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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0화

Autor: 임서아
그때 주현우가 손에 든 합의서를 흘끗 보더니 가볍게 웃으며 물었다.

"허아연, 이혼 합의서 들고 할아버지 찾아가면 해결될 거라고 누가 그랬어?"

허아연이 고개를 들었다.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주현우가 다시 말했다.

"할아버지한테 혼도 났고 압박도 받았어."

허아연이 말을 꺼내기 전에 주현우가 또 말했다.

"합의서에 명시된 너한테 주기로 한 부동산과 자산은 법무팀에서 내일 처리 시작할 테니 몇 가지 서류 작업에 네 협조가 필요할 수 있어."

주현우의 말에 이미 사인을 마쳐서 월요일에 신청하러 갈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주현우가 합의서를 책상 위에 툭 던지며 무심하게 말했다.

"대신 앞으로 이런 걸로 할아버지 귀찮게 하지 말고 너 자신도 괜히 힘들게 하지 마."

그 말에 허아연이 주현우를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주현우 씨, 그게 무슨 말이에요?"

이해할 수 없다는 허아연의 표정에 주현우가 몸을 일으키고 씩 웃으며 느릿하게 말했다.

"무슨 말이냐고? 이렇게 오래 알고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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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버린 건 나였지만, 무너진 건 너였다   제215화

    유건희의 말에 다들 빠르게 자리에 앉았다. 지일우도 주문을 마치고 들어왔다.잠시 후 직원들이 음식을 내오기 시작했다. 유건희가 먼저 투자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프로젝트를 지지해 준 것에 고마움을 표했다. 평소 직설적인 유건희였지만 그래도 나름 격식을 차린 편이었다.딱 그 정도일 뿐 더 이상 격식을 차리는 말은 하기 힘들었다. 인사가 끝나자 사람들은 다시 일 얘기를 이어갔다. 연말 전에 제품을 출시하는 것과 관련한 것이었다. 설 연휴 수요를 노려볼 수 있었다.투자자들은 유건희와 프로젝트팀에 맡기겠다고 했다.주현우는 별다른 의견을 내지 않았다. 이 프로젝트에 투자한 건 허아연 때문이었고 허아연이 자본을 등에 업고 팀에 합류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사람들이 얘기를 나누는 동안 주현우는 허아연을 꽤 살뜰히 챙겼다. 가끔 반찬을 집어주며 신경을 써줬다.허아연은 그 모습에도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한창 분위기가 달아오르고 있을 때, 테이블 위에 놓인 주현우의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휴대폰이 두 사람 사이에 놓여 있던 터라 주현우가 고개를 숙여 확인할 때 허아연도 무심코 힐끗 쳐다봤다.별생각 없이 봤을 뿐 바로 시선을 거뒀다.그런데…… 저장된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오지은이었다.오지은 전화인 걸 확인한 주현우는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오지은에게서 또 전화가 왔다.성대 테크에서 기술 전시회가 있는데 오지은은 주현우를 초대하고 싶었다. 마침 성대 테크 대표와 함께 있는 지금 빨리 답을 주고 싶었다. 두 번째 전화에도 주현우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또 끊었다.주현우가 다시 휴대폰을 들다 실수로 허아연을 살짝 건드렸다. 허아연이 자연스럽게 눈길을 돌리자 주현우는 문자를 보내고 있었다. 허아연은 신경 쓰지도 않고 고개를 숙인 채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계속 밥을 먹었다.다만 예전에 허아연이 주현우에게 연달아 두 번씩 전화를 걸었다면 아마 바로 차단당했겠지. 주현우가 전화를 받지 않자 얼마 후 오지은에게서 짧은 메시지

  • 버린 건 나였지만, 무너진 건 너였다   제214화

    주현우의 말에 허아연이 고개를 돌려 뒤를 살폈다. 한민규 일행이 아직 오지 않은 걸 확인하고는 결국 차에 올라탔다.뒷문이 잠겨 있어 조수석에 탈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주현우가 미리 노린 것 같았다.차 문을 가볍게 닫고 안전벨트를 매자 차가 천천히 출발했다.핸들을 왼쪽으로 꺾어 도로에 진입한 주현우가 허아연을 슬쩍 보며 느긋하게 물었다."나가서 사니까 마음이 편해?""네." 허아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훨씬 편해요."잠시 말이 없던 주현우가 말했다. "며칠 있다가 기분 풀리면 돌아와. 아레아 베이가 얼마나 살기 좋아."환경만 놓고 보면 산과 물이 어우러진 아레아 베이가 쾌적한 건 사실이었다.다만 사는 게 편한지 불편한지는 어디 사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결국 누구와 함께 사느냐에 달려 있었다. 아레아 베이로 돌아오라는 주현우의 말에 허아연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볼 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힘들게 나왔는데 다시 들어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얼마 지나지 않아 마이바흐가 식당 야외 주차장에 멈춰 섰다. 차에서 내린 두 사람은 바로 지일우가 예약해 둔 룸으로 들어갔다.식당 로비를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는 동안 허아연은 가슴 앞에 팔을 포개고 있었다. 경계하는 자세였다.마치…… 주현우가 옆에 없는 것처럼 혼자 온 사람 같았다. 룸에 들어서니 아직 아무도 도착하지 않았고 지일우는 먼저 주문을 하러 나간 상태였다.입구 쪽 자리를 골라 앉은 허아연은 핸드폰을 꺼내 뉴스를 봤다.주현우는 허아연의 오른쪽에 자리를 잡았다.앉자마자 전화벨이 울렸다.심유환에게서 온 업무 전화였다. 주현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 쪽으로 걸어가 전화를 받았다.5~6분 후 전화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오니 한민규와 다른 투자자들이 들어왔다.룸에 들어선 사람들은 대주주 격인 주현우가 테이블 끄트머리에 앉아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라며 말했다."주 대표님, 여기 앉으시면 어떻게 해요. 상석에 앉으셔야죠! 이러면 저희가 어떻게 앉겠어요?""대표님

  • 버린 건 나였지만, 무너진 건 너였다   제213화

    그냥 허아연을 막지 않은 것뿐이었다. 또 이 일로 싸우기도 싫었고 두 사람 사이가 더 틀어지는 것도 바라지 않았다.주현우가 말없이 술만 마시는 걸 보던 전서진이 말했다."잠깐 떨어져 있는 것도 나쁘지 않아. 잠깐 헤어지면 더 그리운 법이잖아."전서진의 말에 심유환이 고개를 들어 주현우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하지만 현우야, 아연이랑 제대로 잘살아 볼 건지, 아니면 다른 생각이 있는 건지 이제는 결정을 내려야 해.""지금 허아연 태도를 너도 봤잖아. 예전에 하던 걸 상상하면 안 될 거야. 이것도 갖고 싶고 저것도 가지려고 해서는 안 돼. 오지은이랑도 확실히 정리해야지."심유환의 말에 주현우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내가 오지은이랑 뭐가 있겠어. 오예은 대신 오씨 가문 챙겨주는 것뿐이야."주현우가 오예은 얘기를 꺼내자 전서진도 따라 웃으며 말했다."내가 말했잖아. 아무리 닮았어도 같은 사람이 아니라고."이어 전서진이 바로 말을 덧붙였다."그래도 오지은이랑은 확실하게 선을 그어야 해."전에 주현우가 오예은과 사귀었다는 걸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주씨 집안에서 두 사람의 관계를 허락할 리도 없었고 다들 미래가 없다는 걸 알았기에 굳이 얘기하지도 않았다.사실 벌써 몇 년이나 지났으니 이제는 내려놓을 때도 되었다.게다가 몇 년 동안 오씨 가문을 챙겨준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전서진의 권고에도 주현우는 아무 말 없이 술잔을 들었다. 오예은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절뚝거리며 필사적으로 구조 요청하러 다니던 모습이 떠올랐다.그리고 오예은은 그렇게 조용히, 아무도 귀찮게 하지 않고 세상을 떠났다.심장은 오지은에게 남겨준 채.주현우는 술잔을 무심히 손에 든 채, 전서진과 심유환이 계속 내려놓으라고 권고하는 동안에도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 뒤로 며칠간 주현우는 허아연에게 연락하지 않았다.그러던 어느 날 오전, 프로젝트 업무 보고가 있었다. 프로젝트 투자자 대표로서 주현우는 스타라이트 테크에 회의하러 방문했다. 손꼽아보니

  • 버린 건 나였지만, 무너진 건 너였다   제212화

    그래도 결국 전화를 받고 다정하게 물었다."무슨 일이에요?"전화기 너머 들려오는 듣기 좋은 허아연의 목소리에 주현우는 통유리창 앞으로 걸어가 옆 서랍장에서 담뱃갑을 꺼내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이어 담뱃갑을 내려놓고 라이터를 들어 불을 붙였다.담배를 길게 한 모금 빨아들이자 입술 사이로 연기가 천천히 새어 나왔다."아직 야근 중이야?"그때 허아연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렸다."나 이사했어요."담배를 피우던 주현우는 순간 멈칫하더니 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낀 채 그대로 입 가까이에 굳어버렸다.한동안 그렇게 멈춰있던 주현우는 한참 뒤에야 정신을 차리고 겨우 한 모금 피운 담배를 재떨이에 눌러 껐다.담배 생각이 사라졌다.새것과 다름없는 담배를 몇 토막으로 부러뜨려 재떨이에 쑤셔 넣었다.주현우는 오른손에 휴대폰을 바꿔 쥐고 왼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넣은 채 조용히 마당을 바라봤다.전화기 너머에서 한동안 아무 말이 없자 허아연이 전화를 끊으려는데 주현우가 마당을 바라보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 피식 웃었다."이사 축하해."이어서 또 웃으며 말했다."주소가 어디야? 집들이 축하하러 가야지."이렇게 오랫동안 꾹 참으며 화도 내지 않고 오히려 이사 축하한다는 말을 하는 주현우는 조금 의외였다. 이미 트집 잡으면 맞서 싸울 준비까지 하고 있었다. 어쩌면 주현우도 사실 오래전부터 같이 살기 싫었는데 허아연이 눈치도 없이 아레아 베이에서 계속 버티고 있었던 걸지도 몰랐다.휴대폰을 들고 창가로 걸어간 허아연은 왼팔을 가슴 앞에 모으고 건물 아래로 보이는 야경을 바라봤다."감사하지만 집들이는 괜찮아요."담담한 허아연의 말에 주현우는 아직 이혼한 게 아니라고 화를 내고 싶었다. 하지만 요즘 두 사람이 이혼 문제로 너무 많이 부딪혔던 게 떠올라 마음을 진정시켰다. 지금 허아연은 오로지 이혼에만 집착하고 있으니 잠시 떨어져 지내는 게 나을 수도 있었다.눈에 띄지 않게 잘 살펴보다가 가끔 마주치면 되는 거였다.이렇게 계속 싸우다가는 허아연이 정신적

  • 버린 건 나였지만, 무너진 건 너였다   제211화

    주현우의 달콤한 말에도 허아연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믿지도 않았다.그저 할아버지한테 혼나서 하는 소리겠거니 했다. 두 손으로 주현우의 가슴을 밀어내려는 찰나, 주현우가 갑자기 허아연 어깨에 턱을 살며시 얹으며 나지막하게 말했다."나랑 오지은은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이가 아니야."잠깐 멈칫하던 주현우가 덧붙였다."오씨 집안에 신세진 게 있어."주현우의 해명에 잠시 침묵하던 허아연이 입을 열었다."주현우 씨, 오지은이 돌아오기 훨씬 전부터 우리 사이에는 이미 문제가 있었어요."그 말에 주현우는 허아연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조금 지친 듯 부드럽게 말했다."그럼 우리 다시 시작하자."다시 시작하자고?3년을 노력했고 3년을 실망했다. 이제는 몸도 마음도 다 지쳐버리고 우울증까지 왔는데 어떻게 다시 시작한단 말인가.감정에 쏟을 에너지가 남아 있지도 않았고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었다. 조용하고 단순한 삶을 보낼 수 있기를 바랐다. 더 이상 자질구레한 귀찮은 일들에 시달리고 싶지 않았다.너무 지쳐서 더 이상 애쓰고 싶지 않았다.허아연은 주현우의 말에 답하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주현우 씨, 나는 이제 되돌아갈 수 없어요."주현우가 피식 웃었다."해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허아연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너무 피곤했다. 그저 푹 자고 싶고 일에만 집중하고 싶고 제품이 빨리 시장에 나오기만을 바랐다. 그렇게 잠시 주현우의 품에 안겨 있던 허아연이 슬며시 빠져나왔다.방으로 돌아가는 허아연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주현우는 의외로 차분했다.오예은이든 오지은이든, 아니면 허아연 마음속에 있던 다른 누구든 다 과거일 뿐이었다. 주현우와 허아연이 부부라는 것만이 현실이고 현재 진행형이었다. ……방으로 돌아온 허아연은 샤워를 마치고 주민경에게 방금 일을 털어놓았다.전화기 너머에서 주현우의 대처를 전해 들은 주민경은 책상을 탁 치더니 언성을 확 높이며 소리쳤다."역시 둘

  • 버린 건 나였지만, 무너진 건 너였다   제210화

    그때 주현우가 손에 든 합의서를 흘끗 보더니 가볍게 웃으며 물었다."허아연, 이혼 합의서 들고 할아버지 찾아가면 해결될 거라고 누가 그랬어?"허아연이 고개를 들었다.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주현우가 다시 말했다."할아버지한테 혼도 났고 압박도 받았어."허아연이 말을 꺼내기 전에 주현우가 또 말했다."합의서에 명시된 너한테 주기로 한 부동산과 자산은 법무팀에서 내일 처리 시작할 테니 몇 가지 서류 작업에 네 협조가 필요할 수 있어."주현우의 말에 이미 사인을 마쳐서 월요일에 신청하러 갈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주현우가 합의서를 책상 위에 툭 던지며 무심하게 말했다."대신 앞으로 이런 걸로 할아버지 귀찮게 하지 말고 너 자신도 괜히 힘들게 하지 마."그 말에 허아연이 주현우를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주현우 씨, 그게 무슨 말이에요?"이해할 수 없다는 허아연의 표정에 주현우가 몸을 일으키고 씩 웃으며 느릿하게 말했다."무슨 말이냐고? 이렇게 오래 알고 지냈는데 이것도 모르겠어? 내가 하기 싫다는 일을 할아버지가 나한테 강요할 수 있을 것 같아?"허아연은 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재산도 나누기 시작했으면서 왜 절차는 안 밟는 거예요?""이유는 없어."주현우가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아연아, 너무 밀어붙이면 오히려 역효과야.""소란 피우지 않고 얌전하게 있으면 어느 날 내가 기분 좋을 때 사인할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자꾸 날뛰면서 나만 보면 이혼 타령하면 어떡해? 내가 원래 반항기가 심한 걸 아직도 몰라서 그래?" "내가 언제 날뛰었어요?"주현우가 눈썹을 치켜올렸다."합의서를 할아버지 앞에 들고 갔는데 그게 날뛴 게 아니면 뭐야?""주현우 씨가 사인을 안 하니까 그런 거잖아요.""할아버지한테 가져갔다고 내가 사인할 것 같아? 열어봐, 내가 사인했는지?"허아연은 전혀 대수롭지 않아 하는 주현우를 멍하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말문이 막혔다.주현우가…… 주현우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허아연이 주현우를 빤히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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