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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Author: 김미미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7-04 20:01:08

*이번 회차는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내용이 다수 포함되어 있으니 이용 시 유의 바랍니다.

사내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는 시선을 내려 제 옆구리에 박혀 있는 칼 손잡이를 봤다. 손잡이 근처를 중심으로 새빨간 피가 와이셔츠를 적셔갔다.

“너, 너…. 지금….”

과다 출혈로 눈앞이 흔들리자, 그가 아내를 향해 손을 뻗었다. 겁에 질린 여잔 그대로 서재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아무도 남지 않은 서재 안에서 비틀거리던 사내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르륵 미끄러지듯이 주저앉았다.

“이리…와, 당…장.”

초점을 잃은 시선이 줄곧 아내가 뛰쳐나간 방문 밖을 바라봤다.

...

두 손에 잔뜩 묻은 피를 제 옷에 강박적으로 문질러 닦던 여잔, 닦아도 닦아도 계속 묻어나오는 피에, 그제야 그것이 저의 손목에서 새어 나오는 피라는 걸 알아차렸다. 그와 몸싸움을 하면서 칼날에 손목이 제법 깊이 베인 모양이었다.

상처를 처치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곧장 침실문을 찾아 열었다. 새하얀 시트가 뒤덮인 두 사람의 침대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 앞에서 별안간 구역질이 올라와 신물을 게워 낸 재이는 맥없이 주저앉은 채, 엉망으로 뒤엉킨 긴 머리카락 사이로 남편의 금고를 지켜봤다.

갑자기 북받치는 감정에 눈물이 터져 나왔다.

대체 저가 무슨 일을 저지른 걸까. 남편을 칼로 찌르다니.

그럼에도 이렇게 살 궁리를 하고 있다니.

무서웠다. 두려움이 커지면서 정신이 아득해졌다.

“...도망, 도망가자.”

미친 사람 같은 몰골로 남편의 금고를 열고 그녀는 대강 눈에 보이는 가방 안에 현금을 쑤셔 넣었다. 금고 안에 그가 대량의 현금을 보관하고 있다는 건 일찍이 안 사실이었다. 남잔 그 사실을 굳이 재이에게 숨기지 않았다.

그녀가 저의 재산에 욕심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기도 했고, 그녀가 이것을 탕진한다고 해도 딱히 상관없었기 때문이었다.

잡히는 대로 돈을 담아내고 있는 중에도 눈물과 콧물이 범벅된 얼굴을 그녀가 손으로 마구 문질렀다. 흐느끼는 소리가 점차 커졌다. 재이는 이런 순간에도 남편의 금고를 털 생각을 한 걸 보면 어쩌면 저는 늘 그에게서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여자가 묵직한 가방을 들고 자리에서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다행히도 눈물은 멈춰 있었다. 마음을 다잡듯 그녀의 떨리는 손길이 엉망이 된 자기 머리를 정돈했다. 그러곤 ‘괜찮아’를 수도 없이 되뇌었다. 마치 주문을 거는 것처럼.

마지막으로 집을 나서기 전 재이의 떨리는 눈길이 남편이 있을 서재 쪽을 응시했으나 곧장 시선을 옮겼다. 다시 겁에 질린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아서 그대로 집을 나섰다.

되도록 CCTV가 없는 골목을 전전하며 목적지 없이 걷고 또 걸었다. 무슨 정신으로 움직였는지 그제야 재이는 자신이 집에서 신는 실내용 슬리퍼를 그대로 신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건 시간이 지나면서 밤이 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남들의 그림자에 숨어 몸을 구길 수 있는 여유가 생기자, 또다시 눈물이 나왔다.

“...아가씨 괜찮아요?”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불안정해 보이는 여자를 훑었다. 개중엔 도움이 필요한지 묻는 행인들도 있었지만, 그저 여잔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 저가 사람들의 눈에 띄어서 좋을 건 없다는 생각에, 공사가 중단된 어느 낡은 빌라 단지 안으로 급히 몸을 숨겼다.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건물 안은 미세하게 콘크리트 먼지 냄새가 났다. 여잔 부서진 잔해 더미 아래로 드리워진 시커먼 그림자 속으로 몸을 구겨 앉혔다.

줄곧 들고 있던 가방 손잡이에서 손을 떼고 숨을 골랐다. 그 집에서 들고나온 것이라곤 남편의 돈뭉치뿐이었다. 시선을 내리자, 슬리퍼 바깥으로 흙먼지가 묻은 발끝이 보였다.

마치 자신의 처지를 확인 시켜주는 몰골이었다. 재이의 입술 새로 허탈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이런 상황에서도 연락할 곳이 아무 데도 없는 인생을 살아왔다. 이것이 외로운 건지도 모르고 살아왔건만 이제야 늘 자신을 감싸고 있던 공허함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따가워.”

갑자기 잊고 있었던 아픔이 느껴졌다. 제 손목을 내려다보니 베인 상처 위로 피가 새어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여잔 폐건물 구석에 버려진 안전화를 주워 신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후 약국에서 간단한 처치를 하고 근처 목욕탕을 찾아 들어갔다. 자기 발 치수에 맞지 않는 커다란 신발을 질질 끌면서 들어간 목욕탕은 노쇠한 여인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여인은 재이가 들어오는 순간부터 매우 흥미롭게 지켜보는가 싶더니 이내 참지 못하고 말을 걸었다.

“아니, 넘어지기라도 했어?”

어쩐지 음울한 얼굴에 비척대는 꼴이 서방에게 버림받은 꼴이라 입이 근질근질했다. 목욕탕 주인은 단칸방 카운터에 앉아 고개를 쭉 내밀며 손님의 행색을 살폈다. 야반도주라도 한 것처럼 큰 짐가방에 옷은, 자다 나온 사람처럼 볼품이 없고 신발마저 큼지막한 남자 것을 신고 있었다.

쯧쯧.

무슨 일이길래 젊은 여자가 저런 꼴로 다 낡아빠진 목욕탕을 찾아왔을까.

“옷이라도 빌려줘?”

고개를 푹 수그린 채 대답도 하지 않는 여자를 지켜보다가 주인이 ‘잠깐만’ 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뒤편에 있는 캐비닛 안에서 잘 개어져 있는 자신의 여분 옷을 여자에게 건네니, 그제야 고개를 들어 올렸다.

“...감사합니다.”

“목욕도 할 거지?”

작게 고개를 끄덕이곤 재이가 가방 안에서 대충 돈을 꺼내 주인에게 건넸다. 팔을 내밀면서 붕대에 감긴 여자의 손목이 드러나자, 주인은 속으로 한 번 더 혀를 끌끌 찼다.

‘무슨 사연이길래 저럴까.’

여탕 문을 열고 들어서는 재이의 뒷모습을 여주인이 끝까지 눈으로 좇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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