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어쩔 수 없었다. 고아연이 찍은 영상은 확실히 재밌었으니까. 팬이 이렇게 많은 것도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다만 댓글은 죄다 침을 흘리는 이모티콘이거나 내 친구가 이 영상을 보고 정신이 이상해졌다는 유형의 댓글이었다.고아연은 남자만 찍는 게 아니라 여자가 나오는 여상도 아름답고 우아하면서 매력이 넘치게 잘 찍었다.전에는 고아연한테 이런 재능이 있었는지 몰랐는데 말이다.내가 한창 영상을 보고 있을 때 고아연이 갑자기 문을 열고 내 방에 들어왔다.나는 깜짝 놀라 얼른 핸드폰을 숨겼다.“왜 왔어요? 노크는 왜 안 하는데요?”“지금 나를 탓하는 거야?”고아연은 오히려 삐진 듯 되물었다.이에 나는 얼른 화제를 바꾸었다.“무슨 일인데요?”고아연은 나한테로 걸어오더니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혹시 잘생긴 남자 아는 사람 있어? 있으면 나 좀 소개해 줘.”“왜요?”“왜긴? 당연히 영상 찍으려고 그러지. 내가 설마 그 남자들을 잡아먹기라도 할까 봐?”고아연은 화가 난 듯 나를 째려봤다.나는 나 하나로도 모자라 또 더 찾아달라는 건가 싶어 순간 화가 나서 말했다.“없어요.”“정말 없어? 아니면 소개해 주기 싫어서 그러는 거야?”“정말 없어요?”“누굴 속이려 들어? 너의 가게에 잘생긴 사람들이 많다던데. 소개해 주기 싫으면 내가 나중에 직접 찾아가면 그만이지.”“마음대로 해요.”나는 저도 모르게 가슴이 쓰라렸다.“그래. 그럼 내일 찾아갈게.”고아연은 말을 마친 뒤 이내 방을 나갔다.나는 처음에 고아연이 밀당하는 건가 싶었는데 내 생각이 완전히 빗나갔다. 고아연은 정말 나한테 잘생긴 남자를 소개해달라고 내 방까지 쳐들어온 거였다.나도 여자들한테 인기 꽤 많은 남자인데 고아연처럼 나를 꼬시지도 않고 아예 무시하는 여자는 처음이었다.사람은 참 이상한 게, 분명 상대와 발전하고 싶은 마음이 없으면서 상대가 무시하면 오히려 괴로워지고 자존심이 허락되지 않는다.내가 지금 그랬다. 때문에 나는 마음을 가다듬은 뒤 이불을 뒤집어쓰고
그러자 이 사모님이 옆에서 조용히 말했다.“왜 또 그래요? 오늘은 욕하지 않기로 했잖아요.”“하는 짓을 봐. 다른 사람들이 보면 우리가 가정교육 잘못시킨 줄 알 거 아니야. 이럴 줄 알았으면 데려오지 말 걸 그랬어. 당신도 참, 애가 저렇게까지 하는데 왜 계속 애 편을 들어?”이 선생님은 어찌나 화가 났는지 눈까지 부릅뜨며 핏대를 세웠다.그 모습에 이 사모님분은 한숨을 푹 쉬면서 아무 말도 하지 못 했다.나도 솔직히 이다연에 대한 인상이 좋지 않았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다연 외에 한지영도 자리했다. 물론 봉섭 할아버지와 함께.가족 중에 나와 한지영만 젊은 축에 속했다.한지영은 다른 사람과 할 얘기가 없으니 자꾸만 나를 따라다녔다.“또 만났네요? 요즘 뭐 해요?”내가 한지영에 대한 첫인상은 더욱 꽝이었다. 한지영은 큰소리만 치고 과시하기를 좋아하며 곧 죽어도 체면이 제일 중요한 부류였다.때문에 나는 대충 얼버무렸다.“한의관 일 때문에 바빠요.”“한의관은 돈 많이 벌어요? 많이 벌지 못하면 나랑 같이 영화 찍어요.”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한지영을 째려봤다. ‘본인은 행인 1도 못하면서 무슨 수로 나랑 같이 찍자는 거지?’나는 더 이상 한지영과 말을 섞고 싶지 않아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할아버지, 제가 도와드릴게요.”나는 일부러 일을 찾아 했다.봉섭 할아버지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그 옆에서 할아버지께 침을 건네는가 하면 소독을 도와드렸다.사장님은 조용히 앉아 있었는데, 몇 차례의 치료를 받고 나니 혈색이 많이 좋아졌다.치료 과정은 매우 순탄했다. 이건 모두 봉섭 할아버지의 뛰어난 의술 덕분이었다.그 덕에 나도 옆에서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치료가 끝난 뒤 봉섭할아버지는 사장님 가족들에게 말했다.“이제 치료는 다 끝났으니 병세도 어느 정도 안정되었습니다. 이변이 없는 한 앞으로 5년 정도는 재발하지 않을 겁니다.”그 말에 두 어르신은 감격에 겨워 봉섭 할아버지의 손을 덥석 잡았다.“선생님, 우리 사위
그날 임민수 내외는 모든 사람을 불러 식사를 대접했다. 그리고 식사 자리에서 나에게 술까지 권했다. 그 모습은 살짝 의외였다.“수호 군, 우리 호섭이가 이렇게 빨리 회복할 수 있었던 건 자네 공이 커. 자, 내가 한 잔 권하지.”임민수의 말에 나는 얼른 뚝딱거리며 술잔을 들어 올렸다.“어르신, 별말씀을요.”나는 솔직히 임민수가 나에게 술을 권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그때 한영심도 잇따라 일어났다.“정 선생, 나도 한 잔 권하네.”“아닙니다, 어르신.”임민수 내외의 존경을 받게 되어 나는 정말 감개무량했다.심지어 유미 사모님마저 직접 나에게 술을 권했다.“수호 씨, 나도 한 잔 올려요.”“사모님, 저만 마실 테니 사모님은 마시지 마세요.”사모님은 아직 사장님을 돌봐야 하기 때문에 나는 살짝 걱정되었다.그런데 사모님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나도 딱 한 잔만 마실 거예요. 우리 호섭 씨가 이렇게 회복할 수 있었던 건 모두 수호 씨 덕분이에요. 호섭 씨는 아직 술을 마실 수 없으니까 내가 대신 마실게요. 그러니 절대 사양하지 마요.”사모님이 이렇게까지 말하니 나는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었다. 결국 술잔을 들어 올려 사모님의 잔과 부딪혔다.식사 분위기는 매우 화목하고 화기애애했으며 전에 있던 안 좋은 일은 모두 털어버렸다.임민수는 어찌나 기뻤는지 취할 때까지 술잔을 놓지 않았다. 심지어 내가 두 어르신을 집으로 모셔 드리겠다고 하니 기어코 필요 없다며 대리까지 불렀다.술을 마시지 않은 한지영은 봉섭 할아버지와 함께 떠났고, 이 선생님은 기분이 안 좋아 살짝 술을 들이켜더니 또 이다연을 꾸짖었다. 결국 이다연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떠나버렸고, 그 때문에 이 선생님은 또 한바탕 화를 냈다.사장님은 나더러 저와 사모님을 상관하지 말라며 대리를 부르고는, 나더러 이 선생님 가족을 데려다주라고 부탁했다.차에 올라탄 순간, 이 선생님은 결국 슬픔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보이셨다.나이도 드신 분이 서럽게 펑펑 우는 모습을 보니 나도 마
“두 분 모두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한번 시도해 볼게요.”“그럼 부탁드릴게요.”“우선 집에 바래다 드릴게요.”나는 대리를 불러 두 분을 집까지 모셔다드렸다.이다연은 어느새 집에 돌아왔는지 우리가 도착했을 때 거실 소파에서 게임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들어오는 걸 보더니 고개를 홱 돌려 제 방으로 들어가 쾅, 하고 방문을 닫아버렸다.이 선생님은 그 순간 욱해서 욕지거리를 퍼부으려고 했지만 이 사모님이 제때 말렸다.이 사모님은 이다예의 연락처를 나한테 몰래 건네주면서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해달라고 부탁했다.나는 그 연락처를 저장한 뒤 이 선생님을 위로하다가 이내 집을 나섰다.나는 사모님 댁에 들러 사잔님과 화인당 및 천수당에 관한 일을 얘기해 볼 생각이었다. 이다연에 관한 일은 나중에 시간 날 때 제대로 대화해 보면 되니까.내가 사모님 댁에 도착했을 때 집에 윤지은과 백연우도 와 있었다.두 사람은 일 때문에 식사 자리에 참석하지 못했다가 일이 끝난 뒤 바로 달려온 모양이었다.두 사람 모두 유미 사모님과 친한 사이라 고가의 선물을 바리바리 싸 들고 왔다.“여정이 자리에 없는 게 아쉽네. 안 그러면 우리 넷이 또 모일 수 있을 텐데.”백연우는 소여정을 언급하며 아쉬워했다.임천호가 강북에 온 뒤로 소여정은 친구들과 완전히 연락이 끊겼다. 때문에 그녀가 지금 어디서 어떻게 지내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그때 윤지은은 여전히 생각을 읽을 수 없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말했다.“잘 지내고 있을 거야. 임천호가 걔를 얼마나 이뻐하는데. 이제는 임천호 아이까지 낳겠다고 나섰으니 임천호가 푸대접하지 않을 건 아니야.”그 말에 백연우가 혀를 끌끌 찼다.“이것 봐. 여정이 곁에 있을 때는 그렇게 투덕대더니, 없으니까 또 걱정하네.”“누가 걱정했다고 그래? 나는 단지 사실을 말한 것뿐이야.”윤지은은 여전히 고집스럽게 인정하지 않았다.그때 백연우가 싱긋 웃으며 윤지은의 팔짱을 꼈다.“이제는 그만 인정해. 우리가 안 지 몇 년인데 누가 어
유미 사모님과 윤지은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놀라움을 표했다.백연우는 네 명 중에서 자유를 가장 좋아하고 구속받는 걸 가장 싫어하는 사람인데, 갑자기 약혼하고 결혼까지 하겠다고 하니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윤지은은 잠깐 침묵하다가 또다시 설득했다.“나는 네가 더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 너 정말 자유를 완전히 포기할 수 있어?”“내가 언제 자유를 완전히 포기하겠다고 했어? 우리 이미 합의했어. 결혼하면 각자 놀고 싶은 대로 놀기로. 승진도 하고 내가 얻고 싶은 것도 얻고, 이거야말로 일거양득 아니야?”그 말에 유미 사모님이 미간을 찌푸리며 끼어들었다.“난 영 미덥지 못한 것 같은데? 설마 너한테 사기 치는 거 아니야? 연우야, 잘 생각해 봐.”백연우는 다리를 꼰 채 소파에 등을 기댔다.“생각할 것도 없어. 내가 평생 바라는 게 딱 두 가지야. 바로 사업과 남자. 총장 아들 잘생겼어. 피부도 하얗고 점잖은 게 딱 내 스타일이야. 게다가 그런 남자가 내 승진을 도와줄 수 있다는 데 내가 땡잡은 거지.”윤지은은 아주 냉정하게 분석했다.“너도 방금 말했잖아. 한 가지를 얻으면 한 가지를 포기해야 한다고. 세상에 그렇게 좋은 일이 어디 있어? 너 그 사람 제대로 알아봐. 두 사람 결혼하면 빠져나오기 힘들어.”“나도 알아. 내 얘기는 이제 그만하자. 우리 함께 모인 것도 오랜만인데 같이 한잔해.”백연우는 바로 화제를 돌렸다.유미 사모님과 윤지은은 더 설득하려는 모습이었지만 백연우는 두 사람에게 그럴 기회를 주지 않았다.그러다가 백연우가 화장실을 갈 때 나도 조용히 뒤따랐다.“정말 결혼해요?”“응.”백연우는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이에 나는 바로 경고했다.“나도 백 쌤 말리려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지은 씨와 사모님 말도 맞잖아요. 결혼은 작은 일이 아니에요. 신중하게 고려하세요.”백연우는 립스틱을 덧바르면서 아를 향해 눈웃음을 날렸다.“내가 결혼한다니까 아쉬워? 결혼하면 너랑 안 놀아줄까 봐?”“솔직히 아쉬운 것도 맞아요. 하지만 백
백연우는 말하면서 내 엉덩이를 힘껏 주물렀다.이런 여자가 요물이 아니라는 게 말이 안 됐다. 사람을 어떻게 이렇게 잘 홀리는지.나는 아무것도 상관하지 않고 이대로 백연우를 안고 싶었다.“그럼 이따 학교 갈 때 배웅해 줄게요.”백연우는 내 턱에 가볍게 입 맞췄다.“이따 봐.”나는 백연우를 놔주고 화장실에서 나왔다. 하지만 하필이면 윤지은과 마주쳤다.나는 순간 도둑이 제 발 저린 듯 어찌할 바를 몰랐다.원래는 다정하던 윤지은의 눈빛은 내가 화장실에서 나오는 순간 살기를 띠었다.“이젠 내 눈앞에서 이러시겠다? 너 아주 발정 났구나?”“오해예요. 난 그저 잘 생각해 보라고 설득하려고 온 것뿐이에요. 다른 뜻은 없어요.”나는 다급히 해명했다.그러자 윤지은이 냉소를 흘렸다.“그래? 그럼 이따 나 집까지 바래다줘.”그건...“왜? 싫어? 백연우를 데려다주고 싶어?”윤지은은 우리의 대화를 들은 것 같았다. 현재로서 윤지은이 나와 백연우 사이를 아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지만, 나는 더 이상 윤지은과 관계가 악화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때문에 흔쾌히 동의했다.“그래요. 이따 바래다줄게요.”윤지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의미심장하게 웃더니 뒤돌아섰다.윤지은이 떠난 뒤 나는 다시 화장실로 들어갔다.“이따 윤지은 씨를 데려다줘야 해서 백 쌤은 데려다주지 못할 것 같아요.”“마음대로 하던가. 난 상관없어.”다행히 백연우와는 대화가 잘 통했다.나는 신속히 화장실에서 나왔다.윤지은과 백연우는 잠시 앉아 있다가 일어섰다. 백연우는 직접 운전해서 떠났고 나는 윤지은을 데려다주기로 했다.윤지은이 조수석에 앉은 순간 늘씬한 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팔짱을 끼고 뜬금없이 물어왔다.“백연우랑 잔 적 있어?”나는 윤지은이 왜 갑자기 이런 질문을 하는지 알 수 없었고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도 막막했다.“대체 뭘 묻고 싶은 거예요?”나는 양심이 찔려 대뜸 물었다.그러자 윤지은이 나를 차갑게 노려봤다.“내 질문에 대답해. 다른 쓸데없는 질문하지 말고
윤지은은 픽 웃음을 터뜨렸다.“그 말은 설마 너랑 잔 여자들이 모두 너한테 먼저 들러붙었다는 거야?”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실 아닌가?애교 누나 외에 내가 먼저 꼬신 사람은 아무도 없다.물론 내가 이렇게 말하면 자기애가 넘치는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내가 신들마저 공분하게 할 미모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기에 이런 말 할 자격은 없다.그때 윤지은이 갑자기 흥미롭다는 눈빛으로 나를 봤다.“왜? 내 말에 자신감을 잃었어? 솔직히 말하면 너 확실히 잘생겼어. 게다가 선천적으로 사람을 끌어당기는 뭔가를 지니고 있어.”“그건 돈 주고 산 남자들한테서 찾을 수 없는 거야. 돈 주고 산 건 재미가 없어. 오히려 너처럼 약간 멍청한 게 사람을 더 끌리게 하지.”나는 윤지은이 오늘 밤 좀 달라 보였다. 왠지 자꾸만 나를 꼬시는 것 같았다. 물론 불장난에 휘말릴까 봐 윤지은의 뜻을 마음대로 추측할 수는 없었다.“뜬금없이 웬 칭찬이에요? 쑥스럽게.”나는 이 기회에 화제를 돌리려고 했다.그때 윤지은이 내 어깨를 살짝 꼬집었다.“그러니까 잘생긴 게 다는 아니라고. 그냥 하느님이 너한테 운을 몰아준 거야. 그러니까 나중에 후회할 짓 하지 마.”윤지은은 마지막 한마디를 하는 순간 살기를 내뿜었다. 그 눈빛과 마주친 순간 내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다.그 순간 나는 윤지은이 전에 했던 경고가 떠올랐다. 윤지은은 나더러 자기 친구들을 눈독 들이지 말라고 했다. 가까운 접촉은 더더욱 하지 말고.그렇다면 나와 백연우의 일은 윤지은이 절데 알게 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윤지은이 내 가죽을 벗길지도 모르니까.나는 너무 놀라 한마디도 하지 못한 채 묵묵히 운전했다.윤지은을 집에 데려다준 뒤 나는 다시 사모님 댁으로 향했다.방금 친구 세 명이 모여 대화를 하는 바람에 나는 옆에서 듣기만 하느라 사장님께 한약관 얘기를 하는 걸 깜빡했다.천수당은 모레면 개업식이라 나는 하루빨리 화인당 일을 사장님께 다시 인수해야 했다.그동안 휠체어만 타고 다녀
때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 사장님 말씀대로 할게요. 우리 화인당과 천수당이 힘을 합쳐 사업을 더 크게 발전시켜 봐요.”“하하. 나도 바라던 바야. 앞으로 화인당에 정형외과 환자가 있으면 천수당을 추천할게. 그쪽에도 마사지를 원하는 고객이 있으면 우리 화인당을 추천해.”마침 정 사장님과 뜻이 맞아 나는 무척 기뻤다.나는 얼른 사장님의 손을 잡고 말했다.“사장님. 우리가 힘을 합치면 분명 이 업계를 점점 더 잘 발전시킬 수 있을 거예요.”그때 유미 사모님이 옆에서 농담조로 끼어들었다.“두 사람 너무 친한 거 아니야? 보는 내가 다 부럽네.”나는 머쓱해서 사장님 손을 바로 놓아주었다.“사장님, 사모님. 일찍 쉬세요. 전 방해하지 않을게요.”“수호 씨, 내가 앞까지 마중해 줄게요.”사모님은 마치 나에게 할 말이 있어 보였다.아니나 다를까 문을 나서자마자 사모님은 조심스럽게 물었다.“수호 씨, 우리 그이 몸 완전히 회복된 거 맞죠?”사모님이 이 말을 할 때 얼굴부터 귀불까지 발그스름했다.그 순간 나는 사모님의 뜻을 이해했다.유미 사모님은 무척 함축적으로 물어보면서도 부끄러워했다. 사모님은 워낙 내성적이라 백연우처럼 남녀 간의 정사를 함부로 입에 쉽게 담지 못했다.나 역시 사모님이 이 순간을 얼마나 오래 기다렸는지 알기에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문제없을 거예요. 자제하면서 하면 돼요.”내 말에 유미 사모님의 얼굴은 확 달아올랐다.“내, 내 말은 그게 아니라.”“사모님, 저 다 알아요. 그러니까 얼른 들어가서 사장님 돌봐드려요.”“그래요.”사모님은 기분이 좋았는지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 미소는 너무 아름답고 눈부셨다.사실 나는 사모님의 마음을 진작 꿰뚫어 봤다. 오늘 특별히 한껏 치장하고 예쁘게 화장한 것도 모자라 섹시한 옷을 입은 걸 보면 사장님을 꼬시려는 게 분명했다.사모님과 사장님 대신 내가 다 기뻤다. 사장님이 건강을 되찾았으니 사모님도 이제 더 이상 성욕을 참을 필요가 없다. 그러면 두 부부의 관계도
요즘 겪은 일이 너무 많은 탓인지 나도 가끔 감회가 새로울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다.특히 사장님처럼 좋은 분이 유골이 된 걸 보니 마음이 무거웠다.우리는 한동안 돌아갈 수 없기에 사모님은 부모님을 불러 사장님의 유골함을 강북으로 가져가 매장했다.두 어르신은 충격이 너무 컸는지 순식간에 더 늙어진 것 같았다. 항상 친아들처럼 생각했던 사위가 그렇게 됐으니. 간암인 줄 알았을 때도 그렇게 믿기 어려웠는데 또 이런 불상사를 겪었으니 당연히 충격이 컸을 거다.하지만 임민수는 딸이 더 걱정됐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유미야, 너 정말 강북에 안 돌아갈 거니?”사모님은 아주 단호하게 말했다.“진실을 파헤치기 전에 절대 안 돌아가요. 엄마, 아빠, 호섭 씨는 두 분께 맡길게요.”사모님은 무척 아쉬워하며 사장님의 유골함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그 순간 사모님의 눈빛은 매우 복잡했다. 아쉬움과 슬픔, 괴로움 그리고 아름다운 지난날에 대한 그리움도 한데 섞여 있었다.나는 절친한 사람을 잃어본 적 없어 사모님의 심정을 깊이 공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가족을 잃은 고통이 얼마나 괴로운지는 알고 있었다.나와 윤지은은 사모님을 위로하려고 했지만, 사모님은 우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아무 말도 하지 마.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아니까.”사모님은 매우 침착했고 엉엉 울지도 않았다.그런 사모님의 모습이 나와 윤지은은 모두 걱정되었다.하지만 사모님이 말했다.“걱정할 거 없어. 내 상태는 내가 잘 알고 있으니까. 비록 슬프고 안타깝지만 이대로 주저앉아 있지 않을 거야. 호섭 씨도 내가 이러는 모습 원하지 않을 거야.”“유미야,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니 다행이야.”윤지은은 감개무량하듯 말했다. 하지만 내가 앞으로 다가가려 하자 이내 나를 째려봤다.‘벌써 하루가 지났는데 아직도 화가 안 풀렸나?’무엇보다 난 아직도 내가 대체 언제 무엇 때문에 윤지은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결국 나는 할 수 없이 묵묵히 두 사람을 따라 호텔로 돌아갔다.윤지은
우리는 희망을 이연화에게 거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때문에 그 백수들이 소식을 전하기 전에 우리는 호텔에서 기다리기만 했다.하지만 윤지은은 호텔에 갇혀만 있으면 사모님이 답답해할까 봐 한가할 때면 사모님과 함께 산책하곤 했다.사모님이 자기 컨디션을 끌어 올리려고 얼마나 노력하는지 우리는 알 수 있었다.하지만 동력과 희망이 없는 탓에 사모님은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Y시에 온 지 사흘 만에 강한나는 다시 강북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러면서 떠나기 전 우리와 함께 시사 자리를 가졌다.“정말 여기 남아서 조사할 거야?”나와 윤지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자 강한나가 말했다.“알았어. 나도 도와줄 건 없으니 성공하길 빌게.”나와 윤지은은 곧바로 강한나가 우리에게 할 말이 있다는 걸 눈치챘다. 아니나 다를까, 사모님이 화장실 간 틈에 강한나는 얼른 우리에게 말했다.“호섭 씨 시신 어느 때 화장할 거야?”나와 윤지은은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몰라. 유미가 아직 동의하지 않았어.”그 말에 강한나가 말했다.“시체를 화장하지 않아도 시체에서 단서를 찾는 건 어려울 거야. 난 고인 편히 쉬게 해주는 게 좋다고 봐.”“하. 그런데 문제는 유미가...”사모님이 아쉬워하는 게 문제다.화장하지 않으면 그래도 보러 갈 수 있지만 화장하면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사실 나도 강한나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우리도 그 말 이해해요. 사모님은 저희가 설득해 볼게요.”식사를 마친 뒤 강한나는 그 길로 떠났다.나와 윤지은은 호텔로 돌아가는 내내 어떻게 말을 꺼낼지 고민했다.“두 사람 먼저 돌아가. 난 장례식장에 가볼 거니까.”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우리는 사모님이 또 사장님 보러 간다는 걸 알았다.하지만 장례식장도 규정이 있는데, 아무 때나 들여보낼 수 있을 리가 없다.그건 다른 것도 아닌 시신이니까.그때 윤지은이 입을 열었다.“유미야, 이번에 보고 난 뒤 호섭 씨 편히 자게 해주자.”“안 돼!”사모
“왕정민 이 파렴치한 놈. 어떻게 이럴 수 있지?”분명 자기가 잘못했으면서 뻔뻔하게 애교 누나한테 집착하다니.“애교 누나는 그럼 어떻게 처리했어요? 신고는 했어요?”[애교가 예전보다 많이 강해졌더라고요. 그걸 다시 왕정민한테 보냈어요. 심지어 안에 뭔갈 더 추가해서.]“네? 하하. 애교 누나가 정말 변했네요.”나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그러니까요. 그것도 다 왕정민 때문에 할 수 없이 변한 거긴 하지만요. 애교가 만만한 줄 알고 애교만 괴롭히다니. 그렇게 대단하면 그 여자를 그렇게 괴롭히지... 아마 죽었다 깨어나도 그렇게는 못 할 걸요.][그런 사람들은 원래 그래요. 여자들은 뭐 드세고 화를 자주 내는 여자가 되고 싶어서 되겠어요? 다 남자들이 행복한 줄 모르고 기어오르니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변한 거죠.][특히 우리 여자들은 가끔 독해질 필요가 있어요. 독하지 않으면 남들이 괴롭혀도 되는 줄 알아요...]나는 형수의 말에 백 번 동의한다.애교 누나가 이토록 강해졌다니 나는 많은 걱정을 덜 수 있었다. 형수도 마찬가지고.두 사람이 다른 사람의 위협에도 흔들리지 않아야 내가 마음 놓고 할 일을 할 수 있다.형수와 한참 얘기한 뒤 나는 곧바로 애교 누나에게 전화했다.“누나, 왕정민 일은 왜 말 안 했어요?”애교 누나 목소리는 여전히 간질거리고 듣기 좋았다.[수호 씨가 Y시에 있는데 얘기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어요? 수호 씨 가 나 때문에 와달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그리고 나 이제 많이 변했어요. 다른 사람의 보호만 받으면서 살 수는 없어요.][그동안 아빠한테 반항하면서 독립적인 여자가 될 거라고 큰소리쳤는데, 지금껏 한 번도 그렇게 산 적이 없어요.][예전에 결혼에 묶여 나를 잃었고, 행복한 결혼만 있으면 모두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알았어요. 여자는 자기 마음이 강해져야 진짜 강한 거예요.]애교 누나의 말을 들으니 나는 순간 누나를 다시 알게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이 사람이 아직도 내가 알던 나약하기만 하고, 무
“내가 방 하나 더 잡을게요.”나는 말하면서 방을 나가려고 했다. 그때 뒤에서 갑자기 사모님 목소리가 들렸다.“수호 씨, 먼저 내 침대에서 눈 붙여요.”고개를 돌아보니 사모님은 안쪽으로 자리를 옮겨 내가 누울 공간을 내주었다.나는 속으로 거절했다.비록 사모님이 다른 마음 없이 그저 나를 휴식하라고 호의를 베푸는 거라는 걸 알지만, 사장님이 그런 일을 당했는데 내가 사모님과 같은 침대에 누워 있는 건 말도 안 됐다.게다가 윤지은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는데, 내가 동의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나는 결국 거절했다.“아니에요. 가서 다른 방 구하면 돼요.”나는 다급히 방을 나가 프런트 데스크로 달려갔다.처음 온 날 우리는 사실 싱글룸 세 개를 잡았다. 하지만 나중에 사모님 상태가 걱정되어 나와 윤지은이 사모님 방에 들어와 지내게 되면서 나머지 싱글룸 두 개를 취소했다.확인 결과 더블룸 하나가 나왔다는 말에 나는 얼른 그 방을 잡았다. 그러면 사모님과 윤지은이 더블룸에서 함께 지내고 내가 싱글룸에서 지내면 되니까.나는 카드키를 챙겨 방으로 들어갔다. 이 방은 조용한 데다 환경도 좋아 편히 잘 수 있을 것 같았다.하지만 내가 침대에 눕기 바쁘게 핸드폰이 징징 울렸다. 전화한 사람은 다름 아닌 형수였다.요즘 사장님 일 때문에 여기저기 달려 다니느라 형수와 오랫동안 얘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때문에 마침 조용한 틈을 타 나는 형수와 얘기하려고 여상 통화를 받았다.형수는 사모님 상태를 걱정하며 일의 진전을 물어봤다.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쉽지 않아요. 조사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어 한동안 여기서 지내야 할 것 같아요.”[수호 씨 사장님 내외가 수호 씨한테 그렇게 잘해줬는데, 이번 기회에 유미 씨 옆에서 많이 도와줘요.]형수가 말했다.그 말에 나는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네, 저도 알아요. 형수는 요즘 어때요?”[좋아요. 잘 먹고 잘 자고 이제 천천히 걸을 수도 있어요.]“진짜예요? 사진 찍어 보내 봐요.”나는 너무 기뻐 흥
내가 노랑머리한테 준 것도 적은 돈이 아니었다. 족히 10만 원 가까이는 됐으니까. 백수들한테는 이것도 큰돈이나 다름없다.노랑머리 역시 같은 생각이었는지 결국 입을 다물었다.아직 대답을 못한 사람들은 얼른 다른 질문을 하라고 나를 재촉했다.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두 번째 질문을 했다.“그럼 혹시 이연화 혹은 조금희가 요즘 낯선 사람과 만난 걸 본 사람이 있어요?”그 물음에 모든 사람은 고개를 저었다. 그 순간 나는 실망했다.“세 번째 질문, 혹시 누가 나 대신 이연화를 감시할래요?”모든 사람이 동시에 손을 들었다.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좋아요. 그럼 다 같이 해요.”“그럼 돈은 어떻게 계산하는 거예요?”노랑머리가 물었다.나는 가방에서 또 돈 두 뭉치를 꺼냈다.“세 명이 감시해요. 한 사람당 200씩 줄게요.”세 사람의 눈은 커다래지더니 급기야 반짝반짝 빛이 났다.나는 세 사람에게 귀띔했다.“이 돈은 수고비예요. 누가 만약 유용한 단서를 제공하면 이 외에도 큰 보상을 받게 될 거예요.”‘역시 돈이 있으니 뭐든 쉽게 되네.’이 사람들이 나를 위해 성실하게 일하게 하려면 이 사람들 마음을 매수하는 게 우선이다.몇백만 원은 지금의 나한테 큰돈이 아니다. 무엇보다 사장님과 사모님을 도울 수 있다면 나는 뭐든 할 수 있다.모든 일을 마친 뒤 나는 다시 호텔로 돌아갔다.윤지은의 말을 들어보니 사모님은 이미 잠든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사모님 정서가 여전히 불안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기분이 다운된 사람은 쉽게 졸리고 무기력해지고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나는 방금 전 일을 윤지은에게 말했다.“이번 일 조사하기 엄청 어려울 거예요. 언제 진실이 밝혀질지도 모르겠고. 장기전을 할 준비는 됐어요?나는 윤지은을 보며 말했다.그러자 윤지은이 나를 째려봤다.“그걸 말이라고 해? 유미는 내 베스트 프렌드야. 유미한테 이런 일이 생겼는데 내가 같이 있어 주지 않으면 누가 같이 있어 줘? 그러는 너야말로,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하는데? 설마
나와 윤지은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우리는 사모님 마음이 편치 않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사모님, 비록 어렵지만 아무 희망도 없는 건 아니에요. 우리가 끝까지 견지하면 분명 수확이 있을 거예요. 게다가 사장님이 하늘에서 우리를 지켜줄 거예요.”사장님을 언급하자 사모님의 정서는 드디어 조금 안정되었다. 사모님은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호섭 씨, 정말 우리를 지켜줄 거야?”“당연하지.”윤지은도 사모님을 위로했다.그때 내가 분석했다.“제가 볼 때 이연화가 거짓말하는 것 같아요. 그 여자가 한 말 진짜 아니에요.”“너도 그래?”보아하니 윤지은도 똑같은 느낌을 받은 모양이었다.“넌 어떻게 보아냈는데?”“느낌이 그래요. 이연화가 그렇게 드센데 남편 일을 물어보지 않았다는 게 말이 안 돼요. 게다가 조금희 카드에 입금된 2억이 이연화랑도 연관된 것 같아요.”이건 내 직감이다.나는 왠지 이연화 같은 신분과 배경에 성깔 있는 여자라면 통제욕이 엄청날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여자가 자신을 배신했던 남자를 나 몰라라 방치할 수 있을 리가 있을까?그건 그 여자 성격에 부합되지 않는다. 윤지은의 관점 역시 나와 어느 정도 비슷했다. 윤지은은 내 말에 일리가 있다며 맞장구치면서 보충했다.“그리고 또 이연화가 2억을 얘기할 때 자꾸 눈빛을 피했어. 그건 거짓말한다는 표현이야.”“문제는 그 여자가 진실을 말하지 않으려 한다는 거예요.”이건 가장 골치 아픈 부분이다.그때 윤지은이 말했다.“그건 간단해. 내가 사람을 시켜 그 여자를 감시하라고 할 거야. 그러면 분명 허점을 보일 거야.”이런 건 역시 돈이 많아야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이다.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진짜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 있다.나는 얼른 맞장구쳤다.“만약 그곳 주민을 감시자로 붙여두면 더 좋을 거예요. 그 사람들이 이연화 행적을 더 잘 알고 있을 테니까요.”윤지은은 팔짱을 끼고 나를 바라봤다.“그건
사모님의 기세에 눌린 이연화는 오만하고 안하무인이던 태도가 싹 사라지고 다급히 대답했다.“말할게, 말한다고. 이거 먼저 놔.”사모님은 그제야 이연화 머리채를 놔주었다.이연화는 머리를 마구 문질러댔다. 심지어 얼굴까지 시뻘게진 걸 봐서는 사모님의 공격에 적지 않게 다쳤음을 알 수 있었다.이연화는 한참 동안 머리를 쓰다듬은 뒤 그제야 입을 열었다.“그 2억은 나도 어떻게 된 건지 몰라요. 그 인간이 우리 모자한테 주는 보상이라면서 줬어요.”“당신은 그 사람 아내인데 모른다는 게 말이 돼?”우리는 여자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러자 이연화가 조급히 말했다.“내 말 다 사실이에요. 난 정말 어떻게 된 건지 몰라요. 우리가 부부인 건 맞지만 명의상 부부나 다름없었어요. 그 인간이 나 몰래 불여우를 만나다가 잡힌 적도 있어요.”“그때 그 인간이 이혼만 하지 말자고 싹싹 빌지 않았으면 진작 헤어졌을 거예요.”여자의 말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어 나는 차가운 표정으로 물었다.“그 2억이 어디서 났는지 몰랐다면, 조금희 씨가 불치병이라는 건 알았겠죠?”이연화는 고개를 끄덕였다.“그건 알아요. 그 인간이 오래전에 내 앞으로 보험을 들어 놓을 걸 줬었거든요. 자기가 가면 보험사에서 돈이 나올 거라면서.”이건 모두 일가 조사했던 내용이었다. 다만 이연화가 말한 사실이 모두 진짜인가 하는 게 문제였다.나는 이연화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봤다.“그날 장례식장에서 화장을 미뤄달라고 했는데 왜 안 들었어요?”“나 할 일 많아요. 당신들과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 인간이 당한 사고가 단순 사고든 인위적인 사고든 난 관심 없어요. 그 인간이 내 앞으로 돈을 남겼으니 난 그 돈을 얼른 받아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싶었어요.”이연화는 조금희와 더 이상 감정이 남아 있지 않아 조금희 일에 일말의 관심조차 없어 보였다.하지만 2억의 존재를 모른다는 게 진짜일지 의문이었다.만약 진짜라면 사건의 실마리는 또 끊기게 된다.나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질
그렇다면 우리의 추측이 거의 맞는 거로 증명이 된 셈이다. 게다가 이연화는 분명 뭔가를 알고 있을 거다.“이러면 이연화 모자만 찾으면 사건의 진실을 파헤칠 수 있겠네요.”우리는 일이 이렇게 순조로울 줄 몰랐다.심지어 사모님은 마음이 급해 벌떡 일어섰다.“더는 못 기다리겠어. 나 지금 당장 이연화 만나러 갈래.”“유미야. 아직 조급해하지 마. 지금 이연화 모자가 어디 있는지 모르잖아. 이렇게 해, 내가 한나한테 조사해 보라고 할게.”윤지은은 강한나에게 전화해 이연화 모자가 사는 곳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직무상 편의를 이용해 강한나는 곧바로 이연화 모자의 거주지를 찾아냈다.[미리 말하는데, 이연화 모자 좋은 사람 아니야. 이연화 아버지는 판자촌 터줏대감이라 되도록 갈등을 만들지 마.]“알았어.”이연화가 만만치 않다는 걸 알지만 우리는 무조건 가봐야 했다. 그건 사모님한테는 더더욱 간절했다.아무리 그곳에 불바다라도 사모님은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것만 같았다.이연화 집 주소를 알아낸 우리는 곧장 그곳으로 향했다.판자촌은 낡은 건물 지역이라 외지고 낡은 곳에 있는 데다 교통도 불편했다. 다만 이연화의 집은 그 판자촌에서 가장 큰 집이었다.우리가 이연화의 집을 찾았을 때 이연화는 집에서 화투를 치고 있었다.남편이 죽은지 얼마 되지 않는 여자가 이곳에서 한가하게 화투나 치고 있다니 침 한심했다.“이연화 씨, 할 얘기가 있어서 찾아왔어요.”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그러자 이연화는 나를 흘긋 보더니 말했다.“나 지급 바빠서 시간 없어요.”“이건 당신 남편 조금희 씨와 관련된 일이라 이연희 씨가 저희랑 반드시 가주셔야 해요.”기분이 살짝 언짢아진 나는 당연히 다정한 목소리가 나가지 않았다.하지만 이연화는 자기 구역에 있어 무서울 게 없어 심지어는 나에게 소리까지 질렀다.“반드시? 내가 왜? 당신들이 누군데? 경찰이야? 내가 왜 당신들 말을 들어야 해? 당장 꺼져. 화투 치는 거 방해하지 말고.”여자는 말하면서 다시 화투 치는 데
“보아하니 두 사람 모두 조금희 씨 몸에 종양이 퍼지고 있어 곧 죽는다는 걸 알고 있었네요.”“혹시 조금희 씨가 뒤에서 꼼수 부린 거 아닐까요?”나는 문득 뭔가 떠올라 의문점을 제기했다.현재 상황으로 분석해볼 때 조금희의 혐의가 가장 높았다.그때 윤지은이 말했다.“자세한 건 조사해 봐야 하지만 나도 조금희 씨가 이상한 것 같아.”사모님은 참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혔다.“다음에 조사할 때 나도 끼워줘. 나도 같이 조사하고 싶어. 두 사람 말 맞아. 호섭 씨가 억울한 죽임을 당했는데, 나라도 진실을 밝혀 억울함을 풀어줘야 해. 이게 내가 살아갈 유일한 동력이야.”사모님은 말하면서 또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슬픔 속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와 윤지은은 항상 사모님 곁을 지킬 거다.그날, 우리는 곧장 종양 전문 병원에 가 조금희의 병력을 조사했다.조금희 몸에서 종양이 발견된 건 1년 전인데, 처음에 양성이었다가 악성으로 번지기까지 적지 않은 돈을 들였던 거로 확인되었다.게다가 조금희는 불치병에 걸리기 전에 아내와 갈등을 겪었다.“자세한 건 저도 모르는데, 조금희 씨가 우리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젊은 여자가 항상 와서 돌봐줬어요. 그러다가 부인이 병원에 찾아와 그 아가씨를 때렸고요. 그 일은 병원 사람들 다 알아요.”‘그렇다는 건 조금희가 바람을 피웠다는 거네?’조금희가 이런 사람일 주은 생각지도 못했다.윤지은은 여간호사에게 돈다발을 건넸다. 그러자 간호사는 아주 기뻐하며 떠나갔다.조사를 마친 뒤 우리는 밖에서 식당을 찾았다.식당에 도착한 윤지은은 분석을 시작했다.“조금희 씨가 불치병에 걸렸고, 예전에 아내와 아들한테 잘못을 저질렀다면 혹시 자기가 얼마 못 살 걸 알고 호섭 씨를 배신해 돈을 챙겼던 건 아닐까?”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그럴 가능성이 커요. 만약 조금희 씨 계좌에 큰돈이 입금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아쉽지만 이곳은 강북이 아닌 Y시다. 안 그랬다면 윤지은의 인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