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예전의 한애정은 이런 문제에 크게 연연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더는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없었고, 한애정의 생각도 분명했다. 두 사람이 지금까지 함께 오기까지 결코 쉽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기왕 여기까지 돌아왔는데, 이 문제를 깔끔하게 정리한 뒤 다시 떠나면 안 되는 걸까? 한애정은 배호창이 왜 그렇게까지 관계 정리를 피하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도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더구나 배씨 집안의 사정은 너무 복잡했다. 이번에도 제대로 해결하지 않은 채 다시 떠난다면 훗날 이 문제가 두 사람 사이에까지 영향을 미칠지도 몰랐다. 한애정 역시 이제는 이 일을 마음속에 묻어 두고 아무렇지 않은 척할 수 없었다.“당신도 형이 한마디 했다고 우리 사이까지 흔들리게 만들지 마.” “우리가 함께 산 세월이 얼만데 아직도 내가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몰라? 우리 사이에 그 정도 믿음도 없는 거야?”배호창은 한애정이 왜 이 문제를 계속 마음에 담아 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한애정이 대체 뭘 원하는 건지 답답하기만 했다.“내가 이러는 건 당신이랑 제대로 된 가정을 꾸리고 싶어서 그래.” “우리가 이렇게 오랫동안 함께 살았는데, 당신은 나한테 가장 기본적인 자리조차 만들어 주지 않았잖아. 그게 나한테 너무 불공평하다는 생각은 안 들어?”“내가 당신한테 무리한 걸 요구하는 것도 아니잖아. 처음부터 이런 걸 요구한 적도 없었고.” “예전에는 당신한테 강혜원과 당장 이혼하라고 몰아붙인 적도 없었어. 마침 우리도 여기까지 돌아왔으니 이번 기회에 정리하자는 것뿐이야.”“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당신은 내 사정을 다 알고 있었잖아. 나도 진작부터 분명히 말했어. 내 마음에는 그 여자 자리가 전혀 없다고.” “당신도 다 아는 사실인데, 이제 와서 그게 그렇게 중요한 일이야?”“형이 당신한테 그런 말을 하는 것도 결국 우리 둘을 여기 붙잡아 두고 자기가 회사를 가져가는 데 도움을 받고 싶어서잖아.” “우리가 형 말대로 움직이
배호창이 한애정과 부부로 함께 살기 시작한 무렵부터 배호철은 동생에게 크게 실망한 듯했다. 배호창이 다시 돌아오겠다고 해도 믿지 않았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까지 생각했다.그래서 배호창은 지금 와서 크게 문제가 될 건 없다고 여겼다. 이제 배호창에게도 자신만의 삶이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는 존재이니, 자신이 원하는 삶을 선택한 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배호철과 배호창은 정부자의 손에서 자랐다. 형편이 어려웠던 시절도 있었지만, 어린 시절 두 형제의 사이는 무척 좋았다. 특히 형인 배호철은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동생 배호창을 앞장서서 감싸고 지켜 주곤 했다.하지만 두 형제가 어른이 된 뒤부터는 모든 것이 달라진 듯했다. 한때 누구보다 가까웠던 형제인데도 이제는 서로 남처럼 느껴질 정도로 멀어졌다. 배호창 역시 그 사이에 생긴 거리감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여보, 난 아주버님 말도 틀린 건 아니라고 생각해. 우리가 지금 다시 해외로 돌아가면 안 돼.”“애초에 이번에 돌아오면서 당신이 준모 엄마하고 관계를 정리하는 문제도 해결하려고 했잖아.”“우리 둘이 이렇게 오랫동안 함께 살았는데도 난 아직 제대로 당신 아내가 되지도 못했어. 나도 이제는 이 관계에 분명한 결론이 있었으면 좋겠어.”“찬하도 이제 다 컸고 이렇게 훌륭하게 자랐잖아. 나중에 찬하한테 여자 친구가 생기고 결혼까지 생각할 사람이 생긴다면, 그 사람이 우리 관계를 어떻게 보겠어?”“어차피 여기까지 돌아왔으니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정리했으면 좋겠어. 당신이 준모 엄마한테 연락해서 한번 만나 봐.”“둘이 마주 앉아서 제대로 이야기해 봐. 이렇게 오랜 세월이 지났으니 이제는 누구라도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사실 한애정은 오래전부터 배호창이 강혜원과 이혼하기를 바랐다. 자신도 이제는 누구에게나 떳떳한 배호창의 아내가 되고 싶었다. 두 사람이 함께 살아온 세월이 이렇게 길어도 한애정이 바라는 건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예
[이 일도 결국 우리 가족을 생각해서 하는 거야. 나 하나 잘되자고 이러는 게 아니라고!] [호창아, 그러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버텨야 해. 회사도 반드시 우리 손에 가져와야 하고. 그래야 나도 마음을 놓을 수 있어.][어머니도 지금 잠깐 판단이 흐려진 것뿐이라고 생각해.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우리가 오랫동안 어머니한테 제대로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으니까 어머니가 저런 결정을 내린 거잖아.][그래도 언젠가는 어머니도 마음을 돌리실 거야. 문제는 그때가 되면 회사가 이미 남의 손에 넘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야. [그러니까 가만히 앉아서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어!]배호철은 동생을 타이르듯 말을 이어 갔지만 정작 속은 불안하기만 했다. 배호창이 어떤 사람인지 형인 배호철은 잘 알고 있었다. 배호창이 예전에 해외로 떠나지 않고 이 집에 남아 있었다면, 회사는 높은 확률로 배호창에게 넘어갔을 터였다.그런데도 배호창은 그런 일에 별다른 미련을 보이지 않았다. 욕심이나 야심도 크지 않았다. 무엇보다 배호창은 골치 아픈 일에 매달리기보다 마음 편하게 사는 걸 좋아했고, 복잡한 집안일이나 회사 문제에 신경 쓰는 건 질색이었다.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이 일을 붙잡고 움직인 건 사실상 배호철 혼자나 다름없었다. 배호창은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와준 적이 거의 없었다.“형, 이 문제는 내가 이미 충분히 말했잖아. 그리고 나는 더 이상 여기 남아 있을 생각도 없고. 이번에 돌아와 지내는 동안 마음 편했던 적이 거의 없었어.”이번만큼은 배호창도 마음을 확실히 정했다. 더는 이곳에 머무르지 않고 떠날 생각이었다. 처음에는 아들 찬하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어 줄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 정부자의 태도를 직접 확인하고 나니 화가 났고, 한편으로는 깊은 실망감까지 들었다. 결국 지금은 이곳을 떠나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그럼 제수씨한테 제대로 된 가정을 만들어 줄 생각은 한 번도 안 해 봤어?] [너희 둘이 평생을 같이 살았는데 아직 혼
하지만 배호철은 배호창이 이렇게까지 쉽게 손을 놓으려고 할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두 사람은 이미 오래전부터 모든 계획을 세워 둔 상태였다. 배호창이 빠진다면 배호철 혼자 힘으로 정부자의 회사를 손에 넣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배호철 역시 자신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잘 알고 있었다.이 일은 배호철 혼자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배호철에게는 동생 배호창이 반드시 필요했다. 두 형제 중 누구 하나라도 빠지면 애초에 세워 둔 계획 자체가 제대로 굴러갈 수 없었다.[그건 안 돼. 이 일은 처음부터 우리 둘이 같이 하기로 한 거잖아. 둘이 힘을 합쳐야 회사 승계 문제도 어떻게든 해 볼 수 있는데, 이제 와서 중간에 포기하면 어떡해?][어머니가 아직 널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해도 찬하는 이미 받아들이셨잖아.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만 더 노력하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봐.][여기까지 해 놓고 네가 손을 떼 버리면, 찬하가 그동안 들인 노력까지 전부 헛수고가 되는 거야.][설마 어머니가 평생 애써 지켜 온 회사를 결국 남한테 넘기는 꼴을 보고만 있겠다는 거야?]배호철은 무겁게 말을 이어 갔고, 뜻을 굽힐 기색도 전혀 없었다. 이 문제만큼은 마음이 급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오랜 시간 계획하고 준비해 온 일이었다. 이제 와서 모든 걸 포기한다면 지금껏 공들인 것이 전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형, 나도 처음에는 형 도와주려고 돌아온 거야. 그런데 직접 와서 보니까 이 일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처럼 간단하지가 않아.”“어머니가 우리를 다시 받아 주신다고 해도 회사를 우리한테 넘기실 거라는 보장은 없잖아. 그러니까 이제 시간 낭비는 그만하자.”“내가 보기엔 형도 지금 충분히 잘 살고 있어. 갖고 싶은 것도 웬만하면 다 가질 수 있고, 회사 일 때문에 골치를 썩을 필요도 없잖아.”“그런데 굳이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해? 차라리 이런 일에서 벗어나서 마음 편하게 사는 게 형한테도 훨씬 나아.”“형만 괜찮다면 나랑 같이 해외로 가도 돼.
한애정도 이제는 더 말해 봐야 달라질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앞으로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막막했다. 정부자의 뜻이 이미 너무나 분명한 만큼, 배호창과 한애정이 아무리 애를 써도 결과를 바꾸기는 어려워 보였다.본가를 나온 뒤 배호창은 곧바로 다시 해외로 돌아갈 생각부터 했다. 이곳에는 단 하루도 더 머물고 싶지 않았다. 가족 일에 더 얽히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어머니 마음속에는 이제 자신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고, 배호창과 정부자의 관계도 남보다 못할 정도로 멀어져 있었다. 오랜 시간을 떨어져 지내는 동안 어머니 마음에서 자신이 사라진 것 같았다. 배호창 역시 조금씩 어머니와 거리를 두게 됐다.하지만 그 일도 벌써 오래전 일이었다. 배호창과 정부자는 그동안 서로 먼저 연락하려고 하지 않았다. 배호창은 처음부터 어머니를 향한 원망이 깊었다. 당시 어머니가 왜 그렇게까지 자신과 강혜원을 맺어주려 했는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애초부터 사랑이라고 부를 만한 감정이 없었기 때문이다.그런데도 정부자는 배호창이 반드시 강혜원과 함께해야 한다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배호창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마음인지 제대로 헤아려 주지도 않았다. 배호창은 가끔 아무런 감정도 없는 사람과 왜 평생을 함께해야 했는지 스스로에게 묻곤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그 답은 찾지 못했다. 이제는 배호창 자신만의 삶도 있었고, 자신이 원하는 것은 결국 스스로 손에 넣으면서 살아왔다.사실 배호창도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서, 자신이 부모에게 너무 무심했던 건 아닌지 생각한 적이 있었다. 정부자가 혼자 버텨 온 세월이 결코 쉽지 않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어린 시절 두 형제를 키워 낸 사람도 어머니였고, 형편이 어려웠던 시절을 세 사람이 함께 견뎌 낸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데 살림이 나아지고 모든 것이 예전보다 편해진 뒤에는 오히려 정부자와 두 아들의 관계가 점점 더 멀어졌다. 배호창도 대체 누구를 탓해야 하는 일인지 알 수 없었다.이제
한애정은 차분히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지만, 속으로는 여전히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당장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는 것도 아니어서 답답하기만 했다.배호창과 한애정이 한창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을 때, 밖에 있던 찬하가 다가와 부모 앞에 섰다.“할머니가 방금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두 분도 다 들으셨잖아요. 할머니가 어떤 뜻으로 말씀하신 건지도 충분히 아셨을 거고요.”“두 분이 정말 할머니께 잘해 드리고 싶어서 돌아오신 거라면 저는 괜찮다고 생각해요.”“할머니도 두 분을 받아 주실 거예요. 저도 받아 주셨는데 두 분이라고 안 그러시겠어요? 더구나 아버지는 할머니 아들이시잖아요.”“하지만 처음부터 할머니와 진심으로 잘 지내실 생각 없이 그저 얻을 게 있어서 돌아오신 거라면, 저는 굳이 이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두 분이 꼭 이러실 필요는 없잖아요. 마음속에 할머니가 계신 것도 아니라면 왜 굳이 다시 찾아와서 할머니 마음을 흔드세요?”“저도 가끔은 정말 이해가 안 돼요. 두 분은 한 번도 제대로 할머니 입장에서 생각해 본 적이 없잖아요.”“할머니가 지난 세월을 얼마나 힘들게 버텨 오셨는지는 알고 계세요? 다른 사람 마음은 생각해 본 적도 없으시잖아요.”“두 분 눈에는 정말 이익밖에 안 보이는 거예요? 그동안 우리 셋이 해외에서 지낼 때는 아무 문제 없이 잘 살았다고 생각했어요.”“그런데 왜 할머니 일만 나오면 두 분이 이렇게 달라지는지, 저는 정말 받아들이기 힘들어요.”찬하는 여전히 할머니를 진심으로 아꼈다. 그래서 정부자가 내린 결정에도 잘못된 점이 없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이해할 수 없는 건 이렇게까지 나오는 자신의 부모였다.“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야. 네가 정말 여기 남아서 살고 싶다면 엄마 아빠도 당연히 네가 제대로 자리 잡기를 바라지.” “원래 이 모든 건 네가 받아야 할 몫이기도 하고. 이 집안의 정식 손자는 너잖아. 할머님 뒤를 이을 사람도 결국 너고.” “다른 사람들은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