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ICIAR SESIÓN비슷한 표정도 봤을 것이다.자신에게만 조금 오래 머물렀다고 생각한 시선까지.“정말 꽃을 좋아하시나 봐요.”먼저 와 있던 영애가 차갑게 말했다.마리안 영애가 헛웃음을 흘렸다.클라라는 웃지 않았다.테라스 쪽에서 음악이 시작되었다. 박수 소리가 이어졌다.세 사람은 동시에 그쪽을 보았다.에드릭이 테라스 앞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낯선 금발 영애와.여자는 수도에서 온 사람인지 클라라가 모르는 얼굴이었다. 드레스는 수수했고, 머리도 단순하게 땋아 내렸다.에드릭은 그 여자에게 웃고 있었다.클라라에게 웃었던 것과 같은 얼굴로.아니.조금 더 즐거워 보였다.정자로 이어지는 길목에는 어느새 몇몇 영애가 모여 있었다. 누가 먼저 눈치챘는지, 이쪽을 보며 낮게 말을 주고받았다.클라라는 그들의 시선을 느꼈다.세 사람 모두 같은 말에 속았다.그래도 가장 오래 입에 오르내릴 사람은 자신일 것이다.에드릭과 특별한 사이라는 말을 굳이 부정하지 않았으니까. 그가 자신에게만 다르다고 믿었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믿게 두었다.상인 집안의 딸이 후작가 차남에게 선택받은 줄 알고 들떴다가 망신당했다.그들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였다.클라라는 턱을 들었다.“꽃은 잘 봤네요.”먼저 와 있던 영애가 클라라를 봤다. 마리안 영애는 입술을 굳게 다문 채 본관 쪽만 노려봤다.클라라는 정자에서 나가려 했다.그 순간 머리 한쪽이 따끔하게 당겼다.아침부터 머리를 버티고 있던 핀이 바닥으로 떨어졌다.툭.클라라는 움직이지 않았다.옆머리가 천천히 내려앉았다.한쪽이 무너지자 반대쪽도 모양을 잃었다. 머리 안쪽에 넣었던 둥근 받침이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났다.누군가 웃음을 삼켰다.클라라는 손을 올려 머리를 눌렀다.잘못된 선택이었다.손가락에 머리카락이 걸리며 더 크게 흐트러졌다. 리본이 돌아가고, 남은 핀 하나가 두피를 긁었다.“시녀를 부를까요?”함께 정자에 와 있던 영애 중 한 명이 말했다.클라라는 그 얼굴을 보지 않았다.“필요 없어요.”“하지만 그대로는…”
클라라의 손이 의자 등받이 위에 멈췄다.엘레노아는 아직 오지 않았다.언제 오는지도 몰랐다.“엘레노아가 부탁했어요?”클라라가 물었다.“아뇨. 늘 여기 앉으시니까.”세르반 영애는 이상한 질문을 들었다는 듯 웃었다.클라라는 맞은편 의자를 당겨 앉았다.얼굴을 마주 보기에 더 좋은 자리라고 생각했다.굳이 옆에 앉을 필요는 없었다.다만 조금 전까지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영애들 누구도 그 빈자리에 앉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게 거슬렸다.그들에게는 정해진 순서가 있었다.누가 먼저 앉고, 누구의 자리를 비워두며, 누구에게 먼저 말을 거는지.클라라는 그 순서를 알고 있었지만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다.그 순서에서 로세트는 늘 뒤였다.로세트의 금고가 그 집안들의 금고를 전부 합친 것보다 커도 마찬가지였다.엘레노아 영애는 한참 뒤에 도착했다.하인이 이름을 알리자 대화가 자연스럽게 멈췄다. 아무도 조용히 하라고 하지 않았는데도 그랬다.클라라는 엘레노아를 살폈다.남색 드레스.작은 진주 귀걸이.별다른 장식도 없는 머리.예쁘지도 않았다.못생긴 것은 아니었지만, 클라라와 같은 거울 앞에 세운다면 거울이 미안해할 정도였다.그런데 엘레노아가 자리에 앉자 라비니아가 몸을 조금 틀었다. 세르반 영애는 향수병을 다시 꺼내 보여주었고, 조금 전까지 클라라에게 물어보던 영애들이 엘레노아의 반응을 기다렸다.엘레노아가 향을 맡았다.“조금 달군요.”“그렇죠?”라비니아가 바로 받았다.“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클라라는 찻잔을 들었다.라비니아는 진하다고 했다.달다고 한 적은 없었다.하지만 귀족들은 같은 말을 반복하지 않았다. 높은 사람이 한 말로 자기 말을 바꿨다.그게 그들의 예법인 모양이었다.“클라라 영애가 가져오셨어요.”세르반 영애가 말했다.엘레노아의 시선이 클라라에게 닿았다.“역시 로세트네요.”클라라는 그 말을 듣는 순간 향수 이야기가 지겨워졌다.역시 로세트.좋은 물건을 가져오면 역시 로세트.돈이 많아도 역시 로세트.드레스가 화려해
클라라는 오늘 입을 드레스를 세 벌이나 침대 위에 펼쳐놓고도 고르지 못했다.연분홍은 얼굴을 화사하게 만들었다. 하늘색은 피부를 더 희게 보이게 했고, 짙은 녹색은 허리를 가장 가늘게 잡아줬다. 어느 것을 입어도 자신이 가장 예쁠 것이라는 점은 달라지지 않았다. 문제는 오늘 필요한 게 단순히 예쁜 얼굴이 아니라는 것이었다.“분홍.”클라라가 마침내 말했다.시녀가 녹색 드레스를 들고 있던 손을 내렸다.“역시 이쪽이 가장 잘 어울리십니다.”“아까는 녹색이 낫다며.”“녹색도 잘 어울리시지만, 오늘은 분홍이 더…”“됐어. 네 말 들으려고 물은 거 아니니까.”클라라는 거울 앞에 앉았다. 시녀 둘이 달라붙어 머리를 빗기 시작했다.빗이 머리카락을 타고 내려갈 때마다 거울 속 얼굴이 조금씩 완성되었다. 이마는 적당히 넓었고, 눈꼬리는 웃지 않아도 살짝 올라가 있었다. 입술은 아무것도 바르지 않아도 붉었다.클라라는 자기 얼굴에 불만이 없었다.불만이 있다면 다른 사람들이 그 가치를 제대로 모른다는 것이었다.“머리는 더 높게 올려.”“그러면 오래 버티기 어렵습니다.”“저녁까지만 버티면 돼.”“핀을 많이 써야 합니다.”“쓰면 되잖아.”시녀가 더 말하지 않고 머리카락을 끌어모았다. 정수리가 당겼지만 클라라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다. 예뻐지기 위해 머리핀 몇 개쯤 견디지 못하는 여자들이 있었고, 그런 여자들은 대개 자신보다 못생겼다.오늘 모임에는 남부의 이름난 귀족가 자제들이 거의 모두 온다고 했다.세르반 자작 영애의 생일 다과회.초대장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하지만 클라라는 그런 말을 믿지 않았다. 생일을 축하하는 데 영애 스무 명과 귀족가 자제 열다섯 명이 필요할 리 없었다.그곳에서 결정되는 것은 따로 있었다. 누가 누구 옆에 앉는지, 어느 남자가 누구에게 먼저 인사하는지. 누가 새로 들여온 보석을 가장 먼저 차고 나오는지, 누가 말을 꺼냈을 때 사람들이 웃고 누가 같은 말을 했을 때 찻잔만 만지는지.귀족들은 상인들이 돈을 밝힌다고 흉을
절벽 위의 궁수 몇이 움직였다.금발 기사는 웃지 않았다.“혼자 올 줄 알았다.”“뒤에 둘은 눈에 안 들어옵니까?”야라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철퇴를 꺼냈다.금발 기사의 눈이 야라의 무기로 향했다가, 다시 카시안에게 돌아왔다.“로세트가 블랙우드 뒤에 숨었군.”“반대입니다.”“뭐?”“당신들이 로세트 뒤에 숨었죠.”짧은 침묵.금발 기사가 손을 들었다. 절벽 위의 활시위가 동시에 당겨졌다.“쏴.”화살이 쏟아졌다.카시안은 검을 뽑았다.챙.첫 번째 화살이 꺾였다. 두 번째는 검등에 맞아 옆으로 튕겼다.카시안은 앞으로 걸었다.화살이 빗발처럼 내려왔지만, 그의 걸음은 한 번도 끊기지 않았다. 검은 필요한 만큼만 움직였다.화살은 그의 몸에 닿기 전에 방향을 잃었다.베라는 이미 옆으로 빠져 있었다. 몸을 낮춰 쏟아지는 화살 사이를 파고들었다.베라의 낫칼이 말 위의 기사 손목을 걸었다. 그대로 잡아당기자 기사가 검을 놓쳤다. 그 몸이 아래로 기울기도 전에 베라의 발이 안장 옆을 찼다.기사는 말 아래로 떨어졌다.“살려두래.”베라가 중얼거렸다.“귀찮게.”두 번째 기사가 창을 겨눴다.베라는 몸을 낮췄다. 창끝이 머리 위를 스쳤다.낫칼의 붉은 끈이 짧게 흔들렸다. 창대가 걸렸다.베라가 손목을 틀자 창끝이 옆 기사를 향했다. 말 두 필이 놀라 몸을 틀었고, 뒤따르던 기사들까지 한꺼번에 엉켰다.야라는 정면으로 걸었다.방패병 셋이 길을 막았다.가장 앞의 방패병이 달려들었다.야라의 철퇴가 옆에서 들어갔다.쾅.방패는 부서지지 않았다. 대신 방패를 든 팔이 그대로 내려앉았다. 기사가 비명을 삼켰다.야라는 열린 틈으로 들어갔다.옆의 방패병이 급히 몸을 틀었다. 반대쪽 철퇴가 가슴갑옷을 찍었다.쾅.기사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마지막 방패병이 검을 뽑았다.야라는 검을 무시한 채 철퇴로 그의 무릎을 찍었다.갑옷 안쪽에서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기사가 옆으로 무너졌다.베라가 멀리서 말했다.“걸어서 돌아가야 된다고 했
며칠 전.카이든의 집무실에는 탄 냄새가 남아 있었다.책상 위에 놓인 천 조각과 부서진 나무패, 검게 그을린 보증서에 밴 냄새였다.카시안은 앉지 않았다. 창가에 기대선 채 책상 위의 물건들을 내려다봤다.카이든이 말했다.“최근 열흘 동안 세 번이다.”“들었습니다.”“어디서.”“항구에 입이 많더군요.”카이든의 표정이 굳었다.“로세트 내부 보고보다 빨랐다는 뜻인가.”카시안은 대답하지 않았다.그 침묵이 더 기분 나빴는지, 카이든이 책상 위의 보증서를 밀었다.“남부 염료 운송대가 습격당했다. 마차 네 대가 불탔고, 호위 둘이 죽었다.”카시안은 보증서 한쪽 끝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불에 그을렸지만, 도장은 남아 있었다.로세트의 장미.“두 번째는.”“북문으로 들어오던 철물 운송대. 마차 바퀴가 부러졌고, 협곡 아래로 떨어졌다.”“사망자는.”“다섯.”“세 번째.”카이든의 손이 옆에 놓인 나무패로 향했다.“어제 새벽. 동부 직물 공방 대금 호송.”카시안이 나무패를 집었다. 얇고 납작한 패였다. 한쪽에는 로세트 상단의 지급대 표식이 있었고, 반대편에는 깊은 칼자국이 남아 있었다.“돈은.”“그대로였다.”카시안의 눈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카이든이 말했다.“세 건 모두 화물도 일부 남았다. 금화도 손대지 않았다. 대신 거래 장부와 보증서 사본만 사라졌다.”“그럼 도둑은 아니군요.”“누가 봐도.”카시안은 목패를 내려놓았다.“사고도 아니고.”“그래.”집무실 안이 잠시 조용해졌다. 카이든은 그 침묵을 오래 두지 않았다.“세 거래처에서 모두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로세트 운송로를 믿고 물건을 맡겼으니, 손실도 로세트가 책임지라고.”“틀린 말은 아닙니다.”카이든의 눈빛이 차가워졌다.“내 앞에서 남의 편을 들 생각인가.”“의뢰를 받기 전에 값부터 올리는 겁니다.”카이든의 입술이 얇아졌다.카시안은 책상 위의 서류를 한 장 넘겼다.세 거래처의 배상 청구. 발신일은 달랐다. 문장은 비슷했다.운송 안전 보장 실패.기한 내
이번에는 대답이 빨랐다.“네.”여자들의 목소리가 겹쳤다.정하은은 방금 붙인 머리카락을 다시 떼어냈다.딸각.딸각.이번에는 아무도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조금 전까지 뒤로 물러났던 사람들이 정하은의 손끝을 따라 가까이 왔다.정하은은 짧은 검은 머리카락을 양옆에 붙였다.원래 머리는 뒤로 말아 올리고, 짧은 가닥을 얼굴 옆으로 내렸다.미라가 빗으로 몇 번 정리했다.몇 분 전과 또 다른 모습이 됐다.정하은이 고개를 조금 기울였다.“이건요?”주방 여자는 대답하지 못했다.자기 머리카락을 한 움큼 잡아 목덜미 위로 올려봤다.하녀 하나도 같은 행동을 했다.“저도 저렇게 할 수 있습니까?”“머리 길이에 따라 조금 다르겠지만요.”“이 색 말고 제 머리색으로도요?”“있어요.”“끝이 더 말린 건요?”“네. 그것도 있어요.”질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머리숱이 적은 곳에만 붙일 수도 있어요?”“혼자서도 할 수 있습니까?”“매일 바꿔도 됩니까?”“긴 것과 짧은 걸 같이 써도 돼요?”“저 붉은색 좀 보여주세요.”조금 전까지 식탁 위의 머리카락을 꺼리던 사람들이었다.이제는 상자 주변으로 모여들었다.미라가 머리카락을 하나씩 꺼내 보여줬다.“이쪽이 더 밝습니다.”“그건 뒤에 붙이는 길이예요.”“끝이 말린 건 눌리지 않게 잡아주세요.”주방 여자는 밝은 갈색 머리카락을 자기 얼굴 옆에 대봤다.옆에 있던 사람이 고개를 저었다.“그건 너무 밝아.”“그래?”“붉은색이 더 나아.”“붉은색은 너무 튀잖아.”“그게 좋은 거 아니야?”두 사람은 벌써 자기 물건처럼 고르고 있었다.그렌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식탁 한쪽으로 몰리자 접시를 먼저 치웠다.“음식 위로 넘기지는 마세요.”그는 빈 공간을 만들어 상자를 옮겨놓았다.여자들도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따라갔다.엘린은 식탁 끝에 기대 서서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며칠 동안 자신이 본 건 작은 금속 조각과 머리카락 묶음뿐이었다.정하은이 몇 번 붙였다 떼는 것도 봤다.그런데 사람들이 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