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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Penulis: 천이설
매니저는 마치 기회라도 잡은 사람처럼 쉴 틈 없이 말을 뱉어냈다.

“채아 씨, 대표님은 겉보기에 차가워도 속은 누구보다 따뜻하신 분입니다. 결혼하게 되면 분명 아내만 바라보고 든든하게 지켜줄 거예요. 강지유 씨 아시죠? 제 멋대로인 그분도 저희 대표님 앞에서는 한마디도 못 하십니다. 그리고 채아 씨, 무엇보다 대표님과 결혼하시게 되면 채아 씨는 박도윤 씨의 손윗사람이 되시는 거예요. 만약 박도윤 씨의 행동이 마음에 안 드시면 손윗사람이라는 명목으로 언제든지 마음대로 꾸짖고 호통칠 수 있죠.”

아무리 박도윤의 사회적 지위가 강재혁보다 아래라고 해도 나름 해정 그룹의 대표이기에 함부로 할 수 없다. 하지만 강재혁의 아내가 되면 지위를 이용해 가볍게 짓눌러버릴 수도 있고 박도윤과 강지유에게 복수할 수도 있게 된다.

아마 이보다 더 통쾌한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문채아는 알고 있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을.

박도윤의 옆자리에 있는 것도 눈치를 봐야 하는 마당에 어떻게 강재혁의 옆자리를 탐낼 수 있을까.

강재혁은 좋은 사람이라 분명 나중에 그와 똑같이 좋은 사람을 곁에 둘 것이다.

문채아는 그 여자가 자신이 될 가능성 따위 없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매니저님 말대로 강재혁 씨와 결혼하게 되시는 분은 분명 엄청 행복할 거예요. 나중에 강재혁 씨가 결혼하게 되면 축의금을 두둑이 넣어줄 생각이에요.”

문채아의 말에 매니저는 갑자기 꿀 먹은 벙어리가 된 것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표정도 매우 기이하게 변했다.

그리고 의사가 치료를 다 마친 뒤에는 서둘러 의사의 팔을 잡으며 인사도 없이 빠르게 호텔방을 나섰다.

문채아는 그 모습에 고개를 갸웃했다.

사람들이 가고 넓은 방에 혼자 남겨지자 갑자기 아침부터 쌓였던 피로감이 확 덮쳐오는 것 같았다.

문채아는 옷을 갈아입을 힘도 없어 그대로 침대에 털썩 누웠다. 등이 배긴 듯해 손을 넣어보니 그녀의 휴대폰이 있었다.

문채아는 휴대폰을 집어 든 후 메시지를 확인하려다가 그만 손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앨범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지난 3년간, 박도윤과 비밀 연애를 했다고는 해도 커플이 다 그러하듯 그들도 사진을 많이 찍었다.

이제껏 찍은 사진 중에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사진은 1주년 기념일 날 박도윤이 그녀와 함께 피규어를 만들었던 사진이다.

두 사람이 간 곳은 작은 규모의 공방이었다.

박도윤과 문채아는 1주년 기념으로 서로의 얼굴을 만들어 주기로 했다. 어릴 때부터 도예를 좋아했던 문채아는 익숙하게 도구를 다루며 빠르게 얼굴 형태를 만들어 나갔다.

반면 박도윤은 지점토와 친하지도 않았거니와 손재주가 별로 없어 얼굴에 잔뜩 묻히기만 하고 제대로 된 형태조차 만들어내지 못했다.

하지만 문채아는 그런 그의 모습마저도 사랑스럽게만 느껴졌다. 그래서 박도윤 몰래 카메라를 들어 잔뜩 엉망이 된 그의 얼굴을 찍었다.

하지만 바로 들켜버렸고 박도윤은 긴 팔을 뻗어 그녀의 허리를 와락 감싸안았다. 그러고는 자신의 무릎에 앉히며 함께 사진을 찍었다.

사진 속 문채아는 박도윤의 손을 이리저리 피하며 활짝 웃고 있었고 박도윤은 그런 그녀의 얼굴을 사랑스럽다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사진이라 문채아는 그 사진에 [나의 빛]이라는 이름을 달아주고 따로 보관까지 해두었다.

빛이라고 저장한 이유는 말 그대로 그녀에게 있어 그는 빛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빛은 언제부터인가 어둠으로 바뀌어버렸다.

문채아는 넋을 잃은 채 사진을 보고 있다가 갑자기 튀어나온 알림창에 빠르게 정신을 차렸다.

알림창의 내용은 강지유가 게시물을 올렸다는 것이었다.

강지유는 자랑하는 걸 워낙 좋아하는 사람이라 게시물만 해도 몇백 개가 넘었다. 그래서 SNS에서는 반쯤 인플루언서로 통하기도 했다.

그녀가 오늘 올린 사진은 레오나 브랜드의 구두를 신고 있는 사진이었다.

그런데 비싼 구두를 신어놓고 지저분하게 깨져있는 피규어 위에 서 있었다.

[우리 자기가 나한테 선물해 준 새 구두예요. 너무 예쁘죠?]

사진을 올린 지 1분도 안 돼 사람들이 너도나도 댓글을 달았다.

[헉, 어제는 크리스탈 구두에 오늘은 레오나 신상 구두예요? 대박. 너무 부럽다.]

[약혼자분이 언니를 엄청 많이 사랑하시나 봐요.]

[그런데 언니, 대체 뭘 밟고 계신 거예요? 혹시 피규어예요? 그리고 바닥은 왜 그렇게 지저분해요?]

강지유는 뭘 밟고 있냐는 사람의 댓글이 올라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답변했다.

[신경 쓰지 마세요. 곧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게 될 쓰레기일 뿐이니까.]

문채아는 강지유의 답변을 보자마자 바로 홈 화면으로 나왔다.

강지유가 밟고 있었던 그 피규어가 꼭 박도윤과 함께 만들었던 그 피규어 같았기 때문이다. 아니, 그 피규어가 맞았다.

문채아는 그날 박도윤과 함께 만든 피규어를 침실 서랍 안에 고이 넣어두었다. 행여라도 부서질까 봐 신경 써서 관리한 피규어인데 그 피큐어를 강지유가 찾아내 버렸다.

심지어 찾아낸 것도 모자라 형태도 알아볼 수 없게 깨부수고는 구두로 밟아버리기까지 했다.

사실 문채아는 1분 전까지만 해도 박도윤과 함께 찍은 그 사진만큼은 이대로 남겨둬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생각이 모조리 사라져 버렸다.

문채아는 앨범으로 들어간 후 그 추억의 사진을 포함한 박도윤과 함께 찍었던 모든 사진을 싹 다 삭제해 버렸다.

클라우드에 올라간 것들도 전부 삭제하며 박도윤과 함께했던 흔적을 완전히 지워버렸다.

어차피 비밀로 했던 연애였으니 큰 상실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박도윤은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문채아와 함께 놀이공원도 한번 가주지 않았고 영화도 함께 보지 않았으며 그럴싸한 선물도 주지 않았다.

그래서 두 사람에게 남아있는 거라고는 사진밖에 없었는데 이제는 그 사진마저 다 사라져 버렸으니 함께했던 3년은 없던 시절과 다를 바 없었다.

그때 문영란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예전의 문채아는 발신자가 엄마인 게 확인되면 샤워하는 도중이라도 전화를 받았다. 문영란이 중요한 일로 그녀에게 전화한 것일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문채아는 전화를 받을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받지 않아도 뭐라 얘기할지 예상이 갔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전화를 끊어버리고는 아예 무음 모드까지 해놓았다.

문채아는 더 이상 그 누구에게도 끌려다니고 싶지 않았다. 이제는 그 누구도 자신보다 우선순위에 두고 싶지 않았다.

가족도 사랑도 그녀보다 더 소중한 건 없으니까.

문채아가 마음을 다잡으며 심호흡하고 있던 때, 갑자기 다급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쿵쿵쿵.

누군가가 미친 듯이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찰칵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멋대로 열려버렸다.

깜짝 놀란 문채아는 얼른 침대에서 일어나 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았다.

“연우...?”

생각지도 못한 얼굴에 문채아가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나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주연우는 잔뜩 화가 난 얼굴로 친구를 노려보았다가 이내 눈이 빨개져서는 문채아를 와락 끌어안았다.

“너는 왜 나한테 연락을 안 해! 이 시간 이후로 무슨 일 생기면 가장 먼저 나한테 전화해. 알겠어?”

주연우는 강재혁에게서 모든 걸 다 전해 들은 후 바로 차를 몰고 호텔로 향했다. 가는 길, 그녀는 박도윤의 욕을 미치도록 하며 눈물도 펑펑 흘렸다.

문채아는 주연우에게 그 어떤 말도 건네지 않았다. 그저 친구의 품에 안긴 채 흐느끼기만 할 뿐이었다.

...

한편, 강재혁은 회사에서 나온 후 곧장 개인 별장으로 향했다.

별장에 도착해서는 늘 그렇듯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어 헤친 채 서류부터 훑어보았다.

그때 누군가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고 강재혁은 스피커를 켠 후 휴대폰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부탁한 일은 어떻게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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