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그 시각, 한명회가 갇혀 있는 옥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평소라면 죄수들의 신음 소리와 간수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지만, 오늘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적막했다."참 이상하군……."한명회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창살 너머를 내다보았다."오늘따라 옥이 너무 조용해.“혼잣말을 중얼거리던 한명회 앞에 옥졸 하나가 다가왔다.옥졸은 말없이 문틈 사이로 주먹밥 한 덩이를 밀어 넣었다."드시오. 사식이오.""사식?"한명회는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주먹밥은 제법 먹음직스러웠다. 적당한 크기에 깨까지 솔솔 뿌려져 있어, 죄수에게 내어줄 음식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부인이 보내온 것인가?""웬 부인이 직접 전해 달라 하고 갔소."그 말에 한명회는 비로소 안심한 듯 주먹밥을 한입 베어 물었다.속에는 잘게 썬 오이장아찌가 들어 있어 제법 맛이 있었다.“역시 부인이 음식 솜씨가 좀 있군.”그러나 몇 입 더 먹었을 때였다.입안에 은은한 쓴맛이 번지기 시작했다.'이상하군.'오이장아찌의 맛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쓰고 떫었다.이내 혀끝이 저릿해지기 시작했다.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눈꺼풀이 천근만근 무거워졌다."이, 이건……."한명회는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결국 그는 바닥으로 털썩 쓰러지고 말았다.잠시 후.조금 전 주먹밥을 건네고 갔던 옥졸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그는 쓰러진 한명회를 내려다보며 주변을 한 번 살핀 뒤, 허리춤에서 열쇠를 꺼내 조심스레 옥문을 열었다."약효가 제대로 들었군."옥졸은 한명회의 숨결을 손등으로 확인한 뒤 피식 웃었다.이어 준비해 온 커다란 자루를 펼쳐 한명회의 몸을 그 안으로 밀어 넣기 시작했다.옥졸은 다시 조용히 옥문을 닫았다.자루를 어깨에 둘러멘 그는 의금부 뒷마당으로 향했다.그곳에는 이미 다른 사내 하나가 마차를 준비한 채 기다리고 있었다.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며 가볍게 고개만 끄덕였다.이내 자루를 마차 위에 조심스레 실은 뒤, 의금부
'부원군 하나로 끝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의원의 마지막 말이 지우의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부원군은 이미 죽었다. 김종서 대감도 누명은 벗었다. 그렇다면 남은 사람은... 한명회?설마 자기 사람까지 없앨 생각인 건가? 아니면...지우는 걸음을 멈추고 단종을 바라보았다."전하.""무슨 일이오?""한명회 말입니다. 혹시 요즘 그에게 이상한 낌새는 없었습니까?"단종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한명회라면 요즘 짐이 은밀히 회유하고 있는 중이오.""회유 중이라고요?"회유라니... 역사가 달라지고 있는 건가?원래라면 한명회는 수양대군의 핵심 책사였다.하지만 지금은 아직 어느 편에도 완전히 서지 않은 것일지도 몰랐다.지우는 낮게 입을 열었다."전하. 그렇다면 더욱 조심하셔야 합니다. 혹시 모르니 한명회를 당분간 안전한 곳으로옮겨 두는 것이 좋겠습니다.""설마 그자들이 한명회까지 노린다는 말이오?""확신은 없습니다. 하지만 의원의 말대로라면 부원군의 죽음은 시작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단종은 지우의 말에 어두워진 낯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꼬르르륵.갑작스러운 소리에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단종은 민망한 듯 헛기침을 하며 슬며시 시선을 돌렸다."……."지우는 피식 웃음을 참으며 입을 열었다."전하.""…….""모처럼 궁 밖에 나온 김에 주막에 들러 국밥 한 그릇 하고 가실까요?"단종은 머쓱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이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중전에게 민망한 모습을 보였구려."“배가 고픈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두 사람은 근처에 보이는 주막으로 들어가 빈자리에 앉았다."헌데 전하, 국밥은 드셔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혹시 입맛에 맞지 않으시면 다른 음식을 시켜도 됩니다."지우의 말에 단종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주막 안을 천천히 둘러보았다."먹어 본 적은 있소."지우가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예전에 전왕 폐하를 모시고 잠행을 나선 적이 있었소."단종의 눈빛에 옅은
지우와 단종이 안방에 들어와 자리를 잡자 의원은 조심스레 방문을 걸어 잠근 뒤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한동안 말없이 침을 삼킨 그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전하께서는 '단장초'라는 이름을 들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단장초?""예, 단장초입니다."의원의 물음에 지우와 단종은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의원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모르시는 것이 당연합니다. 명나라 남부에서 주로 자라는 독초이기 때문입니다. 조선에서는 거의 구할 수 없는 물건이지요."단종의 표정이 굳어졌다."설마... 아버님께서 그 독초 때문에 돌아가셨다는 말이오?“”제 짐작이 맞다면요“의원의 말에 지우는 자신도 모르게 손이 부들거렸다.“어찌 그리 짐작하시는 겁니까?”지우의 물음에 의원은 말없이 서가에서 낡은 일지 한 권을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일지에는 여러 독초의 성질과 독성, 그리고 법제법이 빼곡한 글씨로 기록되어 있었다.“소인은 젊은 시절 명나라에서 독초를 감별하는 법을 배웠습니다.”의원은 조용히 일지의 한 페이지를 넘겼다.“그때 깨달았지요. 독초도 제대로 법제하면 사람을 죽이는 독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약이 될 수 있다는 것을요.실제로 제가 연구한 법제법으로 목숨을 건진 환자도 적지 않았습니다.”의원은 말끝을 흐리며 씁쓸한 표정으로 일지를 천천히 덮었다."헌데... 며칠 전 낯선 사내 하나가 저를 찾아왔습니다."의원의 표정이 더욱 굳어졌다."자신이 꼭 살려야 할 사람이 있는데, 단장초를 제대로 법제해 먹이면 병이 낫는다는 말을 들었다며... 그 약초를 구해 달라고 하더군요.“"그래서요?""제게 찾아오는 이들 가운데에는 의원들도 포기한 중병 환자를 살려 보겠다며 마지막 희망을 품고 오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의원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저는 그 사내도 그런 사람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하지만 막상 그가 가져가려 한 것은... 아직 법제도 제대로 거치지 않은 단장초였습니다."”그런데도 그 자에게 단장초를 판건
초가집에 도착한 단종과 지우는 마당과 평상, 툇마루에까지 귀한 약재들이 널려 있는 모습을 보고 보통 의원의 집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말린 산삼과 녹용, 이름조차 알 수 없는 희귀한 약초들이 가지런히 손질되어 있었고, 은은한 약재 향이 집 안팎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하지만 이상하게도 의원집은 인기척 하나 없이 적막했다.방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손님은 물론 약을 짓는 사람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다.명의의 집이라기에는 너무도 고요한 풍경이었다.단종은 널려 있는 약재를 바라보다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이 정도 명의라면 환자들이 줄을 서 있어야 할 터인데…."지우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마치 사람들이 일부러 이곳을 피하는 것 같습니다.“"거, 거기 누구시오?"단종과 지우의 발소리를 들었는지 방 안에서 중년 남성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목소리는 몹시 낮았고, 작은 인기척에도 놀란 사람처럼 불안이 묻어 있었다.단종이 문 쪽으로 한 걸음 다가가 차분히 말했다."실례하오. 의원을 뵈러 왔습니다. 몇 가지 여쭐 말씀이 있어 찾아왔소."그러자 방 안은 잠시 숨을 죽인 듯 조용해졌다.이윽고 떨리는 목소리가 다시 흘러나왔다."무, 무얼 물으려는 거요? ...아니, 됐소.난 아무것도 모르오.그러니 아무것도 묻지 말고 그냥 돌아가시오.“"알겠습니다."지우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냥 돌아가겠습니다."잠시 말을 멈춘 그녀는 굳게 닫힌 방문을 바라보며 차분히 말을 이었다."하지만 그렇게 숨어만 계신다고 능사는 아닙니다."순간 방 안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능사?""내가... 내가 무엇을 봤는지 알고 그런 말을 하는 거요?"지우의 입가에 아주 희미한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역시.무언가를 알고 있었다.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발걸음을 돌렸다."그러니 가겠다는 것입니다.그토록 두려움에 떠는 분이라면 저희도 믿고 부탁드릴 수는 없겠지요.전하, 이만 가시지요. 차라리 다른 의원을 찾아보는 편이 낫겠습니다.
단종의 갑작스러운 잠행 제안에 궁 밖으로 나온 지우는 자신의 손을 살며시 잡고 있는 단종의 손길에 이상하게도 가슴이 두근거렸다."전하... 계속 제 손을 잡고 계실 생각이십니까?"지우가 조심스레 묻자 단종은 그녀의 손을 내려다보며 옅게 웃었다."이래야 평범한 부부처럼 보이지 않겠소."그는 아무렇지 않은 듯 말을 이었다.“혹... 불편하오?”지우는 얼른 괜찮다고 대답하려 했지만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손끝으로 전해지는 단종의 온기가 생각보다 따뜻했기 때문이다."...아닙니다."겨우 한마디를 내뱉은 그녀는 괜히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단종은 그런 지우를 흘낏 바라보다가 미소를 감춘 채 다시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마침 저잣거리는 5 일장이라도 열렸는지 다른 때보다 시끌벅적하니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음 저잣거리가 이리 복잡한 곳인지 몰랐는데 좀 복잡구려”단종의 말에 지우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여기저기 둘려 보았다.마침 저잣거리는 오일장이라도 선 듯 다른 때보다 훨씬 시끌벅적했다.상인들의 목청이 사방에서 울려 퍼졌고, 장을 보러 나온 백성들로 길은 발 디딜 틈조차없었다."음… 저잣거리가 이토록 붐비는 곳인 줄은 미처 몰랐구려."단종은 사람들 사이를 둘러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지우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사방을 둘러보았다."궁 안에서는 알 수 없는 풍경이옵니다. 백성들은 이렇게 살아가고 있었군요.“그때였다.지우와 단종의 눈앞에 작은 장신구를 펼쳐 놓고 파는 노파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비녀와 노리개, 옥가락지, 은장도까지.하나같이 빛깔이 곱고 손때가 느껴지는 물건들이라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고 있었다.단종은 장신구 앞에서 걸음을 멈춘 지우를 힐끗 바라보았다."예뻐 보이오?""예?""아까부터 장신구만 바라보고 있지 않소."지우는 멋쩍은 듯 웃으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그럼요. 저도 여인인걸요."그녀는 다시 한번 진열된 장신구들을 천천히 바라보았다.단종은 그런 지우를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다가 빙그레
지우는 아침 수라를 마치자마자 내의원 의원이 작성한 부검 기록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기록에는 단 한 줄만이 담담하게 적혀 있었다.'외관상 타살의 흔적 없음. 독살의 흔적 없음.'그리고 마지막.'사인은 자결로 추정됨.'한마디로 의원의 기록은 부원군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결론이었다."……말도 안 돼."기록지를 내려다보던 지우의 손끝이 가늘게 떨렸다."조금만 버티면 살아 나올 분이셨는데…. 그런 분이 스스로 삶을 포기하셨을 리 없어.“어느새 탕약을 가져온 소화는 조용히 지우 앞에 탕약을 내려놓았다.그녀는 지우가 들여다보고 있던 부검 기록을 슬며시 덮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마마, 탕약부터 드십시오. 식겠습니다."지우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소화를 바라보았다."소화야.""너는 정말 부원군께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다고 생각하니?"갑작스러운 질문에 소화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고민하던 그녀는 한참 뒤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글쎄요…. 저는 부원군을 혼례 때 한 번 뵌 것이 전부라 그분 성품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하지만… 이상하기는 합니다.하루만 더 버티셨다면 풀려나실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그런 분께서 갑자기 스스로목숨을 끊으셨다는 것이 선뜻 믿기지 않습니다."지우는 천천히 시선을 부검 기록으로 돌렸다."그래…. 나도 바로 그 점이 마음에 걸린다.무언가를 감추려는 사람이라도 있는 것처럼…. 모든 것이 너무 급하게 끝나 버렸어.““마마, 정 마음에 걸리시면… 제가 궁 밖 의원을 한 분 찾아볼까요?”“궁 밖 의원?”“예. 관의 의원들 말고도 명의라 불리는 이들이 있습니다. 타국에서 의술을 익힌 이도 있고, 궁에서는 모르는 병증을 다루는 이도 있다고 들었습니다.”지우가 천천히 시선을 들었다.“궁 의원들이 놓친 것을… 그들이 찾아낼 수도 있다는 말이냐?”소화는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확신은 없습니다. 하지만 혹시라도 부원군께서 정말 타살을 당하신 것이라면… 다른 의원의 눈에는 무언가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