เข้าสู่ระบบ복도로 나온 태윤은 닫힌 문 앞에서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지금의 너도 나는 무서워.’ 서린의 목소리가 계속 귀에 남았다. 아버지 일로 의심받는 것보다 그 말이 더 깊이 박혔다. 한지후는 세명의료원 방문 일정까지 알고 있었다. 윤성의 오래된 자료가 어디에 있는지도 서린보다 먼저 알고 있었다. 정보가 새는 경로가 있는 건 분명했다. 그래서 경호를 유지하는 판단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위험하니까 안 돼’라고 말하는 순간, 처음 하우스키퍼 계약을 핑계로 서린의 생활을 통제하던 때와 무엇이 다른가.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서재로 돌아온 태윤은 박현석에게 전화를 걸었다.“한지후 쪽 다시 확인해. 세명의료원 일정이 어디서 새었는지, 윤성 자료를 어떻게 알고 있는지. 두 경로를 따로 봐.&rdquo결혼식 날 아침. 메이크업룸 거울 속의 내가 낯설었다. 겹겹의 흰 튤이 의자 주변으로 퍼져 있었고, 머리는 단정하게 올려 작은 티아라를 얹었다. 평소라면 손도 가지 않았을 화려한 드레스였지만, 오늘만큼은 이상하게 싫지 않았다. 무엇보다 자꾸 눈이 가는 건 왼손 약지였다. 레이스 장갑 아래로 사파이어 반지의 윤곽이 희미하게 드러났다. 한때 목에 걸린 순간마다 숨이 막혔던 돌. 지금은 내가 직접 끼고, 필요하면 직접 뺄 수 있는 반지. 같은 보석인데 의미는 완전히 달랐다.“긴장되세요?”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웃으며 물었다.“조금요.” 거짓말이었다. 꽤 많이 긴장됐다. 문밖에서는 스태프들이 오가는 소리가 났다. 잠시 후면 서울 도심 호텔의 웨딩홀에 사람들이 모이고, 나는 수많은 시선 앞에서 태윤과 결혼을 약속한다. 법적으로는 이미 혼인신고를 마친 사이였다. 그래도 오늘은 또 다른 의미가 있었다. 누군가에게 떠밀린 계약도, 위기를 피하기 위한 선택도 아닌 날. 내가 원해서 준비한 결혼식이었다. 문이 열렸다. 검은 턱시도를 입은 태윤이 들어왔다. 평소보다 단정히 넘긴 머리 때문에 표정이 더 선명하게 보였다. 그는 방 안에 들어오자마자 멈췄다.“왜 그래?” 대답이 없었다. 시선이 내 얼굴에 박힌 채 움직이지 않았다. 스태프들이 웃음을 참으며 자연스럽게 자리를 비웠다. 문이 닫히자 태윤이 겨우 숨을 내쉬었다.“……반칙인데.”“뭐가?”“이런 건 미리 알려 줬어야지.”“드레스 입는다고 했잖아.&rdquo
유리문을 열자 차가운 공기와 함께 짙은 향이 밀려들었다. 달콤하면서도 과일처럼 싱그럽고, 끝에는 묵직한 향이 남았다. 나는 아이를 안은 채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아브라함 다비…….” 어릴 때 아버지와 함께 돌보던 장미였다. 봄이 오면 흙투성이가 되어 가지를 정리하고, 새순이 얼마나 올라왔는지 매일 확인하던 꽃. 집이 무너진 뒤에는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색과 향이었다. 살구빛 꽃잎이 바람에 흔들렸다. 나는 조심스럽게 정원으로 나갔다. 품 안의 아이가 잠결에 작게 몸을 움직였다. 태윤이 뒤따라와 내 옆에 섰다.“옛집에 있던 장미를 옮긴 건 아니야.”“알아.” 그때 들었던 설명이 다시 떠올랐다. 남아 있던 사진과 식재 기록을 찾아 같은 품종을 구했고, 이 집의 토양과 일조량에 맞춰 새로 심었다고 했다.“처음에는 진짜 옛날 걸 되찾아야 하나 생각했어.” 태윤이 꽃을 바라보며 말했다.“그러다 그건 아니라고 생각했어. 네가 잃은 시간을 내가 복원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없던 일로 만들 수도 없으니까.” 나는 말없이 그의 얼굴을 보았다.“그래도 좋은 기억까지 같이 버릴 필요는 없잖아.” 그의 손이 장미 가까이 갔다가, 꽃잎에는 닿지 않고 멈췄다.“그래서 같은 품종을 찾았어. 네가 돌아오는 날 꽃을 볼 수 있게 개화 시기도 맞춰 달라고 했고.”“언제부터 준비했는데?”“집 설계 시작할 때부터.” 잠깐 망설이던 태윤이 낮게 덧붙였다.“처음엔 네가 좋아할 거라는 확신도 없었어. 싫다고 하면 다 걷
퇴원하는 날. 차가 멈추고 엔진 소리가 사라졌다. 내 품에서는 아이가 작은 숨소리를 내며 자고 있었다.“도착했어.” 옆에 앉은 태윤이 낮게 말했다. 그가 내 무릎 위 담요 끝을 다시 정리했다. 운전기사가 문을 열자 아직 차가운 봄 초입의 공기가 안으로 들어왔다. 아이가 조금 움직였다. 나는 품을 더 안정적으로 받쳤다.“천천히 내려.” 태윤이 먼저 차에서 내려 두 손을 내밀었다. 몸이 아직 완전히 회복된 건 아니라서, 나는 그의 도움을 받아 조심스럽게 발을 디뎠다. 새로 깐 자갈이 신발 밑에서 가볍게 울렸다. 고개를 들자 완공된 집이 눈앞에 서 있었다. 몇 달 전 프러포즈를 받았을 때는 철골과 콘크리트가 드러난 공사현장이었다. 지금은 밝은 외벽과 큰 창을 가진 집으로 완성돼 있었다. 크기는 여전히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예전에 태윤이 혼자 살던 성북동 집처럼 차갑게 느껴지지는 않았다.“……정말 완성됐네.” 내가 중얼거리자 태윤이 내 표정을 살폈다.“너무 커?” 나는 그의 불안한 눈빛을 알아봤다. 구로구 5평 원룸에서 지내던 우리를 갑자기 이 큰 집 안에 넣으면, 다시 예전의 거리로 돌아갈까 봐 걱정하는 얼굴이었다.“아니.” 나는 고개를 저었다.“이상하게 낯설지 않아.”“왜?” 나는 잠시 집을 바라보다 웃었다.“계속 나한테 물어보고 만들었잖아. 어떤 동선이 편한지, 아이 방은 어디가 좋은지, 주방은 어느 높이가 좋은지.” 태윤의 얼굴에서 긴장이 풀렸다.
“한번 안아 볼래?” 내가 묻자 태윤이 그대로 굳었다.“내가?”“아빠가 안고 싶으면.” 그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큰 손바닥, 굵은 손가락.“너무 작잖아.”“그래서 배우는 거지.”“내가 힘 조절 잘못하면 어떡해.” 그 목소리에 진짜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나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 말했다.“네 손이 망가뜨리기만 한 손은 아니야.” 태윤이 고개를 들었다.“구로 원룸에서 내가 아플 때 허리 주물러 준 것도 그 손이고, 오늘 밤 내 손 잡아 준 것도 그 손이야.”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리고 이 아이는 우리 둘의 아이야. 너도 천천히 배우면 돼.” 태윤이 깊게 숨을 내쉬었다.“……손부터 씻고 올게.” 그는 병실 세면대로 갔다. 비누로 손을 꼼꼼히 씻고, 안내된 대로 손 위생을 마친 뒤 돌아왔다. 표정이 마치 중요한 계약 체결 직전보다 더 굳어 있었다.“이렇게 긴장하는 거 처음 봐.”“웃지 마.”“안 웃었어.”“지금 웃고 있잖아.”“조금.” 나는 신생아 코트 쪽을 가리켰다.“간호사 선생님이 알려 준 대로 하면 돼. 목하고 뒤통수 잘 받치고.” 태윤이 천천히 손을 뻗었다. 아이에게 닿기 직전 다시 멈췄다.“서린.”“응.”
태윤은 침대 옆에 주저앉듯 무릎을 굽혔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나는 그가 이렇게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회사도 돈도, 사람들 앞에서 만들어 온 단단한 얼굴도 아무 의미가 없어 보였다. 그저 처음 아이를 마주한 한 사람이 있을 뿐이었다.“태윤 씨.” 나는 아이를 품에 둔 채 손을 뻗었다. 그가 내 손을 잡았다. 손바닥이 뜨거웠다.“……고마워.” 태윤이 겨우 말했다.“서린, 정말…… 고마워.”“나한테만 하지 마.” 나는 울면서도 웃었다.“나도 이 아이도 같이 한 거야.” 태윤은 고개를 여러 번 끄덕였다. 아이의 작은 발끝이 움직이자 그의 시선이 그쪽으로 빨려 들어갔다.“진짜…… 사람이네.”“그럼 뭐라고 생각했어?”“사진이랑 초음파로만 봤잖아.” 너무 진지한 대답이라 웃음이 터졌다. 웃다가 몸이 아파 얼굴을 찌푸리자 태윤이 바로 긴장했다.“아파?”“출산했는데 안 아프겠어?”“의사 부를까?”“지금은 괜찮아.” 나는 그의 손을 다시 잡았다. 창밖으로 새벽빛이 조금씩 들어오고 있었다. 길고 힘들었던 밤이 끝나고 있었다.“봐.” 나는 아이를 내려다보며 속삭였다.“네 아빠야.” 태윤의 얼굴이 다시 무너졌다.“또 울어?”
시간 감각이 흐려졌다. 창밖이 조금씩 밝아지는 것 같았지만 시계를 볼 여유는 없었다. 진통은 점점 강해졌다. 나는 몇 번이나 ‘못 하겠다’고 말했고, 그때마다 의료진은 지금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차분히 알려 줬다. 태윤은 내 손을 놓지 않았다.“아파…… 진짜 너무 아파.”“알아.”“넌 모르잖아.”“맞아. 내가 똑같이 알 수는 없어.” 태윤이 숨을 삼켰다.“그래도 여기 있을게.” 그 답이 마음에 들었다.‘괜찮아’라고 쉽게 말하지 않아서. 다시 강한 수축이 왔다. 나는 눈을 감고 숨을 내쉬었다. 태윤의 손을 너무 세게 잡았는지 손등의 힘줄이 선명하게 튀어나왔다.“손 아파?”“지금 그게 중요해?”“부러지면 곤란하잖아.”“회사보다 먼저 고칠게.” 평소라면 어이없다고 했을 말에 웃음과 울음이 동시에 나왔다. 의료진이 진행 상황을 확인한 뒤 말했다.“이제 많이 진행됐어요. 다음 단계부터는 제가 호흡과 힘주는 타이밍 알려 드릴게요.” 나는 겁이 났다. 숨이 너무 가빠져서 가슴이 아팠다. 태윤이 내 손등에 이마를 잠깐 댔다.“무서워?”“응.” 처음으로 솔직하게 말했다. 태윤이 고개를 들었다.“나도.” 그의 얼굴도 창백했다.“그래도 같이 있자.”“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