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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화. 달아난 번개

작가: Jino
last update 게시일: 2026-10-16 18:55:14

디트마르 페르난은 서고에서 속삭이는 법을 몰랐다.

“하르트.”

목소리가 지하 서고 돌 천장에 부딪혀 세 번 울렸다. 책상 앞에 앉아 있던 오드리크가 고개를 들었다. 입술에 손가락 하나를 댔다. 사십 년 서고를 지킨 손가락이었다.

디트마르가 입을 다물었다.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그러고는 몸을 숙여, 루엔이 앉은 책상 쪽으로 다가왔다. 발소리를 줄이려고 애쓰는 게 보였다. 잘 되지 않았다. 키 큰 사람의 걸음은 돌바닥에서 컸다.

루엔은 광로가 떨어뜨린 한낮 빛 아래서 옛 영창 기록을 넘기고 있었다. 늦봄이었다. 해가 높아 서고 책상 위 빛 동그라미가 겨울보다 컸다.

디트마르가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빛 동그라미를 한참 보았다.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계단 쪽을 보았다. 쟁반 두 개가 번쩍이는 계단 쪽을.

“이게 그거냐. 모퉁이를 도는 빛.”

속삭였다. 억지로 낮춘 목소리가 쉬어 있었다.

“예.”

“뜨겁지 않네.”

“해가 오는 길에 쟁반에서 열이 조금씩 떨어집니다.”

디트마르는 손을 빛 속에 넣었다 뺐다. 그러고는 손을 탁자 아래로 내렸다. 할 말을 고르는 사람의 손이었다.

*

“너 북부에서 번개를 땅에 박았다며.”

루엔이 기록에서 눈을 들었다.

“산적 습격 때. 쇠막대로. 라이트닝 볼트를 쏜 놈이 있었다고.”

“있었습니다.”

“그놈 이름 아냐.”

“하겐 로스입니다.”

디트마르가 멈췄다.

“… 알고 있었냐.”

“아홉 살 가을에 순회 마법사 셀빈 님께 들었습니다. 적색탑 전쟁 마법사단, 페르난 장로 부대에서 달아난 자라고. 습격 날엔 산적들이 그 이름을 불렀습니다. 하겐, 번개가 휘어, 하고.”

디트마르가 숨을 한 번 들이쉬었다.

“그 페르난 장로가 우리 아버지다.”

오드리크가 책장 넘기는 소리가 멈췄다. 곧 다시 이어졌다.

“루프레히트 페르난. 적색탑 장로. 그때는 전쟁 마법사단장이었다.”

디트마르는 그 이름을 말할 때 등을 곧게 폈다. 그러고는 금세 다시 숙였다.

“입학하던 날 디트마르 님 성을 듣고,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루엔이 말했다. “수첩에 적어 두었습니다. 여쭙지는 않았습니다.”

“왜.”

“짐작은 셈이 아닙니다. 확인하는 길은 여쭙는 것뿐인데, 여쭙기에 알맞은 때를 셈할 수가 없었습니다.”

디트마르가 루엔을 한참 보았다.

“지금이 그때다.”

“예.”

“페르난 가문 부대에서 달아난 자가 북부에서 산적 두목 노릇을 하다가, 영지 기사 집안 열 살짜리한테 번개를 막혔다. 우리 집에선 그 얘기를 안 해. 식탁에서 북부라는 말만 나와도 아버지가 잔을 내려놓는다.”

“그 말씀을 하시려고 오셨습니까.”

“원망하려고 온 거 아니다.” 디트마르가 먼저 말했다. 속삭임이 조금 커졌다. 오드리크의 손가락이 다시 올라갔다. 디트마르가 다시 낮췄다. “네가 뭘 잘못했냐. 막은 게 잘못이냐. 수치는 달아난 놈이랑, 놈을 못 잡은 우리 쪽 거다.”

“셀빈 님은 제가 아홉 살 때 이태 전에 달아났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다섯 해 남짓 됩니다.”

디트마르가 입을 벌렸다가 닫았다.

“… 다섯 해 전 겨울이다. 너는 정말.”

“잡혔습니까. 그 뒤로.”

“아니. 북쪽 숲으로 사라졌다더군. 부대에선 죽었다고 치고 이름을 지웠어.”

“왜 달아났는지는 아십니까.”

디트마르가 입을 다물었다. 잠깐.

“몰라. 아무도 말 안 해. 달아났다는 것만.”

루엔은 수첩을 폈다. 맨 뒷장이 아니라 앞쪽, 사람 이름을 적는 장이었다. 아홉 살 가을에 적은 하겐 로스 줄이 있었다. 그 아래에 보탰다. 페르난 장로는 루프레히트 페르난, 디트마르 님 아버지. 다섯 해 전 겨울 달아남. 까닭: 아무도 말 안 함. 확인: 열두 살 봄, 서고.

디트마르가 그걸 보고 있었다.

“뭐든 적는구나.”

“적지 않으면 틀립니다.”

디트마르가 턱을 괴었다. 목소리가 조금 더 낮아졌다.

“그놈 번개는 어땠냐.”

루엔은 두 해 전 늦여름 아침을 떠올렸다.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날 셈한 수는 전부 수첩에 있었다.

“영창이 스물여덟 마디였습니다. 셋째 고리치고 짧다고, 제 선생님이 잘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두 번 쐈습니다. 둘 다 쇠막대로 갔습니다. 셋째는 쏘지 않았습니다. 성벽의 쇠막대를 손가락으로 하나씩 세어 보고, 대열을 지어 물러났습니다.”

“세어 봤다고?”

“예. 그게 제 수첩 맨 뒷장 「모르는 것」 셋째 줄입니다. 번개를 쓰던 사람은 왜 끝까지 세어 보고 갔나.”

디트마르가 코로 짧게 숨을 뿜었다. 웃음은 아니었다.

“아버지 말로는 그자는 질 싸움은 안 했다더라. 부대에서 그걸로 유명했대. 셈이 빨라서, 이길 수 없는 판이면 제일 먼저 알았다고.”

루엔은 맨 뒷장을 폈다. 셋째 줄 옆에 작게 적었다. 질 싸움은 안 하던 사람 — 디트마르. 줄은 긋지 않았다. 질 싸움을 안 하는 사람이 왜 이길 수 없는 판까지 와서 세어 보았는지는 여전히 몰랐다.

“하나 더 있습니다. 사로잡은 산적이 그랬습니다. 그자는 번개를 쓰고 나면 왼손이 한참 떨린다고. 하루에 몇 번 못 쓴다고.”

디트마르가 눈을 내리깔았다. 탁자 위 빛 동그라미 가장자리를 손톱으로 긁었다.

“아버지 부대 사람들은 다 짧게 쏜다. 짧고 세게. 전쟁터에선 길게 읊을 틈이 없으니까.”

“손도 다 떨립니까.”

디트마르는 한참 대답하지 않았다.

“… 오래 있던 사람들은.”

그 말 뒤로 디트마르는 입을 닫았다. 루엔도 더 묻지 않았다. 앞쪽 하겐 로스 줄 아래에 한 줄을 더 보탰다. 번개 뒤 왼손 떨림. 적색탑 전쟁 마법사단, 오래 있던 사람들도.

*

“그리고 물어볼 게 있어서 왔다.”

디트마르가 탁자 위로 몸을 숙였다.

“쇠막대 하나로 라이트닝 볼트를 땅에 박는다는 게 정말이냐. 우리 탑에선 번개를 막는 법은 하나라고 가르친다. 더 센 번개를 맞부딪치는 것. 그게 안 되면 피하는 것. 쇠막대 얘기는 한 번도 못 들었어.”

“정말입니다.”

“어떻게.”

루엔은 빈 종이에 그림을 그렸다. 하늘, 땅, 그 사이에 선 막대 하나.

“번개는 땅으로 가려고 합니다. 가는 길이 여럿이면 가장 쉬운 길로 갑니다. 공기는 어려운 길이고, 사람 몸은 조금 쉬운 길이고, 쇠는 아주 쉬운 길입니다. 쇠막대를 높이 세워 두면 번개가 쇠를 타고 내려갑니다.”

“내려가서.”

“땅속으로 흩어집니다. 그러니 막대 끝을 땅에 깊이 묻어야 합니다. 젖은 흙까지. 마른 흙이나 돌에 묻으면 번개가 땅으로 못 들어가고 막대 둘레에서 다른 길을 찾습니다.”

“다른 길이라면.”

“가까운 사람입니다.”

디트마르가 종이를 보았다. 한참. 그러고는 고개를 들었다.

“내가 직접 해 보겠다.”

“예.”

“네 말만 믿을 순 없어.”

“믿지 마십시오. 재십시오.”

디트마르가 눈을 가늘게 떴다. 무슨 뜻인지 가늠하는 눈이었다. 비꼬는 말이 아니라는 걸 알아채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너 그 말, 누구한테나 하냐.”

“제 말을 해 보겠다고 하는 사람한테는 합니다. 그런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디트마르는 대답 없이 일어섰다. 이번엔 발소리를 줄이려고 애쓰지도 않고 계단으로 걸어갔다. 첫 꺾임에서 쟁반에 제 얼굴이 비치자 잠깐 멈춰 보았다. 그러고는 올라갔다.

오드리크가 속삭였다.

“페르난 집안 아이가 저렇게 작게 말하는 건 처음 봤네.”

“작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세 번 울렸습니다.”

“그래도 애쓴 건 봤지.”

*

이튿날 아침, 디트마르가 식당에 들어왔다.

식당이 조용해졌다.

디트마르의 머리카락이 전부 서 있었다. 붉은 기 도는 금빛 머리가, 한 올 한 올 하늘을 향해 뻗어 있었다. 짧은 머리라 더 곧게 섰다. 머리통이 두 배로 커 보였다. 눈썹까지 조금 들려 있었다.

디트마르는 아무 일도 없다는 얼굴로 빵 바구니 앞에 섰다. 빵을 집었다. 자리로 가서 앉았다. 수프를 떴다.

아무도 묻지 못했다.

적색탑 페르난 가문의 후계였다. 겨루기 날 모래판을 달리던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 머리를 하늘로 세우고 수프를 먹고 있었다. 식당 끝에서 끝까지, 백 명 넘는 학생이 수프 숟가락을 든 채 멈춰 있었다. 누구도 먼저 웃지 않았다. 먼저 웃는 사람이 첫 번째 파이어볼을 맞을 것 같았다.

식당 아주머니가 국자를 들고 디트마르 옆을 지나가다 멈췄다. 머리를 올려다보았다.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그리고 지나갔다. 식당 아주머니도 묻지 않은 건 처음이었다.

테오가 루엔 옆구리를 찔렀다. 입 모양으로만 말했다. 저거 뭐야.

루엔은 빵을 내려놓고 일어났다. 디트마르 식탁까지 걸어갔다. 식당 전체의 눈이 루엔을 따라왔다.

루엔은 디트마르 앞에 섰다. 머리카락을 보았다. 한 올도 빼지 않고 전부 선 것을.

“쇠막대 끝을 땅에 안 묻으셨군요.”

디트마르의 숟가락이 멈췄다.

“… 묻었다.”

“어디에 묻으셨습니까.”

“실습장 과녁 옆. 돌 틈에.”

“돌은 마른 흙보다 더 안 됩니다. 번개가 땅으로 못 들어가서 막대 둘레에서 가장 가까운 길을 찾았습니다.”

“가장 가까운 길이 나였다고.”

“머리카락이 말해 줍니다.”

식당 어디선가 누가 코로 숨을 뿜었다. 참다 샌 웃음이었다. 디트마르가 그쪽을 돌아보았다. 조용해졌다.

“쇼크로 했다.” 디트마르가 낮게 말했다. “둘째 고리 번개. 라이트닝 볼트는 과녁판이 부서질까 봐. 막대 꼭대기에 쐈는데, 번개가 막대를 타고 내려가다가…”

“멈췄습니다.”

“멈춰서 나한테 왔다. 막대를 잡고 있었으니까.”

“잡고 계셨습니까.”

“넘어질까 봐.”

“다음엔 잡지 마십시오. 막대가 넘어지는 게 낫습니다.”

디트마르가 루엔을 올려다보았다. 선 머리카락 아래 얼굴이 무척 진지했다.

“젖은 흙까지라고 했지.”

“팔 길이만큼 파면 이 철엔 젖은 흙이 나옵니다.”

디트마르가 수프 그릇을 비웠다. 한 번에. 그러고는 일어나 식당을 나갔다. 머리카락이 문틀 위쪽에 스쳤다. 식당 전체가 그 뒷모습을 보았다. 문이 닫히고 나서야 웃음이 터졌다. 식당이 무너질 것 같은 웃음이었다.

루엔은 웃지 않았다. 자리로 돌아와 수첩에 적었다. 디트마르 페르난: 막대 돌 틈에 묻음. 막대를 잡음. 쇼크. 결과: 머리.

“너 저거 적으면 죽는다.” 테오가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잰 사람이 디트마르 님입니다. 결과를 적지 않으면 그분이 잰 게 없어집니다.”

*

한낮이 지나서 디트마르가 다시 서고로 내려왔다.

머리카락은 반쯤 누워 있었다. 반쯤은 여전히 서 있었다. 흙이 소매에 묻어 있었다. 손톱 밑이 까맸다.

이번엔 처음부터 속삭였다.

“다시 했다. 과녁 옆 풀밭. 팔 길이만큼 파서 젖은 흙에 묻었다. 안 잡았다. 쇼크를 막대 꼭대기에 쐈다.”

“어떻게 됐습니까.”

“번개가 막대를 타고 내려가서 땅으로 들어갔다. 막대 둘레 풀이 조금 탔다. 나한텐 안 왔다.”

디트마르가 반쯤 선 머리를 가리켰다.

“이건 아침 거다.”

“몇 번 하셨습니까.”

디트마르가 입을 다물었다. 루엔을 한참 노려보았다.

“… 세 번.”

“세 번이면 됩니다.”

“한 번만 하고 오려다가 네가 그걸 물을 것 같아서 세 번 했다.”

루엔이 디트마르를 보았다. 처음으로, 이 사람이 무엇을 할지 셈하지 않고 보았다.

“고맙습니다.”

“뭐가.”

“제가 물을 것을 먼저 재 오셨습니다.”

디트마르가 코웃음을 쳤다. 조용한 서고에서 코웃음이 두 번 울렸다. 오드리크의 손가락이 올라가기 전에 디트마르가 먼저 입을 막았다.

그러고는 손을 내리며 속삭였다.

“아버지한테 편지 쓸 거다. 쇠막대 얘기. 우리 탑이 모르는 걸 북부 영지 애가 안다고.”

“그렇게 쓰시면 아버님이 잔을 내려놓으실 겁니다.”

“그러니까 쓰는 거다.”

디트마르가 일어섰다. 계단 첫 꺾임, 쟁반 앞에서 또 멈췄다. 반쯤 선 제 머리를 비춰 보았다. 손바닥으로 꾹 눌렀다. 손을 떼자 다시 섰다.

디트마르는 그대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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