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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화

Auteur: Yoonseul
last update Date de publication: 2026-06-05 00:00:22

바닥에 닿은 그 낯익은 구두를 본 순간, 유라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아 감히 고개를 들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모자 챙을 더 바짝 내리며 고개를 푹 숙인 채, 캐리어를 옆으로 비틀어 어떻게든 그를 스쳐 지나가려고 발버둥 쳤다. 하지만 그는 유라가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정확히 한 걸음 내딛으며 벽처럼 길을 막아섰다.

사방이 꽉 막힌 절망감 속에서 유라는 결국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상대는 모자와 마스크, 그리고 짙은 선글라스로 얼굴을 단단히 꽁꽁 싸매고 있었다. 평소 대중의 시선을 피해 다녀야 하는 연예인 특유의 철저한 위장이었지만, 유라는 단번에 그가 김도진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다.

김도진 특유의 짙은 우드 향 향수가 유라의 마스크 틈새를 가차 없이 뚫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

그 향기가 코끝을 스치는 순간, 유라의 심장은 터질 것처럼 거칠게 날뛰기 시작했다. 숨이 가빠오고 등줄기로 식은땀이 비 오듯 흘렀다. 어떻게 알고 여기까지 쫓아온 것인지 머릿속이 하얘져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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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이킬수 없는   143화

    바깥에서 나는 미세한 소음에 잠이 깬 것인지 유라가 잠에서 덜 깬 모습으로 걸어 나왔다. 하지만 이내 어두운 조명 아래 드러난 도진의 모습의 날 것 그대로의 위험한 아우라를 마주하자마자, 유라는 숨을 들이켜며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젖은 머리칼을 거칠게 쓸어 넘긴 모습과 가운 자락이 반쯤 흐트러져 드러난 도진의 단단한 가슴팍은 숨이 막힐 정도로 치명적이었고, 동시에 본능적인 경계심이 들 만큼 위험해 보였다.당황한 유라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어…… 깨우려던 건 아니었어요. 죄송해요, 쉬세요”도진은 도망치듯 방으로 숨으려는 유라의 얄팍한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길게 뻗은 손가락으로 캔을 내려놓은 도진이 시선은 고정한 채 나직하게 유라를 불러 세웠다.“이유라.”도진이 까딱 손짓을 하며 그녀를 제 곁으로 불렀다. 매혹적이면서도 거역할 수 없는 서늘한 지배욕을 풍기는 도진에게, 유라는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자석처럼 이끌려 다가갔다.제 앞에 멈춰 선 유라를 올려다보던 도진이 붉게 달아오른 목덜미의 상처를 한번 훑고는, 이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휴대폰은 왜 꺼놨어?”“아, 그게…… 배터리가 없어서 저절로 꺼졌나 봐요.”유라가 급하게 말을 지어내는 그 찰나의 순간, 미세하게 흔들리는 눈빛을 도진은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포착해 냈다. 도진의 입꼬리가 비틀리듯 기묘한 호선을 그렸다.“그래? 가져와봐.”도진의 툭 던진 한마디에 유라의 가슴이 쿵 하고 바닥으로 내려앉았다.“아니요, 제가…… 제가 충전하면 돼요.”필사적으로 숨기려는 유라의 태도에 도진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늑대처럼 돌변했다. 도진이 거칠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운 자락을 펄럭이며 유라의 방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는 그의 등 뒤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오늘 스케줄을 나가기 전, 분명히 이도현과 연락은커녕 만나지도 말라고 잔인하게 경고했던 도진이었다. 전화를 급하게 끄는 바람에 미처 통화 내역을 지우지 못했던 유라는 정작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거대한 죄를 지

  • 돌이킬수 없는   142화

    한편, 유라의 텅 빈 방 안 덩그러니 남겨진 도현은 통화가 끊긴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곧바로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기계적인 안내음뿐이었다.‘고객께서 전원이 꺼져 있어…….’“하…….”도현의 입술 사이로 기가 찬다는 듯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언제나 제 말 한마디면 순종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던 유라였다. 그런 유라가 제 손으로 전화를 끊고, 급기야 전원까지 차단했다.쾅─!도현이 거칠게 벽을 내리쳤다. 주먹 위로 붉은 피가 배어 나왔지만, 분노로 뒤덮인 도현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김도진.. 개새끼가…… 자꾸 나를 이렇게까지 만든다 이거지.”유라에게 건넸던 애타는 목소리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도현의 음성에는 맹독 같은 살기가 짙게 뱀처럼 뿜어져 나왔다.유라는 거대한 폭풍이 지나간 듯한 혼란스러운 감정을 추스르며, 한참 동안 소파에 몸을 웅크린 채 숨을 죽이고 있었다. 긴장이 탁 풀리자 밀려드는 정신적 피로감에 눈꺼풀이 천근만근 무거워졌다.무거운 몸을 이끌고 침실로 들어가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썼다. 사고로 기억을 잃은 이후, 유난히 잠이 많아진 유라였다. 마치 뇌가 감당하지 못하는 현실의 스트레스를 잠이라는 도피처로 해결하려는 듯, 유라는 이내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그 시각, 화려한 조명과 카메라가 바쁘게 돌아가는 광고 촬영 현장.도진은 프로답게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었지만, 세트가 변경되는 막간의 휴식 시간이 주어지자마자 가운을 걸치며 휴대폰을 낚아챘다. 그의 긴 손가락이 거침없이 유라의 번호를 누르고 귀에 가져다 대는 순간, 차가운 안내음이 흘러나왔다.‘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 있어…….’도진의 미간이 단숨에 팍 구겨졌다.불길한 예감이 스치자마자 도진은 지체 없이 경호실장의 번호를 눌렀다. 신호음이 가기도 전에 통화가 연결됐다.“이유라, 어디 나갔어?”낮게 가라앉은 도진의 목소리에 살기가 서려 있었다. 수화기 너머 경호실장이 신속하게 대답했다.[아닙니다, 집에 계십니다.]“……그래?”그

  • 돌이킬수 없는   141화

    이내 도진이 유라의 목덜미에서 손을 떼어내며 돌아섰다.“들어가 쉬어.”“…….”“난 밀린 스케줄이 있어서 지금 나가봐야 해.”낮은 목소리로 가죽 자켓을 걸쳐 입는 도진의 몸짓 하나하나에서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가 풍겨 나왔다.도진은 유라에게 시선 한번 툭 던진 채, 폭풍처럼 펜트하우스를 빠져나갔다. 거대한 문이 닫히고 다시 찾아온 적막 속에서, 유라는 도진의 손가락이 거칠게 쓸고 간 목덜미를 손으로 감싸 쥐었다.그 시각, 유라의 집 앞.도현은 부서진 현관문을 마주한 순간, 불안함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텅 비어버린 집 안. 흔적도 없이 사라진 유라의 물건들을 본 도현의 눈동자가 싸늘하게 일렁였다.“……….”도현이 떨리는 손으로 황급히 유라에게 전화를 걸었다.신호음이 길게 이어졌다. 그 시각 전화를 받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유라의 손끝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도현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자신에게 약을 강제로 삼키게 하던 그 서늘한 손길과 자신의 몸에 흔적들이 떠올라 숨이 조여왔다. 하지만 회피만이 답은 아니었다. 유라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여보세요.”[유라야! 너 지금 어디야? 집은 어떻게 된거고, 대체 어디로 간거야!]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도현의 목소리는 평소의 차분함을 잃고 날카롭게 날이 서 있었다.유라는 소파 끝에 걸터앉아 떨리는 입술을 떼었다.“도현 오빠…… 저, 지금 김도진 씨 집에 있어요.”[……뭐?]잠시 동안 흐르는 소름 끼치는 정적. 곧이어 들려온 도현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니가, 지금…… 그 새끼 집에 가 있다고? 이유라, 제정신이야?]유라는 상황을 설명하려 했지만, 목구멍에 무언가 걸린 듯 말이 나오지 않았다.자신을 위하는척 독과 다름없는 약을 처방한, 도현의 그 이중적인 얼굴이 떠오르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오빠가 왜 화내는지 알아요. 하지만 오빠한테는 사실대로 말씀드리는 게 맞는 것 같아서…….”[절대 안 돼. 이유라, 그 자식이 너를

  • 돌이킬수 없는   140화

    다만, 옷 사이로 언뜻언뜻 시야를 어지럽히는 이도현의 흔적들이 도진의 신경을 긁어댈 뿐이었다.도진이 소파에 가만히 앉아 자신을 바라보자, 유라는 긴장감에 침을 꿀컥 삼키며 그에게 한 걸음씩 다가갔다. 그리고는 웅크려 있던 용기를 쥐어짜 내어 먼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오늘 일은…… 정말 감사해요... …….”유라가 도진의 눈치를 살피며 가녀린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이야기는 들었어요..제가 원래 도진 씨 밑에서 보조 매니저로 일했었다고……고작 직원이었던 저한테 이렇게까지 신경 써주시고 도와주셔서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할지..앞으로 여기 지내는 동안 무슨 일이든 시켜만 주시면, 시키시는 일 다 할게요.”유라의 뜬금없는 말에 도진은 담배를 입에 물리려던 손을 그대로 멈췄다. 그리고는 이 상황이 황당하다는 듯 피식, 짙은 실소를 흘렸다.“무슨 일이든 시켜만 주면 다 하겠다?”전에는 볼 수 없었던 신선한 반응이었다. 기억을 잃고 고등학교 시절의 순진무구한 기억에 머물러 있는 유라의 엉뚱한 모습과 자신의 앞에서 쩔쩔매는 행동들이 도진의 눈에는 한없이 귀여워 보였다. 자신의 앞에서 눈치를 보며 손을 꼼지락 거리는 유라를 가만히 응시하던 도진의 입술 사이로, 이내 나직하고 부드러운 웃음이 부서져 나왔다.언제나 서슬 퍼런 살기와 집착만을 번뜩이던 도진이 처음으로 지어 보인, 티 없이 맑은 미소였다.그 모습을 정면으로 바라보던 유라는 순간 숨을 쉬는 것조차 잊은 채 넋을 잃고 도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누구보다 차갑고 오만해 보였던 도진이 완전히 무장해제 되어 웃는 모습은 지독할 정도로 비현실적이게, 매력적이었다.한참을 낮게 웃다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유라와 시선이 얽힌 도진이, 이내 느릿하게 웃음기를 지워냈다. 찰나의 온기는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도진의 깊은 눈동자에는 다시금 지독한 소유욕과 냉정함이 들어찼다.도진이 상체를 숙여 유라의 시선을 정면으로 옭아매며 나지막이 말을 이어갔다.“내가 원하는 건 딱 하나야, 진짜 네 기억을 찾을 때까지 내허

  • 돌이킬수 없는   139화

    도진은 터질 듯이 얼굴이 붉어진 채 굳어버린 유라를 보며 입꼬리를 느슨하게 올렸다. 그는 숨결이 닿을 만큼 유라의 얼굴 가까이 제 얼굴을 들이밀었다. 짙고 관능적인 도진의 향기가 밀려오자 당황한 유라가 황급히 시선을 피했고, 도진은 그 반응이 꽤나 만족스럽다는 듯 피식 낮은 웃음을 흘렸다.“심장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 이유라.”야릇하게 속삭인 도진이 유라의 머리맡에 있는 호출 벨을 미련 없이 눌렀다. 금세 문이 열리며 간호사가 서둘러 병실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어디 불편하신 곳이라도 있으신가요?”“아니요. 퇴원할 겁니다. 링거 좀 빼주세요.”도진이 간호사를 향해 군더더기 없는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아, 네! 바로 조치해 드리겠습니다.”간호사가 곧바로 유라의 가녀린 손목에 고정되어 있던 반창고를 떼어내고 주사바늘을 매끄럽게 뽑아냈다. 간호사가 정중하게 인사를 건네고 나가자, 도진이 턱끝으로 화장실을 가리키며 유라를 향해 툭 던졌다.“옷 갈아입어. 가게.”유라는 홀린 듯 침대에서 내려와 도진이 건넨 옷가지를 들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문을 잠그고 나서야 참았던 숨이 터져 나왔다. 거울 앞에 선 유라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셔츠 단추를 하나씩 풀어내리다, 순간 비명을 지를 뻔하며 제 입을 틀어막았다.거울 속 자신의 온몸 곳곳에, 도현이 잔인하게 새겨놓았던 붉은 흔적들이 적나라하게 남아있었다.“하…….”약 기운에 취해 늪으로 가라앉던 그 와중에 느꼈던, 소름 끼치고 그 기분 나쁜 감각이 결코 꿈이 아니었다는 자각이 순식간에 전신을 관통했다. 자신을 걱정하며 다정하게 웃던 이도현이, 자신에게 이런일을 저질렀다는 사실에 유라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황급히 옷을 추스르며 입었지만, 목선과 쇄골에 남은 흔적들은 깃을 아무리 여며도 가려지지 않고 더 도드라져 눈에 띄였다.옷을 갈아입은 유라가 화장실 문을 열고 머뭇거리며 걸어 나왔다.도진의 날카로운 시선이 유라의 가녀린 목덜미로 곧장 향했다. 가리려고 애쓴 옷깃 사이로 언뜻 보이는 붉은 자국들..

  • 돌이킬수 없는   138화

    도진은 병실 창밖의 칠흑 같은 어둠을 응시하며 휴대폰을 귀에 댔다. 신호음이 채 한 번도 울리기 전에 경호실장의 긴장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네, 말씀하십시오.]“지금 당장 이유라 집으로 사람 보내. 그 집안에 있는 유라 물건들, 내 펜트하우스로 모조리 옮겨.”[……네? 지금 말씀이십니까?]갑작스러운 명령에 늘 침착하던 경호실장의 목소리가 당황으로 흔들렸다. 그러나 도진의 눈동자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어, 지금 당장. 먼지 하나 남기지 말고 싹 다 털어와.”전화를 거칠게 끊어버린 도진은 병실 소파에 깊숙이 몸을 묻었다. 길고 단단한 손가락이 초조한 듯 소파 팔걸이를 톡톡 두드렸다.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유라가 짓눌린 듯 무거운 눈꺼풀을 간신히 밀어내며 깨어났다.하지만 눈을 뜨자마자 보인 것은 익숙한 제 집의 천장이 아니었다. VIP 병실의 낯선 풍경, 그리고 코끝을 찌르는 소독약 냄새에 유라는 화들짝 놀라며 링거 바늘이 꽂힌 손을 감싸 쥐고 몸을 일으켰다.두려움에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유라의 시선 끝에, 소파에 턱을 괸 채 자신을 응시하고 있던 도진이 걸려들었다.유라와 시선이 마주친 도진이 느릿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유라를 향해 걸어오는 그의 걸음걸이에는 무언의 압박감이 서려 있었다.“깼어?”“……김도진 씨? 이게...대체....어떻게 된 거예요? 분명 집이었는데…….”혼란스러운 유라의 뇌리 위로, 기어코 거부하고 싶었던 기억들이 파편처럼 스쳐 지나갔다.자신의 입안으로 독한 약과 물을 강제로 들이붓던 이도현의 광기 어린 눈빛과 거친 손길.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아나며 유라가 사르르 몸을 떨었다.그런 유라의 눈앞으로 도진이 성큼 다가와 침대 머리맡을 짚고 상체를 숙였다. 가깝게 밀착해 오는 그의 서늘한 향기와 위압적인 태도에 유라의 숨이 턱 막혔다.“이유라, 너 지금 먹고 있는 약이 뭔지나 알고 먹었던 거야? 무슨 약을 그따위로 먹어?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 날뻔 했잖아 !!”도진의 날카로운 다그침이 병실 안을 거칠게 울렸다

  • 돌이킬수 없는   87화

    택시를 부르기 위해 숨을 죽이며 휴대폰 전원을 켠 유라는 화면이 켜지자마자 쉴 새 없이 울려대는 진동에 소스라치게 놀랐다.액정 위에는 김도진과 이도현, 두 사람에게서 온 부재중 전화가 수십 통이 빽빽하게 찍혀 있었다. 그 지독한 집착에 소름이 돋았지만, 유라는 떨리는 손으로 서둘러 택시 앱을 켜서 차를 호출했다.화면에 택시 도착 예정 시간이 뜨자, 유라는 가냘픈 팔로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막상 문밖으로 나왔지만 갈 곳 같은 건 없었다. 친척도, 마음 편히 기댈 친구도 떠오르지 않는 처량한 신세였다. 하지만

  • 돌이킬수 없는   82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흩트리며 도진은 유라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갈 때마다 도진의 턱관절이 부서질 듯 맞물렸다.띠리링,띠리링-침대 위, 땀방울을 흘리며 유라의 가녀린 몸을 탐하던 도현의 귓가에 날카로운 벨소리가 박혔다.분명 유라는 휴대폰을 잃어버렸다고 했었다. 지독하게 밀폐된 침실 안을 울리는 낯선 기계음에 도현이 거친 숨을 내쉬며 유라의 몸 위에서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열기로 달아오른 눈을 가늘게 뜨며 핏빛 살기를 가라앉힌 도현이 침대 밑에 아무렇게나 팽개쳐진 유라의 바지 뒷주머니로 향했다.벨소리가 함께 액정 위

  • 돌이킬수 없는   79화

    도현의 고함이 넓은 거실을 사정없이 뒤흔들었다. 유라의 머릿속이 새하얗게 마비되었다.자신의 비참한 처지를 사실대로 말하면 도현은 제 일처럼 자신을 이 지옥에서 꺼내줄 사람이었다. 하지만 유라는 도현에게 더 이상 무거운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 이미 도현에게 입은 은혜와 신세만으로도 가슴이 짓눌릴 듯 무거웠고, 그렇게 무자비하게 짓밟히면서도 김도진이라는 남자를 향해 마음이 기울어 버린 제 어리석은 마음만큼은 죽어도 도현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도현 오빠…… 제발요. 그냥 가세요…제 일이에요 ….“유라는 제 가슴에 박힌 수많은

  • 돌이킬수 없는   78화

    자신은 내세울 것 하나없는..그의 욕구를 채워주는 장난감일 뿐이었다. 가당치도 않은 이 감정은 결국 제 가슴을 더 난도질할 독약이 될 게 뻔했다.“바보같이…… 정신 차려, 이유라.”유라는 걸레를 쥔 손목에 핏줄이 서도록 힘을 주며 눈물을 삼켰다. 흐려진 시야 너머로 거실 유리창에 비친 제 초라한 실루엣이 보였다.“그래, 내 마음을 들키는 날엔 더 비참해지는 거야. 이유라, 정신 똑바로 차리자…….”유라는 몇 번이고 주문을 걸듯 입술을 짓씹으며 스스로를 다잡았다.흐트러진 호흡을 가다듬고 억지로 몸을 움직여 거실 구석구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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