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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화. 참지 못한 밤, 안 싫었던 마음 (2)

작가: 윤미주
last update 게시일: 2026-07-17 15:40:30

현관 앞에서 구두를 신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심장이 먼저 알았다.

태준이었다.

[강태준]

* 일어났어?

나는 화면을 보고

몇 초 동안 가만히 있었다.

참 이상하다.

이렇게 별것 아닌 말 하나가

문 앞에서 발목을 잡는다.

나는 답장했다.

[출근하려고.]

읽음.

[강태준]

* 잤어?

이번엔 바로 답하지 못했다.

거짓말을 할까.

잤다고.

아주 잘 잤다고.

그럼 아무렇지 않아 보일까.

나는 한참 화면을 보다가

짧게 보냈다.

[조금.]

읽음.

답이 바로 오지 않았다.

그 침묵이 오히려 더 웃겼다.

그도 지금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조금.

그게 무슨 뜻인지.

조금 잤다는 건지,

조금 못 잤다는 건지,

조금 네 생각을 했다는 건지.

곧 메시지가 왔다.

[강태준]

* 나도.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진짜 이 사람.

말을 너무 아껴서

가끔은 더 많이 말한다.

[그건 안 물어봤는데.]

[강태준]

* 말하고 싶어서.

나는 현관문 손잡이를 잡은 채

한숨을 내쉬었다.

어제부터 계속 이렇다.

말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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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열주의   237화. 덜 단, 다음 (6)

    잠시 뒤 만두가 다 익었다.나는 접시에 옮겨 담고 식탁 앞에 앉았다.편의점 냉장고 안에 나란히 놓여 있던 저당 라떼가 떠올랐다.다음에 가도 같은 자리에 있을 것이다.그때는 태준이 고르겠다고 했다.나는 만두를 하나 집어 들었다.다음이 언제인지는 아직 몰랐다.그래도 이번에는,그 말을 굳이 지우고 싶지 않았다.⸻【서윤의 기억 25】예전에 태준과 편의점에 갔던 밤이 있었다.야근을 끝내고 늦게 만난 날이었다.나는 피곤하다며 단 커피가 마시고 싶다고 했고, 태준은 바닐라 라떼를 골랐다.자기는 아메리카노를 샀다.밖으로 나와 한 모금 마셨는데 생각보다 너무 달았다.나는 얼굴을 찌푸렸고,태준은 이유를 묻지도 않고 자기 커피와 바꿔주었다.이번에는 아메리카노가 너무 썼다.결국 나는 설탕을 하나 넣었고,태준은 내가 남긴 바닐라 라떼를 마셨다.“너 단 거 안 좋아하잖아.”내가 묻자 태준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네가 이것보다 아메리카노가 낫다며.”그날 우리는 서로의 커피를 바꿔 들고 걸었다.나는 태준이 내 취향을 잘 안다고 생각했고,태준도 아마 그렇게 믿었을 것이다.하지만 가끔은 틀렸다.내가 원하는 맛을 잘못 고르기도 했고,그가 좋아할 거라고 생각한 것이 아닐 때도 있었다.그럴 때 우리는 그냥 바꿔 마셨다.그리고 오랫동안,그 정도면 서로를 충분히 안다고 생각했다.일요일 편의점에서는 내가 냉장고 문을 열었다.어제보다 덜 단 라떼를 두 개 골랐다.하나는 내가 마셨고,하나는 태준에게 건넸다.이번에는 바꿔 마실 필요가 없었다.

  • 미열주의   236화. 덜 단, 다음 (5)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안에는 아무도 없었다.우리는 함께 탔다.태준이 자기 층을 누르고, 나는 그 위에 있는 내 층 버튼을 눌렀다.거울 같은 문에 두 사람이 나란히 비쳤다.한 손에는 각자의 장바구니.회사에서 돌아오는 모습과는 달랐다.주말 저녁을 준비하기 위해 편의점에 다녀온 사람들처럼 보였다.실제로도 그랬다.엘리베이터가 태준의 층에서 먼저 멈췄다.그가 봉투를 들고 문 앞에 섰다.“라떼 잘 마셨어.”“다음에는 네가 사.”“기억하고 있어.”태준이 내 장바구니를 한번 보았다.“저녁 먹어.”“너도. 밥 남았다고 했지?”“응. 라면만 먹는 건 아니야.”“그럼 됐어.”문이 닫히기 시작했다.태준이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내일 봐.”“응. 내일 봐.”문이 완전히 닫혔다.엘리베이터가 다시 올라갔다.집에 들어와 장바구니를 식탁 위에 올렸다.우유를 냉장고에 넣고 달걀을 하나씩 꺼냈다.깨진 건 없었다.냉동실에서 만두를 꺼내 팬에 올렸다. 기름을 조금 두르고 불을 켜자 금방 지글거리는 소리가 났다.물을 한 모금 마셨는데도 입안에 라떼 맛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어제보다 덜 달았고,그래서 다른 맛도 조금 더 잘 느껴졌다.나는 만두를 뒤집었다.한쪽이 생각보다 노릇하게 익어 있었다.태준과 저녁을 먹은 건 아니었다.라떼를 마신 뒤 각자의 장바구니를 들고 돌아왔고, 지금도 각자의 집에서 다른 음식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그런데 오늘은 그게 아쉽지 않았다.같이한 시간을 더 늘이지 않아도,끝난 뒤에 허전해지지 않았다.

  • 미열주의   235화. 덜 단, 다음 (4)

    편의점 자동문이 열리며 아이를 데리고 나온 부부가 지나갔다.아이는 손에 든 아이스크림 봉지를 흔들었고, 아버지는 떨어뜨린 영수증을 주웠다.나는 그 모습을 잠깐 바라보다가 라떼 병을 비웠다.태준도 거의 다 마신 상태였다.“갈까?”내가 물었다.“그래.”태준이 빈 병 두 개를 들고 편의점 앞 분리수거함에 넣었다.나는 장바구니를 챙겼고, 그는 자기 봉투를 들었다.건물까지는 길 하나만 건너면 됐다.우리는 편의점 앞 횡단보도 쪽으로 걸었다.해가 거의 넘어가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고 있었다.“라떼는 성공이네.”태준이 말했다.“응. 이건 다음에도 마실 수 있겠어.”“다음엔 다른 것도 골라볼까?”“네가 고르면 또 너무 단 거 고르는 거 아니야?”“오늘 네가 고른 걸 기억하면 되지.”“그럼 똑같은 거잖아.”“실패할 가능성이 없잖아.”“안전하게 가네.”“커피는 안전해도 괜찮지.”나는 고개를 끄덕였다.“그건 그래.”신호가 바뀌었다.길을 건너 건물 쪽 골목으로 들어섰다.주차장 입구와 이어진 좁은 길이라 차가 들어오면 보행자들이 벽 쪽으로 붙어야 했다.멀리서 헤드라이트 불빛이 보였다.태준이 먼저 알아차렸다.“차 온다.”나는 옆으로 물러나려다 무심코 그의 셔츠 소매를 잡았다.손가락 끝에 얇은 천의 감촉이 닿았다.태준도 내 쪽으로 한 걸음 움직였다.차가 생각보다 가까이 지나갔다.바람이 옷자락을 흔들었다.차가 골목 끝으로 빠져나간 뒤에야 내가 그의 소매를 잡고 있다는 걸 알았다.나는 천천히 손을 놓았다.태준은 잡혔던 소매를 내려다보지 않았다.그저 지나간 차 쪽을 한번 본 뒤 말했다.“갑자기 들어왔네.”“그러게.”우리는 다시 걸었다.설명할 말이 없는 건 아니었다.차가 가까워서 그랬다고 말할 수도 있었고, 놀라서 무심코 잡았다고 할 수도 있었다.하지만 어느 말도 꺼내지 않았다.태준도 묻지 않았다.내 손에는 아직 셔츠의 얇은 감촉이 남아 있었다.건물 로비에 들어서자 밝은 조명이 바닥에 길게 비쳤다.택배함 앞에는

  • 미열주의   234화. 덜 단, 다음 (3)

    태준이 장바구니를 의자 옆에 내려놓았다.생수병이 서로 부딪히며 작은 소리를 냈다.“큰 물은 안 샀네.”내가 물었다.“무거워서.”“어제 내가 그럴 것 같다고 했지?”“맞혔어.”“강태준도 귀찮은 게 있구나.”“생각보다 많아.”“뭐가 더 귀찮아?”태준은 잠시 생각했다.“다 쓴 걸 늦게 발견하는 거.”“휴지 같은 거?”“휴지, 면도날, 세제.”“그러면서 미리 사두지는 않고?”“미리 사두면 있는 줄 알고 더 늦게 확인해.”그럴듯한 말이었다.“그건 조금 알 것 같아.”“너도 그래?”“샴푸 새것까지 사놓고, 욕실에 옮기는 걸 잊어.”“다 쓴 다음에 생각나고?”“응. 물 묻은 채로 다시 나오지.”태준이 웃었다.“상상된다.”“왜.”“그냥.”“되게 급하게 나오는 사람처럼 말하네.”“급하지 않아?”나는 잠깐 생각하다 웃었다.“급하지.”이런 이야기를 태준과 해본 적이 있었나 싶었다.샴푸가 떨어진 날이나 휴지를 뒤늦게 사는 일.연인이었을 때는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말들이 많았다. 서로의 하루를 묻고, 보고 싶다고 하고, 다음 약속을 정했다.그런데 정작 이런 사소한 일은 잘 몰랐다.태준은 라떼를 조금 더 마신 뒤 물었다.“내일 아침은 달걀 먹게?”“우유랑 같이. 시간 있으면.”“시간 없으면?”“회사에서 뭐라도 먹어야지.”“내일 오전 회의 있잖아.”나는 그를 봤다.“기억하네.”“금요일에 일정 정리할 때 들었어.”“아홉 시 반이야. 너무 이른 건 아니야.”“그래도 아침은 먹고 가.”말투는 담담했다.나를 타이르거나, 대답을 확인하려는 말이 아니었다.나는 병을 손안에서 굴렸다.“먹고 갈게.”“나도 먹고 갈게.”“너는 왜 갑자기 약속해?”“너만 챙겨 먹으라고 하면 불공평하잖아.”“그건 맞네.”나는 다시 라떼를 마셨다.어제보다 덜 단 맛이었다.단맛 뒤에 커피 향이 조금 남았다.“이번 주는 좀 덜 바빠?”내가 물었다.“월요일만 지나면.”“월요일에 뭐 있어?”“오전 현장 확인. 오후에는 보고서

  • 미열주의   233화. 덜 단, 다음 (2)

    태준은 먼저 계산대 쪽으로 가지 않고 내 걸음에 맞춰 음료 냉장고 앞까지 함께 걸었다.유리문 안에는 커피와 음료가 여러 줄로 놓여 있었다.아메리카노.바닐라 라떼.돌체 라떼.저당 라떼.어제 마신 자판기 커피가 다시 생각났다.나는 냉장고 문을 열었다.차가운 공기가 손등을 스쳤다.저당 라떼 하나를 꺼냈다가, 옆에 있는 같은 병을 하나 더 집었다.이번에는 망설이지 않았다.문을 닫고 돌아서자 태준이 내 손에 들린 라떼를 봤다.“두 개네.”“응.”나는 그중 하나를 그의 장바구니 위에 올려놓았다.“이건 네 거.”태준이 라떼와 나를 번갈아 봤다.“어제 네가 샀잖아.”“기억하고 있었어?”“내가 다음에는 산다고 했잖아.”태준은 병을 손으로 감싸 쥐었다.“고마워.”“덜 단 걸로 골랐어.”그가 라벨을 확인했다.“어제보다 낫겠네.”“아마도.”우리는 각자 계산했다.나는 우유와 달걀, 쓰레기봉투와 라떼 두 병을 한꺼번에 결제했다. 태준은 자기 물건을 계산한 뒤에도 라떼는 따로 꺼내지 않았다.편의점을 나오자 바람이 조금 더 서늘해져 있었다.태준이 입구 옆에 놓인 작은 테이블을 보았다.“마시고 갈래?”나는 시간을 확인했다.서두를 일은 없었다.“그래.”우리는 편의점 앞 플라스틱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어제의 세탁실보다 바깥이 조금 시끄러웠다. 자동문이 열리고 닫혔고, 사람들이 택배 상자를 들고 드나들었다. 도로에서는 차가 천천히 지나갔다.태준이 병뚜껑을 열었다.나도 라떼를 한 모금 마셨다.단맛이 먼저 오기는 했지만 어제보다는 훨씬 덜했다.“이건 괜찮다.”내 말에 태준도 한 모금 마셨다.“어제 것보다 낫네.”“그렇지?”“응. 커피 맛도 조금 더 나고.”“자판기 라떼는 설탕 맛밖에 안 났어.”“그래도 꽤 마셨잖아.”“네가 샀으니까.”말하고 나서 병을 내려다봤다.굳이 붙일 필요가 없는 말이었는데 자연스럽게 나왔다.태준은 대단한 의미를 찾으려는 얼굴을 하지 않았다.대신 병을 한 번 가볍게 흔들었다.“다음엔 내가

  • 미열주의   232화. 덜 단, 다음 (1)

    일요일 늦은 오후였다.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남아 있는 건 생수 한 병과 달걀 두 개뿐이었다.배달을 시킬까 잠시 고민했지만, 휴대폰을 들여다보다가 내려놓았다. 월요일 아침에 먹을 것도 필요했고, 쓰레기봉투도 거의 다 떨어져 있었다.나는 얇은 셔츠를 걸치고 장바구니를 챙겼다.현관문을 나서자 복도는 조용했다.어제 세탁실에서 마셨던 자판기 라떼가 문득 생각났다.생각보다 많이 달았던 커피.다음에는 덜 단 걸로 마시자고 했고, 내가 사겠다고도 말했다.굳이 오늘 그 말을 지킬 생각으로 나온 건 아니었다.나는 우유와 달걀을 사러 가는 중이었다.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건물 밖으로 나왔다.비는 오지 않았다.햇빛은 이미 낮아져 있었고, 건물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이 생각보다 선선했다.편의점은 오피스텔 입구에서 멀지 않았다.자동문이 열리자 차가운 냉기가 얼굴에 닿았다.나는 먼저 달걀과 우유를 장바구니에 넣었다. 쓰레기봉투를 찾으려고 생활용품 진열대로 걸어가다가 익숙한 뒷모습을 발견했다.태준이 면도기 진열대 앞에 서 있었다.한 손에는 작은 장바구니가 들려 있었다. 생수 두 병과 컵라면, 휴지 한 묶음이 안에 들어 있었다.태준은 면도날 포장을 두 개 나란히 들고 번갈아 보고 있었다.나는 그의 옆에 멈췄다.“못 고르겠어?”태준이 고개를 돌렸다.“포장이 바뀐 것 같아.”“원래 쓰던 건 기억 안 나?”“모양은 비슷한데 번호가 달라.”그가 두 개를 내 쪽으로 보여주었다.나는 포장을 잠깐 봤지만 차이를 알 수 없었다.“둘 다 똑같아 보이는데.”“그러니까.”태준이 낮게 웃었다.회사에서 복잡한 도면을 단번에 구분하던 사람이 면도날 앞에서 한참 고민하고 있는 게 조금 의외였다.“직원한테 물어봐.”“그게 제일 빠르겠네.”그는 망설이지 않고 계산대 쪽으로 걸어가 직원에게 물었다.잠시 뒤 맞는 제품을 찾아 장바구니에 넣고 돌아왔다.“찾았어?”“응. 이것도 리뉴얼이래.”“세상에서 제일 알아보기 어렵게 바뀌었네.”“내가 못 찾은 걸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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