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왕과 기왕, 제왕 등의 병문안원경릉은 살 빼는 중인 손왕이 청소기로 빨아들이듯 먹는 것을 봤다. 간식 큰 접시 두개, 양 갈비 한 접시에 볶음 두 종류에 밥 한공기를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싹 비웠다.“아주버님, 만약 모자라시거든 더 가져오라면 됩니다.” 원경릉은 여전히 갈망하는 눈빛으로 접시를 보는 손왕에게서 배고픈 가련함이 느껴졌다.손왕은 엄격한 눈으로 원경릉을 보며, “아뇨, 전 살을 빼야 해서, 제수씨가 이런 식으로 절 나쁜 길로 유혹하면 안됩니다.”원경릉은 정말 어이가 없다. 살을 뺀다는 사람이 원경릉이 있는 곳에 와서 잔뜩 먹고 나서는 원경릉이 자기를 나쁜 길로 유혹해?“그럼 아주버님 그만 드시지요.” 원경릉이 하는 수 없다는 듯 말했다.손왕은 천천히 고개를 들고 슬픈 얼굴로, “고작 간식 두 개밖에 안 먹었는데, 그렇게 짜게 굴 겁니까?”“아뇨……” 원경릉은 흥분한 그의 뚱뚱한 얼굴을 보며 어깨를 늘어뜨리고 할 수 없이, “제 말은 아주버님이 오늘 드실 건 거진 다 드셨으니, 내일 다시 오셔서 드시라는 말이죠.”“내일 무슨 간식 만들죠?” 손왕이 손수건을 꺼내 고상하게 입술의 기름기를 닦으며 별 일 아니라는 듯 물었지만 내심 기대가 충만한 눈빛이다.“아주버니께서 드시고 싶은 게 있으시면 궁중 요리사에게 하라고 할께요.” 손왕한테 졌다.“아무거나 만들어도 좋아요.” 손왕은 눈을 내리 깔고 소매 속을 몇 번 만지작거리더니 목록 한 장을 꺼내서, “그러고보니 참 절묘하네요, 며칠 전이 내 생일이라 왕비가 축하하는 의미로 특별히 식단을 정해줬는데 궁중 요리사에게 식단 중에서 몇 개 만들어 보라고 하는 것도 좋겠어요. 내가 맛을 좀 봐 주면, 나중에 손님에게 접대할 때도 실례가 되지 않고 말입니다. 양은 많이 할 필요 없어요. 난 살을 빼는 중이라 많이 먹을 수가 없어서.”식단을 탁자 위에 놓아두어 원경릉이 가져와서 훑어보고 개수를 세다가 그만 눈이 튀어나올 뻔 했다. “아주버님 생신 연회에 요리가 38개나 된다고요?”“비록 좀
원경릉, 기왕비와 주명취가 한 자리에. 주명취는 기왕비의 말을 듣고, 속으로 기분이 상했지만, 혜정후가 저지른 일도 있고 해서 원경릉 앞에서 말하기가 좀 껄끄럽다.주명취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원경릉을 바라봤다.두 사람은 전부터 서로 미워해서 지금은 가식 떨 필요도 없는 사이지만, 제왕이 오겠다고 하니 주명취도 문병을 올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니 제왕이 멍청하다고 하지.오히려 기왕비는 상당히 다정해서, “아바마마께서 궁중 요리사 두 명을 보내주셨다면서요, 오늘 우리 같이 밥 먹는게 어때요? 우리 동서들끼리 같이 앉아 얘기한 지도 오래됐고요.”원경릉은 고개를 끄덕이며, “좋아요!”원래 셋은 딱히 나눌 얘기도 없지만, 기왕비가 자연스럽게 진행해 나가고 있어 분위기를 싸늘하게 할 수 없으니 계속 원경릉이 장단을 맞춰 주길 유도했고, 이런 저런 화제를 얘기하다가 태상황의 병수발을 든 얘기까지 나오게 되었다.“”태상황 폐하는 뭘 좋아하세요? 건곤전에서 병수발 들 때 태상황 폐하는 시중들기 어려웠어요?”원경릉은 이 때는 경각심이 들어서 웃으며, “ 전 그저 태상황 폐하께서 약 드시는 거 시중 든게 전부여서 나머지는 거의 제가 한 게 없어요. 그리고 평소에 태상황 폐하도 저랑 거의 말씀하시는 일이 없으셔서 시중들기 어렵고 할 게 없었던 것 같아요.”“그래요? 제가 듣기론 태상황 폐하께서 초왕비에게 어화원 산책도 같이 하자고 하셨다고 하던데.” 기왕비가 웃으며 말했다.“네, 그런 일이 있었죠.” 원경릉이 답하며, 태상황을 모시고 한 바퀴 돌았을 뿐인데, 사람들의 이목을 이렇게 끌다니 몸 둘 바를 모르겠네 정말.손왕 이 놈 자식은 왜 아직 안 오는데?“그 말은 태상황 폐하께서 각별히 신뢰하신다는 뜻이죠, 태상황께서 오래동안 어화원을 가신 일이 없는데 이번에 같이 가자고 하셨잖아요. 그리고 초왕비가 폐하를 부축해 드렸다면서요?” 기왕비가 열정적으로 물었다.원경릉은 웃느라 얼굴 근육에 경련을 일으키며, “그날 태상황 폐하 기분이 특히 좋으셨죠.”“보세요
희상궁의 조언과 손왕의 등장두 여인이 간 후 원경릉은 비로소 길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희상궁에게 감사했다. “희상궁이 날 구했네.”희상궁이 아무렇지도 않게: “기왕비 마마는 생각이 깊으시니, 왕비께서는 가급적 왕래를 적게 하시는 편이 좋습니다.”원경릉이 웃으며: “기왕비가 생각이 깊다고? 아닌 것 같아, 오히려 경박한 감이 있던데.”희상궁이 비웃듯, “경박? 그건 일부러 가장한 겁니다.”원경릉이 어리둥절해서, “일부러 가장했다고? 왜 그래야 하는데?”“사람은 모두 보호색이 있습니다.” 기상궁은 원경릉에게 차를 따라주고 앉아서: “제왕비 마마는 독선적이시라 좀 똑똑한 걸 믿고 자신이 전부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지요. 풍요가 오히려 해가 된 셈입니다. 더 적나라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제왕비 마마께서 주씨 집안이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기왕비 마마는 다르지요, 기왕비 마마는 어려서 서책을 통달하고 학식도 깊고 넓어 기왕의 뒤에서 일을 주도하는 인물입니다. 왕비께서는 기왕비 마마의 어떤 점이 가장 두려운 지 아십니까?”원경릉이 답하길: ‘뭔데?”“기왕비 마마가 이토록 대단한 사람이지만 다른 사람에게 겉으로 공손한 척 하고, 자신을 비하하고, 심지어 체면을 구기면서 까지 적이 방심하고 경각심을 늦추게 하지요. 기왕비는 경박한 부류의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방금 왕비께서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셨습니까?”원경릉이 이 얘기를 듣고 등에 소름이 끼쳐 쓴 웃음을 지으며: “그럼 이 많은 왕자들의 왕비 중에 착실한 사람은 없어?”“없지는 않지만, 손왕비는 그럭저럭 괜찮지요, 좀 자만하는 성격이지만, 익숙해지면 별 것 아닙니다.”손왕 이 놈, 하고 싶어도 꽃뱀이 너랑 결혼해줄 리가 없지.유유상종, 끼리끼리 모이는구나.하지만 제왕은 단순해서 주명취와 결혼했으니 앞으로 고생 좀 할거다. 제왕처럼 바보 멍청이는 주명취에게 속기 딱 좋다.원경릉은 이렇게 생각하고 냉소를 짓다가 아니다, 한 명이 더 있었지. 우리집 왕야.사실 손왕은 이미
황자들의 성격“형수한테 사과 했어?” 제왕이 물었다.주명취는 제왕을 보고 마음속으론 병신이라고 욕을 했지만 겉으로는 한숨을 쉬며: “이게 어디 미안하다는 한마디로 될 일인가요?”“사과도 표면적인 것에 불과하긴 하지, 엄밀히 말해 이 일은 당신이랑 무관하니까.” 제왕은 주명취가 진심으로 혜정후가 저지른 일에 분노와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해서 위로했다.주명취는 마음이 콩밭에 간 상태로 응대하며 우문호가 다시 들어오는 것을 보고 일어나 우문호를 향해 예를 취하며, “호 오빠, 당숙을 대신해서 사과 드려요, 이런 일을 저지를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네요. 초왕비가 크게 다치지 않으셔서 불행 중 다행이에요, 그렇지 않았으면 미안해서 죽을 뻔 했어요.”울음 섞인 주명취의 목소리는 처량하고 혜정후에 대한 미움과 분노가 서렸다.우문호는 주명취를 보고: “왕비는 상처가 상당히 심해서 크게 다치지 않았다고 할 수 없어요, 하지만 제왕비도 미안해 할 필요 없습니다. 이 일은 당신과 무관하니까요.”주명취는 이 말을 듣고, 마음이 복잡해 졌다.우문호가 비록 너그럽게 받아주었지만 원경릉의 상처를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떨떠름하게 웃으며, 넋이 나간 채로 앉는데 애처로운 눈빛에 슬픔이 어려 있다.이어서 황자들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주명취는 듣고 싶은 마음도 없고, 마음을 다쳐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둘째야, 듣자 하니 네가 다섯째를 경조부 부윤으로 천거했다면서.” 기왕이 갑자기 물었다.손왕이 고개를 들고 천천히, “맞아요, 아바마마께서 나에게 할 거냐 말 거냐 하셔서, 난 당연히 안 한다고, 그래서 다섯째를 추천했습니다.”“흥, 못난 녀석.” 기왕이 코웃음을 쳤다.“이건 주제를 정확히 아는 거죠.” 손왕이 매정하게 딱 잘라 반박했다.제왕이 호기심에: “둘째형은 왜 싫은데?”“내 능력 밖이야.”“둘째형 겸손했네, 둘째형이 문무 겸비한 걸 다 아는데……” 제왕이 말하면서 자기도 웃으며 그래, 이건 너무 비꼬는 거 같다.손왕이 제왕을 한 번 째려보더니,
여인의 식사 예절과 혼절한 주명취원경릉은 사실 나와서 같이 밥 먹을 생각이 별로 없었는데 그게 가능한 게, 원경릉이 상처가 심하게 아프다거나 신체적인 원인으로 환자식을 먹어야 한다고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희상궁이 말한 것이 떠올라 기왕비를 다시 한 번 관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왕비는 도대체 두 얼굴인지 아니면 가면이 여러 개 인지 말이다. 우문호는 원경릉이 오는 것을 보고 안색이 어제보다 안 좋은 듯하니 눈살을 찌푸리며, “약 먹었어?”“먹었어요.” 원경릉이 답했지만 그녀가 먹은 건 자기가 조제한 약으로 어의가 처방한 건 딱 한 모금 마시고 구실을 대서 쏟아버렸다.“정말 먹었으면 다행이겠지만, 가서 확인해보고 몰래 버렸으면 그땐 두고 봅시다.” 우문호는 낮은 목소리로 위협했다.원경릉이 목을 움츠리며, “안 그래요.”우문호는 정말 위협하고 있고, 원경릉도 진짜 소심한데 이 대화가 주명취의 귀에는 남녀가 “’꽁냥꽁냥’ 하는 것처럼 들렸다.원경릉이 자리에 앉자 우문호는 그녀의 왼쪽에, 주명취는 원경릉의 오른쪽에 그 옆은 제왕이, 다음은 기왕비, 기왕 그리고 손왕 순이다.하인이 들어와 식사 시중을 들려 하자, 손왕이 크게 손을 한번 내저으며, “오늘 형제가 모여 식사하는 자리니 시중들 필요 없다, 다들 나가봐.”하인이 요리를 집어오는 게 얼마나 느린지 원, 또 마음에 딱 들지도 않아서 자기가 먹고 싶은 걸 마음대로 집는 것만 못하다.현대에서 원경릉은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으로 식탁 예절을 알기 때문에 절대로 손왕처럼 후루룩 먹어 치우지 않는다. 원경릉은 지금까지 자기가 교양 있게 먹는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주명취와 기왕비가 식사하는 것을 보고 원경릉은 자기가 얼마나 우악스럽게 먹었는지 깨달았다.주명취는 입을 살짝만 벌려 앞니 두개만 살짝 보이고 젓가락으로 집는 양이…… 원경릉이 한 번 세 보니 쌀알 다섯 알이다. 고작 이 정도로 작게 입에 넣고 입을 다물고 씹어서 천천히 목으로 넘기는데 이 동작이 얼마나 고상한지, 특히 밥알이 목구멍
화가나서 자리를 뜬 기왕 부부제왕은 ‘아’하고 어쩔 줄 몰라 하며: “빈혈일까요?”제왕은 원경릉을 보고, “그럼 형수님이 들어와서 도와주세요.”우문호는 한 손으로 원경릉의 팔목을 잡고, “우선 사랑채로 옮깁시다. 초왕부에 어의가 있으니 바로 어의에게 가라고 명하겠습니다.”“좋아요!” 제왕이 주명취를 안고 달려 나가고 기상궁이 앞장 서서 길을 안내했다.모두 다시 앉았지만 식욕이 없다, 손왕만 빼고 말이다.기왕비가 웃으며: “결혼한지 1년도 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서둘 거라 생각도 못했네요.”손왕이 먹으면서 말하길: “어떻게 안 급합니까? 지금 우리 형들이 아직 전부 아들을 못 낳았잖아요.”기왕비는 머쓱하게 웃으며, ‘그럼 둘째 아주버님이 힘내시면 되겠네요.”“전 그러죠, 형도 힘내셔야 됩니다.” 손왕이 먹는 틈틈이 기왕을 흘끔 보며, “형 애가 타지?”기왕은 방금 젓가락을 들었다가 이 말을 듣고 천천히 내려놓으며 엄숙하게: “나한테 할 말이 있으면 직접 하면 되지, 그렇게 공격할 필요 없잖아. 난 너한테 잘못한 게 없는 걸로 아는데.”“없어.” 손왕이 계면쩍어 하며 고개를 들고, “난 말하는 게 늘 이런 식이야. 언제 공격했다고 그래? 아들 낳는 거에 애타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어? 나도 애탄다고. 그냥 나오는 대로 말한 거야. 형은 뭘 그렇게 화를 내고 그래?”기왕이 ‘흥’하더니 기왕비를 끌고: “말이 안 통하네. 가자!”기왕비가 미안해 하며 원경릉에게: “그럼 우리 먼저 갈게요.”원경릉이 예를 취하며, “조심히 가세요.”형제들이 모인 식사는 유쾌하지 못하게 마무리 되었으나 원경릉은 기뻤다. 적어도 이제 밥은 편하게 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원경릉이 앉아 손왕에게: “저분들이 안 드셨으니 우리가 많이 먹어요, 낭비하지 말고요, 전부 신선한 채소와 고기잖아요.”“나도 사실 배가 부르지만 이렇게 많은 요리를 재료도 최고급을 사용한데다 궁중 요리사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것인데 안 먹으면 낭비군요, 조금만 더 먹죠.”우문호는 안 먹고 앉
손왕과 원경릉손왕은 식탁에 가득한 빈 그릇을 보며 그만 화가 났다. 또 다 먹어버리고 말았다. 가슴 속 저 깊은 곳에서부터 죄책감이 진하게 피어 올라 애꿎은 원경릉을 원망하며, “요리 3개만 준비하라니까 왜 이렇게 많이 했어요? 이렇게 잔뜩 차려서 낭비하느라 백성이 뼈가 부서지게 일하고 피를 빨리는 거 아닙니까. 재수씨는 흡혈모기예요 흡혈모기.”욕을 다 뱉고나서 배를 내밀고 헉헉거리며 돌아갔다.원경릉은 가만 있다가 욕만 얻어 먹고 정신이 멍한 채로, “누가 아주버님을 저렇게 많이 드시게 했어요?”사실 원경릉이 제일 많이 먹은 것도 아닌데 왜 그녀가 흡혈모기란 말이야? 사실 손왕 아냐?원경릉은 우문호를 보고, “둘째 아주버님 머리가 좀 이상하신 거 아냐?”우문호가 진지하게, “응.”그럼 됐다. 머리가 좀 이상한 사람과는 싸우는 거 아니다.기상궁이 와서 아뢰길: “제왕과 제왕비 마마께서는 벌써 가시며 쇤네에게 대신 전하라 하셨습니다.”원경릉은 묻는 김에: “제왕비 마마 몸은 괜찮으셔?”기상궁이: “어의 말로 제왕비께서는 울화가 오른 것일 뿐이라 합니다. 화기운이 일시적으로 심장에 무리를 줬지만 돌아가셔서 조리하시면 괜찮다고 했습니다.”원경릉이 우문호를 보자 우문호가 일어나 나가는데 얼굴에 아무 표정이 없다.원경릉이 어깨를 으쓱하며, 아닌 척 하긴!원경릉은 기상궁에게 식탁에 음식 좀 챙겨서 이따가 다바오 밥 주라고 하고, 마당에서 다바오와 놀고 있는데 탕양이 오는 게 보인다. “왕비마마, 왕야께서 가서 쉬라고 하십니다.” “쉰다고? 나 안 피곤해!” 원경릉은 다바오와 신나게 논 탓에 좀 더워서 이마의 땀을 닦았다.“안 피곤하시다고요?” 탕양이 미소를 지으며, “왕야께서 안 피곤하시면 금강경을 백 번 필사 하라고 하셨습니다.”원경릉이 손을 가지런히 내리고, “그러고보니 좀 피곤하네, 그럼 난 먼저 들어가서 쉬고 있을 테니 탕대인이 가서 왕야에게 좀 전해줘.”“알겠습니다!” 탕양이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원경릉은 돌아가 침대에 엎드려 잠이
우문호의 동생 회왕의 병원경릉이 돌계단에 앉아 있고 다바오는 그녀의 발치에 엎드려 사람 하나 강아지 한 마리가 해바라기를 하고 있는데, 손왕이 와서 아무렇 게나 되는 대로 계단 한쪽에 앉아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겨 아는 척을 해도 답이 없다.“왜 그래요?” 원경릉이 물었다. “또 살 빼요?”“아니!”“배고파요? 그럼 아주버님께 뭘 좀 만들어드리라고 하게요.”“안 넘어가!”원경릉이 의아해하며 먹보가 밥이 안 넘어간다고? 이거 심각한데.“무슨 일이 에요?” 원경릉이 다바오의 머리를 두드리며 한쪽으로 보냈다.다바오는 게으른 몸뚱이를 이끌고 느릿느릿 걸어갔다.손왕이 옆으로 원경릉을 보며, “다섯째가 얘기 안 해? 여섯째 가망이 없을 것 같다고.”여섯째? 원경릉은 그제서야 그 가엾은 회왕, 우문회가 생각났다.우문회와 우문호는 같은 해에 태어났는데 우문호는 우문회보다 한 달 형으로, 우문회는 노비 마마 소생으로 2년전 병이 나서 왕부를 하사 받은 후 왕부밖으로 한 걸음도 나와보지 못했다.“여섯째 도련님…..무슨 병이시죠?” 원경릉이 물었다.“폐병!”“폐병이요? 폐결핵이에요?”“응!”원경릉이 웃으며, “결핵은 치료가 가능하고 죽을 병도 아닌 걸요, 가망이 없긴 뭐가 없어요.”손왕은 원경릉을 힐끔 보더니, “너 능력 좋네, 폐병도 낫게 하고, 어의도 너만큼 능력은 안되나 보다.”원경릉이 퍼뜩 정신이 들었다. 항생제가 발견되기 전에 폐병은 절망적인 병으로 그저 죽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상황이 심각한가요?” 원경릉이 물었다.손왕이 허탈하게: “아바마마께서 이미 사람을 시켜 여섯째의 후사를 준비하게 하셨고, 내가 보니 이미 관도 집에 준비되어 있더군. 올해 초 아바마마께서 황릉에 여섯째를 위한 묘를 수리하게 하셨는데 아마 지금쯤 다 고쳐졌겠지. 앞으로 여섯째는 침릉(寢陵)에 살게 되겠지, 형제가 백리를 떨어져 지내게 되겠구나.”원경릉은 이 말을 듣고 회왕 입장에서 너무 잔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사람이 아직 살아있는데, 몇 개월전부터
우문호 일행은 강북부로 향하는 내내 북방의 풍경과 풍속을 경험했다. 그로 인해 속도는 매우 느리긴 했지만 말이다.그날 밤, 우문호는 갑자기 악몽에서 깨어나 온몸에 땀을 흘리며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그의 얼굴에는 공포가 가득했다.그러자 원경릉이 벌떡 일어나 그를 껴안으며 물었다.“무슨 일이오? 악몽을 꾼 것이오?”우문호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아직 날씨가 덥지 않은 데다가 북방에 있어 오히려 날씨까지 쌀쌀했기에, 그는 아직도 악몽이 생각나는 듯, 창백한 표정을 지은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꿈에서 셋째 형님이 피투성이인 채 죽어가고 있었소…”원경릉은 그저 꿈이라 생각하고 위로해 주려 했지만, 이내 우문호의 강한 감응 능력을 떠올렸다. 갑자기 나타난 이 꿈이 형제간의 영적 감응일지도 몰랐기 때문이다.우문호도 점점 불안한 생각에 빠졌다.“강북부가 비록 평온해 보여도 사실 북당에서 가장 복잡한 곳이오. 온갖 사람들이 섞여 있고, 북막도 호시탐탐 노리고 있네. 게다가 셋째 형님도 무모한 사람이니, 진짜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지 걱정되오. 원 선생, 어서 빨리 가야겠소.”원경릉이 서둘러 옷을 입으며 말했다.“아니, 내가 먼저 가겠소. 정말 상처를 입었다면, 내가 가야지 도움이 되지 않겠소? 게다가 난 빨리 갈 수 있잖소.”“좋소. 그럼 먼저 가시오. 우리도 곧 출발하겠소.”우문호는 너무 생생한 꿈 탓에, 더 이상 천천히 갈 수 없었다.“사람을 불러야겠소.”원경릉은 재빨리 옷을 입은 후, 우문호에게 포옹하고 이마에 입을 맞췄다.“먼저 가겠소.”“조심하시오.”우문호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 원경릉은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원경릉이 사라지자마자 우문호는 방 문을 두드리며, 출발하자고 소리쳤다.우문호의 소리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이 밤중에 출발이라니, 무슨 큰 일이 생긴 걸까?이때 수보가 겉옷을 걸치고 나오며, 우문호의 팔을 잡고 물었다.“무슨 일입니까?”우문호가 답했다.“나도 모르네. 하지만 셋째 형님에게 무슨 일
스무 명이 넘는 자 중 단 한 명만 생포하고 나머지는 전부 섬멸되었다.안왕은 재빨리 위왕의 혈을 눌러 지혈한 후, 중상을 입은 위왕을 데리고 저택으로 돌아왔다. 먼저 의원을 찾으러 간 사람이 있었기에, 의원은 이미 저택에 도착해 있었다. 이때 안왕이 피투성이가 된 채, 의원의 옷깃을 움켜잡았다.“살리시게, 살려야 하네. 꼭 살아야 하네.”의원이 바로 약상자를 내려놓으며 말했다.“진정하십시오.”의원이 위왕의 옷을 가위로 자르자마자, 상처가 바로 드러났다. 다행히도 먼저 지혈한 덕분에 저택까지 돌아올 수 있었다.하지만 심각한 부상 상태와, 깊은 복부의 자상 때문에 장기를 다친 것으로 판단한 의원은 간단한 처리를 마친 후, 안왕에게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소인의 의술이 부족한 탓에, 치료를 감당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경성에서 다치셨다면, 희망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강북부는 의료가 낙후된 지역이다. 비록 혜민서를 설립한 이후 의사를 집중적으로 양성하긴 했지만, 경성에 비하면 여전히 많이 부족했다.안왕이 숨을 헐떡이며 눈에 핏줄을 세우고 소리쳤다.“중상을 입었는데 어찌 도성으로 돌아가란 말인가? 긴 여정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은가?”의원이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그것도 참 문제입니다. 황실 친왕이 자금단을 가지고 계신다고 들었는데, 혹시 저택에 있습니까?”“없네!”안왕은 위왕의 호흡이 점점 미약해지는 모습을 보며 절망감에 휩싸여 털썩 주저앉았다.“내가 갖고 있던 자금단은 이미 먹은 지 오래된 것이네.”“경성… 경성으로…”의식을 잃은 위왕은 그저 경성이라는 말만 중얼거렸다.안왕은 눈물을 닦으며 무릎을 꿇었다.“형님, 조금만 더 버티십시오. 의원이 약을 썼으니, 황후가 오실 때까지 며칠만 버티십시오.”심각한 상황이니, 경성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돌아가려면 최소 일주일 이상은 걸리지만, 황후는 아마 사흘 안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경성으로……”위왕은 의식을 잃기 전까지 계속해서 경성을 찾았다. 그곳은 그가 너무
위왕은 마음속에 또 하나의 걱정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다섯째가 곧 강북부에 오는 것이었다. 비록 이 일은 소문내지 않았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순행했으니, 소문이 새어나가게 마련이다.설령 그가 강북부에 온다고 밝히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의 최종 목적지가 강북부라는 것은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북막인들이 다섯째에게 해를 가하려는 것은 아닐지 걱정되었다.아무래도 단 한 순간도 북막인의 야심은 멈춘 적 없었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는 방심하지 않고, 허점을 찾아내겠다는 결심을 다지며 이들을 감시했다. 확실한 증거가 없는 어디까지나 본인의 추측일 뿐이기에, 그는 이 일을 아직 넷째에게 말하지 않았다. 섣불리 말을 꺼냈다가, 그들이 진짜 금나라 상인이라는 것이 밝혀지기라도 한다면, 두 나라의 사이만 영향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비록 무장이지만, 외교적인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아주 작은 불씨라도, 마음먹은 자가 부추기면 걷잡을 수 없는 큰불이 될 수 있는 법이기에, 섣불리 행동해서는 안 되었다. 그리고 감시 끝에 마침내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 처음엔 열댓 명 정도였던 이들 무리는 이틀 사이 스무 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새로 온 자들은 앞선 사람들과는 다르게, 군인이라기보다는 강호 인사의 분위기를 풍겼으며, 무공 또한 약하지 않아 보였다.위왕은 경계심을 품고, 밤새 직접 사람들을 이끌어 조사에 나섰다.앞서 만났던 금나라 사람들은 여전히 질문에 순순히 응했지만, 새로 온 강호인들은 거만한 태도를 보였다. 위왕의 질문에도 그저 시큰둥한 태도만 보이며 북당인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위왕은 건방진 그들의 태도에, 몇 마디 호통을 쳤고, 그 모습에 강호인들은 참지 못하고 바로 위왕에게 손을 쓰려고 했다.위왕은 조사하기 위해 온 터라, 데리고 온 부하도 단 몇 명 뿐이었기에, 상대가 일반적인 조사에도 이렇게 쉽게 공격하려 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앞서 온 금나라인들이 말리려 했지만, 그들이 손을 쓰자, 사태가 수습되지 않을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남강에 며칠 머무는 동안, 아홉째와 함께 남강의 풍경을 둘러보고, 북강에도 다녀왔다.지금 북강 백성들은 조정에 대한 소속감이 아주 강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남강을 다스린 정책이 정말 훌륭했기에, 백성들 모두 좋은 날을 보낼 수 있었기에, 자연스레 황제에 대한 존경심도 깊어진 것이었다.황제와 황후가 지나가는 곳마다 백성들은 길가에 모여서 열렬히 환영했다.그들은 이번 순행 내내 오계부에서 신분을 밝힌 것 외에는 항상 미복으로 다녔다. 하지만 남강에서 우문호는 황제의 신분을 드러냈다.우문호는 백성들의 신뢰와 경외심에서 큰 성취감을 느꼈고, 매우 기뻤다. 그는 줄곧 원경릉의 손을 잡고 얼굴에 웃음을 띠고 있었다.과거 북강은 방어를 위해 무술 함정이 많았지만, 이제는 모두 제거되었다. 그리고 많은 백성이 산 아래 평원으로 이주하여, 새로운 마을을 이루었다. 정화를 구하러 왔을 때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기쁜 마음과 함께 우문호는 감사함도 느꼈다. 이것은 결코 그 혼자만의 공로가 아니기 때문이었다.남강을 떠나야 하는 날이 다가오자, 원경릉은 만아와 여덟째를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곧 변성으로 가야 했기에, 아쉬움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잠시였다. 남강을 벗어나자마자, 그녀는 아이들과 만날 생각에 들뜨기 시작했다."원 선생, 그들에게 말했소?"길에서 우문호가 물었다."아니, 몰래 가는 것이오."원경릉은 웃으며 말했다."교활하구먼. 그래도 만두가 이미 알려줬을 수도 있을 텐데."지금은 경단과 찰떡, 그리고 계란이 셋만 그곳에 있었다."셋이 다섯 개 성을 다스린다니, 분명히 힘들 것이오."원경릉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그렇소. 그래도 예전보다는 나아졌네. 이제는 태평해 보이니."우문호도 아이들이 안쓰러웠다."이번에 가서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충분히 쉬게 해줘야 하오."사실 성하나를 다스리는 것과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점 없이, 매우 힘든 일이었다.한편, 강북부에서는 최근 강북부 무구산 주변에 신비한 상단
그러자 홍엽이 그를 바라보며 멈칫했다."자네가 중매를 서겠다고?""안 되오?""말도 안 되는 소리 말게. 자기 혼사도 해결 못 하는데 중매는 무슨. 난 못 믿네!"냉정언이 어깨를 으쓱였다."못 믿으면 말고. 이래 봬도 내가 명문가 아가씨나 협녀를 많이 알고 있소."홍엽은 손으로 그의 목을 움켜잡으며 소리쳤다."알고 있는 아가씨가 있으면 진작 말했어야지! 경성으로 돌아가자마자, 당장 소개해 주시게!"냉정언은 웃으며 그의 손목을 옆으로 밀어냈다."중매 값이 워낙 비싸서. 십만 냥 아니면 쉽게 안 나서오.""돈이 대수요?"홍엽이 교활하게 웃으며 말했다."우린 지금 한집에 살고 있소. 그러니 자네가 돈을 어디에 숨겼는지, 다 알고 있네. 그동안 꽤 많이 챙겼으니, 돌아가서 돈은 두둑이 주겠네."그 말에 냉정언이 깜짝 놀랐다."내 돈을 노리고 있었소? 진짜 도둑을 집에 들였군! 늙어서 쓸 돈이네, 그 돈을 혼사에 쓸 생각은 하지 마시오!""명여가 우리를 챙길 테니, 그렇게 쩨쩨하게 굴지 마시오."홍엽이 새침하게 말했다."나도 돈이 많소. 다만 남의 돈을 쓰는 게 훨씬 재밌을 뿐이네."냉정언이 숨을 들이쉬었다."안 되겠네. 경성에 돌아가자마자 자네를 쫓아내야겠소."홍엽이 말했다."쫓아낼 수 있으면 쫓아내 보시게. 게다가 자네가 나를 청할 때, 뭐라고 했는가? 얼마든지 살아도 된다고 했잖소. 이제 와서 후회하는 것이오?""이야, 홍엽, 어찌 이리 뻔뻔스러워진 것이오?""뻔뻔하지 않으면, 어찌 당신 집에서 이렇게 공으로 먹고살 수 있겠나?"홍엽은 크게 웃으며 그의 어깨에 팔을 얹었다."수보, 신을 모시는 건 쉬워도 보내는 건 어렵다고 하잖소. 이미 집안에 들어갔으니, 쫓아내기는 힘드네. 후회해도 소용없소. 수보의 등골 빼먹다 죽을 것이오. 관에 수의까지 얻어 쓸 생각이라, 죽으면 자네가 장례식까지 마련해줘야 하네."수보는 그를 한참 바라보다가, 애써 이를 악물며 말했다."진짜 뻔뻔하오!"홍엽은 박장대소했다.멀리 복도 끝에
“예, 그립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놀고 싶기도 합니다.”그는 말하다가, 갑자기 신이 난듯 몸을 들썩이며 말을 이어갔다.“여긴 정말 재미있습니다. 아홉째와 나가면 큰 산도 있고, 꽃도, 나무도 많습니다. 물고기도 많고, 사람도 많고, 뭐든지 엄청 많았습니다.”우문호는 웃으며, 못내 안쓰러움을 느꼈다. 예전에 그를 궁 안에 가두고, 거의 밖으로 데리고 나가지 않았다. 게다가 다른 사람이 그를 데리고 나가는 것도 신경 쓰였다.“이곳이 마음에 들면, 좀 더 오래 있어도 된다.”우문호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예, 정말 좋습니다. 다만, 형님과 형수님이 그리웠습니다. 이렇게 오셔서 정말 다행입니다.”여덟째는 흥이 오른 상태로 그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어서 들어가시지요! 아홉째가 형님이 내일 오신다고 맛있는 음식을 많이 준비했습니다.” 그는 뒤돌아 원경릉에게 외쳤다.“형수님, 빨리 따라오십시오. 맛있는 거 많습니다.”미색은 웃으며 꾸짖었다.“이 무심한 녀석, 다섯째 형수님만 챙기고, 여섯 형수가 배고픈지는 묻지도 않는 것이냐?” 여덟째는 그제야 미색을 본 듯,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여섯째 형수님도 오셨습니까? 여섯째 형님도 오신 것입니까? 와, 너무 좋습니다!”“질투하다니?”원경릉은 미색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미소를 지었다.“여덟째는 너보다 나를 더 좋아하는 것이다.”“아유, 참!”미색은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여덟째는 바로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항상 그림과 책자를 선물하는 여섯째 형수님도 좋아했기 때문이다.그는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그... 그럼 같이 드시지요. 음식 많습니다.”“장난이다. 난 질투 안 해.”미색은 기쁘게 말했다.여덟째는 그제야 마음을 놓았고, 다들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원경릉이 만아에게 말했다.“정말 이곳에서 즐겁게 지내고 있구나. 예전보다 훨씬 활발해졌고, 말도 많이 하네. 이 모든 게 아홉째 덕분이다.”만아는 웃으며 말했다.“예, 둘이 시간이 날 때마다 밖으로 나가, 더
원경릉은 발끝을 들어 그의 뺨에 입을 맞추고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우문호는 그런 그녀를 와락 끌어안으며 말했다.“원 선생, 행복하오?”“행복하오.”“하하하. 지금이 아닌, 나와 함께했던 모든 날이 행복했냐고 물어보는 것이오.”“모든 순간이 당연히 행복하고, 기쁘오!”원경릉은 스스로를 자조하듯 웃었다.“나 같은 집순이가 이렇게 결혼생활이 행복할 줄 누가 알았겠소?”한때 그녀는 자신이 평생 결혼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고, 사랑 없는 삶도 부족함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그녀는 사랑을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었지만, 사랑은 사실 정말로 중요했다.산꼭대기에 앉아, 차가운 바람을 맞고 있었지만, 추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의 풍경을 눈에, 그리고 마음에 깊이 새기고 싶었다.그리고 함께 늙어간 후, 다시 천천히 되새기고 싶었다.영산에서 내려온 후, 그들은 다시 여정을 이어나갔다. 이번 목적지는 바로 남강이었다.명절이 지난 뒤, 아홉째는 여덟째를 데리고 먼저 남강으로 돌아갔다. 다들 그가 그곳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다.남강 땅은 오랜만이었다. 마지막으로 발을 디딘 건, 정화를 구하러 갔을 때였다.남강으로 가는 내내 홍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냉정언이 물었다.“남강에 가면, 못난이를 만날 것이오?”“만나야지.”홍엽이 답했다.“물론 만나야지!”못난이는 오랜 시간 그와 함께했던 사람이니, 만나야 했다. 못난이가 종종 편지를 보내오긴 했지만, 자기 상황은 거의 말하지 않았다.반면 아홉째는 편지에서 북강의 소식을 자주 전해주었다.지금의 남강은 어느 정도 통일되어 있었고, 북강과 남강도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었다. 그동안 이익 문제로 양측의 왕래가 더욱 빈번해졌다.아홉째는 편지에서 못난이가 북강의 민심을 얻었고, 성격도 예전보다 훨씬 밝아져,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하다고 전했다.홍엽의 마음엔 기대와 기쁨이 섞여 있었다. 그도 지금 잘 지내고 있으니, 못난이도 잘 지내길 바랐다.우문호는 남강에서 돌아온 후, 변방으로 갈
그 일을 떠올리자, 꿈에서 본 일이라 그런지 마치 얼마 전에 있었던 일처럼 느껴졌다.그때 그들은 죽을 만큼 힘든 소년들이었는데, 지금은 한없이 한가한 노인이 되었다.세월은 덧없이 흘러갔고, 그동안 그들은 많은 사람들을 잃었다.무상황은 자신의 황후였던 소봉을 떠올렸다.그들은 줄곧 전형적인 황제와 황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나라를 다스렸고, 그녀는 후궁을 다스렸다. 비록 그가 그녀를 괴롭히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많은 애정을 주지도 않았다.그렇게 평범하게 평생을 함께했지만, 그녀가 떠나는 날, 그는 마음속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간 듯한 슬픔을 느꼈다.평생 함께했던 사람이 자신보다 먼저 떠날 거라 생각하지 못했기에 더욱 아팠다.세 사람은 한참 동안 넋을 잃고 있다, 다시 길을 나섰다.유아독존과 관련된 일이 생각보다 커졌지만, 모든 소란은 결국 가라앉게 될 것이다. 모든 소문도 점점 사그라들기 마련이니, 그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세 사람이 여행하는 영상이 점점 유명해지면서, 유아독존은 더 심하게 비난을 받았다.현실에서 함부로 욕설을 내뱉으면 얻어맞을 수도 있지만, 인터넷에서는 당당한 명분이 있었기에 악성 댓글을 다는 자들은 마음껏 욕을 퍼부었다.그리고 어느 날, 추 어르신이 오래도록 인터넷의 댓글을 훑어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는 이내 해가 지는 장면을 찍어 짧은 영상을 올렸다. 그리고 영상에 한마디만 덧붙였다.“분쟁 없이, 오직 평화만 있기를.”그는 모든 다툼이 끝나길 바랐고, 누군가를 벼랑 끝으로 몰지 않기를 바랐다. 단지 말로만 승부를 겨루는 사람은 그들의 적이 아니기 때문이다.음... 무엇보다 적이 될 자격도 없었다!영상이 올라간 지 이틀 뒤, 유아독존은 마침내 사과 영상을 올렸다. 그는 질투와 시기로 무술을 모독한 것을 사죄했고, 은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직접 그들의 계정을 태그해 진심으로 사과했다.진심 어린 사과는 항상 용서를 가져오는 법이다. 그리고 악성 댓글을 달던 사람들도 마침내 욕설을 멈췄다.
삼대 거두는 늦은 시각이 되어서야 일어났고, 숙취에서 깨어나니, 이미 날이 밝아져 있었다. 그들은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아, 눈앞의 모든 것이 몽롱해 오늘이 무슨 날인지조차 모를 정도였다.태양이 서서히 떠오르며 하늘에 떠 있는 주황빛 구름은 점점 짙은 금빛으로 변했고, 금빛 가장자리에는 붉은색이 덧씌워져, 눈부시게 아름다웠다.소요공이 눈을 비비며 말했다."꿈을 꿨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동시에 그를 바라보며 이구동성으로 물었다."무슨 꿈을 꿨는가?""꿈에서 숭이가 사내에게 속았는데, 우리가 직접 나서서 복수를 해줬다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놀라서 동시에 숨을 들이켜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귀신이 곡할 노릇이네."말이 끝나자,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깜짝 놀라 외쳤다."자네도 꾼 것인가?""그렇네!""그렇네!""설마 우리 셋이 똑같은 꿈을 꾼 것이오?"소요공도 깜짝 놀랐다.그 일은 그렇게 중요한 일도 아니었고, 어떻게 된 일인지 가물가물할 정도로, 그저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만 어렴풋이 기억할 정도였는데, 꿈에서는 그 장면 장면이 또렷하게 떠올랐다.그리고, 이 꿈은 당시 엄청난 부담을 받고 있던 그들에게 정말 훌륭한 감정 해소가 되었다. 그들은 모든 고통과 억울함, 스트레스를 주먹질로 시원하게 풀어냈다.한편, 무상황은 자신이 황후를 소홀히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때 무슨 상황이었는지 기억하는가?"추 어르신이 흥분한 듯 말했다."물론 기억은 나네. 당시엔 소봉이가 궁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적성루 사람들을 많이 그리워했네. 게다가 나도 자네들과 어울리느라 바빠서 황후를 소홀히 했네. 그래서 적성루 상궁과 숭이를 궁으로 불러, 이야기를 나누게 했지."사실 기억이 가물가물했지만, 꿈속에서 다시 겪은 덕분에 자세히 생각났다.그때 어서방의 회의가 끝나고, 소복이 무심히 물었다."폐하, 황후 마마를 오랫동안 못 뵙지 않으셨습니까?"그는 소복의 말이 소봉을 보러 가자는 암시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