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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서른 배

Author: Jino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16 18:51:01

겨루기는 이튿날 아침, 아버지 방에서 했다.

구경꾼이 생각보다 많았다.

가렛은 책상 뒤에 앉았다. 엘리나는 수틀을 무릎에 얹고 창가에 앉았다. 마르타는 문 옆에 섰다. 집사 몰튼은 부르지도 않았는데 왔다. 셈이라면 자기 일이라는 얼굴이었다.

코넬은 끌려왔다. 목검을 빼앗긴 채였다.

“나 이거 왜 봐야 돼.”

“동생이 뭘 하는지 알아 두라.” 가렛이 말했다.

“쟤 맨날 뭐 세잖아.”

“그러니까 알아 두라.”

펠릭스는 책상 한쪽에 셈판을 놓았다. 수도원에서 가져온 판이었다. 가렛의 판보다 줄이 두 개 많았다. 나무가 손때로 까맸다.

루엔 앞에는 밀랍판 하나와 뾰족한 막대 하나.

그리고 둘 사이에 초가 하나 섰다.

“수도원에서 쓰던 눈금 초입니다.” 펠릭스가 말했다. “기도 시간을 재려고 옆에 금을 그어 둔 초지요. 초가 하나뿐이니 번갈아 하겠습니다. 셈하는 동안만 불을 켜 두고, 답을 말하면 끕니다.”

좋은 방법이었다. 루엔은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해시계는 방 안에서 쓸 수 없고, 교회 종은 너무 성겼다.

“문제는 제가 냅니다. 어젯밤에 푼 서른 개 가운데 열 개. 둘 다 같은 문제를 풉니다.”

“예.”

“답은 나리께서 적어 두십시오.”

가렛이 펜을 들었다.

*

첫 문제는 작았다.

“열둘 곱하기 일곱.”

초에 불이 붙었다.

“여든넷.”

펠릭스였다. 셈판에 손도 대지 않았다. 불을 붙인 하인이 손을 떼기도 전이었다.

코넬이 벌떡 일어났다. “선생님 이겼다!”

루엔 차례에 불이 붙자, 루엔도 곧바로 말했다. “여든넷입니다.”

하지만 펠릭스보다 한 숨 늦었다. 밀랍판에 적느라 막대를 먼저 들었기 때문이었다.

“작은 수는 셈판이 빠릅니다.” 루엔이 말했다. “셈판이 아니라 선생님 머리가 빠르신 겁니다.”

펠릭스가 웃었다. 코넬은 어리둥절했다. 동생이 진 걸 인정하는 걸 처음 보았다.

둘째, 셋째 문제도 비슷했다. 펠릭스는 셈판 위로 손가락을 몇 번 튀기고 답을 말했다. 루엔은 조금 늦거나 같았다.

몰튼이 팔짱을 끼고 흐뭇하게 끄덕였다. 셈판을 쓰는 사람의 끄덕임이었다.

넷째 문제에서 달라졌다.

“삼백팔십칠 곱하기 이백사십육.”

펠릭스의 손이 셈판 위를 달렸다.

곱셈을 셈판으로 하려면 쪼개야 한다. 삼백팔십칠에 이백을 곱하고, 사십을 곱하고, 육을 곱해 각각 놓고, 그걸 다시 더한다. 판은 하나뿐이라 한 조각을 놓으면 다음 조각을 놓을 자리가 없다. 펠릭스는 중간 값을 밀랍판 귀퉁이에 옛 글자로 적어 두었다. 지붕, 갈고리, 엇갈림. 글자가 길어졌다.

손은 빨랐다. 정말 빨랐다. 조약돌이 빗방울처럼 딸각거렸다.

초가 타들어 갔다.

한참 뒤에야 펠릭스가 고개를 들었다.

“구만 오천이백둘.”

불이 꺼졌다. 몰튼이 저도 모르게 숨을 내쉬었다.

루엔 차례에 초가 다시 켜졌다.

루엔은 밀랍판에 세 줄을 적었다. 삼백팔십칠을 여섯 번, 마흔 번, 이백 번. 줄마다 한 칸씩 밀려 적었다. 그 세 줄을 아래로 더했다.

“구만 오천이백둘입니다.”

펠릭스가 초를 보았다. 녹은 밀랍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방이 조용해졌다.

*

다섯째부터는 숫자가 더 커졌다.

마지막 문제는 네 자리끼리였다.

“이천칠 곱하기 삼천사백오.”

펠릭스의 셈판은 줄이 모자랐다. 몰튼이 제 방으로 뛰어가 더 큰 셈판을 들고 왔다. 펠릭스는 두 판을 나란히 놓고 셈했다. 이마에 땀이 맺혔다. 밀랍판 귀퉁이는 옛 글자로 새까매졌다.

초의 눈금이 하나 넘어갔다.

루엔은 이천칠을 적을 때 가운데에 동그라미 둘을 그렸다. 펠릭스가 곁눈으로 그걸 보았다. 입술이 조금 움직였다. 그저께 모래 마당에서 들은 말을 되뇌는 것 같았다.

없는 것도 적는다.

“육백팔십삼만 삼천팔백삼십오입니다.”

루엔의 답이 먼저 나왔다. 불을 끄고 다시 켜서 펠릭스 차례가 이어졌다. 펠릭스는 한참 뒤에 같은 수를 말했다.

가렛이 답을 적다가 멈췄다.

“일곱째 문제.”

펠릭스가 고개를 들었다.

“일곱째는 답이 다르다. 선생 것과 루엔 것이 열 차이 난다.”

펠릭스가 자기 밀랍판을 보았다. 그러다 루엔의 밀랍판을 끌어다 보았다. 루엔의 판에는 세 줄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어느 줄을 어떻게 더했는지가 다.

펠릭스의 손가락이 둘째 줄에서 멈췄다.

“여기군요.”

그는 셈판으로 일곱째를 다시 했다. 이번엔 천천히. 그리고 한숨을 쉬었다.

“제가 틀렸습니다. 셋째 줄에서 돌 하나를 윗줄로 안 올렸습니다.”

“어떻게 알았소.” 가렛이 물었다.

“셈판은 다 하고 나면 흔적이 없습니다, 나리. 돌을 쓸어 담으면 끝입니다. 틀렸는지 보려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지요.”

펠릭스는 루엔의 밀랍판을 들어 가렛에게 보였다.

“그런데 도련님 판에는 셈한 길이 남습니다. 틀린 자리를 손가락으로 짚을 수 있습니다.”

빠른 것만 본 게 아니었다. 루엔은 속으로 놀랐다. 펠릭스는 지고 있는 와중에도 무엇이 다른지를 보고 있었다.

*

초를 쟀다.

루엔이 실 한 가닥을 얻어 왔다. 녹아내린 밀랍의 길이를 실에 옮겨 매듭을 지었다. 자기 몫 열 번, 펠릭스 몫 열 번.

그리고 자기 실 길이로 펠릭스 실을 접어 쟀다.

한참 걸렸다. 모두가 기다렸다.

“서른 배쯤이군.” 가렛이 먼저 말했다.

“스물아홉 배 반입니다.”

루엔이 실을 내려놓았다.

“서른 배라고 하시면 안 됩니다. 반 배가 넘치게 됩니다.”

펠릭스가 웃음을 터뜨렸다. 모래 마당에서처럼, 크게.

“저는 서른 배라고 하겠습니다, 도련님. 소문은 원래 반올림돼서 퍼지니까요.”

루엔은 얼굴을 찌푸렸다. 원래라는 말이 또 나왔다.

펠릭스는 웃음을 거두고 셈판을 한쪽으로 밀었다. 그러고는 가렛을 향해 허리를 굽혔다.

“나리. 부탁이 있습니다.”

“말하시오.”

“오늘부터 제가 도련님 제자가 되겠습니다.”

마르타가 입을 막았다. 몰튼은 들고 있던 셈판을 떨어뜨릴 뻔했다.

가렛이 수염을 쓸었다.

“가정교사가 제자가 되면, 삯은 누가 받소.”

“제가 받겠습니다.”

“……”

“글과 예법은 제가 가르치겠습니다. 셈은 도련님께 배우겠습니다. 그리고 배운 걸 제 말로 다시 정리하겠습니다. 도련님 말은 너무 짧아서, 다른 사람은 못 알아듣습니다.”

그 말은 맞았다. 루엔도 인정했다.

가렛은 한참 펠릭스를 보다가 말했다.

“좋소. 삯은 그대로.”

사람들이 흩어질 때, 몰튼이 루엔의 밀랍판을 한참 내려다보았다.

“도련님. 이 동그라미 글자, 장부에도 쓸 수 있겠습니까.”

“쓸 수 있습니다. 배우시겠습니까.”

몰튼은 잠깐 망설였다. 그러다 자기 셈판을 품에 안았다.

“아닙니다. 저는 이게 손에 익어서요. 이 나이에 새 글자를 배우면 장부가 엉킵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나갔다. 셈판을 안은 팔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루엔은 그 등을 보았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오래 쓴 도구는 버리기 어렵다. 다만 새 글자로 적은 장부는 누구든 다시 셈해 볼 수 있다는 걸, 몰튼도 방금 보았을 텐데.

*

코넬은 끝까지 방에 남아 있었다.

사람들이 다 나가자 코넬이 루엔 옆에 쭈그려 앉았다. 밀랍판을 들여다보았다.

“야. 그거 나도 가르쳐 줘.”

루엔은 조금 놀랐다. 형이 무언가를 배우겠다고 한 건 처음이었다.

“예. 먼저 글자 열 개입니다. 하나부터 아홉까지, 그리고 없음.”

루엔이 하나씩 적었다. 코넬이 따라 적었다. 셋까지는 좋았다. 넷에서 막대가 비뚤어졌다. 다섯에서 코넬이 막대를 놓았다.

“대충 알겠어.”

“다섯까지입니다. 아직 다섯 남았습니다.”

“나머진 대충 비슷하겠지.”

“비슷하지 않습니다. 여덟은 매듭처럼—”

코넬은 벌써 일어나 있었다. 목검을 찾으러 가는 게 분명했다.

“선생님을 서른 배로 이겼으면 됐지. 난 기사 될 거야. 기사는 칼만 세면 돼.”

문이 닫혔다.

루엔은 코넬이 적다 만 글자 다섯 개를 보았다. 넷의 막대가 기울어 있었다. 그런데 셋은 제대로였다. 아주 제대로였다. 루엔이 적은 것보다 오히려 반듯했다.

루엔은 판을 문질러 지우다가, 그 셋 하나만 남겨 두었다.

*

그날 저녁 식탁에서 엘리나가 물었다.

“오늘 기분 어떠니, 루엔.”

루엔은 수프 숟가락을 내려놓고 생각했다. 어머니가 물으면 제대로 답해야 했다.

“어제보다 삼 할쯤 낫습니다.”

엘리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루엔은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한 입 먹었다. 그리고 다시 내려놓았다.

“… 삼 할은 부정확했군요.”

“응?”

“어제 기분을 잰 적이 없습니다. 잰 적 없는 것에 삼 할을 붙였습니다.”

엘리나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어깨가 떨렸다. 가렛이 빵을 떼다 말고 아내를 보았다.

결국 엘리나가 웃음을 터뜨렸다. 식탁에 이마를 댈 만큼. 코넬도 영문도 모르고 따라 웃었다.

루엔은 조용히 수프를 먹었다. 오늘부터는 기분도 적어 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

겨울 내내 수업은 이상하게 흘러갔다.

오전엔 펠릭스가 글을 가르쳤다. 오후엔 루엔이 셈을 가르쳤다. 펠릭스는 오후에 더 열심이었다.

어느 흐린 오후, 펠릭스가 하품을 참으며 말했다.

“도련님. 하나부터 백까지 전부 더해 오십시오. 천천히 하셔도 됩니다.”

그러고는 난롯가 의자에 등을 기댔다. 눈을 감았다. 오늘은 좀 쉴 생각인 게 분명했다.

펠릭스가 두 번쯤 숨을 쉬었을 때였다.

“오천쉰입니다.”

펠릭스가 한쪽 눈을 떴다.

“… 벌써요.”

“앞뒤로 짝지어 더했습니다. 하나와 백. 둘과 아흔아홉. 셋과 아흔여덟. 전부 백하나입니다. 그런 짝이 쉰 개 있습니다.”

펠릭스는 두 눈을 다 떴다.

그리고 한참 천장을 보았다.

“백하나가 쉰 개.”

“예.”

펠릭스가 일어났다. 난롯가 의자를 떠나 책상으로 갔다. 밀랍판을 끌어당겨 받아 적었다. 하나와 백, 둘과 아흔아홉. 적다가 멈추고, 하나부터 이백까지를 혼자 해 보았다. 그다음엔 하나부터 천까지.

낮잠은 끝내 자지 않았다.

이튿날 오후, 펠릭스는 이번엔 「하나부터 천까지」라고 했다. 루엔은 조금 더 걸렸다. 그래도 펠릭스의 눈이 감기기 전이었다.

사흘째, 펠릭스는 더하기 문제를 내지 않았다.

“낮잠은 봄에 자겠습니다.”

*

첫눈은 펠릭스가 온 지 사흘 만에 내렸고, 겨울은 길었다.

봄이 오자 루엔은 다섯 살이 되었다.

그 무렵 펠릭스는 수도원에서 가져온 셈판을 궤짝에 넣기로 했다. 이제 쓸 일이 없다고 했다. 궤짝에 넣기 전에 마른 천으로 판을 한 번 닦았다.

루엔은 옆에서 그걸 보다가 판 뒷면을 보았다.

손때 묻은 나무에 무언가가 새겨져 있었다. 둥근 무늬 같았다. 그 위를 칼끝으로 여러 번 그어 지운 자국이 있었다. 새긴 것보다 지운 자국이 더 깊었다.

펠릭스가 루엔의 눈길을 알아챘다.

그는 판을 뒤집어 궤짝에 넣었다. 뚜껑을 닫았다.

“오래된 판입니다, 도련님.”

그 말뿐이었다.

루엔은 더 묻지 않았다. 펠릭스는 첫날 아버지에게 묻지 말아 달라고 했다.

하지만 지운 자국은 셀 수 있었다.

열한 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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