مشاركة

제7화

مؤلف: 하늘
이 상궁은 이준이 잠시 흔들린 것을 예리하게 알아차렸다. 그녀는 곧바로 입을 열었다.

“폐하, 부디 노여움을 거두시옵소서. 혜비 마마께서는 이제 막 출산하신 몸이라 아직 기력이 돌아오지 않으셨사옵니다. 이런 상태로 또 벌을 내리시는 것은 무리가 있사옵니다. 허나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능멸하고 황후 마마를 모욕한 죄를 그냥 넘길 수는 없지 않사옵니까. 그리하면 궁중의 법도가 무너지고, 황후 마마의 위엄은 어디에 있겠사옵니까?”

잠시 침묵한 그녀의 눈에 음산한 빛이 스쳤다.

“하여 소인의 미천한 생각으로는, 혜비 마마께서 벌을 받기 어려운 몸이라면, 그 친족에게 대신 죄값을 치르는 것이 어떠하옵니까? 설령... 그것이 이미 죽은 자의 유골이라 해도 말이옵니다.”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이준과 신나정의 얼굴이 동시에 변했다.

신나정이 홱 고개를 들었다.

죽은 듯 텅 비어 있던 눈동자에 처음으로 두려움이 차올랐다. 그것은 믿을 수 없다는 경악과 뼛속까지 파고드는 공포였다.

“아니 되옵니다!”

그녀는 거의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로 외쳤다.

이준 역시 미간을 깊이 찌푸렸다.

이 상궁은 재빨리 바닥에 엎드렸다.

“폐하, 굽어 살펴 주시옵소서! 소인은 그저 혜비 마마께서 제 가족의 시신을 직접 보시면 이번 일의 무게를 깨닫고, 다시는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실까 하여 아뢴 것이옵니다... 이는 모두 후궁의 평안을 위한 것이옵니다!”

신나정은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극도의 공포에 목소리마저 갈라졌다.

“폐하! 신첩이 잘못했사옵니다! 신첩이 벌을 받겠사옵니다! 어떤 형벌이든 달게 받겠사옵니다! 하오니 제발… 제발 제 가족들의 유해만은 건드리지 말아 주시옵소서! 그들은 이미 죽은 이들이옵니다. 폐하, 부디 죽은 이들만은 편히 쉬게 해 주시옵소서. 폐하—!”

이준은 무너져 내린 채 애원하는 신나정을 바라보았다. 가슴속에 맺혀 있던 그 묘한 감정이 더욱 짙어졌다.

그는 이유 모를 답답함에 미간을 찌푸리더니, 짜증스럽게 손을 내저었다.

“그만하라! 네가 잘못을 알았다면, 죄를 지은 자는 마땅히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도 알 터! 지금 네 몸으로 무슨 벌을 받겠느냐?”

“이 상궁의 말대로 하라. 신씨 일가는 이미 처형되었으나, 그 딸이 거듭 잘못을 저지르고 황후를 능멸하였으니 죄를 더해 다스린다. 당장... 사람을 보내 그 아비와 오라비들의 유해를 파내어 곤장을 쳐라! 신나정, 두 눈 똑똑히 뜨고 지켜보거라. 이것이 네가 번번이 황후를 욕보인 대가다!”

“아니 되옵니다—! 폐하! 아니 되옵니다! 제발 그러지 마시옵소서! 신첩이 죽겠사옵니다! 신첩이 지금 당장 죽겠사오니, 제발... 제발 그러지만은 마시옵소서—!”

신나정은 몸부림치며 이준의 옷자락이라도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건장한 호위무사 두 명이 그녀를 단단히 붙들고 있었고, 그녀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몇몇 태감들이 명을 받고 황급히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미 썩어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게 된 유해들이 끌려왔다.

어떤 것은 앙상한 백골만 남아 있었고, 어떤 것은 해진 수의 조각이 간신히 뼈를 덮고 있었다.

그들은 그것들을 아무렇게나 바닥에 내던졌다.

집행을 맡은 태감이 소금물에 적신 가죽 채찍을 높이 치켜들었다.

그리고 힘껏 내리쳤다.

짝!

짝!

이미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백골 위로 채찍이 사정없이 떨어졌다.

채찍이 내리칠 때마다, 마치 그녀의 영혼이 함께 찢겨 나가는 것만 같았다.

신나정의 두 눈은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그녀는 미친 듯 몸부림쳤지만, 두 호위무사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저 이 지옥 같은 광경을 두 눈 뜨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저들은 그녀의 가족이었다. 아버지였고, 오라비였으며, 죄 없는 새언니와 조카였다.

“아아악—!!!”

끝내 신나정은 버티지 못했다. 눈앞이 캄캄해지더니,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는 차가운 침상 위에 누워 있었다.

태감 총관 이석호는 그녀가 깨어난 것을 보자, 무표정한 얼굴로 이준의 뜻을 전했다.

“혜비 마마, 폐하께서 이르시길 오늘 일을 교훈 삼아 다시는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말라 하셨사옵니다. 앞으로는 처신을 삼가고, 황후 마마의 심기를 거스르는 일도 없도록 하라 하셨사옵니다.”

말을 마친 그는 신나정이 무슨 대답을 하기도 전에 몸을 돌려 떠나 버렸다.

신나정은 침상에 누운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제야 알았다.

고통이 극에 달하면, 사람은 울지도 못한다는 것을.

눈앞에서 가족의 유해가 파헤쳐지고 채찍질당하는 모습을 지켜본 충격은, 차마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그날 이후 신나정은 눈에 띄게 쇠약해졌다.

기침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한 번 기침할 때마다 붉은 핏줄기가 따라 나왔고, 새하얀 손수건은 금세 핏자국으로 물들었다.

무엇을 먹어도 곧장 게워 냈다.

나중에는 토해 낼 것조차 남지 않아, 쓴 담즙만 몇 번이고 토해 낼 뿐이었다.

이를 본 궁인들은 발을 동동 굴렀다. 몇 번이고 태의원으로 달려가 태의를 청했지만, 번번이 허탕이었다.

“마마... 태의원에서 전하길... 태의들께서 모두 장춘궁으로 불려 가셨답니다. 폐하께서 황후 마마의 몸조리를 위해 태의들을 모두 모아 진맥하게 하셨다고... 지금은 한 분도 자리를 비우실 수 없다 하옵니다...”

신나정은 눈을 감은 채 조용히 누워 있었다. 의식은 점점 흐려졌고, 결국 깊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흐릿한 의식 너머로 다급한 발소리와, 분노를 애써 억누른 이준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이런 쓸모없는 것들! 혜비의 병세가 이 지경이 되도록 어찌 짐에게 한마디도 알리지 않았단 말이냐!”

“폐... 폐하, 죽을죄를 지었사옵니다...! 황후 마마께서 폐하께서는 자객의 일로 심신이 지치셨으니, 사소한 일로 번거롭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사옵니다...”

“닥치고 물러나라!”

이내 신나정은 누군가의 차가운 손이 미세하게 떨리는 채로 자신의 이마 위에 닿는 것을 느꼈다.

“태의는 어디 있느냐?! 당장 들어오라고 하라!”

이준의 고함에 어수선한 발소리가 일제히 몰려왔다. 누군가 그녀의 맥을 짚고 눈꺼풀을 들여다보았다.

“폐하, 혜비 마마께서는 지나친 비통으로 심기가 크게 상하셨고, 산후 조리 또한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해 원기가 크게 손상되셨사옵니다. 여기에 외부의 병독이 몸속으로 침범하여 기력이 크게 쇠하였사옵니다. 이는 사실상 회복이 어려울 정도로 위중한 상태이옵니다!”

“헛소리하지 마라! 당장 살려라! 어떤 약을 써서라도 반드시 살려내라! 살리지 못하면 너희들 목숨 또한 내놓아야 할 것이다!”

“폐하, 노여움을 거두시옵소서! 다만 잠시라도 기운을 붙잡으려면... 백 년 묵은 산삼이 필요하옵니다. 얇게 썰어 입에 머금게 하고, 탕약으로 서서히 기력을 보해야 하옵니다. 허나 이런 산삼이 궁중에 비축되어 있는지는 확실치 않사옵니다...”

“당장 가서 가져오너라!”

“폐하...”

이를 지켜 본 이석호는 머뭇거리며 아뢰었다.

“그 산삼은... 어제에 이미 황후 마마께 하사하시어 심신을 안정하고 기력을 보하는 데 쓰라 명하신 바 있사옵니다...”

“짐이 가서 가져오라 하지 않았느냐!”

이준의 목소리에는 한 치의 이견도 허락하지 않는 엄중함이 서려 있었다.

“황후에게는 이후 더 나은 것을 다시 구하면 될 일이다. 허니 우선 혜비를 살려라!”

استمر في قراءة هذا الكتاب مجانا
امسح الكود لتنزيل التطبيق

أحدث فصل

  • 마음이 식어버린 후궁이 도망쳤다   제32화

    세월은 흐르는 물처럼 조용히 흘러갔다.어린 태자였던 이정은 어느새 장성하여 문무를 겸비한 사내가 되었다.어진 품성과 지혜를 갖춘 그는 조정에서 날로 명망을 쌓아 갔지만, 반면 이준은 눈에 띄게 늙어 갔다.오랜 근심과 과로가 이미 그의 몸을 완전히 갉아 먹고 있었던 것이다.쉰도 채 되지 않은 나이에 귀밑머리는 희어졌고, 얼굴은 수척해졌다.기침도 잦아져 때로는 피를 토하기까지 했는데 태의들조차 손을 쓸 수 없었다.그저 심병이라며, 약으로는 고칠 수 없다고 할 뿐이었다.또다시 추운 겨울이 찾아오고, 이준은 병석에 쓰러졌다.이번에는 병세가 위중해 거의 침상에서 일어날 수도 없었다.그는 생의 마지막이 머지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두려움은 없었고, 오히려 해방을 앞둔 사람처럼 평온했다.그는 이미 태자가 된 이정을 침상 곁으로 불러 마지막 유언을 남겼다.“정이야...”그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쇠약했다.“짐이... 떠난 뒤에는... 훗날 세상을 떠나거든, 능묘는 간소히 하고, 백성의 힘을 허비하지 말거라.”이준은 잠시 숨을 골랐다. 그리고 힘겹게 말을 이었다.“짐을... 화장하여라. 그리고... 큰 강과 들판, 산천에... 뿌려다오.”그 말을 들은 이정은 충격과 슬픔으로 고개를 번쩍 들었다.“아바마마! 아니 되옵니다! 아바마마께서는 한 나라의 임금이신데 어찌...”“끝까지... 들어라!”이준이 남은 힘을 다해 그의 말을 끊었다.그 눈빛은 단호하기 이를 데 없었다.“짐에게는... 그녀와... 같은 땅에 잠들... 면목도... 또 그녀의... 평온한 삶을... 방해할 자격도 없다.”“그녀는... 산과 물 사이에서... 자유롭고 평안하게... 살아야 한다.”이정은 이준의 눈에 담긴 끝없는 고통과 후회를 보며, 그 ‘그녀’가 누구를 가리키는지 단번에 깨달았다.그는 끝내 울음을 터뜨리며 깊이 머리를 조아렸다.이준은 떨리는 손을 뻗어 베개 곁에 두었던 퇴색한 부적 하나를 집어 들었다.가장자리가 닳아버린 평안부였다.

  • 마음이 식어버린 후궁이 도망쳤다   제31화

    신나정은 떠났다.새로운 신분 문서와 평생 써도 다 쓰지 못할 은표를 손에 넣은 그는 궁장 밖으로 완전히 사라졌다.그리고 이준의 삶에서도 건원전은 완전히 화려한 무덤이 되었다.고독한 군주가 되어버린 이준은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했고, 또 한편으로는 예전의 근면한 제왕으로 돌아간 듯했다.다만 더 침묵했고, 더 차가워졌을 뿐이었다.그는 매일 날이 밝기도 전에 일어나 조회에 참석했고, 깊은 밤까지 주접을 살폈으며 모든 일을 직접 챙기며 나라를 질서정연하게 다스렸다.천하가 태평하고 국력이 날로 융성해지니 대신들은 그를 경외했고, 백성들은 그를 따랐다.하지만 그의 얼굴에서는 더 이상 웃음을 볼 수 없었다.깊은 눈동자는 마치 메마른 우물처럼 어떠한 파문도 일지 않았다.그는 다시는 후궁에 발을 들이지 않았고, 후궁 간택 또한 입에 올리지 않았다.장락궁은 완전히 봉해져, 신나정이 떠나던 날의 모습 그대로 남겨 두었다.매일 전담 궁인들이 청소를 했지만, 누구도 그 안에 들어갈 수 없었다.그의 침전에는 한 폭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궁정 화가가 그린, 황후 예복을 입고 화려하게 꾸민 신나정의 모습이 아닌, 그가 기억만을 더듬어 손수 그린 그림이었다.소박한 삼베옷을 입은 그림 속 여인은 나무 비녀로 머리를 틀어 올린 채 활짝 핀 복사꽃 나무 아래 서 있었다.뒤돌아보며 옅게 웃고 있는 얼굴, 맑은 눈빛에는 세상 물정을 모르는 수줍음과 생기가 어려 있었다.그것은 그의 기억 속 가장 처음 만났던 그녀였다.서재를 조용히 쓸고 닦던 작은 궁녀, 그리고 그의 일생에서 유일하게 진정으로 사랑했지만, 제 손으로 잃고만... 신나정이었다.정무를 마친 깊은 밤이면 그는 홀로 초상화 앞에 서 있었는데 한 번 서면 밤을 꼬박 새우기 일쑤였다.그러다 가끔은 손끝으로 그림 속 여인의 뺨을 천천히 쓸며, 다정하면서도 고통스러운 눈빛으로 누구도 알아들을 수 없는 참회와 그리움을 중얼거렸다.그는 모든 정성을 태자 이정을 가르치는 데 쏟아부었다.그에게 직접 글을 가르치고 제

  • 마음이 식어버린 후궁이 도망쳤다   제30화

    신나정은 그 자리에 서서 이준이 내민 신분 문서와 은표를 바라보다가 등을 돌린 채 어깨를 미세하게 떨고 있는 사내에게로 시선을 돌려 한참을 바라보았다. 바람이 그녀의 이마 앞 잔머리를 흩날리며 매끈한 이마와 지나치게 고요한 두 눈을 드러냈다.그녀의 마음속에서는 거대한 파도가 일고 있었다.자유.그토록 오랫동안 갈망했고, 몸부림쳤으며, 심지어 죽음으로 협박하면서까지 원했던 자유가...지금 이 순간 이렇게 쉽게 그녀 앞에 놓여 있었다.이준이... 정말로 그녀를 놓아주려 하는 것인가?그것도 자신의 모든 퇴로를 끊어 버리는 방식으로?애써 침착한 척하지만 뒷모습만으로도 깊은 슬픔이 배어 나오는 그를 바라보고 있자니, 그녀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장면이 걷잡을 수 없이 스쳐 지나갔다.그녀를 위해 몸을 던져 칼을 막아 냈던 결연한 눈빛, 고열에 시달리며 몇 번이고 되뇌던 참회와 사죄, 다친 다리를 끌면서도 눈밭에 고집스럽게 서 있던 모습, 호부와 옥새를 내밀며 ‘이 천하가 네 미소 하나만도 못하다고’고 말했던 광기.그리고 지금...문서를 내밀며 떨리던 손과 갈라진 목소리.원망?당연히 원망스러웠다.그 뼛속 깊은 원한은 이미 피와 살에 스며들어 지워질 수 없는 것이었다.하지만 그녀를 위해 거의 모든 것을 버렸고, 하늘 위에서 바닥으로 추락해 초췌한 몰골이 되었으며, 지금은 기꺼이 그녀에게 자유를 주려는 이 사내를 보고 있자니...그 증오 속에는 그녀조차 분간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조금씩 뒤섞여 있었다.그녀는 석양이 거의 완전히 지평선 아래로 사라지고, 하늘에 처연한 노을 한 줄기만 남을 때까지 아주 오랫동안 침묵했다.마침내 그녀는 천천히 손을 뻗어 묵직한 문서와 은표를 받아 들었다.차가운 감촉이 손끝으로 전해졌다.그녀가 그것을 받아들였다는 것을 느낀 순간, 이준의 몸은 크게 굳더니 난간을 쥔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가 손등 위로 핏줄이 선명하게 돋아났다.그는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돌아보지 않기 위해서였다.신나정은 문서와 은표를 소중히 품 안

  • 마음이 식어버린 후궁이 도망쳤다   제29장

    신나정은 의서를 덮고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는데, 눈빛에는 옅은 의문이 담겨 있었다.힘겹게 몸을 일으키던 이준은 복부의 상처가 당겨지자 눈썹이 미세하게 찌푸려졌고, 이마에는 땀이 맺혔다.하지만 그는 끝내 이를 악물고 내시의 부축으로 일어나 두꺼운 검은색 대창의를 걸쳤다.“가마는 필요 없다. 짐은... 좀 걷고 싶구나.”그는 내시의 부축마저 물린 채 다소 휘청거리는 발걸음이지만, 끝까지 스스로 한 걸음씩 걸어 황궁에서 가장 높은 곳인 관상대로 향했다.신나정은 조용히 몇 걸음 뒤에서 그를 따르며 가을바람 속에서 유난히 초라하고 쓸쓸해 보이는 그의 등을 바라보았다.그는 눈에 띄게 수척해졌고, 어깨마저 약간 굽어 있었다.그 길은 더없이 느리고 힘겨워 그는 몇 번이나 걸음을 멈추고 숨을 고르곤 했다.하지만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고, 그녀를 재촉하지도 않았다.마침내 두 사람은 관상대에 올랐다.이곳은 황궁에서 가장 높은 곳이었다.겹겹이 이어진 궁전의 금빛 지붕은 물론이고, 그 너머로 궁 밖의 자유로운 세상을 상징하는 민가와 먼 산까지 내려다볼 수 있었다.가을바람이 세차게 불어와 두 사람의 옷자락을 펄럭이게 했다.이준은 차가운 난간을 짚은 채 먼 곳을 바라보며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의 시선은 수많은 궁궐을 지나 아주 먼 곳에 머무는 듯했다.신나정은 그의 시선을 따라 바라보았지만, 보이는 것은 석양에 붉게 물든 구름과 궁장 밖으로 희미하게 드러난 앙상한 나뭇가지뿐이었다.“나정아.”이준의 바람에 흩어진 목소리에는 묘한 부드러움과 체념이 묻어 있었다.“저기를 보거라.”그는 손을 들어 궁장 밖 어느 방향을 가리켰다.“궁 밖의 복사꽃은... 벌써 피었겠지.”신나정은 잠시 멈칫했다.지금은 늦가을이라 복사꽃이 필 리 없었다.하지만 그녀는 반박하지 않고 그저 조용히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이준 역시 그녀의 대답을 바라는 것은 아닌 듯했다.그는 손을 내리고 창의 안쪽에서 천천히 두 가지 물건을 꺼냈다.하나는 새로 발급된 신분 문

  • 마음이 식어버린 후궁이 도망쳤다   제28화

    중상을 입은 이준은 의식을 잃은 채 위태로운 상태에 빠졌다.조정은 당분간 내각 대신들이 대신 맡아 처리했지만, 궁 안의 분위기는 얼음처럼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신나정은 건원전의 편전에 머물게 되었다.그녀는 차갑게 방관할 수도 있었고, 심지어 이 틈을 타 떠날 수도 있었다.하지만 하루하루 불안에 떨며 지내는 궁인들의 얼굴과, 번번이 고개를 저으며 한숨짓는 태의들의 모습을 보면서... 결국 그녀는 마음을 독하게 먹을 수가 없었다.어찌 되었든 이 사내는 그녀를 구하다 이리된 거니까.그녀는 말없이 용상 곁으로 다가가 궁인들이 들고 있던 피 묻은 수건과 따뜻한 물을 받아 들었다.그리고 의식 없이 누워 있는 이준을 직접 돌보기 시작했다.그의 얼굴과 몸에 묻은 피와 식은땀을 닦아 주고, 피에 젖은 붕대를 갈아 주며, 상처에 조심스럽게 약을 발랐다.익숙한 손놀림은 아니었지만 유난히 세심하고 부드러웠다.그러다 그의 윗옷을 벗기는 순간, 등을 가로지르는 채 아물지 않은 채찍 자국들과 옆구리의 끔찍한 관통상을 본 그녀의 손끝이 아주 미세하게 떨렸다.그 새로운 상처와 오래된 흉터들은 모두 그가 그동안 겪어 온 고통과 몸부림을 말해 주고 있었다.밤이 되자 이준은 다시 고열에 시달려 온몸이 불처럼 뜨거웠고, 의식 또한 흐릿해 있었다.그는 끊임없이 잠꼬대를 했다.미간은 깊이 찌푸려져 있었고, 몹시 괴로워 보였다.“나정아... 미안하다... 미안하다...”“냉... 냉궁은 너무 춥구나... 네 손도... 너무 차갑다...”“가지 말거라... 날 버리지 말거라... 내가 잘못했다... 정말 잘못했다...”“나정아... 가면 안 된다...”한 마디, 한 마디... 분명하지 않은 중얼거림이었지만 가시처럼 그녀의 마음을 자꾸만 찔러댔다.신나정은 침상 곁에 앉아 찬물에 적신 수건을 몇 번이고 그의 이마에 올려놓으며 열을 내리려 애썼다.그가 열에 들떠 내뱉는 참회와 애원을 들으며, 증오와 냉담함으로 쌓아 올린 그녀의 두꺼운 마음속 얼음벽에... 마치 이 뜨거운

  • 마음이 식어버린 후궁이 도망쳤다   제27화

    하지만 충격이 지나간 뒤 그녀의 마음속에 밀려온 것은 더 깊은 황당함과 비웃음뿐이었다.그녀는 천천히 눈을 들어 기대감으로 가득 찬 이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차갑고 맑은 눈빛은 가을 서리 같았다.“폐하.”나직한 그녀의 목소리에는 성가심과 비웃음이 배어 있었다.“폐하는 끝내 진정한 존중이 무엇인지 배우지 못하셨군요.”“제가 원하는 건 처음부터 이런 것들이 아니었습니다.”“황후의 자리도, 폐하가 강산을 버려 얻어 낸 그럴듯한 ‘자유’도 아닙니다.”“제가 바란 것은 단지 깨끗한 감정 하나였습니다. 계산도, 강요도 없는 마음, 그리고... 절 소중히 여길 줄 알고, 제가 믿고 의지할 만한 사람 하나였지요.”“하오나 폐하는 아닙니다.”“예전에도 아니었고, 지금도... 여전히 아닙니다.”이준의 눈빛은 그녀의 말과 함께 조금씩 빛을 잃어 가다가, 마침내 완전히 죽은 재처럼 잿빛으로 가라앉았다.그는 비틀거리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우스운 꼴이 되어 버린 호부와 옥새를 바라보다가, 다시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 차갑고 담담한 그녀의 눈을 마주했다.뼛속까지 스미는 한기가 발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치솟았다.그는 강산을 버리는 것이 가장 큰 진심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그녀의 눈에는 그것조차 제왕다운 오만과 이기심, 그리고 존중을 모르는 강요일 뿐이었다.어쩌면 그는... 무엇을 하든 틀린 사람일지도 모른다.이준의 강경한 진압은 조정의 겉으로 드러난 반대 여론을 잠시 잠재웠지만, 암류는 여전히 거세게 흐르고 있었다.특히 이해관계를 침해당한 종친들과 김하연의 잔당들은 이대로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그들은 궁중 금군의 부통령 한 명을 매수해 치밀한 암살 계획을 꾸몄는데, 시기는 궁중 연회가 끝난 뒤로 정해졌다.술기운이 든 이준이 신나정과 함께 어화원을 거닐고 있고, 금군들의 경계심도 다소 느슨해진 그때였다.순간 가산(假山)과 숲 사이에서 몇 명의 자객이 번개처럼 튀어나와 번뜩이는 칼날을 들고 이준을 향해 달려들었다. “자객이다! 폐하를 지켜라!”금

فصول أخرى
استكشاف وقراءة روايات جيدة مجانية
الوصول المجاني إلى عدد كبير من الروايات الجيدة على تطبيق GoodNovel. تنزيل الكتب التي تحبها وقراءتها كلما وأينما أردت
اقرأ الكتب مجانا في التطبيق
امسح الكود للقراءة على التطبيق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