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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작가: 천금
오늘은 주말이었다.

박시현은 출근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박윤을 보러 본가에 갔다.

멀리서 하연수와 박윤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저도 모르게 걸음 소리를 죽였다.

커다란 아이의 방 안, 아이보리색의 편한 옷을 입은 하연수가 양반다리를 하고 카펫 위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손에 카드를 들고 박윤에게 단어를 가르치고 있었다.

하연수는 무척 열심히 가르치고 있었다.

박윤 역시 배우는 게 즐거운 모양이었다.

박시현은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이렇게 빨리 아이를 가질 생각 역시 없었다.

온지은의 임신 소식을 알게 되었을 때 그는 아이를 지우라는 말부터 꺼냈다.

하지만 온지은은 그걸 바라지 않았다.

박씨 가문의 어른들 역시 그것을 바라지 않았다.

임신 내내 그는 복중에 있는 태아에 별다른 관심을 주지 않았다.

아이가 태어나 처음으로 아이를 본 순간 작고 말랑한 아이의 모습에 시선을 빼앗겼다. 그리고 마음도 움직였다. 그제야 그는 자신이 아빠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온지은을 반쯤 닮은 아이는 그의 자식이었다.

아이는 모든 것을 쉽게 배우고는 했다.

박윤은 어제보다 더욱 많은 것을 배웠다.

방 안에 있는 어른과 아이는.

너무 다정한 나머지 선생님과 제자가 아닌 모자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박윤이 박시현을 발견했다.

아이는 깔깔 웃으며 그에게 달려왔다.

"아빠!"

박시현은 허리를 숙인 채 두 팔을 벌려 그에게 달려오는 아이를 맞이했다. 항상 싸늘하기만 하던 그의 얼굴에 다정한 미소가 번졌다.

"윤이 오늘 얌전히 잘 있었어?"

"윤이 얌전했어... 윤이 아빠 보고 싶었어."

"아빠도 윤이 보고 싶었어."

박시현은 아이를 높이높이 안아 들었다.

아이는 더욱 즐겁게 웃었다.

하연수는 미소를 지으며 다가와 아이의 작은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빠, 윤이가 오늘 단어를 몇 개나 배웠게?"

"몇 개 배웠는데?"

박시현의 시선은 박윤에게 머물러 있었다.

그의 두 눈에는 온통 아들뿐이었다.

"족히 20개는 돼."

하연수는 웃으며 칭찬했다.

"윤이는 정말 똑똑해. 학교에 가면 분명 전교 일 등 할 거야."

"네가 잘 가르친 덕분이지."

박시현 역시 아들의 총명함을 눈치채고 있었다. 무엇을 가르쳐주든 금방 배우곤 했던 것이다.

고개를 숙인 하연수는 수줍은 표정을 지었다.

"오빠, 그런 소리하지 마. 윤이를 돌보는 건 내 책임인걸. 게다가 오빠는 일도 바쁘잖아. 내가 좀 도와줘야지."

그제야 박시현의 눈빛이 그녀에게 닿았다.

"연수 씨, 고마워."

멈칫하던 하연수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섭섭하게 왜 그래. 이건 내 일이야."

잠시 멈칫하던 그녀는 조금 속상한 듯이 말했다.

"오빠, 예전처럼 날 연수라고 불러줘. 연수 씨라니 너무 거북하잖아. 그 말만 들으면 그 기억이 떠올라..."

하연수는 말을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박시현의 표정 역시 어두워졌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는 기분을 아주 빠르게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 곧 그는 웃으며 박윤의 볼을 꼬집었다.

"윤이야, 오후에 아빠랑 같이 승마하러 갈까?"

"승마! 윤이 승마할래!"

아이는 기뻐하며 환호했다.

"그렇게 좋아? 승마 좋지. 윤이의 담력을 기를 수도 있으니까."

하연수는 웃으며 아이의 볼을 꼬집더니 아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자, 아빠 힘들어. 양엄마가 안아줄까?"

"좋아, 양엄마 안아..."

아이는 얼른 그녀에게 다가가 안겼다.

하연수는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가 아이를 안았다. 거리가 가까웠던 탓에 박시현의 깨끗하고 좋은 향기가 분명하게 느껴졌다.

하연수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녀의 가슴 역시 설레고 있었다.

...

온지은은 누군가에게 폐를 끼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그녀는 유지민의 집으로 들어온 직후부터 집을 찾으러 다니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돌아다니고 나서야 적당한 집을 찾게 되었다.

저녁이 되어 침대에 누워 있으려니 조금 외롭기도 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홀가분했다.

그제야 온지은은 박시현과의 생활이 얼마나 숨 막히는 것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가 추울까 봐, 그가 배고플까 봐, 그가 짜증을 낼까 봐 항상 전전긍긍이었다.

항상 그가 먼저였고 그녀 자신은 신경 쓰지도 않았다.

사랑하기 때문에 기꺼이 그럴 수 있었다.

하연수가 갑자기 귀국하지만 않았더라면

아마 지금도 그곳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하연수를 떠올리자 가슴 갚은 곳이 서서히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연희진에게 문자를 보내 박윤의 상황을 물어보려던 그때, 유지민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유지민은 그녀에게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네 그 배은망덕한 아들 말이야. 지금 무척 행복한 모양이야.]

사진을 눌러보니 박시현과 하연수 그리고 박윤이 함께 승마를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박윤은 커다란 말 위에 앉아 있었다. 박시현은 한 손으로 고삐를 끌며 다른 한 손으로 아이의 팔을 잡은 채 차근차근 승마를 가르치고 있었다.

하연수는 박시현의 곁에 서서 손수건으로 그의 땀을 닦아주고 있었다.

가뜩이나 욱신거리던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졌다.

유지민의 문자가 이어졌다.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세상이야. 너만이 널 챙길 수 있어.]

[남자가 무슨 소용인데? 가족이 무슨 소용이야. 그 아무도 네가 헌신할 만큼 대단한 존재가 아니야.]

그래.

남자가 무슨 소용이지?

게다가 그녀를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가.

가족이 무슨 소용이지?

어머니, 동생, 아들... 그 누구 하나 그녀를 진짜 가족으로 대하는 이가 없었다.

온지은은 코를 훌쩍였다.

그녀는 유지민에게 씁쓸한 표정의 이모티콘을 보냈다.

"네 말이 맞아. 오로지 나만이 나를 챙길 수 있어."

승마장에서 너무 즐겁게 놀았던 탓인지.

저녁이 되어 집으로 돌아왔을 때 박윤은 이미 잠들어 있었다.

박시현은 조심스럽게 아이를 침대에 눕혔다.

곁에 있던 하연수는 다정하게 박윤의 이불을 덮어 주었다. 실내 온도를 조절한 뒤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박시현을 바라보았다.

"시현 오빠. 시간이 늦었는데 본가에서 자고 가."

박시현은 넥타이를 풀어 헤쳤다. 피곤이 역력한 기색이었다.

하지만 그는 하연수의 호의를 거절했다.

"지금 돌아갈 거야."

하연수는 조금 실망했지만 더 이상 뭐라 할 수도 없었다.

"그럼 안전 조심해."

"그래."

박시현이 아래층으로 내려왔을 때.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던 김혜순이 말했다.

"그 귀머거리가 이혼하자고 했다면서?"

박시현의 걸음이 멈추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김혜순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했다.

"어머니, 그 사람에게도 이름이 있어요. 귀머거리라 부른다면 윤이가 따라 할 거예요."

"됐다. 윤이도 없잖아."

김혜순은 불퉁하게 말을 이었다.

"하물며 귀머거리와 결혼까지 했으면서 윤이가 그 말을 들을까 봐 걱정되는 거야?"

"전혀 상관없는 일이잖아요. 일찍 주무세요."

박시현은 떠날 준비를 했다.

김혜순이 다시 입을 열었다.

"언제 이혼할 생각이냐? 내가 미리 준비해 두마."

박시현은 다시 김혜순을 마주했다.

"뭘 준비하시게요?"

"너와 연수의 결혼 말이다."

김혜순은 2층에 있는 박윤의 방을 힐끗 쳐다보았다.

"너도 봤잖아. 윤이는 연수를 무척 좋아해. 연수도 윤이를 좋아하고. 두 사람 모자보다도 더 다정하잖아."

박시현의 얼굴에서 기뻐하는 기색은 찾을 수가 없었다.

김혜순은 그런 아들이 의아했다.

"왜 그러는 거야? 너 귀머거리 싫어하잖아. 겨우 그 아이의 입에서 이혼이란 말이 나왔는데 왜 기뻐하지 않는 거야?"

그랬다.

기뻐해야 마땅했다.

하지만 마음속에 뭔가가 걸린 것처럼 몹시도 답답했다.

"시현아, 너 설마 귀머거리 좋아하게 된 건 아니지?"

김혜순은 경계하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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