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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세어 적은 봄

作者: Jino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16 18:53:30

스물, 열여덟, 스물셋, 열다섯, 스물하나.

그리고 여섯.

루엔은 그 여섯 줄을 한참 보았다. 앞의 다섯 줄은 지난 다섯 해 봄이었다. 마지막 줄이 올봄이었다.

*

숫자는 교회에 있었다.

사제는 묻힌 사람을 적었다. 이름, 날짜, 누구의 자식인지. 노르벡 교회 묘지에 묻힌 사람은 전부 앨드릭의 장부에 있었다. 그 전 사제의 장부도 궤짝에 있었다.

보리 싹이 한 뼘쯤 올라왔을 때 루엔은 교회 문을 두드렸다.

“묻힌 사람 장부를 보고 싶습니다.”

앨드릭이 루엔을 내려다보았다. 새벽 우물가 일은 둘 다 입에 올리지 않았다.

“무엇에 쓰시려고.”

“봄마다 몇 사람이 죽었는지 세려고 합니다.”

“죽은 사람을 세서 무엇을 하십니까.”

“올봄이 다른 봄과 달랐는지 알고 싶습니다.” 루엔이 말했다. “달랐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센 사람은 없습니다.”

앨드릭은 한참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다 몸을 돌려 제의실로 들어갔다. 나올 때 두꺼운 장부 두 권을 안고 있었다.

“죽은 이의 이름은 누구나 읽을 수 있습니다. 교회 문 앞에 붙이는 것이니까요.” 앨드릭이 장부를 탁자에 놓았다. “다만 여기서 읽으십시오. 성으로는 못 가져갑니다.”

장부를 누르고 있는 앨드릭의 손톱 밑이 깨끗했다. 루엔은 보지 않은 척했다.

“예.”

*

루엔은 교회 뒷줄 의자에 앉아 이틀 동안 장부를 넘겼다.

앨드릭의 글씨는 작고 반듯했다. 옛 글자였다. 날짜, 이름, 나이를 아는 사람은 나이, 모르는 사람은 「어린아이」 「늙은이」.

봄을 어디부터 어디까지로 할지 먼저 정했다. 눈이 녹는 달부터 보리가 이삭을 팰 때까지. 해마다 날짜가 조금 달랐다. 앨드릭이 장부 여백에 첫 종 치는 날, 파종 미사 날을 적어 두어서 맞출 수 있었다.

그 사이에 묻힌 사람을 셌다. 다섯 해 치.

스물. 열여덟. 스물셋. 열다섯. 스물하나.

올봄은 여섯.

루엔은 밀랍판에 두 번 셌다. 두 번 다 여섯이었다.

여섯 가운데 넷은 눈 녹고 열흘 안에 묻혔다. 아래 우물에 돌을 쌓기 전이었다. 명부를 보니 넷 다 아래 우물 물을 먹는 집이었다. 나머지 둘은 늙은이였다. 한 사람은 잿빛열이 아니라 겨우내 앓던 기침으로 갔다고 앨드릭이 여백에 적어 두었다.

앨드릭이 뒤에 와 있었다. 루엔 어깨 너머로 밀랍판을 보았다.

“여섯.” 앨드릭이 말했다.

“예.”

“신께서 올봄을 가볍게 하셨을 수도 있지요.”

루엔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 있습니다. 한 해는 한 해뿐입니다. 올봄이 원래 순한 봄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앨드릭이 눈썹을 올렸다. 반박을 기다린 얼굴이었다.

“그래서 내년에도 세겠습니다. 그다음 해에도. 여러 해가 쌓이면, 순한 봄이 몇 번 겹쳤는지 알 수 있습니다.”

앨드릭은 한참 장부를 보았다. 제 글씨로 적은 스무 해 치 이름들을.

“그럼 저도 내년에 적겠습니다.” 앨드릭이 말했다. “늘 적었던 대로. 도련님이 세기 좋게, 봄 끝나는 날에 줄 하나 그어 두지요.”

루엔은 그 말을 오래 기억했다.

*

가렛은 밀랍판을 보고 한 가지만 물었다.

“이걸 마을 사람들이 읽을 수 있나.”

“못 읽습니다.” 루엔이 말했다. “펠릭스 선생님이 읽어 주셔야 합니다.”

“그럼 사람들은 선생 말을 믿는 거지, 이 판을 믿는 게 아니군.”

루엔은 대답하지 못했다. 맞는 말이었다. 몰튼의 장부도 서른 해 동안 그랬다. 아무도 읽지 못해서 아무도 대 보지 못했다.

“셈을 가르치겠습니다.” 펠릭스가 말했다. “아이들부터. 판을 제 눈으로 읽을 수 있을 만큼만이라도.”

가렛이 펠릭스를 보았다.

“수도원에서도 가르치셨소?”

펠릭스는 잠깐 말이 없었다. “가르쳤습니다. 수도원 학교에서.” 그리고 덧붙였다. “여기서는 끝까지 가르치겠습니다.”

가렛은 더 묻지 않았다. 그날로 성 창고 옆 빈방을 내주었다. 몰튼이 장부를 두던 방이었다.

*

첫날 아이가 열넷 왔다.

마을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겔트네 둘째, 핌의 손자를 업고 온 누나, 마흔한 번째 집 아이와 마흔두 번째 집 아이. 둘은 서로 멀찍이 앉았다. 부엌데기 소녀도 앞치마를 두른 채 문간에 섰다. 베르타가 보냈다고 했다. 한스도 왔다. 기사 창을 닦다 말고 왔다고 했다.

펠릭스가 석판과 분필을 나눠 주었다. 브란이 쇠 되 만들고 남은 쇠판을 잘라 준 석판 틀이었다.

“셈은 몇까지 할 줄 아느냐.”

아이들이 손가락을 폈다. 열까지는 다 했다. 그다음에서 멈췄다.

겔트네 둘째가 손을 들었다. 일곱 살쯤 된 사내아이였다.

“열 넘으면 발가락 쓰면 돼요.”

아이들이 웃었다. 펠릭스도 웃으려다 루엔을 보았다.

루엔은 웃지 않았다. 진지하게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러면 스물까지 됩니다.”

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칭찬을 들을 줄은 몰랐던 얼굴이었다.

“그다음이 문제입니다. 스물하나는 무엇으로 셉니까.”

아이들이 제 발을 내려다보았다. 누군가 신발을 벗었다. 발가락을 세었다. 열. 손가락 열. 모자랐다.

“그래서 자리를 씁니다.” 루엔이 석판에 둥근 글자를 그렸다. “손가락 열을 다 쓰면, 한 번 다 썼다고 옆에 하나를 적습니다. 그리고 손가락은 처음부터 다시 셉니다.”

아이들이 한참 석판을 보았다. 겔트네 둘째가 신발을 마저 벗었다.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제 석판을 보았다.

그날 수업이 끝났을 때 교실 문간에 신발이 열네 켤레 벗겨져 있었다. 한스 것까지. 다음 날부터 아이들은 들어오면서 신발부터 벗었다. 펠릭스가 신고 들어오라고 해도 벗었다. 발가락도 셈에 쓰는 것이라고 했다.

사흘째에는 마흔한 번째 집 아이와 마흔두 번째 집 아이가 석판 하나를 같이 쓰고 있었다. 분필이 모자라서였다. 누가 먼저 쓰느냐로 다투지는 않았다. 그날은 날짜가 홀수인 날이었다.

한 아이가 쉬는 틈에 펠릭스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왜 수도원에서 나왔어요?”

펠릭스는 분필을 내려놓았다.

“틀린 걸 틀렸다고 해서.”

“뭐가 틀렸는데요?”

“너희가 백까지 틀리지 않고 세면 말해 주마.”

아이들이 와 하고 백을 향해 세기 시작했다. 스물에서 셋이 떨어져 나갔다. 루엔은 창가에서 펠릭스의 옆얼굴을 보았다. 웃고 있었다. 눈은 창밖을 보고 있었다.

*

숟가락 일은 초여름에 터졌다.

잿빛열이 끝났는데도 숟가락은 돌아오지 않았다. 스물한 개 가운데 돌아온 건 아홉. 나머지는 마을에서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아낙들이 숟가락으로 소금을 쟀다. 꿀을 쟀다. 씨앗을 쟀다. 집집마다 나무로 깎은 숟가락이 생겼다. 쇠 숟가락을 흉내 낸 칸 셋짜리였다.

그리고 광장에서 싸움이 났다.

혼례를 앞둔 두 집이었다. 신부 쪽이 지참금으로 꿀을 보내기로 했다. 꿀 칸으로 서른.

“서른 칸이라더니 이게 서른이냐.”

“우리 숟가락으로 서른이오.”

“누구네 숟가락으로?”

루엔은 그 소리를 광장 끝에서 들었다. 걸음이 멈췄다.

신랑 쪽 숟가락과 신부 쪽 숟가락을 나란히 놓았다. 둘 다 나무였다. 꿀 칸 크기가 달랐다. 한쪽이 눈에 띄게 컸다. 제 집 아재가 깎은 것이라고 했다.

루엔은 숟가락 둘을 들고 서 있었다.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

누구네 되로. 누구네 뼘으로. 누구네 숟가락으로.

광장 돌기둥 위의 쇠 되가 보였다. 되 하나를 맞추느라 몇 해가 걸렸다. 그리고 제 손으로 새 제멋대로를 하나 만들어 마을에 풀었다.

“도련님 얼굴이 하얗네.” 누가 말했다.

*

그날 저녁 브란이 쇠 숟가락 하나를 광장 돌기둥에 사슬로 묶었다. 쇠 되 옆이었다. 처음 만든 숟가락이었다. 핌의 손자에게 꿀물을 떠먹인 것.

루엔이 판자에 적었다. 펠릭스가 두 벌로 옮겨 적었다.

숟가락은 이 숟가락에 대 본다. 꿀 칸에 물을 채워 이 숟가락에 부어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으면, 대장간에서 손잡이에 불도장을 찍어 준다.

첫 이레 동안 대장간 앞에 숟가락 쉰일곱 개가 줄을 섰다. 브란이 하나하나 물을 부어 보았다. 서른한 개가 맞았다. 스물여섯 개는 칼로 조금 파내거나, 새로 깎아 오라고 돌려보냈다.

혼례는 쇠 숟가락으로 다시 잰 꿀로 치렀다. 서른 칸 하고 조금. 신부 쪽이 조금을 더 얹었다. 혼례 음식은 조금 달았다.

가렛이 판자를 보고 말했다.

“대 보지 않은 복사는 복사가 아니다.”

“아버지가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니 네가 했어야지.”

루엔은 고개를 숙였다. 수첩을 폈다. 원래 그렇다 쪽 말고, 고친 것 쪽에 적었다. 제 이름으로.

*

한여름, 비가 오지 않는 날이 이어졌다.

그날은 이상하게 쓸쓸했다. 까닭은 알았다. 아침에 펠릭스가 교실에서 한 아이의 셈을 보고 「대충 맞았다」고 했다. 좋은 뜻이었다. 거의 맞았으니까.

대충 해, 서 박사.

그 목소리가 떠올랐다. 쉰 넘은, 사람 좋은 얼굴. 연구실 불이 하나씩 꺼지던 밤. 그 사람은 지금도 누군가에게 그 말을 하고 있을 것이다. 서재현이 없는 연구실에서.

루엔은 교실 문간에 앉아 있었다. 셈을 하지 않았다. 셀 것이 없었다.

“도련님.”

마흔두 번째 집 아이였다. 여덟 살 계집아이. 석판을 두 손으로 들고 있었다. 신발은 벗은 채로.

“이거 봐요. 끝자리까지 맞췄어요.”

석판에 셈이 있었다. 루엔의 글자로. 백스물일곱 더하기 여든넷. 줄을 맞춰 세우고, 넘친 하나를 윗자리에 작게 적었다. 이백열하나.

끝자리까지.

“선생님은 대충 맞았다고 했는데요.” 아이가 말했다. 조금 뾰로통했다. “대충 아니에요. 다 맞았어요. 제가 세 번 셌어요.”

루엔은 석판을 보았다. 아이를 보았다.

웃음이 나왔다.

참을 틈이 없었다. 셈으로 누를 틈도 없었다. 소리가 먼저 나왔다. 교실 안 아이들이 돌아보았다. 펠릭스가 분필을 든 채 굳었다. 복도를 지나던 베르타가 걸음을 멈췄다.

루엔은 웃었다. 소리 내서. 이 세계에 와서 처음으로, 참지 않고.

“맞습니다.” 웃음 사이로 말했다. “대충이 아닙니다. 끝자리까지 맞았습니다.”

아이가 석판을 끌어안고 교실로 뛰어 들어갔다. “도련님이 다 맞았대요!”

베르타가 복도에서 앞치마로 눈가를 한 번 훔쳤다.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게. 부엌데기 소녀만 보았다.

그날 밤 루엔은 수첩을 펴지 않았다. 적을 게 없어서가 아니었다. 적으면 줄어들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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