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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나올래?

Author: 이구름
last update Petsa ng paglalathala: 2026-06-05 10:47:09

아침이 밝았다.

침대에 누워있던 현준은 이수의 인별 계정에 들어갔다. 그녀의 피드는 예상한 대로 화려하지 않았다. 읽고 있는 책들, 소소한 일상 사진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녀의 얼굴이 나온 사진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책을 좋아하나 보네.

그녀의 피드를 쭉 훑어보다, 중학교 때 사진 몇 장을 발견했다. 친구들과 함께 티 없이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현준은 이수의 사진을 확대했다. 해맑은 그녀의 얼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봄 햇살같이 무구한 미소를 보며 어젯밤 이수의 웃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 짧은 순간이 너무나 선명하게 머리에 각인됐다. 그의 입가가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예쁘다.”

 보고 싶은데…?

현준은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한 뒤, 서둘러 침대에서 일어났다. 나갈 준비를 시작했다. 무슨 이유로 불러내지? 샤워를 하는 내내 고민했다. 결국 그는 어제 말한 커피를 맛 보여주는 걸로 명분을 삼았다.

침대 위에 옷가지들을 늘어놓고 무엇을 입을지 고민을 했다. 한껏 멋 부렸다가 다시 벗기를 반복했다. 갑자기 불러내는 콘셉트인데 너무 꾸미고 가는 것이 왠지 부끄러웠다.

결국 현준은 무릎 위로 올라오는 옅은 회색의 스웨트 쇼츠에 오버사이즈 흰 티셔츠를, 중청의 얇은 데님 셔츠와 모자로 심플하게 매치했다. 가느다란 비즈 목걸이와 시계를 차고, 양말을 올리고 스니커즈를 신었다.

***

오랜만에 누리는 멍 타임이었다. 이수는 한가롭게 소파에 늘어져있었다. 내려오는 눈꺼풀을 이기기 위해 여러 번 깜빡거리고는 고갯짓으로 잠을 쫓았다. 최근 읽기 시작한 책을 찾으러 방으로 들어섰다.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책과 안경을 들고 방을 나서려는 순간, 휴대폰 진동음이 길게 울렸다.

화면 위에는 '남현준' 이름 세 자가 찍혀있었다. 놀란 이수는 휴대폰을 침대로 떨어뜨리듯 던졌다. 한 걸음 뒤로 물러선 뒤, 두 손을 가지런히 가슴에 올린 이수는 혼잣말로 속삭였다. 

"설마 정말 남현준?"

휴대폰을 집어 들고 몇 초간 화면을 바라봤다. 심장 간질병이 또 찾아왔다. 가라앉히는 약 어디 없을까? 목소리를 가다듬고 조심스레 전화를 받았다.

"여... 보세요?"

{ 안녕, 홍이수. }

"안녕."

 { 다리 괜찮아? }

 "응, 덕분에."

얼굴이 화르르 달아올랐다. 심장이 점점 빨리 뛴다, 큰일이다. 그의 목소리에도 반응하는 자신의 모습이 어쩐지 낯설었다. 

{ 나 지금 모스 문 가는 길인데, 나올래? 커피 내려줄게. }

"지, 지금??"

{ 시간 필요해? 기다릴게. }

"아… 알겠어. 빨리 준비하고 나갈게."

{ 천천히 해. 모스 문에 있을게. }

"응. 이따 봐."

통화를 마친 이수는 넋 놓고 서있었다. 이내 고개를 세차게 흔들어 정신을 차렸다.

뭐 입지? 머리 감아야 하나? 어제 감고 잤으니까 괜찮겠지? 냄새나려나? 머리끝을 잡아다 킁킁거렸다. 이따 땀 흘리면 냄새날 수 있으니까 머리만 감을까?

이수는 서둘러 머리를 감은 뒤, 수건으로 대충 물기를 닦아냈다. 헤어 드라이기로 간신히 말린 긴 머리를 포니테일로 묶고 땋았다. 옷장 앞에 서서 재희가 사다 준 치마와 원피스를 꺼내봤지만 거울 속 모습이 왠지 낯설게 느껴져 던져버렸다.

 됐다, 홍이수. 오버하지 말자!

모스 문에 도착한 현준은 정성 들여 커피를 내렸다. 따뜻한 거 한 잔, 아이스로 한 잔. 픽업 트레이에 끼워 넣고, 모스 문을 나왔다. 한여름의 강렬한 햇살이 머리 위로 쏟아졌다. 이수가 넘어졌던 계단을 오르고 같이 누워있던 평상을 지나 그녀의 집 앞에 도착했다. 

현준은 대문 앞에 털썩 앉았다. 이수가 전학 간 뒤, 그녀의 소식이 궁금했던 현준이었다. 대학 캠퍼스에서 우연히 만나 모스 문까지 인연의 고리가 이어질 줄 상상도 못했다. 말이 안 됐다. ‘운명’이란 단어 외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다. 마음 깊은 곳에서 북소리가 은은하게 울렸다. 설렜다. 현준은 이수를 생각하며 미소 지었다. 

패션을 잘 모르던 이수는 SNS에 떠도는 옷차림새를 열심히 검색했다. 결국 크롭 흰 티셔츠 위에 좋아하는 멜빵 청바지를 덧입었다. 맨날 신던 뒤축이 구겨진 스니커즈를 보는 순간, 재희가 유행이라며 사다 준 신발이 생각났다. 박스째 신발장 한구석을 자리 잡고 있던 바켄스톡, 토기오. 허공에 대고 감사 인사를 외쳤다. 

현관 거울 앞에서 몸을 이리저리 돌려 확인한 뒤, 긴장된 숨을 내쉬었다. 이수는 손에 쥐고 있던 휴대폰을 뒷주머니에 꽂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쿵, 쾅, 쿵. 대문 안쪽에서 들리는 요란한 발소리에 현준은 웃음이 났다. 오래전 기억 속에 묻어두었던 체육복 바지, 과연 그 홍이수다웠기 때문이었다. 곧이어 대문이 열리고 급히 발걸음을 멈춰 세우는 소리가 들렸다. 놀란 숨을 들이켜는 소리 또한 잇따라 들려왔다.

"히익-!!"

현준은 고개를 돌려 이수를 향해 환하게 웃었다. 활짝 웃는 그의 미소는 한여름의 햇살보다도 싱그럽고 눈부셨다.

"안녕, 홍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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