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갑작스러운 주현우의 입맞춤에 허아연의 미간이 순식간에 팍 일그러졌다. 입맞춤은 분명 선을 넘은 행동이었다.함께하는 저녁 내내 괜찮았던 허아연의 얼굴이 갑작스러운 입맞춤에 단번에 어두워졌다.단단히 화가 난 것이다.주현우를 힘껏 밀어낸 허아연은 잔뜩 미간을 찌푸린 채 오른팔을 들어 뺨을 향해 휘둘렀다.주현우도 이런 반응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손만 뻗으면 허아연의 팔을 붙잡아 따귀를 막을 수 있었지만 주현우는 막지 않고 조용히 뺨을 때리기를 기다렸다.차라리 한 대 맞으면 정신이 번쩍 들어서 허아연을 놓아줄 수 있을지도 몰랐다.그런데 아무렇지 않은 눈빛으로 태연하게 따귀를 기다리는 주현우를 본 순간 치켜든 오른손이 뺨에 닿기 직전 허아연은 문득 그날의 화재가 떠올랐다.주현우가 물불 가리지 않고 불길 속에서 자신을 안고 나오던 모습이 떠올랐다.숨을 죽인 허아연은 손바닥이 주현우의 뺨에 닿기 직전 가까스로 힘을 거두었고 허공에 치켜든 오른손은 순식간에 주먹을 쥔 채 주현우의 얼굴 옆에서 멈췄다.허아연이 끝내 뺨을 때리지 못하자 지쳐 있던 주현우의 두 눈이 단번에 반짝였다. 입가에는 알아채기 힘들 만큼 옅은 미소가 살짝 번졌다.두 사람의 눈이 마주치자 허아연은 확 달라진 주현우의 눈빛을 보며 주먹 쥔 오른손을 천천히 거두었다."난 사람 때리는 버릇 없어요."허아연의 해명에 주현우는 웃음을 터뜨리더니 다시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허아연이 앙칼지게 외쳤다. "주현우 씨."하지만 주현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허아연의 어깨에 턱을 괸 채 달래듯 말했다."아연아, 우리 다시 시작하자."방금까지만 해도 친구로만 지내자더니 이제는 다시 시작하자고 했다.허아연의 표정이 어땠을지는 안 봐도 뻔했다.허아연은 주현우를 밀어내지 않은 채 말했다."주현우 씨, 3년 동안 독수공방하는 결혼 생활 때문에 심한 우울증까지 앓았어요. 겨우 당신 아내라는 신분에서 벗어나 새 삶을 시작했는데 우리가 정말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주현우가 입을 열기도 전
나란히 호텔 입구까지 걸어가던 주현우는 또 헤어지기가 아쉬워졌다.그때 허아연이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서 주현우를 보며 말했다."들어가요. 집에 도착하면 메시지 보낼게요."말을 마친 허아연이 돌아서려는 순간 주현우가 갑자기 허아연의 팔을 붙잡으며 불렀다."아연아."팔을 잡아끄는 힘에 허아연은 다시 돌아서서 주현우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허아연이 입을 열려는데 주현우가 품에 와락 끌어당기더니 어깨에 턱을 묻은 채 꽉 껴안았다.주현우가 끌어안자 허아연의 미간이 팍 구겨졌다.허아연은 두 손으로 주현우의 가슴을 힘껏 밀어냈다."주현우 씨, 좀 받아주니까 끝이 없네요. 기자들한테 사진이라도 찍히면 어쩌려고 그래요."허아연이 밀어내도 주현우는 꽉 끌어안은 채 가볍게 눈을 감고 말했다."아연아, 너무 보고 싶었어."허아연이 입을 열기도 전에 주현우가 말을 이었다."너 없는 2년 동안 한 번도 편하게 잠든 적이 없어. 온통 너에 대한 죄책감과 자책뿐이었어. 아연아, 미안해.""며칠 동안 네가 전화를 안 받아서 잠도 못 자고 밥도 제대로 못 먹었어. 아연아, 전엔 내가 잘못했어. 기회를 달라거나 다시 시작하자고 바라지도 않아. 그러니까 나 피하지만 말아 줘. 응?"주현우는 말을 마치며 다시 허아연의 하얀 뺨에 입을 맞췄다."정말 보고 싶었어."2년 넘게 쌓인 죄책감과 그리움을 몇 마디 말로 다 전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허아연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고 진심을 전하고 싶었다.무엇보다 잘못을 깨달았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절절한 고백에 주현우를 밀어내던 허아연의 손길이 서서히 멈췄다.주현우의 말이 끝나고 한참을 말이 없던 허아연이 그제야 입을 열었다."주현우 씨, 우린 안 맞아요. 마음이 통한 적도 없고요. 지난번에도 말했잖아요. 나 이제 당신 안 좋아해요."잠시 뜸을 들인 허아연이 다시 말했다."지난 일은 이미 다 내려놨어요."허아연의 솔직한 말에 주현우는 조금 지친 듯 말했다."알아, 아연아. 다 알아. 날 좋아해 달라는 거 아니야. 그냥
그리고 허아연에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주현우도 강성시로 사업을 넓힐 생각이 있었다.두 도시를 오가며 허아연을 챙길 수 있을 테니까.주현우의 속셈을 훤히 꿰뚫고 있던 허아연도 굳이 돌려 말하지 않고 솔직하게 말했다."일이 있을 때 갈 거예요."말이 끝나자 직원들이 음식을 내오기 시작했다.일고여덟 가지 요리가 테이블에 가득 오르자 허아연은 젓가락을 들어 주현우에게 음식을 덜어주며 말했다."맛 좀 봐요. 교진시 음식과는 맛이 좀 다를 거예요."허아연이 예의를 차리며 음식을 덜어주자 주현우는 문득 두 사람의 학창 시절이 떠올랐다.그때 허아연은 맛있는 것이 있으면 늘 주현우 몫을 남겨두고 제일 먼저 맛보도록 했었다."현우 오빠, 이 방울토마토 좀 봐. 초록색인데도 엄청 달아. 얼른 먹어 봐.""현우 오빠, 삶은 계란도 맛있어."주현우는 꼼짝 않고 허아연을 바라보았다.허아연이 그토록 좋아했는데 그렇게 오랫동안 마음을 알아채지 못하고 오히려 일기장 때문에 오해까지 했다니.주현우가 말없이 뚫어져라 쳐다보자 허아연은 손을 들어 얼굴을 만지작거렸다."얼굴에 뭐 묻었어요?"주현우는 피식 웃었다."아니."그리고 담담하게 덧붙였다."그냥 보고 싶었어."보고 싶었다는 말에 허아연은 차분히 시선을 거두고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요즘 주현우가 보고 싶다는 말을 한두 번 한 게 아니었기에 여러 번 들었었다.다만 두 사람은 한 번도 마음이 같은 곳을 향한 적이 없었고 번번이 엇갈리기만 했다.허아연이 그리워하고 좋아할 때 주현우는 온갖 스캔들을 뿌리고 다녔다.젓가락을 든 허아연이 다시 차분하게 주현우를 보며 말했다."협력 프로젝트의 기술 개발은 강성시에서 해도 문제없어요. 업무 보고가 있을 때는 교진시로 갈 거예요."안서준이 허아연에게 정해준 방식이기도 했다.허아연도 이런 방식이 훨씬 편했다.교진시에 있을 때처럼 사람들을 상대하고 일 처리를 하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쏟을 필요도 없었다.허아연이 업무 얘기를 꺼내자 주현우가 웃으며 물었다."나 피
핸들을 잡고 있던 허아연은 더 질색하며 말했다."됐어요. 연기 좀 그만해요."태어날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가 아니었다면 이런 허튼소리에 정말 속았을지도 모르지만 두 사람은 너무 오래 알고 지냈다.허아연은 주현우가 어떤 사람인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질색하는 허아연의 반응조차 주현우는 즐거웠고 여유로워진 지금의 허아연이 예전보다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다시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같이 밥을 먹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주현우가 계속 쳐다보자 허아연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민망해졌다.몇 번이나 시선을 피하고 싶었지만 운전 중이라 앞을 봐야만 했다.20여 분 뒤 차는 강성시에서 가장 큰 호텔의 야외 주차장에 멈췄고 허아연은 차에서 내려 주현우와 함께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안녕하십니까, 시연 씨.""어서 오십시오, 시연 씨.""안녕하세요, 시연 씨."두 사람이 호텔에 들어서자 안내 직원과 호텔 직원들이 깍듯하고 열정적으로 인사를 건넸다.덕분에 허아연의 존재감이 더욱 두드러졌고 강성시에서 안씨 가문의 위상과 허아연의 인지도가 어느 정도인지 여실히 드러났다.허아연은 룸 대신 전망이 좋은 창가 자리를 골랐다.대표 메뉴 몇 가지를 주문하고 주현우에게 메뉴판을 건넸다."먹고 싶은 거 있으면 더 시켜요."주현우는 허아연이 사람을 대하는 여유로운 태도와 물 만난 고기처럼 강성시에서 지내는 모습만 봐도 안씨 가문에서 잘 지내고 있고 가족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다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었다.메뉴판을 받아 들고도 주현우의 시선은 좀처럼 허아연의 얼굴을 떠날 줄 몰랐다.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선명하게 느껴질수록 더욱 허아연과 함께하고 싶었다.예전에 함께 살 때는 허아연이 집에 와서 밥을 먹으라고 전화해도 주현우는 들어가는 법이 없었다.그런데 지금은 허아연을 한 번 보고 밥 한 끼 같이 먹으려고 하던 일도 전부 제쳐두고 교진시에서 강성시까지 날아온 것이다.허아연이 물을 따라주자 주현우는 그제야 시선을 거두고 메뉴판을 펼쳐 아무 일도 없는 듯 요리
주현우가 강성시까지 와서 이렇게 눈앞에 나타날 줄 몰랐다.허아연이 걸음을 멈추자 주현우가 차 문에 팔을 걸친 채 씩 웃었다."왜, 놀라서 말도 안 나와?"허아연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주현우가 느긋하게 말을 이었다."전화를 그렇게 했는데 어떻게 한 통을 안 해?"다시 만난 뒤로 주현우는 돌려 말하는 법 없이 뭐든 대놓고 얘기했고 예전처럼 혼자 짐작하며 끙끙 앓지도 않았다.주현우의 물음에 허아연은 가볍게 숨을 내쉬고는 똑같이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어이가 없어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지경이었다.설마 전화 안 한 이유를 따지려고 그 먼 길을 달려온 건 아닐 것이다.주현우를 잠시 쳐다보던 허아연이 입을 열었다."굳이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아서 안 했어요."허아연을 빤히 쳐다보던 주현우는 괜히 물은 것 같았다.이번에 다시 만난 뒤로 허아연 입에서 좋은 소리는 한 번도 들은 적 없었다.허아연을 빤히 바라보던 주현우가 느긋하게 다가와 허리를 숙이고 얼굴을 바짝 들이밀며 말했다."너 이제 어떻게 해야 내가 열 받고 난감해하는지 아주 잘 아네."허아연은 주현우를 가볍게 밀어내며 무표정하게 말했다."회사 앞이에요. 행동 조심해요."허아연이 밀어내자 주현우는 오른손을 다시 주머니에 찔러 넣고 화제를 돌렸다."아침 일찍 비행기 타느라 하루 종일 굶었어. 밥 사줘."허아연에게 이것저것 요구하는 데는 거리낌도 없었다.다만…… 정말 너무 보고 싶어서 하던 일까지 내려놓고 강성시로 날아온 것이었다.고개를 들어 보니 주현우의 눈에는 피곤한 기색이 가득하고 다크서클까지 살짝 내려앉아 있어 허아연은 귀찮은 티를 내면서도 차마 거절하지 못했다.어쨌든 두 회사는 협력 관계였고 주현우는 교진시에서 먼 길을 떠나왔으니까.설령 협력 관계가 아니더라도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인 만큼 강성시까지 찾아온 손님에게 밥 한 끼 대접하는 건 당연한 도리였다.허아연은 주현우를 보며 심드렁하게 말했다."옆에 있는 그 차 타요."허아연이 밥을 사겠다
이번에도 모두가 아는 일을 주현우만 모르고 있었다.주민경을 한참 동안 꼼짝 않고 쳐다보던 주현우는 허아연의 삶에서 완전히 밀려나 끼어들 자리가 없어진 기분이었다.허아연은 주현우에게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다.주현우가 빤히 쳐다보자 주민경이 눈치도 없이 말했다."아연이 오빠 안 좋아하잖아. 그러니까 아무 얘기도 안 하는 거지.""……"주현우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어갔다."너만 입이 달렸어?"주현우가 핀잔을 주자 주민경은 그릇에 담긴 밥만 꾹꾹 삼키며 더는 상대하지 않고 주말에 쉬는 날 허아연 만나러 갈 생각이라는 것도 얘기하지 않았다.강성시는 그리 먼 곳도 아니었다.남매가 한마디도 지지 않으려 들자 유서희가 질렸다는 얼굴로 말했다."그만하고 둘 다 조용히 밥이나 먹어."유서희의 말에 남매는 입을 꾹 닫았다.주민경은 밥을 먹으며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주현우는 생각에 잠겨있었다.식사를 마치고 침실로 돌아온 주현우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다시 허아연에게 전화를 걸었다.신호음이 들렸지만 한참이 지나도 좀처럼 받지 않았다.몇 번을 연달아 걸어도 마찬가지였다.통유리창 앞에 선 주현우는 몇 통을 걸어도 받지 않는 전화에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휴대폰을 옆 서랍장 위로 툭 던졌다.이어 담배와 라이터를 들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요 며칠 계속 연락했으니 허아연이 부재중 기록을 못 봤을 리도 없고 답하기 싫어서 무시하는 것이 분명했다.후우.입에서 연기가 천천히 흘러나왔지만 잔뜩 찌푸린 주현우의 미간은 좀처럼 펴질 줄 몰랐다.예전에 연락이 닿지 않아서 허아연이 느꼈을 초조함과 걱정, 혼자 소외된 듯한 외로움을 주현우도 이제야 고스란히 겪고 있었다.창밖의 정원을 멍하니 바라보던 주현우는 미칠 만큼 허아연이 보고 싶었다.안고 싶고 입을 맞추고 싶고 품 안에 으스러지도록 끌어안고 싶었다.특히 며칠 전 실랑이를 벌이며 느낀 허아연 특유의 여유로운 분위기가 떠오르자 견딜 수 없을 만큼 그리워졌다.연기를 길게 내뿜는 지금 이 순간 주현우의 머릿속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