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 ㅇ, 왜.”손을 잡고 살피던 채원이 고개를 들어 태건을 바라봤다. 아까까지 올라가있던 입꼬리가 조금 경직되어 있었다.“왜긴요. 상처 봐야죠.”채원이 눈썹을 올리며 말했다. 당연한 걸 묻고 있냐는 눈빛이었다.“장 비서가 알아서 잘했을 텐데.”태건의 말에 채원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그의 손을 더 꽉 잡았다.“응급처치라면서요. 제대로 소독하고, 상처도 어떤지 봐야 할 거 아니에요.”채원의 말에 태건은 입술을 꾹 닫았다. 아까까지 신나게 놀릴 땐 언제고, 갑자기 조용해진 모습에 채원이 의아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먼저 알아서 상처를 보여줄 생각은 없는 모습에, 채원은 잡았던 손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잠깐 있어요.”당부하듯 말하며 그녀가 몸을 돌렸다.태건은 채원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시선을 내려 제 손을 바라봤다. 자신의 손을 꽉 잡던 그녀의 손길이 아직도 느껴지는 것 같았다.잠시 후, 채원이 작은 구급상자를 들고 돌아왔다. 소파 앞 테이블에 상자를 내려놓은 그녀가 태건을 바라봤다.“여기 앉아요.”태건은 순순히 소파에 앉았다. 채원은 그의 옆에 앉아 구급상자를 열었다. 소독약과 거즈를 꺼내놓은 뒤, 태건의 손을 잡아 제 쪽으로 끌어왔다.“풀게요.”“응.”채원은 조심스럽게 붕대를 풀기 시작했다. 몇 겹이나 감겨 있던 붕대가 하나씩 풀리고, 이내 안쪽에 가려져 있던 상처가 모습을 드러냈다.상처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깊었다. 다행히 지훈이 응급처치를 잘한 건지, 피는 멎은 상태였지만 안쪽의 붕대는 스며든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태건의 상처를 살핀 채원이 미간을 좁혔다.“이걸 병원도 안 가고…….”태건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제 손을 붙잡고 있는 채원을 내려다봤다. 잔뜩 미간을 찌푸린 채 상처를 바라보는 얼굴이 지나치게 진지했다.소독약을 묻힌 거즈를 집어 든 채원이 조심스럽게 상처 주변을 닦기 시작했다.“아프면 말해요.”“괜찮아.”“괜찮다고 하지 말고, 아프면 말해요.”채원이 최대한 조심스럽게 손을 움직였다
“그나저나 장 비서가 알면 되게 실망하겠네. 윤채원이 평소에 자기를 그런 식으로 생각할 줄 모르고 있을 텐데.”태건의 말에 채원이 다급하게 고개를 들었다.“이게 다 태건 씨 때문이잖아요!”억울하다는 듯 항변하는 그녀에 태건은 고개를 갸웃거렸다.“내가 뭘?”뻔뻔하다고 해야 할지, 당당하다고 해야 할지. 채원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에 황당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내가 뭘이라뇨? 태건 씨가 말을 똑바로 했으면 나도 오해를 안 했잖아요!”“글쎄. 오해라는 것도 평소 가지고 있던 편견에서 나오던데.”태건의 말에 채원이 입을 꾹 다물며 그를 노려봤다. 나름 위협이라고 생각하며 한 행동이었지만, 태건은 웃음만 나올 뿐이었다.‘그래도 계속 놀리면 화내겠지.’위협이라기엔 가당치도 않았지만, 태건은 그녀의 심기를 맞춰줄 겸 미안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사과라기엔 입가에 희미하게 걸려있는 미소가 탐탁지 않았지만, 채원은 작게 숨을 내뱉으며 태건의 손을 바라봤다.“아무튼. 이건 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건데요?”채원의 물음에 태건은 별일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그냥. 오늘 현장 나갔다가 거기서 다쳐서 장 비서가 응급처치해 준 거야.”덤덤하게 말하는 태건과 달리 채원은 당황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현장에서 다쳤다고요? 무슨 현장?”“건설사 현장. 회장님이 한 번 갔다 오라고 해서…….”“근데 붕대로 끝낸 거예요?”채원의 언성이 높아졌다. 갑자기 또 화를 내는 모습에 태건은 두 눈을 깜빡거렸다. 대체 어느 지점에서 또 화가 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병원 갈 시간이 없으니까.”태건은 당연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 당연함에 채원은 헛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병원 갈 시간이 없다니. 이게 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그게 말이 돼요? 다친 사람이 무슨 병원 갈 시간도 없어요!”“현장 갔다가 곧바로 미팅 갔어야 했거든.”“그러면 미팅 시간을 미루면 되잖아요!”“그거 끝나면 또 다른 미팅이 있어서.”“날짜를 바꾸든가!”“날짜
한참을 말없이 바라만 바라보다, 태건이 먼저 고개를 돌리며 시선을 피했다.그 모습에 조용하던 주변의 소음이 다시 귓가에 울리고, 채원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렸다.방금까지 무슨 생각을 한 건지, 다시 곱씹으면 경악을 금치 못할 것들이었다.아무래도 뭐에 홀리거나, 이제 정말 미치기라도 한 건가 싶던 순간이었다.“윤채원한테는 지금 이것들이 다 이상하고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겠지.”“…….”태건의 말에 채원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언제 다 먹은 건지, 태건은 빈 막대기를 손에 쥐고 공원에 나온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서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 혼자 노래를 듣는 모습, 벤치에 앉아 허공을 바라보는 모습.태건을 따라 사람들을 바라보던 채원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언제부터 보고 있던 건지, 고개를 돌리자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그래도 나쁘지 않지?”채원을 보며 태건이 작은 미소를 지었다. 채원은 그런 태건을 보며 입술을 지그시 물었다.뭐가 이상하고 뭐가 나쁘지 않다는 건지. 이 남자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기는 하는 걸까. 분명히 모를 텐데, 알 리가 없는데도 채원은 그가 꼭 제 마음을 다 알고 말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그 이상함에 흔들리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던 채원이 먼저 시선을 피했다.“나쁘지 않기는요. 이상하기만 한데.”고개를 돌린 그녀가 괜히 툴툴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태건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다 작게 미소 지으며 시선을 돌렸다.옆에서 들리는 작은 웃음소리를 들으며, 채원은 괜히 들고 있던 아이스크림을 한 입 크게 물었다.조금 전까지는 별맛이 느껴지지 않던 아이스크림이, 이상하게 지금은 꽤 달게 느껴졌다.* * *야밤의 외식 사건 이후, 며칠동안 먹었던 죽도 일반식으로 변경되기 시작했다.가정부는 드디어 보양식을 챙겨줄 수 있겠다며 들떠했고, 태건은 별 반응은 없었지만 더 이상 죽을 먹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조금 안도감을 보이는 듯 했다.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이 맞
“간다는 곳이 편의점이에요?”아이스크림이 가득 차 있는 냉동고 앞에서 채원이 못마땅한 눈으로 태건을 바라봤다.어디 가는지 얘기도 안 해주고 먼저 포장마차를 나가버렸던 태건이었다.채원은 혹시라도 놓칠까 다급하게 그를 쫓았지만, 어처구니없게도 태건이 향한 곳은 바로 옆에 있던 편의점이었다. 놓칠까 봐 서둘렀던 게 허무해졌다.그런 채원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태건은 여유롭게 편의점에 들어와 곧바로 아이스크림 앞으로 갔다.유심히 냉동고 안을 바라보던 태건이 고개를 돌렸다. 옆에서 툴툴대는 채원의 표정이 보였다.“편의점이 싫으면 다른 데 갈래?”“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채원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강태건은 눈치가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이 무슨 말 하는지 못 알아들을 리 없었다. 다 알아들었으면서, 모르겠는 척하는 저 표정이 어이가 없었다.하지만 태건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채원은 그런 그를 보며 한숨을 내뱉었다.“이 야심한 밤에 무슨 아이스크림이에요?”나무라듯 말하는 그녀에 태건은 냉동고로 시선을 다시 돌리며 말했다.“당분도 챙겨줘야 해.”“아까 떡볶이에 충분히 들어있던 것 같던데요.”“그거랑 그거랑 달라.”대체 뭐가 다르다는 건지. 채원은 말이 안 통하는 태건을 보며 다시 한숨을 내뱉었다.‘이럴 거면 아주 영양사를 하지.’눈을 가늘게 뜨며 태건을 바라보던 그때였다.한참 동안 냉동고를 가만히 바라보던 그가 결심했다는 듯 문을 열고 아이스크림 하나를 집었다.요거트 맛의 막대 아이스크림이었다. 하나를 고른 그가 고개를 돌려 채원을 바라봤다.“뭐 먹을래?”태건의 물음에 채원은 고개를 저었다.“별생각 없어요.”“그래? 그러면 이거 먹어.”생각 없다는 말을 뭘로 알아듣는 건지. 채원의 말에 태건은 고개를 끄덕이며 처음에 고른 요거트 아이스크림을 하나 더 집었다. 그러고는 그대로 채원을 지나쳐 계산대로 향했다.계산대에서 아까부터 두 사람을 기다리던 직원이 태건이 아이스크림을 내려놓자마
채원의 물음에 태건이 피식 미소를 흘리며 말했다.“부잣집 도련님 새끼는 이런 거 안 먹냐?”“…….”“그렇게 말했었어.”태건의 말에 채원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실제로 보진 못했지만, 태건을 향해 비아냥거리는 지훈의 모습이 자동으로 머릿속에 그려졌다. 늘 재벌이라는 존재에 반감을 보이던 지훈이었기에, 상상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그런 걸 보면 지훈과 태건은 대체 어쩌다 친해진 건지 의문이 들었다.둘이 성격이 잘 맞는 것도 아니고, 적어도 채원이 보는 지훈의 모습은 무뚝뚝하거나 혹은 태건을 향해 화를 내거나 둘 중 하나였다.그런 두 사람이 어릴 적부터 친구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둘이 친해지는 과정은 머릿속에서 쉽게 그려지지 않았다.조용히 혼자 생각하던 채원은 이내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이런 것까지 알아서 좋을 건 없었다. 애초에 그녀가 관심을 가질만한 일도 아니었다.‘신경 쓰지 말자. 어차피 남이 될 사이에.’스스로에게 경고하듯 생각하던 채원이 떡을 하나 더 집어 입에 넣었다. 매콤한 맛이 입안에 다시 퍼지자, 경고고 뭐고 다시 입맛이 살아나는 기분이었다.그렇게 맛있게 주문한 떡볶이를 계속 먹던 그때였다.채원을 바라보던 태건이 픽 웃으며 그녀를 불렀다.“윤채원. 너 얼굴에 떡볶이 소스 묻었는데.”태건의 말에 채원이 화들짝 놀라며 들고 있던 젓가락을 내려놨다.“어디요?”채원이 다급하게 한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물었다. 휴지를 찾는 행동에 태건이 옆에 있던 휴지를 몇 장 뽑아 그녀에게 건넸다.“오른쪽.”“여기요?”휴지를 건네받은 채원이 오른쪽 볼을 문지르며 물었다.그녀의 물음에 태건이 고개를 저었다.“아, 아니. 네 기준 왼쪽.”태건의 말에 채원이 이번엔 왼쪽 볼을 문질렀다. 태건은 엉뚱한 곳을 문지르는 채원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아니. 그 옆이야.”“여기?”“거기 말고.”“여기요?”열심히 알려줘도 자꾸만 냅킨은 엉뚱한 곳만 문지르고 있었다.결국 보다 못한 태건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거기 말
“맛있어?”태건이 그녀를 보며 물었다.채원은 그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맛있었다. 일주일 내내 죽만 먹다가 자극적인 음식을 먹어서 그런가, 만족감이 평소보다 배는 커진 것 같았다.그 모습에 태건이 픽 미소를 지었다.“잘 먹네.”그가 감상하듯 바라보며 말했다. 나지막한 목소리에 채원은 조용히 입술 안쪽을 지그시 물었다. 별것 아닌 말인데, 이상하게 낯간지러운 기분이 들었다. 채원은 괜히 떡볶이를 휘적거렸다. 분명 이 이상한 기분은 그의 시선이 부담스러워서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가 입술을 삐죽였다.“…… 먹을 때마다 그렇게 보지 좀 마요.”채원의 투덜거림에 태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왜?”“왜긴요. 부담스러우니까 그러죠.”“부담스러워?”태건이 그녀의 말을 따라 하며 되물었다. 그의 물음에 순간 채원의 젓가락질이 멈췄다.‘부담스럽다는 말은 좀 너무했나?’어찌 됐든 걱정해 주는 사람인데. 채원은 눈을 굴리며 잠시 고민하다가 말을 정정했다.“…… 그러니까 내 말은, 이제 안 굶으니까 감시할 필요 없다는 말이에요.”그녀가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나름 한번 강하게 나가려다, 또 미안한 마음에 한 걸음 물러나는 것처럼 보였다.태건은 그런 채원을 가만 바라보다가 이내 피식 웃었다.“윤채원.”“…… 왜요.”채원을 부른 태건이 종이컵에 어묵 국물을 따랐다. 그리곤 그녀의 앞에 놓아주며 말했다.“네 기분 얘기할 때, 다른 사람까지 신경 쓸 필요 없어.”“…….”“하고 싶은 말 있으면 그냥 해도 돼.”채원은 천천히 두 눈을 깜빡였다. 지금 강태건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까? 아마 모를 것이다. 그러니 저렇게 태연한 얼굴로 어묵 국물이나 마시고 있는 거겠지.채원은 가만히 태건을 바라보다가, 이내 시선을 돌리며 그가 건넨 어묵 국물을 마셨다.이상하게 목이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근데 태건 씨는 이런 데 와본 적 있어요?”자꾸만 울렁거리는 마음에, 채원은 마음을 추스를 겸, 화제를 돌렸다.채원의 물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