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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화. 스물네 번

Author: Jino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16 18:56:18

테오가 칼브 가게에 마지막 동화 넷을 낸 건 가을 학기가 끝나 가는 무렵이었다.

스물여섯 주. 한 주도 빠지지 않았다. 테오는 영수증을 받아 들고 기숙사로 뛰어 올라왔다. 루엔 책상에 영수증을 탁 내려놓았다.

“끝!”

루엔은 영수증을 읽었다. 날짜, 금액, 칼브의 도장. 그리고 맨 아래 작은 글씨. 남은 것 없음.

“끝입니다.”

“너도 끝이라고 했다. 이제 진짜 끝이다.”

그 주말, 열세 살 생일을 이레 넘긴 날이었다. 테오는 빚이 끝난 기분을 장터에서 썼다.

*

해 질 무렵 테오가 빈 주머니로 돌아왔다.

“주사위 판이 있었어. 둘 굴려서 합이 일곱이면 네 배를 줘. 일곱이 제일 잘 나오잖아. 그래서 일곱에 걸었지.”

“얼마나 거셨습니까.”

“한 번에 한 닢씩. 아홉 번.”

“몇 번 나왔습니까.”

“… 한 번.”

테오가 침대에 쓰러졌다. 동화 아홉 닢을 걸고 네 닢을 받았다. 다섯 닢이 사라졌다.

루엔은 분필을 들었다. 방에 넓은 판이 없었다. 벽이 있었다.

첫째 주사위가 하나일 때 둘째가 하나부터 여섯. 첫째가 둘일 때 또 여섯. 루엔은 벽에 줄을 그어 나갔다. 여섯 줄에 여섯 칸. 서른여섯 칸마다 두 수와 그 합을 적었다.

“일곱이 제일 잘 나오는 건 맞습니다.” 루엔이 합이 일곱인 칸에 동그라미를 쳤다. “여섯 칸입니다. 서른여섯 가운데 여섯. 여섯 번에 한 번꼴입니다.”

“그래서 네 배를 주는 거 아냐?”

“여섯 번에 한 번 나오는 걸 맞히면, 걸었던 돈 말고 다섯 닢을 더 받아야 서로 안 잃습니다. 그 판은 건 한 닢까지 쳐서 네 닢을 줍니다. 두 닢이 판 주인 몫입니다. 여섯 번마다.”

테오가 벽을 올려다보았다. 서른여섯 칸이 벽 한 면을 채우고 있었다.

문이 열렸다.

사감 이르마 뮐이 서 있었다. 키가 크고 마른 사람이었다. 허리에 열쇠 꾸러미가 달려 있었다. 물시계 통 값 영수증을 앞치마에 넣었던 그 사감이었다.

사감은 벽을 보았다. 서른여섯 칸을 끝에서 끝까지.

“누가 썼느냐.”

“제가 썼습니다.” 루엔이 말했다.

“제가 쓰게 했습니다.” 테오가 말했다.

사감은 둘을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 짧게 말했다.

“내일 해 지기 전까지 원래대로. 비누는 너희 돈으로.”

사감이 나갔다. 문 밖에서 기침 소리가 났다. 한 번, 두 번. 루엔은 그 기침이 아픈 기침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웃음을 참을 때 나는 소리였다.

이튿날 둘은 수도원 비누 한 덩이를 사서 벽을 닦았다. 동화 여덟 닢. 분필은 석회벽 틈에 스며 세 번을 닦아야 빠졌다.

테오가 걸레를 짜며 말했다.

“벽 닦는 값이 잃은 돈보다 많다.”

“세 닢 많습니다.”

“세지 마.”

*

그 장터 주사위꾼이 한 말이 있었다. 테오가 벽을 닦으며 전했다.

“이건 푼돈 판이래. 진짜 판은 드렉슬러네. 경비병들이 월급날마다 거기서 다 털린대.”

사흘 뒤가 경비대 월급날이었다. 루엔과 테오는 해 진 뒤 언덕 아래로 내려갔다.

파울 드렉슬러의 도박장은 강가 창고 거리 끝, 낮은 돌집이었다. 등불이 밝았다. 탁자 셋. 가운데 탁자 둘레에 푸른 겉옷을 입은 경비병들이 몰려 있었다.

드렉슬러는 가운데 탁자 뒤에 서 있었다. 마른 사내였다. 손이 곱고 손톱이 깨끗했다. 웃지 않았다. 주사위 둘을 손바닥에서 굴리는 버릇이 있었다. 루엔과 테오를 보고도 쫓아내지 않았다.

“구경은 공짜요. 거는 건 열여섯 살부터.”

판은 하나였다.

손님이 주사위 둘을 스물네 번 던진다. 스물네 번 안에 여섯과 여섯이 한 번이라도 나오면 손님이 이긴다. 한 번도 안 나오면 주인이 이긴다. 건 만큼 주고, 건 만큼 받는다.

경비병 하나가 루엔에게 설명해 주었다. 신이 나 있었다.

“여섯 여섯은 서른여섯 번에 한 번 나온다. 스물네 번 던지니까 서른여섯에 스물넷. 셋에 둘이지. 우리가 이기는 판이야.”

“그런데 왜 월급날마다 잃으십니까.”

경비병의 얼굴이 굳었다. 옆 사람이 대신 대답했다.

“운이지. 요즘 운이 없어.”

드렉슬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주사위만 굴렸다.

경비병 하나가 은화를 걸고 주사위를 받았다. 흰 뼈 주사위였다. 모서리가 조금 닳아 있었다.

던질 때마다 둘레가 따라 셌다.

“하나!” 셋과 다섯. “둘!” 여섯과 둘. “셋!”

열 번이 넘자 목소리가 커졌다. 열다섯. 여섯과 다섯이 나왔을 때 누군가 탁자를 쳤다. 스물. 스물하나. 경비병의 손이 떨렸다. 스물넷.

넷과 여섯.

둘레에서 한숨이 한꺼번에 샜다. 드렉슬러가 은화를 쓸어 갔다. 표정이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테오가 입술을 움직이며 세고 있었다. 루엔은 제 수첩에 적었다. 판마다 한 줄. 손님이 이겼는지, 몇 번째에 여섯 여섯이 나왔는지.

그날 밤 루엔이 본 판은 열한 판이었다. 손님이 이긴 판은 둘이었다.

열한 판으로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었다. 루엔은 그것도 적었다. 열한 판. 적음. 그리고 한 줄을 더. 월급날.

*

그날 밤 루엔은 잠을 자지 않았다.

셋에 둘. 경비병의 셈은 그럴듯했다. 그럴듯해서 틀린 데가 잘 안 보였다.

루엔은 먼저 그 셈을 끝까지 따라가 보았다. 스물네 번 던지면 서른여섯에 스물넷. 그럼 마흔 번 던지면 서른여섯에 마흔. 서른여섯을 넘는다. 반드시 나오는 것보다 더 잘 나온다는 뜻이 된다. 그런 건 없다.

넘칠 수 없는 게 넘쳤으니, 셈이 틀린 것이었다.

틀린 곳은 겹침이었다. 여섯 여섯이 두 번 나오는 판을 두 번 세고 있었다. 세 번 나오는 판은 세 번.

그래서 루엔은 뒤집었다. 나오는 경우를 세는 대신 한 번도 안 나오는 경우를 셌다. 안 나오는 쪽은 겹칠 게 없었다.

한 번 던지면 서른여섯 가지 가운데 여섯 여섯이 아닌 게 서른다섯.

두 번 던지면 서른여섯 곱하기 서른여섯, 천이백아흔여섯 가지. 둘 다 여섯 여섯이 아닌 건 서른다섯 곱하기 서른다섯, 천이백스물다섯.

던질 때마다 모두는 서른여섯 배, 안 나오는 쪽은 서른다섯 배로 는다. 스물네 번이면 수가 너무 커서 적을 수 없었다. 대신 몫만 따라갔다. 모두 가운데 안 나오는 쪽이 얼마나 되는지. 서른여섯에 서른다섯을 스물네 번 곱한 몫.

스물네 번을 다 곱할 필요는 없었다. 두 번 곱한 몫을 다시 두 번 곱하면 네 번 곱한 몫. 그걸 또 곱하면 여덟 번, 열여섯 번. 열여섯 번과 여덟 번을 곱하면 스물네 번. 다섯 번 곱셈이면 됐다. 루엔은 밀랍판 넉 장을 채웠다. 끝자리마다 아홉 빼기 검산을 했다.

천에 오백여덟쯤.

한 번 더 셈했다. 이번엔 길을 바꿔서. 열두 번 곱한 몫을 먼저 내고 그걸 두 번 곱했다. 같은 수가 나왔다. 끝자리까지.

스물네 번을 던져 여섯 여섯이 한 번도 안 나오는 경우가 천 번에 오백여덟 번쯤이었다. 나오는 경우는 사백아흔둘쯤.

반반에 아주 가까웠다. 그러나 반보다 조금 모자랐다. 손님 쪽이.

셋에 둘이 아니라, 천에 사백아흔둘.

루엔은 밀랍판을 내려놓았다. 창밖이 잿빛이었다. 테오가 이불 속에서 물었다.

“누가 이기는데.”

“드렉슬러 씨입니다. 조금.”

“조금이 얼마만큼.”

“천 판을 하면 열여섯 판쯤 더 이깁니다.”

테오가 이불을 걷었다.

“그걸로 월급을 다 털어?”

루엔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게 걸렸다.

*

경비대 초소는 남쪽 성문 옆에 있었다.

경비대장 베른트 호스는 마흔 줄의 사내였다. 목이 굵었다. 코가 한 번 부러졌다가 조금 휘어 붙었다. 이마에 투구 자국이 눌려 있었다. 루엔의 밀랍판을 받아 들고 끝까지 보았다. 글자는 절반도 못 읽는 얼굴이었다. 그래도 끝까지 보았다.

“그러니까, 드렉슬러 판이 우리 애들한테 조금 불리하다.”

“예. 반에서 천에 여덟쯤 모자랍니다.”

“천에 여덟이면 운이지.” 호스가 밀랍판을 돌려주었다. “드렉슬러는 허가를 받은 판이다. 주사위도 손님이 굴린다. 종이 한 장으로 허가 받은 판을 접을 수는 없어.”

틀린 말이 아니었다.

“접으시라는 게 아닙니다.”

호스가 눈썹을 올렸다.

“제 셈대로면 판은 조금 불리할 뿐입니다. 경비병들이 월급날마다 월급을 다 잃으시는 건 이 셈으로는 안 나옵니다. 그러면 둘 중 하나가 틀렸습니다. 제 셈이 틀렸거나, 월급날 판이 이 판이 아니거나.”

초소 안이 조용해졌다. 벽에 기대 있던 경비병 몇이 몸을 세웠다.

“월급이 얼마십니까.” 루엔이 그중 하나에게 물었다.

“한 달 은화 두 닢 반.”

“지난 월급날엔 얼마 잃으셨습니까.”

경비병이 호스 눈치를 보았다. 호스가 턱짓을 했다.

“두 닢.”

“그 전 월급날은.”

“한 닢 반. 그 전엔 두 닢.”

다른 경비병들도 하나씩 말했다. 루엔은 받아 적었다. 열두 사람, 석 달. 월급날 밤 하루에 월급의 절반에서 다섯에 넷까지.

“다른 날에도 가십니까.”

“월급 받기 전엔 돈이 없지.” 누군가 말했다. 웃음이 조금 났다. “가끔 가지. 그땐 거는 돈이 작으니까 잃어도 작고.”

“다른 날엔 얼마나 이기고 지십니까.”

경비병들이 서로를 보았다.

“… 반반쯤? 그땐 좀 따기도 해.”

루엔은 그 말 옆에 줄을 그었다. 반반쯤. 월급날만 다섯에 넷.

호스가 한참 루엔을 내려다보았다.

“네 셈이 틀렸는지는 어떻게 아나.”

“던져 보시면 됩니다. 경비대 주사위로. 천 판.”

“천 판.”

“스무 분이 돌아가며 던지시면 이틀이면 됩니다. 제가 미리 봉해 두겠습니다. 손님 쪽이 몇 판 이길지.”

호스가 웃었다. 크게. 초소 벽이 울렸다.

“좋다. 대신 네가 틀리면.”

“예.”

“우리 초소 벽을 네가 닦아라. 서른여섯 칸 쓴 벽 얘기는 들었다.”

“틀렸는지는 누가 정합니까.”

“천 판이 정하지.”

“천 판도 조금은 흔들립니다. 봉할 때 몇 판에서 몇 판 사이라고 적겠습니다. 그 사이에 들면 맞은 겁니다.”

호스가 루엔을 다시 보았다. 웃음기가 조금 빠졌다.

“사이라.”

“셈이 한 점으로 맞는 건 주사위가 아닙니다. 되나 저울입니다.”

호스는 대답 대신 손을 내밀었다. 루엔이 종이에 적어 접자 호스가 받아 가슴 갑옷 안쪽에 넣었다. 두 번 두드렸다.

루엔은 테오를 보았다. 테오는 천장을 보고 있었다.

소문은 셈보다 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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