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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핀 남편을 정리했다
바람 핀 남편을 정리했다
Author: 진해랑

1 화

Author: 진해랑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5-19 20:36:13

결혼 3년 차.

우리는 완벽한 부부였다. 적어도 남들이 보기에는 그랬다.

재벌가의 일원으로서 나는 언제나 단정했고, 남편은 과하지 않게 다정했다.

공식 석상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서로의 손을 잡았고, 눈을 맞추며 미소를 지었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적당한 온기가 담겨 있었고, 과하지 않은 스킨십은 오히려 호감을 불러왔는지 대중은 우리를 ‘이상적인 부부’라고 불렀다.

“워너비 부부.”

“현실판 동화.”

언론은 우리를 그렇게 불렀다. 사랑이 없기에 가능한 완벽함이라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다.

우리는 처음부터 감정 없는 계약으로 결혼했다.

사랑을 기대하지 않았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결혼 후에도 각방을 썼고, 단 한번도 부부 관계를 맺지 않았다.

우리에게 결혼은 사랑의 결실이 아닌 성공을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불필요한 간섭은 하지 않을 것.

사생활을 침범하지 않을 것.

언론 앞에서는 이상적인 부부로 행동할 것.

각자의 회사 운영에 이익을 불러올 수 있도록 협조할 것.

그리고 마지막 조항.

<외도는 명백한 계약 위반으로 간주한다.>

그 조항에 사인할 때, 우리는 주저하지 않았다.

사랑을 전제로 하지 않는 관계에서도 지켜야 하는 선이 있음을 알고 있었으니까.

적어도 그 선 안에서는 누구도 상처받지 않을 거라 믿었다.

그렇기에 지난 3년 동안 단 한 번도 불안해 한 적이 없었다.

남편을 믿어서가 아니라, 계약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차도영은 약속을 어길 만큼 감정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나 역시, 사랑에 흔들릴 만큼 어리석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날 일이 있기 전까지는.

“출장 중... 차 대표님 관련해서 확인된 내용이 있습니다.”

비서가 조심스럽게 내민 태블릿 화면 위에는 선명한 사진 한 장이 떠 있었다.

흔들림도 없고, 각도도 좋았다.

누가 봐도 의도적으로 찍힌 사진이었다.

호텔 입구. 늦은 밤. 그리고 남편 옆에 서 있는 여자.

연지원.

차도영의 비서였다.

어깨가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 누군가 말을 건네는 순간을 포착한 듯한 장면에서 두 사람은 지나치게 자연스러웠다.

업무 관계라고 보기엔, 표정이 너무 느슨했다.

나는 사진을 오래 들여다보지 않았다.

확대하지도 않았고, 다른 각도의 사진을 요청하지도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까.

“이건... 언제 찍힌 거지?”

“대표님께서 출국하신 날 밤입니다.”

비서는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갔지만, 어떤 말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머리가 멍하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더이상 어떤 말도 듣고 싶지 않았다. 변명을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중요한 건 단 하나였다.

계약이 깨졌다.

***

한달 후 저녁, 차도영은 평소와 다름없이 집에 들어왔다.

재킷을 벗고,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며 나를 봤다.

늘 그랬듯 무심한 눈빛이었다.

나는 식탁 위에 미리 준비해둔 봉투를 내려놓았다.

“이게 뭡니까?”

그가 봉투를 집어 들며 물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그를 똑바로 바라봤다.

“이혼 서류예요.”

그의 눈썹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정말, 아주 조금.

“이혼?”

“정확히 말하면 계약 파기죠.”

“갑자기 무슨 소릴...”

“계약 조건을 위반했잖아요.”

그의 시선이 날카롭게 변했다.

“난 계약을 어긴 적 없습니다.”

“연지원.”

순간, 그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그 침묵으로 충분했다.

“비워줄게요.”

차분하게, 최대한 흔들림 없는 어조로 말을 이었다.

“당신 옆자리.”

차도영이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이혼서류를 꺼냈다.

이혼서류에 이미 찍힌 내 도장이 유난히 또렷해 보였다.

“...지금 이게, 진심입니까? 그러니까, 진심이라고?”

차도영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몇 번을 되물었다. 그렇다고 내 대답이 바뀔 일은 없는데 말이다.

“외국 출장 때문에 나갈 거예요. 돌아오기 전까지 도장 찍어서 보내주세요. 아,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비서는 바꾸세요. 구설수는 사양이니까.”

그 말을 끝으로 나는 집을 나섰다.

“신채은.”

차도영이 나를 불렀다.

얼핏 화가 난 것 같기도, 간절한 것도 같은 목소리였다.

하지만 나는 돌아보지 않았다.

사랑해서 헤어진다는 말이 얼마나 유치한지 알고 있다.

그런데도 나는 그 말을 선택했다.

뒤늦게 깨달았지만 나는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

수많은 계약 조항 중 하나를 어겼을 뿐인데도 배신감에 가슴이 아픈 것을 보면.

그렇기에 나는 비겁하지만 가장 솔직한 이별 방식을 선택했다.

그것이 나를 지키는 방법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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