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연지원은 봉투를 들고 다시 거실로 나왔다.오랫동안 옷가지 아래 눌려 있던 봉투의 모서리는 구겨져 있었고, 입구에는 여러 번 열었다 닫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버리지는 못했지만 자주 꺼내 볼 수도 없었던 시간의 흔적이었다.누렇게 변한 서류들이 테이블 위에 펼쳐졌다.그랑 팔레 내부 감사 결과서.징계위원회 의결서.형사 고발 승인서.오래전 오빠 연종인을 범죄자로 만들었던 서류들이었다.회사 기밀 유출.협력사 입찰 정보 제공.금품 수수.서류에 적힌 혐의는 구체적이었다.내부 전산 자료를 무단으로 복사한 기록과 연종인 명의로
커튼을 닫아둔 거실에는 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어둠이 남아 있었다.냉장고가 돌아가는 낮은 소음과 벽시계 초침 소리만 일정하게 울렸다.평소라면 이미 도영의 오전 일정을 정리하고 있을 시간이었다.그러나 오늘 그녀에게 주어진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뿐이었다.정확히는 나갈 수 없었다.거실 테이블 위에는 출입증과 업무용 휴대전화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출입증 속 사진에서는 정장을 입은 연지원이 반듯한 얼굴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일부였던 모습이 이제는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인사팀을
재킷은 입지 않은 채였다. 흰 셔츠 소매는 팔꿈치 아래까지 걷혀 있었고, 느슨해진 넥타이 위로 셔츠 단추 하나가 풀려 있었다.스튜디오의 뜨거운 조명 아래 오래 있었던 탓인지 반듯하게 넘긴 검은 머리카락 몇 가닥이 이마 위로 내려와 있었다. 한 손에는 시범 방송 화면이 떠 있는 태블릿이 들려 있었다.조금 흐트러진 모습이 오히려 이곳의 도영에게 더 잘 어울렸다.여러 명의 직원이 빠르게 보고를 이어가는 동안 도영은 화면과 손에 든 자료를 번갈아 확인했다.“대표님.”젊은 직원 하나가 조심스럽게 그를 불렀다.도영이 걸음을 멈췄다.
대표실로 돌아오자 수진과 임 비서가 기다리고 있었다.“차량 준비됐습니다. 바로 댁으로 모실까요?”“아니요.”나는 태블릿과 휴대전화를 가방 안에 넣었다.“오늘은 노드 리테일로 갈 거예요.”임 비서의 눈빛이 미세하게 달라졌다.“차 본부장님을 만나시는 겁니까?”“네. 저녁 약속이 있어요.”도영과 저녁 약속이 있다고 다른 사람에게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것이 얼마 만인지 기억나지 않았다.아니, 결혼한 뒤 처음인지도 몰랐다.그동안 우리에게 저녁 식사는 서로의 일정표에 적힌 공식 행사거나 집안 어른들과 함께하는 자리였다.단둘
이미 알면서도 확인하듯 물었다.“차도영?”채은은 부정하지 않았다.“내가 데리러 가기로 했어.”유온의 손끝이 태블릿 가장자리를 천천히 쓸었다.채은이 누군가를 데리러 간다.그 말이 뜻하는 변화를 모를 수 없었다.그녀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에는 익숙했다.하지만 기다리는 사람에게 먼저 가는 법은 알지 못했다.상대가 차도영이라면 더더욱 그랬다.“네가 직접?”“왜 그렇게 놀라?”“신채은이 누군가를 데리러 간다는 말을 처음 들어서.”유온은 평소처럼 웃었다.익숙한 웃음이었다.가벼운 농담을 건네고, 상대가 부담을 느끼기
오후 여섯 시를 조금 앞둔 시각.긴 회의가 이어지는 동안 창밖의 햇빛은 어느새 붉게 기울어 있었다. 대형 화면에서 흘러나오는 차가운 빛만이 길게 놓인 회의 테이블 위를 희게 밝혔다.식어버린 커피와 여러 차례 넘겨본 회의 자료 사이에서 유온은 화면보다 채은을 더 자주 보고 있었다.화상회의가 시작된 뒤 채은이 벽시계를 확인한 것이 벌써 세 번째였다.첫 번째는 현지 법인장이 협력사 선정 결과를 보고할 때였다.두 번째는 면세점 입점에 따른 동선 수정안을 검토하던 중이었다.그리고 지금.회의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자 그녀의 시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