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비의 가족 연회명원제가 있을 때는 현비는 밥상을 정리하는 등 본분에 만족하며 일가족이 화목하고 고부관계 사이도 좋았다.명원제는 가족들이 밥 먹을 때 한쪽에서 우리 떡들과 놀아주고 작은 수저를 가져 다가 떡들에게 맑은 국물을 떠먹여 주기도 하는데, 계속 젖만 먹고 사람의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는 우리 떡들은 엄청 흥분해서 제비새끼처럼 입을 쫙쫙 벌리고 분홍색 혀로 숟가락을 쪽쪽 핥는다.명원제가 넋을 잃고 바라보며 한숨을 푹 쉬더니, “천하에 가장 좋은 것도 이 작은 녀석들에게 비할 바가 아니고, 울던지 웃던지 아무런 까닭 없이 사람을 기쁘게 하니 종일 아가들과 있으면 시름할 겨를이나 있을까?”원경릉이 미소를 띠고, “아바마마, 호비 마마께서 얼른 황자나 공주를 낳고 싶다고 하셨는데, 그땐 매일 아이를 어르실 수 있습니다.”오늘밤 모두 태평함을 꾸미며 일치단결해 우아하고 아름다운 색조와 화기애애한 모습의 한 폭의 그림 같은 가족을 연출했다.그런데 원경릉의 한 마디가 이 아름다운 그림을 쫙 찢어 놓고 말았다.현비의 얼굴이 순간 싸늘해 지며 차가운 목소리로, “밥 먹으렴, 말 안 한다고 아무도 널 벙어리라고 안 한다. 말만 많이 지껄여 봤자 헛소리밖에 더 하겠니, 예의도 모르느냐?”원경릉이 당황하며 그제서야 현비가 그 일이 신경 쓰일 수 있다는 걸 생각해내고, “죄송합니다. 실수했습니다.”우문호는 술 두 잔을 연거푸 마시고 원경릉이 억울한 걸 못 보겠기에 담담하게, “어마마마, 신경 쓰이시면 조용하라고 하시면 되지, 그렇게 엄하게 혼내실 필요 있습니까?”우문호가 말이 없을 때 그린 듯한 가족 모습으로 아직은 손 볼 여지가 있었지만, 그가 원경릉을 돕자고 나서는 순간 한 폭의 그림에 난 균열이 얼룩지다가 결국 갈가리 찢어지는 운명을 맞았다.현비가 ‘탁’하고 젓가락을 탁자에 내려놓더니 열 받아 몸을 떨며, “불효자 같으니, 지금 네 아내에게 말 한 마디조차 하지 못하게 하는 거냐? 네 눈엔 나란 어미가 있기나 하니? 아내를 얻으면 어미를 잊는다더니
현비의 발악과 건곤전의 참사우문호가 이 말을 듣고 화를 참을 수 없으나, 명원제는 일부러 우문호를 위해 모자의 정을 살펴주며 평소처럼, “다섯째야,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가거라.”“아바마마!” 우문호가 명원제를 보니 명원제의 눈에 경고의 빛을 띠고 있어 우문호는 화를 가라앉히고, “예!”하는 수밖에 없었다.원경릉이 희상궁과 유모를 불러 아이들을 안게 하고 식사도 채 마치기 전에 다섯식구는 총총히 자리를 떴다.명원제가 의자에 앉아 현비를 바라봤다.현비는 고집을 부리고 서서 얼굴이 새파래진 채로, “폐하께서 신첩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시면 신첩을 벌하셔서 계속 금족령을 내리시면 됩니다.”명원제는 엄지 손가락에 끼고 있는 옥가락지(엄지 손가락의 옥가락지는 권력을 상징)를 돌리며 눈을 감고 있으나 날카롭고 명료하게 생각하며 얼음장 같은 말투로 쌀쌀맞게, “현비, 금족령이 두려운가?”현비는 눈물이 불쑥 터지자 닦으며 고집을 부리는데, “두려우면 어쩌겠어요? 폐하께서 신첩의 마음을 반이라도 느끼고 아파하실 수 있으십니까? 폐하께서는 신첩이 왜 그렇게 했는지 깊이 생각해 보신 적이 있기나 하신가요? 신첩도 고심했습니다. 태자는 나라의 근본으로 가볍게 사람들에게 좌지우지 되어서는 안되는데 다섯째는 지금 머리속이 온통 원경릉 생각 뿐입니다. 너무 위험해요, 원경릉을 없애야 폐하께서도 두 다리 쭉 뻗고 걱정이 없지 않으시겠습니까?”명원제의 목소리가 거세지고 얼굴이 얼음같이 차가워 지더니, “지나치게 고심했군, 고작 후궁의 일개 부녀자가 나라의 근본이 어쩌고 어째? 자네가 할 말인가? 만약 태자비가 태자의 일에 간여할 가능성이 있어도 그건 단지 가능성일 뿐이지만, 자네는 직접 태자에게 간여하고 그것도 모자라 네 친정 형제들이 관직과 작위를 도모하는데 태자를 제어하려고 들었어, 짐이 자네를 처벌하지 않는 것은 이제 막 태자를 책봉했으니 태자의 체면을 봐서야, 태후 마마께서 자네에게 한 번 경고했고, 이번에는 짐이 두번째로 경고하지, 금족령 정도의 단순한 벌이 두렵지
백년된 여아홍은 누가 훔쳐갔나?몰래 튀려고 했는데 우문호가 이렇게 부르니 안에 있던 경대공주가 명원제를 보고 순간 짚고 있던 지팡이로 문턱을 두드리며 소리를 꽥 지르는데, “황제 폐하가 오셨군, 잘 오셨네, 어서 와서 고모 할머니의 억울함을 풀어 주시게.” 명원제가 우문호를 죽일듯이 째려보더니 어쩔 수 없이 안으로 들어가 백발이 성성한데 광광 대며 화를 내는 경대공주에게 예를 올렸다.태상황은 구린 얼굴로 앉아 있는 게 억울하기 그지 없는 모습이다.명원제가 가서 예를 취한 뒤 목소리를 낮춰 작은 소리로, “아바마마, 가져 가신 거예요 아니예요? 가져가신 거면 돌려드리세요, 제가 다시 마련해 드릴 테니까.”태상황이 몰래 경대공주를 째려보는데 경대공주가 문밖에 우문호와 원경릉을 발견한 것을 보고 호기심이 일었는지 손을 펼쳐, “과인이 술을 탐하는 사람도 아니고, 경대공주의 여아홍을 어디다 쓰려고 원한단 말이야? 과인이 이 나이를 먹고도 여전히 술이나 훔쳐 마시지 않으면 안된다는 말인가?”명원제가 상선을 보니 상선도 감출 수 없는지 명원제를 감히 바라보지 못하고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눈빛이 어지럽고 두 손으로 소매를 쥐고는 돌돌 말고 있다.명원제가 생각이 있어 계속 작은 목소리로, “아바마마, 그만 하시고 돌려주세요, 안 그러면 평안하긴 글렀다고요.”태상황이 순식간에 탁자를 치고 명원제를 가리키며, “알고 보니 네가 가져간 것이구나? 왜 미리 얘기를 안 해? 결국 네 고모 할머니가 여기서 반나절을 소리소리 지르셨지 않느냐, 과인이 가져간 줄 알고 말이다.”명원제는 어이가 없고 자기 아버지라는 걸 믿을 수가 없는데 아직 변명의 말도 꺼내기 전에 경대공주의 지팡이 소리가 재촉하며 울렸다.명원제는 천천히 뒤로 돌아 미소를 그려 붙이고는 경대공주의 분노한 얼굴을 뒤로 한 채 우문호에게 걸어가려고 했다.우문호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명원제의 눈빛을 봤는데, 우문호의 마음이 덜컹 내려앉으며, 안돼!과연 친애하는 아바마마께서 우문호를 가리키며 종소리가 울리듯
경대공주(慶大公主)는 나이도 많고 정신도 온전치 않아서 이것이 진짜 우문호가 찾아낸 것이라고 생각하여 탄식했다. “됐다 됐어! 아직 어려서 철이 들지 않은 게야. 오늘 돌려주면 그만이다.”명원제는 문을 열고 두 사람을 보며 손을 저었다. “빨리 물러가지 못할까?”우문호는 실망한 표정으로 원경릉과 아이들을 데리고 떠났다. 마차에 올라탄 원경릉은 조용히 그에게 물었다.“경대공주의 존재를 지금까지 몰랐네? 저렇게 나이가 많은 노인이 황실에 있을 거라고 생각지 못했어. 여아홍(女兒紅)을 아직 있는 걸 보니…… 설마 아직 시집을 가지 않으신 거야?”희상궁은 웃으며 원경릉을 보았다. “아직 미혼이십니다. 젊었을 때 수양딸을 얻으셨는데 그게 바로 수씨 집안의 셋째 아가씨입니다.”“루신(落神)이라는 말씀이십니까?”원경릉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희상궁에게 물었다. “소요공의 사부이며, 태상황님의 짝사랑 상대인데다 경대공주의 수양딸이라는 말씀이십니까? 루신께서는 얼마나 대단하신 분이길래 하나도 하기 힘든 걸 세 가지나…… 한 번 만나 뵙고 싶네요.”“그건 좀 힘들 것 같습니다.” 희상궁이 웃었다. “그럼 그 루신께서 어디에 계신지 아는 사람은 없나요?”우문호는 원경릉과 희상궁의 대화가 귀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그저 부황에게 배신을 당했다는 서러움에 고개를 돌리고 창밖만 바라보았다. “우문호, 루신께서 어디에 있는지 너도 몰라?”“몰라.”원경릉은 축 가라앉은 그의 목소리에 걱정이 됐다. “너 괜찮아……?”“응. 그냥 모비의 말이 생각나서 그래.”잠시 후, 우문호가 원경릉의 손을 잡고 그녀의 눈을 응시했다. “경릉아, 너무 마음에 두지 않았으면 해. 이제부터 별일 아니면 모비를 뵈러 가지 마.”“에이, 난 또 뭐라고! 20년 동안 애지중지 키운 아들인데 그런 아들을 며느리가 가져갔으니 당연히 기분이 좋을 리가 없지. 괜찮아. 난 네 생각보다 속 좁지 않거든.”원경릉 역시 현비를 싫어했지만, 피로 이어진 모자 관계를 어떻게 끊어내
북당은 청나라 시대가 아니기에 황실의 아이들이 친 어머니 곁에서 자랄 수 있었다. 20여 년 된 모자간의 정을 어찌 그리 쉽게 끊을 수 있겠는가? 우문호는 현비가 원경릉을 해하려고 했다는 것에 분노한 것은 맞지만 그의 마음 속 깊은 곳에는 현비에 대한 사랑이 있을 것이라고 원경릉은 생각했다.두 사람의 말을 듣고 있던 희상궁이 조용히 입을 떼었다. “태자비께서 현비마마와 마찰을 줄이시려면 이제부터 생신이나 연말 행사가 아니면 현비 마마를 찾아뵙지 않으시면 됩니다.”“예, 상궁. 그렇게 하겠습니다.” 원경릉은 고개를 끄덕였다. 희상궁은 속으로 현비를 욕했다. 만약 현비가 소란을 피우거나 사고를 쳐 죄를 받게 된다면 당연히 아들인 우문호에게도 불똥이 튈 것이다. 이 점을 현비가 모를리 있겠는가?궁 안에서 현비의 입지는 항상 단단했으며 황상도 한달에 두세 번은 그녀를 만나러 갔다. 그러나 공주부 사건 이후로 우문호가 원경릉과 혼인을 하게 되고, 원경릉이 자식을 낳게 되면서 모든 일이 그녀의 통제에서 벗어나게 됐다. 현비는 수십번 자신이 한 일을 곱씹어보았지만 결코 자신이 잘못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태자는 장차의 북당의 책임자가 될 사람이다. 그런 중요한 인물이 여인의 말에 휘둘린다면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겠는가? 북당을 지키기위해서 그녀는 심혈을 기울여 말한 것인데 왜 아무도 그녀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 것인가? 현비는 그녀의 고모인 태후마저 그녀를 나무라자 반성을 커녕 태후를 원망했다.현비는 지금 총대를 매고 비난을 받는 것이 북당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현비는 아무도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자 화가 났고, 당시에 원경릉을 죽이지 못한것이 한으로 남았다. ‘황실 사람들은 원경릉이 바르고 선한 여인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야. 원경릉의 실체는 나만 알고 있는데…… 왜 아무도 내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 거야!’추후에 이 일이 주후(褚后)에 귀에 들어갔다. 주후는 총명한 사람으로 사람을 시켜 태후궁의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태후는
현비가 태후의 저의를 모르겠는가? 현비는 궁안에 자신이 병에 걸렸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 것을 보고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녀는 화가 나 충동을 못 이기고 가위를 집어 들어 자신의 목에 갖다 댔다. 그것을 본 사람들이 놀랐고, 현비는 가위로 목을 살짝 그었다. “황상에게 가겠다! 본궁을 막는다면 본궁은 오늘 여기서 죽을 것이야!”궁안의 사람들은 하는 수없이 어서방으로 가서 황상에게 현비의 상황을 전했다. 내일은 추석이기에 오늘은 궁안이 한가했다. 명원제가 오랜만에 좋아하는 책을 읽으려고 하는 찰나에 현비가 자살하려고 한다는 소식을 듣고 책을 내려놓았다. “현비가 자살하려고 한다고? 그럼 이 소식을 황후에게 보고하거라. 황후에게 날카로운 단도가 있으니 그것을 가져다가 현비에게 갖다주면 된다.”그 말을 들은 하인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명원제를 바라보았다.“뭐 하고 있어? 감히 명령을 거절하려는 것이냐?”하인은 벌벌 떨며 머리를 조아리고 밖으로 나갔다. 그는 명원제의 성지를 어떻게 황후에게 전해야 할지, 정말 명원제의 말을 그대로 전해도 되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지만, 그가 무슨 권리가 있겠는가.주후는 하인의 말을 전해 듣고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본궁이 어젯밤 악몽에 시달려 지금도 머리가 깨질 것 같으니, 너는 귀비를 찾아가 이 사실을 전하고 귀비가 가지고 있는 단도 중에 가장 날카로운 것을 현비에게 가져다 주거라.”주후는 하인이 전한 말을 듣고 명원제가 화가 나서 한 말이라는 것을 알았다. 만약 그녀가 명원제의 말대로 단도를 꺼내 하인에게 건넸다면, 이는 자신이 태자의 친모를 죽인 것이나 다름없지 않겠는가?하인은 어쩔 수 없이 명원제의 성지를 가지고 귀비에게 갔다. 귀비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의 하인을 보고 인상을 쓰며 손톱을 다듬었다. “얘! 넌 왜 그렇게 멍청하니? 황상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이유가 뭐겠어? 그냥 현비에게 가서 황상이 일이 바빠 갈 수가 없으니 소란을 피우지 말라고 하면 되잖아!”하인도 귀비의 말대로 하
제왕은 자신과 원용의가 한 마차에 그리고 우문호 내외가 한 마차에 타고, 나머지 사람들은 다른 마차에 태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식이가 언니와 함께 타겠다고 하자, 어쩔 수 없이 제왕과 우문호가 같이 타고 원경릉과 원용의 그리고 사식이가 한 마차에 탔다.우문호는 제왕과 단둘이 마차에 탄 것이 마음에 안 드는 듯 연신 한숨을 내쉬다가 제왕을 노려보며 호되게 질책했다. “본왕이 모처럼 네 형수를 내리고 바깥 구경을 하려고 했더니만 왜 따라오겠다고 난리를 쳐서 이 사단을 만드는 거야?”제왕도 인상을 쓰고 우문호를 보며 반박했다. “누구는 이러고 싶어서 이런 줄 아십니까? 저도 원용의랑 같이 마차를 타고 가고 싶었다고요. 마차가 덜컹거리니 손도 잡아주고 피곤하면 어깨에 기대기도 하면서 가려고 했더니만! 누가 다섯째 형님이랑 가고 싶겠습니까?”“시끄럽다!”“형님이 형수님한테 잘 좀 얘기해 보세요! 우리 둘이 마차를 타고 가면 뭐 합니까?”우문호는 세 여인이 타고 있는 마차에서 하하 호호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고 혀를 찼다. “저렇게 재밌어하는데 내가 어떻게 말을 꺼내냔 말이야!”우문호는 이 순간 원경릉이 너무 미웠다. 원용의랑 사식이 그리고 제왕이 한 마차에 타고, 원경릉은 자신과 함께 마차에 타면 될 것을 왜 굳이 좁은 마차에 셋이 타겠다고 저러는지 이해가 안 됐다.제왕과 우문호가 탄 마차에는 차가운 기류가 가득했다. 두 사람 모두 왕부를 떠나기 전부터 마차 안에서 각자의 부인과 할 일들을 계획을 했던지라 이 상황이 무척 짜증 났다. 제왕은 고개를 들어 화가 잔뜩 난 우문호의 얼굴을 보았다. 우문호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하나 꺼내 얼굴을 덮고 마차 귀퉁이에 누웠다. *우문호와 제왕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원경릉과 원용의 그리고 사식이를 태운 마차 안은 화기애애했다. 세 사람은 오랜만에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사식이가 피곤하다며 마차 구석에 엎드렸다. 그러자 원경릉이 원용의를 보고
“그렇게 재밌는 얘기를 내가 잘 때 하면 안 되지! 그나저나 언니는 제왕이 주명취를 못 잊어서 싫은 거 아니야? 근데 왜 제왕을 떠나지 않는 거야?” 사식이가 말했다. 원용의는 입술을 깨물며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렴 같이 살았던 사람인데 금방 잊을 수 있겠어? 난 그에게 시간을 주는 거야. 반년 동안 그가 주명취를 잊지 못한다면 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를 떠날 거야.”사식이는 원용의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언니, 주명취는 죽었어. 제왕이 주명취를 백날 그리워해봐 그 여자가 살아 돌아오나. 그리고 주명취가 좋아했던 건 제왕이 아니라 태자셨잖아? 그나저나 주씨 집안 여자들은 취향이 하나같이 다 똑같네. 주명양도 그렇고 주명취도 그렇고 다 태자를 흠모했잖아. 태자께서도 주명취를 좋아한 적 있으시고…… 아무튼 제왕은 주명취 때문에 죽을 뻔했으면서도 아직도 그 여자를 못 잊는다고? 그게 말이 돼?”원경릉은 사식이가 우문호를 언급하자 미간이 찌푸려졌다. “사식아, 주명취 얘기를 하다가 왜 태자 얘기로 빠지는 것이야? 입 조심하거라.”사식이는 머쓱한 표정으로 원경릉을 보았다.“아…… 말을 하다 보니 죄송합니다.”사식이는 원용의를 보며 말을 이었다.“언니, 제왕은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여인을 아직도 마음에 두고 있다는 것 자체가 글렀어! 하마터면 죽을 뻔했는데 말이야. 제왕은 주명취의 관이 떠나는 날에 배웅도 갔잖아? 나 같으면 보러 가지 않았을 거야. 게다가 무덤까지 말이야. 태자께서도……”“사식! 너 말 조심해!” 원용의가 사식이에게 경고했다.“난 사실을 말한 것뿐이야! 제왕도 태자께서도 주명취의 무덤을 찾아가다니 진짜 이해 안 되네.”원용의는 원경릉의 표정을 살폈다.“원누이, 사식이가 결례를 범했습니다. 사식이가 간혹 이렇게 말실수를 하곤 합니다. 마음에 담아두지 마시옵소서.”“괜찮아. 난 태자를 믿어.” 원경릉은 웃으며 대답했지만 마음이 혼란스러웠다.‘다섯째가 주명취의 무덤에 갔다고? 언제 간 거지? 주명취의 무덤은 꽤 멀리
“예, 그립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놀고 싶기도 합니다.”그는 말하다가, 갑자기 신이 난듯 몸을 들썩이며 말을 이어갔다.“여긴 정말 재미있습니다. 아홉째와 나가면 큰 산도 있고, 꽃도, 나무도 많습니다. 물고기도 많고, 사람도 많고, 뭐든지 엄청 많았습니다.”우문호는 웃으며, 못내 안쓰러움을 느꼈다. 예전에 그를 궁 안에 가두고, 거의 밖으로 데리고 나가지 않았다. 게다가 다른 사람이 그를 데리고 나가는 것도 신경 쓰였다.“이곳이 마음에 들면, 좀 더 오래 있어도 된다.”우문호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예, 정말 좋습니다. 다만, 형님과 형수님이 그리웠습니다. 이렇게 오셔서 정말 다행입니다.”여덟째는 흥이 오른 상태로 그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어서 들어가시지요! 아홉째가 형님이 내일 오신다고 맛있는 음식을 많이 준비했습니다.” 그는 뒤돌아 원경릉에게 외쳤다.“형수님, 빨리 따라오십시오. 맛있는 거 많습니다.”미색은 웃으며 꾸짖었다.“이 무심한 녀석, 다섯째 형수님만 챙기고, 여섯 형수가 배고픈지는 묻지도 않는 것이냐?” 여덟째는 그제야 미색을 본 듯,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여섯째 형수님도 오셨습니까? 여섯째 형님도 오신 것입니까? 와, 너무 좋습니다!”“질투하다니?”원경릉은 미색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미소를 지었다.“여덟째는 너보다 나를 더 좋아하는 것이다.”“아유, 참!”미색은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여덟째는 바로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항상 그림과 책자를 선물하는 여섯째 형수님도 좋아했기 때문이다.그는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그... 그럼 같이 드시지요. 음식 많습니다.”“장난이다. 난 질투 안 해.”미색은 기쁘게 말했다.여덟째는 그제야 마음을 놓았고, 다들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원경릉이 만아에게 말했다.“정말 이곳에서 즐겁게 지내고 있구나. 예전보다 훨씬 활발해졌고, 말도 많이 하네. 이 모든 게 아홉째 덕분이다.”만아는 웃으며 말했다.“예, 둘이 시간이 날 때마다 밖으로 나가, 더
원경릉은 발끝을 들어 그의 뺨에 입을 맞추고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우문호는 그런 그녀를 와락 끌어안으며 말했다.“원 선생, 행복하오?”“행복하오.”“하하하. 지금이 아닌, 나와 함께했던 모든 날이 행복했냐고 물어보는 것이오.”“모든 순간이 당연히 행복하고, 기쁘오!”원경릉은 스스로를 자조하듯 웃었다.“나 같은 집순이가 이렇게 결혼생활이 행복할 줄 누가 알았겠소?”한때 그녀는 자신이 평생 결혼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고, 사랑 없는 삶도 부족함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그녀는 사랑을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었지만, 사랑은 사실 정말로 중요했다.산꼭대기에 앉아, 차가운 바람을 맞고 있었지만, 추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의 풍경을 눈에, 그리고 마음에 깊이 새기고 싶었다.그리고 함께 늙어간 후, 다시 천천히 되새기고 싶었다.영산에서 내려온 후, 그들은 다시 여정을 이어나갔다. 이번 목적지는 바로 남강이었다.명절이 지난 뒤, 아홉째는 여덟째를 데리고 먼저 남강으로 돌아갔다. 다들 그가 그곳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다.남강 땅은 오랜만이었다. 마지막으로 발을 디딘 건, 정화를 구하러 갔을 때였다.남강으로 가는 내내 홍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냉정언이 물었다.“남강에 가면, 못난이를 만날 것이오?”“만나야지.”홍엽이 답했다.“물론 만나야지!”못난이는 오랜 시간 그와 함께했던 사람이니, 만나야 했다. 못난이가 종종 편지를 보내오긴 했지만, 자기 상황은 거의 말하지 않았다.반면 아홉째는 편지에서 북강의 소식을 자주 전해주었다.지금의 남강은 어느 정도 통일되어 있었고, 북강과 남강도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었다. 그동안 이익 문제로 양측의 왕래가 더욱 빈번해졌다.아홉째는 편지에서 못난이가 북강의 민심을 얻었고, 성격도 예전보다 훨씬 밝아져,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하다고 전했다.홍엽의 마음엔 기대와 기쁨이 섞여 있었다. 그도 지금 잘 지내고 있으니, 못난이도 잘 지내길 바랐다.우문호는 남강에서 돌아온 후, 변방으로 갈
그 일을 떠올리자, 꿈에서 본 일이라 그런지 마치 얼마 전에 있었던 일처럼 느껴졌다.그때 그들은 죽을 만큼 힘든 소년들이었는데, 지금은 한없이 한가한 노인이 되었다.세월은 덧없이 흘러갔고, 그동안 그들은 많은 사람들을 잃었다.무상황은 자신의 황후였던 소봉을 떠올렸다.그들은 줄곧 전형적인 황제와 황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나라를 다스렸고, 그녀는 후궁을 다스렸다. 비록 그가 그녀를 괴롭히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많은 애정을 주지도 않았다.그렇게 평범하게 평생을 함께했지만, 그녀가 떠나는 날, 그는 마음속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간 듯한 슬픔을 느꼈다.평생 함께했던 사람이 자신보다 먼저 떠날 거라 생각하지 못했기에 더욱 아팠다.세 사람은 한참 동안 넋을 잃고 있다, 다시 길을 나섰다.유아독존과 관련된 일이 생각보다 커졌지만, 모든 소란은 결국 가라앉게 될 것이다. 모든 소문도 점점 사그라들기 마련이니, 그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세 사람이 여행하는 영상이 점점 유명해지면서, 유아독존은 더 심하게 비난을 받았다.현실에서 함부로 욕설을 내뱉으면 얻어맞을 수도 있지만, 인터넷에서는 당당한 명분이 있었기에 악성 댓글을 다는 자들은 마음껏 욕을 퍼부었다.그리고 어느 날, 추 어르신이 오래도록 인터넷의 댓글을 훑어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는 이내 해가 지는 장면을 찍어 짧은 영상을 올렸다. 그리고 영상에 한마디만 덧붙였다.“분쟁 없이, 오직 평화만 있기를.”그는 모든 다툼이 끝나길 바랐고, 누군가를 벼랑 끝으로 몰지 않기를 바랐다. 단지 말로만 승부를 겨루는 사람은 그들의 적이 아니기 때문이다.음... 무엇보다 적이 될 자격도 없었다!영상이 올라간 지 이틀 뒤, 유아독존은 마침내 사과 영상을 올렸다. 그는 질투와 시기로 무술을 모독한 것을 사죄했고, 은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직접 그들의 계정을 태그해 진심으로 사과했다.진심 어린 사과는 항상 용서를 가져오는 법이다. 그리고 악성 댓글을 달던 사람들도 마침내 욕설을 멈췄다.
삼대 거두는 늦은 시각이 되어서야 일어났고, 숙취에서 깨어나니, 이미 날이 밝아져 있었다. 그들은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아, 눈앞의 모든 것이 몽롱해 오늘이 무슨 날인지조차 모를 정도였다.태양이 서서히 떠오르며 하늘에 떠 있는 주황빛 구름은 점점 짙은 금빛으로 변했고, 금빛 가장자리에는 붉은색이 덧씌워져, 눈부시게 아름다웠다.소요공이 눈을 비비며 말했다."꿈을 꿨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동시에 그를 바라보며 이구동성으로 물었다."무슨 꿈을 꿨는가?""꿈에서 숭이가 사내에게 속았는데, 우리가 직접 나서서 복수를 해줬다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놀라서 동시에 숨을 들이켜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귀신이 곡할 노릇이네."말이 끝나자,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깜짝 놀라 외쳤다."자네도 꾼 것인가?""그렇네!""그렇네!""설마 우리 셋이 똑같은 꿈을 꾼 것이오?"소요공도 깜짝 놀랐다.그 일은 그렇게 중요한 일도 아니었고, 어떻게 된 일인지 가물가물할 정도로, 그저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만 어렴풋이 기억할 정도였는데, 꿈에서는 그 장면 장면이 또렷하게 떠올랐다.그리고, 이 꿈은 당시 엄청난 부담을 받고 있던 그들에게 정말 훌륭한 감정 해소가 되었다. 그들은 모든 고통과 억울함, 스트레스를 주먹질로 시원하게 풀어냈다.한편, 무상황은 자신이 황후를 소홀히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때 무슨 상황이었는지 기억하는가?"추 어르신이 흥분한 듯 말했다."물론 기억은 나네. 당시엔 소봉이가 궁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적성루 사람들을 많이 그리워했네. 게다가 나도 자네들과 어울리느라 바빠서 황후를 소홀히 했네. 그래서 적성루 상궁과 숭이를 궁으로 불러, 이야기를 나누게 했지."사실 기억이 가물가물했지만, 꿈속에서 다시 겪은 덕분에 자세히 생각났다.그때 어서방의 회의가 끝나고, 소복이 무심히 물었다."폐하, 황후 마마를 오랫동안 못 뵙지 않으셨습니까?"그는 소복의 말이 소봉을 보러 가자는 암시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개혁은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나라가 이미 망가진 뒤라, 보수파들은 북당이 더는 흔들림을 견딜 수 없다고 여겨, 더 이상 변화를 원하지 않았다. 그러자 소국공은 소복을 부상으로 임명했고, 소복은 부상이 된 후, 온갖 수단으로 보수파를 하나 하나씩 무너뜨렸다.그는 협박, 욕설, 생떼, 무례, 끈질긴 설득 등 다양한 방식으로 보수파를 공략했고, 심지어 마지막에는 돗자리를 말아, 상대의 대문 앞에 깔고는, 저녁엔 문 앞에서 잠을 청하고, 낮에는 문 앞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북당의 발전을 가로막는 자라고 비난까지 했다.그렇게 보수파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2년이 지나, 휘 형과 형수가 대주에서 돌아왔다. 그는 드디어 애써 노력한 끝에, 그들에게 기대에 부응할 만한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성공의 길은 여전히 멀었다. 가난 때문에 발생한 난장판은 아직도 평정되지 않았다.휘 형과 형수는 사실 그의 혼례를 치르기 위해 돌아온 것이었다.그는 이제 황후를 책봉해야 할 시기였고, 황후 후보는 일찌감치 정해져 있었다. 바로 숙왕부에서 지낸 적 있는 소복의 딸이었다.소복의 딸이 원래 무슨 이름이었는지, 그는 이미 기억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소복이 부상 자리에 오른 뒤, 딸의 이름을 소봉으로 새로 지었기 때문이다.소복의 꿈은 언제나 직설적이었다. 소봉의 이름은 '소가에서 나온 봉황'이라는 단도직입적인 뜻을 담고 있었다.소봉은 아버지 소복과는 달리 성격이 반듯하고 강직했다. 당시 그는 온갖 일로 정신이 없어 남녀 간의 감정 따위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사모의 감정보다 그에게 나라가 더욱 중요했었다.하지만 황제로서, 그도 후사를 마련하는 것이 북당 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그에게 사모의 정에 대해 조금 느낀 적 있는지 묻는다면, 아마도 소가의 셋째 딸, 소낙연의 이름을 들었을 때이다.다만 그도 그녀의 이름만 알고 있었을 뿐, 나중에야 소낙연이라고 자칭했던 여인이, 사실 그의 형수인 라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 시절
그렇게 그들은 만취해 하늘을 이불 삼고 땅을 침대 삼으며, 마치 처음 전장에 나섰던 그 시절로 돌아간 기뿐을 느꼈다.그 시절에는 전쟁이 치열해, 종종 땅바닥에 몸을 웅크린 채 잠을 청하곤 했다. 여섯째는 당시에 항상 설사를 했었다. 셋이 몰래 전장에 나가려 했기에, 선생과 형수를 속이기 위해, 스스로 배탈을 자초한 후, 돈을 조금 챙기고는 전장으로 향했었다. 전쟁터에서 정말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다들 마음속으로 두려움이 가득했었다. 가난을 제외하고, 죽음보다 무서운 것은 없었다.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하지만 시간이 지나, 그러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적군이 승전가를 부르며 전우를 죽이고, 나라를 침탈할 때, 그들은 한 번도 죽음을 생각해 본 적 없었다.죽음에 관해 생각한다고 해도, 죽더라도 이 땅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뿐이었다.그들은 그렇게 잠에 들었고, 꿈속에서 막 즉위하던 시절로 시간여행을 떠났다.숙왕부도 여전히 그대로였고, 적성루는 인파로 붐볐으며, 전쟁으로 인해 찢어지게 가난했다. 휘 형과 형수는 대주로 빚을 갚으러 갔다. 북막과의 전쟁을 위해 대주의 30만 대군을 빌려왔지만, 갚을 돈이 없어 휘 형을 인질로 넘겼다.휘 형이 떠난 후, 조정은 서출의 어린 새 황제를 신경 쓰지 않았다.그들은 조정에서 대신들과 첨예하게 대립해야 했고, 매번 언쟁 후에는 식은땀으로 흠뻑 젖은 채, 어서방에 돌아가 주저앉곤 했다.즉위할 때 휘 형은 최선을 다하면 좋은 황제가 될 수 있다고 격려해 주었다.그래서 그도 그렇게 믿었지만, 막상 황위에 올라보니 전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때로는 있는 힘껏 버텨도 소용없었다.하지만 퇴로 또한 없었다. 휘 형이 말했듯이, 퇴로가 없는 것이 오히려 가장 좋은 길이었다. 두 눈 질끈 감고 힘껏 돌진하다 보면, 결국 승리하게 된다.다행히 조정에 그들을 도와주는 이들도 있었다. 장 대인과 소복이 큰 도움을
그들은 사생활을 모조리 보여주는 것 같아, 팬들이 따라오는 것을 막았다.하지만 팬들은 놀랄 만큼 열렬한 애정을 보이며 기어코 그들 뒤를 따랐다.그 모습에 다들 처음엔 못마땅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이해하기로 했다. 모두 예전에 많은 사람이 따르고, 시중을 받으며 전성기를 가졌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익숙하기도 했다.어쨌든, 그들은 지금 행복하게 차를 몰며 독고 도로를 달리며 아름다운 풍경을 마음껏 만끽할 수 있었다. 팬들도 그들의 모습을 기록했다. 다투기도 하고, 술을 마시며 농담을 주고받고, 무술을 연습하는 모습 등, 그들의 사소한 순간들 모두 영상으로 편집되어 올라갔다 .그리고 곧 사람들은 퇴직 여행 계정에 한 명이 아닌, 세 명이 함께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상에 등장한 사람은 '십팔매'라 불렸는데, 많은 네티즌이 그 이름을 듣자마자 웃음을 터뜨렸다.얼굴에 약간의 여드름 자국이 있고, 항상 무표정으로 자기를 과인이라고 부르는 노인은 '여섯째'라 불렸다. 비록 엄숙해 보이지만, 실은 장난기가 많아 두 사람을 몰래 놀리고는 입을 막고 웃기도 했다.항상 핸드폰으로 독서하는 노인은 '주대'라고 불렸다. 박학다식하며, 말할 때마다 고사성어를 인용해, 십팔매와 여섯째가 싸울 때 몇 마디로 갈등을 풀어낼 정도로 인품이 뛰어났다.팬들은 이들의 이름만 들어도 웃음이 터질 지경이었다.그리고 그들의 대화를 듣고, 어릴 때부터 함께해왔고,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함께 여행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많은 사람들이 깊이 감동하였다.그렇게 어느 날 밤, 그들은 야외에서 술을 마시고 반쯤 취한 채, 바닥에 누운 채로 별이 가득한 하늘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이 장면 역시 팬들에게 촬영되었다.늘 털털한 십팔매는 두 손을 머리 뒤에 괴고 은하수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감탄하며 말했다."우리 정말 많이 늙었네. 앞으로 몇 년이나 더 살 수 있을까?"여섯째가 그의 머리를 한 대 가볍게 쳤다."길 위에서는 불길한 말 금지네."십팔매가 입을 열었다."
사건은 결국 크게 번져지고 말았다. 의도가 불순한 사람들이 소요공 일행에게 해명하라고 했지만, 그들은 이미 신시의 유명한 목호에 도착한 뒤였다. 목호의 아름다움에 빠져서 댓글이나 메시지를 볼 시간조차 없었다.지금 추 어르신은 노인이 시를 읊고 글을 짓는 데만 정신이 팔려, 어디를 가든 꼭 한 편의 시를 남긴 후, 돌아가서 희 상궁에게 보여주려고 했다.그들에게 있어 인생은 이미 반 이상 지나온 것이었다. 과거에 300년을 살겠다고 다짐한 만큼, 수많은 일을 겪고 수많은 적을 마주했기에, 이번에 만난 유아독존은 그냥 한 번 겨루었을 뿐이기에 바로 잊혀졌다.목호 여행을 마친 뒤, 그들은 차로 독고 도로로 향했다.그들은 캠핑카를 타고 북쪽으로 쭉 올라가며 길가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했다. 영상도 많이 찍었지만, 편집할 시간이 없어 업로드는 하지 못 했다. 편집으로 추 어르신의 시간을 많이 빼앗었다 보니, 그가 그동안 풍경을 놓치는 일도 많았었다. 눈도, 손도 한 쌍뿐인 데다, 다른 두사람은 편집을 전혀 몰랐기에 북당의 수보인 추 어르신 혼자 애써야 했다.그래서 영상 업데이트는 잠시 미루고, 길가의 풍경을 잘 감상하기로 한 것이었다. 그들은 짧은 영상 제작에 정신을 빼앗겨 소중한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고 초심을 잃고 싶지도 않았다.하지만, 그들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팬들과 여행 중인 배낭 여행객, 캠핑카 족들이 줄줄이 따라붙으며 영상을 빨리 올리라며 재촉했다.댓글을 작성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쫓아와서 소리치며 재촉하는 모습에 추 어르신은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리고 내심 이렇게 자신들을 좋아해 주는 팬들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날 저녁, 추 어르신은 무상황과 십팔매에게 대결을 시켰다. 그리고 편집 없이 원테이크로 촬영해, ‘사나이로 태어나서’라는 배경음악과 함께 바로 영상을 올렸다.영상에 무상황이 처음 등장하기는 했지만, 대부분 등을 돌리고 있었다. 무상황의 무공은 소요공만큼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기술이 다양해서
유아독존은 깜짝 놀라 기절할 뻔했다.그는 링 위에서 인생을 마감할 것 같은 공포를 느꼈고, 평생 이렇게 큰 공포를 느낀 적 없었다. 눈앞의 이 노인은 공격할 때, 눈빛에 살기가 서려 있었던 데다가, 전장에서 수많은 사람을 죽인 장군과도 같은 위압감을 뿜어내고 있어, 그저 한 번 눈만 마주쳤을 뿐인데 온몸이 얼어붙을 정도였다.그는 다시는 이런 공포를 겪고 싶지 않아졌다.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박수 소리 속에서 그는 자신의 거만함과 어리석음, 그리고 비열함 때문에 앞으로 모두의 조롱거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때 소요공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살려달라고 빌지 않겠다면, 그냥 일어나거라. 난 어린애랑 진지하게 겨룰 생각이 없으니."처음에는 소요공도 유아독존이 꽤 대단한 인물이라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그저 밥이나 축내는 무능한 자였다. 이런 사람이 수백만 팔로워를 가지고 있다는 게 어이없을 정도였다. 자신의 팔로워 수가 그보다 적다는 사실을 떠올리자, 괜히 기분까지 상했다.유아독존은 수치와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소요공의 표정에 갑자기 불쾌한 기색이 드러나자, 다시 겁에 질리고 말았다. 그는 파랗게 질린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터벅터벅 무대를 내려갈 뿐이었다.소요공은 이번 대결로 엄청난 스타가 된 반면, 유아독존은 몰아치는 욕설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고, 더 이상 아무런 영상도 올리지 않았다. 팬들은 그의 이전 영상이나 D을 통해 사과를 요구했다. 유아독존은 과거 소요공의 영상에 댓글로 욕설을 퍼부었지만, 그는 이 점에 대해서 사과하지 않았고, 마치 죽은 사람처럼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며칠 동안 여러 매체가 어르신들에게 연락을 보내 방송 출연을 요청했지만, 그들은 DM도 보지 않고, 어떤 연락에도 응하지 않았다. 그들은 철저하게 신비주의를 유지하며 인기를 이용하지 않았다.게다가, 이 일로 일정을 늦추지도 않았다. 새로 올라온 영상을 보고 나서야, 팬들은 그들이 이미 새로운 도시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영상에는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