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의식의 가장 깊고 서늘한 밑바닥에서 피어난 불씨는, 아직 타오르지 않는다.
아일라는 푹신한 소파에 허리를 세우고 앉아 허공을 응시했다. 시야에 맺히는 화려한 응접실의 풍경은 마치 빛바랜 정물화처럼 어떠한 생동감도 주지 못했다. 그녀의 내면은 여전히 잿더미로 가득한 완벽한 폐허였다. 무엇을 하고 싶다는 의욕도, 살고 싶다는 본능도, 그에게 복수하겠다는 치기 어린 분노조차 그 폐허 위로는 자라나지 못했다.
하지만 그 무기력의 잿더미 한가운데서, 아주 미세하고 건조한 인식 하나가 소리 없이 깜빡이고 있었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을수록, 저 지배자는 스스로 무너져 내린다.
그것은 거창한 계략이나 복수의 계획이 아니었다. 그저 눈앞에서 벌어지는 기괴한 현상에 대한 서늘한 관찰이자 자각이었다. 카일락 에이든하르트는 자신이 만들어낸 완벽한 통제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며 짐승처럼 헐떡였다. 그녀가 입술을 다물면 그 침묵에 질식하고, 그녀가 텅
"버리지 마…… 나를 두고 도망치지 마……."카일락은 독화살의 고통도, 살이 찢겨 나간 상처도 잊은 채 덜덜 떨리는 거친 손으로 아일라의 치맛자락을 생명줄처럼 부여잡았다. 피범벅이 된 그의 얼굴이 아일라의 하얀 맨발에 맹목적으로 비벼졌다. 짐승의 앓는 소리가 핏빛 눈보라를 뚫고 끔찍하리만치 처절하게 울려 퍼졌다.멀리서 이 기괴한 광경을 목격한 황실의 정벌군들은 숨조차 쉬지 못한 채 사색이 되어 굳어버렸다. 무력으로는 도저히 막을 수 없었던 미친 괴물을, 저 가냘픈 여자가 단 한마디의 명령과 시선만으로 발밑에 엎드리게 만든 것이다.아일라는 자신의 발등을 피로 적시며 헐떡이는 카일락의 흑발을 천천히, 그리고 서늘하게 쓸어내렸다.'이 끔찍한 족쇄.'그녀의 이성이 얼음장처럼 차갑게 되뇌었다. 카일락이 이 전장에서 죽거나 황실의 정벌군을 끌어들인다면, 자신이 세운 북부의 방패는 무너지고 만다. 그렇기에 철저한 이득의 저울질 끝에 이 미친 맹수를 회수하러 온 것이다. 그것이 포식자의 완벽한 계산이었다.하지만.독이 퍼져 차갑게 식어가는 카일락의 거친 뺨을 만지는 순간, 아일라의 잿빛 눈동자 깊은 곳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세한 균열이 아주 옅게 스치고 지나갔다.'……나를 위해, 미쳐버린 채로 이곳을 헤매고 있었어.'자신을 옭아매는 가장 끔찍한 통제광. 그녀를 지옥 같은 온실에 가두려 했던 원흉. 하지만 이 잔혹한 세상에서, 오직 이 거대한 괴물만이 유일하게 자신의 모든 이성과 권력을 집어던진 채 맹목적으로 그녀의 존재만을 갈구하고 있었다. 그녀가 던진 기만적인 목줄에 스스로 목을 매달고, 피를 흘리며 엎드려 있는 이 처절한 헌신.그것은 단순한 연민도, 도구에 대한 집착도 아닌, 기괴하게 뒤틀린 형태의 소유욕이었다. 이 미쳐버린 맹수는 오직 나의 것.
북부와 로젤 황실의 국경이 맞닿은 칼날 협곡은 이미 사람의 세상이 아니었다.눈 덮인 대지는 검붉은 핏물로 질척거렸고, 사방에는 사지가 찢겨 나간 황실 용병단과 기사들의 시신이 끔찍한 고깃덩이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생존자들의 비명과 쇳소리가 뒤엉킨 아수라장 한가운데, 칠흑 같은 흑발을 핏물로 적신 채 홀로 우뚝 선 거대한 괴물이 있었다.카일락 에이든하르트.그의 왼쪽 어깨를 뚫고 들어간 독기 기운은 이미 혈관을 타고 심장부까지 뻗어 나가, 맹수의 이성을 완벽하게 집어삼켰다. 붉은 눈동자에는 초점이 없었고, 오직 살육과 파괴라는 가장 원초적인 본능만이 그의 거체를 움직이고 있었다.챙강! 콰득!자신을 에워싸고 덤벼드는 황실 정벌군의 창방패를, 카일락은 짐승처럼 맨손으로 틀어쥐고 부러뜨렸다. 검을 휘두를 새도 없이 달려들어 적의 목덜미를 물어뜯는 그 모습은, 대륙의 군주가 아니라 지옥에서 기어 올라온 흉포한 학살 기계에 불과했다."저, 저 괴물을 막아라……! 뒤로 물러서지 마라!"지휘관이 사색이 되어 소리쳤으나, 공포에 질린 정벌군은 미친 듯이 뒷걸음질 치며 흩어지고 있었다. 카일락의 거친 숨소리가 협곡의 칼바람을 찢고 짐승의 포효로 변해 울려 퍼졌다.'돌아가야 해.'독화살이 시야를 검게 물들이고 뇌수를 짓이기고 있었지만, 이성을 잃은 맹수의 짐승 같은 본능에는 오직 단 하나의 맹목적인 각인만이 핏빛으로 껌벅이고 있었다.'아일라. 내 세상. 나를 버리지 마.'아일라가 북부에 남아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자신이 여기서 쓰러진다면, 그녀는 다른 벌레들에게 시선을 돌리거나 영원히 자신을 외면하고 그 닫힌 문 밖으로 날아가 버릴지도 모른다. 그 극도의 공포가, 치명상과 맹독 속에서도 이 짐승의 뼈를 맞추고 근육을 강제로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카일락이 부러진 검을 쥐고
독기 기운이 심장으로 스며들며 그의 호흡을 억누르고 시야를 검게 물들였으나, 카일락은 멈추지 않았다.'아일라.'이성을 잃은 짐승의 머릿속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것은, 오직 하얗고 서늘한 그녀의 모습뿐이었다.'내가 북부를 비우면, 네가 도망칠지도 모르는데.'황실의 개새끼들이 자신을 이곳에 묶어두려 한다. 자신이 없는 틈을 타 아일라가 북부의 권력을 삼키고, 자신을 버려둔 채 그 완벽한 세상의 문을 닫아버릴지도 모른다는 극도의 공포.카일락의 눈에서 핏물이 섞인 눈물이 툭 떨어져 내렸다. 그는 짐승처럼 포효하며 자신을 가로막는 수백 명의 병사들을 향해 돌진했다.'돌아가야 해. 돌아가서 그녀의 뺨을 만져야 해. 그녀가 나를 버리지 못하게, 내 품에 안아 부서뜨려서라도 내 곁에 두어야 해.'살을 찢고 뼈를 부수며 핏빛 눈보라를 헤쳐나가는 괴물.그의 검 끝은 황실의 심장을 향하지 않았다. 오직 북부의 하늘, 아일라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그 차갑고도 달콤한 감옥을 향해 기괴하고 맹목적인 살육의 길을 뚫어내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황실의 매복은 끝이 없었고, 짐승의 육신은 점점 더 독과 출혈에 갉아먹히며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전하! 기사단장과 늙은 재무 장관의 무리를 모두 지하 뇌옥에 가두었사옵니다!"대공성 집무실, 잿빛 머리카락의 총괄 관료가 숨을 헐떡이며 보고를 올렸다."허나…… 대공 전하의 위급한 소식이 척후병의 입을 타고 성내에 퍼지기 시작했나이다. 기사단 내부가 극도로 동요하고 있으며, 몇몇 수뇌부 잔당들은 대공께서 붕어하실 경우를 대비해 전하를 인질로 삼아야 한다고 수군거리고 있사옵니다!"아일라는 흑요석 책상 앞에 미동조차 없이 서 있었다.방패의 안쪽은 여전히 위태롭다. 대공이라는 억제기가 무너지는 순간, 그녀가 쥔 실권은 수만 명
에이든하르트 대공성의 집무실 안, 기사단 척후병이 쏟아낸 절망적인 보고가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다.로젤 황실의 비열한 기만전술. 국경 지대에서 매복에 걸려 독화살을 맞은 대공 카일락 에이든하르트. 이성을 잃고 피를 뒤집어쓴 채 폭주하는 맹수.아일라는 흑요석 책상 위에 펼쳐진 붉은 대장부의 원장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불과 몇 시간 전, 그녀는 북부 재정의 심장부를 완벽하게 거머쥐고 자신을 위협하던 가신들의 숨통을 남김없이 틀어막았다. 두 번 다시 유리 온실에 갇히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세워 올린 견고하고 절대적인 방패.하지만 그 방패의 가장 날카로운 검이자 무적의 폭력이었던 카일락이, 지금 그녀의 통제 밖인 핏빛 전장에서 통제 불능의 학살 기계로 돌변해 대륙 전체의 전란을 촉발할 시한폭탄이 되어버렸다.'황제의 노림수.'아일라의 서늘한 이성이 빙판 위를 미끄러지듯 날카롭게 회전했다.황제는 북부의 괴물을 죽이려 한 것이 아니었다. 대공의 육신에 상처를 입혀 그의 광증을 폭발시키고, 그가 짐승처럼 날뛰며 황실의 병력을 무자비하게 찢어발기도록 유도한 것이다. 그래야만 황실이 '미쳐버린 폭군을 토벌하여 대륙의 안정을 꾀한다'는 완벽한 명분을 쥐고, 합법적으로 수만 명의 토벌대을 결성해 북부의 국경을 넘을 수 있을 테니까.아일라의 하얀 손가락이 장부의 겉면을 꽉 쥐었다.지금 당장 대공성을 굳게 걸어 잠그고, 확보한 재정 실권으로 기사단을 장악해 방어선을 구축한다면 그녀 자신의 생존은 담보할 수 있다. 미쳐버린 대공이 전장에서 토벌대의 칼날에 갈기갈기 찢겨 죽어버린다면, 그녀를 그 끔찍한 밀실에 가두려 했던 통제광도 영원히 사라지는 셈이다.그것이 이성적이고 차가운 포식자가 선택해야 할 가장 완벽한 꼬리 자르기였다.그러나.'그가 죽으면.'아일라의 잿빛 눈동자 깊은 곳이 미세하게 떨렸다. 카일락이 죽어
그것은 기사단에게 떨어지는 가장 치명적인 벼락이었다. 그들의 배를 불려주던 불법적인 횡령 자금이 모두 아일라의 손아귀에 묶여버렸다는 뜻."당신들이 쥐고 있는 검이 얼마나 날카롭든, 그 칼자루를 쥔 자의 밥줄을 내가 쥐고 있는데 감히 내게 칼을 겨눌 수 있습니까."아일라의 시선이 얼음장처럼 차갑게 빛났다."만약 당신들이 장관의 명을 따라 내게 검을 들이민다면, 유령 기사단의 명단은 내일 아침 로젤 황실과 대륙 전역에 뿌려질 것입니다. 그리고 북부로 돌아온 대공의 손에 당신들의 사지가 갈기갈기 찢겨 성벽에 매달리겠지."기사단의 눈동자에 극도의 공포가 맺혔다. 횡령의 발각과 대공의 끔찍한 처형이라는 쌍방의 지옥 앞에서, 그들이 선택할 길은 명백했다."하, 하지만……!""반대로, 당신들이 저 늙은 반역자들의 목을 베어 내 발밑에 바친다면."아일라가 악마처럼 달콤하고도 서늘한 당근을 내밀었다."당신들이 지금까지 누려왔던 그 은화의 흐름은 묻어두겠습니다. 대공의 귀에도 들어가지 않게 완벽하게 통제해주죠. 나를 주군으로 섬기고 내 방패가 되어준다면, 당신들의 그 더러운 목숨줄은 계속 붙어있게 될 겁니다."철창!아일라의 선고가 끝나기가 무섭게, 기사단 전원이 동시에 검을 뽑아 들었다.하지만 그들의 서슬 퍼런 칼끝이 향한 곳은 아일라가 아니었다. 자신들의 뒤통수를 치고 혼자 살아남으려 했던, 그리고 지금은 아무런 자금줄도 쥐지 못한 빈껍데기가 되어버린 늙은 재무 장관과 군부 수뇌부의 목덜미였다."네, 네놈들! 무슨 짓이냐! 내가 명색이 북부의 재무 장관이거늘……!"장관이 사색이 되어 뒷걸음질을 쳤으나, 이미 기사단의 포위망은 완벽하게 닫혀버린 후였다. 무력으로 상대를 찍어누르는 얄팍한 반란은, 밥줄을 쥐고 정보망을 통제하는 압도적인 포식자
새벽의 어스름이 미처 걷히기도 전, 북부의 국경을 넘는 핏빛 마차의 행렬은 지축을 뒤흔들며 멀어져 갔다.대륙의 재앙이자 북부를 공포로 짓누르던 거대한 억제기가 마침내 자리를 비운 것이다. 그 압도적인 폭력이 성벽 밖으로 사라졌다는 사실은, 고요했던 에이든하르트 대공성 내부에 굶주린 짐승들을 미친 듯이 깨워내기에 충분했다.아일라는 집무실의 흑요석 책상 앞에 앉아, 텅 빈 연병장을 고요한 잿빛 눈동자로 내려다보았다.'목줄 풀린 개들이 짖어댈 시간이군.'그녀의 서늘한 예감은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현실이 되었다.쾅!대공성 서관의 재무부 별동, 그 육중한 철문이 요란한 파열음과 함께 박살 났다."대공께서 부재하신 틈을 타, 북부의 군수 자금을 멋대로 동결시키고 군권을 위협한 역모의 배후를 색출하라!"서슬 퍼런 갑주로 무장한 기사들이 물밀듯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들의 선두에는 희끗희끗한 머리를 빗어 넘긴 늙은 재무 장관과, 군부의 핵심 수뇌부가 오만한 기세를 뿜어내며 서 있었다.대공의 눈이 미치지 않는 공백을 틈타, 아일라가 장악해 가던 재무 실무를 완전히 되찾고 그녀를 반역자로 몰아 처단하겠다는 노골적인 반란."살려, 살려주시옵소서……! 소, 소인은 그저 위에서 시키는 대로……!"잿빛 머리카락의 총괄 관료가 사색이 되어 바닥을 기며 비명을 질렀다. 그 처참한 꼴을 내려다보며 재무 장관은 비열한 조소를 머금었다."멍청한 놈. 네놈이 대공비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실무 권한을 절반이나 훔쳐 갔을 때부터 네놈의 목숨은 내 발밑에 있었느니라."장관은 관료의 등을 군홧발로 짓밟으며 실무실 가장 안쪽, 굳게 닫혀 있던 비밀 금고를 향해 턱짓을 했다."당장 금고를 열어라! 대공비가 북부의 심장을 팔아넘기려 했다는 조작된 증거를 저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