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의 고비를 맞은 열이, 왕비의 진실을 말하다찐빵 반 개쯤 먹고 나니 원경릉은 힘이 다소 회복되는 것을 느끼며 탁자를 잡고 일어나려 안간힘을 썼다. 상반신으로 몸을 지탱하면서 물을 따를 방법이 없어, 바닥에 엎드려 잔에 남은 물을 마실 수 밖에 없었다.좀 나아진 듯해서 천천히 다리를 움직여보고 팔을 펴고 등을 구부리려 했지만 체력이 없어 땅에 덜퍼덕 쓰러지며 등에 난 상처가 지지는 듯 아파왔다.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아내며 팔꿈치로 바닥을 디뎌가며 겨우겨우 약상자를 찾았으나, 소염제와 해열제 주사약이 놓아 둔 곳에 없었다. 주사를 놓을 수 없으니 먹는 약의 용량을 늘릴 수 밖에 없다.대략 30분쯤 지나, 비타민C를 더듬거려 찾은 후 몇 알 삼켰다. 물이 없어 그냥 넘겼더니 너무 셔서 하마터면 뱉을 뻔 했다. 약을 먹은 뒤 원경릉은 몸을 웅크리고 숨을 헐떡거렸다. 이런 육체적 고통은 생전 처음이다. 이번 매질을 당하며 원경릉은 이 시대는 자기가 살던 시대와는 다르다는 것, 신분이 높고 권력을 가진 자의 손에 인간의 생사여탈권이 쥐어져 있음을 깨달았다.따라서 그녀의 목숨은, 초왕의 손에 달려 있다.원경릉은 기필코 이 악랄하고 저열한 생존환경에 적응해야 한다.그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상처에서 고름은 제거했지만, 악을 쓰지 않고 좋아질 수는 없다.열이의 방.열이는 약을 먹고 다시 고열이 나기 시작했다.기상궁은 다급해 죽을 지경이다. 낮에는 분명 좋아졌었는데 밤이 되어 왜 다시 고열이 난단 말인가?녹주도 안달이 나긴 마찬가지여서, “아니면, 제가 가사 이의원님을 모셔올까요.”기상궁은 열에 들떠 숨소리마저 거칠어진 손자를 보며 이의원이 다섯 냥에 겨우 이틀 치 약을 지어준 것을 떠올렸다. 사실 그녀 수중에 더이상 은자가 없다: “아니다, 됐어.”녹주는 어쩔 줄 몰라 눈물을 흘리며, “그럼 어떡해요? 두 눈 멀쩡히 뜨고 열이가…..” 뒷말은 차마 할 수가 없었다.기상궁은 이를 악물고 비분강개한 눈빛으로, “열이한테 만약 무슨 일이 생기
위독한 열이를 고치는 원경릉원경릉은 어둠에 적응해 있었는데 불빛이 갑작스레 비치니 자기도 모르게 손으로 빛을 가렸다. 이때 털썩 하고 무릎을 꿇는 소리가 들렸다. 기상궁이 바닥에 꿇어 앉아, “왕비 마마, 쇤네 마마의 크신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마마님을 원망했습니다. 열이를 제발 살려 주시옵소서.”“날 일으키게!” 원경릉은 손을 뻗으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기상궁은 다급한 나머지 등롱도 팽개치고 원경릉을 부축하러 갔는데 원경릉의 등쪽에 핏자국이 흥건하게 매를 맞은 상처를 보고, 이 여자가 악랄함이 떠올라 주저하는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만약 열이가 말한 게 사실이라면?“왕비 마마, 일어서실 수 있겠습니까?”“약 상자를 가져오너라.” 원경릉은 기상궁이 자신을 얼마나 증오하는지, 그런데도 무릎 꿇고 애원하는 건, 열이의 상태가 좋지 못한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상궁에게 약 상자를 들키든 말든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예, 예!” 기상궁은 약상자를 들고 와 원경릉을 부축했다.원경릉은 한 걸음 디딜 때마다 등과 허벅지에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밀려오고, 겨우 문을 나섰을 뿐인데 땀이 비 오듯 흘러 내리며 덜덜덜 이가 떨렸다. “왕비 마마……”“쓸데없는 소리 말고, 가자!” 원경릉은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아냈다.생명을 구하는 일이 그녀에겐 순수하고 단순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열이를 구하는 것은 한 번 더 머리를 굴려야 하고, 사람의 마음을 되돌려야 하는 것이 되었다. 그러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안 죽겠네 그 사람.”문득, 사람 목소리가 들렸다.원경릉은 조심스럽게 기상궁을 바라봤지만, 기상궁은 한 손에 등롱을 들고, 한 손으로 그녀를 부축하느라 말이 없었고, 원경릉이 기상궁을 바라보자 이마에 주름이 지며 묻길, “왕비 마마, 통증이 심하셔서 걷지 못하시는 것은 아닌지요?”목소리가 다르다.기상궁의 목소리는 청아한 노인의 목소리지만 방금 들은 목소리는 앳된 소리였다. 원경릉은 갸우뚱 고개를 젓는데 귓
상처가 심해진 원경릉에게 입궁 전갈이?이 모든 걸 마치고 원경릉은 너무 피곤한 나머지 탁자에 반쯤 엎드려 축 늘어졌다. 자신의 모습이 꼴불견이라는 걸 알지만 그걸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다.잠시 숨을 돌리자 밖에서 기상궁이 초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왕비 마마, 어떤 지요?”원경릉은 탁자를 짚고 천천히 일어서며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들어오너라.”문이 열리고 기상궁과 녹주가 뛰어들어와 열이 옆에 가더니, 열이의 숨소리가 고르게 안정된 것을 보고 기상궁은 비로소 한 시름 놓았다.원경릉은 약 상자를 들고: “오늘밤 일은 너희 둘만 알고 입을 다물어라. 초왕이나 초왕부 사람이 알게 해서는 안된다.” 기상궁과 녹주는 의아해하며 서로 바라봤다.녹주가 앞으로 나가 원경릉을 부축하고 “왕비 마마, 소인이 길을 안내하겠습니다.”“됐다. 열이를 지켜라. 머리맡에 내가 남겨둔 약이 있으니 두 시진마다 한번 씩 먹이고. 다 먹으면 나에게 더 필요할지 묻고.” 원경릉은 녹주 손을 뿌리치고 힘겹게 밖으로 나갔다.“왕비 마마!” 기상궁이 소리쳤다. 원래는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원경릉이 이전에 한 일을 떠올리면 감사하다는 말이 입밖으로 나오질 않아 그저: “밤길이 어둡습니다, 등롱을 들고 가시지요.”등롱을 건네자, 원경릉은 등롱을 받으며, “고맙네!”기상궁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고맙네? 지금 고맙다고?원경릉은 봉의각으로 돌아가 스스로에게 주사를 놓고 침대에 엎드렸다.염증이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상처의 면적이 너무 넓은데다 항생제 작용까지 겹쳐 그녀는 눈에 띄게 약해졌다. 고열이 난 뒤라 손가락 하나도 꼼짝할 수 없고, 물먹은 솜 마냥 한없이 바닥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곧 사방에 어둠이 깔리고 원경릉은 까무룩 잠이 들었다.얼마나 지났을까, 누군가 문을 열고 급히 들어와: “왕비 마마, 어서 일어나세요.”원경릉이 겨우 눈을 떠 보니 녹주가 안절부절 하고 있고, 해는 이미 중천에 떠 있다.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열이가
반격의 결과, 자금탕을 마시게 된 원경릉원경릉은 꿈인지 생신지 정신이 오락가락한 상태로 약상자를 침대 밑으로 밀어 넣는 순간 약상자가 사라졌다. 이번엔 잠깐 숨을 멈추고 기다렸다가, 손을 뻗어 침대 밑을 더듬어 보니 진짜 아무것도 없다. 와들와들 떨며 침대로 기어 올라와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최근 들어 벌어지는 사건은 그녀의 의식 범주를 넘어서는 일로 전문지식과 비전문지식을 전부 동원해도 답이 안 나왔다. 인류는 미지의 사건을 조우하면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이기 마련이다. 지금 그녀가 그렇다.“끼익” 소리를 내며 문이 열리고 고개를 들어 돌아보기도 전에 차가운 기운이 사방을 에워 싸며 머리가 지끈하다 하더니 원경릉은 그만 침대에서 땅으로 굴러 떨어졌다.“짐 앞에서 죽어가는 척을 해? 당장 가서 죽어버리던지, 아니면 옷 갈아입고 짐과 입궁하도록 당장 일어나지 못할까.” 서릿발 같은 목소리가 정수리에 꽂히며 거칠게 몸을 뒤집힌 원경릉은 등의 통증에 전신에 경련을 일으켰다. 숨도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데 무쇠 같은 손이 원경릉의 턱을 으스러뜨릴 듯 쥐었다. 고통에 찬 그녀의 눈동자와 광분한 초왕의 눈이 마주쳤다. 냉혹하고 매서운 얼굴은 가릴 수 없는 경멸과 증오로 가득했다, “경고하지. 여우 짓은 그만 두는게 좋아, 만약 다시 한 번 태후 마마 앞에서 그 간사한 혓바닥을 놀렸다간, 아주 숨통을 끊어버릴 테니까.”원경릉은 고통이 극심한 나머지 울분이 차 올랐다. 인간의 생명이 이 사람들 눈에는 한 푼어치의 가치도 없는 것인가? 상처가 이렇게 심한 사람을, 그마저도 가만 놔둘 수 없다는 말인가.그녀는 전신의 기력을 쥐어 짜내 머리를 늘어뜨리고 무릎으로 바닥을 짚으며, 머리로 힘껏 초왕의 얼굴을 들이 받았다. 너 죽고 나 죽자는 최후의 일격을 가한 셈이다.초왕 우문호는 원경릉이 반격할 거라 상상도 못했고, 머리로 들이받는 바람에 피하지 못해 눈 앞이 번쩍하며 어찔했다.원경릉 자신은 다 죽어가면서도 이를 악물고, 초왕이 아직 정신을 못 차린 틈에 그의 손
원경릉의 입궁약을 마시고 원경릉은 속이 따듯해 지며 한결 편안해 졌다.“왕비 마마, 궁에서 돌아오시면 천천히 몸조리 하실 수 있게 쇤네가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우선 잠시라도 눈을 좀 붙이세요.” 기상궁이 말했다.원경릉은 눈을 감자 머리 속에 폭죽이 끊임없이 터지는 것 같고, 과거에 들었던 말이 귓전에 울렸다. “미워한다고? 당치도 않은 소릴. 짐은 네가 혐오스러워. 짐의 눈에 너는, 더러운 벌레만도 못한 존재야. 사람을 증오심에 불타게 한다고. 아니면 짐이 약의 힘까지 빌려 너와 합방할 필요도 없었겠지.”초왕 우문호의 목소리다, 원한과 증오가 가득 찬 이런 매정한 말을 그녀는 난생 처음 들었다.누가 귓가에서 엉엉 울고 있다, 머리 속의 폭죽이 터지더니 구불구불 흘러내리는 선혈로 변한다.점점 모든 것이 차분해 진다.마치 머리 속에 수천 수만 개의 어지러운 선들이 전부 깔끔하게 정리된 것 같은 느낌이다.통증도 점점 사라졌는데, 정확히 말하면, 사라진 게 아니라 느낌이 없어졌다.원경릉은 눈을 떠 녹주가 침대맡에 서있는 것을 보고 미간을 움찔거렸다.“왕비 마마, 좀 어떠세요?” 그녀가 눈 뜬 것을 보고 녹주가 서둘러 물었다.“안 아파.” 원경릉이 쉰 소리로 대답했다.그렇다 아프지 않다. 하지만 전신에 감각이 없는 것은 공포 그 자체다. 원경릉은 손을 뻗어 볼을 꼬집어 보았다. 역시 아무 느낌도 없다.이건 마취약보다 효과가 강력하다.“일으켜 드리겠습니다, 옷을 갈아 입으실 게요, 안 그러면 왕야께서 노하십니다.” 녹주는 손을 뻗어 그녀를 부축하고 기상궁도 마침 옷을 가지고 밖에서 들어온다. 기상궁을 원경릉에게 “어서 옷을 갈아입으세요, 왕야께서 서두르라 십니다.”원경릉이 감각없이 서있자 두 사람은 속옷을 벗기고 새 옷을 갈아 입힌다. 상처를 꽁꽁 싸매도 그녀는 아무 느낌이 없다.옷을 갈아 입고 구리 거울 앞에 서자, 원경릉은 비로소 거울에 비친 사람을 훑어봤다.이목구비가 뚜렷하고 피부가 희며, 길고 구부러진 속눈썹 아래 생기라곤 전혀
입궁하는 길, 우문호가 증오하게 된 사연반 주먹 정도 크기의 그 작은 함은, 다름 아닌 침대 밑에서 사라진 약 상자였다.뭐가 어떻게 된 거지? 약 상자가 왜 작아졌고, 어떻게 소매 속에 들어 있는 거야?원경릉의 마비된 몸에 일순간 소름이 끼쳤다.뒤쪽에서 발소리가 들리자, 원경릉은 얼른 약 상자를 다시 소매속에 감췄다.“소인이 왕비 마마님을 모시고 가겠습니다.” 녹주가 그녀를 부축하며, “왕야께 부탁드렸어요, 마마님과 입궁할 수 있게요.”원경릉은 마음이 혼란스러워 녹주가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귀에 들리지 않고,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따라 갔다.아치형 문을 지나 회랑을 돌아 이리저리 걸어간 끝에 앞마당 입구에 도착했다.마차는 이미 문 앞에 대기해 있고, 우문호는 마차에 타지 않고, 검은 준마를 타고 있다. 연 보라색 옷을 입고, 금옥 관모를 썼는데 얼굴빛이 날씨처럼 어둡고 눈은 화가 나서 견딜 수 없다는 듯 그녀를 힐끗 보더니 싸늘하게: “얘들아 가자.”“왕야, 소인도 같이 입궁해도 될까요?” 녹주는 염치 불구하고 대뜸 물었다. 우문호는 녹주를 쏘아보더니: “그러든지, 태후께서 합방 건을 묻지 않으시게, 네가 있는게 나을지도 모르겠구나.”초왕부 입구에 입궁을 돕는 하인만도 십여명으로 그 중엔 가신 탕양도 있었다. 우문호가 그들 앞에서 이런 말을 하는 건, 원경릉이 난처할까 배려해서가 전혀 아니다.원경릉은 무표정했다. 얼굴 근육이 굳어서 아무리 난처해도 난처한 표정조차 지을 수 없다.녹주는 원경릉이 마차에 오르도록 부축하고 마차 창문 발을 내리는 찰나, 우문호의 이글거리는 증오의 눈빛과 초왕부 하인들이 꼴 좋다며 원경릉을 바라보는 시선을 눈치챘다. 원경릉은 눈을 감고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귓가에 우문호의 말이 쟁쟁 울린다.몸의 원래 주인은 이쁘게 생겼는데 도대체 얼마나 그녀를 싫어했길래 약을 먹고서야 겨우 합방을 할 수 있었던 거지?이게 몸의 원래 주인에게 얼마나 큰 모욕이었을까?과연 죽음을 선택할 만 했다.마음을 안정시키는
우문호의 정인을 만나다마차는 우문호의 지휘아래 곧장 궁문으로 들어갔다. 원경릉은 지금 황궁에 호기심이 전혀 없고, 오직 휘날리는 마차의 창문 발 틈으로 한없이 긴 궁궐길과 궁궐의 붉은 담장만 보일 뿐이다.멀리 내다 볼 수 없지만 이따금 높은 누각이 눈에 들어 왔다. 금과 비취가 오색찬란하고 유리로 된 기와에 햇빛이 미끄러진다. 마차가 멈추고 원경릉은 심호흡을 한 뒤 녹주의 부축을 받으며 마차에서 내렸다.햇살이 궁궐의 붉은 담장에 내리쬐는 가운데, 멀리 금빛 유리 기와가 반사하는 빛에 그녀는 빛에 닿으면 사라지는 유령처럼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빛을 가렸다.우문호도 말을 내려 마차와 말을 여기에 두고 걸어 갔다.소운전(霄雲殿) 밖에 도착하자 녹주가: “왕비 마마, 소인은 안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조심히 다녀오세요.”원경릉은 소운전이 태상황이 거처하는 곳이라, 밖에 이미 각 황자와 공주부에서 온 하인과 노비로 가득한 것을 보고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한 걸음 한 걸음 우문호를 따라 들어갔다.초목이 무성한 정원을 지나 정전으로 들어서자, 안에 서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원경릉을 쳐다 보는데 하나같이 화려한 옷차림에 위엄 있는 얼굴이다. 이 사람들이 누구인지 몸의 원래 주인이 남긴 기억에 의존했다.푸른 비단 옷을 입고 숙연한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은 기왕(紀王) 우문군(宇文君)으로 황제인 명원제의 장자다. 나이는 서른 살, 진비(秦妃)의 소생으로 마후(馬侯) 대감의 적녀를 아내로 맞아 마씨와 진비가 현재 우문군의 세력으로 슬하에 자식 둘을 두었다. 위왕(魏王) 우문위(宇文蔚), 손왕(孫王) 우문두(宇文杜), 주왕(周王) 우문안(宇文安) 모두 왕비와 자녀들을 데리고 입궁해 있었다.왕야들은 그저 가볍게 목례만 나눌 뿐 말이 없어 분위기는 시종 무거웠다.원경릉은 옆에 서 있는 우문호의 몸이 갑자기 경직되는 것을 느끼고 주변을 살펴보니, 사람들이 모두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한 쌍의 부부가 정전으로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다.남자는 대략 18~19살쯤 되
임종을 앞둔 태상황원경릉은 고개를 들어 주명취의 온화하고 따스한 눈빛을 바라봤다.“앉아서 좀 쉬는 게 어때요?” 주명취가 물었다.원경릉은 고개를 흔들고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빼며, “괜찮아요, 고맙습니다.”제왕 우문경은 주명취를 자기 쪽으로 끌어 당기며 불쾌하다는 듯이 원경릉의 얼굴을 흘겨보고 주명취에게: “저런 사람을 왜 신경 써?”주명취는 제왕의 곁으로 돌아가며 영문을 모르겠다는 담담한 눈빛으로 조용히: “모두 한 가족인 걸요.”“당신은 너무 착한 게 탈이야.” 제왕은 주명취의 손을 잡고 둘이 나란히 서니 선남선녀가 따로 없다.이 순간 원경릉은 무시무시한 냉기가 피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바로 우문호에게서 이다.자신의 정인이 다른 남자 곁에 서 있는데 가슴이 미어지고 화가 치미는 것도 당연하다. 원경릉은 그렇게 생각했다. 내전 안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모두 놀라 일제히 내전 쪽을 쳐다봤다.발이 걷히고 머리에 하얗게 서리가 내린 듯한 내시감이 나왔다. 울어서 눈은 부어 있고 얼굴빛이 처연하다. 꽉 잠긴 목소리로, “황상께오서 유지를 남기시고자 하오니, 비빈 마마, 왕야, 왕비는 드시지요.”이 사람은 태상황의 시중을 든 지 45년 째인 이태감이다.모두 침통한 표정으로 이태감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는데, 발소리를 죽이고 숨소리도 거의 내지 않았다.원경릉은 우문호 뒤에 서서 현기증이 나지 않도록 애썼다.태상황의 곁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태후와 황제는 침대에 앉아 있고, 황후도 한 쪽에 지키고 섰다. 태상황의 형제인 분봉왕들도 모두 어제 입궁하여 계속 침상을 지키고 있다.궁중의 거의 모든 어의가 전부 와서 엄숙한 표정으로 두 줄로 서있다.원경릉이 슬쩍 보니 금색 휘장이 말려 올라가 있고, 박달나무로 만든 큰 침상에 초췌한 노인이 높은 베개를 베고 누워 있다. 입을 크게 벌리고 숨을 쉬니 입이 마치 검은 동굴 같고 눈두덩이가 푹 꺼졌다. 곡소리는 태후가 낸 것으로 침대맡에 앉아 있는 그녀의 헐렁한 연보라 빛 겉옷이 그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