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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소이연은 차가운 눈빛으로 문서인을 바라보았다.

비록 한심하기 짝이 없지만, 삼 년 동안의 감정 때문에 그녀는 어제까지만 해도 문서인이 자기를 불길 속에 버리고 소나은을 구해준 이유가 듣고 싶었다. 물론 그렇다고 용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문서인의 어떤 해명도 결국 그녀가 모욕을 자초하는 일이라 판단되었다.

문서인은 소이연의 대답을 듣지 못했다. 그는 시선을 돌려 남자를 바라보았다.

상대의 정교한 비주얼에 문서인은 눈빛이 멈칫했다. 그러고는 이내 눈앞의 이 남자가 바로 어제 소이연를 구하기 위해 불 속을 뛰어들었던 소방관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당시 그 남자는 구조용 헬멧을 쓰고 있었기에 문서인은 그의 이목구비를 자세히 보지 못했으며 단지 키가 크다는 것만 보아낼 수 있었다.

"문서인, 우리 그만하자."

소이연이 입을 열었다.

삼 년의 감정은 이렇게 끝났다.

문서인은 갑자기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다.

그는 놀란 눈빛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소이연을 바라보았다.

화가 절정에 달한 그는 남자에게 삿대질하며 큰 소리로 말했다.

"소이연, 이 남자가 대체 뭔데? 이 남자는 그저 소방관일 뿐이야. 그런데 단지 소방관 때문에 나랑 헤어지겠다고?!"

육현경의 동경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의 눈빛에는 조소와 음산함이 섞여 있었다.

하지만 육현경은 침묵을 택했다.

육현경은 무뚝뚝하게 외면하는 표정이지만 전혀 자리를 비켜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왜 헤어져야 하는지는 네가 더 잘 알 거 아니야?!"

소이연의 냉담한 목소리에서 분노가 느껴졌다.

"어제 네가 소나은을 구하기로 한 순간, 모든 게 끝이라는 걸 생각 못했어?! 문서인, 더 이상 날 바보 취급하지 마!"

문서인의 격앙된 표정이 갑자기 굳어졌다. 그는 할 말이 없다.

문서인은 한참 동안 침묵을 지켰다.

복잡한 눈빛과 뒤죽박죽 한 머릿속, 그렇게 한참 뒤에야 문서인의 눈빛은 다시 석연해졌다.

"어쩌면, 우리는 처음부터 만나지 말았어야 했어.”

문서인은 슬픈 눈으로 소이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소이연, 너는 너무 독립적이고 강해. 너와 만나는 동안 나는 너에게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사람이었어. 그래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어. 너는 사실 내가 필요 없었어."

소이연은 문서인을 가만히 쳐다보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그녀의 심장은 이미 아픔에 적응되었다.

소이연은 해외에서 생활하기 위해 버스킹을 시작했고 바로 그곳에서 문서인을 만나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문서인은 깨끗하고 맑은 소년이었다. 문서인의 미소는 봄처럼 따뜻하고 온화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는 그녀의 공연을 자주 보러왔으며 돈을 지불하기도 했다.

그렇게 오다가다 두 사람은 낯선 곳에서 점차 익숙해졌고 연인 사이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녀는 자기의 과거가 깨끗하지 못하다고 했고,

문서인은 괜찮다고 말했다. 그가 원하는 것은 그들의 미래다.

그러다가 문씨 그룹에 위기가 생기고 대학을 졸업한 문서인은 문씨 가문의 호출로 급히 귀국했다. 한창 사업이 상승세를 보이던 소이연은 문서인을 위해 모든 걸 포기하고 국내로 들어와 문씨 그룹을 위해 일했다. 이 년 동안 문서인과 함께 밤낮없는 야근과 접대를 해왔으며 허리 굽혀 투자를 얻어 마침내 문씨 그룹을 위기에서 벗어나게 했다……

그때의 문서인은 자기 곁을 지킨 그녀에게 고맙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의 문서인은 그녀에게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의 독립과 강함이 오히려 잘못이 되었다고?!

문서인은 죄책감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또 완전히 해탈한 것처럼 말했다.

"앞으로는 혼자서도 잘 지내길 바라. 혹시 힘든 일이 생기면 나 찾아와. 아무래도 한때는 사랑했던 사이니까, 친구로 지낼 수도 있어......"

"같잖은 호의는 집어치워. 나 소이연은 평생 날 죽게 내버려 둔 남자는 안 믿어. 네 동정 따윈 필요하지 않아!"

소이연은 쌀쌀맞은 말로 문서인의 정곡을 찔렀다.

"문서인, 기억해. 나 소이연이 먼저 널 버렸어! 하지만 난 진심으로 너와 소나은이 같은 마음이길 바라. 평생 소나은을 선택한 걸 후회하는 일 없길 바랄게!"

소이연의 말에 문서인은 난감해졌다.

어제 소이연을 버려둔 것은 확실히 그의 잘못이라 변명할 여지도 없었다.

그리고 이 순간, 소이연의 공격적인 태도에 그는 그녀와 제대로 대화할 수도 없었다.

문서인은 그녀를 유심히 바라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러면 쉬어."

병실을 나가려던 문서인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었다.

문서인의 시선은 육현경에게로 향했다.

육현경도 담담하고 냉담한 표정으로 문서인과 눈을 마주쳤다.

"이 남자처럼 얼굴만 반반한 거지들은 많이 봤어. 화려한 껍데기와 입에 발린 말로 돈이나 뜯어내고 여자의 마음을 가지고 놀지. 절대 이런 자식한테 속지 마......"

문서인은 울분을 터트리며 말했다.

소이연은 더는 문서인의 목소리가 듣고 싶지 않았다.

"문서인, 돈으로 사람 마음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해?!"

육현경은 이내 눈치 있게 소이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타락을 원한다면, 마음대로 해."

문서인은 씩씩거리며 떠났다.

갑자기 조용해진 병실.

"침대까지 옮겨줘서 고마워요. 아, 그리고 방금 도와주신 것도 고마워요."

소이연이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피곤하니 대표님도 이만 돌아가 주세요."

육현경이 천천히 말했다.

"소이연 씨, 그럼 쉬세요."

육현경의 우월한 기럭지… 병실을 나가기 전 육현경은 그녀의 침대 머리맡에 휴지를 놓아주었다.

"남자가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건, 무능하다는 의미에요. 당신과는 상관없어요."

소이연은 어리둥절해졌다.

이 남자에게서 받는 느낌은 뭐랄까, 다른 사람이 주는 느낌과 다른 것 같았다.

병실을 나선 육현경의 발걸음이 갑자기 느려졌다.

그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아저씨."

"대표님."

상대는 공손히 말했다.

"앞으로 민이 식사 준비할 때, 옆 병실도 부탁드릴게요."

"...... 네."

육현경이 전화를 끊자마자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그는 수신 번호를 확인했다. "하도경."

"듣자 하니, 귀국하자마자 호텔에 불났다면서?"

하도경이 놀려주었다.

"응."

육현경은 가볍게 답했다.

"손해가 20억은 훨씬 넘을 텐데? 기분 어때?"

하도경은 계속 놀려댔다.

"잘 탔어."

"...... 너 혹시 충격이 지나쳐서 제정신이 아닌 거야?! 우리가 위로해 줄 테니 한잔할까?"

"필요 없어. 하지만 축하해 줄 거라면 기꺼이 받아주지."

육현경이 말했다.

"그런데 시간 없어."

하도경은 그대로 굳어졌다.

‘겨우 몇 년을 못 봤다고, 육현경 설마 천재에서 바보가 되는 중이야?!’

"민이 오늘 퇴원한 거 아니야?"

하도경은 겨우 정신을 차리고 다급히 물었다.

귀국 첫날 육민이 급성 맹장염으로 수술에 들어가다 보니 환영파티가 이렇게 미뤄졌다.

"퇴원 안 했어."

육현경이 덧붙였다.

"보름 정도 연장했어."

하도경은 걱정 가득한 말투로 물었다.

"민이 괜찮은 거지?"

"괜찮아."

육현경은 무뚝뚝한 말투로 말했다.

"그냥 병원에서 지내는 거야."

"......"

‘병원이 뭐 호텔인 줄 알아?!’

"다음에 얘기해."

"야, 육현경."

하도경이 다급히 그를 불렀다.

"정신과 의사랑 지금 갈 테니까, 너 상담 한 번 받아 봐......"

"너나 해!"

육현경은 곧바로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는 휴대폰을 내리고 고개를 돌려 옆 병실을 바라보더니 입술을 오므리고 아들의 병실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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