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서 눈물이 나올 것만 같은 도아린은 일부러 고개를 돌렸다.“건후 씨의 산삼과 비교하면 향낭은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다른 사람한테 요구하기 전에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부터 되돌려 보세요! 받아들이기 어렵다면 하루빨리 이혼해요. 서로한테 피해주지 말고요.”“서로한테 피해를 주지 말자고?”배건후가 피식 웃고 말았다.마음속에서는 파도가 넘실거리고 있었다.배건후는 시시때때로 중저음에 그윽한 눈빛을 보내오면서 매력 발산하고 있었다.배건후가 지퍼를 열고 셔츠 단추를 여는 순간 복근이 드러났다. 완벽한 치골 라인까지 보여 시선을 돌릴 수 없었다.“난 도전하기 좋아하는 사람이야. 순종적인 사람은 보기만 해도 질려. 오히려 너같이 화끈한 사람이 좋아.”배건후는 빨개진 도아린의 귀를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담담하게 말했다.“과연 무슨 맛일까.”도아린은 옷깃을 여몄다.배건후의 입에서 이런 말을 듣자니 더럽다기보다 매력이 넘쳤다.하지만 이혼은 필수였기 때문에 도아린은 그의 매력에 넘어가지 않았다.귀가 빨개진 것은 그저 화가 나서였다.“건후 씨, 보미 씨가 최근에 입었던 옷들이 많이 노골적이던데 그 욕구를 참지 못하고 여기서 발산하는 거예요?”배건후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도아린의 허리를 꽉 잡고는 그녀의 배꼽을 어루만졌다.도아린은 그만 몸이 굳어버리고 말았다.배건후를 자극해봤자 소용없다는 걸 알았지만 그가 홧김에 정말 덮칠까 봐 두려웠다.도아린은 급히 그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보미 씨는 건후 씨만 바라보고 있는데 지금 이러는 거, 너무하지 않아요?”차는 가로등 밑에 세워져 있었다.배건후가 몸으로 불빛을 막는 바람에 차 안의 분위기는 더욱 야릇해졌다.그는 허리를 숙여 도아린의 귓불을 깨물었다.이때 비웃음이 가득한 말투가 들려왔다.“보미 씨는 몸매를 유지해야 해서 쌀 한 톨도 세어가면서 먹는 사람이야. 너같이 거친 사람이랑은 달라. 너는 거칠게 대하기 딱 좋아.”‘하긴. 한번 하면 7날이나 입원해야 하고 3년이나 휴식해야 하잖아. 보미 씨
익숙한 목소리에 도아린은 표정이 굳어져 버리고 말았다.‘민재 씨? 민재 씨도 하경 씨 보러 왔나 보네...’도아린은 고개를 들어 창문에 기댔다.배건후 다리 위에 앉아있던 도아린은 그의 신체적 변화를 느낄 수 있었고, 그녀의 정서도 경직된 근육을 통해 상대방에게 전달될 수 있었다.어두운 곳에 서있는 육민재는 훤칠한 것이 분위기가 넘쳤다.육민재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도아린은 마침 가로등 때문에 더욱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도아린은 급히 옷깃을 여미고 건조한 목으로 힘겹게 인사했다.“민재 씨... 씁.”또 한 번 가슴을 꽉 쥐길래 도아린은 욕할뻔하다가 배건후를 힘껏 꼬집었다.‘일부러 망신 주려고 하고 있네.’육민재는 차 안까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이미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아린 씨 목소리 같긴 한데 확신이 서지 않더라고.”육민재가 웃으면서 다가왔다.가로등이 비추는 공간에 도착한 그는 차와 떨어진 거리가 3미터도 되지 않았다.온몸이 굳어져 버린 도아린은 무의식적으로 배건후의 팔을 꼬집었다.“거, 거기서 말해요.”도아린이 급한 마음에 소리쳤다.이때 배건후가 그녀의 단추를 풀어 코끝으로 등을 느끼고 있었다.입술은 차가웠지만 뿜어내는 뜨거운 콧김에 짜릿한 느낌이 들었다.시력이 안 좋은 육민재는 눈을 찡그렸다.아까는 멀어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이제는 도아린의 헝클어진 머리, 삐뚤어진 옷깃, 감출 수 없는 당혹스러움을 발견하고 더는 발걸음을 옮기지 않았다.할머니 생신날, 도아린이 배건후랑 결혼한 이후로 행복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육민재는 도아린이 배건후한테 버림받고 혼자 있는 모습을 들키기 싫어 이러는 줄 알고 온화하게 웃었다.“저번에는 그냥 우연히 도와준 것뿐이야. 그런데 밥 사겠다는 말 진심으로 받아들였으니까 내일 시간 되면...”도아린은 듣자마자 그가 동영상 일을 말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육민재가 우연히 도와줬다고 말했지만 도아린에게는 친구의 믿음을 얻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없었다.사실 육민재가 엄청
도아린은 상대방의 이름을 까먹을 정도로 뻘쭘했다.배건후가 도아린의 허리를 마음대로 만질 수 있었던 건 지퍼가 열려서였다.도아린은 스타킹도, 치마도 고장 난 상태로 차마 차에서 내릴 수가 없었다.그래서 고개를 돌려 배건후를 힘껏 째려볼 뿐이다.하지만 육민재 눈에는 앙탈처럼 보였다.“먼저 하경이 보러 갈게. 하던 거 마저 해.”육하경은 병원으로 들어가면서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도아린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그녀는 배건후를 힘껏 밀쳐내고 한쪽으로 가서 옷매무새를 정리했다.“건후 씨, 이제 만족해요?”등받이에 기대어 있던 배건후가 냉랭하게 말했다.“민재를 마음에 품고 있는 것도 모자라 하경이한테 향낭까지 선물하고. 내가 없었으면 진작에 차에 태웠을 거야.“배건후의 눈빛은 이글거리고 있었다.도아린은 그에게 눈빛도 주지않고 머리에 있던 핀으로 치마를 고정시켰다.이런 정신병자 같은 사람과는 말도 섞기 싫었다.차에서 내리려고 하는데 배건후가 또 품에 안더니 지긋이 쳐다보았다.“쟤가 뭘 도와줬는데?“도아린은 발버둥 치다 고개들어 그를 쳐다보았다.“알 필요 없어요.”배건후는 피식 웃더니 표정이 차가워졌다.“내가 알면 안 되는 일이야?”도아린은 배건후한테 그 동영상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핸드폰이 바뀌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나영옥 할머니 생신날, 보미 씨가 혼자서 넘어지고 저한테 죄를 뒤집어씌운 영상을 찍은 사람이 있었어요.”배건후는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왜 나한테 말하지 않았어.”도아린은 피식 웃고 말았다.“건후 씨가 조사해 보고 알려주겠다고 했잖아요. 민재 씨도 확보할 수 있는 동영상을 건후 씨는 확보하지 못했을까요? 제가 만약 정말 보미 씨를 밀었다면 절대로 저를 용서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이와 반대라면 그냥 없었던 일로 했겠죠.“배건후는 동공이 흔들렸다.“보미 씨가 그러는데 네가 밀친 거 아니라고 했어.”도아린은 어처구니가 없었다.그렇다. 손보미는 도아린이 밀었다고 하지 않았지만 태도나 말투를 들어보면 분명
도아린은 아파서 울먹이다 배건후의 머리끄덩이를 잡으려고 했고, 배건후는 막으려다 한 손으로 도아린의 가슴을 치고 말았다.도아린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몸을 움츠렸다.그녀가 몸을 부들부들 떨자 배건후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그녀를 품에 안았다.괜찮은지 확인하려고 했지만 도아린은 만지게도 못하게 했다.티격태격하다 또 상처를 건드려 도아린은 화가 나서 눈시울이 붉어졌다.“건후 씨, 그렇게 보미 씨를 도와주고 싶어요?”도아린은 부들부들 떨다 한숨을 크게 들이마시면서 협박했다.“저를 절대 만만하게 보지 마세요. 계속 이렇게 찝쩍거리면 신분을 폭로해 버리고 보미 씨가 내연녀라는 걸 공개해 버릴 거예요! 네티즌들에게 온갖 욕을 먹게 해서 앞날을 망쳐버릴 거라고요!”배건후는 피식 웃고 말았다.“네가 이혼하고 싶어 했잖아.”“저는 이대로 눈뜨고 지켜볼 수 없어요!”배건후는 그녀의 옷을 정리해 주면서 담담하게 말했다.“보미 씨한테 함부로 대했다간 평생 이혼하지 못할 줄 알아.”이 정도로 염치없는 사람은 처음이었다.‘자기는 내연녀랑 신나게 놀면서 나는 남사친도 만나면 안 돼? 분명 자기가 귀책자면서 피해자더러 가만히 참고 있으라고? 돈 많으면 다야? 이기적인 놈!’“마침 병원 앞인데 의사 선생님께 보이는 거 어때?”배건후는 고통스러워하는 도아린을 보면서 물었다.“머리를 보이라고요? 필요 없어요!”도아린은 그를 밀쳐내고 상처를 어루만졌다.가슴이 너무나도 아팠다.배건후는 핸드폰을 꺼내 조수현에게 문자를 보내면서 도아린에게 경고했다.“다른 남자한테 또 함부로 선물을 주면 두 사람 모두 죽여버릴거야.”도아린은 그를 힘껏 째려보았다.“미친 새끼!”...온종일 피곤했는지 도아린은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잠들어버렸다.한밤중에 몸에 이상이 왔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상처가 난 부위가 무언가에 덮인 것처럼, 혹은 누군가가 어루만지고 있는 것처럼 점점 뜨거워지는 느낌이었다. 저항하고 싶었지만 손발이 묶여있는 느낌이었다.그러다 아까보다는 그렇게 아프지 않은
도아린은 고개를 흔들었다. 최근에 있었던 크고 작은 일때문에 오디션을 까먹은 것이다.“그 음악 프로그램 멘토가 예진 이모인 것 같던데?”도아린이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내일 말해볼게. 너도 출연할 수 있는지.”“특수상황이 아니면 예진 이모한테...”소유정은 갑자기 입을 막더니 주변에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해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예진 이모 우리 시어머니랑 친한 친구셔.”“그런 관계였구나...”소유정은 기분이 좋아졌는지 다시 모자와 마스크를 했다.“우리 룸으로 들어가자.”마침 누군가 예약을 취소하는 바람에 최저 소비가 15만 원인 룸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레스토랑 직원이 메뉴판을 건넬 때 도아린은 옆으로 지나가는 두 사람을 발견하게 되었다.그중의 한명인 성대호는 왠지 모르게 잔뜩 짜증이 나 있는 것 같았다.그의 뒤를 따르던 남자는 구멍 난 청바지를 입고 껄렁거리면서 지나갔고, 또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꽁꽁 싸매고 있었다.도아린이 직원에게 물었다.“옆방에 다른 손님이 있어요?”“죄송하지만 개인정보라 말씀드릴 수 없어요.”“저 성대호 씨랑 아는 사이에요.”도아린은 말하면서 테이블 위에 5만 원을 올려놓았다.“저 두 분만 계신다면 됐고, 여자 손님도 계시면 가서 인사 좀 하려고요.”직원은 메뉴판을 회수하는 김에 5만 원까지 챙겼다.“다음에 인사하시는 것이 나을 것 같아요.”암묵적인 대답이었다.“고마워요.”직원이 떠나고, 도아린은 특별히 옆방 움직임을 지켜보았다.이 시각, 성대호는 어두운 표정으로 옆방에 앉았다.“이 카드에 2,000만 원이 있어. 이거 챙기고 연성에서 꺼져. 내가 연락하기 전까지 절대 돌아오지 마.”어제저녁부터 금은방에 사람을 붙여 경찰보다 더 빨리 골드 시계를 팔려는 방우진을 잡은 것이다.“2,000만 원으로 나를 보내려고?”방우진은 카드를 힐끔 쳐다볼 뿐 챙기지 않았다.“누구를 거지 취급하나.”“내 친구는 아직 의식불명의 상태로 병원에 누워있어. 영원히 깨어나지 못하면 감옥에 처넣을
“아린 씨, 저를 미행한 거예요?”성대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끼리끼리 논다는 말처럼 배건후와 하는 말이 똑같았다.도아린은 그를 무시하고 방우진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이 사람이 하경 씨를 다치게 한 사람이죠? 경찰에 이미 신고했어요.”방우진은 눈빛이 확 변하더니 테이블 위에 있던 주전자로 도아린의 머리를 부수려고 했다.“그만해!”성대호는 버럭 소리를 지르더니 뒤돌아 창문을 열었다.이곳에서 밥을 먹자고 했던 이유도 도망가기 편하기 위함이었다.방우진은 그의 뜻을 바로 알아차리고 할 수 없이 주전자를 내려놓고는 의자를 밟고 창문을 넘었다.그러고서 지붕을 지나 후다닥 도망쳤다.도아린이 앞으로 다가가려고 했지만 성대호가 말렸다.“아린 씨, 저희 친구 사이의 일은 상관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하경 씨는 당신 같은 친구가 필요 없을 것 같은데요?”성대호는 표정이 창백해지고 말았다.친구를 위해서라면 최선을 다했던 그였다. 심지어 육하경이 전남시를 마음대로 들락날락할 수 있게 고가로 식품과 약품을 운송하다가 현지 보스를 건드려 세 날 동안 갇힌 적이 있었다.만약 육하경을 이렇게 만든 사람이 다른 사람이었다면 무조건 감옥에 처넣고 죽기보다 못한 생활을 하게 했을 것이다.그런데 배지유의 행복이 더욱 중요했다.성대호는 이내 미안함이 말끔히 사라지고 예리한 눈빛으로 도아린을 쳐다보았다.“아린 씨, 저희는 끈끈한 우정을 나누는 사이에요. 제가 한 일은 제가 직접 하경이한테 설명할 거예요.”“만약 하경 씨가 영원히 깨어나지 못한다면요?”“그럴 리가 없어요!”성대호는 불끈 주먹을 쥐었다.“가장 좋은 의사 선생님을 붙여서 꼭 깨어나게 할 거예요.”“하경 씨가 영원히 깨어나지 못한다면 대호 씨가 하경 씨 부모님 남은 생을 책임지실 거죠? 아가씨도 챙겨줄 거고요?”성대호는 첫 질문을 듣고 본능적으로 대답했다.“당연하죠.”그런데 두번째 질문을 듣고는 표정이 어두워지고 말았다.“아린 씨,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저는 지유를 그저 동생
도아린의 안색이 좋아 보이지 않자 성대호는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오늘은 아무것도 못 본 거로 해주세요. 가게를 내놓는 사람이 없는지 잘 알아봐 드릴게요. 그리고 제가 인테리어도 해주기로 약속했잖아요. 저는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에요.”성대호의 목소리는 점점 더 작아졌다.도아린은 그의 말을 채 듣지도 않고 가버렸다.문 앞에서 녹음하고 있던 소유정은 도아린의 눈시울이 붉어진 것을 보고 녹음을 끄고 따라서 룸으로 돌아갔다.“건후 씨가 네 가게를 손보미한테 준 거야?”“내 거 아니야.”도아린은 메뉴판을 보면서 음식을 주문하기 시작했다.‘내 물건은 아무도 뺏어가지 못해.’도아린은 가게를 원한 적도 없었다. 그저 욕심많은 도정국이 동생의 치료를 핑계로 협박했기 때문이다.도아린은 진수성찬에 맥주까지 세 병 마시게 되었다.술을 마실 수 없는 소유정은 옆에서 도아린의 기분을 맞춰주기로 했다.맥주 한잔을 마실 때마다 옆에서 생수를 따라 마셨다.똑같은 속도로 생수를 마시자니 메스껍고 머리가 어지러워 화장실을 자주 들락날락했다.“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 돌아와서 계속 마셔.”속을 비우고 돌아왔을 때, 도아린은 룸에 없었다.어질어질한 상태로 택시를 타고 에이트 맨션으로 돌아간 것이다.요 며칠 도아린이 운전해서 들락날락하자 경비 아저씨는 그녀가 로또에 당첨된 줄 알고 대놓고 비웃지 못했다.그런데 오늘 택시 타고 돌아온 것을 보고 또 참지 못하고 비아냥거렸다.“왜요. 대표님이 차를 몰수하셨나 봐요? 대표님 성격을 좀 맞춰주시지 그러셨어요.”도아린은 억지 미소를 지으면서 걸어 들어갔다.3년이나 바쳐서 배건후의 곁을 지켰지만 돌아오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도아린은 잔디 위에 세워져있는 그레이색 마이바흐를 보고 발로 걷어찼다.“제기랄! 나쁜 자식!”차 경적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집 안에 있던 사람들이 밖으로 나왔다.“도아린, 미쳤어?”배건후는 비틀거리면서 술 냄새를 풍기고 있는 도아린의 모습에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도아린은 뒤돌아 차에 기대어 앉
“보미 씨는 손님인데 맨발로 집에 들어올 순 없잖아.”배건후는 도아린이 무엇 때문에 화를 내는지 몰랐다.“집에 손님용 슬리퍼가 따로 있어요.”“보미 씨가 발을 상해서 딱딱한 슬리퍼를 신지 못해.”배건후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이런 사소한 일까지 따져야겠어?”손보미는 배건후가 보지 않는 틈을 타 무언의 협박을 보내고 있었다.오늘 주동적으로 배건후한테 잘못을 인정하러 온 것이다.계약서를 잠깐 빌리기로 했는데 성대호와 계약할 때 일부러 모호하게 말했고, 성대호도 배건후와 확인해 보지 않은 바람에 손보미가 계약서에 사인하게 되었다.손보미는 모든 책임을 철없는 부모님께 넘겼고, 부모님이 돌아가면 무조건 도아린에게 명의를 돌려주겠다고 약속했다.사과하는 의미로 인테리어 비용을 대겠다고 했고, 또 도울 디저트더러 먼저 입주하라고 했다.그러면서 급히 달려오느라 발을 삐끗하여 딱딱한 슬리퍼를 신지 못하겠다고 했다.배건후는 도아린이 이렇게 일찍 돌아올지 모르고 그냥 도아린의 슬리퍼를 신으라고 했다.그런데 도아린이 고작 슬리퍼 하나로 난동 부릴 정도로 밴댕이 소갈딱지일 줄 몰랐다.“건후 씨는 저한테 가게를 줄 마음이 없었잖아요.”도아린은 초롱초롱한 두 눈으로 웃고 있었다.이와 반대로 배건후는 전혀 상냥하지 않은 눈빛에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네가 무능해서 드레스를 해결하지 못한 거잖아.”“제가 무능한 거예요. 아니면 어떤 사람이 멍청해서 드레스를 망가뜨린 거예요?”“건후 씨, 그런 말 하지 마. 다 내 잘못이야…“손보미는 이 복잡한 상황에서 끼어들려고 했다.“아린 씨, 저는 사실 그 드레스를 구매하고 싶었는데 판매하지 않는다길래요. 여자는 누구나 다 예뻐지기를 원하잖아요. 저는 그저 생일날 예뻐 보이고 싶었어요. 그런데 폭죽이 전부 다 안 터졌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어요…”손보미는 도아린이 인기 검색어를 봤다는 거에 한 표를 던졌다.배건후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생일날 몇억 원에 달하는 폭죽을 터뜨렸다는 기사가 인기 검색어에 6
누군가는 사진 한 장을 들고 나타나 말했다.“도아린 곁에 있는 꽃미남이 사실 강재민이래.”과거, 두 사람이 함께 음악 페스티벌에 참석했던 적도 있다는 이야기였다.그 말에 또 다른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였고 소문은 꼬리를 물고 번져갔다.그러던 어느 날.도아린의 바로 뒷자리에 앉아 있던 한 신인 배우가 몰래 찍은 사진 한 장이 인터넷에 올라왔다.사진 속엔, 두 사람의 머리가 맞닿은 채 귓속말을 나누고 있었다.그 한 장의 사진은 결국 배건후의 정체를 증명하는 결정적 단서가 되었고 그는 다시 한번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이번에도 역시 온갖 의심과 루머 그리고 비난이 따라붙었다.하지만 며칠 후, 연성 경찰청에서 공식 공지문이 게시되었다.바로 얼마 전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장기 밀매 사건에 대한 수사 결과 공지였다.공지문에는 고성만, 손보미, 자상훈 등이 인신매매로 부당한 이익을 챙기다 결국 장기 밀매까지 손을 뻗친 사실이 요약되어 있었고 그 수사에 협조한 익명의 자원자들에게 감사의 뜻도 함께 담겨 있었다.그 단 하나의 공지로, 여론은 완전히 반전됐다.정월 대보름, 해남엔 보기 드문 큰 눈이 내리고 있었다.도로는 차들로 가득 막혀 10분이 지나도 백 미터를 채 움직이지 못할 정도였다.“천천히 가. 우린 여기서 내려서 좀 걸을게.”도아린은 조수석 창문을 내리며 일북에게 말했다.그리고 배건후와 함께 차에서 내려 레스토랑까지 걷기로 했다.배건후는 우산을 펼쳐 도아린의 머리 위에 씌웠다.도아린은 그의 팔에 팔짱을 끼고 두 사람이 맞잡은 손은 외투 주머니 속에 꼭 쥐어져 있었다.“춥지 않아?”그가 우산을 더 그녀 쪽으로 기울였다.“안 추워요.”도아린은 입김을 내뿜으며 활짝 웃었다.발밑에서는 바삭거리는 눈이 소리를 냈고 그녀의 머릿속에는 오래전 기억이 스쳐 갔다.돈을 마련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던 시절.어느 회사 대표라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눈밭에서 몇 시간을 버텼던 그날, 발이 얼어 서 있지도 못하고 결국 쪼그려 앉았던 그 순간
그 여자는 바로 그날 수상 레스토랑에서 진경수에게 벨트를 빌렸던 그 여자였다.하지만 오늘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짧은 티셔츠와 청 반바지 대신 격식을 갖춘 정장 느낌의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얘, 내 여동생. 그리고 이 사람은... 우리 제부.”진경수는 ‘제부’라는 단어에서 말끝을 흐렸다.여동생이 혼인신고까지 해놓고 가족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못마땅한 듯 표정이 굳어 있었다.그건 진수혁도 마찬가지였다.“큰형님, 작은 형님.”배건후가 정중히 일어나 인사를 건넸고 도아린은 해맑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오빠들, 호칭 바꿨으니까 용돈 좀 주셔야죠?”“혼인신고도 우리 몰래 해놓고, 무슨 용돈이야?”진경수는 여전히 불만 가득한 얼굴로 배건후를 노려보다가 결국 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 도아린에게 내밀었다.“다시 내 동생 울리기만 해봐. 그땐 진짜 널 갈기갈기 찢어서 물고기 밥으로 줄 거야. 명심해.”“고마워요, 둘째 오빠!”도아린은 싱긋 웃으며 봉투를 받아들었고 이번엔 진수혁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진수혁 역시 말없이 봉투를 하나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도아린은 봉투를 슬쩍 비춰보며 속으로 웃었다.‘안 봐도 이건 수표네.’그녀는 배건후를 보며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내더니 말했다.“이건 제가 따로 보관할게요.”“감사합니다, 우리 아내님.”“...”진씨 형제들은 동시에 말문이 막혔다.‘쯧쯧, 벌써 아내한테 잡혀 사네...’하지만 상대가 도아린이라면, 뭐… 그럴 만했다.“근데, 여기 두 분은?”도아린은 일부러 모르는 척 눈을 반짝이며 물었고 진수혁은 변슬기를 소파에 앉히며 담담히 말했다.“예전 동료야.”변슬기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 순간, 진경수가 옆에 있던 여자를 품 안으로 확 끌어당기며 밝은 미소를 지었다.“부모님 말씀대로 아린이 일도 정리됐겠다... 이젠 내 차례지. 그래서 나도 결혼했어.”도아린과 배건후는 동시에 진수혁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둘째 오빠를 좀 본받으세요. 뭐 하세요, 진짜.’“작은 올
“...”집사는 조용히 웃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배건후는 당연하다는 듯 도아린의 방으로 들어가 짐을 풀었고 도아린은 그런 그를 집사에게 소개했다.“이 사람은 제 남편이에요. 서재랑 아버지, 어머니, 큰오빠, 둘째 오빠 방만 빼고 어디든 자유롭게 다니게 해주세요.”두 사람은 짐을 정리하자마자 곧장 외출에 나섰다.“앞에 있는 만둣가게, 진짜 맛있어요!”가게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도아린의 시선은 창가에 앉아 노트북으로 일하던 진수혁에게 향했다.그 맞은편에는 변슬기가 앉아 있었고 다소 곤란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설득 중이었다.“여긴 패스트푸드점이에요, 카페가 아니라고요. 여기서 일하시는 건 좀...”“카페라고 생각하면 되잖아. 난 괜찮은데?”“그렇긴 해도 이렇게 계속 앉아 계시면 저희 가게 영업에 방해된다니까요!”그때 도아린이 문을 열고 들어오자 변슬기는 반가움에 벌떡 일어났다.“도 선생님! 대표님 좀 말려주세요!”그 말에 진수혁은 고개를 돌리며 태연하게 말했다.“밥은 먹었어? 여기 만두 꽤 괜찮더라.”도아린은 황당함에 헛웃음이 났다.‘사람을 회사에서 내쫓아 놓고선 정작 본인은 여기에 눌러앉다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진짜.’막 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배건후가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내가 말할게.”도아린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변슬기와 함께 옆 테이블에 앉아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그사이 배건후는 주머니에서 혼인관계증명서를 꺼내 진수혁 앞에 내려놓았다.“제가 이겼어요.”“...”진수혁은 조용히 종이를 펼쳐보고는 이를 악물었다.“너 이거 반칙 아냐?”“우린 내기했잖아요. 졌으면 인정해야죠.”“유럽 연수 그 자리, 잊지 말고 제 이름으로 신청해 주세요.”진수혁은 고개를 돌려 도아린을 바라보았고 마침 도아린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둘의 눈이 마주쳤고 자연스레 미소가 번졌다.‘이 분위기 뭐야... 완전 닭살 돋게 하네.’그 순간, 배건후는 시선을 거두고 진지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형님도 제가 예전에
‘정말로 배고픈 거야? 아니면 날 원하는 거지?’도아린은 배건후를 흘끗 쳐다보며 가위를 테이블 위에 놓고는 끌려가 밥을 먹었다.배건후의 요리 실력은 한층 더 늘어 있었고 맛뿐만 아니라 음식의 모양새도 훨씬 좋아졌다.“이제 영양식은 안 드세요?” 도아린은 일부러 그를 자극했다. “전에 어떤 사람이 고기도 안 먹고 기름진 것도 안 먹고 오래된 것도 안 먹고 부드러운 것도 안 드셨잖아요!”배건후는 매운 닭 요리를 그녀 앞으로 밀어놓으며 진심으로 사과했다.“그때는 네 관심을 끌려고 그런 거야. 그리고 몸매가 망가져서 네가 싫어할까 봐 걱정도 됐고.”“그럼 이제는 몸매 망가지는 거 걱정 안 해요?”도아린은 고기 한 조각을 집어 입에 넣었다.배건후는 가볍게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두 사람은 원래 한 사람이 요리하면 다른 한 사람이 설거지하기로 했다. 하지만 배건후는 도아린에게 설거지할 기회를 주지 않고 바로 그녀를 안아 위층으로 올라갔다.도아린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큰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배건후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그녀를 삼켜버릴 듯한 눈빛을 보였지만 쉽게 다음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았다.도아린은 그가 마음속 어둠의 그림자와 싸우고 있음을 알았다.그녀는 그의 목을 감싸안고 몸을 들어 올려 그의 입술에 가볍게 입 맞추며 달랬다.“천천히 해도 돼요. 긴장하지 말고 편하게 하세요.”도아린의 위로는 곧 배건후에게 그대로 되돌아왔다.그의 이마에서 흐른 땀방울이 그녀의 흰 목 위로 떨어졌다. 그는 목소리를 낮추며 그녀의 귀를 깨물었다. “도아린, 힘 빼... 너무 긴장했어...”도아린은 그의 입을 막고 싶었지만 손가락은 그의 입에 물려 있었다. 그 후, 그녀는 머릿속이 멍해졌고 마치 거친 파도 위에서 흔들리는 작은 배가 된 것처럼 느껴졌다. 재미를 본 배건후는 그녀를 끈질기게 괴롭혔다. 도아린이 깨어났을 때는 이미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마치 어젯밤 온몸이 부서졌다가 다시 조립된 것처럼 사지가 말을 듣지 않았고 특히 허리
“배 대표님! 모든 자산을 도 대표님께 넘기신 것은 이전에 하신 일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셔서인가요? 손보미 씨가 형을 선고받았다고 들었는데 손보미 씨를 꺼내줄 계획이 있으신가요?”배건후는 차가운 눈빛으로 기자들을 한 바퀴 둘러보더니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오늘 인터뷰의 주제는 챔피언십 선수들의 숙식 안전입니다. 개인적인 질문에 대해서는 답하지 않겠습니다.”기자들이 더 질문하려 하자 도아린이 배건후의 손을 제치고 앞으로 나섰다.“숙식 문제에 대한 더 나은 제안이 있다면 제안서를 작성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수한 의견을 채택하고 그에 따라 보상을 제공할 예정입니다.”도아린은 카메라를 향해 당당하고 품위 있게 말했고 입가의 미소를 살짝 거두며 한층 위엄 있는 분위기를 자아냈다.“제 개인적인 문제로 여러분의 시간을 뺏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배건후 씨에 대해서는 몇 가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배건후는 눈빛이 살짝 흔들리며 걱정스러운 기색을 내비쳤지만 이내 담담한 표정으로 돌아왔다.도아린이 배건후에 대해 말하려 하자 기자들은 앞다투어 마이크를 내밀었다.도아린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배건후 씨는 여태까지 운영부의 팀장이었지만 오늘부터는 한경 그룹의 특별 자문입니다. 이후의 직책은 배건후씨의 능력에 따라 결정될 것입니다.”도아린의 시선은 배건후가 도아린의 말을 절대적으로 따를 거냐고 묻던 기자를 향했다.“과학 연구자, 의학 전문가, 스포츠 선수,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여성의 몸에서 태어났습니다. 여성을 존경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모욕해서는 안 됩니다.”그러자 그 기자는 얼굴이 새빨개진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조용히 사람들 사이에서 빠져나갔다.다른 기자들도 더 이상 질문을 할 기세를 잃었고 도아린은 고개를 돌려 고유리를 보며 말했다.“기자분들 고생 많으셨으니 저녁 식사 후 차량을 준비해 안전하게 귀가할 수 있도록 해 주세요.”고유리는 기자들을 데리고 나가며 각자에게 돈 봉투를 나눠 주었다.그들은 어떤 내용을 발표할 수 있고
“뭐라도 먹고 가자.”배건후는 구운 닭 날개는 도아린에게 건네주고 주현정에게는 구운 식빵을 건네주었다.주현정은 빵을 받아 들고는 돌아서며 말했다. “천천히 이야기 나누렴. 나는 물 좀 마시러 들어갈게.”도아린은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배건후가 그녀의 손을 붙잡아서 멈췄다.두 사람은 강가의 평평한 돌 위에 앉았다.“엄마는 진짜 다 내려놓으신 걸까요?”“적어도 시작은 하신 거지. 앞으로 진 큰아버지와 큰어머니와 함께 여행 다니면 점차 나아질 거야.”배건후는 핸드폰을 꺼내고는 방금 구 경관이 보내온 사진을 열었다.“남궁유민, 즉 고성만이야. 경찰이 고성만의 집을 수색할 때 이걸 발견했어.”도아린은 마지막 닭 날개를 입에 넣고 꼬챙이를 배건후에게 건네며 핸드폰을 받아서들었다.화면 속 사진에는 루비 목걸이가 찍혀 있었다.배건후가 큰돈을 들여 샀던 화려한 디자인의 목걸이지만 전에 잃어버렸던 목걸이였다.도아린은 배건후를 바라보며 말하려 했지만 입안은 닭 날개로 가득 차있어 눈만 깜빡였다.“내가 전에 너한테 줬던 그 목걸이야. 배지유가 몰래 차다가 잃어버렸던 거.”도아린의 입은 마치 발골 기계 같았다. 닭 날개가 입에 들어갔다 나올 때면 뼈만 남았다.도아린은 손바닥에 뼈를 뱉고는 차분하게 말했다.“배지유가 어떤 남자와 잤고 그 사람이 계속해서 그녀를 영상으로 협박했어요. 그 장본인이 바로 고성만이라구요!”“...”이번에는 배건후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성만이 배지유를 협박한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목걸이를 철저히 숨겨놓고 분해해서 이미 팔아버렸을 거로 생각했거든. 그런데 그걸 집에 보관해 놓았을 줄은 몰랐어.”그것은 고성만이 자신을 위해 남겨둔 마지막 보험이었다.궁지에 몰리게 되면 목걸이를 분해해 팔고 다른 도시로 가서 새 삶을 살 계획이었을 것이다.하지만 그는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체포당하고 말았다.다음 날, 도아린은 연성으로 돌아갔다. 배건후가 신청한 챔피언십 대회 접대 임무가 승인되었기 때문이다.진수혁 역시 변
그는 입가에 얕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괜찮아. 자고충이 하나가 될 때 이런 현상이 생기는 거야. 앞으로 잘못된 일을 하지 않으면 아프지도 않을 거야.”만약 사랑하는 사람을 배신한다면 그 고통으로 인해 결국 죽게 될 것이다.도아린은 배건후의 머리를 끌어안고 고개를 들고 흘러나오는 눈물을 억지로 참으려고 애썼다.배건후는 그녀의 품속에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육원의 중첩된 지분을 손에 넣어서 너에게 혼수로 바칠게. 네가 나를 원하지 않아도 상관없어. 그래도 나는 너를 평생 지켜줄 거야.”그녀가 결국 참지 못하고 흘린 한 방울의 눈물은 그녀의 볼을 타고 떨어져 남자의 머리 위에 떨어졌다.그렇게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 빛이 어두워질 때까지 두 사람은 한동안 서로를 안고 있었다. “돌아가자.”배건후는 그녀의 가느다란 허리를 감싸안고 다리를 움직이며 불편했던 자세를 바꿨다.“이 근처에 야생 동물은 없지만 해가 지면 안전하지 않아.”도아린은 처음에는 감정에 휩싸여 배건후의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가 몸을 움직이자 그녀는 즉시 이상함을 느꼈다.그녀는 급히 일어나며 말했다.“돌아갈 때 건후 씨 몸이 불편하니까 제가 태워드릴게요. 그리고 내리막길이라 힘도 덜 들 거예요.”“알았어. 네 말 들을게.”자전거 핸들이 비뚤어져 있었지만 배건후는 두 다리로 바퀴를 단단히 고정한 후 힘껏 돌려 단숨에 바로 고쳤다.도아린이 자전거 앞좌석에 타고 배건후는 그녀 뒤에 앉았다.그는 얼굴을 그녀의 등에 기댄 채 내리막에서 속도가 너무 빨라지면 긴 다리를 쭉 뻗어 마찰력을 늘리며 조절했다.그들이 별장에 도착했을 때 진수혁과 변슬기도 막 돌아오고 있었다.변슬기는 도아린을 의미심장하게 쳐다보았다.도아린은 그들이 뭔가 진전이 있을 줄 알고 가서 물어보려 했지만 배건후가 붙잡았다.그는 손을 뻗어 그녀 머리 위에서 붉은 잎 하나를 떼어냈다.“...”변슬기와 진수혁이 설마 자신과 배건후가 야외에서 뭔가를 했다고 생각하진 않겠지.배건후는 오직 도아린에게만 부
두 사람은 눈이 마주쳤다.도아린은 그의 눈동자 속에 가득한 붉게 물든 단풍잎과 맑고 푸른 하늘 그리고 마음속 깊이 즐거워하며 웃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그의 깊고 그윽한 눈이 가늘게 감기며 그 속에는 격렬한 감정이 소용돌이치는 듯했다.‘그래, 이거지!’그녀는 올해 겨우 25살이었다.어린 시절 양부모 곁에서 사랑받지 못했고 장애를 겪은 후 식물인간이 된 동생을 돌보며 결혼 생활에서는 남편의 감정적 학대 속에서 버텨야 했다.그녀는 너무도 많은 행복을 잃어버린 채 살아왔다.이게 맞는 일이다.그녀는 웃어야 한다. 크게 소리 내어 마음껏 웃어야 한다.고작 25살에 불과한 그녀가 이토록 많고 무거운 책임과 압박을 짊어질 필요는 없었다.눈앞 여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점점 사라지고 배건후의 심장도 저릿해 왔다.그는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졌다.거친 손끝이 그녀의 부드러운 피부를 스쳤고 천천히 그녀의 눈꼬리를 눌렀다.“웃어. 앞으로 나쁜 감정들은 전부 나한테 넘겨. 내 앞에서는 일부러 강한 척 버틸 필요도 없어. 속상하면 때리고 욕해도 돼. 대신에 절대 자신을 괴롭히지 마.”도아린은 코끝이 찡해지고 눈가가 뜨거워지더니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했다.그녀는 급히 일어나 뒤돌아 눈물을 닦으려 했다.그 순간 힘센 팔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안았고 특유의 나무 향기가 그녀를 감쌌고낮고 깊은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여태까지 내가 나쁜 놈이었어. 미안해. 앞으로는 모든 일을 너와 상의할게. 네가 싫어하는 건 하지 않을 거고 네가 속상해할 일도 만들지 않을 거야.”도아린은 팔꿈치로 그를 툭 쳤다.“입만 살아서!”배건후는 그녀의 어깨를 잡고 돌려세운 뒤 품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도아린은 미간을 찌푸렸다.“아직 육원의 중첩된 지분을 손에 넣지도 못했잖아요. 그리고 저도 아직...”이후의 말은 더 이상할 수 없었다.배건후가 상자를 열었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은 청혼의 반지가 아니었다.작고 빨간 벌레가 들어 있었는데 다리가 없고 온몸이 부드러웠으며
변슬기는 바쁜 듯 뒤돌아보며 기대와 불안이 섞인 표정을 지었다."좋아요." 진수혁은 흔쾌히 대답했다. 이미 옷을 갈아입었기 때문이다. 배건후는 세 사람을 보고 눈빛이 흔들렸다. 빌라에는 자전거가 두 대 있었는데, 도아린과 함께 드라이브를 나가기 위해 일부러 다른 자전거의 페달을 떼어 놓았던 것이다. 도아린은 자전거를 보고 그에게 너 정말 얄밉다'는 눈빛을 보내며 빨리 고치라고 신호를 보냈다. 자전거를 고치고 네 사람은 문밖으로 나갔다. "꽉 잡아."배건후는 도아린이 자신의 허리를 감싸 안자 힘껏 페달을 밟았고, 자전거는 비탈길을 미끄러져 작은 길로 향했다.변슬기는 진수혁에게 감히 손을 대지 못하고 자전거 뒤쪽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진수혁은 자전거 타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듯 비틀거렸다. 변슬기는 "저, 제가 밀어드릴까요...거의 정상에 도착하면, 그때 저를 밀어주세요."라고 제안했다. 진 대표님의 속도로는 누가 먼저 정상에 도착할지 내기는커녕, 저녁 식사 시간이 되어도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 진수혁은 아무 말 없이 계속 비틀거렸다. 변슬기는 거의 넘어질 뻔했고, 황급히 남자의 허리를 붙잡았다. 자전거는 갑자기 비틀거리지 않았고, 속도도 빨라졌다. 변슬기: "..."배건후는 도아린을 태우고 산길을 누볐고, 도아린은 뒤쪽 페달을 밟으며 일어섰다. 두 손으로 그의 어깨를 누르고, 짧은 머리카락은 바람에 휘날렸다. "산속 공기가 도시보다 훨씬 좋네요. 매연 냄새도 없고, 에어컨 냄새도 안 나고." 배건후는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살짝 몸을 일으켰다. "어제 비가 왔으면 더 좋았을 텐데." "당신도 비 온 뒤 흙냄새 좋아해요?" 도아린은 배건후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의 귓가에 웃으며 말했다. "나도 좋아해요! 비 온 뒤 흙과 풀이 섞인 냄새는 기분을 좋게 만들어요!" 배건후는 입꼬리를 올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도아린은 잠시 침묵하다가 깨달았다. 배건후가 말한 것은 바로 그녀가 좋아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더욱 환한 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