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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화

작가: 진해랑
last update 게시일: 2026-05-19 20:49:18

사람들은 우리가 서로를 사랑한다고 믿었다.

그랑 팔레 대표 신채은.

SLP그룹 전략본부장 차도영.

정략결혼이라는 말조차 어울리지 않을 만큼, 우리는 언제나 모범적인 부부였다.

언론은 우리의 결혼에 늘 같은 수식어를 붙였다.

‘이상적인 부부.’

그리고 거기에 한 단어를 덧붙였다.

‘로맨스.’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를 믿고 싶어 했다.

재벌가에도 사랑이 있다고.

계산도 거래도 아닌 결혼이 있다고.

그래야 이야기가 더 아름다워지니까.

***

“대표님, 남편분 오셨습니다.”

비서의 말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행사장 입구 쪽이 조용히 갈라졌다.

차도영이 들어오고 있었다.

검은 정장에 실크 행커치프. 어깨선이 정확하게 떨어지는 재킷과 윤이 나는 구두.

그는 언제나처럼 반짝반짝 빛이 났다. 마치 혼자 무대 조명을 받고 있는 거 아니냐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사람들 사이를 지나오는 동안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에게 모였다. 나역시 홀린듯 그 모습을 바라봤다.

차도영.

SLP그룹 전략본부장이자 내 남편.

그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 자연스럽게 내 옆에 섰다. 카메라 플래시가 동시에 터졌다.

“차 본부장님!”

“여기 좀 봐주세요!”

기자들의 목소리가 겹쳐졌다.

도영은 아주 능숙하게 고개를 돌아 카메라를 바라봤다.

정확한 각도에 계산된 미소를 띤 채 별 일 아니라는 듯이 내 손을 잡았다.

늘 그래왔다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동작이었다.

나는 잠깐 그를 바라봤다.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 그는 내게 찰나의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대표님, 여기 보세요!”

플래시가 번쩍였다.

나는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던 도영에게서 시선을 돌려 카메라를 봤다.

입꼬리가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너무 과하지도 너무 무심하지도 않게.

우리는 언제나 그랬다. 우리 두 사람은 완벽한 무대 체질이었다.

***

“두 분 여전히 신혼 같으세요.”

기자가 웃으며 물었다.

이 질문은 거의 공식 질문 같은 거였다.

도영이 잠깐 나를 바라봤다. 보기 좋게 휘어진 눈꼬리에 다정함이 묻어났다.

“아내가 워낙 바빠서요.”

그가 말했다.

“같이 있는 시간이 더 소중해졌습니다.”

사람들이 웃었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농담을 들었다는 듯이.

카메라 플래시가 다시 터졌다.

“두 분 다음 프로젝트도 같이 진행하신다면서요?”

또 다른 기자가 물었다.

도영이 어깨를 으쓱했다.

“같이 하는 일이 많습니다.”

“일도 같이 하시고, 집에서도 같이 계시고. 정말 부럽네요.”

기자가 농담처럼 말했다.

“두 분도 부부싸움을 하시나요?”

도영이 다시 나를 봤다.

“같이 일을 하다보니 부딪히는 일이 없을 수가 없죠. 하지만 싸우지는 않습니다. 대체로 혼나는 편이죠.”

행사장이 웃음으로 가득 찼다.

나는 그의 팔에 끼운 손에 살짝 힘을 줬다.

부부 사이의 애정 표현처럼 보이도록 계산된 동작이었다.

도영은 아무렇지 않게 그 힘을 받아줬다.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나를 바라봤다.

눈웃음까지 잊지 않았다.

우리는 정말 잘 어울리는 부부였다.

적어도 사람들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

행사는 밤이 깊도록 이어졌다.

인터뷰와 사진 촬영.

짧은 건배.

가벼운 대화.

모든 일정이 끝났을 때는 밤 열 시가 조금 넘었다.

차에 올라탈 때까지도 우리는 웃음을 가득 머금은 얼굴을 하고 손을 꼬옥 맞잡은 채였다.

차 문이 닫히고 이어서 조용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동시에 우리 두 사람은 맞잡았던 손을 풀었다.

도영은 손수건으로 손을 닦고 노트북을 꺼냈다.

나는 창밖을 바라봤다. 창밖으로 화려한 도심 불빛이 빠르게 스쳐갔다.

차 안에는 잔잔한 클래식 음악만 흐르고 있었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사이였다.

***

집에 도착한 건 밤 열한 시쯤이었다.

현관문이 열렸다.

우리는 동시에 손을 놓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각자 신발을 벗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은 조용했다.

도영이 재킷을 벗어 소파 위에 걸쳤다.

조금 전까지 행사장에서 웃고 있던 사람과는 전혀 다른 얼굴이었다.

피곤한지 이맛살이 살짝 찌푸려져 있었다.

그는 거칠게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넥타이를 풀었다.

그리곤 소파에 몸을 묻으며 깊은 숨을 내쉬었다.

이제야 겨우 숨을 돌리는 듯이.

“내일 아침 비행기라서 일찍 나갈 겁니다.”

그가 말했다.

여전히 나를 보지 않은 채였다.

“알겠어요.”

나도 짧게 대답했다.

오늘 하루 어땠는지.

행사는 괜찮았는지.

식사는 했는지.

우리 사이에 그런 질문은 없었다.

‘굳이 필요 없는 대화를 이어가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돼요.’

그건 결혼 초반부터 자연스럽게 생긴 규칙이었다.

***

나는 거실을 지나 식탁 쪽으로 걸어갔다.

식탁 위에는 간단한 콜드밀로 저녁상이 차려져 있었다.

샐러드와 샌드위치.

딱 두 사람 분이었다.

아마도 늦을 우리를 위해 사용인이 준비해놓고 간 모양이었다.

나는 잠깐 서 있었다.

도영은 이쪽을 보지도 않았다.

소파에 앉아 노트북 화면을 보고 있었다.

아마 일일 것이다. 최근 TF팀을 맡았다고 했으니까.

나는 조용히 접시 하나를 치웠다. 그리고 다른 하나도 마저 치웠다.

오늘도 같이 저녁을 먹을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저는 피곤해서 먼저 들어갈게요.”

“그래요.”

도영은 시선도 주지 않은 채 말했다.

잠시 후 그가 덧붙였다.

“아, 오늘 수고했어요.”

짧은 한 마디였지만 애정이라고는 조금도 담겨있지 않았다. 카메라 앞에서 보여주던 다정함은 없었다.

“당신도요.”

나도 짧게 답하고 방 문을 열었다.

우리는 각자의 방을 썼다. 결혼한 첫날부터 그랬다.

이 집에서 부부라는 이름은 유지되지만, 생활은 분리되어 있었다.

각자의 일정.

각자의 공간.

각자의 시간.

계약서에도 그렇게 적혀 있었다.

각자의 방으로 향하기 전, 우리는 늘 같은 위치에서 멈췄다.

더 가까워지지도, 더 멀어지지도 않는 거리.

그건 부부라는 이름 아래 유지되는 가장 안전한 선이었다.

결혼 초반에는 가끔 묘한 침묵이 흐르기도 했다.

식탁에 마주 앉아 있으면서도 서로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

그럴 때면 나는 계약서를 떠올렸다.

사랑하지 않아도 되는 결혼.

기대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

그래서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래야 이 결혼이 오래 갈 것 같았으니까.

나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불을 끄기 전에 잠깐 거실을 다시 봤다.

도영은 여전히 소파에 앉아 있었다.

노트북 화면 불빛이 그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나는 잠깐 선채로 그를 물끄러이 바라보다가 돌아섰다.

도영은 늘 나보다 늦게 잠들었다. 늘 퇴근이 늦었고 출장도 잦았다.

어쩌다 일찍 들어와도 새벽까지 업무를 보기 일쑤였다.

나는 가끔, 일을 하다가 앉은채로 잠든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는 했다.

늘 신경이 곤두서있고 날카롭던 그였지만, 잠들었을 때만큼은 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난 그런 그의 얼굴이, 즐거운 꿈을 꾸는지 예쁘게 올라가는 입꼬리를 좋아했다.

그 사실을 그는 아마 평생 모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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