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었지. 그런데 몸이 안 좋았다고 했잖아. 그래서 검사하고 하려고 얘기해 보려고 했지.]“하긴, 천천히 해. 서로 소통만 잘하면 점점 더 좋아질 거야.”나는 임설아의 몸을 노린 적도 없고, 두 사람이 헤어지길 바라는 것도 아니다.솔직히 말하면 두 사람이 백년해로하기를 더 바란다.지금의 나는 남주 누나처럼 개과천선했다. 때문에 미색에 절대 홀리지 않을 거라고 이미 다짐했다.실력이 없으면 미색을 탐하면 안 된다. 때문에 나는 우선 내 실력부터 키워야 한다.우리는 그 뒤로도 한참 얘기를 하다가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끊은 뒤, 나는 살금살금 문 앞으로 다가가 문틈 사이로 거실을 확인했다.고수연은 여전히 소파에 앉아 가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그 모습을 보니 위로해야 할지 무척 고민되었다.위로 하자니, 내키지 않았고. 그냥 넘어가자니, 너무 매정한 것 같았다.나는 침대에 한참 동안 앉아 있다가 끝내 참지 못하고 거실로 나갔다.“수연 누나, 울지 마세요. 계속 울면 실명할 수도 있어요. 그런다고 그 남자가 마음 아파하지는 않잖아요.”이 말을 하지 말아야 했는데, 이 말을 들은 고수연은 더 서럽게 울었다.“괴로운 걸 어떡해요? 아이 키우고, 시부모님 모시는 게 어디 쉬워요? 내가 늙으면 남편이 싫어할까 봐, 관리도 열심히 했어요.”“충분히 잘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왜 바람피우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고수연은 말하면서 계속 흐느껴 울었다.나는 얼른 티슈 몇 장을 뽑아 건네며, 부족한 말솜씨로 고수연을 위로했다.“변심한 남자는 곁에 둬도 소용없어요. 차라리 일찍 버리세요. 그리고 아직 젊은데, 일자리도 찾으면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어요.”“말이 쉽지, 벌써 경력 단절된 지 몇 년이 됐어요. 그런 사람을 누가 받아줘요?”“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잖아요. 앞을 내다봐요. 그래야 사는 게 희망이 있죠.”나는 위로하면서도 막막했다.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계속 헤어 나오지 못한다면 나도 방법이 없었다.아직 결혼도 안 해
진용진은 그에 반해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퉁명스럽게 말했다.“고수연, 당신도 그만해. 곧 이혼할 사이에, 이러는 거 싸 보여.”고수연은 그런 말을 듣고도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맞아, 나 싸. 당신이 바람피운 거 알면서도 이래. 내가 여자 망신시키고 있어. 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어. 나도 나를 어떻게 하지 못하겠다고. 당신을 떠나면 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어떡해?”고수연은 말하면서 또 흐느껴 울었다.진용진은 아예 이골이 났는지 귀찮은 티를 팍팍 냈다.“내가 당신을 가장 싫어하는 게 뭔지 알아? 바로 이런 점이야. 나를 사랑한다면서 사랑은 하나도 느껴지지 않아. 그저 맨날 껌딱지처럼 달라붙는 것만 좋아하고.”남자도 자유가 필요해. 사적인 공간이 필요하다고. 당신이 너무 옥죄어 와서 숨쉬기 바빠. 나 이제 더 이상 못 참겠어.”고수연은 황급히 사과했다.“앞으로 안 그럴게.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해, 집에만 잘 돌아오고, 나를 계속 사랑해 주면 돼.”고수연은 말하면서 진용진을 끌어안고 입 맞췄다.그러다 보니 진용진도 점차 반응했다.곧이어 진용진은 고수연을 품에 안고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그건 당신이 스스로 말한 거다. 내가 강요한 거 아니야. 자, 엎드려. 우선 한 발 빼자...”고수연은 순순히 엎드려 다정하게 물었다.“여보, 이 높이 괜찮아?”진용진은 음탕한 미소를 지었다.“그래, 아주 좋아.”말하면서 비릿한 미소를 짓는 진용진의 모습에 나는 더 이상 보기 힘들었다.진용진은 분명 고수연의 몸만 탐하는 건데, 고수연은 체면도 다 버린 채 진용진한테 잘 보이려고 애쓰고 있으니.얼마 지나지 않아 침실에서 야릇한 신음이 흘러나왔다.그걸 듣고 있는 게 괴로워, 나는 물건을 내려놓고 바로 집을 나왔다.나는 동네 공원에 앉아 답답한 마음을 추슬렀다.같은 고씨 집안 사람이고, 모두 미녀인데, 두 사람이 왜 이렇게 다른지?형수는 독립적인 여지인데, 고수연은 남자의 부속품 같았다.분명 상대가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
나는 너무 화가 나서 핸드폰을 꺼내 형수한테 상황을 말하려고 했다.하지만 폰을 꺼내자마자 고수연이 빼앗아 갔다.“뭘 또 말해요? 여기 우리 집이거든요. 내가 지내도 된다면 지내고, 안 된다면 안 되는 거지.”그 말을 들은 순간 화가 치밀었다.“좋아요, 갈게요. 핸드폰 돌려줘요.”“안 돼요. 우선 짐부터 싸요. 그쪽이 후회할까 봐 먼저 주기 싫어요.”고수연은 나를 아예 소인배 취급했다.분명 소인배는 제 남편 진용진인데, 그런 인간한테는 매달리고, 내 앞에서는 위세를 떨고 있다니.나는 속으로 고수연에게 욕지거리를 퍼부었다.솔직히 형수만 아니면, 당장 이 여자의 뺨을 후려갈기고 싶었다.나는 애써 화를 억누르며 말했다. “갈 테니까 걱정하지 마요. 난 그쪽처럼 낯가죽이 두꺼운 사람은 아니니까.”하지만 입 밖으로 나온 말은 고수연을 비아냥거리는 말이었다. 이건 어쩔 수 없었다.내 말을 들은 고수연은 갑자기 욱해서 소리쳤다.“누구더러 낯가죽이 두껍다는 거예요? 다시 한번 말해 봐요.”고수연은 말하면서 나를 향해 손톱을 드러냈다.그 틈에 나는 얼른 핸드폰을 빼앗으려 손을 뻗었다.다만 고수연이 발 빠르게 움직여 내 손을 피했다.그렇게 싸우다 보니 신체 접촉은 피할 수 없었다.그래도 남자라 여자 하나 제압하기에는 수월했으나, 팔이 다친 바람에 한 손으로 상대를 제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고수연은 생각보다 악랋해서 나를 이길 수 없자 다친 내 팔을 세게 잡았다.갑자기 전해지는 고통에 나는 악, 하고 비명을 질렀다. 심지어 눈물도 찔끔 흘러나왔다.나는 잔뜩 분노해서 고수연을 노려봤다.“미쳤어요? 팔 다친 거 안 보여요?”고수연은 뻔뻔하게 대답했다.“아니까 팔 공경한 거지. 여자인 나한테 폭력을 쓰는 그쪽도 비겁한 건 똑같으면서.”“정말 제정신 맞아요? 남편이 바람피웠는데도 매달리며 굽신거리다니.”나 역시 독설을 퍼부었다.고수연은 그 말에 나를 독하게 노려봤다.“바람피운 게 어때서요? 세상에 바람 안 피우는 남자가 몇이나 돼요
“집? 차? 아니면 아무 걱정 없이 살게 해줄 수 있나? 본인 하나 챙기기도 어려우면서. 당신 같은 남자는 결혼하면 안 돼, 안 그러면 여자도 같이 고생이니까.”고수연의 말은 비수처럼 내 가슴을 꽂았다.내가 가난한 건 사실이다.하지만 그게 그렇게 큰 죄인가? 가난하다고 결혼할 자격도 없나?그대로 떠나려고 했지만, 나는 참지 못하고 다시 돌아갔다.고수연은 차가운 눈으로 나를 쏘아봤다.“뭐야? 나 때리려고? 털끝 하나라도 건드려 봐!”“때리지 않아요. 형수 동생이라, 형수를 봐서라도 건드리지 않아요. 하지만 잘 들어요. 나 정수호는 평생 가난하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 사람 무시하지 마요. 그리고 남편이 바람피우는 것도 상관없으면 혼자 그런 남편한테 매달리면서 비굴하게 살아요. 당신 언니까지 피해주지 말고.”말을 마친 나는 뒤돌아 떠났다.고수연이 뒤에서 쌍욕을 하든 뭘 하든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르엘 빌라에서 나온 나는 기분이 매우 가라앉았다. 그동안 이처럼 기분이 안 좋았던 적은 처음이었다.심지어 애교 누나의 아버지한테 무시를 당했을 때보다 더 괴로웠다.그분은 그래도 강북시 부시장이니, 나 같은 가난한 사회 초년생을 무시하는 게 당연하다.하지만 고수연은 직장도 없는 여자인데, 그런 사람도 나를 무시한다는 게 충격이었다.고수연이 현실적이고 속물이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현실이 왜 이렇게 가혹한지 자꾸만 생각하게 됐다.가난이 언제부터 잘못이 되었을까?누군 뭐 가난한 사회 초년생이고 싶어서 이렇게 사나?남 아래에서 허리 굽히며 사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가난한 사람은 왜 결혼할 자격도 없을까?나도 계속 노력하는데, 그런 여자 눈에는 내가 결혼할 자격도 없는 사람으로 보인다니.인정한다. 이번 일을 계기로 나는 자존심이 크게 꺾였다. 하지만 그런 말을 듣고도 아무렇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기분이 너무 안 좋아, 나는 또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오늘 하루, 한 달 치 담배를 피우는 것 같네.’내가 가라앉은 기분
형수에게 다시 전화할 땐 벌써 통화 중이었다.보아하니 이미 동생과 얘기 중인 듯했다. 때문에 나는 그저 속으로 두 사람 사이에 충 돌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나는 또 담배 한 대를 꺼내 입에 물었다. 이제 어느 정도 마음이 가라앉았다.나는 형수의 전화를 기다렸다.전화를 받고 나서 이곳을 떠나 살 집을 알아볼 생각이었다.내가 물론 부자는 아니지만, 손에 돈은 그래도 조금 쥐고 있었기에 셋집 하나 구하는 건 문제없었다.이제 더 이상 남의 밑에서 눈치 보며 사는 생활은 지긋지긋했다. 남이 내 과거를 무시하는 건 더욱 싫고.한참 뒤, 형수한테서 전화가 왔다. 하지만 형수의 목소리는 조급해 보였다.[수호 씨, 얼른 다시 올라가 봐요. 수연이 맞았어요.]“네? 대체 무슨 일이에요?”[진용진 그 인간이 다른 여자를 데리고 집에 갔대요. 수연한테 두 사람 시중을 들라고 했대요. 그게 인간이에요?]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그건 고수연이 자초한 일 아닌가 하고.남자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걸 알면서 비굴하게 붙어 있었으면서, 상대가 자신을 사랑해주는 게 이상한 거 아닌가?자신마저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남의 사랑을 바란다는 것 자체가 우스웠다.하지만 형수를 위해서 나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요. 바로 올라가 볼게요.”전화를 끊은 뒤, 나는 또 차에서 내려 고수연의 집으로 올라갔다.사실 마음 같아서는 돌아가기 싫었다. 본능적으로 거부하고 있었다.하지만 형수를 위해 참아야 했다.고수연 집에 도착해 보니, 그녀는 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진용진, 당신이 사람이야? 당신은 짐승도 아니야.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어?”집안 물건은 또 이것저것 깨져 엉망이 되어 있었고, 고수연은 맞아서 여기저기 멍들어 있었다.하지만 진용진과 그 요염하게 생긴 여자는 소파에서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짓을 하고 있었다.내가 들어온 걸 본 진용진은 펄쩍 뛰었다.“젠장, 당신 누구야? 아, 생각났다. 용천 호텔에서 봤었지?
“아이는 걱정하지 마. 우리 달링이 잘해줄 거야.”진용진은 품 안에 있는 요염한 여자를 확 끌어안으며 말했다.고수연은 그 말에 눈이 휘둥그레지며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뭐라고 했어? 그 여자한테 내 애를 맡기겠다고? 동의 못해!”“당신 동의는 필요 없어. 빈털터리로 나가든가, 아니면 내 말대로 우리 셋이 같이 살면서, 당신이 우리 시중 들어.”‘이건 말이야 방귀야? 어떤 여자가 이런 수모를 견디겠어?’내가 고수연이면 당장 진용진 얼굴을 손톱으로 뜯어놓았을 거다.하지만 고수연은 그저 목 터져라 울면서 진용진을 인간도 아니라고 욕하기만 할 뿐이었다.그 모습이 너무 한심했다.‘이 상황에 운다고 뭐가 달라지나? 당장 자기한테 유리한 증거를 확보해서 둘을 괴롭히는 게 해야 할 일 아닌가?’나는 다가가 고수연을 부축했다.“그만 울어요! 두 사람 아직 이혼도 안 했고, 여기 고수연 씨 집이에요. 그런데 저 인간이 대놓고 내연녀를 데려왔으니 당장 사진 찍어서 증거 확보해야죠.”“정 안 되면, 그거로 소송 걸면 증거도 확실하니 빈털터리로 쫓겨 나는 게 누구인지는 모르는 일이죠.”내 말을 들은 진용진은 얼굴이 어두워졌다.“젠장, 어디서 참견하고 지랄이야? 그리고, 우리 집에 왜 왔어? 내 마누라랑 그렇고 그런 사이 아니야? 두 사람 거기 딱 서. 나도 사진 찍어 증거 확보할 테니까. 고수연, 감히 나를 배신해? 나를 상대로 바람피워? 아주 죽었어!”진용진은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우겼다.그때, 나는 얼른 달려가 진용진 손에서 핸드폰을 빼앗아 바닥에 내팽개치고 발로 밟아 망가뜨렸다.“찍기는 뭘 찍어, 너도 잘못했으면서. 어디서 더러운 흙탕물을 튕겨? 역겨워서, 원!”진용진 옆에 있던 여자가 벌떡 일어나 나를 삿대질하며 욕지거리를 퍼부었다.고수연도 호락호락한 여자가 아니었기에 곧바로 달려들어 그 여자와 싸우기 시작했다.진용진도 그사이 나에게로 달려들었다.지금 나는 다른 실력은 없어도, 남자 낭심을 공격하는 기술 하나는 날로 정교해지고 있
“뭐야? 당신 뭐 하려는 거야?”진용진은 바지를 한사코 움켜쥐고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그러자 고수연이 버럭 소리쳤다.“내가 구역질 난다며? 그럼 더 구역질 나게 해줄게. 나 당신 X폭행할 거야!”나는 순간 넋을 잃고 말았다.‘이게 대체 무슨 소리지? 여자가 남편을 X폭행할 거라고?’‘이건 사나운 정도가 아닌데!’진용진은 다급히 소리쳤다.“당신 미쳤어? 그러고도 여자야? 당신 같은 여자가 어디 있어?”고수연은 말없이 진용진의 뺨을 후려갈기더니 아예 그를 소파 위로 밀쳤다.“내가 여자인지 아닌지 모르겠어? 나랑 할 때는 신나 하더니, 질리니까 이제는 내가 여자가 아니라고? 내 의견 물었어?”고수연은 벌써 남편의 바지를 벗겨 버렸다.그 모습은 정말 뭐라도 할 것만 같았다. 나는 순간 이대로 가야 할지 남아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했다.“저기... 내가 나간 뒤에 하면 안 돼요?”나는 고수연의 의견을 물었다.하지만 고수연은 나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그걸 말해야 알아요? 당장 안 가고 뭐 해요.”‘젠장, 남의 호의도 몰라주고, 배은망덕하기는!’나는 얼른 뒤돌아 그 집을 빠져나왔다.내가 나오자마자 집 안에서 진용진의 비명이 들렸다.그 소리에 소름이 끼칠 지경이었다.‘저 여자가 대체 뭔 짓을 했길래? 설마 남편 그곳을 물어뜯은 건 아니겠지?’‘정말 그렇다면 너무 지독한데?’나는 다시 차에 올라 형수에게 전화했다.“형수, 걱정하지 마요. 누나 동생분이 진용진을 이미 제압했어요.”[그렇다니 다행이네요. 전에 일은 내가 수연한테 잘 얘기할 테니까 계속 거기 묵는 건 어때요? 그럼 나도 마음 놓일 텐데.]나는 다급히 거절했다.“아니요. 때려죽여도 싫어요. 형수, 저 이제 돈도 벌고 있으니 방 구하는 건 스스로 할 수 있어요.”[그런데, 수호 씨가 밖에서 지내는 게 걱정이에요.]‘이 상황에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저 남자예요. 그런데 뭐가 걱정이에요?”[다른 여자가 수호 씨 몸 노릴까 봐 그러죠.]형수는 농담 섞인
[이미 결심했다는데, 강요할 수는 없죠.]나는 형수한테 미안한 마음에 입을 열었다.“형수, 제가 최대한 진동성 마음 형수한테로 되돌려 놓을게요.”[그 인간이 어떻게 하든 이젠 상관없어요. 난 고수연과 달라요. 고수연은 남자한테 의지해 살지만, 난 그럴 필요 없어요. 지금 진동성과 서로 사생활 터치하지 않고, 생활은 같이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지금 이렇게 사는 부부들 많잖아요.]나는 여전히 시름 놓을 수 없어 조심스럽게 물었다.“형수, 혹시 다른 남자 만날 거예요?”형수는 내 말에 담긴 뜻을 알아차리고 피식 웃었다.[나를 만족시켜 줄 수 없다면서 내가 밖에서 젊고 잘생긴 남자 만나는 것도 안 돼요? 욕심이 너무 지나친 거 아니에요?]“형수, 정말 젊고 잘생긴 남자 만나려고요?형수의 말을 들으니 나는 너무 아쉬웠다. 심지어 질투까지 났다.사실 나는 형수가 다른 남자를 만나는 게 싫었다.하지만 형수는 내가 원하는 답을 주지 않았다.[진동성이 뭘 하든 상관없다고, 평생 혼자 외롭게 살면 나만 손해 아닌가요? 그리고 이 나이 여자들은 남자 사랑이 없으면 빨리 늙어요.][수호 씨도 이제 결정 내렸으니, 앞으로 나 상관하면 안 되죠. 나도 수요가 있는데.]나는 형수의 말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형수는 나더러 우선 지낼 곳을 알아보라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고수연한테 상황 설명을 잘할 테니 좋기는 동생네 집에 묵으라고 말했다.전화를 끊은 뒤, 내 기분은 조금 이상했다.사실 형수 말은 틀린 것 하나 없었다. 하지만 서운한 건 어쩔 수 없었다.사람은 워낙 이렇게 욕심이 많다.이것도 가지고 싶고, 저것도 가지고 싶고.이런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알기에 나는 스스로를 위로했다.“형수는 나 혼자만의 소유가 아니야. 내가 무슨 자격으로 형수의 자유를 제한해? 형수가 행복해지면 좋은 일 아닌가?”그렇게 생각하니 더 이상 쓸데없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나는 차를 몰고 그 동네를 떠났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살 곳을 찾았다.환경이 괜찮은 동네
“서 사장님, 괜찮습니까?”“서 사장님...”룸에 함께 있던 사람들은 잇달아 서윤기를 부축했다.서윤기는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났지만 코에서 이미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그제야 정신을 차린 사람들은 모두 나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젠장. 누군데 서 사장님을 때려?”사람들은 나를 보며 욕지거리를 퍼부었다.서윤기가 손을 뻗자 사람들은 단번에 입을 다물었다.서윤기는 휴지로 피를 닦더니 나를 싸늘하게 바라봤다.“정수호, 이런 우연이 다 있네. 이렇게 큰 Y시에서 다 만나고.”나는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정 사장님이 여기로 인도해 주셨어. 네놈이 여기 있는 줄 알고 너 처리하라고 여기로 이끌어 주셨어.”서윤기는 그 말에 ‘풉’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정호섭 말이야? 그렇다면 좋겠지만 정호섭이 그럴 수 있어? 그렇게 신통하다면 왜 자기 죽음도 못 막았겠어?”정 사장님이 불상사를 당한 뒤 모든 사람이 비통했는데, 서윤기는 오히려 키득거리며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나는 울화가 치밀어 참지 못하고 달려들었다.하지만 이번에는 룸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나를 막아섰다.그때 이동민이 굳은 얼굴로 나에게 걸어왔다.“젠장. 감히 내 앞에서 서 사장님께 폭력을 써?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이동민은 키가 크고 덩치가 산만 했다. 듣기로 이동민은 예전에 백정이라서 아주 포악했었다는 말도 있다.나 역시 그의 몸에서 피비린내를 맡을 수 있었다.도살업자는 설령 그 일을 그만두더라도 피부와 핏속까지 스며든 피비린내를 지우기는 어렵다. 하지만 나는 이동민이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의 커다란 주먹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두 주먹이 부딪히는 순간 나와 이동민의 표정은 동시에 일그러졌다.이동민은 내 주먹이 그렇게 단단할 걸 몰랐는지, 아니면 내가 자기 주먹을 받아낼 줄 몰랐는지 살짝 당황했다.나 역시 꽤 센 이동민의 주먹에 흠칫 놀랐다.싸움을 배운 뒤로 나는 이 정도 상대를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다.주먹끼리 부딪힌 뒤 한동안 팔이 저리더니 잠
버섯전골은 Y시 명물이라 다른 곳에서는 먹을 수 없다. 어느새 냄비 안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이 방안 전체에 퍼져 버섯 냄새가 가득했다.윤지은은 사모님한테 음식을 집어주며 말했다.“유미야, 너 요즘 밥도 제대로 못 먹었는데 많이 먹어.”“그만 집어 줘. 내가 직접 먹을 수 있어. 두 사람도 먹어.”우리는 묵묵히 전골을 먹었다. 그동안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라 분위기는 다소 조용했다.나는 몇 번이나 분위기를 띄워주려고 했지만 사모님이 별 반응이 없고, 윤지은도 협조하지 않아 혼자 원맨쇼를 하는 느낌이 들어 포기했다.“차 마시고 싶어...”사모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벌떡 일어났다.“제가 물어볼게요.”무엇보다 나는 어렵게 말을 꺼낸 사모님의 요구를 얼른 만족시켜 주고 싶은 생각뿐이었다.나는 얼른 밖으로 나가 큰 방을 지나다가 문이 살짝 열려 있는 걸 보고 무의식적으로 안을 들여다봤다.그랬더니 내 눈에 익숙한 실루엣, 서윤기가 들어왔다.‘서윤기가 Y시에 왔다고?’나는 얼른 몸을 숨긴 채 안대성에게 전화했다.“서윤기를 감사하라고 했잖아. Y시에 온 건 왜 말 안 했어?”[네? 서윤기가 Y시에 갔다고요? 몰랐는데요? 형님, 제가 부하들한테 서윤기 잘 감시하라고 시켰는데...]안대성은 자기가 말실수했다는 걸 인지하고 얼른 입을 막았다. 그 순간 나는 당장 놈을 발로 걷어차고 싶었다.나는 얼른 전화를 끊고 룸 안을 훔쳐봤다.룸 안에는 서윤기 외에 Y시 현지인으로 보이는 남자 몇 명이 있었다. 그중 한 중년 남성은 왠지 낯이 익었다.나는 몰래 중년 남자의 사진을 찍어 판자촌 노랑머리에게 보냈다.[이 사람 알아요?]노랑머리는 곧바로 답장했다.[그 사람은 이연화의 아버지 판자촌 터줏대감 이동민이에요.]‘젠장. 어쩐지 낯이 익다 했더니 이연화와 닮았잖아.’‘이동민이 여기 나타난 데다 서윤기와 웃고 떠드는 걸 보니 설마 정 사장님 교통사고가 서윤기 짓인가?’나는 그럴 가능성이 무척 크다고 생각했다.서윤기가 강북 시장
“한 번에 천만 원? 여기가 뭔 금은방인 줄 알아요?”나도 이제는 돈 좀 있지만 한 번에 음식점에 천만 원을 충전하는 건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북에서 최고급 호텔 멤버십에 가입하는 것도 고작 몇백만 원인데, 길가에 널리고 널린 버섯전골 집이 멤버십 카드만 천만 원이라니?매니저는 나를 보더니 피식 웃었다.“돈 없으면 제 시간 낭비하지 말고 얼른 나가요.”“잠깐!”나는 언성을 높였다.그러자 매니저가 나를 경멸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왜요? 또 무슨 일이죠?”나는 얼른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난 이 가게가 악의적으로 손님들에게 소비를 강요한다고 의심되거든. 그래서 지금 신고할 생각이야.”내가 신고하겠다는 말에 매니저는 얼굴색이 싹 바뀌더니 나를 삿대질하며 욕지거리를 퍼부었다.“당신 미쳤어? 본인이 밥 먹을 돈 없으면서 왜 남의 가게를 신고해?”“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문다더니, 왜? 내가 신고할까 봐 두려워? 불법 경영한 거 걸릴까 봐 걱정돼? 그렇다면 더 신고해야겠네. 이렇게 부도덕한 가게는 문 닫아야 하니까.”윤지은은 네 행동을 지지했다. 심지어 사모님 역시 이 일을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했다.나는 일을 크게 만들 생각이 없었는데 매니저의 태도가 너무 괘씸해 밥을 먹지 못하더라도 이분을 풀 생각이었다.내가 정말 전화하자 매니저는 이내 태도를 누그러뜨렸다.“알았어요. 오늘 일은 저희 측 책임이니 사과드리죠. 지금 당장 자리 내어드릴게요. 됐죠?”“어디? 홀? 아니면 구석?”내가 따져 물었다.그러자 매니저가 허허 웃으며 말했다.“그럴 리가요. 당연히 룸을 내드려야죠. 하지만 큰 룸은 이미 손님이 꽉 차 작은 룸밖에 남지 않았어요. 비용은 사과하는 의미에서 받지 않겠습니다.”나는 손을 뻗어 매니저의 말을 잘랐다.“됐어. 값은 원래대로 받아요. 안 그러면 음식에 또 뭔 짓 할지도 모르니까.”매니저는 내 말에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내 말은 매니저가 비열한 소인배라고 공개 처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나는 윤지은과
결국 어쩔 수 없었던 나는 할 수 없이 내려가 가게를 찾기 시작했다.Y시에 버섯전골 맛집은 꽤 많았다. 하지만 사모님 기분이 안 좋은 지금 작은 가게를 가면 보는 눈이 많고 시끄러워 기분이 더 안 좋아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때문에 나는 한적한 가게를 찾으려고 한참을 더 걸었다. 다행히 그런 가게를 찾는데 겨우 성공했다.“안녕하세요. 프라이빗룸 하나 예약하게요.”이 가게는 환경도 좋고 손님도 많은 걸 보니 맛도 괜찮은 듯 시었다.“큰 룸 하나가 남아 있는데 괜찮으신가요?”“큰 룸은 얼마인데요?”“큰 룸은 기본 소비가 60만 원 이상입니다.”“좋아요. 그걸로 주세요.”60만 원이면 괜찮았다.룸을 예약한 뒤 나는 또 운전해서 윤지은과 사모님을 픽업하러 호텔로 돌아갔다.두 사람은 어느새 현지 특색이 담겨 있는 꽃무늬 옷으로 갈아입었다. 역시 절세 미녀들이라 그런지 뭘 입어도 예뻤다.물론 나는 칭찬의 말을 아꼈다. 지금 장소와 분위기에 그런 칭찬은 맞지 않았으니까.잘못했다가 또 윤지은의 욕지거리를 들어야 할지도 모른다.나는 일부러 맞을 짓을 골라 할 이유가 없었다.30분 뒤, 우리는 버섯전골 가게에 도착했다. 하지만 나하테 큰 룸 예약을 도와줬던 종업원이 충격적인 얘기를 했다.“손님, 죄송하지만 큰 룸은 이미 다른 분이 예약하셨습니다.”“방금 분명 내가 먼저 예약했잖아요. 왜 남의 방을 함부로 다른 손님한테 내줘요?”나는 순간 울화가 치밀었다.하지만 종업원은 터무니없는 변명을 늘어놓았다.“저도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어요. 인터넷 오류가 났는지 그 방은 이미 예약한 분이 있어요.”이미 이곳에 왔는데 그대로 갈 수 없었기에 나는 차선책을 제시했다.“그럼 작은 방이라도 줘요.”“죄송하지만 오늘 가게에 있는 모든 룸은 이미 예약돼서 남은 룸이 없어요. 괜찮으시면 홀에 있는 자리를 내어줄게요. 동남쪽에 한 테이블이 비어 있어요.”나는 순간 화가 치밀어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당신들 장사 이따위로 할 거야? 내가 예약한 자리가
요즘 겪은 일이 너무 많은 탓인지 나도 가끔 감회가 새로울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다.특히 사장님처럼 좋은 분이 유골이 된 걸 보니 마음이 무거웠다.우리는 한동안 돌아갈 수 없기에 사모님은 부모님을 불러 사장님의 유골함을 강북으로 가져가 매장했다.두 어르신은 충격이 너무 컸는지 순식간에 더 늙어진 것 같았다. 항상 친아들처럼 생각했던 사위가 그렇게 됐으니. 간암인 줄 알았을 때도 그렇게 믿기 어려웠는데 또 이런 불상사를 겪었으니 당연히 충격이 컸을 거다.하지만 임민수는 딸이 더 걱정됐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유미야, 너 정말 강북에 안 돌아갈 거니?”사모님은 아주 단호하게 말했다.“진실을 파헤치기 전에 절대 안 돌아가요. 엄마, 아빠, 호섭 씨는 두 분께 맡길게요.”사모님은 무척 아쉬워하며 사장님의 유골함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그 순간 사모님의 눈빛은 매우 복잡했다. 아쉬움과 슬픔, 괴로움 그리고 아름다운 지난날에 대한 그리움도 한데 섞여 있었다.나는 절친한 사람을 잃어본 적 없어 사모님의 심정을 깊이 공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가족을 잃은 고통이 얼마나 괴로운지는 알고 있었다.나와 윤지은은 사모님을 위로하려고 했지만, 사모님은 우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아무 말도 하지 마.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아니까.”사모님은 매우 침착했고 엉엉 울지도 않았다.그런 사모님의 모습이 나와 윤지은은 모두 걱정되었다.하지만 사모님이 말했다.“걱정할 거 없어. 내 상태는 내가 잘 알고 있으니까. 비록 슬프고 안타깝지만 이대로 주저앉아 있지 않을 거야. 호섭 씨도 내가 이러는 모습 원하지 않을 거야.”“유미야,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니 다행이야.”윤지은은 감개무량하듯 말했다. 하지만 내가 앞으로 다가가려 하자 이내 나를 째려봤다.‘벌써 하루가 지났는데 아직도 화가 안 풀렸나?’무엇보다 난 아직도 내가 대체 언제 무엇 때문에 윤지은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결국 나는 할 수 없이 묵묵히 두 사람을 따라 호텔로 돌아갔다.윤지은
우리는 희망을 이연화에게 거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때문에 그 백수들이 소식을 전하기 전에 우리는 호텔에서 기다리기만 했다.하지만 윤지은은 호텔에 갇혀만 있으면 사모님이 답답해할까 봐 한가할 때면 사모님과 함께 산책하곤 했다.사모님이 자기 컨디션을 끌어 올리려고 얼마나 노력하는지 우리는 알 수 있었다.하지만 동력과 희망이 없는 탓에 사모님은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Y시에 온 지 사흘 만에 강한나는 다시 강북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러면서 떠나기 전 우리와 함께 시사 자리를 가졌다.“정말 여기 남아서 조사할 거야?”나와 윤지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자 강한나가 말했다.“알았어. 나도 도와줄 건 없으니 성공하길 빌게.”나와 윤지은은 곧바로 강한나가 우리에게 할 말이 있다는 걸 눈치챘다. 아니나 다를까, 사모님이 화장실 간 틈에 강한나는 얼른 우리에게 말했다.“호섭 씨 시신 어느 때 화장할 거야?”나와 윤지은은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몰라. 유미가 아직 동의하지 않았어.”그 말에 강한나가 말했다.“시체를 화장하지 않아도 시체에서 단서를 찾는 건 어려울 거야. 난 고인 편히 쉬게 해주는 게 좋다고 봐.”“하. 그런데 문제는 유미가...”사모님이 아쉬워하는 게 문제다.화장하지 않으면 그래도 보러 갈 수 있지만 화장하면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사실 나도 강한나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우리도 그 말 이해해요. 사모님은 저희가 설득해 볼게요.”식사를 마친 뒤 강한나는 그 길로 떠났다.나와 윤지은은 호텔로 돌아가는 내내 어떻게 말을 꺼낼지 고민했다.“두 사람 먼저 돌아가. 난 장례식장에 가볼 거니까.”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우리는 사모님이 또 사장님 보러 간다는 걸 알았다.하지만 장례식장도 규정이 있는데, 아무 때나 들여보낼 수 있을 리가 없다.그건 다른 것도 아닌 시신이니까.그때 윤지은이 입을 열었다.“유미야, 이번에 보고 난 뒤 호섭 씨 편히 자게 해주자.”“안 돼!”사모
“왕정민 이 파렴치한 놈. 어떻게 이럴 수 있지?”분명 자기가 잘못했으면서 뻔뻔하게 애교 누나한테 집착하다니.“애교 누나는 그럼 어떻게 처리했어요? 신고는 했어요?”[애교가 예전보다 많이 강해졌더라고요. 그걸 다시 왕정민한테 보냈어요. 심지어 안에 뭔갈 더 추가해서.]“네? 하하. 애교 누나가 정말 변했네요.”나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그러니까요. 그것도 다 왕정민 때문에 할 수 없이 변한 거긴 하지만요. 애교가 만만한 줄 알고 애교만 괴롭히다니. 그렇게 대단하면 그 여자를 그렇게 괴롭히지... 아마 죽었다 깨어나도 그렇게는 못 할 걸요.][그런 사람들은 원래 그래요. 여자들은 뭐 드세고 화를 자주 내는 여자가 되고 싶어서 되겠어요? 다 남자들이 행복한 줄 모르고 기어오르니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변한 거죠.][특히 우리 여자들은 가끔 독해질 필요가 있어요. 독하지 않으면 남들이 괴롭혀도 되는 줄 알아요...]나는 형수의 말에 백 번 동의한다.애교 누나가 이토록 강해졌다니 나는 많은 걱정을 덜 수 있었다. 형수도 마찬가지고.두 사람이 다른 사람의 위협에도 흔들리지 않아야 내가 마음 놓고 할 일을 할 수 있다.형수와 한참 얘기한 뒤 나는 곧바로 애교 누나에게 전화했다.“누나, 왕정민 일은 왜 말 안 했어요?”애교 누나 목소리는 여전히 간질거리고 듣기 좋았다.[수호 씨가 Y시에 있는데 얘기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어요? 수호 씨 가 나 때문에 와달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그리고 나 이제 많이 변했어요. 다른 사람의 보호만 받으면서 살 수는 없어요.][그동안 아빠한테 반항하면서 독립적인 여자가 될 거라고 큰소리쳤는데, 지금껏 한 번도 그렇게 산 적이 없어요.][예전에 결혼에 묶여 나를 잃었고, 행복한 결혼만 있으면 모두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알았어요. 여자는 자기 마음이 강해져야 진짜 강한 거예요.]애교 누나의 말을 들으니 나는 순간 누나를 다시 알게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이 사람이 아직도 내가 알던 나약하기만 하고, 무
“내가 방 하나 더 잡을게요.”나는 말하면서 방을 나가려고 했다. 그때 뒤에서 갑자기 사모님 목소리가 들렸다.“수호 씨, 먼저 내 침대에서 눈 붙여요.”고개를 돌아보니 사모님은 안쪽으로 자리를 옮겨 내가 누울 공간을 내주었다.나는 속으로 거절했다.비록 사모님이 다른 마음 없이 그저 나를 휴식하라고 호의를 베푸는 거라는 걸 알지만, 사장님이 그런 일을 당했는데 내가 사모님과 같은 침대에 누워 있는 건 말도 안 됐다.게다가 윤지은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는데, 내가 동의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나는 결국 거절했다.“아니에요. 가서 다른 방 구하면 돼요.”나는 다급히 방을 나가 프런트 데스크로 달려갔다.처음 온 날 우리는 사실 싱글룸 세 개를 잡았다. 하지만 나중에 사모님 상태가 걱정되어 나와 윤지은이 사모님 방에 들어와 지내게 되면서 나머지 싱글룸 두 개를 취소했다.확인 결과 더블룸 하나가 나왔다는 말에 나는 얼른 그 방을 잡았다. 그러면 사모님과 윤지은이 더블룸에서 함께 지내고 내가 싱글룸에서 지내면 되니까.나는 카드키를 챙겨 방으로 들어갔다. 이 방은 조용한 데다 환경도 좋아 편히 잘 수 있을 것 같았다.하지만 내가 침대에 눕기 바쁘게 핸드폰이 징징 울렸다. 전화한 사람은 다름 아닌 형수였다.요즘 사장님 일 때문에 여기저기 달려 다니느라 형수와 오랫동안 얘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때문에 마침 조용한 틈을 타 나는 형수와 얘기하려고 여상 통화를 받았다.형수는 사모님 상태를 걱정하며 일의 진전을 물어봤다.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쉽지 않아요. 조사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어 한동안 여기서 지내야 할 것 같아요.”[수호 씨 사장님 내외가 수호 씨한테 그렇게 잘해줬는데, 이번 기회에 유미 씨 옆에서 많이 도와줘요.]형수가 말했다.그 말에 나는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네, 저도 알아요. 형수는 요즘 어때요?”[좋아요. 잘 먹고 잘 자고 이제 천천히 걸을 수도 있어요.]“진짜예요? 사진 찍어 보내 봐요.”나는 너무 기뻐 흥
내가 노랑머리한테 준 것도 적은 돈이 아니었다. 족히 10만 원 가까이는 됐으니까. 백수들한테는 이것도 큰돈이나 다름없다.노랑머리 역시 같은 생각이었는지 결국 입을 다물었다.아직 대답을 못한 사람들은 얼른 다른 질문을 하라고 나를 재촉했다.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두 번째 질문을 했다.“그럼 혹시 이연화 혹은 조금희가 요즘 낯선 사람과 만난 걸 본 사람이 있어요?”그 물음에 모든 사람은 고개를 저었다. 그 순간 나는 실망했다.“세 번째 질문, 혹시 누가 나 대신 이연화를 감시할래요?”모든 사람이 동시에 손을 들었다.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좋아요. 그럼 다 같이 해요.”“그럼 돈은 어떻게 계산하는 거예요?”노랑머리가 물었다.나는 가방에서 또 돈 두 뭉치를 꺼냈다.“세 명이 감시해요. 한 사람당 200씩 줄게요.”세 사람의 눈은 커다래지더니 급기야 반짝반짝 빛이 났다.나는 세 사람에게 귀띔했다.“이 돈은 수고비예요. 누가 만약 유용한 단서를 제공하면 이 외에도 큰 보상을 받게 될 거예요.”‘역시 돈이 있으니 뭐든 쉽게 되네.’이 사람들이 나를 위해 성실하게 일하게 하려면 이 사람들 마음을 매수하는 게 우선이다.몇백만 원은 지금의 나한테 큰돈이 아니다. 무엇보다 사장님과 사모님을 도울 수 있다면 나는 뭐든 할 수 있다.모든 일을 마친 뒤 나는 다시 호텔로 돌아갔다.윤지은의 말을 들어보니 사모님은 이미 잠든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사모님 정서가 여전히 불안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기분이 다운된 사람은 쉽게 졸리고 무기력해지고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나는 방금 전 일을 윤지은에게 말했다.“이번 일 조사하기 엄청 어려울 거예요. 언제 진실이 밝혀질지도 모르겠고. 장기전을 할 준비는 됐어요?나는 윤지은을 보며 말했다.그러자 윤지은이 나를 째려봤다.“그걸 말이라고 해? 유미는 내 베스트 프렌드야. 유미한테 이런 일이 생겼는데 내가 같이 있어 주지 않으면 누가 같이 있어 줘? 그러는 너야말로,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하는데?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