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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3화

Author: 보라돌이
몇백 년 동안 성녀성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늘 자신만만하고 냉정하기만 하던 오약설의 얼굴에도 순간 분노와 당황, 그리고 살기가 스쳐 지나갔다.

연천능은 불길 따위는 두렵지도 않은 듯, 소매를 세차게 휘두르며 새로 불이 붙은 대나무 집 쪽으로 몸을 날렸다.

“백진아!”

불빛이 사방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백진아는 여전히 삼층 높이에 선 채, 연검을 뽑아 들고 살기를 흘리며 돌진해 오는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불길이 그의 넓은 두루마기를 태우고 있었지만, 그는 조금도 개의치 않은 듯 보였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연기가 치솟는 대나무 집 하나에서 그림자 하나가 튀어나오더니 그대로 뒷산 쪽으로 달려갔다.

그 뒷모습은 너무도 익숙한, 바로 낙장풍이었다.

설마 그가 기억을 잃은 척, 바보인 척 연기하고 있었을 줄이야.

아마 그는 이곳에 숨어 지내며 상황을 살피다가, 기회를 봐서 이월을 데리고 달아날 생각이었던 모양이었다.

별채가 순식간에 불바다가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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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버려진 왕비, 천재로 재탄생   제1402화

    백진아의 어깨 아래로는 온통 시퍼런 멍 자국으로 가득해 있었다. 보기만 해도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였다.그녀는 연천능을 한 번 흘겨보며 말했다.“기봉궁 주변에는 적어도 오십 명은 되는 암위 고수들이 있습니다. 철통같이 포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궁 밖으로 나가는 건 고사하고, 기봉궁에서 빠져나가는 것조차 어려울 정도입니다.”연천능은 그녀의 어깨에 남은 멍 자국을 보더니 안타까운 듯 입을 맞추며 물었다.“지하로 가는 건 어떠냐?”백진아가 말했다.“소리 없이 지하 통로를 팔 수는 있지만, 그 안을 지나가다 보면 많든 적든 소리가 나기 마련입니다. 더 깊이 파는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 너무 깊으면 산소가 부족하니… 그래도 산소통을 메고 가면 되기에 큰 문제는 아닙니다. 진짜 문제는 사고가 나면 혼자 빠져나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저도 함께 가서 붕괴 같은 위험이 생길 때마다 일행을 공간으로 데려오는 수밖에 없습니다.”지하 통로는 깊이 팔수록 위험해졌다. 게다가 백진아는 의사일 뿐, 터널을 파는 일에는 전문 지식이 없었다. 그래서 무너지는 사고가 생길 가능성도 있었다.얕은 곳이라면 내공으로 뚫어버릴 수 있지만, 깊은 곳에서 무너지면 그대로 생매장될 수도 있었다.연천능이 말했다.“괜찮다. 적어도 처음에는 당신과 함께 밖으로 나가지. 궁으로 들어올 때는 다른 방법을 생각하면 되니.”그 역시 궁에서 자란 사람이었다. 궁 안의 지형에 익숙했고, 방비가 허술한 사각지대가 어디인지도 잘 알고 있었다.백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연천능의 시중을 받아 목욕을 마친 뒤, 잠옷 차림으로 공간을 나와 대역을 다시 공간에 들여보냈다.욕실에서 나오자 비취와 진주는 열 명의 궁녀를 데리고 수건과 향유, 향, 깨끗한 옷가지 등을 준비한 채 기다리고 있었다.백진아는 그들을 상대하지 않고 화장대 앞 의자에 앉았다.비취가 수건으로 백진아의 긴 머리를 닦아 주었다. 머리카락의 물기를 짜낸 뒤에도 향유나 향 같은 것은 사용하지 않았다.백진아가 담담하게 말했다

  • 버려진 왕비, 천재로 재탄생   제1401화

    연천능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녀의 손을 잡으며 자리에 앉혔다.“백경패 일행을 손에 쥐고 있는데, 굳이 병든 척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자가 당신에게 흑심을 품을까 봐 내가 너무 걱정했던 모양이야.”백진아가 그를 위로했다.“그자가 흑심을 품었든 아니든, 우선 사람부터 구해야 합니다. 사람만 구하면 나머지는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어요. 최악의 경우 사람을 구한 뒤 공간으로 들어가 버리면 되지 않습니까? 그자가 죽더라도 나를 찾을 수는 없을 테니!”연천능의 눈동자에 순간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 그는 그녀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진아야, 부탁 하나만 들어주겠느냐?”연천능의 표정이 진지하고 엄숙해지자 백진아도 덩달아 표정을 굳혔다.“말하세요.”연천능은 그녀의 손을 쥔 채 힘을 조금 더 주었다.“앞으로 우리가 의견이 엇갈리거나 다투고 화가 나더라도, 공간에 숨어 나오지 않는 일은 없다고 약속하거라!”“하하!”백진아가 웃음을 터뜨렸다.“엄포를 놓았더니 당신부터 겁먹었네요.”연천능은 고집스럽게 말했다.“딴소리하지 말고 어서 약속하거라!”백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예. 약속하겠습니다. 원칙에 어긋나는 잘못이 아니라면, 당신에게 사과하고 해명할 기회를 줄게요.”연천능은 만족한 듯했다. 그는 그녀의 손을 잡아당겨 품에 끌어안으며 말했다.“무슨 일이 있으면 반드시 얼굴을 마주 보고 따지거라. 마음속에 담아 두어 오해가 점점 깊어지게 만들지 말고.”백진아는 가슴 아팠던 과거를 떠올리며 눈빛을 어둡게 했다.“예, 알았습니다.”연천능의 눈빛이 깊어졌다. 그는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진아야, 넌 내 보물이다. 너의 공간이 없었다면 내가 지금의 성취를 이루는 데 적어도 오륙 년은 더 걸렸을 것이다.”백진아는 그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말했다.“고마워할 필요 없습니다. 내가 기꺼이 한 일이니까요. 하늘이 내게 공간이라는 능력을 준 건 사람들에게 복을 베풀라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당신이 황후의 자리를 주었기에 다

  • 버려진 왕비, 천재로 재탄생   제1400화

    백진아는 발판을 밟을 필요도 없이 그대로 마차에서 뛰어내려, 남자인지 여자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모습의 연청리를 차갑게 흘겨보았다.연청리는 걸음을 멈추었다. 얼굴에 띤 미소가 잠시 굳어졌지만, 이내 말했다.“황후 마마, 먼 길을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으니 우선 좀 쉬신 뒤에 말씀 나누시지요.”백진아는 기봉궁 현판을 바라보았다.“다른 곳으로 바꾸거라. 여기서 지내고 싶지 않아.”연청리가 웃으며 말했다.“황후 마마, 설마 빈비의 궁에서 지내고 싶으신 것은 아니시겠지요?”백진아는 말문이 막혔다.‘그래, 그냥 여기서 지내자. 그래도 황후가 머무는 곳이니까.’그녀는 싸늘한 눈빛으로 연청리를 한 번 쏘아본 뒤 기봉궁 안으로 들어갔다.연청리는 어색하게 코를 만지작거리다가 뒤따라 들어갔다.“황후 마마를 뵙습니다!”마당에 있던 궁인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고 예를 올렸다.그 모습은 광명전에서보다 훨씬 위엄있어 보였고, 규모 또한 훨씬 컸다.백진아는 황후라는 신분도 맞았고,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는 것도 익숙했다.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 호칭이 유난히 귀에 거슬렸다.하지만 그녀는 사람을 구하러 온 것이었다. 이런 잡다한 일에 굳이 너무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궁전 안으로 들어서자 내부는 정교하면서도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황후가 사용하는 곳이라면 붉은색을 많이 쓸 법도 했지만, 이곳은 백진아가 좋아하는 옅은 자주색 계열이었다.백진아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담담하게 말했다.“대량 폐하에게 전하거라. 백경패 일행이 무사한 것을 확인한 뒤에야 그의 병을 치료해 주겠다고. 언제 그들에게 데려갈 것이냐?”연청리가 말했다.“황후 마마, 걱정하지 마세요. 그들은 모두 무사합니다. 우선 목욕하시고 옷을 갈아입으신 다음 잠시 쉬시지요.”백진아는 코웃음을 치며 침소로 들어갔다. 그리고 안쪽 문을 통해 욕실로 들어갔다.욕실 역시 호화롭게 꾸며져 있었다. 벽과 바닥은 모두 한백옥으로 되어 있었고, 방 한가운데에는 한백옥으로 만든 욕조가 놓여 있었다. 욕조 안의 뜨

  • 버려진 왕비, 천재로 재탄생   제1399화

    백진아는 아이가 배불리 먹은 것을 확인한 뒤 황제에게 맡기고는, 공간에서 나왔다.그리고 곧바로 대역을 공간으로 들여보낸 뒤, 겉치레로 옷매무새를 한 번 정리했다.현상은 요강을 마차 밖으로 내놓아 바깥의 태감에게 건넸다. 태감은 요강을 깨끗이 씻은 뒤 다시 가져올 것이다.이렇게 해서 백진아는 무사히 공간을 드나들 수 있었다.행렬의 여정은 순조로웠다. 금의위와 금군의 깃발을 내걸고 있으니 감히 시비를 거는 자가 없었다.그렇다고 서둘러 길을 재촉하지도 않았고, 객사가 보이면 그곳에서 쉬어 갔다.그렇게 스무 날 남짓을 걸어서야 천무성에 도착했다.익숙한 거리 풍경을 바라보는 백진아는 마치 전생을 보는 듯 아득한 기분이 들었다.행렬이 마침 예전의 능왕부 앞을 지나가자, 백진아는 저도 모르게 우뚝 솟은 대문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가슴에 온갖 감회가 밀려들었다.능왕부는 이미 주인이 바뀌어 있었다. 대문 위에는 ‘양 상서부’라는 글자가 걸려 있었다.백진아가 물었다.“양 상서는 어느 부의 상서냐?”줄곧 마차 안에서 그녀를 모시고 있던 궁녀 비취가 대답했다.“예부 상서 양춘경입니다. 그분의 따님은 귀비마마이십니다.”백진아는 코웃음을 치듯 가볍게 웃었다.“양채접도 제법 수완이 있군. 양춘경은 임강성을 잃고도 경성으로 들어와 예부 상서가 됐네. 비록 품계상 평임이라지만, 경관이 천고제왕이 멀리 있는 임강성의 지방관보다야 훨씬 낫지.”예로부터 관료 사회란 늘 이랬다. 뒷배만 든든하면 실수를 저질러도 두려울 것이 없었다. 이곳에서 자리를 지키지 못하면 다른 곳으로 옮겨서라도 여전히 벼슬을 할 수 있었다.백진아가 물었다.“그럼, 후상술과 후우청은?”진주라는 이름의 궁녀가 대답했다.“덕비마마의 아버님께서는 장군에 봉해지셨고, 지금은 경성 외곽의 군영을 통솔하고 계십니다.”쯧쯧. 후궁을 이용해 조정의 신하를 포섭하는 것은 정말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이긴 했다.연천능이 후궁에 한 사람만 두겠다고 고집한다면, 앞으로 조정을 안정시키는 데 꽤 많은 심력을 쏟아

  • 버려진 왕비, 천재로 재탄생   제1398화

    백진아는 급히 포대기를 풀어 자현의 통통하게 부풀어 오른 작은 배를 드러냈다. 그와 동시에 잊지 않고 설명을 덧붙였다.“아기 배앓이는 약을 먹일 필요가 없어. 어루만져 배에 찬 공기를 빼주면 돼. 봐, 이렇게.”백진아는 말하면서 마사지 오일을 바르고 자현의 배를 어루만지기 시작했다.“으앙! 으앙!”자현은 오히려 더 크게 울었다.“당황하지 말거라. 공기가 장 속에서 움직이면서 장을 압박해 아픈 것이다.”얼마 지나지 않아 자현이 ‘뿡, 뿡…’ 하고 길게 방귀를 두 번 뀌었다.그러자 거짓말처럼 울음을 뚝 그치더니, 편안해진 듯 입가에 거품을 살짝 내뿜었다.그리고 작은 눈으로 백진아를 바라보며 낑낑거리기 시작했다. 젖을 달라고 어리광을 부리는 것이었다. 어찌나 다급하게 보채는지 포대기로 싸는 것조차 싫어했다.백진아는 알몸의 말랑말랑한 아기를 품에 안아 젖을 먹였다. 어차피 공간은 사람에게 가장 쾌적한 온도인 25도 안팎으로 유지되고 있으니 감기에 걸릴 걱정도 없었다.꼬맹이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있으니 몸이 한결 가벼웠다. 그게 마음에 들었는지 아주 좋아하며 손으로 작은 발을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이따금 백진아를 향해 아기 옹알이까지 했다.보아는 또 몇 가지 질문을 했다. 공부를 좋아하는 아이답게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지식에 대한 열의를 드러냈다.백진아가 조언했다.“이제 필기하는 법도 배워야겠구나. 이번이 처음으로 병을 진단한 것이니 기록해 두는 게 좋아. 나중에 다시 찾아보기도 편하고.”보아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현빙에게 말했다.“자, 기록하는 것을 도와줘야 한다. 모르는 글은 네가 가르쳐 줘.”말을 마치자마자 아이는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백진아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어머나, 보아가 정말 제대로 배운 모양입니다. 역시 천재예요.”예전에는 큰 스승님이니, 둘째 스승님이니, 셋째 스승님이니… 다들 그저 아이를 달래 주려고 가르쳐 주는 줄로만 생각했다. 어차피 보아가 배우는 걸 좋아하니 즐거워하면 그만이라고 여겼다.그래서

  • 버려진 왕비, 천재로 재탄생   제1397화

    공간의 시간은 바깥보다 30배나 빠르게 흘렀지만, 백진아는 그 짧은 시간을 이용해 빠르게 아이와 부군과 알콩달콩한 시간을 보냈다. 백진아는 마차의 발을 내리며 두 궁녀에게 말했다.“용변을 볼 테니 잠시 나가 있거라.”“예!”두 궁녀는 마차에서 내려 양쪽에 하나씩 자리를 잡고 마차 창가를 지켰다.현상이 두 사람에게 말했다.“창발 좀 눌러 주세요. 바람이 들어오네요.”“예!”두 궁녀는 창가의 발을 꾹 눌러 주었다.마차 주변에는 안팎으로 금의위와 금군이 겹겹이 둘러싸고 있었다. 게다가 모두 눈썰미가 좋은 자들이었다. 혹시라도 바람에 발이 들려 안쪽이 보이면 곤란했다.백진아는 공간에서 대역을 꺼냈다. 그런데 대역은 배가 텅 비어 용변을 볼 일이 없어, 결국 현상이 대신 처리해야 했다.백진아는 그 틈에 공간으로 들어갔다. 자현은 엉엉 울고 있었고, 연천능과 보아는 한 사람씩 젖병을 들고 자현에게 먹이고 있었다.그런데도 꼬맹이는 계속 울기만 했다. 작은 머리를 도리도리 흔들며 젖병을 입에 대지도 않았다.백진아가 들어오는 순간, 부녀는 구세주라도 만난 듯 눈을 반짝이며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보아가 작은 눈썹을 찌푸린 채 도움을 청했다.“어머니, 얼른 보세요. 동생이 또 말썽입니다! 꿀을 넣은 우유도 안 마셔요!”그러면서 손에 든 젖병을 들어 보였다.연천능도 손에 든 젖병을 들어 보이며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분유도 먹지 않는구나.”몇 번인가 백진아가 사정이 여의치 않아 제때 공간에 들어와 아이에게 젖을 먹이지 못한 적이 있었다. 그럴 때면 자현은 배가 고파서 마지못해 분유나 우유를 조금씩 먹곤 했다.“배가 고픈 것이냐? 대소변은 봤어?”백진아는 자현을 안고 옷을 풀기 시작했다.연천능이 말했다.“기저귀는 방금 갈았다. 대변도 보지 않았고 소변도 보지 않았어.”“배가 고프나 봅니다.”백진아는 자현의 입에 젖을 물렸다.그런데 웬걸, 자현은 몇 모금 빨더니 이내 뱉어 버리고 다시 울기 시작했다.보아가 작은 눈썹을 찌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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