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괜찮아요……. 가서 손왕 전하의 상태를 살펴봐주세요.” 원경릉이 말했다.그녀는 점점 심해지는 통증에 눈앞이 캄캄해지고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몽롱한 의식 속에서 그녀는 우문호의 목소리를 들었다. 우문호는 그녀의 얼굴을 가볍게 두드리며 울먹였다. 그녀는 눈을 뜨고 그를 바라보며 괜찮다고 별일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눈꺼풀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머릿속에는 거대한 검은 소용돌이가 부는 것 같았다. 그녀는 난생처음 겪는 느낌에 너무 무서웠다. 우문호는 원경릉을 안아 마차에 싣고는 미친 듯이 달렸다. 그녀는 화살에 맞은 곳이 아파서 혼절할 것만 같았다. 이런 원경릉을 보고 있자니 우문호는 금방이라도 미쳐버릴 것 같았다.땀에 흠뻑 젖은 머슴이 관아의 문을 박차고 들어와 초왕비가 암살을 당했다고 말한 순간, 우문호는 눈앞이 핑 도는 기분이었다. 그가 정신이 반쯤 나간 채로 말을 타고 나가려고 하자 심복이 그에게 이럴 때일수록 침착하라며 마차 안에 그를 태웠다. 머슴이 말한 장소에 도착하자 피 칠갑이 된 원경릉이 보였다. 그는 순간 심장이 바닥으로 쿵 하고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오늘 회왕부에서 떠날 때, 그녀가 그를 보며 지었던 미소가 떠올랐다.“잠들면 안 돼. 집으로 가자……” 그는 울먹이며 그녀를 안아들어 마차에 실었다. 손왕의 상태도 매우 위급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우문호는 그까지 돌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왕부에는 본래 어의가 있었지만 요 며칠 사이에 모든 어의들이 궁으로 돌아간 상태이기에 서일은 밤새 달려 궁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궁문은 이미 굳게 닫혀있었고, 늦은 시간이라 궁문 수장이 통보하려 하지 않자 달리 방법이 없어 어쩔 수 없이 구사를 찾아갔다.서일의 말을 들은 구사가 깜짝 놀라 급히 말을 타고 당직을 서지 않는 어의부로 갔다. 어의부에 도착한 구사는 이상함을 감지했다. 오늘 당직을 서지 않은 어의들이 모두 구토와 설사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내의원에서 먹은 음식 때문에 식중독에 걸린 것 같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의식이 또렷했다.‘손왕의 상태는 어떠려나? 그리고 내일 회왕에게 약을 투여해야 하는데, 주사는 아니더라도 약은 꼭 먹어야 할 텐데……’그녀는 회왕부에서 나오면서 여분의 약을 남겨두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약을 남겨두었다고 해도 그녀가 살아있어야 했다. 만약 그녀가 죽는다면 회왕은 약 복용을 중단해야 하고, 그럼 회왕은 죽을 수밖에 없었다.원경릉은 어깨와 다리에 화살을 맞았을 뿐인데 왜 온몸이 아픈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녀는 너무 아파서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힘이 없어 입 밖으로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의식이 없는 동안에도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게 우문호인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목소리가 너무나도 떨렸기 때문이다.‘괜찮아. 무서워하지 마. 난 잘 해낼 수 있을 거야.’“왕야 따듯한 물 가져왔습니다.” 기상궁이 손을 덜덜 떨며 물을 건넸다. “이리 줘. 본왕이 하겠다!” 우문호가 말했다. 원경릉의 얼굴에는 손왕의 피가 잔뜩 튀어있었다. 희상궁이 말하길 손왕이 원경릉을 구하지 않았다면 화살이 그대로 그녀의 심장을 관통했을 것이라고 했다.기상궁은 수건을 가져와 우문호에게 건넸다. 그는 수건을 물에 적신 후 조심스럽게 그녀의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았다. 그녀의 얼굴에 묻은 피는 이미 응고된 상태였다. 그는 그녀가 아플까 세게 닦아내지 못하고 살살 문질렀다. 원경릉이 비록 의식을 잃었지만 그녀는 몸을 덜덜 떨며 고통스러워했다.‘이렇게 마르고 약한 그녀가 어떻게 두 발의 화살을 맞고도 견딜 수 있을까?’“구사와 서일은?” 우문호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탕양은 구사와 서일이 이 사건에 대해 조사를 하고 있으니 곧 자객들의 신분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본왕은 진실을 원한다. 그리고 이 사건의 배후도!” 우문호의 눈이 반짝였다.“예!” 탕양은 대답을 하고는 왕비의 상태를 힐끗 보며 저러다 죽는 건 아닐까 걱정했다. ‘왕비와 왕야가 서로 마음을 분명히 한지 겨우 하루
우문호는 원경릉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물먹은 솜처럼 축 처진 그녀를 보니 그의 마음이 아려왔다. 명원제도 자신이 가장 아끼는 능력 있는 며느리가 이렇게 누워있으니 은근 마음이 쓰였다.“구사는? 짐이 아침저녁으로 이리로 오라고 하지 않았나?”명원제는 씁쓸한 표정으로 물었다.이에 우문호는 “부황, 소자가 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소자가 그녀를 보필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그럴 수가 있느냐! 이는 엄연한 직무태만이다!” 명원제가 노하였다.명원제가 큰소리를 내는 바람에 우문호는 원경릉이 깰까 걱정이 되었다. 그는 속으로 부황이 이곳에 있어도 도움이 안 되니 빨리 갔으면 했다. 원경릉은 소용돌이 밖에서 천둥이 번쩍번쩍 치는 듯한 느낌에 고막이 아팠다. 그러나 외부에서 들리는 큰 소리가 덕분에 검은 소용돌이로부터 점점 멀어질 수 있게 되었다. 소용돌이 위에 떠있던 생각들도 천천히 정리되어 제자리를 찾는듯한 느낌이었다. “왕비가 움직이셨어요!”기상궁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이 소리에 화를 내던 명원제도 잠시 멈추었다. 우문호는 재빨리 뒤를 돌아보았다. 꼭 쥐어져있던 그녀의 두 손이 방금 전보다 느슨해져있었다. 원경릉이 천천히 눈을 뜨자, 눈앞에 쪼그리고 앉아 그녀의 얼굴을 만지고 있는 우문호가 보였다.“일어났어? 많이 아프지?”원경릉은 눈알을 굴릴 힘도 없어서 그저 그를 바라만 보다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둘째 아주버님…….”이라고 말했다.“둘째 형님은 괜찮다.” 우문호는 그녀가 무엇을 묻는지 감이 왔기에 재빨리 대답했다.원경릉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회왕…… 약……”이라고 말했다.“그는 괜찮을 거다. 너는 어때? 아직도 아프지?”우문호가 그녀의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아파……” 원경릉은 온몸이 두드려맞은 느낌이었다. 그녀는 약 상자에서 진통제를 꺼내 직접 주사하고 싶었지만 기운이 하나도 없어서 손 하나 까딱하지 못했다. 이전에 곤장을 맞았을 때에도 이렇게 아프지 않았다. 그녀는 여태껏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통증에 눈물이 쉴 새 없이
우문호는 반쯤 침상에 꿇어앉아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지다가 가끔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출 뿐 다른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가 딱히 말하지 않아도 그의 초조함이 원경릉에게 전해졌다. 그녀는 고통스러운 숨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참았지만 아픔을 참을 수 없어 입을 벌리고 심호흡을 했다.이렇게 족히 한 시진(時辰)을 버틴 그녀는 끝내 고통을 참지 못하고 몸을 움츠렸다. 온몸에서는 식은땀이 흘렀고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너무 아파……”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이를 덜덜 떨었다.어깨에 화살이 박힐 때 그 충격으로 뼈에 금이 간 것 같았다. 그녀가 몸을 조금이라도 움직일 때마다 금이 간 곳이 아려왔다. 우문호는 흐르는 그녀의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돌려 어의에게 소리쳤다.“어서 빨리 방법을 생각하라!”“왕야께 자금단이 있으십니까? 자금단은 통증을 좀 멈출 수 있습니다.” 어의는 도저히 다른 방법이 생각나지 않자 무릎을 꿇고 말했다.“본왕이 자금단이 어디 있겠느냐?” 우문호는 성난 사자처럼 울부짖었다. 제왕의 자금단과 예친왕의 자금단 모두 이전에 그가 아플 때 먹었기에 그의 수중엔 남은 자금단이 없었다.그의 머릿속에 다른 형제들이 떠올랐지만 아무도 자금단을 내어줄 것 같지 않았다.“본왕 여섯째에게 부탁을 해야겠다!”우문호는 회왕을 찾으러 가기 위해 벌떡 일어났다.그러자 침상에 누워있던 원경릉이 온 힘을 다해 그의 손가락 하나를 움켜잡고는 겁에 질린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가지 마…… 나를 두고 가지 마!”이 모습을 본 탕양이 다급하게 “소인이 가서 구해오겠습니다!”라고 말하고는 재빠르게 달려나갔다.자금단은 지금 왕비의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약이다. 회왕은 분명 원경릉에게 자금단을 내어줄 테지만, 만약 회왕부에 노비(魯妃)가 있다면 과연 회왕이 원경릉에게 자금단을 주는 것을 허락을 할까?탕양은 회왕을 찾아가기 전에 명원제를 찾아가 이 상황을 논의해 보려고 했지만, 명원제는 손왕의 상태를 살피고 이미 입궁한 상태였다. 명원제를 찾아갔다가
탕양은 노비가 거절할 줄 예상했기에 곧바로 회왕에게 호소했다.“아뇨. 왕야가 아니라 왕비님입니다. 어젯밤 회왕부에서 초왕부로 돌아가는 길에 왕비님과 손왕이 암살을 당할 뻔했습니다. 두 분 모두 중상을 입은 상태로, 손왕은 자금단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미 복용을 했고, 왕비님은 자금단을 먹지 못해 현재 위중한 상태입니다. 회왕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면 초왕께서 절대로 잊지 않으실 것입니다.”탕양의 말을 듣고 노비와 회왕은 크게 놀랐다. 노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탕양에게“누가 그랬는지 밝혀졌느냐?”라고 물었다.탕양은 고개를 저으며 “아직 조사 중입니다. 하지만 적들이 왕비가 회왕을 치료하는 것을 막기 위해 왕비를 암살하려고 한 것이 분명합니다.”라고 말했다.탕양은 회왕에게 이런 말을 해도 되나 고민했지만, 지금 상황이 급하니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노비가 놀라서 얼굴색이 갑자기 창백해졌다. “모비, 자금단을 어서 빨리 가져오세요. 저기 서랍 속 통에 담아두었습니다.” 회왕이 다급하게 말했다.노비는 머리를 짚고 혼란스러워하며 후들거리는 다리를 이끌어 서랍 문을 열고 금색 상자를 꺼냈다. 그녀는 상자를 들고 머뭇거리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지. 초왕비를 암살하려다가 실패했으니 다음엔 우리 회왕에게도 손을 댈 수 있지 않느냐. 본궁은 이 자금단을 절대 초왕비에게 줄 수 없습니다.”회왕은 그런 노비를 보고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모비! 초왕비가 아니었다면, 저는 이미 죽었을 겁니다! 게다가 초왕비가 이 고비를 넘기지 못한다면 제 치료는 누가 합니까?”노비는 연신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원경릉이 암살을 당할 뻔했다는 소식에 몹시 놀란 듯 몸을 떨었다.“하지만 지금 회왕의 상태를 보세요.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습니다. 이제 궁 안에 어의를 불러서 치료하면 금방 나을 겁니다.”노비는 자금단을 손에 꼭 쥐고 말했다.사실 이 상황에서 그 누구도 노비를 욕할 수 없다. 어미로서 이 세상에 자식의 목숨보다 중요한 게 무엇이 있겠는가?“전하,
우문호는 탕양이 가져온 자금단을 빻아서 원경릉에게 먹였다. 원경릉은 자금단을 먹고 나서 떨림이 멈추고 고통이 점차 줄어드는 것을 느꼈지만 피로감은 여전했다. 그녀는 쏟아지는 졸음에 눈꺼풀이 감겼다. 그녀는 잠시나마 고통을 잊고 깊게 잠이 들었지만, 화살이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꿈을 꾸는 바람에 놀라 깨어났다.우문호는 줄곧 그녀의 곁을 지켰다. 원경릉을 보고 있으니 문득 그녀의 몸에서 화살을 뽑을 당시가 떠올랐다. 선혈이 여기저기로 흩날리고, 화살이 뽑힌 자리에는 살점이 들려있어 뼈가 훤히 드러나 있었다. 그 장면을 생각하니 그의 심장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왜 안 자느냐? 아직도 아픈 것이야?”원경릉이 눈을 뜨자 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나 괜찮아. 걱정 마. 이제 할 일 있으면 가서 일봐.” 원경릉은 손을 뻗어 그의 이마를 쓰다듬었다.우문호는 그녀가 괜찮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바쁜일 없다. 내가 널 지킬거야.”원경릉은 힘겹게 눈을 굴려 밖을 내다보았다. “지금 몇 시야?”우문호는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몰라서 고개를 젓더니 탕양을 보았다.“오시(午時)가 되었습니다.” 탕양이 다급하게 대답했다.이 말을 들은 원경릉은 몸을 일으키며 “회왕부로 가야겠어.”라고 말했다.“아니 오늘은 가지 마.”우문호가 그런 그녀를 막아서며 “회복 다 하면 가거라. 해봤자 회왕이 늘 먹던 약만 전해주면 되는거 아니냐.”라고 말했다.“안돼. 이틀간 주사를 놔야 해. 이후에는 약만 먹으면 되니 오늘은 꼭 가야 해.”“네 꼴을 봐라. 이 상태로 어떻게 가겠느냐? 고작 이틀인데 무슨 일이라도 생기겠느냐.”우문호가 말했다.원경릉은 화살을 맞았던 어깨를 한번 만져보았다. 통증이 경미한 것을 보니 확실히 자금단이 자금탕과 비슷한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자금단 약 기운이 돌아서 안 아플 때 가야 해. 오늘 내일이 관건이라 주사를 놓지 않으면 회왕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어.” 우문호는 원경릉의 상태를 보고 도저히 그
“어의가 이미 다 처리했다.” 우문호가 말했다.“알아. 하지만 한번 더 소독을 해야 해. 가제를 덧대고 붕대로 감는게 좋겠어.”원경릉이 소독액을 우문호에게 건네며 말했다.우문호는 그녀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수긍하는 척했다.“나는 가끔 너를 알다가도 모르겠어. 너는 원경릉이 아니야.”우문호가 말했다.그녀는 우문호가 귀엽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그럼 나를 초왕의 여인인 초왕비라고 불러.”라고 말했다. 우문호는 그녀의 말에 설레는 듯 그녀의 코 끝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그는 문을 닫고 그녀가 상처를 소독하게끔 웃옷을 벗는 것을 도와주었다.그녀가 상처 부위에 요오드 용액으로 소독을 시작하자 저릿한 통증이 느껴져 미간을 찌푸렸다. 소독액이 다 마르자 그는 조심스럽게 상처부위를 가제로 싸맸다. 종아리로 날아온 화살은 다행히도 뼈를 빗겼다. 상처가 감염만 되지 않는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사실 손왕의 부상 정도와 비교하자면 원경릉은 양호한 편이었다. 만약 손왕이 살집이 없었다면 화살은 폐를 관통했을 것이다.“뚱뚱한 게 이럴 때 도움이 되네.” 원경릉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러니까 말이다. 그나저나 둘째 형님이 겁이 많은 사람이라. 말은 안 해도 이번에 엄청 놀랐을 거야.”우문호는 원경릉을 지켜준 손왕이 고마웠다. 만약 그가 아니었다면 원경릉은 세상에 없었을 것이다.원경릉은 손왕이 자신 대신 화살을 맞았던 그 순간이 떠올랐다. 손왕이 살아서 다행이지 만약에 무슨 일이 생겼다면 그녀는 평생 죄책감을 지고 살았을 것이다. 손왕은 쓰러지는 순간에도 돼지 허벅지 고기를 먹지 못한 것을 후회하였다. 원경릉은 손왕의 치료가 끝나면 그에게 맞는 다이어트 식단을 만들어줘야겠다고 결심했다.노비는 원경릉이 아픈 몸을 이끌고 회왕에게 주사를 놓으러 올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우문호의 부축을 받으며 원경릉이 회왕부의 문턱을 넘는 것을 보자, 노비는 방금 전 탕양에게 보인 자신의 행동이 부끄러워 고개가 저절로 숙여졌다. 노비는 기운이 없어
회왕부 안에서 내부 첩자를 조사하려고 하니 우문호와 원경릉은 빨리 자리를 떠야겠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우문호는 원경릉의 상태가 걱정돼 빨리 초왕부로 돌아가 그녀를 쉬게 하고 싶었다. 첩자를 조사하는 것은 꽤나 복잡했다. 회왕의 병 때문에 회왕부에 오는 사람이 많아진 시기라 첩자가 꼭 회왕부 내부 사람이라 단정 짓기 어려웠고, 자주 드나들었던 공주나 친왕이 연루됐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저녁 무렵, 회왕부에서 첩자를 알아냈다는 소식이 들렸는데, 뜻밖에도 회왕과 함께 궁에서 나온 상궁이라고 했다. 이 소식을 들은 우문호는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본왕의 기억이 맞다면, 그 상궁은 회왕이 어릴 때 젖을 물려주던 유모 상궁일 텐데……”유모 상궁은 거의 어미랑 다를 게 없었기에 회왕이 이 사실을 알면 매우 상심할 것이다.“유모 상궁이 독약을 넣었다고 하는데 이상하게 치사량 수준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원래대로라면 그 독은 회왕을 죽이고도 남았을 것입니다.”탕양이 회왕부에서 들은 말은 우문호에게 전했다.“그럼 배후는 밝혀졌느냐?” 우문호가 물었다.탕양은 고개를 저으며 “아니요. 배후는 불지 않고, 한 집안의 목숨이 자신에 손에 달렸다는 말만 하다가 사람들이 방심한 틈을 타서 벽에 머리를 부딪쳐 자결했다고 합니다.”라고 말했다.회왕부의 유모 상궁이 처참하게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원경릉의 마음이 편치 않았다.자신이 젖까지 먹여가며 키운 회왕을 죽이려고 하다니 정말 피치 못할 사정이 아니었으면 절대 하지 못할 행동이었다. 그녀가 만약 치사량 수준의 독을 넣었다면 회왕은 진작에 죽었을 것이다.‘과연 그 배후는 누구일까?’배후가 누가 됐던 참으로 영악하다. 젖먹이 때부터 키우던 유모를 포섭하다니.“유모 상궁이 죽자 단서를 찾을 수 없어 배후를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탕양에 허탈해했다.원경릉은 우문호를 쳐다보며 “기왕이 한 짓일까?” 라고 물었다.“이 사건에서 넌 빠지는 게 좋겠어. 앞으로 이 일은 묻지도 궁금해하지도 마라. 본왕이 그들은
남강에 며칠 머무는 동안, 아홉째와 함께 남강의 풍경을 둘러보고, 북강에도 다녀왔다.지금 북강 백성들은 조정에 대한 소속감이 아주 강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남강을 다스린 정책이 정말 훌륭했기에, 백성들 모두 좋은 날을 보낼 수 있었기에, 자연스레 황제에 대한 존경심도 깊어진 것이었다.황제와 황후가 지나가는 곳마다 백성들은 길가에 모여서 열렬히 환영했다.그들은 이번 순행 내내 오계부에서 신분을 밝힌 것 외에는 항상 미복으로 다녔다. 하지만 남강에서 우문호는 황제의 신분을 드러냈다.우문호는 백성들의 신뢰와 경외심에서 큰 성취감을 느꼈고, 매우 기뻤다. 그는 줄곧 원경릉의 손을 잡고 얼굴에 웃음을 띠고 있었다.과거 북강은 방어를 위해 무술 함정이 많았지만, 이제는 모두 제거되었다. 그리고 많은 백성이 산 아래 평원으로 이주하여, 새로운 마을을 이루었다. 정화를 구하러 왔을 때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기쁜 마음과 함께 우문호는 감사함도 느꼈다. 이것은 결코 그 혼자만의 공로가 아니기 때문이었다.남강을 떠나야 하는 날이 다가오자, 원경릉은 만아와 여덟째를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곧 변성으로 가야 했기에, 아쉬움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잠시였다. 남강을 벗어나자마자, 그녀는 아이들과 만날 생각에 들뜨기 시작했다."원 선생, 그들에게 말했소?"길에서 우문호가 물었다."아니, 몰래 가는 것이오."원경릉은 웃으며 말했다."교활하구먼. 그래도 만두가 이미 알려줬을 수도 있을 텐데."지금은 경단과 찰떡, 그리고 계란이 셋만 그곳에 있었다."셋이 다섯 개 성을 다스린다니, 분명히 힘들 것이오."원경릉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그렇소. 그래도 예전보다는 나아졌네. 이제는 태평해 보이니."우문호도 아이들이 안쓰러웠다."이번에 가서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충분히 쉬게 해줘야 하오."사실 성하나를 다스리는 것과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점 없이, 매우 힘든 일이었다.한편, 강북부에서는 최근 강북부 무구산 주변에 신비한 상단
그러자 홍엽이 그를 바라보며 멈칫했다."자네가 중매를 서겠다고?""안 되오?""말도 안 되는 소리 말게. 자기 혼사도 해결 못 하는데 중매는 무슨. 난 못 믿네!"냉정언이 어깨를 으쓱였다."못 믿으면 말고. 이래 봬도 내가 명문가 아가씨나 협녀를 많이 알고 있소."홍엽은 손으로 그의 목을 움켜잡으며 소리쳤다."알고 있는 아가씨가 있으면 진작 말했어야지! 경성으로 돌아가자마자, 당장 소개해 주시게!"냉정언은 웃으며 그의 손목을 옆으로 밀어냈다."중매 값이 워낙 비싸서. 십만 냥 아니면 쉽게 안 나서오.""돈이 대수요?"홍엽이 교활하게 웃으며 말했다."우린 지금 한집에 살고 있소. 그러니 자네가 돈을 어디에 숨겼는지, 다 알고 있네. 그동안 꽤 많이 챙겼으니, 돌아가서 돈은 두둑이 주겠네."그 말에 냉정언이 깜짝 놀랐다."내 돈을 노리고 있었소? 진짜 도둑을 집에 들였군! 늙어서 쓸 돈이네, 그 돈을 혼사에 쓸 생각은 하지 마시오!""명여가 우리를 챙길 테니, 그렇게 쩨쩨하게 굴지 마시오."홍엽이 새침하게 말했다."나도 돈이 많소. 다만 남의 돈을 쓰는 게 훨씬 재밌을 뿐이네."냉정언이 숨을 들이쉬었다."안 되겠네. 경성에 돌아가자마자 자네를 쫓아내야겠소."홍엽이 말했다."쫓아낼 수 있으면 쫓아내 보시게. 게다가 자네가 나를 청할 때, 뭐라고 했는가? 얼마든지 살아도 된다고 했잖소. 이제 와서 후회하는 것이오?""이야, 홍엽, 어찌 이리 뻔뻔스러워진 것이오?""뻔뻔하지 않으면, 어찌 당신 집에서 이렇게 공으로 먹고살 수 있겠나?"홍엽은 크게 웃으며 그의 어깨에 팔을 얹었다."수보, 신을 모시는 건 쉬워도 보내는 건 어렵다고 하잖소. 이미 집안에 들어갔으니, 쫓아내기는 힘드네. 후회해도 소용없소. 수보의 등골 빼먹다 죽을 것이오. 관에 수의까지 얻어 쓸 생각이라, 죽으면 자네가 장례식까지 마련해줘야 하네."수보는 그를 한참 바라보다가, 애써 이를 악물며 말했다."진짜 뻔뻔하오!"홍엽은 박장대소했다.멀리 복도 끝에
“예, 그립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놀고 싶기도 합니다.”그는 말하다가, 갑자기 신이 난듯 몸을 들썩이며 말을 이어갔다.“여긴 정말 재미있습니다. 아홉째와 나가면 큰 산도 있고, 꽃도, 나무도 많습니다. 물고기도 많고, 사람도 많고, 뭐든지 엄청 많았습니다.”우문호는 웃으며, 못내 안쓰러움을 느꼈다. 예전에 그를 궁 안에 가두고, 거의 밖으로 데리고 나가지 않았다. 게다가 다른 사람이 그를 데리고 나가는 것도 신경 쓰였다.“이곳이 마음에 들면, 좀 더 오래 있어도 된다.”우문호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예, 정말 좋습니다. 다만, 형님과 형수님이 그리웠습니다. 이렇게 오셔서 정말 다행입니다.”여덟째는 흥이 오른 상태로 그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어서 들어가시지요! 아홉째가 형님이 내일 오신다고 맛있는 음식을 많이 준비했습니다.” 그는 뒤돌아 원경릉에게 외쳤다.“형수님, 빨리 따라오십시오. 맛있는 거 많습니다.”미색은 웃으며 꾸짖었다.“이 무심한 녀석, 다섯째 형수님만 챙기고, 여섯 형수가 배고픈지는 묻지도 않는 것이냐?” 여덟째는 그제야 미색을 본 듯,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여섯째 형수님도 오셨습니까? 여섯째 형님도 오신 것입니까? 와, 너무 좋습니다!”“질투하다니?”원경릉은 미색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미소를 지었다.“여덟째는 너보다 나를 더 좋아하는 것이다.”“아유, 참!”미색은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여덟째는 바로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항상 그림과 책자를 선물하는 여섯째 형수님도 좋아했기 때문이다.그는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그... 그럼 같이 드시지요. 음식 많습니다.”“장난이다. 난 질투 안 해.”미색은 기쁘게 말했다.여덟째는 그제야 마음을 놓았고, 다들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원경릉이 만아에게 말했다.“정말 이곳에서 즐겁게 지내고 있구나. 예전보다 훨씬 활발해졌고, 말도 많이 하네. 이 모든 게 아홉째 덕분이다.”만아는 웃으며 말했다.“예, 둘이 시간이 날 때마다 밖으로 나가, 더
원경릉은 발끝을 들어 그의 뺨에 입을 맞추고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우문호는 그런 그녀를 와락 끌어안으며 말했다.“원 선생, 행복하오?”“행복하오.”“하하하. 지금이 아닌, 나와 함께했던 모든 날이 행복했냐고 물어보는 것이오.”“모든 순간이 당연히 행복하고, 기쁘오!”원경릉은 스스로를 자조하듯 웃었다.“나 같은 집순이가 이렇게 결혼생활이 행복할 줄 누가 알았겠소?”한때 그녀는 자신이 평생 결혼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고, 사랑 없는 삶도 부족함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그녀는 사랑을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었지만, 사랑은 사실 정말로 중요했다.산꼭대기에 앉아, 차가운 바람을 맞고 있었지만, 추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의 풍경을 눈에, 그리고 마음에 깊이 새기고 싶었다.그리고 함께 늙어간 후, 다시 천천히 되새기고 싶었다.영산에서 내려온 후, 그들은 다시 여정을 이어나갔다. 이번 목적지는 바로 남강이었다.명절이 지난 뒤, 아홉째는 여덟째를 데리고 먼저 남강으로 돌아갔다. 다들 그가 그곳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다.남강 땅은 오랜만이었다. 마지막으로 발을 디딘 건, 정화를 구하러 갔을 때였다.남강으로 가는 내내 홍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냉정언이 물었다.“남강에 가면, 못난이를 만날 것이오?”“만나야지.”홍엽이 답했다.“물론 만나야지!”못난이는 오랜 시간 그와 함께했던 사람이니, 만나야 했다. 못난이가 종종 편지를 보내오긴 했지만, 자기 상황은 거의 말하지 않았다.반면 아홉째는 편지에서 북강의 소식을 자주 전해주었다.지금의 남강은 어느 정도 통일되어 있었고, 북강과 남강도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었다. 그동안 이익 문제로 양측의 왕래가 더욱 빈번해졌다.아홉째는 편지에서 못난이가 북강의 민심을 얻었고, 성격도 예전보다 훨씬 밝아져,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하다고 전했다.홍엽의 마음엔 기대와 기쁨이 섞여 있었다. 그도 지금 잘 지내고 있으니, 못난이도 잘 지내길 바랐다.우문호는 남강에서 돌아온 후, 변방으로 갈
그 일을 떠올리자, 꿈에서 본 일이라 그런지 마치 얼마 전에 있었던 일처럼 느껴졌다.그때 그들은 죽을 만큼 힘든 소년들이었는데, 지금은 한없이 한가한 노인이 되었다.세월은 덧없이 흘러갔고, 그동안 그들은 많은 사람들을 잃었다.무상황은 자신의 황후였던 소봉을 떠올렸다.그들은 줄곧 전형적인 황제와 황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나라를 다스렸고, 그녀는 후궁을 다스렸다. 비록 그가 그녀를 괴롭히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많은 애정을 주지도 않았다.그렇게 평범하게 평생을 함께했지만, 그녀가 떠나는 날, 그는 마음속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간 듯한 슬픔을 느꼈다.평생 함께했던 사람이 자신보다 먼저 떠날 거라 생각하지 못했기에 더욱 아팠다.세 사람은 한참 동안 넋을 잃고 있다, 다시 길을 나섰다.유아독존과 관련된 일이 생각보다 커졌지만, 모든 소란은 결국 가라앉게 될 것이다. 모든 소문도 점점 사그라들기 마련이니, 그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세 사람이 여행하는 영상이 점점 유명해지면서, 유아독존은 더 심하게 비난을 받았다.현실에서 함부로 욕설을 내뱉으면 얻어맞을 수도 있지만, 인터넷에서는 당당한 명분이 있었기에 악성 댓글을 다는 자들은 마음껏 욕을 퍼부었다.그리고 어느 날, 추 어르신이 오래도록 인터넷의 댓글을 훑어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는 이내 해가 지는 장면을 찍어 짧은 영상을 올렸다. 그리고 영상에 한마디만 덧붙였다.“분쟁 없이, 오직 평화만 있기를.”그는 모든 다툼이 끝나길 바랐고, 누군가를 벼랑 끝으로 몰지 않기를 바랐다. 단지 말로만 승부를 겨루는 사람은 그들의 적이 아니기 때문이다.음... 무엇보다 적이 될 자격도 없었다!영상이 올라간 지 이틀 뒤, 유아독존은 마침내 사과 영상을 올렸다. 그는 질투와 시기로 무술을 모독한 것을 사죄했고, 은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직접 그들의 계정을 태그해 진심으로 사과했다.진심 어린 사과는 항상 용서를 가져오는 법이다. 그리고 악성 댓글을 달던 사람들도 마침내 욕설을 멈췄다.
삼대 거두는 늦은 시각이 되어서야 일어났고, 숙취에서 깨어나니, 이미 날이 밝아져 있었다. 그들은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아, 눈앞의 모든 것이 몽롱해 오늘이 무슨 날인지조차 모를 정도였다.태양이 서서히 떠오르며 하늘에 떠 있는 주황빛 구름은 점점 짙은 금빛으로 변했고, 금빛 가장자리에는 붉은색이 덧씌워져, 눈부시게 아름다웠다.소요공이 눈을 비비며 말했다."꿈을 꿨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동시에 그를 바라보며 이구동성으로 물었다."무슨 꿈을 꿨는가?""꿈에서 숭이가 사내에게 속았는데, 우리가 직접 나서서 복수를 해줬다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놀라서 동시에 숨을 들이켜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귀신이 곡할 노릇이네."말이 끝나자,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깜짝 놀라 외쳤다."자네도 꾼 것인가?""그렇네!""그렇네!""설마 우리 셋이 똑같은 꿈을 꾼 것이오?"소요공도 깜짝 놀랐다.그 일은 그렇게 중요한 일도 아니었고, 어떻게 된 일인지 가물가물할 정도로, 그저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만 어렴풋이 기억할 정도였는데, 꿈에서는 그 장면 장면이 또렷하게 떠올랐다.그리고, 이 꿈은 당시 엄청난 부담을 받고 있던 그들에게 정말 훌륭한 감정 해소가 되었다. 그들은 모든 고통과 억울함, 스트레스를 주먹질로 시원하게 풀어냈다.한편, 무상황은 자신이 황후를 소홀히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때 무슨 상황이었는지 기억하는가?"추 어르신이 흥분한 듯 말했다."물론 기억은 나네. 당시엔 소봉이가 궁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적성루 사람들을 많이 그리워했네. 게다가 나도 자네들과 어울리느라 바빠서 황후를 소홀히 했네. 그래서 적성루 상궁과 숭이를 궁으로 불러, 이야기를 나누게 했지."사실 기억이 가물가물했지만, 꿈속에서 다시 겪은 덕분에 자세히 생각났다.그때 어서방의 회의가 끝나고, 소복이 무심히 물었다."폐하, 황후 마마를 오랫동안 못 뵙지 않으셨습니까?"그는 소복의 말이 소봉을 보러 가자는 암시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개혁은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나라가 이미 망가진 뒤라, 보수파들은 북당이 더는 흔들림을 견딜 수 없다고 여겨, 더 이상 변화를 원하지 않았다. 그러자 소국공은 소복을 부상으로 임명했고, 소복은 부상이 된 후, 온갖 수단으로 보수파를 하나 하나씩 무너뜨렸다.그는 협박, 욕설, 생떼, 무례, 끈질긴 설득 등 다양한 방식으로 보수파를 공략했고, 심지어 마지막에는 돗자리를 말아, 상대의 대문 앞에 깔고는, 저녁엔 문 앞에서 잠을 청하고, 낮에는 문 앞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북당의 발전을 가로막는 자라고 비난까지 했다.그렇게 보수파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2년이 지나, 휘 형과 형수가 대주에서 돌아왔다. 그는 드디어 애써 노력한 끝에, 그들에게 기대에 부응할 만한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성공의 길은 여전히 멀었다. 가난 때문에 발생한 난장판은 아직도 평정되지 않았다.휘 형과 형수는 사실 그의 혼례를 치르기 위해 돌아온 것이었다.그는 이제 황후를 책봉해야 할 시기였고, 황후 후보는 일찌감치 정해져 있었다. 바로 숙왕부에서 지낸 적 있는 소복의 딸이었다.소복의 딸이 원래 무슨 이름이었는지, 그는 이미 기억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소복이 부상 자리에 오른 뒤, 딸의 이름을 소봉으로 새로 지었기 때문이다.소복의 꿈은 언제나 직설적이었다. 소봉의 이름은 '소가에서 나온 봉황'이라는 단도직입적인 뜻을 담고 있었다.소봉은 아버지 소복과는 달리 성격이 반듯하고 강직했다. 당시 그는 온갖 일로 정신이 없어 남녀 간의 감정 따위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사모의 감정보다 그에게 나라가 더욱 중요했었다.하지만 황제로서, 그도 후사를 마련하는 것이 북당 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그에게 사모의 정에 대해 조금 느낀 적 있는지 묻는다면, 아마도 소가의 셋째 딸, 소낙연의 이름을 들었을 때이다.다만 그도 그녀의 이름만 알고 있었을 뿐, 나중에야 소낙연이라고 자칭했던 여인이, 사실 그의 형수인 라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 시절
그렇게 그들은 만취해 하늘을 이불 삼고 땅을 침대 삼으며, 마치 처음 전장에 나섰던 그 시절로 돌아간 기뿐을 느꼈다.그 시절에는 전쟁이 치열해, 종종 땅바닥에 몸을 웅크린 채 잠을 청하곤 했다. 여섯째는 당시에 항상 설사를 했었다. 셋이 몰래 전장에 나가려 했기에, 선생과 형수를 속이기 위해, 스스로 배탈을 자초한 후, 돈을 조금 챙기고는 전장으로 향했었다. 전쟁터에서 정말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다들 마음속으로 두려움이 가득했었다. 가난을 제외하고, 죽음보다 무서운 것은 없었다.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하지만 시간이 지나, 그러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적군이 승전가를 부르며 전우를 죽이고, 나라를 침탈할 때, 그들은 한 번도 죽음을 생각해 본 적 없었다.죽음에 관해 생각한다고 해도, 죽더라도 이 땅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뿐이었다.그들은 그렇게 잠에 들었고, 꿈속에서 막 즉위하던 시절로 시간여행을 떠났다.숙왕부도 여전히 그대로였고, 적성루는 인파로 붐볐으며, 전쟁으로 인해 찢어지게 가난했다. 휘 형과 형수는 대주로 빚을 갚으러 갔다. 북막과의 전쟁을 위해 대주의 30만 대군을 빌려왔지만, 갚을 돈이 없어 휘 형을 인질로 넘겼다.휘 형이 떠난 후, 조정은 서출의 어린 새 황제를 신경 쓰지 않았다.그들은 조정에서 대신들과 첨예하게 대립해야 했고, 매번 언쟁 후에는 식은땀으로 흠뻑 젖은 채, 어서방에 돌아가 주저앉곤 했다.즉위할 때 휘 형은 최선을 다하면 좋은 황제가 될 수 있다고 격려해 주었다.그래서 그도 그렇게 믿었지만, 막상 황위에 올라보니 전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때로는 있는 힘껏 버텨도 소용없었다.하지만 퇴로 또한 없었다. 휘 형이 말했듯이, 퇴로가 없는 것이 오히려 가장 좋은 길이었다. 두 눈 질끈 감고 힘껏 돌진하다 보면, 결국 승리하게 된다.다행히 조정에 그들을 도와주는 이들도 있었다. 장 대인과 소복이 큰 도움을
그들은 사생활을 모조리 보여주는 것 같아, 팬들이 따라오는 것을 막았다.하지만 팬들은 놀랄 만큼 열렬한 애정을 보이며 기어코 그들 뒤를 따랐다.그 모습에 다들 처음엔 못마땅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이해하기로 했다. 모두 예전에 많은 사람이 따르고, 시중을 받으며 전성기를 가졌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익숙하기도 했다.어쨌든, 그들은 지금 행복하게 차를 몰며 독고 도로를 달리며 아름다운 풍경을 마음껏 만끽할 수 있었다. 팬들도 그들의 모습을 기록했다. 다투기도 하고, 술을 마시며 농담을 주고받고, 무술을 연습하는 모습 등, 그들의 사소한 순간들 모두 영상으로 편집되어 올라갔다 .그리고 곧 사람들은 퇴직 여행 계정에 한 명이 아닌, 세 명이 함께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상에 등장한 사람은 '십팔매'라 불렸는데, 많은 네티즌이 그 이름을 듣자마자 웃음을 터뜨렸다.얼굴에 약간의 여드름 자국이 있고, 항상 무표정으로 자기를 과인이라고 부르는 노인은 '여섯째'라 불렸다. 비록 엄숙해 보이지만, 실은 장난기가 많아 두 사람을 몰래 놀리고는 입을 막고 웃기도 했다.항상 핸드폰으로 독서하는 노인은 '주대'라고 불렸다. 박학다식하며, 말할 때마다 고사성어를 인용해, 십팔매와 여섯째가 싸울 때 몇 마디로 갈등을 풀어낼 정도로 인품이 뛰어났다.팬들은 이들의 이름만 들어도 웃음이 터질 지경이었다.그리고 그들의 대화를 듣고, 어릴 때부터 함께해왔고,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함께 여행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많은 사람들이 깊이 감동하였다.그렇게 어느 날 밤, 그들은 야외에서 술을 마시고 반쯤 취한 채, 바닥에 누운 채로 별이 가득한 하늘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이 장면 역시 팬들에게 촬영되었다.늘 털털한 십팔매는 두 손을 머리 뒤에 괴고 은하수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감탄하며 말했다."우리 정말 많이 늙었네. 앞으로 몇 년이나 더 살 수 있을까?"여섯째가 그의 머리를 한 대 가볍게 쳤다."길 위에서는 불길한 말 금지네."십팔매가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