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화요일 오전에 접견실 문이 열렸다.아크릴판 너머에 서영애가 앉아 있었다.얼굴이 말랐고, 무릎에 모은 손이 안 움직였다."이 접견 제가 안 넣었어요.""알아. 내가 넣으라고 했다.""어떻게요.""조 변호사한테 네 이름으로 넣어 달라고 했지.그러면 네가 확인하러 올 거고.""그 변호사님 금요일부터 안 나와요."서영애의 손이 한 번 움직였다."…그래서 너를 불렀다.""무슨 말씀이세요.""내 변호인 비용하고 영치금이 한 군데서 나왔다.이번 주에 둘 다 안 왔어. 여기서는 돈으로 먼저 안다.""저한테 뭘 주시려고요.""주는 건 아니야. 알려 주는 거지."서영애가 아크릴에 얼굴을 가까이 댔다."네 엄마 옆에 있던 사람이 살아 있다.""임영숙 씨요.""이름까지 아는구나.""12년 전에 지워졌는데 올해 3월에 창고 계약서에 서명을 했어요."서영애가 고개만 끄덕였다."임영숙 씨를 치우려는 얘기가 있었다.오늘 안에 가라.""어디요."벽 쪽 교도관이 손목시계를 봤다."611에 302.""왜 지금 말씀하세요.""내가 쓸 사람이 없어졌으니까.너는 아직 쓸 데가 있고."" 이 방 녹음돼요.""알아. 그래서 동네는 안 붙였다.""여울아. 나는 15년 전 그 집에 안 갔다.""그 말씀을 지금 왜 하세요.""…내가 갔으면 네가 지금 여기 앉아 있지도 않지.""여울아. 받는 사람이 누구였는지 생각해 봐라."교도관이 시계를 들어 보였다.접견실을 나와 접수창구에 섰다."이 접견 신청서 사본 받을 수 있어요?"직원이 화면을 눌렀다."신청인 본인이시면 됩니다."신청인 칸에 서지안 이름이 있었고, 그 아래 변호인 칸에 조성우 이름이 있었다.그 2칸이 같은 손이었다.제 이름을 남이 쓴 종이가 2장이 됐다.맡긴 전화기를 찾아 형사에게 걸었다."형사님. 조성우 변호사가 지난주 목요일에 접견 신청서를 적었어요.그 종이를 지금 들고 있어요."『회장님. 그건 표본이 됩니다.어제 받은 접수증하고 같이 넣겠습니다.남은 18개는
월요일 아침에 업체 마당에 차가 섰다.철문이 열려 있었다.마당 상자가 토요일보다 줄어 있었고, 안쪽에서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낮게 났다.작업은 9시부터라고 들었다.한무현이 가방에서 서류철을 꺼냈다."회장님. 계약서 원본입니다.회사 인감이 찍혀 있고, 담당자 칸에 제 이름이 들어가 있습니다.""형사님은요.""…영장 신청하러 가셨습니다."주말에 사장 번호를 6번 눌렀지만 받지 않았다.사무실 문을 밀었다.안쪽 책상에 중년 남자가 앉아 있었다."사장님이세요?""예.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금요일에 들어온 접수 한 건을 중지하려고요."사장이 쓰던 펜을 놓았다."접수번호 아십니까."한무현이 번호를 읽었다.사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벽에 걸린 대장을 내렸다.종이를 넘기던 손이 한 장에서 멈췄다."이 건은 오늘 첫 번째로 들어갑니다. 9시입니다.""지금 저 소리는요.""…예열하는 소리입니다.""중지해 주세요. 의뢰인이 저예요."사장이 서지안 얼굴을 봤다."…접수하실 때 오신 분은 다른 분이었습니다.""제 이름이 적혀 있잖아요.""적힌 이름과 오신 분이 같아야 저희가 믿을 수 있습니다.금요일에 오신 분은 회장님이 아니었습니다.""제 이름을 사칭해서 온 사람이에요""…저희는 종이에 적힌 대로만 합니다.맡긴 걸 함부로 안 태우는 것도, 태우는 것도 같은 규정입니다."서지안이 할 말이 없었다.저쪽은 그 규정을 먼저 읽고 왔을 것이다."금요일에 온 사람 어떻게 생겼어요.""…여자분이었습니다. 마스크를 쓰셨고요."서지안이 그 대답을 지난주 옛집에서도 들었다."사장님. 그 접수증 원본 좀 보여 주세요."사장이 대장에서 종이 한 장을 빼냈다.접수번호와 날짜가 찍혀 있었고, 아래 칸이 손글씨였다.서지안.제 이름을 남이 쓴 것을 처음 봤다.글씨는 또박또박했고, 받침을 끝까지 내려 그었다."사장님. 창구에 카메라 있죠.""있습니다. 금요일 것도 남아 있습니다.""얼굴 나와요?"사장이 모니터를 자기 쪽으로 돌려 한
토요일 아침 7시에 서지안은 식탁에서 그 이름 세 글자를 들여다보고 있었다.서아가 거실 바닥에 블록을 쏟았다."엄마. 오늘은 회사 안 가?""나가야 해.""토요일인데...."아이를 두고 또 나가야 하는 서지안의 마음도 아렸다.블록 하나를 집어 서아 손에 올려 줬다."엄마가 찾을 게 있어서."강도현이 주방에서 컵을 두 개 꺼냈다."몇 시에 나가?""9시요.""서아는 내가 볼게. 오후에 자전거 타러 갈 거야.""고마워 선배. 선배만 믿을게요."서지안이 계약서 복사본을 강도현 쪽으로 돌렸다."선배, 제가 놓치고 있는게 있던것 같아요. 창고 선반이 스물네 칸이었어요.제가 도착했을 때 열네 개가 실리고 있었어요.그 앞에 열 개는 언제 나갔는지 몰라요."강도현이 컵을 내려놓고 복사본을 봤다."이 이름이 창고 주인이야?""임차인이에요. 12년 전에 주민등록이 지워진 사람이고요.""지워진 사람이 올해 서명을 했다고.""3월에요."노재혁이 지워진 달이었다.연락처가 이름 밑에 보였다.서지안이 번호를 눌렀다.세 번 울리고 끊겼다.다시 누르자 안내 음성이 나왔다.없는 번호였다.주소 칸도 읽어 봤다.시내에서 한참 떨어진 동네였고 번지까지 적혀 있었다."이 주소는 12년 전에 말소된 주소예요.""번호는 죽었는데 서명은 올해 있고.""서명은 손이 하고, 번호는 통신사가 지우니까요.""지안아. 그 집 주소도 적혀 있으면 가 봐.""12년 전 주소예요.""12년 전에 그 집에 살던 다른 사람은 아직 그 집에 있을 수도 있어."8시 40분에 형사에게서 전화가 왔다.『회장님. 트럭을 찾았습니다.』"어디서요."『어제 12시 20분에 시 외곽 톨게이트를 지났습니다.번호판에 진흙이 있었는데 앞 자리는 읽혔습니다.』"운전한 사람은 보이나요."『…유리에 빛이 들어가서 얼굴이 안 나옵니다.조수석에도 사람이 있었는데 그쪽도 안 나옵니다.』"트럭은 어디로 갔어요."『문서 파쇄 업체입니다. 외곽 산업단지에 있습니다.』서지안이
이사회실 문이 닫히고도 배창현은 복도에 서 있었다."배 부회장님. 아까 그 말씀이 무슨 뜻이에요.""그 주에 저는 휴가였고, 회사에 있었습니다."서지안이 걸음을 멈췄다."형사님께는 자리에 안 계셨다고 하셨잖아요.""…인사 기록대로 말씀드렸습니다.""하루 들어오셨다는 말씀이에요?""전화를 받고요.""누구 전화요.""비서실 내선이었습니다. 받으니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끊고 나서 집을 나섰습니다.""그래서 뭘 보셨어요.""…아무것도 못 봤습니다.올라갔을 때 제 방은 비어 있었습니다.""그러면 사람이 있었던 건 어떻게 아세요.""…수화기가 제자리에 안 놓여 있었습니다.그다음 주에 교환 기록을 뽑았더니,그 시간에 제 내선에서 나간 통화가 하나 있었습니다."서지안이 한 걸음 다가섰다."어디로 나갔어요?""…재무팀 창구입니다."지난달에도 재무팀 대리가 비서실에서 왔다는 전화를 받았다."4년 동안 왜 말씀 안 하셨어요.""…그 기록을 내면 제가 걸었다는 뜻이 됩니다.실장 칸에 제 이름이 있고 그날 제가 회사에 있었으면,그냥 제가 쓴 게 되어버리니까요."아침에 이사들 앞에서 그 주에 비서실장은 휴가였다고 한 건 서지안이었다."그 기록 지금 있어요?""…제가 지웠습니다.""그러면 오늘은 왜 말씀하세요."배창현이 안주머니에서 접힌 종이를 꺼냈다."오늘 아침에 총무팀 전화를 받고 기록을 뽑아 왔습니다.4년 전에 제가 반납한 출입 카드가 오늘 아침에 찍혔습니다.7시 26분입니다.""어디서요.""북쪽 창고라고 들었습니다.""우리 창고예요?""…아니라고 합니다.문에 달린 기계만 회사 것이라고요."노재혁의 차가 세워져 있다는 그 창고인 듯싶었다.종이가 서지안 손으로 넘어왔다."회장님. 저는 제 이름이 적힌 종이가 무섭습니다."4년 전 전표의 과장 칸에도 한 실장 이름이 올라가 있었다.배창현이 먼저 복도를 떠났다.서지안 편을 들러 온 걸음이 아니었다.10시 20분이었다.서지안이 한무현과 지하 1층으로 내려갔
형사에게서 전화가 온 건 아침 7시 10분이었다.『회장님. 이 시간에 죄송합니다.』"아니에요. 일어나 있었어요."『어젯밤 11시에 감정이 나왔습니다.이사회 들어가시기 전에 드리는 게 맞다고 봤습니다.』"어떻게 나왔어요."『1차 소견입니다.어제 받으신 종이하고 창구 전표가 같습니다.받침을 끊는 자리가 일치합니다.』서지안이 머리를 묶던 손을 내렸다."조성우 변호사는요."『…어젯밤에 변호인을 선임했습니다.법을 아는 사람이 입을 닫기로 작정한 겁니다.9시에 불러도 진술은 안 할 듯합니다.』"그러면 전표 결재 칸은요."『정식 감정으로 올리려면 조성우 씨 글씨를 더 받아야 합니다.진술을 안 하면 글씨도 없겠지요.아마 어제 받아 오신 한 장이 표본 전부가 될 것입니다.』『그 칸을 변호사가 썼다면 비서실이 시킨 겁니다.4년 전 그 비서실장이 배창현 부회장님입니다.』"알아요. 열다섯 해 전 아버지 비서실장도 배 부회장님이에요."『…회장님. 그건 오늘 그 방에서 하실 말씀이 아닙니다.소견 한 장으로 이름을 올리기엔 신뢰도가 부족할 겁니다.』서지안이 대답하지 않았다."형사님. 밤새우셨어요?"『…예.』"창고는요."『영장 나왔습니다. 오후에 엽니다.』전화를 끊고 돌아서니 서아가 식탁에 앉아 있었다."엄마. 오늘 회사에서 뭐 해?""…엄마가 누구인지 얘기하러 가."서아가 숟가락을 든 채로 고개를 기울였다."엄마는 엄만데."서지안이 서아의 머리를 쓸었다.오늘 들을 말 가운데 제일 쉬운 말일 것 같았다.현관문이 열렸다."아빠!"서아가 숟가락을 놓고 뛰어나갔다.강도현이 서아 가방을 집어 들었다."엄마 늦었다. 가자."8시 50분에 서지안이 이사회실 앞 복도에 섰다.강도현이 창가에 서 있었다."선배.""응. 데려다주고 왔어. 가면서 엄마 자랑 실컷 하더라.""들어가면 못 물러요.""어제 내가 한 말인데."강도현이 창에서 돌아섰다."오늘은 네가 네 이름 부르는 날이야.""…열다섯 해 만이에요."강도현이 숨
1시 50분에 서지안이 그 법인 1층 로비에 앉아 있었다.어제 올라간 폐기 신청의 대리인이 돌아오는 길목이 여기였다.2시 10분에 유리문이 열렸다.조성우가 서류 가방을 들고 들어오다가 멈춰 섰다.서지안이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변호사님. 다녀오셨어요?"조성우가 가방 손잡이를 고쳐 쥐었다."…회장님.""저도 거기 다녀왔어요.제가 앉자마자 서영애 씨가 오늘 아침 일을 아시더라고요."조성우의 발끝이 반 걸음 움직였다."…의뢰인 접견은 변호인 재량입니다.""그러면 다녀오신 건 맞으시네요."서지안이 가방에서 서류 한 장을 꺼냈다."변호사님. 어제 2시에 올라간 폐기 신청이요.그 종이에 적힌 서류는 저희 회사 거예요.""신청서는 의뢰인이 작성합니다.""아침에도 그 말씀 하셨어요. 대리인 칸에는 변호사님 이름이 있고요."조성우의 턱이 굳었다."회장님. 여기서 하실 말씀은 아닌 것 같습니다.""회사 서류를 회사 동의 없이 지우려고 하신 거예요.오늘 오후에 고발하면 변호사님 이름이 먼저 올라가요."로비 직원이 고개를 들었다가 숙였다.조성우가 그쪽을 봤다."…회의실로 가시죠."먼저 자리를 옮기자고 한 쪽은 조성우였다.2시 20분에 1층 작은 회의실 문이 닫혔다.서지안이 먼저 의자에 앉았다.조성우는 앉지 않고 서 있었다."회장님. 저는 시키는 서류를 씁니다.""누가 시켰는지는 안 말씀하시고요.""…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그러면 하나만 여쭤볼게요."서지안이 탁자에 손을 올렸다."열다섯 해 전에 제 사망 신고를 넣은 사람이요."조성우의 어깨가 한 번 내려갔다."…저는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어느 자리요.""그때 저는 대리였습니다.그런 서류를 만질 자리가 아니었습니다."없었다고 말하는 사람은있었던 사람이 누구인지 안다."그러면 그때 그 자리에 계셨던 분은요.""…회장님.""네.""저는 그 질문에 답하면 이 일을 그만둬야 합니다."열다섯 해가 지났는데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은 아직 힘이 있었다