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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9화

Author: 임서아
그동안 허아연은 너무 많은 사람, 너무 많은 일과 작별했다.

어느새 이별은 삶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평생 끝없이 무언가와 작별하는 과정인 것 같았다.

얼마나 창밖을 보고 있었을까. 시선을 거둔 허아연은 마음 한구석이 조금 쓸쓸해졌다.

지난 2년 동안 안씨 가문에서 잘 지냈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완전한 소속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어쨌든 진짜 안시연도 아니고 이 세상에 더는 혈육이 남아있지 않았으니까.

점심 무렵 비행기가 착륙하자 기사가 허아연과 안서준을 마중 나와 있었다.

두 사람이 안씨 본가에 도착하자 박혜숙은 누구보다 기뻐했고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허아연의 손을 꼭 잡고 연신 보고 싶었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안씨 가문은 이미 2년 전부터 안시연을 향한 마음과 그리움을 허아연에게 쏟고 있었다.

허아연은 집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이틀을 보낸 뒤 동승 그룹으로 출근했고 교진시에 있을 때보다 생활도 한결 규칙적으로 바뀌었다.

안서준은 집에서 이틀을 보낸 뒤 다시 교진시로 떠났다.

교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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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버린 건 나였지만, 무너진 건 너였다   제500화

    이번에도 모두가 아는 일을 주현우만 모르고 있었다.주민경을 한참 동안 꼼짝 않고 쳐다보던 주현우는 허아연의 삶에서 완전히 밀려나 끼어들 자리가 없어진 기분이었다.허아연은 주현우에게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다.주현우가 빤히 쳐다보자 주민경이 눈치도 없이 말했다."아연이 오빠 안 좋아하잖아. 그러니까 아무 얘기도 안 하는 거지.""……"주현우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어갔다."너만 입이 달렸어?"주현우가 핀잔을 주자 주민경은 그릇에 담긴 밥만 꾹꾹 삼키며 더는 상대하지 않고 주말에 쉬는 날 허아연 만나러 갈 생각이라는 것도 얘기하지 않았다.강성시는 그리 먼 곳도 아니었다.남매가 한마디도 지지 않으려 들자 유서희가 질렸다는 얼굴로 말했다."그만하고 둘 다 조용히 밥이나 먹어."유서희의 말에 남매는 입을 꾹 닫았다.주민경은 밥을 먹으며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주현우는 생각에 잠겨있었다.식사를 마치고 침실로 돌아온 주현우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다시 허아연에게 전화를 걸었다.신호음이 들렸지만 한참이 지나도 좀처럼 받지 않았다.몇 번을 연달아 걸어도 마찬가지였다.통유리창 앞에 선 주현우는 몇 통을 걸어도 받지 않는 전화에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휴대폰을 옆 서랍장 위로 툭 던졌다.이어 담배와 라이터를 들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요 며칠 계속 연락했으니 허아연이 부재중 기록을 못 봤을 리도 없고 답하기 싫어서 무시하는 것이 분명했다.후우.입에서 연기가 천천히 흘러나왔지만 잔뜩 찌푸린 주현우의 미간은 좀처럼 펴질 줄 몰랐다.예전에 연락이 닿지 않아서 허아연이 느꼈을 초조함과 걱정, 혼자 소외된 듯한 외로움을 주현우도 이제야 고스란히 겪고 있었다.창밖의 정원을 멍하니 바라보던 주현우는 미칠 만큼 허아연이 보고 싶었다.안고 싶고 입을 맞추고 싶고 품 안에 으스러지도록 끌어안고 싶었다.특히 며칠 전 실랑이를 벌이며 느낀 허아연 특유의 여유로운 분위기가 떠오르자 견딜 수 없을 만큼 그리워졌다.연기를 길게 내뿜는 지금 이 순간 주현우의 머릿속은

  • 버린 건 나였지만, 무너진 건 너였다   제499화

    그동안 허아연은 너무 많은 사람, 너무 많은 일과 작별했다.어느새 이별은 삶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평생 끝없이 무언가와 작별하는 과정인 것 같았다.얼마나 창밖을 보고 있었을까. 시선을 거둔 허아연은 마음 한구석이 조금 쓸쓸해졌다.지난 2년 동안 안씨 가문에서 잘 지냈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완전한 소속감이 느껴지지 않았다.어쨌든 진짜 안시연도 아니고 이 세상에 더는 혈육이 남아있지 않았으니까.점심 무렵 비행기가 착륙하자 기사가 허아연과 안서준을 마중 나와 있었다.두 사람이 안씨 본가에 도착하자 박혜숙은 누구보다 기뻐했고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허아연의 손을 꼭 잡고 연신 보고 싶었다는 말을 되풀이했다.안씨 가문은 이미 2년 전부터 안시연을 향한 마음과 그리움을 허아연에게 쏟고 있었다.허아연은 집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이틀을 보낸 뒤 동승 그룹으로 출근했고 교진시에 있을 때보다 생활도 한결 규칙적으로 바뀌었다.안서준은 집에서 이틀을 보낸 뒤 다시 교진시로 떠났다.교진시 업무는 전부 안서준이 책임지고 있었다.……며칠째 허아연을 보지 못한 주현우가 전화를 두 번이나 걸었지만 받지도 않고 답장도 없었다.주현우는 마음이 답답해졌다.요즘 미움 산 일도 없고 재결합 얘기를 꺼낸 것도 아니고 얌전히 지낸 편인데 왜 연락을 받지 않는 걸까?동승 그룹 지사 설립이 한창인 데다 교진시에서 체결한 협력 사업도 여러 건이었기에 허아연이 교진시를 떠났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오원빈 역시 며칠 동안은 다른 보고가 없었다.그날 일찍 퇴근한 주현우는 본가로 향했다.주민경이 허아연과 친하니 소식이라도 물어볼 생각이었다.한편 허아연이 주건영의 식사 초대를 거절하자 주진우는 휴가를 취소하고 이번에도 돌아오지 않았다.그 시각 거실.주현우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소파에 늘어져 통화 중인 주민경이 눈에 들어왔지만 통화 상대가 허아연이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었다.주현우가 돌아온 걸 본 유서희가 주방에서 반갑게 맞았다."현우 왔구나. 마침 잘 왔다, 와서 밥 먹어. 민경

  • 버린 건 나였지만, 무너진 건 너였다   제498화

    허아연은 주현우와 이 지경이 된 게 자신의 선택이라고 했지만 주씨 가문이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한 것도 사실이었다.주건영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말이 없었고 허아연도 먼저 다른 말을 꺼내거나 다음 만남을 약속하지 않았다.사실 허아연은 더 이상 주씨 본가에 가서 밥을 먹고 싶지 않았다.예전에 아무리 사이가 좋았어도 어디까지나 지난 일이었다.미간을 찌푸린 채 한참 생각에 잠겨 있던 주건영이 말했다."그래. 그럼 강성시에서 돌아오면 진우를 보내 데려오라고 하마."주현우나 주민경으로는 부족해도 주진우가 나서면 거절하기 어려울 것이다.주현우와의 관계가 어떻게 되든 주건영은 허아연과의 인연만은 놓고 싶지 않았다.주건영이 이렇게까지 나오자 더는 딱 잘라 거절하기 어려웠던 허아연도 웃으며 대답했다."네, 할아버지."돌아온 뒤의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할 일이었다.여덟 시가 넘어 저녁 식사를 마치자 주건영과 장 아저씨가 허아연을 아파트까지 데려다주었다.집에 돌아온 허아연은 주민경에게 전화해 주건영이 찾아온 것과 토요일에 강성시로 간다는 걸 얘기했다.침대에 나른하게 누워 다리를 꼬고 있던 주민경은 허아연이 주말에 강성시로 간다는 말에 몸을 홱 뒤집어 엎드리더니 상체를 일으키며 물었다."아연아, 설마 강성시 가서 안 돌아오는 건 아니지?""우리 오빠 피하는 거야? 그런 거면 너 좀 그만 따라다니라고 오빠 단단히 혼쭐내줄게."걱정 가득한 주민경의 말에 허아연은 웃음을 터뜨렸다."누굴 피하려는 게 아니라 너무 오래 나와 있어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다녀가라고 하셔서 뵈러 가는 거야."허아연이 할아버지, 할머니라고 부르자 주민경은 마음이 복잡해져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할아버지, 할머니래. 아연아, 너 이제 안씨 집안과 많이 가까워졌구나. 이제는 그쪽 할아버지가 친할아버지겠네. 그래도 우리는 평생 제일 친한 친구여야 해."걱정하는 주민경에게 허아연이 말했다."민경아, 걱정 마. 넌 평생 내 절친이야."두 사람은 한참 더 이야기를 나눈 뒤

  • 버린 건 나였지만, 무너진 건 너였다   제497화

    오랜만에 듣는 주건영의 목소리에 만감이 교차한 허아연도 인사를 건넸다."할아버지.""그래."주건영 역시 오랜만에 듣는 할아버지 소리에 감회가 새로운 듯 다시 말했다."돌아왔으면 됐다."며칠 전 주현우에게 허아연을 본가로 불러 밥 한 끼 하자고 했지만 거절당한 탓에 결국 직접 찾아온 것이었다.허아연이 입을 열기도 전에 주건영이 물었다."돌아와서 지내는 데 불편한 건 없어?"2년 전 허아연이 죽음을 위장해 떠난 일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장 아저씨가 차에 시동을 걸자 허아연이 차분하게 대답했다."네, 잘 지내고 있어요."허아연의 대답을 들은 주건영이 장 아저씨를 보며 말했다."장 기사, 찻집으로 가."나이가 들면 다들 찻집을 즐겨 찾곤 했다. 장 아저씨는 주건영의 말에 답을 하고 두 사람을 싣고 찻집으로 향했다.주건영 옆에 앉은 허아연은 주현우와 있을 때처럼 거리낌 없지는 않았지만 예전처럼 쭈뼛거리지도 않았고 예전만큼 어렵지도 않았다.교진시를 떠난 2년 동안 허아연은 많이 성장했다.찻집으로 가는 길에 주건영이 업무 얘기를 나눴고 허아연은 차분하게 대답했다.찻집에 도착해 룸에 들어가자 허아연은 차를 우려 주건영에게 따랐다.그제야 주건영이 지팡이를 쥔 채 무겁게 입을 열었다."너와 현우가 이 지경까지 될 줄은 나도 몰랐다.""너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으니 민수를 볼 면목이 없구나."허씨 가문에 대한 주건영의 미안함은 진심이었다.다행히 허아연이 불길 속에서 목숨을 잃은 게 아니라 그냥 떠났으니 망정이지, 아니면 남은 평생을 지난 2년처럼 괴로움 속에서 살았을 것이다.허아연은 자책하는 주건영을 웃으며 위로했다."할아버지, 저와 주현우 씨 일은 사실 다른 분들과 상관없어요. 처음에 저를 진우 오빠와 결혼시키려 하셨는데 제가 굳이 주현우 씨를 선택한 거잖아요.""그러니 지금 이 상황도 제가 선택한 결과예요."주건영을 비롯한 어른들이 죄책감을 느낀다는 사실을 허아연도 알고 있었다.주건영이 계속 그런 마음을 가지게 하고

  • 버린 건 나였지만, 무너진 건 너였다   제496화

    샤워기 물을 맞으며 샤워하던 허아연은 일에만 몰두하는 삶도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감정은 안정적이었고 2년 전처럼 스스로를 갉아먹거나 쓸데없는 생각에 시달리지도 않았다.다른 사람 속마음을 짐작할 일도 없으니 잠도 훨씬 잘 잤다.……전날 박혜숙과 영상통화를 하며 주말에 안서준과 강성시에 돌아가겠다고 약속한 허아연은 다음 날 새 사옥으로 찾아갔다.안서준에게 줄 아침 식사도 챙겨 갔다.허아연은 안서준의 책상 위에 아침 식사를 내려놓으며 말했다."엄마가 이번 주말에 같이 강성시에 한번 다녀가래요. 할아버지, 할머니가 보고 싶어 하신대요."책상 앞에 앉아 있던 안서준은 허아연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그래, 고 비서한테 티켓 끊으라고 할게."지금 안서준의 사무실은 임시로 마련한 곳이라 사옥 건물 공사가 끝나면 따로 꾸밀 예정이었다.일에만 몰두하는 안서준을 본 허아연은 오래 머물지 않고 아침 꼭 챙겨 먹으라는 당부를 남긴 뒤 사무실을 나왔다.허아연이 나가자 안서준은 고개를 들어 문 쪽을 바라보았다.방금 일부러 무심하게 굴거나 외면하려던 게 아니라 바라볼 용기가 없었을 뿐이었다.특히 허아연이 호텔에서 아파트로 이사 간 뒤 안서준은 마음이 꽤 복잡했다. 몇 번이나 찾아가고 싶었지만 그때마다 이성적으로 꾹 참았다.허아연을 난처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기에 최대한 좋은 오빠가 되려고 애썼다.그윽한 눈빛으로 한참 문 쪽을 바라보던 안서준은 겨우 시선을 거두고 비서에게 전화를 걸어 두 사람이 강성시로 돌아갈 비행기 티켓을 예약하게 했다.안서준의 사무실을 나온 허아연은 역시 임시로 사용하는 본인 사무실로 돌아왔다.요즘 허아연은 연구개발 업무 말고도 실험실 부지를 알아보고 있었다.몇 군데를 둘러봤지만 역시 스타라이트 테크 실험실 근처가 가장 적합했다.지난주에 안서준에게 이미 부지를 추천했고 하루빨리 부지를 확보해 실험실을 세우려고 정부 측과 협의 중이었다.최근 몇 년 사이 내륙 시장이 빠르게 성장한 만큼 안서준도 지사 설립에는 꽤 자신이

  • 버린 건 나였지만, 무너진 건 너였다   제495화

    허아연은 우울증 치료를 받으며 그 사실을 깨달았고 그때 많은 것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요즘 들어서는 상태도 점점 좋아지고 있었다.진지하게 말하는 허아연을 보던 주현우는 주머니에서 오른손을 꺼내 허아연의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눈빛이 애틋했다.허아연은 뺨에 닿은 주현우의 손을 떼어내며 조용히 말했다."주현우 씨, 친구끼리는 이러지 않아요."그리고 말을 덧붙였다."이제 올라갈게요. 당신도 일찍 들어가서 쉬어요."말을 마친 허아연은 어깨에 멘 가방을 추켜올리고 아무렇지 않게 팔짱을 낀 채 돌아서서 아파트 안으로 걸어갔다.멀어지는 허아연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주현우의 눈에 아쉬움이 가득했다.시간이 조금만 더 천천히 흘렀으면 얼마나 좋을까.주현우는 허아연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한참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멀지 않은 곳에는 오늘따라 눈에 잘 띄지 않는 검은색 아우디를 몰고 온 권승준이 있었다.주현우가 허아연을 데려다줄 때부터 이미 그곳에 있었다.두 손을 핸들에 얹은 권승준은 주현우가 적극적으로 허아연을 붙잡는 모습을 보며 부담감이 느껴졌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둠 속에서 자신과 허아연을 지켜보던 주현우였다.그런데 이제는 두 사람의 위치가 뒤바뀌었다.참 짓궂은 운명의 장난이었다. 주현우가 떠나지 않자 권승준도 제자리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한참 뒤 주현우가 차를 몰고 떠난 뒤에야 따라 시동을 걸었다.허아연과 얘기를 나누려 했는데 지금은 타이밍도, 분위기도 아닌 것 같았다. ……한편 위층으로 올라가 집에 들어간 허아연은 가방을 걸어두고 슬리퍼로 갈아 신은 뒤 소파에 몸을 푹 기대고 나서야 한결 홀가분해졌다.요즘은 지사 설립을 준비하는 데다 연구개발 프로젝트까지 두 개나 맡고 있어서 꽤 피곤했다.잠깐 휴식한 뒤 허아연은 박혜숙과 영상통화를 했다.화면 너머의 박혜숙은 허아연이 혼자 지낸다는 걸 알고 걱정스럽게 물었다."아연아, 혼자 있으면 무섭지 않아? 무서우면 서준이한테 와서 같이 지내달라고 해."권유성이 허아연과 권승준의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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