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경릉마저 상당히 감동했다. 이 힘든 길을 걸어온 본인들이 참 뿌듯해졌다. 80만 냥 지폐를 명원제 수중에 전하자 명원제가 30만 냥만 꺼내고 나머지는 전부 우문호에게 돌려줬다. “가져가, 보위에 오를 때 혼사를 치를 테니 체면을 살려야지. 국고나 내탕고의 은자 쓰지 말고.”황제의 황후 책봉례이므로 국고에서 은자를 지출해도 되지만 명원제는 황실 일은 국고의 은자를 최대한 사용하지 않았고, 우문호도 그러길 바랐다.우문호는 50만 냥 지폐를 들고 엉거주춤하게 말했다. “이건 모두의 효심을 아바마마께 표현한 것으로 소자는 받을 수 없습니다.”명원제가 단호하게 말했다. “가져가서 아내에게 좀 좋은 걸 사줘. 그동안 솔직히 너무 홀대했어. 태자비는 그럴 가치가 있는 사람이야. 원래 내가 자식들에게 50만 냥을 모아오라고 시킨 건 그중 일부를 네 혼사에 쓰고 싶어서였어. 전에 너한테 준 돈은 쓸 수 없으니까. 알겠느냐?”우문호가 고개를 저었다. “소자 받을 수 없습니다. 아바마마께서 이 은자가 필요 없으시면 소자가 형제들에게 돌려주겠습니다.”명원제가 기각 막혀 냅다 화를 냈다. “넌 머리에 두부만 들었냐? 저들은 은자가 안 부족해. 은자가 없는 건 너라고. 이건 내가 널 위해 하는 마지막 일이야. 넌 그냥 가져가면 돼. 네가 필요 없으면 짐도 며느리에게 내리도록 하지. 태자비를 더는 초라하게 하지 마라. 황실의 왕비가 누려야 할 부귀영화를 태자비는 한 번도 누려본 적이 없어. 오히려 매일 걱정 근심에 종종거리며 집안일과 나랏일을 생각해 왔지. 근데 너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우문호는 눈가가 뜨거워져서 꿇어앉아 감사 인사를 올렸다. “아바마마, 손자 원 선생을 대신해 감사드립니다.”명원제 얼굴이 그제서야 화색이 돌며 우문호를 일으켰다. “그럴 필요 없다네. 우리 우문씨 집안이 태자비에게 빚을 졌지. 태자비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해 주거라. 태상황 폐하를 구한 것을 시작으로 우리 우문씨 집안의 역량이 비로소 하나도 응집되기 시작했어. 짐도 태자비 영향을 받았
우문호가 이 일을 형제들에게 얘기하자 다들 은자는 이미 내놓은 것이니 아바마마께서 누구에게 주시든 자신들은 다시 가져갈 생각이 없다고 했다.명원제 말대로 안왕은 오히려 안색이 상당히 밝아진 것이 전에 근심하던 얼굴은 거의 없어졌다.그리고 우문호와 원경릉은 장모님 일행을 어떻게 데리고 올지 상의했다. 사실 경호로 편지를 보내 물어보면 되지만 우문호는 역시 직접 가는 게 좋겠다고 했다. 그는 이 일에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고 싶지 않았다. 특히나 서일은 믿음이 안 가서 혹시라도 문제가 생길까 걱정됐다. 그래서 탕양에게 만두를 데리고 다녀오라고 했는데, 만두가 경호를 통해 현대로 간 뒤 원경릉 가족 일행을 모시고 같이 오면 된다. 대관식까지는 아직 보름 남짓이나 남았지만, 휴가를 낼 수 있으면 좀 일찍 오고 만약 안 되면 만두가 거기서 며칠 더 머무루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여러 차례 사람을 시켜 집을 정리하고, 가구와 이불을 새것으로 바꾸고, 옷도 몇 벌 맞춰야 했기에 우문호는 요 며칠 상당히 긴장한 상태였다. 다행히 원경릉이 가족들의 치수를 대략 알아서 미리 사람을 시켜 만들도록 해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그리고 원경릉은 직접 숙왕부에 찾아가 태상황 일행에게 알렸는데, 태상황이 특히나 기뻐했다.전부터 그들이 혼례에 참석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곧 다가오니 상당히 기대되는 모양이었다.태상황이 소요공과 주 재상에게 기쁜 표정으로 말했다. “이번에 우리도 주인의 도리를 다 해야지. 잘 먹고 마시고 우리 북당의 자연과 인정, 신선한 문화에 견문을 좀 넓혀 드려야겠어.”원경릉이 이 말을 듣고 웃으며 말했다. “그 점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잘 준비할게요.”그러자 태상황이 고개를 연신 저었다. “네가 할 필요 없다. 이 일은 우리 셋이 하도록 하지. 어쨌든 너도 혼자 낯선 곳에 떨어져서 얼마나 무섭고 무력했을까. 너희들은 나중에 바쁠 테니 그분들과 동행하는 일은 우리에게 맡기거라. 웃음거리가 되지 않게 말이다.”원경릉이 방긋 웃었다. “제
“당연히 좋죠, 먹고 마시고 노는 거 전부 평남왕 은자로 쓰는 거니까요.” 주 재상이 웃으며 말했다.주 재상의 말에 이해하는 사람들 모두 듣자마자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샥!바로 그때 제왕이 초왕부로 들어서며 큰 소리로 위왕을 찾았다. “셋째 형, 동생 술 한잔 사셔야겠어요!”제왕의 목소리를 듣고 위왕이 복도에서 머리를 내밀더니 기대 가득한 눈빛으로 답했다. “잘 됐느냐? 정화가 뭐라 하였느냐?”“정화 군주께서는 아무 말씀 없으셨지만, 처리 수속에 협조해 주셨습니다. 이제 정화 군주는 경성에서 제법 돈 많은 부인이 되실 겁니다. 하하하!” 제왕이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위왕이 살짝 안도하더니 이내 안색이 환해졌다. “그거 잘됐네, 잘된 일이야!”위왕은 순간 눈물을 글썽일 뻔했다. 정화가 받아줬으니 이제 마음이 좀 편해진 듯 했다.“다섯째 형!” 제왕이 뒤를 돌아 우문호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기뻐서 소리쳤다. “셋째 형이 우리 술 사준데요. 어디로 갈까요?”우문호가 눈을 치켜뜨더니 퉁명스럽게 답했다. “안 가!”“안 간다고요?” 제왕이 팔꿈치로 우문호를 쓱 치며 유혹했다. “셋째 형이 사주는 게 얼마나 드문 일인데, 너무 체면을 무시하시는 거 아녜요?”우문호가 웃는 둥 마는 둥 하고 제왕에게 말했다. “그날 못 들었어? 탈탈 털어서 이제 50냥밖에 없다고 했잖아, 술값을 누가 계산할지 모른다고!”그러자 위왕이 화를 냈다. “이 쩨쩨하고 인색한 놈아, 공으로 몇십만 냥이나 벌었으면서 우리 술 한 잔도 못 사주는 것이냐?!”우문호는 쩨쩨하고 인색한 본색을 발휘했다. “그건 아바마마께서 제게 황후 책봉례 하는 데 쓰라고 주신 것입니다. 전 못 써요.”“어디 그렇게 궁상떨어 봐라, 책봉례를 할 때 대체 누가 너한테 축의금을 주겠느냐!” 위왕이 씩씩거렸다.제왕이 대범하게 상황을 중단 시켰다. “제가 살 테니 싸우지들 마세요. 한동안 같이 술 마신 적 없으니깐 둘째 형들도 부르고, 냉 대인이랑 홍엽, 구사도 부르지요.”안에서 원경릉이 이 말을 듣
하지만 황후의 상황에서 보면 걱정할 만했다. 이제 주 재상도 물러났고 주씨 집안은 조정에서 거의 아무런 영향력이 없는 데다가 자기 아들 하나는 바보고 하나는 멍청해서 차마 기댈 수도 없었다.법도에 따라서는 황후가 당연히 황태후가 되는 게 맞지만 문제는 태자에게는 죽은 생모 외에도 황귀비라는 어마마마가 있는 것이다. 황태후를 봉할 때 낳은 어미 하나, 자신을 길러준 어미가 또 하나 있는데 황후가 여기서 뭐가 될 수 있을까?더불어 이전에 원한 관계를 맺었던 일도 마음속에 남아 있었기에 황후는 원용의가 입궐해 병수발을 들 때 하소연을 했다. 만약 자신이 황태후로 책봉 받지 못하면 죽느니만 못하다며 말이다.원용의는 황후의 말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황후는 태자비에게 얘기하고 싶었던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황후가 하소연을 마치자 원용의가 조심히 입을 열었다. “며느리가 함부로 나설 수는 없지만 그리 걱정하실 필요 없으십니다.”황후가 원용의의 손을 잡았는데, 눈이 빨개져 금방이라도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내가 전에 그들을 홀대했던 것을 잘 안다. 허나 이제 전부 과거 아니느냐. 태자비는 절도 있고 뒤끝이 없는 자라고 해서 만 번은 두렵지 않다가도 또 이내 두려워지는구나. 너는 안 그러느냐?”원용의가 황후에게 말했다. “어마마마, 과거에 그들을 홀대하셨다는 것을 깨달으셨으니 지금 고치셔도 늦지 않았습니다.”황후가 놀라며 물었다. “어떻게 고친단 말이야? 내가 아랫사람에게 사과할 수는 없지 않은가.”원용의의 얼굴엔 미소가 있었지만 말투는 쌀쌀했다. “불안하시다니 사과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겁니다. 강산의 주인이 바뀌어 앞으로 이 북당 천하는 태자의 수중에 들어갑니다. 마마께서는 새 임금에게 사과하는 것이니 신분에 욕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사과하시면 태자도 과거 일을 다시 들추지 않을 것입니다. 안 그러면 소인배 불효자가 될 테니까요.”황후는 가만히 듣고 그녀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체면을 구기기는 싫었다. 또한, 엄격하게 따져보면 그
위왕은 골목에 서서 눈으로 아이를 데리고 가는 여자를 좇고 있었다. 그 여자는 소박한 옷을 입고 있었지만, 외모가 몹시 아름다웠다. 마침 살짝 허리를 숙여 맞은 편 아이와 얘기하고 있었는데, 온화하고 부드러운 기색이 물씬거렸다. 눈썹은 산줄기 같고 코는 오똑하며 분을 바르지 않았지만 맑고 아름다운 자태가 흘렀다. 하지만 눈빛만은 강인하고 신중해 보였다.그 여자를 바라보는 위왕의 눈빛을 보고 주 아가씨는 저 여자가 정화 군주라는 것을 순간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주 아가씨는 항상 정화 군주가 어쩌면 아주 뛰어나게 아름다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렇게나 단아하고 순결한 사람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마치 가슴에 강한 일격을 맞는 것 같았다.고요한 물 같은 정화 군주의 자태는 멀리서 봐도 한 눈에 띌 정도였다. 주 아가씨는 지금까지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바로 해 버리고, 가지고 싶은 것이 있으면 무조건쟁취하려고 노력했다.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이고, 포기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구분하지 못했다.하지만 그녀를 보자 이런 분위기는 절대 자신이 가질 수 없는거라 느껴 자신이 졌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주 아가씨는 위왕과 같이 가만히 정화 군주가 걸어가는 것을 바라보았는데, 그녀는 서서히 시야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고삐를 쥐고 있느라 말이 그 자리에서 뱅뱅 돌았다.위왕이 주 아가씨를 보고 앞으로 다가왔고, 주 아가씨는 위에서 그를 내려다봤는데 눈가가 붉어져 있었다. 그녀는 이 남자를 얻고 싶지만, 평생 불가능하다.위왕이 주 아가씨에게 말했다. “강북부로 돌아가거라. 그리고 나중에 할아버지 말씀대로 네 사람을 데리고 약도성으로 가. 이제 거기는 우리 북당의 영토이다. 넌 늘 자신이 남자와 다를 게 없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 했으니 어디 약도성으로 가서 모두가 보게 증명해 보던지!”주 아가씨는 차갑고 냉정하게 위왕을 보았다. “저한테 전하 조카를 위해 황무지를 개간하게 시키시고 싶으신
우문호는 위왕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다가 위왕을 끌고 서재로 들어갔다.위왕은 우문호에게 잡힌 옷 자국을 툭툭 털어 주름을 편 뒤 불만스럽게 얼굴을 찡그리고 말했다. “옷 찢어졌음 네가 물어내!”우문호가 위왕을 보고 한참 있다가 말을 꺼냈다. “변했어요. 형!”위왕이 자리에 앉더니 느긋하게 말했다. “변하긴 뭐가 변해? 예전에 가난했다고 해도 되지만 지금 가난하다고 하면 안 될 뿐인데?”우문호가 눈을 희번덕거리며 놀랐다. “그 얘기가 아니라 호명이가 그러는데 형이 주 아가씨한테 사람을 데리고 약도성으로 가라고 했다면서요. 무슨 뜻이죠? 엄청나게 달라붙어서 안 떨어진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런 주 아가씨를 약도성으로 뭐 하러 보낸 거예요?”위왕이 두 손을 무릎 위에 가지런히 두었다. “착 달라붙어서 안 떨어지는 집념으로 약도성에 가면 크게 쓰일 데가 있지. 약도성은 계란이가 분봉받은 도시로 앞으로 네가 계란이는 안 보낸다고 해도,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먼저 진주해서 호 대장군과 합을 맞추거나 서로 감독해야 해. 호 대장군은 주 아가씨의 적수가 못 돼. 왜냐하면 주 아가씨는 호비 마마와 성격이 똑같거든. 호 대장군은 이런 성정을 가진 사람을 안을 수 있어.”우문호는 의외라고 생각이들어 다시금 놀랐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요? 주 아가씨를 믿을 수 있다는 거예요?”위왕이 방긋 웃었다. “주 아가씨는 성격이 솔직하고 고집스러워서 죽을힘을 다해 매달리는 집념이 있지. 무언가를 위해서는 죽음도 마다치 않아. 이런 성격은 주 아가씨의 외할아버지를 닮았어. 내가 주 아가씨와 알고 지내면서 성격을 관찰한 결과야. 난 주 아가씨를 믿을 수 있어.”“주 아가씨 외할아버지가 누구신데요?” 우문호가 물었다.“오위진, 주 아가씨는 오위진의 막내 외손녀이면서 가장 사랑받은 사람이지.”“아, 그 사람이었어요?” 우문호는 오위진을 알고 있었다. 오위진은 이전에 대리시에 있다가 나중에 병부로 옮겨 안풍 친왕을 따랐던 사람으로, 나중에 태상황 폐하가 보위를 잇자 강북
며칠 전 직조처 사람이 디자인을 정하고 명원제에게 시안을 올렸다. 길복은 곤복, 곤룡포, 예복을 포함한 것으로 전부 바로 준비해야 했다. 편복은 길복과 달리 천천히 준비해도 되지만 강녕직조부는 서둘러 황제가 쓸 채색 비단, 능라, 망사, 비단실을 경성으로 보내기 위해 수백 명의 직조사가 밤낮없이 일하게 하며 반드시 길일 전에 새 황제와 황후의 길복을 만들어내도록 했다.이 일에는 내무부의 공이 제일 컸다. 회왕은 본래 마음만 있고 행동으로 안 움직이는 사람으로, 부임하고 지금까지 이렇게 큰 행사를 치른 경험이 없었지만 다행히 뒤에 미색이란 늑대파 이인자가 있었기에 잘 마루리 할 수 있었다. 미색이 막후에서 모든 일을 기획하고 늑대파가 빈번하게 출동해 미색을 위해 분주하게 뛰어다녔다. 채색 비단과 비단실을 신속하게 경성으로 운송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이들 덕분이었다.우문호와 원경릉의 의상 외에 황태손, 황손, 군주의 옷도 새로 짓기 시작했다. 황제가 보위에 오르면 먼저 태상황과 황태후를 책봉한 다음, 아이들 차례가 오기 때문이다.제왕의 경조부는 경성의 치안을 담당해 야간 통행금지를 필두로 순찰을 강화했고, 위왕도 가세해경성 각처의 객잔은 인명 조사를 실시해 수상한 사람은 일률적으로 경성에서 쫓아내며 제왕의 부담을 일부 덜어주었다.손왕의 홍려시도 바쁘게 귀빈 접대를 준비했다.순왕과 만아는 성 밖 일대를 순찰하며 의심스러운 자가 있는지 살폈고, 안왕까지 가만 있지 않고 집안 병사들을 데리고 각 마을을 조사하며 다녔다.그들과 반대로 우문호는 한가했다. 다행히 요 며칠은 나라에 별반 큰 일이 발생하지 않았고, 냉 재상과 홍엽이 죽이 잘 맞아서 조정의 업무 8~9할을 다 처리했으므로 우문호는 상소를 보며 비준이나 했다.귀빈 중에서 가장 먼저 당도한 것은 대주의 사자로 진정정 부부가 아들을 데리고 왔다.우문호 진정정 일행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홍려시의 손왕과 같이 나가 기쁘게 맞이하고는 그들을 바로 객잔에 묵게 하지 않고 서재로 불렀다. 우문호와 손왕은
한편, 밖에서는 원경릉과 근영 군주가 아이들과 함께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호두는 여동생이 태어난 걸 들은 뒤라, 뛸 듯이 기뻐하며 떡들과 쌍둥이와 어울려 여동생 주위를 맴돌며 놀았다.근영 군주는 아이들이 사이가 좋은 것을 보자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호두가 오는 길에 여동생이 생겼다는 얘기를 듣고 얼마나 좋아했는지 몰라요.”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 “근영 군주 부부께서 호두 하나만 낳아서 좀 외로울 수도 있으니 이번에 온 김에 좀 오래 있다가 가요. 형제들과 떠들썩하게 지내게요.”근영 군주가 말했다. “호두는 하나도 안 외로울 거예요, 집에 놀게 한 무더기가 있는걸요! 하나뿐인 여동생인 만큼 소중할 수 밖에요.”원경릉이 호두를 보았는데, 동그란 눈이 아주 귀여운데다가 큰오빠다운 듬직한 느낌도 풍겼다. “계란이가 이렇게 많은 오빠의 사랑을 받으니 진짜 행복하겠네요.”근영 군주가 미소를 지었다. “오빠 말고도 여기 대모도 있잖아요. 태자비께서 동의하는 여부와 상관없이 계란이는 저와 정정의 딸인걸요.”근영이 말하며 계란이를 안아 이마에 살짝 입을 맞추었다. 사랑스러운 눈빛을 하며 말이다. 방금 들어올 때 근영 군주가 계란이를 안아 들었는데, 바로 근영 군주에게 방긋 웃는 모습에 근영 군주는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 사랑이 샘솟았다.원경릉이 방긋 웃었다. “그야 당연하죠. 전에 근영 군주가 호두를 가지고, 제가 우리 떡들을 가졌을 때 아들과 딸을 낳으면 부부로 맺어주자고 약속했잖아요. 딸이면 서로 자매가 되고, 아들이면 서로 형제가 되기로. 호두랑 우리 떡들은 형제고 계란이는 그들의 여동생이니 근영 군주가 대모인 건 도리상으로나 마음 상으로나 딱 맞네요!”근영 군주가 손가락으로 계란이의 볼을 살짝 만지자 계란이가 근영 군주의 손가락을 따라 손발을 꼼지락거리며 옷는데 분홍빛 잇몸이 다 드러나 정말 귀여웠다. 이 모습은 근영 군주는 기뻐서 어쩔 줄 몰라하게 만들었다. “이번에 황제 대관식 때문에 온 거지만 난 우리 수양딸 때문에 왔나 봐요. 오길 잘했네,
우문호 일행은 강북부로 향하는 내내 북방의 풍경과 풍속을 경험했다. 그로 인해 속도는 매우 느리긴 했지만 말이다.그날 밤, 우문호는 갑자기 악몽에서 깨어나 온몸에 땀을 흘리며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그의 얼굴에는 공포가 가득했다.그러자 원경릉이 벌떡 일어나 그를 껴안으며 물었다.“무슨 일이오? 악몽을 꾼 것이오?”우문호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아직 날씨가 덥지 않은 데다가 북방에 있어 오히려 날씨까지 쌀쌀했기에, 그는 아직도 악몽이 생각나는 듯, 창백한 표정을 지은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꿈에서 셋째 형님이 피투성이인 채 죽어가고 있었소…”원경릉은 그저 꿈이라 생각하고 위로해 주려 했지만, 이내 우문호의 강한 감응 능력을 떠올렸다. 갑자기 나타난 이 꿈이 형제간의 영적 감응일지도 몰랐기 때문이다.우문호도 점점 불안한 생각에 빠졌다.“강북부가 비록 평온해 보여도 사실 북당에서 가장 복잡한 곳이오. 온갖 사람들이 섞여 있고, 북막도 호시탐탐 노리고 있네. 게다가 셋째 형님도 무모한 사람이니, 진짜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지 걱정되오. 원 선생, 어서 빨리 가야겠소.”원경릉이 서둘러 옷을 입으며 말했다.“아니, 내가 먼저 가겠소. 정말 상처를 입었다면, 내가 가야지 도움이 되지 않겠소? 게다가 난 빨리 갈 수 있잖소.”“좋소. 그럼 먼저 가시오. 우리도 곧 출발하겠소.”우문호는 너무 생생한 꿈 탓에, 더 이상 천천히 갈 수 없었다.“사람을 불러야겠소.”원경릉은 재빨리 옷을 입은 후, 우문호에게 포옹하고 이마에 입을 맞췄다.“먼저 가겠소.”“조심하시오.”우문호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 원경릉은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원경릉이 사라지자마자 우문호는 방 문을 두드리며, 출발하자고 소리쳤다.우문호의 소리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이 밤중에 출발이라니, 무슨 큰 일이 생긴 걸까?이때 수보가 겉옷을 걸치고 나오며, 우문호의 팔을 잡고 물었다.“무슨 일입니까?”우문호가 답했다.“나도 모르네. 하지만 셋째 형님에게 무슨 일
스무 명이 넘는 자 중 단 한 명만 생포하고 나머지는 전부 섬멸되었다.안왕은 재빨리 위왕의 혈을 눌러 지혈한 후, 중상을 입은 위왕을 데리고 저택으로 돌아왔다. 먼저 의원을 찾으러 간 사람이 있었기에, 의원은 이미 저택에 도착해 있었다. 이때 안왕이 피투성이가 된 채, 의원의 옷깃을 움켜잡았다.“살리시게, 살려야 하네. 꼭 살아야 하네.”의원이 바로 약상자를 내려놓으며 말했다.“진정하십시오.”의원이 위왕의 옷을 가위로 자르자마자, 상처가 바로 드러났다. 다행히도 먼저 지혈한 덕분에 저택까지 돌아올 수 있었다.하지만 심각한 부상 상태와, 깊은 복부의 자상 때문에 장기를 다친 것으로 판단한 의원은 간단한 처리를 마친 후, 안왕에게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소인의 의술이 부족한 탓에, 치료를 감당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경성에서 다치셨다면, 희망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강북부는 의료가 낙후된 지역이다. 비록 혜민서를 설립한 이후 의사를 집중적으로 양성하긴 했지만, 경성에 비하면 여전히 많이 부족했다.안왕이 숨을 헐떡이며 눈에 핏줄을 세우고 소리쳤다.“중상을 입었는데 어찌 도성으로 돌아가란 말인가? 긴 여정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은가?”의원이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그것도 참 문제입니다. 황실 친왕이 자금단을 가지고 계신다고 들었는데, 혹시 저택에 있습니까?”“없네!”안왕은 위왕의 호흡이 점점 미약해지는 모습을 보며 절망감에 휩싸여 털썩 주저앉았다.“내가 갖고 있던 자금단은 이미 먹은 지 오래된 것이네.”“경성… 경성으로…”의식을 잃은 위왕은 그저 경성이라는 말만 중얼거렸다.안왕은 눈물을 닦으며 무릎을 꿇었다.“형님, 조금만 더 버티십시오. 의원이 약을 썼으니, 황후가 오실 때까지 며칠만 버티십시오.”심각한 상황이니, 경성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돌아가려면 최소 일주일 이상은 걸리지만, 황후는 아마 사흘 안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경성으로……”위왕은 의식을 잃기 전까지 계속해서 경성을 찾았다. 그곳은 그가 너무
위왕은 마음속에 또 하나의 걱정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다섯째가 곧 강북부에 오는 것이었다. 비록 이 일은 소문내지 않았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순행했으니, 소문이 새어나가게 마련이다.설령 그가 강북부에 온다고 밝히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의 최종 목적지가 강북부라는 것은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북막인들이 다섯째에게 해를 가하려는 것은 아닐지 걱정되었다.아무래도 단 한 순간도 북막인의 야심은 멈춘 적 없었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는 방심하지 않고, 허점을 찾아내겠다는 결심을 다지며 이들을 감시했다. 확실한 증거가 없는 어디까지나 본인의 추측일 뿐이기에, 그는 이 일을 아직 넷째에게 말하지 않았다. 섣불리 말을 꺼냈다가, 그들이 진짜 금나라 상인이라는 것이 밝혀지기라도 한다면, 두 나라의 사이만 영향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비록 무장이지만, 외교적인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아주 작은 불씨라도, 마음먹은 자가 부추기면 걷잡을 수 없는 큰불이 될 수 있는 법이기에, 섣불리 행동해서는 안 되었다. 그리고 감시 끝에 마침내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 처음엔 열댓 명 정도였던 이들 무리는 이틀 사이 스무 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새로 온 자들은 앞선 사람들과는 다르게, 군인이라기보다는 강호 인사의 분위기를 풍겼으며, 무공 또한 약하지 않아 보였다.위왕은 경계심을 품고, 밤새 직접 사람들을 이끌어 조사에 나섰다.앞서 만났던 금나라 사람들은 여전히 질문에 순순히 응했지만, 새로 온 강호인들은 거만한 태도를 보였다. 위왕의 질문에도 그저 시큰둥한 태도만 보이며 북당인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위왕은 건방진 그들의 태도에, 몇 마디 호통을 쳤고, 그 모습에 강호인들은 참지 못하고 바로 위왕에게 손을 쓰려고 했다.위왕은 조사하기 위해 온 터라, 데리고 온 부하도 단 몇 명 뿐이었기에, 상대가 일반적인 조사에도 이렇게 쉽게 공격하려 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앞서 온 금나라인들이 말리려 했지만, 그들이 손을 쓰자, 사태가 수습되지 않을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남강에 며칠 머무는 동안, 아홉째와 함께 남강의 풍경을 둘러보고, 북강에도 다녀왔다.지금 북강 백성들은 조정에 대한 소속감이 아주 강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남강을 다스린 정책이 정말 훌륭했기에, 백성들 모두 좋은 날을 보낼 수 있었기에, 자연스레 황제에 대한 존경심도 깊어진 것이었다.황제와 황후가 지나가는 곳마다 백성들은 길가에 모여서 열렬히 환영했다.그들은 이번 순행 내내 오계부에서 신분을 밝힌 것 외에는 항상 미복으로 다녔다. 하지만 남강에서 우문호는 황제의 신분을 드러냈다.우문호는 백성들의 신뢰와 경외심에서 큰 성취감을 느꼈고, 매우 기뻤다. 그는 줄곧 원경릉의 손을 잡고 얼굴에 웃음을 띠고 있었다.과거 북강은 방어를 위해 무술 함정이 많았지만, 이제는 모두 제거되었다. 그리고 많은 백성이 산 아래 평원으로 이주하여, 새로운 마을을 이루었다. 정화를 구하러 왔을 때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기쁜 마음과 함께 우문호는 감사함도 느꼈다. 이것은 결코 그 혼자만의 공로가 아니기 때문이었다.남강을 떠나야 하는 날이 다가오자, 원경릉은 만아와 여덟째를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곧 변성으로 가야 했기에, 아쉬움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잠시였다. 남강을 벗어나자마자, 그녀는 아이들과 만날 생각에 들뜨기 시작했다."원 선생, 그들에게 말했소?"길에서 우문호가 물었다."아니, 몰래 가는 것이오."원경릉은 웃으며 말했다."교활하구먼. 그래도 만두가 이미 알려줬을 수도 있을 텐데."지금은 경단과 찰떡, 그리고 계란이 셋만 그곳에 있었다."셋이 다섯 개 성을 다스린다니, 분명히 힘들 것이오."원경릉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그렇소. 그래도 예전보다는 나아졌네. 이제는 태평해 보이니."우문호도 아이들이 안쓰러웠다."이번에 가서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충분히 쉬게 해줘야 하오."사실 성하나를 다스리는 것과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점 없이, 매우 힘든 일이었다.한편, 강북부에서는 최근 강북부 무구산 주변에 신비한 상단
그러자 홍엽이 그를 바라보며 멈칫했다."자네가 중매를 서겠다고?""안 되오?""말도 안 되는 소리 말게. 자기 혼사도 해결 못 하는데 중매는 무슨. 난 못 믿네!"냉정언이 어깨를 으쓱였다."못 믿으면 말고. 이래 봬도 내가 명문가 아가씨나 협녀를 많이 알고 있소."홍엽은 손으로 그의 목을 움켜잡으며 소리쳤다."알고 있는 아가씨가 있으면 진작 말했어야지! 경성으로 돌아가자마자, 당장 소개해 주시게!"냉정언은 웃으며 그의 손목을 옆으로 밀어냈다."중매 값이 워낙 비싸서. 십만 냥 아니면 쉽게 안 나서오.""돈이 대수요?"홍엽이 교활하게 웃으며 말했다."우린 지금 한집에 살고 있소. 그러니 자네가 돈을 어디에 숨겼는지, 다 알고 있네. 그동안 꽤 많이 챙겼으니, 돌아가서 돈은 두둑이 주겠네."그 말에 냉정언이 깜짝 놀랐다."내 돈을 노리고 있었소? 진짜 도둑을 집에 들였군! 늙어서 쓸 돈이네, 그 돈을 혼사에 쓸 생각은 하지 마시오!""명여가 우리를 챙길 테니, 그렇게 쩨쩨하게 굴지 마시오."홍엽이 새침하게 말했다."나도 돈이 많소. 다만 남의 돈을 쓰는 게 훨씬 재밌을 뿐이네."냉정언이 숨을 들이쉬었다."안 되겠네. 경성에 돌아가자마자 자네를 쫓아내야겠소."홍엽이 말했다."쫓아낼 수 있으면 쫓아내 보시게. 게다가 자네가 나를 청할 때, 뭐라고 했는가? 얼마든지 살아도 된다고 했잖소. 이제 와서 후회하는 것이오?""이야, 홍엽, 어찌 이리 뻔뻔스러워진 것이오?""뻔뻔하지 않으면, 어찌 당신 집에서 이렇게 공으로 먹고살 수 있겠나?"홍엽은 크게 웃으며 그의 어깨에 팔을 얹었다."수보, 신을 모시는 건 쉬워도 보내는 건 어렵다고 하잖소. 이미 집안에 들어갔으니, 쫓아내기는 힘드네. 후회해도 소용없소. 수보의 등골 빼먹다 죽을 것이오. 관에 수의까지 얻어 쓸 생각이라, 죽으면 자네가 장례식까지 마련해줘야 하네."수보는 그를 한참 바라보다가, 애써 이를 악물며 말했다."진짜 뻔뻔하오!"홍엽은 박장대소했다.멀리 복도 끝에
“예, 그립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놀고 싶기도 합니다.”그는 말하다가, 갑자기 신이 난듯 몸을 들썩이며 말을 이어갔다.“여긴 정말 재미있습니다. 아홉째와 나가면 큰 산도 있고, 꽃도, 나무도 많습니다. 물고기도 많고, 사람도 많고, 뭐든지 엄청 많았습니다.”우문호는 웃으며, 못내 안쓰러움을 느꼈다. 예전에 그를 궁 안에 가두고, 거의 밖으로 데리고 나가지 않았다. 게다가 다른 사람이 그를 데리고 나가는 것도 신경 쓰였다.“이곳이 마음에 들면, 좀 더 오래 있어도 된다.”우문호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예, 정말 좋습니다. 다만, 형님과 형수님이 그리웠습니다. 이렇게 오셔서 정말 다행입니다.”여덟째는 흥이 오른 상태로 그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어서 들어가시지요! 아홉째가 형님이 내일 오신다고 맛있는 음식을 많이 준비했습니다.” 그는 뒤돌아 원경릉에게 외쳤다.“형수님, 빨리 따라오십시오. 맛있는 거 많습니다.”미색은 웃으며 꾸짖었다.“이 무심한 녀석, 다섯째 형수님만 챙기고, 여섯 형수가 배고픈지는 묻지도 않는 것이냐?” 여덟째는 그제야 미색을 본 듯,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여섯째 형수님도 오셨습니까? 여섯째 형님도 오신 것입니까? 와, 너무 좋습니다!”“질투하다니?”원경릉은 미색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미소를 지었다.“여덟째는 너보다 나를 더 좋아하는 것이다.”“아유, 참!”미색은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여덟째는 바로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항상 그림과 책자를 선물하는 여섯째 형수님도 좋아했기 때문이다.그는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그... 그럼 같이 드시지요. 음식 많습니다.”“장난이다. 난 질투 안 해.”미색은 기쁘게 말했다.여덟째는 그제야 마음을 놓았고, 다들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원경릉이 만아에게 말했다.“정말 이곳에서 즐겁게 지내고 있구나. 예전보다 훨씬 활발해졌고, 말도 많이 하네. 이 모든 게 아홉째 덕분이다.”만아는 웃으며 말했다.“예, 둘이 시간이 날 때마다 밖으로 나가, 더
원경릉은 발끝을 들어 그의 뺨에 입을 맞추고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우문호는 그런 그녀를 와락 끌어안으며 말했다.“원 선생, 행복하오?”“행복하오.”“하하하. 지금이 아닌, 나와 함께했던 모든 날이 행복했냐고 물어보는 것이오.”“모든 순간이 당연히 행복하고, 기쁘오!”원경릉은 스스로를 자조하듯 웃었다.“나 같은 집순이가 이렇게 결혼생활이 행복할 줄 누가 알았겠소?”한때 그녀는 자신이 평생 결혼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고, 사랑 없는 삶도 부족함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그녀는 사랑을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었지만, 사랑은 사실 정말로 중요했다.산꼭대기에 앉아, 차가운 바람을 맞고 있었지만, 추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의 풍경을 눈에, 그리고 마음에 깊이 새기고 싶었다.그리고 함께 늙어간 후, 다시 천천히 되새기고 싶었다.영산에서 내려온 후, 그들은 다시 여정을 이어나갔다. 이번 목적지는 바로 남강이었다.명절이 지난 뒤, 아홉째는 여덟째를 데리고 먼저 남강으로 돌아갔다. 다들 그가 그곳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다.남강 땅은 오랜만이었다. 마지막으로 발을 디딘 건, 정화를 구하러 갔을 때였다.남강으로 가는 내내 홍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냉정언이 물었다.“남강에 가면, 못난이를 만날 것이오?”“만나야지.”홍엽이 답했다.“물론 만나야지!”못난이는 오랜 시간 그와 함께했던 사람이니, 만나야 했다. 못난이가 종종 편지를 보내오긴 했지만, 자기 상황은 거의 말하지 않았다.반면 아홉째는 편지에서 북강의 소식을 자주 전해주었다.지금의 남강은 어느 정도 통일되어 있었고, 북강과 남강도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었다. 그동안 이익 문제로 양측의 왕래가 더욱 빈번해졌다.아홉째는 편지에서 못난이가 북강의 민심을 얻었고, 성격도 예전보다 훨씬 밝아져,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하다고 전했다.홍엽의 마음엔 기대와 기쁨이 섞여 있었다. 그도 지금 잘 지내고 있으니, 못난이도 잘 지내길 바랐다.우문호는 남강에서 돌아온 후, 변방으로 갈
그 일을 떠올리자, 꿈에서 본 일이라 그런지 마치 얼마 전에 있었던 일처럼 느껴졌다.그때 그들은 죽을 만큼 힘든 소년들이었는데, 지금은 한없이 한가한 노인이 되었다.세월은 덧없이 흘러갔고, 그동안 그들은 많은 사람들을 잃었다.무상황은 자신의 황후였던 소봉을 떠올렸다.그들은 줄곧 전형적인 황제와 황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나라를 다스렸고, 그녀는 후궁을 다스렸다. 비록 그가 그녀를 괴롭히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많은 애정을 주지도 않았다.그렇게 평범하게 평생을 함께했지만, 그녀가 떠나는 날, 그는 마음속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간 듯한 슬픔을 느꼈다.평생 함께했던 사람이 자신보다 먼저 떠날 거라 생각하지 못했기에 더욱 아팠다.세 사람은 한참 동안 넋을 잃고 있다, 다시 길을 나섰다.유아독존과 관련된 일이 생각보다 커졌지만, 모든 소란은 결국 가라앉게 될 것이다. 모든 소문도 점점 사그라들기 마련이니, 그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세 사람이 여행하는 영상이 점점 유명해지면서, 유아독존은 더 심하게 비난을 받았다.현실에서 함부로 욕설을 내뱉으면 얻어맞을 수도 있지만, 인터넷에서는 당당한 명분이 있었기에 악성 댓글을 다는 자들은 마음껏 욕을 퍼부었다.그리고 어느 날, 추 어르신이 오래도록 인터넷의 댓글을 훑어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는 이내 해가 지는 장면을 찍어 짧은 영상을 올렸다. 그리고 영상에 한마디만 덧붙였다.“분쟁 없이, 오직 평화만 있기를.”그는 모든 다툼이 끝나길 바랐고, 누군가를 벼랑 끝으로 몰지 않기를 바랐다. 단지 말로만 승부를 겨루는 사람은 그들의 적이 아니기 때문이다.음... 무엇보다 적이 될 자격도 없었다!영상이 올라간 지 이틀 뒤, 유아독존은 마침내 사과 영상을 올렸다. 그는 질투와 시기로 무술을 모독한 것을 사죄했고, 은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직접 그들의 계정을 태그해 진심으로 사과했다.진심 어린 사과는 항상 용서를 가져오는 법이다. 그리고 악성 댓글을 달던 사람들도 마침내 욕설을 멈췄다.
삼대 거두는 늦은 시각이 되어서야 일어났고, 숙취에서 깨어나니, 이미 날이 밝아져 있었다. 그들은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아, 눈앞의 모든 것이 몽롱해 오늘이 무슨 날인지조차 모를 정도였다.태양이 서서히 떠오르며 하늘에 떠 있는 주황빛 구름은 점점 짙은 금빛으로 변했고, 금빛 가장자리에는 붉은색이 덧씌워져, 눈부시게 아름다웠다.소요공이 눈을 비비며 말했다."꿈을 꿨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동시에 그를 바라보며 이구동성으로 물었다."무슨 꿈을 꿨는가?""꿈에서 숭이가 사내에게 속았는데, 우리가 직접 나서서 복수를 해줬다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놀라서 동시에 숨을 들이켜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귀신이 곡할 노릇이네."말이 끝나자,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깜짝 놀라 외쳤다."자네도 꾼 것인가?""그렇네!""그렇네!""설마 우리 셋이 똑같은 꿈을 꾼 것이오?"소요공도 깜짝 놀랐다.그 일은 그렇게 중요한 일도 아니었고, 어떻게 된 일인지 가물가물할 정도로, 그저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만 어렴풋이 기억할 정도였는데, 꿈에서는 그 장면 장면이 또렷하게 떠올랐다.그리고, 이 꿈은 당시 엄청난 부담을 받고 있던 그들에게 정말 훌륭한 감정 해소가 되었다. 그들은 모든 고통과 억울함, 스트레스를 주먹질로 시원하게 풀어냈다.한편, 무상황은 자신이 황후를 소홀히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때 무슨 상황이었는지 기억하는가?"추 어르신이 흥분한 듯 말했다."물론 기억은 나네. 당시엔 소봉이가 궁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적성루 사람들을 많이 그리워했네. 게다가 나도 자네들과 어울리느라 바빠서 황후를 소홀히 했네. 그래서 적성루 상궁과 숭이를 궁으로 불러, 이야기를 나누게 했지."사실 기억이 가물가물했지만, 꿈속에서 다시 겪은 덕분에 자세히 생각났다.그때 어서방의 회의가 끝나고, 소복이 무심히 물었다."폐하, 황후 마마를 오랫동안 못 뵙지 않으셨습니까?"그는 소복의 말이 소봉을 보러 가자는 암시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