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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3 화

Author: 닥훈
입원 병동 204호 병실.

하룻밤 사이 안혜윤은 위독한 상태에서 벗어나 의식을 되찾았다. 이춘화는 옆에서 딸에게 조심스럽게 영양죽을 먹이고 있었다. 그리고 침대 끝에는 점잖은 남성 한 명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이 사람은 바로 연승우의 경쟁자 양씨 가문 도련님, 양태하였다.

이때, 양태하가 자상한 척하며 말했다.

“어머님, 좀 쉬세요. 제가 먹여줄게요.”

이춘화도 싱긋 웃으며 말했다.

“태하 씨, 고생한 걸 따지면 아무도 태하 씨를 따라가지 못할 거예요. 어젯밤 우리 혜윤이에게 그렇게 많은 피를 헌혈한 것도 모자라 밤새도록 곁을 지켰으니, 태하 씨가 제일 피곤할 테지요. 밤새 얼굴이 반쪽이 된 것 같네요.”

“어머님, 별말씀을요, 다 제가 좋아서 한 일인걸요.”

사실 양태하도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의 초췌함은 술집에서 광란의 밤을 보낸 것 때문이었다. 밤새 달리고 병원에 도착하자, 이춘화는 양태하에게 어젯밤 안혜윤에게 헌혈한 척해달라고 당부했었다.

양태하는 이춘화가 두 사람을 이어주려고 노력한다고 생각하여 거절하지 않았다.

어쨌든 양태하가 안혜윤을 호시탐탐 노리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어젯밤 자기를 위해 헌혈한 사람이 양태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안혜윤은 고마운 마음을 전하려고 고개를 돌려 양태하를 쳐다보았다. 다만 안혜윤의 마음은 그저 고마움에 그칠 뿐이었다.

“태하 씨, 감사합니다.”

양태하는 애매모호하게 대답했다.

“감사하다니, 당연히 내가 해야 할 몫이잖아요.”

이춘화가 감탄했다.

“좋은 물건이 생기면 쓰던 물건을 버리고 바꾸는 것처럼, 사람도 마찬가지야. 어제 네가 수혈이 시급한 응급상황에 연승우도 B형이라는 기억이 떠올라 그에게 전화를 걸어 요청했어. 그런데 그 녀석은 전화를 받지 않더구나. 만약 태하 씨가 제때 오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쯤... 혜윤아, 너 이혼하길 참 잘했어.”

‘뭐라고?’

안혜윤은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연승우가 정말 그렇게 냉정하게 돌아섰다고? 이혼신고를 한지 반나절도 안 됐는데, 응급상황인 나를 외면했다고? 그러면 지금까지 보여줬던 사랑은 모두 거짓이었던 거야? 아니면 엄마가 거짓말을 하는 걸까?’

이때, 안혜윤은 문득 사고 나기 직전의 상황이 떠올랐고 다급하게 말했다.

“참, 진북왕이 대성으로 돌아온다는 뉴스를 봤어요.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네요.”

“혜윤 씨도 그 소식을 들었군요. 뜻밖에도 찌라시가 아니라 진짜 믿을만한 뉴스라고 합니다. 진북왕이 세계 경제에 얼마나 대단한 영향을 미치는 인물인지,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에 대해 혜윤 씨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그가 대성으로 돌아오는 것은 우리뿐만 아니라 대성 정재계에 큰바람을 몰고 올 것이고 큰 기회를 가져다줄 것입니다.”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 안혜윤은 또다시 잔뜩 흥분한 듯 말을 잇지 못했다.

안혜윤은 진북왕을 볼 수 있는 것을 평생의 목표로 삼고 있었다. 그런 진북왕이 갑자기 대성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이 사실로 밝혀지자, 그녀는 목표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고 느꼈다.

그러나 기뻤던 것도 잠시, 그녀는 곧바로 평정심을 되찾았다.

‘진북왕이 대성에 돌아오면 뭐가 달라져? 대성의 갑부라 해도 쉽게 만나볼 수 없을 진북왕을, 내가 무슨 수로...’

양태하는 안혜윤에게 잘 보일 기회라도 잡은 듯 물었다.

“혜윤 씨, 진북왕을 우상으로 생각하신다면서요?”

안혜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꿈속에서라도 한 번 만나 뵙고 싶었어요.”

“최근 주성 그룹의 주 대표님이 진북왕을 초대하여 최고의 인사들을 초대할 것이라는 믿을만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제 인맥으로라면 혜윤 씨에게 자리를 하나 얻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안혜윤은 갑자기 잔뜩 흥분했고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정말요? 태하 씨, 감사합니다.”

분위기가 화기애애하게 무르익어 가자 이춘화는 자리를 피해주려고 했다.

“태하 씨, 잠깐 집에 다녀올 동안 우리 혜윤이를 부탁할게요.”

양태하는 이춘화가 그들에게 둘만의 시간을 만들어 주려는 의도를 바로 알아차렸고, 바로 죽그릇을 받아들였다.

“어머님, 돌아가서 푹 쉬세요. 혜윤 씨는 저에게 맡기세요.”

이춘화는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런데 막 문을 열었을 때, 마침 연승우를 마주치게 될 줄이야... 연승우는 의식이 돌아오자마자 버선발로 안혜윤을 만나러 그녀의 병실로 찾아왔던 것이었다. 그러나 병실 안의 광경은 그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지게 했다.

‘혜윤아, 난 널 위해 목숨까지 걸었는데, 너는 내 생사 따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의식을 되찾고도 나를 쳐다보지조차 않는구나. 그것도 모자라 여기서 다른 남자랑 썸까지 타고 있네? 너 어쩌다 이렇게 모질게 변한 거니?’

더 중요한 것은 그 남자가 연승우가 가장 견제하던 경쟁자이자 적수였다는 점이었다. 연승우는 그해의 참사에 양태하가 가담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의심하던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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