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경릉은 정자에 앉아 아이들과 여유롭게 햇볕을 쬐고 있었고 설랑들도 그들의 옆을 지키듯 엎드린 자세로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따스한 햇살과 아이들 그리고 붉게 물들어가는 가을 낙엽,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에 원경릉은 마음이 편안해졌다.잠시 후, 사식이가 찾아와 원경릉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원에는 기상궁의 명을 받은 시녀들이 시든 꽃들을 정리하기 바빴고, 만아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기라와 함께 수를 놓고 있었다.“원누이, 날씨도 좋고, 시간도 이른데 뭐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사식아 네가 젊긴 젊구나. 나는 그냥 가만히 앉아서 쉬고 싶은데…… 생각해 보니 나도 네 나이 때는 가만히 못 있었던 것 같아.”원경릉이 사식이를 보며 미소를 지었고, 사식이는 아침 햇살을 받으며 기지개를 켰다. *서일이 돌아와 우문호가 아침 일찍 입궁했다가 지금은 관아로 들어갔다고 보고했다. “서일,전하의 기분은 어떠신 것 같으냐?”“썩 좋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전하께서 궁을 나오자마자 한 마디를 하셨는데……”“뭐라고요?” 사식이가 물었다. “태자비께 자신의 행적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원경릉은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네. 그럼 가보게.”라고 말했다. ‘우문호의 성격상 사실 그대로를 명원제에게 전했을 것이다. 명원제는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초왕부에서 막 점심을 준비하려던 차에 궁 내시감(内侍監)이 원경릉을 데리러 왔다. 원경릉은 궁에서 자신을 부른다는 소리에 깜짝 놀랐지만, 분명 자신을 부른 이유가 현비와 관련이 있을 거라고 추측했다.‘근데…… 황상은 왜 이 일에 나를 부르시는 거지?’홀로 입궁한 원경릉은 내시감이 그녀를 동난각(冬暖閣)으로 안내하자 원경릉이 깜짝 놀랐다.“안에 황상께서 계십니까?”내시감이 대답을 하지 않자 목여 태감이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태자비, 마침 잘 오셨습니다. 황상께서 같이 식사를 하기 위해 기다리고 계십니다.”원경릉은 불편한 사람과 식사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머리가 아팠다. “태자비 어서 들어
잠시 후, 세 사람 앞에 요리가 연달아 차려졌다. 세 가지는 야채 요리였고, 나머지 하나는 고기볶음이었다. 호비는 입맛을 다시며 수저를 들었다. 말없이 밥만 먹던 명원제가 원경릉을 보고 조심스럽게 물었다.“너희들 초왕부 음식이 짐의 수채보다 더 푸짐하지 않느냐?”그 말을 들은 원경릉은 깜짝 놀랐다. ‘설마 황제가 현비가 횡령한 은화가 모두 초왕부로 들어갔다고 생각하는 건가?’원경릉은 그의 물음에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부황, 초왕부 식사는 아주 간단합니다. 저와 다섯째 둘이 먹을 때는 항상 반찬 두 가지 이상은 두지 않습니다.”“그래?”명원제는 담담했다.“초왕부는 조금도 사치스럽지 않습니다. 지금 입추인데 저와 다섯째 그리고 삼둥이들의 새 옷도 만들지 않았습니다.”“왜 옷을 만들지 않느냐? 설마 초왕부의 은화가 부족한가?”그의 목소리에는 의심이 가득했다.“은화야…… 부족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전에 입던 옷들도 충분히 입을만합니다. 은화를 낭비하면 못 쓰지요.”“그래? 보아 하니 태자비는 살림을 잘 아는구나. 집안 살림을 맡아하는 사람이니 초왕부에서 은화를 얼마나 쓰는지 잘 알겠군. 금년 초왕부에 남은 은화가 얼마인지도 말해 보시오.”명원제는 고개를 들어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이 말을 들은 원경릉은 사실대로 말해야 할 뿐아니라, 초왕부에 있는 은화가 어떤 경로로 들어오는지 똑똑히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명원제는 현비가 횡령한 은화가 모두 초왕부에 있을 것이라고 오해할 것이다.원경릉은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명원제를 보고 말했다.“밭과 집, 그리고 차용증을 제외하고 지금 수중에 있는 은화 이백만 냥 정도 됩니다.”“……”명원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아마 그럴 겁니다.”원경릉이 다시 조심스럽게 덧붙였다.“차용증? 차용증이 있는가?”원경은 머리를 숙이고 천천히 말했다.“예, 부황께서 저에게 주신 차용증 말입니다.”그러자 원나라 황제가 넋이 나간 표정으로 그녀를 빤히 보았다.“그 차용증은
명원제의 물음에 원경릉이 즉답하지 않았다.“아, 며느리 현비 마마의 일에 대해 자세히는 모르고…… 얼추 알고 있습니다.”명원제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보았다. “그럼 이건 알았느냐 몰랐느냐? 이 일의 진실이 밝혀지면 현비는 사형에 처하게 될 것이야.”원경릉은 명원제의 말을 듣고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하는지 몰라 고개만 떨구었다. “태자비, 네 생각은 어떻느냐? 짐이 현비의 횡령을 낱낱이 조사해 그녀를 사형을 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느냐?”원경릉은 흔들리는 눈빛으로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부황, 모르옵니다. 며느리가 어찌 조정의 일에 간섭할 수 있겠습니까?”명원제는 담담한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짐이 네 의견을 묻는 것이니, 눈치 보지 말고 솔직하게 답하거라.”원경릉은 명원제가 일부러 그녀를 난처하게 하려는 게 아닌가 의심이 됐다. ‘현비가 사형을 당하든 말든 나와는 상관이 없지만, 어쨌든 다섯째의 생모니까…… 도대체 부황이 원하는 대답이 도대체 뭐지? 현비의 잘못을 눈감고 넘어가자고 하기엔 북당의 백성들을 볼 면목이 없는데.’원경릉은 두 눈을 꼭 감고 한숨을 내쉬었다.“부황, 너무 어려운 질문이십니다. 며느리 정말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조정의 일은 부녀자가 간섭하는 것이 아니라고 배웠습니다.”“짐이 지금까지 태자비를 과대평가했구나. 항상 대담하고 솔직한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이기적인 사람이었어.”원경릉은 그의 뜻을 헤아리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만약 현비에게 사형을 내린다면, 다섯째에게 큰 영향을 미칠 것이야. 오점이 있는 모비를 가진 태자를 누가 환영하겠느냐? 그 말 즉슨 앞으로 다섯째의 미래에 훼방꾼이 많아질 것이라는 거다. 하지만 현비의 죄가 가볍지 않아 그냥 넘어갈 수는 없지.”“……”“일단 복잡한 일이니 시간을 두고 더 생각을 해야겠다.”원경릉은 그의 말을 듣고 어떠한 의견을 표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속으로 명원제가 어떠한 결정을 내리든 그의 의견에 따를 생각이었다.“짐이 생각할 시
원경릉은 명원제의 의도를 알아차렸다.“태자비, 내 생각은 이렇다네. 벌금인 오십만 냥은 소씨 가문에게 물고, 나머지 팔십만 냥은 현비가 물게 할 것이야. 일단 소답화와 현비가 가지고 있는 게 얼마든 모두 몰수를 하고, 만약 그래도 은화가 부족하다면 그 금액은 초왕부에서 가져올 생각이네. 태자와 태자비도 그럴 책임이 있지 않나 싶은데?”원경릉은 예상치 못한 전개에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렸다.“부황, 그럼 얼마나 초왕부에서 내야 할까요…….”“짐이 어림짐작하건대, 현비에겐 아마 만 냥 정도 남아있지 않을까? 나머지는 초왕부에서 내야 할 것이고.”명원제는 눈을 가늘게 뜨고 원경릉의 반응을 살폈다. 원경릉은 하루아침에 빚더미에 묻힌 느낌이 들었다. 빚 생각만으로도 속이 메스껍고 방금 먹은 밥이 다시 목구멍으로 올라오는 것 같았다.“태자비, 표정이 안 좋은데? 혹시 짐의 제안에 불만이 있는건가?” 명원제는 인상을 쓰고 원경릉을 보았다.“……”“현비는 다섯째의 어머니야. 그녀가 지금까지 다섯째를 낳아주고, 키워주고 한 값이라고 생각하면 팔십만 냥이 전혀 아깝지 않을 걸세.”원경릉은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횡령에 왜 연좌제를 지어야 하는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명원제 앞에서 차마 시시비비를 따질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초왕부에 있는 은화로 빚을 갚으면 삼둥이들은 뭘 먹고살라는 말인가? 그녀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명원제를 설득하기 시작했다.“부황, 초왕부에 있는 은화는 태상황님께서 삼둥이들을 잘 키우라고 주신 은화입니다. 고로 은화의 소유는 삼둥이들에게 있는데 며느리가 어떻게 건드리겠습니까.”“그거야 걱정하지 말거라. 짐도 그건 알고 있다. 태상황께서 초왕부가 거덜 나는 것을 지켜보시겠느냐?”그 말을 들은 원경릉은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 ‘부황의 말은 결국 빚을 다 갚고 나면, 태상황님께서 거듭 은화를 하사할 거라는 건가?’명원제는 원경릉을 내려다보며 차를 마셨다. “부황, 혹시 이 일을 다섯째도 알고 있습니까?”“당연히 알고
왕부로 돌아오는 내내 원경릉의 마음은 진정되지 않았다. ‘난 현비의 덕을 본 게 하나도 없는데, 왜 빚은 나보고 떠안으라는 거지? 도대체 팔십만 냥을 어떻게 마련하라는 거야…….’왕부로 돌아온 그녀는 회계방으로 들어가 주판을 들고 미친 듯이 계산기를 두들겼다. 잠시 후, 그녀의 계산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목여 태감과 호부상서(戶部尚書)가 초왕부로 들어왔다. 태감은 어명이 적힌 종이를 꺼내어 읽었는데 그 내용이 태자비가 현비를 위해 칠십만 냥을 지불하고, 현비는 가지고 있는 십만 냥을 내라는 것이었다.원경릉은 회계방 안에 있던 금고 하나가 마차에 운반되어 실려나가는 것을 보고 얼굴이 죽상이 되었다. ‘내가 써보지도 만져보지도 못한 은화를 어처구니 없이 빼앗기는구나! 부황께서는 성격도 급하시지 어찌 바로 가져가시나! 우리가 어디 도망이라도 갈까 봐 그러시나?’목여 태감은 원경릉에게 다가와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태자비께서 효심이 참 깊으십니다.”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호부상서는 태자비가 북당을 위해 칠십만 냥의 은화를 기부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호부를 운영할 은화가 부족했는데 이렇게 태자비가 기부를 해주는 호부상서는 입꼬리가 귀까지 걸렸다.원경릉은 실성한 표정으로 떠나가는 마차를 바라보았다.“칠십만 냥이 이렇게 증발하는구나!”그녀의 서글픈 외침 또한 하늘로 증발했다.목여 태감은 타고 온 마차에 오르며 원경릉에게 들어가라고 말했다.원경릉은 사식이와 만아의 부축을 받아 겨우 대청에 앉았다. 그녀는 말할 기운도 없다는 듯 대청 기둥에 몸을 기대고 멍하니 하늘만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사식이와 만아는 마음이 몹시 아렸다. 그러나 그녀들 또한 자세한 내막을 모르니 원경릉이 북당을 위해 은화를 기부했다고만 생각했다. 사식이는 원경릉의 대담한 결정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칠십만 냥이라는 큰 금액을 기부하시다니! 태자비 정말 대단하십니다!”“지금 몇 시지?”원경릉은 사식이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았다.“유시(저녁 6시)가 지났으니 태자
우문호는 원경릉에게 다가가 그녀의 턱을 들고 그녀의 표정을 유심히 보았다.“무슨 일이야? 기분 안 좋아? 누가 건드렸지?”원경은 크게 심호흡을 하더니 미소를 지었다.“기분 나쁜 거 없는데? 저녁을 많이 먹었더니 체했나 봐.”우문호는 그녀의 뺨을 살짝 꼬집었다.“거짓말, 너 오늘 저녁밥도 안 먹었다며, 왜 한순간에 돈이 없어지니까 속이 뒤집혔어?”우문호의 말을 들은 원경릉은 하마터면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다. 써보지도 만져보지도 못한 칠십만 냥을 그냥 빼앗겼는데 어찌 속이 뒤집히지 않겠는가?“아니라니까. 아까 부황과 호비 마마와 점심을 먹었는데 그때 체한 것 같아.”원경릉이 말했다.“오늘 입궁했었어?”“응. 부황께서 입궁하라고 하셨어.”“부황이 분명 너에게 은화를 달라고 했지? 내가 부황께 말씀 다 드렸는데 왜 또 너를 부르신 거지? 내가 이틀이면 은화를 마련할 수 있다고 시간을 달라고 했는데 말이야. 오늘 저녁에 구사와 냉정언에게 각각 십만 냥의 은화를 빌렸어.”“은화를 빌렸다고?”“응. 두 사람 모두 3년 안에 이자 없이 원금만 갚으라고 했으니 걱정 마. 그나저나 은화가 마련되는 대로 부황께 말씀드린다고 했더니…… 성격도 급하시지. 부황께은 내 마음이 바뀔까 봐 너를 불렀나 봐.”“……”원경릉의 얼굴이 창백해졌다.“설마 부황께서 은화를 가져가셨어?”“응.” 원경의 낯빛이 이내 어두워졌다.“그럼 내가 내일 이십만 냥을 다시 왕부 금고에 채워둘게.”“근데, 왜 이십만 냥이야?”“나더러 처음엔 오십만 냥을 내라고 하더라고? 내가 그만한 은화가 어딨겠어? 먹고 죽어도 없다고 했지.”“뭐? 오십만 냥?”“그렇다니까! 내가 부황께 현비도 부황의 부인이지 않냐며, 현비가 잘못했으면 부황도 일정 부분 보조를 해야 한다고 했지. 나는 죽어도 이십만 냥 이상은 보조하지 못한다고 했어. 그리고 남은 벌금은 소씨 가문이 부담하게 했지.”“뭐라고? 이십만 냥?”우문호의 말을 듣고 원경릉은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십만 냥…… 너무 많지?
원경릉은 침상에 가부좌 자세로 앉아 복식호흡으로 자신을 진정시켰다.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이야…… 돈이라는 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야. 일단 의학원 규모는 크게 할 필요가 없으니 작게 만들어 학생들의 반응을 살피고 조어의 보고 운영을 해보라고 해야지. 그리고 졸업한 학생들은 혜민의서에서 일할 수 있게 체계를 확립하고 그 후에 규모를 늘리고 학생들을 많이 모으면 돼.’ 원경릉은 눈을 감고 머릿속으로 자기합리화를 했더니 크게 심호흡을 하고 우문호를 보았다.“이제 자자!”우문호는 아까보다 표정이 나아진 그녀의 손을 잡고 침상에 누웠다. 그 역시도 현비 때문에 지출되는 은화가 아까웠지만, 지금 은화보다 중요한 것은 옆에 누워있는 원경릉이었다. 십만 냥을 더 주었다고 해도 원경릉이 줬다면 충분히 용서가 됐다. 우문호는 머릿속에 잡생각이 많을 땐 운동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가 원경릉에게 침상 운동을 하자며 허리에 손을 얹으려던 찰나 그녀가 휙 고개를 돌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내가 너한테 얼마나 줘야 해?”“뭘 얼마나 줘?”“됐다. 너랑 나랑 이런 얘기를 해서 뭐해. 네 돈이나 내 돈이나 그게 그건데. 초왕부의 은화를 채우려면 다른 사람의 주머니에서 꺼내와야 한단 말이지……”“뭐라는 거야?”“다섯째…… 사실 너한테 할 얘기가 있어.” 원경릉은 그와 눈을 맞추고 조용히 말했다.“그게 뭔데?”“부황께서 나를 속였어. 부황은 초왕부에서 칠십만 냥을 가져가셨어.”우문호는 이불을 걷어차고 벌떡 일어났다.“뭐라고? 내가 지금 잘못 들은 거지? 칠십? 칠십만 냥이라고?”원경릉은 우문호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떨구었다.“응. 처음엔 팔십만 냥을 요구하셨고, 내가 그건 절대 안 된다고 했더니 칠십만 냥을 가져가셨어.”“세상에…… 내가 미친 듯이 그를 설득해서 이십만 냥으로 떨어뜨려놨는데, 여우 같은 부황이 너를 속이다니. 넌 그걸 믿고 그냥 줘버린 거야? 전에 십 원 한 장에 덜덜 떨던 원경릉은 어디가고 칠십만 냥을 한 번
우문호가 원경릉에게 부황이 칠십만 냥을 초왕부에서 가져갔다는 말을 들었을 때, 부황과 원경릉 두 사람에게 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그는 평소 십 원 한 장에도 벌벌 떠는 원경릉이 우문호의 모친인 현비의 죄를 덮기 위해 칠십만 냥을 내준 것을 생각하니 그녀에게 매우 감동했다. 특히 지금같이 의학원을 지어야 하는 시기에 은화도 부족할 텐데, 원경릉은 큰 결심을 하고 은화를 보조했을 것이다. “이미 끝난 일이니 생각하지 말자. 나중에 황조부께 은화 좀 보태달라고 하지 뭐.”“황조부께서는 금광을 가지고 계시잖아. 근데 왜 거기서 나오는 자금은 조정에 쓰지 않으시는 거야? 부황께서 오죽하면 자식인 우리의 등골을 빼먹으려 하겠어?”“금광은 만약 일어날 전쟁을 대비해 남겨둔 거야. 현재 금광에서 나온 자금은 군사비용으로 일정 부분 사용되고 있어.”“아, 그렇구나.”“응. 매년 쓰이는 군사비용만 해도 어마어마한데 그 비용을 줄이려면 대주와의 동맹이 필요해. 두 나라가 함께 힘을 합쳐 북방과 선비를 방어한다면 군사비용에 쓸 돈을 백성들에게 쓸 수 있지. 지금 북당에 자금이 필요해.”원경릉은 부황이 가져간 칠십만 냥의 은화가 백성들에게 쓰인다는 생각에 기분이 좀 풀렸다. 하지만 부황이 자신을 속였다는 것은 여전히 용서되지 않았다.*다음날 경여궁. 명원제는 목여 태감을 시켜 경여궁에 자신의 뜻을 선포했고, 성지를 받은 현비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멍하니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우문호…… 이 일을 정말 황상에게 알렸단 말이야? 정신 나간 놈!’목여 태감은 주저앉은 현비에게 다가가 말했다.“마마, 황상께서는 그래도 마마님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애쓰셨습니다. 횡령하신 금액에 벌금 오십만 냥만 몰수하고 다른 형벌은 면하신 겁니다. 만약 다른 관리가 횡령을 저질렀다면 바로 사형이 내려졌을 겁니다.”“……”“맞다! 마마님, 태자비께서 칠십만 냥을 마련해 주었으니 이 금액은 제외하고 마마님께서 마련하시면 됩니다.”현비는 태감의 말을 듣고 헛웃음이 나왔다. ‘뭐?
남강에 며칠 머무는 동안, 아홉째와 함께 남강의 풍경을 둘러보고, 북강에도 다녀왔다.지금 북강 백성들은 조정에 대한 소속감이 아주 강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남강을 다스린 정책이 정말 훌륭했기에, 백성들 모두 좋은 날을 보낼 수 있었기에, 자연스레 황제에 대한 존경심도 깊어진 것이었다.황제와 황후가 지나가는 곳마다 백성들은 길가에 모여서 열렬히 환영했다.그들은 이번 순행 내내 오계부에서 신분을 밝힌 것 외에는 항상 미복으로 다녔다. 하지만 남강에서 우문호는 황제의 신분을 드러냈다.우문호는 백성들의 신뢰와 경외심에서 큰 성취감을 느꼈고, 매우 기뻤다. 그는 줄곧 원경릉의 손을 잡고 얼굴에 웃음을 띠고 있었다.과거 북강은 방어를 위해 무술 함정이 많았지만, 이제는 모두 제거되었다. 그리고 많은 백성이 산 아래 평원으로 이주하여, 새로운 마을을 이루었다. 정화를 구하러 왔을 때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기쁜 마음과 함께 우문호는 감사함도 느꼈다. 이것은 결코 그 혼자만의 공로가 아니기 때문이었다.남강을 떠나야 하는 날이 다가오자, 원경릉은 만아와 여덟째를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곧 변성으로 가야 했기에, 아쉬움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잠시였다. 남강을 벗어나자마자, 그녀는 아이들과 만날 생각에 들뜨기 시작했다."원 선생, 그들에게 말했소?"길에서 우문호가 물었다."아니, 몰래 가는 것이오."원경릉은 웃으며 말했다."교활하구먼. 그래도 만두가 이미 알려줬을 수도 있을 텐데."지금은 경단과 찰떡, 그리고 계란이 셋만 그곳에 있었다."셋이 다섯 개 성을 다스린다니, 분명히 힘들 것이오."원경릉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그렇소. 그래도 예전보다는 나아졌네. 이제는 태평해 보이니."우문호도 아이들이 안쓰러웠다."이번에 가서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충분히 쉬게 해줘야 하오."사실 성하나를 다스리는 것과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점 없이, 매우 힘든 일이었다.한편, 강북부에서는 최근 강북부 무구산 주변에 신비한 상단
그러자 홍엽이 그를 바라보며 멈칫했다."자네가 중매를 서겠다고?""안 되오?""말도 안 되는 소리 말게. 자기 혼사도 해결 못 하는데 중매는 무슨. 난 못 믿네!"냉정언이 어깨를 으쓱였다."못 믿으면 말고. 이래 봬도 내가 명문가 아가씨나 협녀를 많이 알고 있소."홍엽은 손으로 그의 목을 움켜잡으며 소리쳤다."알고 있는 아가씨가 있으면 진작 말했어야지! 경성으로 돌아가자마자, 당장 소개해 주시게!"냉정언은 웃으며 그의 손목을 옆으로 밀어냈다."중매 값이 워낙 비싸서. 십만 냥 아니면 쉽게 안 나서오.""돈이 대수요?"홍엽이 교활하게 웃으며 말했다."우린 지금 한집에 살고 있소. 그러니 자네가 돈을 어디에 숨겼는지, 다 알고 있네. 그동안 꽤 많이 챙겼으니, 돌아가서 돈은 두둑이 주겠네."그 말에 냉정언이 깜짝 놀랐다."내 돈을 노리고 있었소? 진짜 도둑을 집에 들였군! 늙어서 쓸 돈이네, 그 돈을 혼사에 쓸 생각은 하지 마시오!""명여가 우리를 챙길 테니, 그렇게 쩨쩨하게 굴지 마시오."홍엽이 새침하게 말했다."나도 돈이 많소. 다만 남의 돈을 쓰는 게 훨씬 재밌을 뿐이네."냉정언이 숨을 들이쉬었다."안 되겠네. 경성에 돌아가자마자 자네를 쫓아내야겠소."홍엽이 말했다."쫓아낼 수 있으면 쫓아내 보시게. 게다가 자네가 나를 청할 때, 뭐라고 했는가? 얼마든지 살아도 된다고 했잖소. 이제 와서 후회하는 것이오?""이야, 홍엽, 어찌 이리 뻔뻔스러워진 것이오?""뻔뻔하지 않으면, 어찌 당신 집에서 이렇게 공으로 먹고살 수 있겠나?"홍엽은 크게 웃으며 그의 어깨에 팔을 얹었다."수보, 신을 모시는 건 쉬워도 보내는 건 어렵다고 하잖소. 이미 집안에 들어갔으니, 쫓아내기는 힘드네. 후회해도 소용없소. 수보의 등골 빼먹다 죽을 것이오. 관에 수의까지 얻어 쓸 생각이라, 죽으면 자네가 장례식까지 마련해줘야 하네."수보는 그를 한참 바라보다가, 애써 이를 악물며 말했다."진짜 뻔뻔하오!"홍엽은 박장대소했다.멀리 복도 끝에
“예, 그립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놀고 싶기도 합니다.”그는 말하다가, 갑자기 신이 난듯 몸을 들썩이며 말을 이어갔다.“여긴 정말 재미있습니다. 아홉째와 나가면 큰 산도 있고, 꽃도, 나무도 많습니다. 물고기도 많고, 사람도 많고, 뭐든지 엄청 많았습니다.”우문호는 웃으며, 못내 안쓰러움을 느꼈다. 예전에 그를 궁 안에 가두고, 거의 밖으로 데리고 나가지 않았다. 게다가 다른 사람이 그를 데리고 나가는 것도 신경 쓰였다.“이곳이 마음에 들면, 좀 더 오래 있어도 된다.”우문호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예, 정말 좋습니다. 다만, 형님과 형수님이 그리웠습니다. 이렇게 오셔서 정말 다행입니다.”여덟째는 흥이 오른 상태로 그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어서 들어가시지요! 아홉째가 형님이 내일 오신다고 맛있는 음식을 많이 준비했습니다.” 그는 뒤돌아 원경릉에게 외쳤다.“형수님, 빨리 따라오십시오. 맛있는 거 많습니다.”미색은 웃으며 꾸짖었다.“이 무심한 녀석, 다섯째 형수님만 챙기고, 여섯 형수가 배고픈지는 묻지도 않는 것이냐?” 여덟째는 그제야 미색을 본 듯,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여섯째 형수님도 오셨습니까? 여섯째 형님도 오신 것입니까? 와, 너무 좋습니다!”“질투하다니?”원경릉은 미색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미소를 지었다.“여덟째는 너보다 나를 더 좋아하는 것이다.”“아유, 참!”미색은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여덟째는 바로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항상 그림과 책자를 선물하는 여섯째 형수님도 좋아했기 때문이다.그는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그... 그럼 같이 드시지요. 음식 많습니다.”“장난이다. 난 질투 안 해.”미색은 기쁘게 말했다.여덟째는 그제야 마음을 놓았고, 다들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원경릉이 만아에게 말했다.“정말 이곳에서 즐겁게 지내고 있구나. 예전보다 훨씬 활발해졌고, 말도 많이 하네. 이 모든 게 아홉째 덕분이다.”만아는 웃으며 말했다.“예, 둘이 시간이 날 때마다 밖으로 나가, 더
원경릉은 발끝을 들어 그의 뺨에 입을 맞추고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우문호는 그런 그녀를 와락 끌어안으며 말했다.“원 선생, 행복하오?”“행복하오.”“하하하. 지금이 아닌, 나와 함께했던 모든 날이 행복했냐고 물어보는 것이오.”“모든 순간이 당연히 행복하고, 기쁘오!”원경릉은 스스로를 자조하듯 웃었다.“나 같은 집순이가 이렇게 결혼생활이 행복할 줄 누가 알았겠소?”한때 그녀는 자신이 평생 결혼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고, 사랑 없는 삶도 부족함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그녀는 사랑을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었지만, 사랑은 사실 정말로 중요했다.산꼭대기에 앉아, 차가운 바람을 맞고 있었지만, 추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의 풍경을 눈에, 그리고 마음에 깊이 새기고 싶었다.그리고 함께 늙어간 후, 다시 천천히 되새기고 싶었다.영산에서 내려온 후, 그들은 다시 여정을 이어나갔다. 이번 목적지는 바로 남강이었다.명절이 지난 뒤, 아홉째는 여덟째를 데리고 먼저 남강으로 돌아갔다. 다들 그가 그곳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다.남강 땅은 오랜만이었다. 마지막으로 발을 디딘 건, 정화를 구하러 갔을 때였다.남강으로 가는 내내 홍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냉정언이 물었다.“남강에 가면, 못난이를 만날 것이오?”“만나야지.”홍엽이 답했다.“물론 만나야지!”못난이는 오랜 시간 그와 함께했던 사람이니, 만나야 했다. 못난이가 종종 편지를 보내오긴 했지만, 자기 상황은 거의 말하지 않았다.반면 아홉째는 편지에서 북강의 소식을 자주 전해주었다.지금의 남강은 어느 정도 통일되어 있었고, 북강과 남강도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었다. 그동안 이익 문제로 양측의 왕래가 더욱 빈번해졌다.아홉째는 편지에서 못난이가 북강의 민심을 얻었고, 성격도 예전보다 훨씬 밝아져,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하다고 전했다.홍엽의 마음엔 기대와 기쁨이 섞여 있었다. 그도 지금 잘 지내고 있으니, 못난이도 잘 지내길 바랐다.우문호는 남강에서 돌아온 후, 변방으로 갈
그 일을 떠올리자, 꿈에서 본 일이라 그런지 마치 얼마 전에 있었던 일처럼 느껴졌다.그때 그들은 죽을 만큼 힘든 소년들이었는데, 지금은 한없이 한가한 노인이 되었다.세월은 덧없이 흘러갔고, 그동안 그들은 많은 사람들을 잃었다.무상황은 자신의 황후였던 소봉을 떠올렸다.그들은 줄곧 전형적인 황제와 황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나라를 다스렸고, 그녀는 후궁을 다스렸다. 비록 그가 그녀를 괴롭히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많은 애정을 주지도 않았다.그렇게 평범하게 평생을 함께했지만, 그녀가 떠나는 날, 그는 마음속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간 듯한 슬픔을 느꼈다.평생 함께했던 사람이 자신보다 먼저 떠날 거라 생각하지 못했기에 더욱 아팠다.세 사람은 한참 동안 넋을 잃고 있다, 다시 길을 나섰다.유아독존과 관련된 일이 생각보다 커졌지만, 모든 소란은 결국 가라앉게 될 것이다. 모든 소문도 점점 사그라들기 마련이니, 그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세 사람이 여행하는 영상이 점점 유명해지면서, 유아독존은 더 심하게 비난을 받았다.현실에서 함부로 욕설을 내뱉으면 얻어맞을 수도 있지만, 인터넷에서는 당당한 명분이 있었기에 악성 댓글을 다는 자들은 마음껏 욕을 퍼부었다.그리고 어느 날, 추 어르신이 오래도록 인터넷의 댓글을 훑어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는 이내 해가 지는 장면을 찍어 짧은 영상을 올렸다. 그리고 영상에 한마디만 덧붙였다.“분쟁 없이, 오직 평화만 있기를.”그는 모든 다툼이 끝나길 바랐고, 누군가를 벼랑 끝으로 몰지 않기를 바랐다. 단지 말로만 승부를 겨루는 사람은 그들의 적이 아니기 때문이다.음... 무엇보다 적이 될 자격도 없었다!영상이 올라간 지 이틀 뒤, 유아독존은 마침내 사과 영상을 올렸다. 그는 질투와 시기로 무술을 모독한 것을 사죄했고, 은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직접 그들의 계정을 태그해 진심으로 사과했다.진심 어린 사과는 항상 용서를 가져오는 법이다. 그리고 악성 댓글을 달던 사람들도 마침내 욕설을 멈췄다.
삼대 거두는 늦은 시각이 되어서야 일어났고, 숙취에서 깨어나니, 이미 날이 밝아져 있었다. 그들은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아, 눈앞의 모든 것이 몽롱해 오늘이 무슨 날인지조차 모를 정도였다.태양이 서서히 떠오르며 하늘에 떠 있는 주황빛 구름은 점점 짙은 금빛으로 변했고, 금빛 가장자리에는 붉은색이 덧씌워져, 눈부시게 아름다웠다.소요공이 눈을 비비며 말했다."꿈을 꿨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동시에 그를 바라보며 이구동성으로 물었다."무슨 꿈을 꿨는가?""꿈에서 숭이가 사내에게 속았는데, 우리가 직접 나서서 복수를 해줬다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놀라서 동시에 숨을 들이켜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귀신이 곡할 노릇이네."말이 끝나자,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깜짝 놀라 외쳤다."자네도 꾼 것인가?""그렇네!""그렇네!""설마 우리 셋이 똑같은 꿈을 꾼 것이오?"소요공도 깜짝 놀랐다.그 일은 그렇게 중요한 일도 아니었고, 어떻게 된 일인지 가물가물할 정도로, 그저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만 어렴풋이 기억할 정도였는데, 꿈에서는 그 장면 장면이 또렷하게 떠올랐다.그리고, 이 꿈은 당시 엄청난 부담을 받고 있던 그들에게 정말 훌륭한 감정 해소가 되었다. 그들은 모든 고통과 억울함, 스트레스를 주먹질로 시원하게 풀어냈다.한편, 무상황은 자신이 황후를 소홀히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때 무슨 상황이었는지 기억하는가?"추 어르신이 흥분한 듯 말했다."물론 기억은 나네. 당시엔 소봉이가 궁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적성루 사람들을 많이 그리워했네. 게다가 나도 자네들과 어울리느라 바빠서 황후를 소홀히 했네. 그래서 적성루 상궁과 숭이를 궁으로 불러, 이야기를 나누게 했지."사실 기억이 가물가물했지만, 꿈속에서 다시 겪은 덕분에 자세히 생각났다.그때 어서방의 회의가 끝나고, 소복이 무심히 물었다."폐하, 황후 마마를 오랫동안 못 뵙지 않으셨습니까?"그는 소복의 말이 소봉을 보러 가자는 암시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개혁은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나라가 이미 망가진 뒤라, 보수파들은 북당이 더는 흔들림을 견딜 수 없다고 여겨, 더 이상 변화를 원하지 않았다. 그러자 소국공은 소복을 부상으로 임명했고, 소복은 부상이 된 후, 온갖 수단으로 보수파를 하나 하나씩 무너뜨렸다.그는 협박, 욕설, 생떼, 무례, 끈질긴 설득 등 다양한 방식으로 보수파를 공략했고, 심지어 마지막에는 돗자리를 말아, 상대의 대문 앞에 깔고는, 저녁엔 문 앞에서 잠을 청하고, 낮에는 문 앞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북당의 발전을 가로막는 자라고 비난까지 했다.그렇게 보수파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2년이 지나, 휘 형과 형수가 대주에서 돌아왔다. 그는 드디어 애써 노력한 끝에, 그들에게 기대에 부응할 만한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성공의 길은 여전히 멀었다. 가난 때문에 발생한 난장판은 아직도 평정되지 않았다.휘 형과 형수는 사실 그의 혼례를 치르기 위해 돌아온 것이었다.그는 이제 황후를 책봉해야 할 시기였고, 황후 후보는 일찌감치 정해져 있었다. 바로 숙왕부에서 지낸 적 있는 소복의 딸이었다.소복의 딸이 원래 무슨 이름이었는지, 그는 이미 기억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소복이 부상 자리에 오른 뒤, 딸의 이름을 소봉으로 새로 지었기 때문이다.소복의 꿈은 언제나 직설적이었다. 소봉의 이름은 '소가에서 나온 봉황'이라는 단도직입적인 뜻을 담고 있었다.소봉은 아버지 소복과는 달리 성격이 반듯하고 강직했다. 당시 그는 온갖 일로 정신이 없어 남녀 간의 감정 따위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사모의 감정보다 그에게 나라가 더욱 중요했었다.하지만 황제로서, 그도 후사를 마련하는 것이 북당 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그에게 사모의 정에 대해 조금 느낀 적 있는지 묻는다면, 아마도 소가의 셋째 딸, 소낙연의 이름을 들었을 때이다.다만 그도 그녀의 이름만 알고 있었을 뿐, 나중에야 소낙연이라고 자칭했던 여인이, 사실 그의 형수인 라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 시절
그렇게 그들은 만취해 하늘을 이불 삼고 땅을 침대 삼으며, 마치 처음 전장에 나섰던 그 시절로 돌아간 기뿐을 느꼈다.그 시절에는 전쟁이 치열해, 종종 땅바닥에 몸을 웅크린 채 잠을 청하곤 했다. 여섯째는 당시에 항상 설사를 했었다. 셋이 몰래 전장에 나가려 했기에, 선생과 형수를 속이기 위해, 스스로 배탈을 자초한 후, 돈을 조금 챙기고는 전장으로 향했었다. 전쟁터에서 정말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다들 마음속으로 두려움이 가득했었다. 가난을 제외하고, 죽음보다 무서운 것은 없었다.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하지만 시간이 지나, 그러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적군이 승전가를 부르며 전우를 죽이고, 나라를 침탈할 때, 그들은 한 번도 죽음을 생각해 본 적 없었다.죽음에 관해 생각한다고 해도, 죽더라도 이 땅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뿐이었다.그들은 그렇게 잠에 들었고, 꿈속에서 막 즉위하던 시절로 시간여행을 떠났다.숙왕부도 여전히 그대로였고, 적성루는 인파로 붐볐으며, 전쟁으로 인해 찢어지게 가난했다. 휘 형과 형수는 대주로 빚을 갚으러 갔다. 북막과의 전쟁을 위해 대주의 30만 대군을 빌려왔지만, 갚을 돈이 없어 휘 형을 인질로 넘겼다.휘 형이 떠난 후, 조정은 서출의 어린 새 황제를 신경 쓰지 않았다.그들은 조정에서 대신들과 첨예하게 대립해야 했고, 매번 언쟁 후에는 식은땀으로 흠뻑 젖은 채, 어서방에 돌아가 주저앉곤 했다.즉위할 때 휘 형은 최선을 다하면 좋은 황제가 될 수 있다고 격려해 주었다.그래서 그도 그렇게 믿었지만, 막상 황위에 올라보니 전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때로는 있는 힘껏 버텨도 소용없었다.하지만 퇴로 또한 없었다. 휘 형이 말했듯이, 퇴로가 없는 것이 오히려 가장 좋은 길이었다. 두 눈 질끈 감고 힘껏 돌진하다 보면, 결국 승리하게 된다.다행히 조정에 그들을 도와주는 이들도 있었다. 장 대인과 소복이 큰 도움을
그들은 사생활을 모조리 보여주는 것 같아, 팬들이 따라오는 것을 막았다.하지만 팬들은 놀랄 만큼 열렬한 애정을 보이며 기어코 그들 뒤를 따랐다.그 모습에 다들 처음엔 못마땅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이해하기로 했다. 모두 예전에 많은 사람이 따르고, 시중을 받으며 전성기를 가졌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익숙하기도 했다.어쨌든, 그들은 지금 행복하게 차를 몰며 독고 도로를 달리며 아름다운 풍경을 마음껏 만끽할 수 있었다. 팬들도 그들의 모습을 기록했다. 다투기도 하고, 술을 마시며 농담을 주고받고, 무술을 연습하는 모습 등, 그들의 사소한 순간들 모두 영상으로 편집되어 올라갔다 .그리고 곧 사람들은 퇴직 여행 계정에 한 명이 아닌, 세 명이 함께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상에 등장한 사람은 '십팔매'라 불렸는데, 많은 네티즌이 그 이름을 듣자마자 웃음을 터뜨렸다.얼굴에 약간의 여드름 자국이 있고, 항상 무표정으로 자기를 과인이라고 부르는 노인은 '여섯째'라 불렸다. 비록 엄숙해 보이지만, 실은 장난기가 많아 두 사람을 몰래 놀리고는 입을 막고 웃기도 했다.항상 핸드폰으로 독서하는 노인은 '주대'라고 불렸다. 박학다식하며, 말할 때마다 고사성어를 인용해, 십팔매와 여섯째가 싸울 때 몇 마디로 갈등을 풀어낼 정도로 인품이 뛰어났다.팬들은 이들의 이름만 들어도 웃음이 터질 지경이었다.그리고 그들의 대화를 듣고, 어릴 때부터 함께해왔고,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함께 여행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많은 사람들이 깊이 감동하였다.그렇게 어느 날 밤, 그들은 야외에서 술을 마시고 반쯤 취한 채, 바닥에 누운 채로 별이 가득한 하늘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이 장면 역시 팬들에게 촬영되었다.늘 털털한 십팔매는 두 손을 머리 뒤에 괴고 은하수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감탄하며 말했다."우리 정말 많이 늙었네. 앞으로 몇 년이나 더 살 수 있을까?"여섯째가 그의 머리를 한 대 가볍게 쳤다."길 위에서는 불길한 말 금지네."십팔매가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