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문호는 오주부에서 한 달도 채우지 않고, 보름 만에 먼저 경성으로 돌아왔다. 반면 왕강은 오주부에 남아 현지 실질 조사와 부지 선정을 하며 호부에서 은자가 내려오는 대로 바로 행동에 옮길 수 있게 철저히 준비했다.우문호가 경성으로 돌아가자마자 처음 한 일은 상대천의 누명을 벗겨주는 것이었다. 상대천 외에 사건에 관련된 다른 관리도 다시 한 번 일제 조사를 거쳐 재능이 있고 헛된 야심에 동조하지 않았던 자의 누명을 모두 벗겨주었다.취월은 태자를 모함한 죄로 인해 경조부에 압송해 하옥했으며, 징역 6개월을 선고해 일벌백계로 삼았으나, 그 일로 태자는 오주부에서 원 선생이 화낼까 봐 노심초사했던 것을 생각하면 여전히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래서 취월에게 3개월의 형량을 추가했다.화류계 병이 돈 사건은 관리들이 도무지 검사를 받으러 가지 않아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고발하는 자에게 현상금을 걸었는데, 병에 걸린 기생과 관계를 맺은 자가 누구인지 아는 자는 무조건 상금을 주고 익명으로 고발할 수 있으며, 고발자의 신분은 절대로 외부에 공포되지 않는다. 이렇게 삼엄하고 신속한 조치를 통해 병에 걸린 관리는 전부 파면될 수 있었다. 그 중에는 태자의 작은 조정에 있던 관리도 있었으나 냉정하게 파면시켰다.태자는 어사대를 다시 가동해 신하들과 조정을 감찰해 조정에서 임명한 관리든 친왕과 군왕이든 규정을 어기면 전부 탄핵하도록 했다.이렇게 대대적인 소탕 후 탐관오리가 싹 다 조사해서 반드시 처벌할 것이라고 큰 소리치자 관아에서는 긴장감만이 맴돌았다. 명원제는 냉정언에게 태자의 이번 대대적인 조치가 지도자의 풍모로는 충분하지만 다소 지나친 감이 있다고 했다. 탐관오리라는 직책은 경성의 관리들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고 지방 관리도 해당되기 때문이었다.냉정언이 명원제의 말을 듣고 살짝 웃으며 답했다. “폐하, 탐관오리를 정리해서 척결하는 일은 지지부진해서는 안 됩니다. 지지부진한 건 엄밀한 의미로 장려하는 거나 다름 없으니까요. 탐관오리들은 처벌은 그다
사실 원씨 집안에서 일찌감치 산파를 구해 며칠을 초왕부에 가서 살게 했다. 그런데 산파가 이러면 안된다 저러면 안된다 잔소리를 해대니 사식이는 귀찮아져 산파더러 일단 돌아가라고 하고 출산이 임박하면 다시 부르겠다고 했다. 태자비가 있으니 사소한 문제는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오늘, 이렇게 바로 낳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원씨 집안에 알리자마자 산파가 달려왔고 원씨 집안 사람과 원용의도 앞다투어 도착했다. 원노부인은 필요한 것들을 챙겨서 조금 있다가 온다고 했다.산파는 태자비가 회임했다는 말을 듣고 산실에 들어오지 않는 편이 좋겠다고 했는데, 검사했을 때 사식이의 태아는 안정적이였고 위치도 문제 없었고, 사식이는 무공을 했던 사람이기에 아이도 문제없이 나을 게 틀림없었다. 그래서 원씨 집안 사람은 밖에서 기다리기로 했다.서일은 관아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가 열이가 와서 사식이가 아이를 낳으려고 한다는 말을 전해 듣자마자 다리가 부러져라 미친듯이 달려 초왕부 문 앞에 도착해서야 퍼뜩 자기가 왜 말을 타고 오지 않았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로 모두가 정신 없는 상황이였다. 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바로 대문 앞까지 바로 달려갔으나 문 앞에서 막으며 사식이를 아예 보지도 못하게 했다. 속이 타서 발을 동동 구르며 아직 안 낳았으니 들어가 볼 수 있는 거 아니냐며 마구 소리쳤다.서일이 사식이를 끔찍하게 사랑하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로 원 부인이 나서서 진정시켰다. “조급해하지 말고 여기서 기다리게. 조금만 있으면 곧 나올 거야. 사식이는 몸이 좋잖냐.”“장모님, 들어가서 한 번만 보면 안 될까요? 딱 한 번만이요!” 서일이 애처롭게 애원했다.원경릉도 따라서 애원했다. “저도 한 번만 보게 해 주세요. 사식이도 서일이 있어야지 안심 할 수있을 거예요.”원 부인은 태자비까지 나서서 애원하고, 자신의 사위 이마가 땀으로 흥건한 것을 보자 생각이 바뀐 듯 말했다. “좋아, 들어가봐, 하지만 너무 오래 있지는 말.... 아니 이 사람들 어디 갔어
사식이가 안에서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못 참고 소리를 마구 지르자, 서일은 식은땀이 흐르고 심장이 찢어질 듯해서 머리를 쥐어뜯으며 연신 입으로 중얼거렸다. 원경릉이 자세히 들어보니 제발 도와달라고 신께 빌고 있었다.원경릉은 서일의 모습이 웃겼지만 비웃지 않고 위로했다. “걱정하지 마요, 엄마는 강한 법이니까. 잘 버텨낼 거예요.”그러자 서일의 눈가가 붉어졌다. “앞으로 애 다시는 안 낳게 할겁니다. 다시는 안 낳을 거예요. 태자 전하는 진짜 악당이에요. 태자비 마마께서 이렇게 많은 아이를 낳게 하시다니, 정말 너무 비참해요.”뭔가 이 말은 좀 아닌 것 같지만 서일스러웠다.서일은 바닥에 털썩 앉아 두 손으로 떨리는 두 다리를 지탱하며 계속 중얼거렸다. “앞으로 사식이가 뭐라고 하든 절대로 반박하지 않겠습니다. 절 때리든 욕하든 가만히 맞고 있을 거고, 시키는 대로 말 잘 들어서 기쁘게 해 주겠습니다. 그러니 반드시 아무 일도 없어야 합니다! 전 아무리 힘들어도 괜찮으니까 사식이한테는 제발 아무 일도 없게 해 주세요. 사식이가 이렇게 고통스러운게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사식이는 강한 여자예요. 다쳐서 제가 상처를 치료할 때도 입도 벙긋하지 않았는데, 얼마나 아프면 지금 이런 비명을 지르겠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이렇게라도 빕니다.. 사식이는 무사해야 합니다......” 바로 그때 사식이의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들리자 서일이 펄쩍 뛰어오르며 바로 문을 밀고 들어가 소리쳤다. “법도가 어쩌고 난 몰라. 같이 있을 거야!”서일의 위세는 잠시를 못가고 곧 바로 원 부인과 원씨 집안 다른 여자들에게 떠밀려 비틀대다가 바깥에 고꾸라졌고 그렇게 문은 다시 닫혔다.원경릉은 서일의 불쌍한 모습을 보고 영 아닌 것 같아 물었다. “상황이 어때요? 제가 들어가도 될까요?”원용의가 안에서 답했다. “들어올 필요 없어요, 원 언니. 사람은 충분하고 곧 나을 것 같아요.”원경릉이 말했다. “그래, 난 밖에 있을 테니까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불러.”안에
뜨거운 물을 가져다 깨끗하게 닦은 후 산실을 말끔히 정리하고 나서야 서일이 마침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서일은 마치 안개 속을 거닐 듯 허우적대며 애는 볼 생각도 못 하고 사식이에게 재빨리 다가갔다. 서일이 사식이를 끌어안더니 사식이의 피로한 얼굴을 보자 안쓰러워 눈물을 뚝뚝 흘렸다. 목이 메어서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그저 서글픈 목소리로 ‘사식아’ 라고 부르기만 했다. 사식이는 거의 탈진한 상태로 있다가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자 그제야 기운이 조금 되살아난 듯 했다. 방 안 사람들도 정신이 없어 아무도 아이를 안고 와서 사식이에게 보여주지 않아 사식이는 자기가 돼지 새끼를 낳았는지 원숭이 새끼를 낳았는지 알 수가 없었다.게다가 서일이 들어와 자신을 끌어안고 우니, 사식이는 그저 몸에 힘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만 들었다. 원경릉도 들어와서 함박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사식아, 어때?”사식이가 눈가에 눈물이 맺힌 채 쉰 목소리로 웃음을 지었다. “뭘 낳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서일이 제 아들이 된 것 같네요.”서일이 얼른 일어나 눈물을 닦고 사식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니, 내가 책임질 수 있어. 내가 당신 모......”서일은 그제서야 자신의 자식이 아들인지 딸인지 모른다는 사실이 떠올랐다.뒤를 돌아보니 원용의가 벌써 아이를 안고 와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제부, 사식이가 제부를 위해 금지옥엽을 낳아줬네!”서일은 사식이가 고생해서 낳은 아이를 가만히 쳐다 보았다. 비록 지금 서일 마음에는 사식이에 대한 안타까움만 가득했지만 어쨌든 아이를 보긴 봐야 했다. 주름이 쪼글쪼글한 얼굴에 콧잔등에는 누르스름한 얼룩같은 게 있는 못생긴 딸을 말이다. 사식이가 임신했을 때 태자가 딸을 좋아해서 서일도 막연하게 딸을 나으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지금 소원대로 딸을 얻었고 그래서 기쁘긴 기쁘지만 솔직히 가슴 아픈 게 더 컸다. 애는 한 번 쓱 보고 다시 사식이 곁으로 가고 싶었다. 원경릉이 아이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예뻐, 크면 사식이처럼
서일의 이름 후보를 듣더니, 원경릉은 차라리 자신의 복덩이의 이름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일이 아빠가 되었다는 소식이 순식간에 온 초왕부에 퍼지며 초왕부 사람들이 전부 와서 축하 인사를 전했다. 원 부인은 이전에 준비해 온 현금 봉투 한 무더기를 탁자위에 쏟아 놓고 누가 오든지 전부 동일하게 하나씩 나눠주었다.우리 떡들과 쌍둥이가 십황자를 데리고 와서 현금 봉투를 받았는데 십황자가 봉투를 쥐더니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다. “나도 원래 여동생이 생길 거였는데.”그러자 만두가 주먹을 휘두르며 무섭게 말했다. “또 어리숙한 척 했다간, 내가 가만 두나 봐!”찰떡이도 못 참고 한마디 보탰다. “딸을 낳으셨다니 이 얼마나 기쁜 일인데, 울긴 왜 울어? 예의 없기는 정말. 나중에 탕대인한테 다 이를 거야. 찰싹 때려주라고 해야지!”탕양은 지금 십황자를 지도하는 전권을 책임지고 있는데, 십황자는 냉정언 얘기를 전혀 알아듣지 못해 탕양이 기초부터 가르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탕양은 상당히 엄격한 편이라 십황자가 황자의 신분인 것을 상관하지 않고, 교활하고 이기적으로 굴면 무조건 엄히 벌해서 십황자는 탕대인이란 세글자만 들어도 자기도 모르게 움찔했다.울음소리가 뚝 그치자 세 조카들이 십황자를 초왕부쪽 작은 마당으로 끌고 갔다.우문호도 이부 관아에서 서둘러 탕양과 앞다퉈 돌어왔다. 우문호는 축하 인사를 하고 홍바오를 집은 뒤 한없이 부러워했다. “서일 이 바보 같은 녀석, 바보는 바보의 복이 있다더니 정말로 천금처럼 귀한 딸을 얻었구먼.”“분명히 원하는대로 되실 거예요. 태자 오빠!” 원용의가 이제는 우문호를 무서워하지 않고 웃으며 앞으로 나와 축복해 주었다.“고마워. 만약 진짜 그렇게 되면 반드시 너한테 엄청난 선물을 주고 우리 조카에겐 금 젓가락 한 쌍을 선물하도록 하지!” 우문호가 즐겁게 말했다.서일이 딸을 얻은 것에 우문호는 부럽기도 하고 웬지 모르게 질투하는 마음도 들었다. ‘서일 이 녀석이 이렇게 엄청난 복을 받다니.. 서일이 어떻게 장인
사식이와 서일이 소원대로 딸을 낳았다는 소식이 온 경성에 날개 단 듯 퍼져서 다음날에도 여러 왕비들이 축하해주러 초왕부로 찾아왔다.사식이와 서일도 초왕부 사람으로 이번 경사는 물론 초왕부의 경사지만 왕비들은 축의금 대신 각자가 만든 배냇저고리를 가져왔다.미색은 특히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는데 사식이와 자신이 예정일이 비슷해서 사식이가 출산했다는 것은 곧 자기에게도 바로 닥칠 일이란 뜻이었기 때문이다. 미색은 사식이 방에 들어가자마자 아이를 보고 속으로 감탄했다. ‘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못생긴 여자애가 있을 수가 있어.’ 하지만 입으론 칭찬을 마구 해댔다. “너무 예쁘다. 정말 서일을 쏙 빼닮았네.”서일은 어떤 의미로 보면 잘생긴 축에 끼지만 앞니 두 개가 빠져서 결국 못생긴 여자로 모두의 인상에 박혀있었다.그래서 미색이 서일을 닮았다고 하자 다들 속으로 짚이는 게 있어 살짝 수긍했다.이 말이 사식이에게는 약간의 상처가 됐다. 사실 막 낳은 뒤에 처음 아이를 봤을 땐 예뻤으나 자세히 몇 번 들여다보니 확실히 좀 못생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 부인은 식견이 있어서 달리 표현했다. “막 태어난 아이는 다 이렇게 못 생겼어. 처음에 황태손들도 막 태어났을 때 이랬잖아? 하지만 아이를 못생겼다고 하지 않는 건, 생후 한 달을 꽉 채운 뒤에 눈매와 이마, 볼에 살집이 생기면서 예뻐지기 때문이야.”그러자 다들 너도나도 나서서 요 부인의 의견에 맞장구를 치며 사식이를 위로했다.사식이도 황태손이 태어나던 때를 떠올렸는데 그렇게 못생기지 않았었다. 하지만 분명 지금처럼 잘 생기지도 않아서 한 달을 꽉 채운 뒤부터 갈수록 잘 생겨지기는 했다.사실 사식이의 아가가 진짜 못생긴 건 아니었다. 신생아라 코에 황반이 있고 얼굴이 빨간 게 마치 막 탈피한 뒤의 피부 같았으며 하얗게 백태가 낀 건도 아직 씻어내지 못했을 뿐 천천히 다 떨어져 나간다.만두와 형제들이 보고 싶다고 찾아와도, 애들은 들어오는 거 아니라고 기 상궁이 안 들여보내줘서 아가를 안고 나오기를 기다렸다.
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 “태자 전하께 이름 지어달라고 하지 않는 편이 좋을 걸, 수준이 서일이랑 별 차이 없거든.”“근데 태자 전하께서 지금은 위태부와 학문에 정진하고 계시잖아요.” 사식이는 태자에 대해 큰 기대를 품고 있는 모양이라 잠시 후 다시 원경릉에게 물었다. “아니면, 혹시 원 언니가 지어주는 건요?”원경릉이 말했다. “이름을 짓는 건 말야, 상당히 깊은 조예가 필요해. 아이의 사주팔자를 보고 거기에 오행을 대입하더라고. 무슨 금톡수화도 같은 거 있잖아. 내 생각에는 사식이 할머니께 지어달라고 하는 게 낫지 않을까?”“친정에서 이름을 붙여주는 건 별로 좋지 않으니 위태부에게 가르침을 달라고 하자.” 손왕비가 말을 보탰다. “위태부 속도로는 아마 일 년이 훨씬 넘어야 하나 나올 걸요.” 원용의가 웃으며 말했다.“괜찮아, 서일에게 우선 아명 먼저 지어달라고 하면 되지.” 원경릉이 말을 하면서도 웃음이 나왔다. 어제 무슨 국수가 어쩌고 교자가 어쩌고 하는 얘기를 들었던 게 기억났다. 그래서 결국 뭘로 정해졌을까?사식이도 웃으며 말했다. “아명을 붙이기는 했어요. 사탕이라고...”“사탕? 진짜 듣기 좋은데!” 원경릉은 확 마음에 들었다. 다들 사탕이란 이름 진짜 잘 지었다며 칭찬했다. “네가 지은 거야 아니면 서일이 지은 거야?”“서일이 지은 거예요. 어제 전 힘이 하나도 없어서 머릿속에 아무 생각도 안 나더라고요. 근데 서일이 무슨 국수 어쩌고 한 떼거리 불러 보더니 마지막에 뭐가 번뜩였는지 사탕이라고 지었어요. 저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사식이가 미소를 지었다.원용의도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하며, “이 이름 우리 딸이라 비교해도 나은 거 같은데!”“서일이 이렇게 좋은 이름을 지을 줄 몰랐네. 서일이 붙인 이름은 썩 잘 어울리는 것 같아. 전에 우리 떡들 이름도 서일이 지어줬지, 아마?” 요 부인이 말했다.“그러니까요, 이런 데는 쓸모가 있다니까요.” 사식이가 어깨가 으쓱했다.확실히 장점이라곤 찾을 수 없지만 유독 이 부분은 그래도
사탕이가 태어난지 사흘째, 축하 행사는 더 성대하게 치러졌다. 원씨 집안은 전에 원용의에게 했던 대로 사식이에게도 전답과 점포를 보냈고 사탕이에게는 부동산을 하나 줘서 사탕이는 태어난지 불과 사흘만에 꼬마 복부인이 되었다. 우문호도 사탕이를 얼마나 귀하게 여기는지 그렇게 인색한 사람이 사탕이에게 금 그릇과 금 젓가락을 선물했다. 금 그릇과 금 젓가락을 주는 것은 아이의 대부를 맡겠다는 뜻이기에 금 그릇과 금 젓가락을 사식이와 서일에게 주었을 때 서일이 털썩 바닥에 무릎을 꿇고 정식으로 우문호에게 절을 올리며 감사 인사를 건넸다. “소신, 사탕이를 대신해 대부께 큰절 올립니다!”서일 본인조차 태자를 이토록 존중한 일이 없었다.사식이도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원경릉에게 말했다. “태자 전하와 원 언니가 이렇게 사탕이를 좋아해 주실 줄 몰랐어요.”원경릉이 부드럽게 말했다. “넌 날 위해 초왕부에 와 줬고 서일과 혼인을 했잖아. 그러니까 내가 사실 반쯤은 중매를 선 거나 마찬가지야. 게다가 사탕이는 초왕부에서 태어났으니 내 딸처럼 대할 거야. 네가 우리 떡들이랑 쌍둥이를 좋아하는 것보다 더.”그러자 사식이가 감격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좋아요!”우문호는 미소를 머금고 원경릉을 봤다. 지난 일을 떠올려보니 분명 서일이 사식이와 혼인할 수 있었던 건 다 원경릉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경릉이 아니었으면 사식이가 초왕부에 왔을 리도 없고 서일과 죽이네 살리네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사실 사식이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원경릉 덕에 운명이 바뀌었다. 물론 운명이 바뀐 게 반드시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적어도 모두 가장 좋은 삶을 살고 있다. 떡들과 쌍둥이가 사탕이를 보고 싶어서 안달하는 바람에 원경릉이 사탕이를 안고 응접실로 가 아이들에게 보러 오게 했다.원경릉이 아이들에게 당부했다. “앞으로 사탕이는 너희들 여동생이야.”다섯명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며 신기한지 눈을 빛냈다. 경건한 자세로 초왕부의 새로운 구성원을 뚫어지게 바라봤다.‘이 아이가 바
우문호 일행은 강북부로 향하는 내내 북방의 풍경과 풍속을 경험했다. 그로 인해 속도는 매우 느리긴 했지만 말이다.그날 밤, 우문호는 갑자기 악몽에서 깨어나 온몸에 땀을 흘리며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그의 얼굴에는 공포가 가득했다.그러자 원경릉이 벌떡 일어나 그를 껴안으며 물었다.“무슨 일이오? 악몽을 꾼 것이오?”우문호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아직 날씨가 덥지 않은 데다가 북방에 있어 오히려 날씨까지 쌀쌀했기에, 그는 아직도 악몽이 생각나는 듯, 창백한 표정을 지은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꿈에서 셋째 형님이 피투성이인 채 죽어가고 있었소…”원경릉은 그저 꿈이라 생각하고 위로해 주려 했지만, 이내 우문호의 강한 감응 능력을 떠올렸다. 갑자기 나타난 이 꿈이 형제간의 영적 감응일지도 몰랐기 때문이다.우문호도 점점 불안한 생각에 빠졌다.“강북부가 비록 평온해 보여도 사실 북당에서 가장 복잡한 곳이오. 온갖 사람들이 섞여 있고, 북막도 호시탐탐 노리고 있네. 게다가 셋째 형님도 무모한 사람이니, 진짜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지 걱정되오. 원 선생, 어서 빨리 가야겠소.”원경릉이 서둘러 옷을 입으며 말했다.“아니, 내가 먼저 가겠소. 정말 상처를 입었다면, 내가 가야지 도움이 되지 않겠소? 게다가 난 빨리 갈 수 있잖소.”“좋소. 그럼 먼저 가시오. 우리도 곧 출발하겠소.”우문호는 너무 생생한 꿈 탓에, 더 이상 천천히 갈 수 없었다.“사람을 불러야겠소.”원경릉은 재빨리 옷을 입은 후, 우문호에게 포옹하고 이마에 입을 맞췄다.“먼저 가겠소.”“조심하시오.”우문호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 원경릉은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원경릉이 사라지자마자 우문호는 방 문을 두드리며, 출발하자고 소리쳤다.우문호의 소리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이 밤중에 출발이라니, 무슨 큰 일이 생긴 걸까?이때 수보가 겉옷을 걸치고 나오며, 우문호의 팔을 잡고 물었다.“무슨 일입니까?”우문호가 답했다.“나도 모르네. 하지만 셋째 형님에게 무슨 일
스무 명이 넘는 자 중 단 한 명만 생포하고 나머지는 전부 섬멸되었다.안왕은 재빨리 위왕의 혈을 눌러 지혈한 후, 중상을 입은 위왕을 데리고 저택으로 돌아왔다. 먼저 의원을 찾으러 간 사람이 있었기에, 의원은 이미 저택에 도착해 있었다. 이때 안왕이 피투성이가 된 채, 의원의 옷깃을 움켜잡았다.“살리시게, 살려야 하네. 꼭 살아야 하네.”의원이 바로 약상자를 내려놓으며 말했다.“진정하십시오.”의원이 위왕의 옷을 가위로 자르자마자, 상처가 바로 드러났다. 다행히도 먼저 지혈한 덕분에 저택까지 돌아올 수 있었다.하지만 심각한 부상 상태와, 깊은 복부의 자상 때문에 장기를 다친 것으로 판단한 의원은 간단한 처리를 마친 후, 안왕에게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소인의 의술이 부족한 탓에, 치료를 감당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경성에서 다치셨다면, 희망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강북부는 의료가 낙후된 지역이다. 비록 혜민서를 설립한 이후 의사를 집중적으로 양성하긴 했지만, 경성에 비하면 여전히 많이 부족했다.안왕이 숨을 헐떡이며 눈에 핏줄을 세우고 소리쳤다.“중상을 입었는데 어찌 도성으로 돌아가란 말인가? 긴 여정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은가?”의원이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그것도 참 문제입니다. 황실 친왕이 자금단을 가지고 계신다고 들었는데, 혹시 저택에 있습니까?”“없네!”안왕은 위왕의 호흡이 점점 미약해지는 모습을 보며 절망감에 휩싸여 털썩 주저앉았다.“내가 갖고 있던 자금단은 이미 먹은 지 오래된 것이네.”“경성… 경성으로…”의식을 잃은 위왕은 그저 경성이라는 말만 중얼거렸다.안왕은 눈물을 닦으며 무릎을 꿇었다.“형님, 조금만 더 버티십시오. 의원이 약을 썼으니, 황후가 오실 때까지 며칠만 버티십시오.”심각한 상황이니, 경성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돌아가려면 최소 일주일 이상은 걸리지만, 황후는 아마 사흘 안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경성으로……”위왕은 의식을 잃기 전까지 계속해서 경성을 찾았다. 그곳은 그가 너무
위왕은 마음속에 또 하나의 걱정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다섯째가 곧 강북부에 오는 것이었다. 비록 이 일은 소문내지 않았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순행했으니, 소문이 새어나가게 마련이다.설령 그가 강북부에 온다고 밝히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의 최종 목적지가 강북부라는 것은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북막인들이 다섯째에게 해를 가하려는 것은 아닐지 걱정되었다.아무래도 단 한 순간도 북막인의 야심은 멈춘 적 없었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는 방심하지 않고, 허점을 찾아내겠다는 결심을 다지며 이들을 감시했다. 확실한 증거가 없는 어디까지나 본인의 추측일 뿐이기에, 그는 이 일을 아직 넷째에게 말하지 않았다. 섣불리 말을 꺼냈다가, 그들이 진짜 금나라 상인이라는 것이 밝혀지기라도 한다면, 두 나라의 사이만 영향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비록 무장이지만, 외교적인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아주 작은 불씨라도, 마음먹은 자가 부추기면 걷잡을 수 없는 큰불이 될 수 있는 법이기에, 섣불리 행동해서는 안 되었다. 그리고 감시 끝에 마침내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 처음엔 열댓 명 정도였던 이들 무리는 이틀 사이 스무 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새로 온 자들은 앞선 사람들과는 다르게, 군인이라기보다는 강호 인사의 분위기를 풍겼으며, 무공 또한 약하지 않아 보였다.위왕은 경계심을 품고, 밤새 직접 사람들을 이끌어 조사에 나섰다.앞서 만났던 금나라 사람들은 여전히 질문에 순순히 응했지만, 새로 온 강호인들은 거만한 태도를 보였다. 위왕의 질문에도 그저 시큰둥한 태도만 보이며 북당인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위왕은 건방진 그들의 태도에, 몇 마디 호통을 쳤고, 그 모습에 강호인들은 참지 못하고 바로 위왕에게 손을 쓰려고 했다.위왕은 조사하기 위해 온 터라, 데리고 온 부하도 단 몇 명 뿐이었기에, 상대가 일반적인 조사에도 이렇게 쉽게 공격하려 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앞서 온 금나라인들이 말리려 했지만, 그들이 손을 쓰자, 사태가 수습되지 않을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남강에 며칠 머무는 동안, 아홉째와 함께 남강의 풍경을 둘러보고, 북강에도 다녀왔다.지금 북강 백성들은 조정에 대한 소속감이 아주 강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남강을 다스린 정책이 정말 훌륭했기에, 백성들 모두 좋은 날을 보낼 수 있었기에, 자연스레 황제에 대한 존경심도 깊어진 것이었다.황제와 황후가 지나가는 곳마다 백성들은 길가에 모여서 열렬히 환영했다.그들은 이번 순행 내내 오계부에서 신분을 밝힌 것 외에는 항상 미복으로 다녔다. 하지만 남강에서 우문호는 황제의 신분을 드러냈다.우문호는 백성들의 신뢰와 경외심에서 큰 성취감을 느꼈고, 매우 기뻤다. 그는 줄곧 원경릉의 손을 잡고 얼굴에 웃음을 띠고 있었다.과거 북강은 방어를 위해 무술 함정이 많았지만, 이제는 모두 제거되었다. 그리고 많은 백성이 산 아래 평원으로 이주하여, 새로운 마을을 이루었다. 정화를 구하러 왔을 때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기쁜 마음과 함께 우문호는 감사함도 느꼈다. 이것은 결코 그 혼자만의 공로가 아니기 때문이었다.남강을 떠나야 하는 날이 다가오자, 원경릉은 만아와 여덟째를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곧 변성으로 가야 했기에, 아쉬움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잠시였다. 남강을 벗어나자마자, 그녀는 아이들과 만날 생각에 들뜨기 시작했다."원 선생, 그들에게 말했소?"길에서 우문호가 물었다."아니, 몰래 가는 것이오."원경릉은 웃으며 말했다."교활하구먼. 그래도 만두가 이미 알려줬을 수도 있을 텐데."지금은 경단과 찰떡, 그리고 계란이 셋만 그곳에 있었다."셋이 다섯 개 성을 다스린다니, 분명히 힘들 것이오."원경릉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그렇소. 그래도 예전보다는 나아졌네. 이제는 태평해 보이니."우문호도 아이들이 안쓰러웠다."이번에 가서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충분히 쉬게 해줘야 하오."사실 성하나를 다스리는 것과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점 없이, 매우 힘든 일이었다.한편, 강북부에서는 최근 강북부 무구산 주변에 신비한 상단
그러자 홍엽이 그를 바라보며 멈칫했다."자네가 중매를 서겠다고?""안 되오?""말도 안 되는 소리 말게. 자기 혼사도 해결 못 하는데 중매는 무슨. 난 못 믿네!"냉정언이 어깨를 으쓱였다."못 믿으면 말고. 이래 봬도 내가 명문가 아가씨나 협녀를 많이 알고 있소."홍엽은 손으로 그의 목을 움켜잡으며 소리쳤다."알고 있는 아가씨가 있으면 진작 말했어야지! 경성으로 돌아가자마자, 당장 소개해 주시게!"냉정언은 웃으며 그의 손목을 옆으로 밀어냈다."중매 값이 워낙 비싸서. 십만 냥 아니면 쉽게 안 나서오.""돈이 대수요?"홍엽이 교활하게 웃으며 말했다."우린 지금 한집에 살고 있소. 그러니 자네가 돈을 어디에 숨겼는지, 다 알고 있네. 그동안 꽤 많이 챙겼으니, 돌아가서 돈은 두둑이 주겠네."그 말에 냉정언이 깜짝 놀랐다."내 돈을 노리고 있었소? 진짜 도둑을 집에 들였군! 늙어서 쓸 돈이네, 그 돈을 혼사에 쓸 생각은 하지 마시오!""명여가 우리를 챙길 테니, 그렇게 쩨쩨하게 굴지 마시오."홍엽이 새침하게 말했다."나도 돈이 많소. 다만 남의 돈을 쓰는 게 훨씬 재밌을 뿐이네."냉정언이 숨을 들이쉬었다."안 되겠네. 경성에 돌아가자마자 자네를 쫓아내야겠소."홍엽이 말했다."쫓아낼 수 있으면 쫓아내 보시게. 게다가 자네가 나를 청할 때, 뭐라고 했는가? 얼마든지 살아도 된다고 했잖소. 이제 와서 후회하는 것이오?""이야, 홍엽, 어찌 이리 뻔뻔스러워진 것이오?""뻔뻔하지 않으면, 어찌 당신 집에서 이렇게 공으로 먹고살 수 있겠나?"홍엽은 크게 웃으며 그의 어깨에 팔을 얹었다."수보, 신을 모시는 건 쉬워도 보내는 건 어렵다고 하잖소. 이미 집안에 들어갔으니, 쫓아내기는 힘드네. 후회해도 소용없소. 수보의 등골 빼먹다 죽을 것이오. 관에 수의까지 얻어 쓸 생각이라, 죽으면 자네가 장례식까지 마련해줘야 하네."수보는 그를 한참 바라보다가, 애써 이를 악물며 말했다."진짜 뻔뻔하오!"홍엽은 박장대소했다.멀리 복도 끝에
“예, 그립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놀고 싶기도 합니다.”그는 말하다가, 갑자기 신이 난듯 몸을 들썩이며 말을 이어갔다.“여긴 정말 재미있습니다. 아홉째와 나가면 큰 산도 있고, 꽃도, 나무도 많습니다. 물고기도 많고, 사람도 많고, 뭐든지 엄청 많았습니다.”우문호는 웃으며, 못내 안쓰러움을 느꼈다. 예전에 그를 궁 안에 가두고, 거의 밖으로 데리고 나가지 않았다. 게다가 다른 사람이 그를 데리고 나가는 것도 신경 쓰였다.“이곳이 마음에 들면, 좀 더 오래 있어도 된다.”우문호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예, 정말 좋습니다. 다만, 형님과 형수님이 그리웠습니다. 이렇게 오셔서 정말 다행입니다.”여덟째는 흥이 오른 상태로 그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어서 들어가시지요! 아홉째가 형님이 내일 오신다고 맛있는 음식을 많이 준비했습니다.” 그는 뒤돌아 원경릉에게 외쳤다.“형수님, 빨리 따라오십시오. 맛있는 거 많습니다.”미색은 웃으며 꾸짖었다.“이 무심한 녀석, 다섯째 형수님만 챙기고, 여섯 형수가 배고픈지는 묻지도 않는 것이냐?” 여덟째는 그제야 미색을 본 듯,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여섯째 형수님도 오셨습니까? 여섯째 형님도 오신 것입니까? 와, 너무 좋습니다!”“질투하다니?”원경릉은 미색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미소를 지었다.“여덟째는 너보다 나를 더 좋아하는 것이다.”“아유, 참!”미색은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여덟째는 바로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항상 그림과 책자를 선물하는 여섯째 형수님도 좋아했기 때문이다.그는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그... 그럼 같이 드시지요. 음식 많습니다.”“장난이다. 난 질투 안 해.”미색은 기쁘게 말했다.여덟째는 그제야 마음을 놓았고, 다들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원경릉이 만아에게 말했다.“정말 이곳에서 즐겁게 지내고 있구나. 예전보다 훨씬 활발해졌고, 말도 많이 하네. 이 모든 게 아홉째 덕분이다.”만아는 웃으며 말했다.“예, 둘이 시간이 날 때마다 밖으로 나가, 더
원경릉은 발끝을 들어 그의 뺨에 입을 맞추고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우문호는 그런 그녀를 와락 끌어안으며 말했다.“원 선생, 행복하오?”“행복하오.”“하하하. 지금이 아닌, 나와 함께했던 모든 날이 행복했냐고 물어보는 것이오.”“모든 순간이 당연히 행복하고, 기쁘오!”원경릉은 스스로를 자조하듯 웃었다.“나 같은 집순이가 이렇게 결혼생활이 행복할 줄 누가 알았겠소?”한때 그녀는 자신이 평생 결혼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고, 사랑 없는 삶도 부족함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그녀는 사랑을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었지만, 사랑은 사실 정말로 중요했다.산꼭대기에 앉아, 차가운 바람을 맞고 있었지만, 추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의 풍경을 눈에, 그리고 마음에 깊이 새기고 싶었다.그리고 함께 늙어간 후, 다시 천천히 되새기고 싶었다.영산에서 내려온 후, 그들은 다시 여정을 이어나갔다. 이번 목적지는 바로 남강이었다.명절이 지난 뒤, 아홉째는 여덟째를 데리고 먼저 남강으로 돌아갔다. 다들 그가 그곳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다.남강 땅은 오랜만이었다. 마지막으로 발을 디딘 건, 정화를 구하러 갔을 때였다.남강으로 가는 내내 홍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냉정언이 물었다.“남강에 가면, 못난이를 만날 것이오?”“만나야지.”홍엽이 답했다.“물론 만나야지!”못난이는 오랜 시간 그와 함께했던 사람이니, 만나야 했다. 못난이가 종종 편지를 보내오긴 했지만, 자기 상황은 거의 말하지 않았다.반면 아홉째는 편지에서 북강의 소식을 자주 전해주었다.지금의 남강은 어느 정도 통일되어 있었고, 북강과 남강도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었다. 그동안 이익 문제로 양측의 왕래가 더욱 빈번해졌다.아홉째는 편지에서 못난이가 북강의 민심을 얻었고, 성격도 예전보다 훨씬 밝아져,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하다고 전했다.홍엽의 마음엔 기대와 기쁨이 섞여 있었다. 그도 지금 잘 지내고 있으니, 못난이도 잘 지내길 바랐다.우문호는 남강에서 돌아온 후, 변방으로 갈
그 일을 떠올리자, 꿈에서 본 일이라 그런지 마치 얼마 전에 있었던 일처럼 느껴졌다.그때 그들은 죽을 만큼 힘든 소년들이었는데, 지금은 한없이 한가한 노인이 되었다.세월은 덧없이 흘러갔고, 그동안 그들은 많은 사람들을 잃었다.무상황은 자신의 황후였던 소봉을 떠올렸다.그들은 줄곧 전형적인 황제와 황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나라를 다스렸고, 그녀는 후궁을 다스렸다. 비록 그가 그녀를 괴롭히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많은 애정을 주지도 않았다.그렇게 평범하게 평생을 함께했지만, 그녀가 떠나는 날, 그는 마음속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간 듯한 슬픔을 느꼈다.평생 함께했던 사람이 자신보다 먼저 떠날 거라 생각하지 못했기에 더욱 아팠다.세 사람은 한참 동안 넋을 잃고 있다, 다시 길을 나섰다.유아독존과 관련된 일이 생각보다 커졌지만, 모든 소란은 결국 가라앉게 될 것이다. 모든 소문도 점점 사그라들기 마련이니, 그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세 사람이 여행하는 영상이 점점 유명해지면서, 유아독존은 더 심하게 비난을 받았다.현실에서 함부로 욕설을 내뱉으면 얻어맞을 수도 있지만, 인터넷에서는 당당한 명분이 있었기에 악성 댓글을 다는 자들은 마음껏 욕을 퍼부었다.그리고 어느 날, 추 어르신이 오래도록 인터넷의 댓글을 훑어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는 이내 해가 지는 장면을 찍어 짧은 영상을 올렸다. 그리고 영상에 한마디만 덧붙였다.“분쟁 없이, 오직 평화만 있기를.”그는 모든 다툼이 끝나길 바랐고, 누군가를 벼랑 끝으로 몰지 않기를 바랐다. 단지 말로만 승부를 겨루는 사람은 그들의 적이 아니기 때문이다.음... 무엇보다 적이 될 자격도 없었다!영상이 올라간 지 이틀 뒤, 유아독존은 마침내 사과 영상을 올렸다. 그는 질투와 시기로 무술을 모독한 것을 사죄했고, 은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직접 그들의 계정을 태그해 진심으로 사과했다.진심 어린 사과는 항상 용서를 가져오는 법이다. 그리고 악성 댓글을 달던 사람들도 마침내 욕설을 멈췄다.
삼대 거두는 늦은 시각이 되어서야 일어났고, 숙취에서 깨어나니, 이미 날이 밝아져 있었다. 그들은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아, 눈앞의 모든 것이 몽롱해 오늘이 무슨 날인지조차 모를 정도였다.태양이 서서히 떠오르며 하늘에 떠 있는 주황빛 구름은 점점 짙은 금빛으로 변했고, 금빛 가장자리에는 붉은색이 덧씌워져, 눈부시게 아름다웠다.소요공이 눈을 비비며 말했다."꿈을 꿨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동시에 그를 바라보며 이구동성으로 물었다."무슨 꿈을 꿨는가?""꿈에서 숭이가 사내에게 속았는데, 우리가 직접 나서서 복수를 해줬다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놀라서 동시에 숨을 들이켜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귀신이 곡할 노릇이네."말이 끝나자,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깜짝 놀라 외쳤다."자네도 꾼 것인가?""그렇네!""그렇네!""설마 우리 셋이 똑같은 꿈을 꾼 것이오?"소요공도 깜짝 놀랐다.그 일은 그렇게 중요한 일도 아니었고, 어떻게 된 일인지 가물가물할 정도로, 그저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만 어렴풋이 기억할 정도였는데, 꿈에서는 그 장면 장면이 또렷하게 떠올랐다.그리고, 이 꿈은 당시 엄청난 부담을 받고 있던 그들에게 정말 훌륭한 감정 해소가 되었다. 그들은 모든 고통과 억울함, 스트레스를 주먹질로 시원하게 풀어냈다.한편, 무상황은 자신이 황후를 소홀히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때 무슨 상황이었는지 기억하는가?"추 어르신이 흥분한 듯 말했다."물론 기억은 나네. 당시엔 소봉이가 궁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적성루 사람들을 많이 그리워했네. 게다가 나도 자네들과 어울리느라 바빠서 황후를 소홀히 했네. 그래서 적성루 상궁과 숭이를 궁으로 불러, 이야기를 나누게 했지."사실 기억이 가물가물했지만, 꿈속에서 다시 겪은 덕분에 자세히 생각났다.그때 어서방의 회의가 끝나고, 소복이 무심히 물었다."폐하, 황후 마마를 오랫동안 못 뵙지 않으셨습니까?"그는 소복의 말이 소봉을 보러 가자는 암시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