를 들은 재이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있었다. 여자의 손이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잘게 떨렸다.
들고 있던 핸드폰을 책상 위로 던지듯 내려놓은 그가 제 아내를 돌아봤다. 8년간 부부로 살아오면서 쌓였을 만한 최소한의 온정도 느껴지지 않는 눈빛이다. 여전히 답답한 꼴을 하는 아내를 질려하며 그가 대답했다.
“방관이 아니라, 내가 지시했는데? 부모도 버린 아이를 상대로 쓸모 있는 일을 시켰으면 감사히 여겨야지. 너 또한 내가 살리고 있다는 걸 잊지 마. 네가 무엇 때문에 그 안에서 안전했다고 생각하는 거지? 왜 너만 약품 실험에서 제외됐다고 생각해? 그건 내가 널 구원했기 때문이야. 그러니 평소처럼 입 닥치고 수그리고 살아.”
제대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는 불안정한 마음처럼 여자의 시선이 마구잡이로 흔들렸다.
그간 자신의 무지함과 무신경이 뼛속 깊이 후회되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삶을 이어 나가고 있었던 걸까. 이상한 이단 종교 집단의 지시에 따르고 그가 하는 말이 곧 법인 것처럼 살아왔다. 그의 말대로 늘 수그리고 살았다.
하지만, 이제야 재이는 제 머릿속 안개가 걷히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요. 이제, 그렇게는 못 살겠어요.”
...
DR 제약회사 사장은 그 무엇보다 제 말을 거스르는 사람을 싫어했다. 그래서 부부로 살아온 8년의 세월 동안 아내를, 제 방식대로 길들여왔다. 말을 듣지 않으면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여 말을 듣게 했고, 저의 믿음에 따르도록 억압했다. 아내는 겉으론 말을 잘 듣는 순종적인 여자처럼 보였지만, 이상하게도 순순히 따르는 그녀의 행동에서 묘한 불쾌감을 느껴왔다.
그건 제 말에 절망하면서도 끝까지 퇴색되지 않는 여자의 새카만 눈동자 탓일 것이다. 저 순수하고 맑은 눈이, 무척이나 거슬렸다.
남잔 옆으로 고개를 기울여 무언가를 생각하는가 싶더니 돌연 서재 책상 서랍을 뒤적여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사내의 손 길이 정도 되는 휴대용 칼이었다. 손잡이에 숨어있던 칼날이 그의 손길에 모습을 드러냈다. 위협이 될 정도로 큰 칼은 아니었으나 남편이 갑자기 꺼내 든 게 칼이라는 것이 제법 겁이 날 만한 일이었다.
여자가 남편의 얼굴을 살피며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왜? 무서워?”
“그거로 뭘 하려고요.”
흔들리는 음정 속에서도 재이의 목소리가 또렷이 들리자, 그가 한쪽 눈썹을 삐딱하게 쳐올렸다.
“글쎄? 네 눈을 보니 영 믿기가 어려워져서 말이야. 우리가 부부였다곤 해도 너는 늘…. 날 믿지 않았었잖아.”
놀랍게도 재이는 부정할 수 없었다. 그제야 저가 자신의 남편을 마음 깊이 신뢰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가 보육원의 후원자로서 저의 삶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을 때조차도 말이다.
“네가 함부로 입을 털어댈지 누가 알겠어.”
조금씩 뒤로 밀리던 여자의 몸이 반쯤 열려있던 방문을 닫으며 벽에 밀착되었다. 그 모습을 진득하게 훑어대던 남잔 자기도 유감이라는 듯 웃으며 칼등으로 아내의 아랫입술을 내리눌렀다. 그 섬뜩한 감촉에 재이의 눈가 위엔 본인도 인지하지 못한 눈물이 차올랐다.
“너무 억울해하진 마. 그러게, 아내면 아내답게 처신을 잘했어야지. 뭐 별일이라고 이렇게 따지고 들어. 모른 척 넘어갔어도 됐을 일이었잖아. 안 그래?”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이으면서도 그는 아내의 왼쪽 손목을 엄지로 쓱 부드럽게 훑었다. 맥박이 느껴지는 자리를 가늠하여 살피던 부드러운 손길이 이내 강압적으로 변했다.
“여기쯤인가?”
아내의 손목을 힘껏 틀어쥔 남자가 이내 칼을 맥박이 뛰는 그곳에 갖다 대었다.
“뭐, 뭐 하는 거예요?!”
“우린 서로를 믿지 못하니 한 사람이 죽는 게 서로에게 편안하지 않겠어? 자살로 꾸미면 피차 번거로울 일이 없잖아.”
그의 의도를 알아차린 재이가 몸부림을 쳤다. 남편에게 붙잡힌 손을 빼내기 위해 정말이지 온 힘을 다했다. 사내의 어깨를 주먹으로 내리치다가 영 안 되겠으니 이내 그의 손을 와락 깨물었다.
외마디 비명이 들리고 무심결에 칼을 놓친 그가 자비 없이 아내의 뺨을 후려쳤다. 그 힘에 바닥으로 나가떨어진 여자의 시선 안에 남편이 놓친 칼이 들어왔다. 무언가를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저가 무슨 짓을 할 생각으로 그것을 낚아챘는지도 몰랐다.
그저 재이는 저가 살기 위해 칼을 집어 들었고, 차마 아내가 저를 찌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하는 그에게 그대로 달려들었다.
못 본 새 많이 자란 재영을 보며 그가 아이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렸다. 나름 애정 표현이었지만, 아이는 한껏 짜증을 부렸다.“하지 마!”“키가 많이 컸네?”그는 아이의 신경질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네 사람은 식탁에 앉아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식사를 이어갔다. 정희는 행복해 보이는 부부를 다정하게 응시하며 입을 뗐다.“너무 축하해요. 결혼식에도 가고 싶었는데.”그들이 먼 지방으로 오게 되면서 재영과는 전처럼 자주 볼 수 없게 되었다. 결혼식을 동네 마을회관에서 조촐하게 했기 때문에 재영의 가족이 오지 못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재이는 고개를 저으며 되레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아니에요. 거리가 너무 멀어서 저희가 더 죄송했어요. 오늘 이렇게 먼 길 와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이렇게 초대해 주셔서 저희가 감사드리죠. 재영이가 빨리 가고 싶다고 얼마나 노래를 불렀는데요.”“나도 재영이 너무 보고 싶었어. 오늘 와줘서 정말 고마워.”재이의 상냥한 목소리에 재영은 얼굴을 붉혔다. 기차 타고, 배 타고 버스 타고 도착한 동네는 바다도 있고 공기도 맑은 아주 좋은 곳이었다. 그런 데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인 재이가 살고 있기도 했다.“누나는 이제 서울에 안 와?”하지만 그렇긴 해도 한 번 오갈 때마다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재영은 제 맞은
쿵, 쿵, 쿵그녀에겐 익숙한 소리였다. 점차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사나워지자, 재이는 깊어지는 한숨을 속으로 삼켜내며 입을 삐죽였다.아마 그는 포기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뭐 하는 거예요?”“......”“재이, 뭐 하는 거냐고 묻고 있잖아요. 빨리 문 열어요. 나 정말 화나려고 해.”“오늘은 날 가만히 놔둔다고 약속했잖아요.”굳게 잠긴 방문 앞에 서서 달래듯 속삭이니 남자의 짜증을 억누르는 소리가 들렸다.“하, 그래서 알겠다고 했잖아. 손이 멋대로 움직이는 걸 나더러 어떡하라고….”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던 남자가 별안간 조용해졌다. 여잔 문에 바짝 귀를 갖다 붙였다. 포기하고 자리를 옮기는 모양인지 인기척이 멀어지는 소리가 들렸다.그것에 안도해, 손가락 하나 정도 빠져나갈 만한 틈을 두고 문을 열어 바깥을 확인했다.그때, 익숙한 모양새로 문이 벌컥 열어젖혀졌다. 문손잡이를 잡고 있었던 재이의 몸도 힘없이 딸려 나왔다. 이것 역시 익숙한 모양새였다.“잡았다!”남자의 얕은수에 보기 좋게 당한 재이는 그에게 허리를 붙들린 채 보기 드물게 인상을 찌푸렸다.“그러게, 누가 문을 잠그랬나.”그
*이번 회차는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내용이 다수 포함되어 있으니 이용 시 유의 바랍니다.남자는 보육원을 둘러보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여긴 고민 있는 아이들이 자유롭게 상담 신청을 하고 선생님과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는 공간이에요. 아이들이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후련해진다며 자주들 찾아요.”지나치는 교실마다 족족 이러쿵저러쿵 설명을 덧붙이는 원장의 말을 무시하고 상담실 창 너머로 보이는 한 여자를 바라봤다.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소녀는 책상 위에 있는 화분을 허리 굽혀 응시하며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무엇을 보고 저리 작게 미소 지을까.남자의 시선이 상담실 어딘가를 오래도록 응시하자, 원장도 그 눈길을 따라갔다.‘저 앤 왜, 하지 말라는 짓을 저리 성실히 하고 난리래?’곧 상대를 알아본 원장은, 난을 돌보는 소녀의 모습에 못마땅한 얼굴을 했다.“돌도 안 돼서 들어 온 친구인데, 얌전하고 착해요. 이번 신약 실험 조에 넣으려고요.”원장의 말에 순간 남자의 미간이 좁아졌다.돌연 자신도 알 수 없는 묘한 조급증이 밀려들었다.“아뇨. 저 친구는 빼세요.”“네? 왜….”실험 조의 아이들을 그가 관리하는 일이 그동안 없었기 때문에 순간, 원장의 얼굴에
“...책임질게요.”“정말?”은밀하게 속삭이는 말에 그녀가 얼굴을 붉히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그 말 후회하지 말아요.”후회할 리가 없었다. 그녀는 아직도 쫓기는 사람처럼 조급하게 구는, 불안한 청년을 다소 안타깝게 응시했다. 그의 불안은 자신에게 기인한다는 걸 모르지 않기 때문이었다.여잔 먼저 용기 내어 남자의 입술 위에 제 입술을 붙였다. 그 얄팍한 애정에도 버겁도록 행복해하는 사내의 반응에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사랑해요. 내게 와줘서 정말 고마워요.”서로의 입술이 닿았던 찰나의 순간이 지나고 여자의 숨과 뒤섞인 말들이 사내의 입술을 간지럽혔다. 그 애간장을 녹이는 언행에 그는 저도 모르게 웃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재이,”바로 곁에 있는데도 제 이름을 부르는 남자의 행동에 여잔 그저 눈을 맞추고 웃어주었다. 그러자 남자의 눈빛이 한층 어두워지고 깊어졌다. 어느새 남자에게 몸이 들려 붕 떠 있는 걸 자각한 재이가 서둘러 사내의 목에 팔을 둘러 끌어안았다.“뭘 하려고요?”“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뭘 할 것 같아요?”뻔한 답 앞에서 괜한 씨름을 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그는 곧장 침실로 이동해 여자의 몸을 조심히 내려놨다. 침대 위에 눕혀져 남자가 하는 양을 지켜보니, 그가 조급함이 느
서로의 몸이 닿을 정도로 밀착된 두 사람은 잠시 시선을 맞추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배시시 실없는 웃음을 흘렸다. 재이는 남자의 귓가에 속삭였다.“내가 사랑하는 건 당신뿐이에요.”“정말?”구태여 되묻는 이유는 그녀의 애정을 계속해서 느끼고 싶어서였다. 그에 재이는 귀찮아하는 기색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사랑한다, 말했다.“이따가 데리러 올게요.”여자 친구가 고개를 끄덕이자, 사내가 흘끗 그녀의 어깨 너머 아이들을 바라봤다. 도담 반은 제 선생님의 연애를 바로 곁에서 직관할 수 있는 행운이 있었다. 뭐에 그리 즐거운지 키득거리는 소리가 점차 커졌다.“이만 가요.”“잠깐.”이미 제가 재이를 쫓아다니며 애정을 구걸한다는 걸 모든 꼬맹이가 아는 마당에 여기서 더 티를 낸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까.급작스럽게 다가온 남자의 입술이 재이의 입술 위에 내려앉았다가 금세 달아났다. 남잔 벙찐 얼굴을 한 여자의 볼을 장난스럽게 손으로 툭 건들곤 빠르게 두세 걸음 자리에 멀어졌다.“사랑해요!”남자의 익숙한 사랑 고백에 새삼스럽게도 여자가 얼굴을 붉혔다. 뒤에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더 짙어졌다.-“해이.”&ldq
“선생님!”“왜.”“그렇게나 좋아요?”운동장 계단에 앉아 어린이집 건물 어딘가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체육 선생님을 이현이 어쩐지 불손한 표정으로 응시했다.그는 제자를 쳐다도 보지 않고 대강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좋아 죽겠다, 아주.”“재이 선생님은 쌤, 그렇게까지 좋아하진 않는 것 같던데.”“뭐?!”아이가 장난으로 하는 말에도 그냥 넘어가지 못하겠는지 그가 버럭 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선생의 난데없는 고함에 놀란 아이는 하마터면 계단 밑으로 나동그라질 뻔했다.“깜짝 놀랐잖아요!”“이현이 너! 내가 얼마나 재이한테 사랑받고 있는데 그런 소릴 하는 거야?”“그렇잖아요! 재이 선생님은 쌤, 귀찮아하잖아요!”지지 않고 대꾸하는 말에 그가 큰 충격을 받은 사람처럼 주춤했다.귀찮아하다니. 그럴 리가 없다.물론 귀찮을 정도로 들러붙긴 하지만, 그렇다고 진짜로 자신을 귀찮아할 리가 없었다. 늘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안아주고 뽀뽀해 주고 손잡아주고 그러는데….그렇지만 다시 떠올려보니 그건 다 어리광 부리는 자신을 달래주기 위한 용도로, 습관처럼 행하는 애정 표현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에 진심이 깃들어 있던가.문득 조급한 마음이 든 남잔 성큼성큼 운동장을 가로지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