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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아흔여섯 모서리

Author: Jino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16 18:51:48

새벽 옷장 안은 캄캄했다.

숲에 가는 날은 해 뜨기 전에 일어나야 했다. 오전 수업에 늦지 않으려면 그랬다. 마르타가 촛대를 들고 옷장 앞에 쪼그려 앉았다.

“잠깐만요, 도련님. 불부터 붙이고요.”

부싯돌이 두 번 헛돌았다. 세 번째에도 불똥이 심지를 비껴갔다.

루엔은 옷장 아래 칸에 손을 넣었다. 양말 바구니였다. 루엔의 양말은 두 가지 색뿐이었다. 잿빛과 밤색.

손에 잡히는 대로 세 짝을 꺼냈다.

“불 안 붙여도 됩니다.”

“어두워서 짝을 못 맞추시잖아요.”

“두 가지 색뿐입니다. 세 짝을 꺼내면 두 짝은 반드시 같은 색입니다.”

마르타가 부싯돌을 든 채 멈췄다.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 폈다. 잿빛, 잿빛, 밤색. 잿빛, 밤색, 밤색. 밤색, 밤색, 밤색.

“… 정말 그러네요.”

불이 붙었을 때 루엔은 이미 잿빛 두 짝을 신고 있었다. 남은 밤색 한 짝은 바구니에 돌려놓았다.

그 뒤로 새벽 옷장 앞에서 초를 아끼는 하인들이 늘었다. 부엌데기 소녀는 이걸 「도련님 양말법」이라고 불렀다. 마부는 장갑에도 되느냐고 물었다. 장갑은 왼짝과 오른짝이 있어서 안 된다고 루엔이 말하자, 마부는 한참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

오두막 바닥에 오스윈이 원을 그렸다.

끈 달린 말뚝으로 그린 큰 원이었다. 지름이 열 뼘. 오스윈은 끈 매듭으로 그 길이를 두 번 확인했다.

“잘 보게. 이게 1서클 원진일세.”

그는 원 가장자리 한 곳에 손끝을 대고 영창을 시작했다. 느리고 낮았다. 손끝에서 희미한 무언가가 흘러나와 원을 따라 기어갔다. 빛이라기보다 흔들림이었다. 여름날 뜨거운 돌 위의 공기처럼.

흔들림이 원을 한 바퀴 돌았다.

처음 자리로 돌아오기 직전, 거기서 번쩍, 하고 흰빛이 튀었다.

오스윈의 영창이 반 박자 쉬었다. 번쩍임이 눌리듯 잦아들었다. 흔들림이 이어져 원이 닫혔다.

“모든 원진엔 이런 자리가 있네. 탑에선 ‘매듭 자리’라고 부르지. 끝이 처음을 만나는 곳. 거기서 늘 튀어. 그래서 영창으로 누르는 걸세.”

“반 박자 쉼이 그겁니까.”

“그렇네. 스무 해 배워야 붙인다는 그 쉼.”

루엔은 매듭 자리를 보았다. 번쩍임이 튄 흙바닥이 조금 그을려 있었다.

“선생님. 영창은 둘레를 얼마로 잡습니까.”

“지름의 세 배.”

“그러면 흔들림은 서른 뼘을 가다가 멈춥니다. 그런데 원은 서른 뼘보다 깁니다. 모자라는 만큼이 저 자리입니다.”

오스윈이 루엔을 보았다.

“그걸 누가 모르겠나. 그래서 쉼을 붙였지. 누르면 닫혀.”

“누르면 닫히지만, 튄 건 이미 튀었습니다.”

오스윈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을린 흙을 내려다보았다.

*

처음엔 끈으로 재려고 했다.

펠릭스가 노새 짐에서 긴 끈을 가져왔다. 원 둘레를 따라 끈을 눕히고, 그 끈을 다시 지름에 대어 접었다.

세 번 접고 조금 남았다. 손가락 한 마디 반쯤.

한 번 더 했다. 이번엔 두 마디.

“끈이 늘어납니다.” 루엔이 말했다. “당기는 힘에 따라 다릅니다. 이건 재는 게 아니라 어림하는 겁니다.”

“그럼 어쩌자는 건가.”

“셈하겠습니다.”

루엔은 오스윈의 컴퍼스를 가리켰다.

“선생님, 원 안에 모서리가 여섯인 도형을 그려 주십시오. 모든 변이 같게.”

오스윈은 말없이 컴퍼스를 폈다. 반지름 그대로 원 위를 여섯 번 짚었다. 여섯 번째가 처음 자리에 정확히 닿았다. 점들을 곧은 자로 이었다.

손이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이 사람은 이걸 수천 번은 그렸을 것이다.

“변 하나가 반지름과 같습니다.” 루엔이 말했다. “변이 여섯이니 둘레는 반지름 여섯 개, 지름 세 개입니다.”

오스윈의 눈이 가늘어졌다.

“… 세 배.”

“예. 탑의 세 배는 원이 아닙니다. 원 안에 든 육각형입니다.”

오두막이 조용했다. 개울 소리만 들렸다.

“육각형은 원 안에 있습니다. 그러니 원은 무조건 세 배보다 깁니다. 원 밖에 육각형을 하나 더 그리면, 원은 그것보다 짧습니다. 원 둘레는 두 육각형 사이 어딘가에 있습니다.”

“바깥 것은 얼마인가.”

“세 배 하고 반에 조금 못 미칩니다.”

“그럼 세 배와 세 배 반 사이. 그건 아무것도 안 잡은 거나 같네.”

“예. 그래서 모서리를 늘리겠습니다. 여섯을 열둘로. 열둘을 스물넷으로.”

오스윈은 컴퍼스를 쥔 채 루엔을 보았다.

“모서리가 늘면 도형이 원에 가까워지고, 안팎 사이가 좁아진다.”

“예.”

오스윈은 한참 말이 없었다. 그러다 탁자 위 종이를 치우고 새 종이를 폈다.

“그리는 건 내가 하지. 자네 손으로는 선이 굵어.”

*

그날부터 열이레가 걸렸다.

오스윈이 그렸다. 변을 반으로 나누는 선을 컴퍼스 두 번으로 긋고, 새 점을 원 위에 찍었다. 탑에서 배운 대로였다. 그 부분은 오스윈이 루엔보다 훨씬 빨랐다.

루엔은 셈을 했다.

도형은 그릴수록 원에 붙어 버려서, 눈으로는 더 잴 수 없었다. 거기서부터는 숫자만 믿어야 했다. 모서리를 두 배로 늘릴 때마다 새 변의 길이를 앞 변에서 셈해 냈다. 그 셈 가운데에는 어떤 수를 스스로 곱해서 나오게 하는 수를 찾는 대목이 있었다. 넷이면 둘, 아홉이면 셋. 그런데 이번 수들은 그렇게 딱 떨어지지 않았다. 한 번에 떨어지지 않았다. 한 자리씩 넣어 보고, 넘치면 빼고, 모자라면 올렸다.

밀랍판이 열두 개 필요했다. 펠릭스가 이웃 수도원 쪽 행상에게서 밀랍을 두 번 더 사 왔다.

펠릭스는 루엔이 낸 수를 셈판으로 한 줄씩 다시 셈했다. 궤짝에 넣었던 셈판을 다시 꺼냈다. 밀랍판에 적힌 수가 틀렸는지 보려면 다른 길로 셈해야 한다고 했다. 루엔은 그게 옳다고 생각했다.

열두 모서리. 스물넷. 마흔여덟.

아흐레째에 루엔이 한 번 틀렸다. 스물넷에서 끝자리 하나를 잘못 올렸다. 펠릭스가 찾았다.

“도련님, 여기.”

루엔은 판을 보았다. 틀린 자리가 거기 그대로 있었다. 셈한 길이 남아 있으니까.

“맞습니다. 제가 틀렸습니다. 이 뒤로는 다시 합니다.”

사흘을 되돌렸다. 오스윈은 그걸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그날부터 루엔이 판을 넘기면 먼저 받아서 끝자리를 짚어 보았다.

*

밤에도 셈은 이어졌다.

성으로 돌아오면 루엔은 촛불 아래서 밀랍판을 폈다. 숲에서 다 못 한 줄을 이어 적었다. 초가 짧아질 때마다 엘리나가 새 초를 들고 왔다. 그러고는 방을 나가지 않고 침대 끝에 앉았다.

“무얼 셈하는 거니.”

“원의 둘레입니다.”

“원?”

엘리나는 잠깐 생각하더니 제 방에 다녀왔다. 손에 수틀이 들려 있었다. 하얀 아마천, 옅은 잿빛 실로 수놓은 동그라미. 가운데는 여전히 비어 있었다.

“이것도 원이네. 이건 잘 그린 원이니?”

루엔은 수틀을 받아 촛불 가까이 들었다. 손가락으로 땀을 따라가며 셌다. 쉰일곱 땀. 위아래 지름과 옆 지름을 손가락 마디로 재었다.

“옆이 조금 깁니다. 달걀처럼 조금 찌그러졌습니다.”

엘리나가 웃음을 터뜨렸다.

“눈으로 그렸으니까. 컴퍼스 같은 건 없었어.”

“고쳐 드릴까요. 다시 수놓으시면—”

“아니.” 엘리나가 수틀을 돌려받았다. 찌그러진 동그라미를 손끝으로 쓸었다. “이건 가운데가 비어 있기만 하면 돼. 무엇이 비어 있는지 잊지 않으려고 그린 거니까.”

루엔은 그 말을 셈에 넣을 방법을 몰랐다. 그래서 넣지 않았다. 대신 그날 밤 밀랍판 귀퉁이에 작게 적었다. 쉰일곱 땀. 고치지 말 것.

*

열이레째 오후.

아흔여섯 모서리.

루엔은 마지막 판을 오스윈 앞에 놓았다.

“지름을 만 조각으로 나누면, 둘레는 삼만 천사백열 조각보다 깁니다. 그리고 삼만 천사백스물일곱 조각보다는 짧습니다.”

오스윈이 판을 보았다.

“풀어 말하게.”

“세 배 하고, 지름의 백분의 열넷을 조금 넘습니다. 백분의 열다섯까지는 가지 않습니다.”

전생에 외운 값이 있었다. 루엔은 그걸 알았다. 훨씬 더 긴 끝자리까지.

하지만 외운 값은 남에게 보여 줄 수가 없었다. 여섯 살 아이가 「그냥 압니다」라고 하면, 그건 셀빈의 번쩍임과 다를 게 없었다. 보이는 건 셈한 길뿐이었다. 그래서 열이레가 걸렸다.

오스윈은 새 종이에 그 두 수를 옮겨 적었다.

손이 떨렸다. 컴퍼스를 잡을 때는 한 번도 떨리지 않던 손이었다.

“탑에서는,” 오스윈이 말했다. 목소리가 낮았다. “원은 신의 도형이라 셈으로 잡을 수 없다고 가르쳤네. 조금 넘는 건 알아도, 그 조금은 사람이 붙잡을 게 아니라고.”

그는 펜을 내려놓았다.

“그걸 여섯 살짜리가 밀랍판 열두 개로 붙잡았군.”

구석에서 펠릭스가 셈판을 정리하다 멈췄다.

“수도원에서도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펠릭스가 말했다. 누구를 보고 한 말도 아니었다. “원은 신의 것이라고.”

오스윈이 펠릭스를 돌아보았다. 펠릭스는 셈판을 궤짝에 넣고 있었다. 이번엔 뒷면을 위로 하지 않았다.

둘은 더 말하지 않았다.

*

겨울이 깊어질 무렵, 오스윈이 말했다.

“이제 고리를 쌓아 보세. 그릇이 찼네.”

첫 서클이었다.

오스윈이 가르치는 방법은 이랬다. 숨을 고르고, 심장 둘레에 둥근 고리를 떠올린다. 고리를 쌓는 짧은 영창이 있었다. 그 안에도 세 배가 들어 있었고, 반 박자 쉼이 들어 있었다.

“탑의 아이들은 대개 첫 고리를 닫을 때 가슴께가 번쩍하지. 놀라지 말게. 누르면 닫히네.”

루엔은 눈을 감았다.

영창은 오스윈이 가르친 대로 했다. 다만 고리를 떠올릴 때, 둘레를 세 배로 떠올리지 않았다. 열이레 동안 밀랍판에 적은 수로 떠올렸다. 세 배 하고, 백분의 열넷을 조금 넘게.

쉼을 두어야 할 자리에서 쉬지 않았다.

누를 게 없었다.

가슴 한가운데에서 무언가가 둥글게 돌았다. 한 바퀴. 처음 자리에서 끝과 처음이 만났다. 이음매 없이.

조용했다.

루엔은 눈을 떴다.

오스윈이 루엔의 등에 손바닥을 대고 있었다. 한참 그러고 있었다.

“닫혔네.”

“예.”

“매듭 자리가 없어.”

오스윈이 손을 뗐다. 그리고 루엔의 가슴께를 보았다. 무언가를 찾는 눈이었다.

“번쩍임이 없었네.”

“눌러야 할 자리가 없었습니다.”

“탑에서 천 명 넘게 첫 고리를 봤네. 빛이 안 난 아이는 없었어.”

오스윈은 턱을 쓸었다. 칭찬하는 얼굴도, 나무라는 얼굴도 아니었다. 셈이 안 맞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루엔이 잘 아는 얼굴이었다.

“눈이 녹으면 라이트를 해 보세.”

오스윈이 말했다.

“자네 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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