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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Author: 천금
"아니에요."

박시현은 생각을 거치지도 않고 부정부터 했다.

귀머거리를 좋아하게 되었냐고?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김혜순은 다시 말을 이으려 했다. 하지만 박시현이 그런 그녀의 말을 가로챘다.

"됐어요, 어머니. 온지은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혼은 생각해 본 적도 없어요."

"뭐라고?"

김혜순은 놀라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시현아, 평생 귀머거리와 함께 살 생각이야? 우리 박씨 가문의 체면은?"

"박씨 가문의 체면 때문에 온지은과 결혼했잖아요."

"3년 전에는 네 할아버지가 억지를 부리셔서 그런 거고. 이제 할아버지는 아무 일에도 관여하지 못해. 그러니 귀머거리 때문에 네 행복을 망칠 필요가 없단 말이야."

자리에서 일어난 김혜순은 그에게 다가와 어깨를 두드렸다.

"시현아, 행복은 스스로 챙겨야 하는 거야. 도덕적인 책임감에 너무 매여있지 마."

박시현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박시현은 한참이 지나서야 덤덤하게 대답했다.

"알겠어요."

별다른 말은 없었다.

그는 대문으로 걸음을 옮겼다.

박시현은 차를 몰고 마운틴 별장으로 돌아왔다.

커다란 별장은 어제와 다름없이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불빛도 없었고 익숙한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단추를 풀며 위층으로 올라갔다.

안방으로 들어가니 산산조각이 난 웨딩사진이 보였다.

김청이 치우려고 했지만 그가 제지했다.

그는 집으로 돌아온 온지은이 직접 사진을 하나하나 붙인 뒤 벽에 걸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박씨 가문의 사모님 노릇을 계속해서 이어갈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밤에는 온지은이 집으로 돌아올 줄 알았다.

하지만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다.

돌아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에게 문자 한 통 보내지 않았다.

가뜩이나 짜증이 났던 그는 사람 하나 패버리고 싶을 만큼 점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소파에 외투를 던져두고 담배에 불을 붙인 그는 힘껏 담배를 빨아들인 뒤 비서 이혁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곧 이혁수가 전화를 받았다.

"대표님, 이렇게 늦은 시간에 무슨 일이십니까?"

"내 아내는 어디로 가서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거지?"

"네?"

순간 이혁수는 그의 뜻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늦은 밤에 그에게 전화를 건 이유가 사모님의 행방을 묻기 위해서라고?

사모님은 평소 마치 로봇처럼 굴었다. 한 번도 대표님의 심기를 거스르는 적이 없었다. 아마 심기를 거슬렀다고 해도 대표님은 신경조차 쓰지 않았을 것이다.

박시현 역시 그 점을 깨달은 듯했다.

그는 말투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아내가 며칠째 투정을 부리고 있어. 전화 좀 걸어봐."

"네?"

이혁수는 다시 한번 놀라고 말았다.

사모님이 투정을 부린다고?

정신을 차린 뒤, 그는 얼른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대표님. 너... 너무 놀라서 그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대표님. 지금 당장 사모님을 모셔 오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어."

박시현은 담배를 가볍게 빨아들이며 천천히 연기를 내뱉었다.

"가서 전해. 사흘 내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영원히 돌아올 생각하지 말라고."

이혁수는 그의 명령을 받아들였다.

"알겠습니다, 대표님. 내일 사모님께 전하겠습니다."

그는 알고 있었다.

대표님은 체면이 중요했다.

직접 사모님에게 돌아오라고 전할 수야 없었던 것이다.

...온지은은 그동안 출근은 하지 않았지만 유지민을 도와 디자인을 했었기에 일터로 다시 돌아오는 데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다.

이른 아침 그녀는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멀리 스튜디오 앞에 이혁수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를 기다리는 듯했다.

"사모님, 대표님께서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이혁수는 박시현의 곁에서 5년 동안 일을 해 온 사람이었다. 그는 온지은에게 꽤 예의 바른 편이었다.

"비서님, 말씀하세요."

"음..."

이혁수는 조금 민망했지만 그래도 하나도 빠짐없이 대표님의 말을 전달했다.

"대표님께서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사흘 내로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면 평생 돌아오지 않아도 좋다고."

좋은 얘기는 아닐 거라 예상했다.

온지은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비서님, 대표님에게 전해주세요. 이미 탁자 위에 이혼 협의서를 남겨 두었다고."

"네?"

이혁수는 다시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이혼 협의서?

게다가 사모님이 먼저?

잘못 들은 건 아니겠지!

온지은은 별다른 말 없이 예의를 갖추어 그에게 미소를 지은 뒤 스튜디오로 들어갔다.

이혁수는 박시현에게 결과를 보고하기 위해 마운틴 별장으로 향했다.

공손하고도 진지하게 온지은의 말을 곧이곧대로 박시현에게 전한 그는 조심스럽게 질문을 보탰다.

"대표님, 제가 이혼 협의서를 찾아볼까요?"

고개를 들고 나서야 발견하게 되었다. 마치 다 타버린 프라이팬처럼 어두워진 박시현의 얼굴을.

"어... 대표님, 괜찮으세요?"

"난 괜찮아. 눈이 멀지도 않았고."

박시현은 이를 악문 채 대답했다.

그렇게 잘 보이는 곳에 놓아둔 이혼 협의서를 못 보았을 리가 없었다.

벌써 찢어버린 지 오래였다.

분노로 가득 찬 그의 모습을 보며 이혁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대표님, 사모님께서 이혼에 동의하셨는데... 기쁘지 않은 겁니까?"

박시현의 표정이 더 일그러졌다.

모두 그가 기뻐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전혀 즐겁지 않았다.

"내가 기뻐해야 해?"

"어..."

그제야 귀머거리에게 이혼을 당했다는 사실이 무척 쪽팔린 일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이혁수는 다급히 말을 덧붙였다.

"대표님, 걱정하지 마세요. 사모님께서는 정말 이혼하고 싶은 게 아닐 겁니다. 그저 밀당 작전일 뿐이에요. 일부러 그러는 걸 겁니다. 사흘이 지나기도 전에 분명 돌아오실 겁니다."

박시현의 표정이 한결 편해졌다.

그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몰랐다.

그 사흘이 이토록 빠르게 흐를 줄은 말이다.

사흘 뒤.

'밀당 작전'을 펼치고 있는 박씨 가문의 사모님은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전화 한 통 없었다.

처음에 박시현은 별것 아니라 생각했다.

하지만 점차 무척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 어떤 것을 봐도 화부터 치밀었다.

이른 아침, 원하는 넥타이를 찾을 수 없다는 이유 하나로 쓰레기통을 멀리 차버렸다.

김청은 놀라 벌벌 떨면서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저 조심스럽게 건의할 뿐이었다.

"대표님, 사모님에게 전화를 걸어 여쭤보세요. 항상 사모님께서 드레스룸을 정리하셨으니까요."

박시현은 당장에 거절하려 했다.

하지만 그는 다시 거절의 말을 삼켜버렸다.

결국 창문 앞으로 다가간 그는 한 손을 허리춤에 올린 채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온지은이 가출한 지 일주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박시현은 처음으로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는 아주 빨리 연결되었다.

박시현은 으쓱하며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겉으로는 단단한 척 굴고 있어도 매일 그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던 게 뻔했다.

"사모님, 밀당을 아주 제대로 하시는 군 그래. 그러다 수습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면 어떡하려고?"

온지은은 신발을 신고 집을 나설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박시현의 전화에 그녀는 순간 얼어붙고 말았다.

곧 그녀는 신발을 신으며 물었다.

"대표님, 이른 아침부터 무슨 일이시죠?"

말투는 이상하리만치 덤덤했다.

그건 박시현이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의 입꼬리가 제자리를 되찾았다.

"내 파란색 넥타이 어디에다 뒀는지 물어보려고."

"모든 넥타이는 넥타이를 넣어두는 서랍 안에 있으니 직접 찾아보세요. 못 찾겠다면 아주머니에게 도와달라고 하세요."

온지은은 집을 나섰다.

엘리베이터가 닫히려는 것을 본 온지은은 얼른 달려갔다.

"잠깐만요."

엘리베이터 문이 다시 열렸다.

얼른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간 그녀는 안에 있던 사람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휴대폰 너머로 경쾌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박시현은 순간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지은!"

그는 화를 내며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한창 출근 시간이라 엘리베이터에는 사람이 조금 많았다.

온지은은 자리를 잡고 선 뒤에야 그에게 물었다.

"대표님, 용건이 더 남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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