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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Author: 천금
눈 부신 불빛 아래.

잘생긴 남자의 얼굴이 눈에 띄게 싸늘해졌다.

그녀의 손목에서 턱으로 자리를 옮겨 온 그의 긴 손가락에 점점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온지은, 결혼이 애들 장난 같아? 하고 싶으면 하고 그만두고 싶으면 그만두게? 내가 네 마음대로 휘둘러도 되는 장난감 같아? 결혼하겠다고 한 사람도 너고. 이혼 얘기를 꺼낸 사람도 너야. 내가 네 말에 순순히 따라 줄 거란 자신감은 도대체 어디서 온 거지?"

"전..."

온지은은 턱이 너무 아파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녀는 아픔을 견디며 흐느꼈다.

"제 잘못이었어요. 결혼하고 나면 감정이라는 게 서서히 싹틀 줄 알았어요. 이럴 줄은 몰랐어요..."

"뭘 몰랐다는 거야? 이렇게 빨리 지칠 줄 몰랐던 거야? 이렇게 빨리 나와 이혼하고 싶어질 줄 몰랐다는 거야?"

"그래요. 이제 지쳤어요."

박시현의 눈빛은 무척 사나웠다.

하지만 온지은은 여전히 고개를 빳빳이 들어 올린 채 항변을 늘어놓고 있었다.

박시현이 갑자기 분노를 터뜨렸다.

박시현은 온지은의 턱을 잡은 채 그녀를 침대에 밀쳐버렸다. 길고 늘씬한 그의 몸이 온지은의 위로 올라탔다. 그리고 사나운 키스가 이어졌다.

미친 듯이 키스를 퍼붓고 있는 그의 눈빛에는 서늘한 한기가 맴돌고 있었다.

이 상황이 싫었던 온지은은 미친 듯이 그를 밀쳐보았지만 그의 힘을 이기기엔 역부족이었다.

결혼한 지 어언 3년, 박시현은 그녀의 몸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그녀를 함락시키는 건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부끄러움과 함께 화가 치밀었다. 온지은은 발로 그를 차려 했다.

손쉽게 그녀의 종아리를 잡아챈 그의 긴 손가락이 치맛자락을 따라 슬금슬금 위로 올라갔다.

그는 그녀의 입술을 놓아주었다.

뜨겁고도 싸늘한 그의 숨결이 귓가를 간지럽혔다.

"온지은, 이혼 얘기 한 번만 더 해. 잔인하게 죽여버릴 테니까!"

온지은은 너무 아파 낮게 신음을 터뜨렸다. 눈물이 더욱 서럽게 흘러내렸다.

그는 그녀의 보청기를 빼버렸다.

박시현은 온지은과 함께 쾌락의 심연 속으로 빠져들었다.

결혼을 하고 3년 동안 박시현은 온지은을 제대로 봐 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렇지만 그는 그녀의 몸을 무척 사랑했다.

오직 침대에서만 그의 아내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쾌락을 탐닉하고 난 뒤.

힘이 빠져버린 온지은은 커다란 침대에 누워있었다. 그녀의 두 눈에 그의 얼굴이 비쳤다.

날 때부터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파티가 있을 때마다 그는 사람들의 주목을 가장 많이 받았다.

그리고 그녀는 장애가 있는 미운 오리 새끼였다. 어린 시절 온지은은 매번 멀찍이 떨어진 구석에서 박시현과 귀한 집안의 여자아이들이 즐겁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부러운 듯 지켜보기만 했다.

그녀가 잠시 다른 생각에 잠겼던 그때.

남자는 여느 때처럼 그녀를 버려둔 채 옷을 말끔히 차려입고 그곳을 떠나려 했다.

깨져버린 웨딩 사진 곁을 지나치다 걸음을 멈춘 그가 싸늘하게 말했다.

"다시 붙여놔."

"..."

온지은은 화가 난 나머지 눈물마저 흘러내렸다.

보아하니 또 한 번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전쟁을 치른 듯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절대 타협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녀는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묵묵히 옷을 차려입었다. 그리고 그를 흉내 내며 아무런 미련 없이 깨져버린 웨딩 사진을 스쳐 지나갔다.

온지은에게는 친구가 별로 없었다.

친정도 믿을 곳은 못 되었다.

유일하게 기댈 곳은 가장 친한 친구인 유지민뿐이었다.

유지민 역시 뉴스를 통해 상황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눈을 한껏 흘겼다.

"쓰레기 같은 그놈에게서 진작에 벗어나야 했어."

"그저 윤이를 떠날 수가 없을 뿐이야."

온지은 역시 존엄마저 잃고 사는 스스로가 한심했다. 하지만 처지가 처지다 보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윤이 걱정은 왜 하는 거야? 박씨 가문 장손으로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데. 못 먹기를 해 옷을 제대로 못 입기를 해. 아니면 즐겁게 뛰어놀지를 못 해? 하연수는 비록 약아빠졌지만 박시현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라도 아이를 해칠 만큼 멍청한 짓은 하지 않을 거야. 그리고 윤이가 즐겁고 행복하게 자라기만 한다면 그 아이가 누구와 더 가깝게 지내든지 그게 뭐가 중요해? 아이가 그렇게 좋다면 재혼해서 하나 더 낳으면 될 거 아니야. 배은망덕한 아이 때문에 네 삶을 그곳에 묶어둬서는 안 돼."

"윤이는 배은망덕한 아이가 아니야. 아직 3살도 안 돼서 아무것도 모를 뿐이야."

온지은은 무의식적으로 아들의 편을 들었다.

"그래서? 그 아이를 곁에 둘 수 있어? 참고 참으면서 헌신하면 박시현 그 쓰레기가 마음을 돌린대?"

"안 되는 거 알아. 그래서 너에게 신세 지려고 왔잖아."

온지은은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걱정 말고 신세 져. 내가 나는 먹여 살리지 못해도 너 하나 먹여 살릴 자신은 있어."

유지민은 가슴팍을 툭툭 쳤다.

유지민은 돈을 물 쓰듯 쓰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근검절약이 몸에 밴 온지은을 먹여 살리기란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운 일이었다.

"참, 이혼하고 스튜디오로 돌아올 거지? 난 네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두 사람이 함께 '아몽' 패션 스튜디오를 만들었을 때 온지은은 자신감과 열의가 충만한 상태였다.

갑작스러운 결혼 때문에 박씨 가문 사모님이란 신분에 묶이지만 않았어도 중도에 스튜디오를 떠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동안 몇몇 작품을 내놓기는 하였지만 아몽 스튜디오가 오늘날의 성적을 거둔 건 오로지 유지민의 노력 덕분이었다.

유지민이 그녀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그녀는 무척 감동했다.

"고마워, 지민아."

그녀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큰 애착을 가지고 있는 본업을 할 때만 온지은은 자신이 퇴물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었다!

...

그날 밤 별장을 떠난 뒤.

박시현은 사흘간의 출장을 떠났다.

차가 별장 앞에 멈추었다.

그는 피곤한 듯 미간을 만졌다. 고개를 들어보니 항상 불이 환하게 켜져 있던 별장이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온지은은 어둠을 무서워했다.

잠에 들었어도 거실과 방의 불은 켜두었던 것이다.

하지만 박시현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차에서 내려 2층의 안방으로 걸어가며 박시현은 불을 전부 켰다.

침실에 도착한 그는 저도 모르게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문을 열자 커다란 안방이 텅 비어있었다. 나무 그림자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방 안을 비춘 달빛에 바닥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불을 켜고 나서야 그 빛이 깨진 유리 조각에 반사된 달빛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온지은은 액자를 다시 붙여놓기는커녕 파편조차 정리하지 않았던 것이다.

사흘 동안 방에 들어오지 않은 건가?

박시현은 미간을 찌푸렸다.

게스트룸으로 온지은을 찾으러 가려던 그때, 언뜻 탁자 위에 놓인 서류가 보였다.

그는 서류를 집어 들었다.

'이혼 협의서'라는 글자를 확인한 박시현의 표정이 점차 바뀌었다...

온지은이 이혼을 하려 해?

박시현은 잘못 본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분명 온지은의 필적으로 사인이 되어 있었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충격이었다.

하지만 이내 우습다는 듯한 코웃음이 뒤를 이었다.

차라리 지구가 멸망할 거라는 말이 더욱 신빙성이 있었다. 온지은이 그와 이혼하려 할 리가 없었다.

온갖 수단을 써 그와 결혼한 온지은은 결국 그의 아이까지 낳았다. 그런 그녀가 그와 이혼하려 할 리가 없었다.

온지은은 점점 분수를 모르고 날뛰고 있었다.

그와 밀고 당기기를 하려 들다니.

이혼?

가출?

며칠이나 버티나 어디 두고 보지!

그는 이혼 협의서를 구겨 쓰레기통에 던져버린 뒤 샤워를 하러 욕실로 들어갔다.

박시현의 생활 리듬은 항상 정확했다.

오직 온지은만이 그의 리듬을 완벽히 맞출 수 있었다.

박시현이 잠에서 깰 때면 온지은은 항상 깨끗하게 다린 옷을 그가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곳에 준비해 두었다.

그가 아래층으로 내려가면 그녀는 맛있는 아침을 식탁에 차려놓았다.

그가 문을 나설 때면 준비된 가방을 그에게 건네주었다.

간단해 보이는 일이었다.

하지만 누구나 정확하게 해낼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박시현은 항상 온지은이 도우미처럼 느껴졌다.

그날 아침.

잠에서 깬 박시현은 깨끗하게 다린 옷을 볼 수가 없었다.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도우미 김청이 어리둥절한 듯 물었다.

"대표님, 이렇게 일찍 일어나셨어요? 아침은 무엇으로 준비할까 고민하던 참이었는데."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했다.

김청은 얼른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대표님. 사모님에게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받지 않으셔서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어요. 제... 제가 국수라도 끓여드릴게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주방으로 가려 했다.

"필요 없습니다."

박시현은 덤덤하게 대답하고는 문으로 걸어갔다.

김청은 죄책감에 몸 둘 바를 몰랐다.

평소 박시현의 일상생활은 전부 온지은이 챙기고 있었다. 게다가 온지은이 항상 집에 있었기에 그녀에게 완벽히 의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얌전하고 착했던 사모님이.

가출을 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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